엄순대의 막중한 임무 사계절 중학년문고 34
정연철 지음, 김유대 그림 / 사계절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주 유쾌한 이야기 4편이 들어있는 단편집이다. 그런데 주인공들의 상황이 그리 유쾌할 만하지 못하다. 나라면 그렇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나를 돌아보게 했다. 나는 너무 비관적인가? 긍정적 에너지가 부족한가?

표제작부터 보면, 엄재범네 할머니는 개미시장의 유명한 순대맛집 사장님이다. (그래서 손자의 별명이 엄순대) '앗싸! 학원을 그만두었다!' 라는 환호성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이유인즉, 엄순대에게 '막중한 임무'가 주어졌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할머니를 돌보는 일이었다. 할머니는 순대장사를 계속할 수가 없었다. 치매에 걸렸기 때문이다.

행복은 환경에 있지 않고 마음가짐에 있다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한다. 근데 막상 입장을 바꿔 나의 상황이라고 생각을 해보면.... 나는 이 작품같은 낙관주의를 절대 유지할 수가 없다. 치매노인이 집에 계시다니.... 그래서 며느리가 순대장사를 맡고(아빠는 돌아가시고 없음), 손자는 학원도 못가고 할머니를 지키고 있어야 된다.... 우어어어 생각만 해도 머리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할머니는 방금 드신 밥을 안드셨다 우기고 전기밥솥의 밥을 맨손으로 퍼먹는 수준인데 말이다.

그래도 이 무한긍정 손자는 할머니와의 생활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나름의 노하우를 깨쳐간다. 그건 1인 다역이었다. 할머니의 기억에 따라 손자도 되었다가 아들도 되었다가... 이 책에도 물론 위기와 절정이 나오지만 결말은 훈훈하다. 치매할머니, 엄마, 손자의 단촐한 가족에서 고생과 에피소드는 있어도 그늘과 외로움은 없다. 그게 잘 상상이 안 가는 나는 지독한 현실주의자.

이 책은 4편 중 2편에 장애를 가진 주인공이 나온다. 첫번째 작품 [빛의 용사 구윤발]과 마지막 작품 [아주아주 낙천적인 정다운]이다. 다운이는 너무 착한 행동특성을 가져서 민폐가 되지 않고 학급 친구들과 선생님이 모두 좋아하는데 반해 구윤발은 아랫집 아주머니가 매일 올라와 모진 소리를 퍼부을 만큼 행동이 과격하다. 그래도 하나된 가족의 모습이 든든하다. 화자인 동생은 오빠 때문에 골머리를 앓으면서도 야무지게 오빠를 챙긴다. 그러다 집에 둘이 있게 된 어느날, 지진이 일어났고 동생을 보호하려는 오빠의 몸짓이 감동적이다. 네 가족이 모두 웃으며 이야기는 끝난다. 이 집의 상황이 현실이라면 그것 역시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이랬으면 좋겠다. 나처럼 걱정 사서 하지 말고, 있는 것을 즐기고 지금의 유쾌함에 웃고.

다운이의 학급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힘들게 하는 아이는 다운이가 아니라 다운이를 괴롭히는 박인태다. 심술궂은데다 말안듣고 뻗대기까지. 급기야는 궁지에 몰리자 왜 자기만 미워하냐고, 왜 정다운만 좋아하냐고 소리치며 운다. 이때 "니 모습을 보라"고 거울을 들이대고 싶은 나의 '자기인식충동'(주제를 파악하게 해주고 싶은 충동)이 꿈틀거린다. "다운이가 친구들한테 어떻게 하는지 알지? 너는 어떻게 하더라? 비교해 볼까? 뿌린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단다."
아 그런데 이 학급의 선생님은 내가 아니었다. 선생님은 인태의 마음을 몰라주어 미안하다며 사과하셨다. 인태는 마음이 물처럼 녹아 눈물을 철철 흘렸다. 인태가 사과하기도 전에 다운이가 다가가 인태를 안아주었고, 그것으로 용서는 끝났다. 책임있는 행동을 중요시하는 나와는 좀 맞지 않는 감동적인 방식인데.... 나의 방식이 맞다고도, 이 선생님의 방식이 맞으니 난 반성해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겠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판단이 중요하다고 밖에 말할 수 없겠다.

마지막으로 세번째 작품 [빼못모 회장 황소라]다. 황소라는 중고딩으로 오해받을 정도로 덩치가 크다. 인기가 없다. 그룹짓기 좋아하는 아이들 사이에 끼지 못한다. 주도하는 아이에게 노골적으로 거부당하기도 한다.

근데 이 책 주인공들의 공통점. 낙천적이다. 소라 또한 상처받거나 징징거리지 않는다. 빼빼로데이에 선생님의 금지령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대부분 좋아하는 아이한테 줄 빼빼로를 사왔다. 소라는 본인의 특기대로 왕빼빼로를 직접 만들어갔다.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소라도 그룹의 회원모집이란 걸 해보게 된다. 바로 '빼못모'(빼빼로 못 받은 사람들의 모임)

엄순대 가족부터 구윤발 가족, 황소라 가족, 정다운 가족의 낙천성은 긍정에너지인가 대책없는 긍정성인가. 뭐라도 상관없겠다. 부정성, 비관성 보다는 나으니까. 평범하지 않은 존재로 산다는 건 힘이 든다. 그런데 바로 그 존재가 그걸 낙천적으로 바라본다는데 얼마나 복된 일인가. 그저 격려를 보내줄 일이다. 나도 낙천성이 1도 없는 사람은 아니지만 조금 더 갖고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저 제목 봐라. '정말 마음먹기 나름일까'가 뭐니.ㅎㅎ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순재와 키완 - 두 아이가 만난 괴물에 대한 기록, 제19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75
오하림 지음, 애슝 그림 / 문학동네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을 읽고 며칠째 리뷰를 못 쓰고 있었다. 첫째는 내가 제대로 읽었는지 알 수 없어서이고 둘째는 내가 제일 난감해하는 시간여행 이야기가 나와서이다. 상상력이 부족해서 그런지 시간여행 이야기만 나오면 그 모순성 때문에 몰입이 안 된다. 그렇긴하지만 이 책을 그냥 흘려보내긴 뭔가 아쉬웠다. 느낌이 너무 색다르다. 난생 처음 본 곳에 왜 여기 있는지도 모른 채 헤매고 다니는데 깨보니 꿈이었고 그 꿈이 너무 생생한 느낌?

'나'라는 화자는 '오랜 친구'에게 기상천외한 이야기를 들었다. 친구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넣어둘 수가 없는 이야기라 '나'는 쓴다고 했다. 대신 친구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들은 그대로가 아닌 이것저것 바꿔서 쓴다고 밝혔다. 그래서 이 책은 진실이 아니지만 어쩌면 진실이 아니라는 게 진실이 아니어서 진실일 수도 있다는....?? 들은 이야기를 각색해 쓰고 있으므로 '나'는 전지적 시점에서 순재와 키완, 그리고 필립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가끔 엉뚱하게 본문에서 "내가 말했다" 하는 식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아, 한마디로 어디로 튈지 모르는 책이다.

순재는 전학 온 키완과 친구가 되었다. 키완의 본래 이름은 백기완이다. 부모님을 잃은 기구한 사연과 함께 키완이 된 아이에게 순재와의 우정은 너무나 소중하다. 하지만 순재는 늘 그렇지는 않았다.

기묘하고 불편한 인물 필립. 이 아이는 왜 순재를 못마땅하게 주시하다가 "너는 어차피..." "너는 절대 피아니스트가 될 수 없어." "너는 말야, .....너는 .....다른 애들 다 되는 열 살도 될 수 없어!" 라는 섬뜩한 소릴 못참고 내뱉는 걸까? 이 친구의 정체가 궁금한데 나중에 알고보니 미래에서 시간을 거슬러 온 로봇이었다. 제작자는 80대의 로봇공학자 백기완 박사. 박사는 무슨 임무를 지워서 이 로봇에게 시간여행을 시킨 걸까? 로봇은 임무를 완수했을까?

보통 시간여행자는 과거 시점의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다. 흐름을 바꾸지 않는(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이 책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르려면 필립은 박사의 지시에 불복해야 한다. 그것이 박사를 위한 길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박사의 의도대로 이루어진다면? 으아아아아 그때부턴 나도 모른다. 새로운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시간여행이니 하는 것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닐 수도 있다. 난 사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지만 이 책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장면은 끝에서 두번째 장, 순재와 키완이 끌어안고 목놓아 우는 장면이 아닐까 생각한다. 순재는 왠지모를 불길함과 공포에 지쳐 있었고 키완은 어린 나이에 당한 엄청난 고난에 질려 눌려 있던 슬픔과 외로움이 그순간 고개를 들었다. 키완은 "순재야, 죽지 마아!" 하며 순재를 안았고 순재는 눈물이 터진 키완을 "울지 마, 울지 마...." 하며 안아주었다. 그렇게 두 아이는 서로에게 가장 깊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사실 이전까지 순재는 키완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박사가 준 임무를 띠고 온 필립이나 '나'가 키완의 고마움을 일깨워줘도 순재에게는 다가오지 않았다. "나중에 나를 구해주는 사람은 꼭꼭 아주 많이 좋아해야 하는 거"냐고 물으며 힘들어 한다. '나'는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나도 좀 그랬다. 그 말이 맞아서.

하지만 둘은 그렇게 하나가 되어 눈물을 흘렸고, 마지막장엔 작가의 의도로 짐작되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인류 문명의 발전을 위해 아홉 살짜리 아이 하나를 잃어야 한다면 아주 나쁘지 않은 조건이야. 당신은 그걸 생각하면서 현명한 선택을 해야 해."
- 순재가 진정 두려워해야 했던 것은 눈에 보이는 사람도, 로봇도 아닌, 비정함 그 자체였다. 괴물은 우리 안에서 이를 갈며 때를 기다린다. 잡아 먹히기는 쉽고, 떨쳐 내기는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아, 쓰고 보니 작가의 육성이 그대로 들어갔다는 느낌. 굉장히 강하다.)

그러고보니 한 생명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기 위해 앞에서 말한 시간여행의 모든 장치를 끌어들인 작가의 스케일이 정말 크다. 시공간을 넘어 소중한 한 생명. 이걸 부정하는 순간 우리는 '괴물'이 된다.

이 책은 퍼즐을 맞추는 기분으로 읽게 된다. 두 번째 읽을 때면 아마 많은 조각들을 고쳐 놓아야 할 것이라 짐작한다. (뭐 꼭 두 번을 읽어야 한다는 얘긴 아니다. 한 번 읽은 느낌도 중요할테니까.^^)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김용현 2018-12-03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음~~ 역시 글은 아무나 쓰는게 아니네요~~~ 읽을 수록 또 읽고 싶은~~~
 
언니들의 세계사 - 역사를 만들고 미래를 이끈 50명의 여성 인물 이야기 지식곰곰 4
캐서린 핼리건 지음, 새라 월시 그림, 김현희 옮김 / 책읽는곰 / 2018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Herstory'라는 원제를 왜 '언니'들의 세계사라고 번역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개인적으로 여성울 '언니'라고 칭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하지만 제목은 좀 눈에 띌 필요도 있으니까.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50명의 여성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대단히 두꺼운 책인가? 했는데 100쪽이 조금 넘을 뿐이다. 대신에 판형이 매우 크다. 보통 동화책의 2배 이상일 것 같다. 이렇게 큰 지면의 펼친 페이지 두 쪽에 한 인물씩을 소개하고 있다. 사람의 일생을 다루자면 두꺼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할텐데 2쪽이라니 읽을 것이 있겠나 싶겠지만 큰 판형 안에 요모조모 꽤 읽을 내용이 담겨 있다. 옮긴이는 "이 책에서는 한 인물의 기나긴 삶을 고작 두 페이지에 담아내야 하기에, 삶의 모든 부분들을 깊이 다루지는 못했답니다." 라고 전제했다. 인물에 대한 평가가 시대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점도 짚어주었다. 하지만 이 50인 중에 모르는 인물도 꽤 많았던 내게는 간단히 소개하는 이 책으로도 꽤 많은 걸 알게 되었다.

지금도 여성들은 많은 부분에서 차별받는다고 느끼고 있지만 실제로 여성이 자유롭게 교육을 받고, 원하는 일을 하고, 참정권을 가진 역사가 그리 오래지 않았다. 그런 시대를 살아오며 자신의 뜻을 펼치고 세상에 뚜렷한 자취를 남긴 여성들의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참 대단하게 느껴진다. 그런 이들이 오늘날 여성들이 딛고 설 땅을 단단히 다져 준 것이리라.

여러 분야의 인물들 중 더 관심이 간 이들은 예술가들이었다. 프리다 칼로처럼 육신의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인생은 존경스러웠고, 피터 래빗의 비어트릭스 포터나 발레리나 안나 파블로바 등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평생 발휘하며 살았던 인물들은 부럽기도 했다. 영화 <히든 피겨스>를 보고 "와, 수학도 아름답다는 걸 처음 알았다."고 한 적이 있는데 그 실제 주인공인 캐서린 존슨도 여기 나왔다. 그외 큰 족적을 남긴 중요한 여성 학자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다.

자신의 재능을 유감없이 펼칠 수 있었던 여성들은 비록 맞서야 할 어려움이 있었어도 행복한 삶이었다고 볼 수 있다. 반면 그러한 시도 자체가 생명의 위협이 되는 상황에 처한 이들도 있다. 탈레반 치하에서의 여성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여성은 아주 어린 아가씨였는데 출생연도를 보니 우리 아들 나이다. 말랄라 유사프자이라는 이 여성은 여성의 교육을 금지하는 탈레반 정권에 맞서 교육활동을 계속하다 십대의 나이에 총격을 받고 큰 부상을 입기도 했다. 역대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기도 했고. "학생 한 명과 교사 한 명, 책 한 권, 연필 한 자루만 있으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그녀의 말이 크게 다가온다.

그외 <사라 버스를 타다>의 주인공 로자 파크스도 나오고 여성 참정권을 위해 싸운 에멀린 팽크허스트도 나오고 가장 마지막에 안네 프랑크가 나온다. 안네가 15세에 나치의 손에 목숨을 잃었으니 이 책의 인물 중 최연소인 셈이다. "그러나 희망이 있는 곳에 삶이 있다. 희망은 새로운 용기를 불어넣어 우리를 다시 강인하게 만들어준다." 안네의 일기 속의 이 구절은 우리에게 용기를 준다. 세상은 계속 변화해 왔고 인간의, 그리고 여성의 권리는 꾸준히 신장되어 왔지만 아직도 나아가야 할 길이 남았다. 싸움의 방향은 여러가지다. 그 중에는 나 자신도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찰 없는 싸움은 오히려 퇴보를 가져오기도 하기 때문에.

이 책은 오래 두고 조금씩 보면 좋겠다. 근데 판형이 하도 커서 학급문고에 똑바로 꽂을 수가 없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이 훅! 창비아동문고 295
진형민 지음, 최민호 그림 / 창비 / 201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연애질이란 남보기에 어떠한가? 내로남불이란 말도 있는데 남보기에도 아름다운 연애질이란 건 과연 있는가? 아니 뭐 연애질이 꼭 남보기에도 아름다워야 하나?

이왕이면 그랬으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하는 모양이다. 초등 고학년을 담임하며 비교적 연애에 목매달지 않는 아이들과 지낼 때 학급운영이 즐거웠다. 그런 아이들 특징은 어리거나(아직 눈이 안떠짐ㅋ) 쿨하다.(좋으면 좋지만 아님 말고) 그 아이들과는 별다른 생활문제 없이 수업과 학급의 활동에 매진할 수 있다. 반면에 연애에 목매다는 아이들이 대다수면 정말 힘들었다. 일단 짜릿함에 눈 뜬 아이들은 학교가 너무 시시하고 지루하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소유욕을 가져오고 여러 비틀린 관계를 만들어 상처를 주고받는다. 파탄도 요란하게 내며 그 잔재를 치우는 일도 상당히 고약하다. 누구나 경험에 근거한 느낌을 갖는 법이라 난 초딩 연애질에 부정적이다.ㅎㅎ

그런데 이 책, 제목도 '사랑이 훅!' 뭔가 무척 심란한 얘기는 아닐까 싶었는데 참 예뻤다. 그래 이정도면 아름다운 연애질이라 이름해도 되지 않을까. 그동안 이런 책들을 발견할 때마다 꼭꼭 적어두고 <초딩 연애 도서들 >이란 목록을 만들었는데, 그 아이들의 사랑이 모두 대견하고 미더웠지만 이 아이들의 사랑도 그에 못지않게 예뻤다. 그렇다. 사랑이라고 다 아름다운 건 아니다. 나는 감히 그렇게 생각한다. 아니 아름다워야 사랑이라 말하는게 나을까. 어떤 것은 사랑이라 이름붙인 욕심이나 폭력, 속임수일지도 모른다.

이 책에는 박담, 신지은, 엄선정이라는 3명의 여학생 친구들이 나온다. 좋아하는 것도 잘하는 것도 성격도 모두 다르지만 멋지게 우정을 나눈다. 연애질은 우등생 공부벌레 엄선정이 먼저 시작했다. 그것도 그반에 가장 공부 못하는(대신 운동은 잘함) 이종수랑. 엄선정은 평강공주의 심정으로 이종수의 성적을 올려주려고 밤새 맞춤 문제집을 만드는 등 노력을 쏟아붓지만 이종수는 별 진전이 없을 뿐 아니라 그리 달가워하지도 않는다. 어느날 "이제 너 그만 만나고 싶어." 라는 종수의 통고와 함께 그들의 연애질에 종말이 찾아온다. "너는 뭘 했는데?!!" 라는 엄선정의 원망에 이종수는 대답했다. "그렇게 물어보면 할 말은 없는데.... 나는 널 그냥 좋아했어. 근데 넌 나한테 계속 화냈잖아."
상처받았겠지만 똑똑한 엄선정은 자신의 잘못이 무엇이었는지 금방 깨달은 것 같다. 그들은 원래의 아무것도 아닌 사이로 돌아갔고 헤어졌단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지만 일언반구 말하지 않았다. 당연히 엄선정이 먼저 찼을거란 아이들의 예측에 대해 입을 다문 이종수는 멋있다. 내가 본 애들은 그렇지 않았거든. 헤어지고는 더욱 찌질한....ㅠ 당연히 헤어질 수 있으며 헤어져도 괜찮다. 대신 멋져야 한다.

나머지 두 친구 박담과 신지은은 소위 삼각관계에 빠졌다. 박담의 소꿉친구 김호태를 신지은이 남몰래 사랑하게 된 것이다. 털털하고 눈치없는 박담은 그걸 전혀 모를 뿐 아니라 심지어 신지은이 자기 오빠를 좋아한다고 굳게 믿기까지 한다. 게다가 소꿉친구 사이는 어느 순간 자신들도 모르는 요술봉의 터치에 의해 '사귀는 사이'로 바뀌고 만다. 오랜 세월 지켜본 이해에 근거한 사랑은 더 안정되고 단단하다. 그걸 지켜보는 신지은의 마음은 찢어진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난 울었어~ 내 사랑과 우정을 모두 버려야했기에~ 라고 건모 오라버니는 노래했지만 이 어린 친구들은 둘 다 지켜냈다. 멋진 사람에게 멋진 사랑이, 건강한 사람에게 건강한 사랑이 찾아온다. 그러니 아이들아. 먼저 멋지고 건강한 사람이 돼라. 사랑의 상처와 아픔까지는 피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픔 뒤의 성장과 아픔 뒤의 찌질함은 너희의 선택이란다.

다시 고학년을 맡으면 테마독서로 앞에 말한 <초딩 연애 도서> 목록을 활용해 볼까보다. 그중에서도 이 책이 가장 인기 예감이다. 제목처럼 훅! 들어오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 뿜는 용 - 2019 아침독서신문 선정, 2016 대만 타이베이공립도서관 최고의책 선정 바람그림책 63
라이마 지음, 김금령 옮김 / 천개의바람 / 2018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의 주제는 카타르시스인가?^^ 시도 때도 없이 화를 내는 버럭이라는 용이 있었다. 모기 앵앵이에게 물려 화가 난 버럭이는 분을 참지 못해,
1. 버럭 소리를 질렀다.
2. 입에서 불이 뿜어 나왔다.
3. 불 뿜는 용이 되어 버렸다.

불 뿜는 용이 된 버럭이는 너무 힘들었다. 주변이 다 불타고, 손에 닿는 모든 것이 타버리고(미다스의 손도 아닌 것이), 친구들까지 다치게 했다. 결국 아무도 버럭이 곁에 오지 않게 됐다. 심지어 "물 속에 담그면 될까?" 하고 풀에 들어갔는데 물이 펄펄 끓어 모두들 물 밖으로 도망쳐 버렸다. 땅속에 얼굴을 묻으면 땅 속이 뜨거워지고. 소화기로 꺼도 안되고. 도대체 어째야 할까?

절망한 버럭이는 울기 시작했다. 눈물 콧물 줄줄 흘리며.... 그랬더니, 드디어 불이 꺼졌다. 풀장의 물로도, 소화기로도 꺼지지 않던 불이 눈물과 콧물에 꺼진 것이다. 안도감에 버럭이는 눈물을 매단 채 환하게 웃고, 친구들도 함께 기뻐한다.

눈물과 웃음이 가져온 감정의 정화. 이것을 카타르시스라 부를 것이다. 그렇구나. 어른 뿐 아니라 아이들도 감정의 정화 과정을 거쳐야 미련없이 다음 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이 책에선 눈물이었지만 반드시 눈물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중요한 것은 '우러나오는'과 '의도하지 않은(?)' 이라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우는 아이도 있다. 우리는 그것을 땡깡이라고 부른다. 그 울음은 몹시 피곤하다. 분노와 별 차이 없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은, 우러나오는 눈물은 부정적 감정을 깨끗이 씻어주고 비록 꼬질꼬질한 얼굴과 쑥스러움을 남기더라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게 해 준다.

부모나 교사는 이런 버럭이들을 어떻게 대하는 게 좋을까? 주변을 태워 쑥대밭으로 만들고, 친구들을 다치게 하고, 그래서 아무도 친구하지 않으려 하고, 그래서 더 심술을 부리는 버럭이들. 버럭이의 불길로부터 다른 아이들을 보호하며 동시에 버럭이를 다독이려면 도를 닦아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특히 버럭이들에게는 저런 감정의 정화 과정이 참 중요하겠다. 그런데 어떻게?

원래 그림책은 답을 잘 안 준다. 오히려 숙제를 주지.ㅎㅎ 대신 아이들은 그림책의 메시지를 거부하지 않는다. 분노의 화력과 그로 인해 기피 인물이 되어가는 버럭이의 모습은 아이들에게 충분한 경고가 될 것이다. 우리반 버럭이에게 읽어주면 이 책의 버럭이가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까? 오늘 체육관에서 경기에 졌다며 바닥에 주저앉아 땡깡부리는 녀석을 가만 두고 나머지 모두 줄을 섰다. 조용히 체육관을 빠져나오는데 버럭이도 퉁퉁 부은 얼굴로 맨 뒤에 섰다. 아이들을 앞세우고 버럭이 옆에 서서 걸었다. "보이는 니 모습 좀 생각해봐. 좀 떨어져서 니 모습을 보라구. 어떻게 보이나. 애들이 아무말 안하니까 아무 생각도 안하는 것 같니? 쟤네들 머릿속에 니 모습이 조각되고 있는 중이야. 니 모습에 신경 좀 써."

나도 꼴사나운 걸 못 참아서 괜한 소릴 한다. 그냥 이 책을 보여줄 걸.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