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많이 가르치는 선생님 독깨비 (책콩 어린이) 55
셰인 페이슬리 지음, 전지숙 옮김 / 책과콩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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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읽었던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 선생님>의 후속편이다. 썩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전편과 비교해 읽기로 작정한 김에 끝까지 읽었다. 내용은 예상대로였고 특별한 반전은 없었고 결말도 평이했다.

전편의 비프리 선생님과 대비되는 이 책의 선생님 이름은 애고나이즈.(고민하다, 번뇌하다 라는 뜻 - 실제로 이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을까?) 엄청난 밀도로 수업을 강행하고 숙제도 무지막지하게 내준다. 어떤 상황에도 예외나 봐주기는 없다. 수업방식은 대부분 강의식이고 질문도 허용하지 않을 정도다. 새로운 수업모형이나 기법들에 대한 고민이 필요없을 것 같다. 아주아주 전통적인 방식, 나이먹은 내가 학교다닐 때의 수업방식이다. 교사가 써주는 것 필기하기, 강의들으며 필기하기가 거의 전부다. 매일 엄청난 양을 듣고 쓰고, 외우고 익힌다. 어떨 때 보면 미처 익히기도 전에 밀어닥친 다음 분량을 쓰고 쓰고 또 쓴다. 아이들은 공부와 숙제에 치여 여가나 놀이시간은 고사하고 잠잘 시간도 부족할 정도다. 화자인 토미를 비롯한 이 학급의 6학년 아이들은 선생님의 기세에 떠밀려 꼼짝없이 이 1년을 보낸다.

그리고나서 아이들이 깨닫는 것은 '힘들여 어려운 것을 하고 났더니 다른 것들은 정말 쉽구나' 라는 것이다. 기준이 높은 애고나이즈 선생님의 방식대로 글쓰기를 해버릇했더니 모의고사의 답안 쓰기는 그냥 껌이었던 것이다. 6학년 분량이 30이라면 선생님은 100을 가르쳤고 100을 익힌 아이들에게 30은 너무 가벼웠다. 그 가벼움은 자유의 느낌과 비슷할 정도였다. 뭔지 알 것 같다. 뿐만아니라 아이들은 육상대회와 연극공연도 훌륭하게 치러냈다. 그동안에 공부와 숙제는 에누리가 좀 있었을까? 천만에!

가끔 나는 누가 나를 이렇게 담금질했더라면 지금보다 훨씬 유능한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한다. 그랬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납득이 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의미없는 고생의 시간이 되었을 것이다. 그건 끔찍한 일이다.

정말 다행히도 이 학급의 아이들은 이탈없이 이 고생을 받아들였고 그 결과로 나타난 학력평가의 결과는 놀라웠다.(미국의 학교는 유급제도가 있는듯? 전과목 전원통과. 그것도 고득점으로)

일제고사와 수업내용,방식의 관련성이 미국과 우리나라가 같지 않은 듯하다. 만약 같다면 난 이 책의 내용을 전면 부정하고 싶다. 한때 몰아쳤던 일제고사의 바람은 지역간, 학교간 경쟁을 몰고왔고 수업은 파행진행됐다. 그렇다. 그때 아이들은 무진장 공부했었지. 매일 문제지 풀고. 그런데 말이다 그게 거의 헛짓거리 헛고생이었다는...ㅠ 그때 1등했던 지역, 1등했던 학교, 에고 의미없다....

따라서 이 책의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걸리는 것이 많다. 그래도 내가 염두에 둘 점을 찾아본다면
1. 교사의 기준은 조금 높아도 좋다. 상황에 따라 유연해야겠지만 빠듯하게 쫒아가는 것보다는 여유있게 해놓으면 언젠가 도움이 된다.
2. 수업에 대한 열정. 애고나이즈 선생님은 이 점에 있어서 대단했다. 더 가르치지 못해 늘 안달했다. 가르칠 게 너무 많은 사람. 늘 수업준비가 넘치도록 되어있는 사람. 나는 가끔 지치는데. 애들도 애들이지만 나 자신이 꾀가 날 때가 있는데. 그런 점에서 이 선생님은 존경스럽다.
3. 아이들에게 최선을 이끌어낼 수 있도록 몰아가는 능력은 중요하다. 자신이 알고있던 한계를 뛰어넘을 때 인간은 희열을 느끼는데 그게 혼자서는 잘 되지 않으므로 조력자나 지휘자가 필요하다. 단 잘못 당기다 고무줄이 끊어져버린다면 그건 낭패지만. 대상과 상황에 맞추어 적절한 수준까지 밀어붙이는 능력. 그게 상당히 고급기술인데 뱃심 부족한 나에겐 참 어려운 능력이라 늘 부러워한다.

교실 안에서 교사의 위상은 어때야 하는가? 한 10년 정도 나는 이것을 스스로 상당히 낮춰 왔던 것 같다. 학생주도라는 당위에 밀려서.... 그런데 요즘은 다시 이것을 조금씩 끌어올리는 쪽으로 생각이 바뀌고 있다. 교사가 없어도 되는 교실은 없다. 그렇다면 교사는 교실 안에서 중심이 확고해야 한다. 그게 아이들에게도 도움이 되고 안정감을 준다.

황금연휴에 책을 읽고 페북을 보다보니 훌륭한 교사들은 왜이리 많고 나는 왜이리 작을까. 우리반 아이들이 불쌍하잖아..... 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지만, 두더지 방망이로 때려넣어 버리고 남은 하루동안 충전해야겠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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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도서관에서 읽은 그림,동화책들 - 특히 어른들이 봐야되는- 소개>

동화나 그림책 중엔 아이들을 대하는 어른의 태도를 꼬집는 책들이 있다. 그 책을 아이들이 읽어도 물론 재미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른이 읽는다면.... 재미 외에 뭔가 깊은 생각거리가 있으리라.

평화도서관에서 2시간을 일행과만 머물면서 이런저런 책들을 펼쳐보았다. 2시간은 긴 시간이 아니기에 얇은 책, 주로 그림책 위주로 보았다. 아주 재미있게 본 그림책이 있었으니 <너무너무 공주>라는 책이었다. 엇, 작년에 나온 책인데, 왜 여태 몰랐지? 허은미/서현이라는 놀라운 작가진인데 말이다.


서현 님의 그림은 역시 편안하고 친근하고 귀엽다. <진정한 일곱살>을 지으신 허은미 님의 글도 쉬우면서 재밌다. 그러니까 글도 그림도 쉽고 재미있다는 건데.... 읽기에 따라선 뭔가 묵직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임금님은 늘그막에 얻은 공주를 너무나 사랑했다. 서현 작가가 그린 공주는 너무나 밝고 해맑다. 책에선 공주를 이렇게 표현했다.
"놀고 싶을 땐 놀고, 자고 싶을 땐 자고
웃고 싶을 땐 웃고, 울고 싶을 땐 울었어.
좋은 건 좋다 하고 싫은 건 싫다 했지."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다. 하지만 임금님은 걱정했다. 까막까치들의 노래에 그 이유가 있다.

"평범해, 평범해. 공주가 평범해.
얼굴도 평범해. 성격도 평범해.
머리도 평범해. 너무너무 평범해.”

딸바보 임금님은 공주란 모름지기 비범해야 한다고 기대했던 것이다. 저렇게 아이다운 공주에게 뭔가 비범함은 없었다. 너무나 걱정된 임금님은 잉어의 세가지 소원 수염을 샀다. 쭈글쭈글 늙음을 담보로 걸고.... 소원 한가지를 사용할 때마다 임금님은 기운없고 주름패인 노인이 되어갔다. 그 댓가로 공주는 비범해졌을까?

첫 번째 소원 "세상에서 가장 예쁜 공주가 되게 하라." 공주님은 예쁜 대신 날카로워졌다.
두 번째 소원 "가장 착한 공주가 되게 하라." 공주는 착한 대신 빛을 잃고 시들시들해져갔다.
안타깝게 지켜보던 임금님은 마지막 소원을 쓸 수밖에 없었다. 그 소원은 무엇이었을까? 책에 직접 나오진 않는다. 그 소원을 아이들과 짐작해보는 대화도 재미있을 것 같다. 하여간 마지막 소원을 쓰고 공주는 행복해졌다. 그 모습은 첫 장면의 딱 그 모습이다. 평범하고 해맑은....

"내가 너를 위해서 어떻게 했는데!!"
드라마에서 자주 들어본 절규의 대사다. 쭈글쭈글 늙어버린 임금님처럼 부모들은 자신의 모든 것을 자녀의 성공(남보다 앞선 성취)에 걸지만 결국 모두 불행하고,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알지 못하는 억울한 부모는 저런 절규를 하게 된다. 이런 모습은 크게 혹은 작게 우리 사회에 아주 흔한 풍경이다.

비범함의 욕구와 평범함의 만족은 아주 균형을 잘 맞추어야 할 문제다. 자식이 아니라 본인의 문제일 때도 그렇다. 타고난 성향도 작용하기 때문에 뭐라 단정해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비범함이 사랑의, 자존감의 조건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사실> 그림책 마지막 장의 문장 "너에 대해 중요한 사실은 너는 바로 너라는 거야." 처럼 "너이기 때문에, 너 자체로 소중해."라는 메세지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두번째로 읽은책은 <스티커 토끼> 이 책은 아이들을 '규정'하는 어른들을 꼬집는다. 이 아이는 까탈쟁이, 얘는 순둥이, 얘는 싸움닭, 독불장군, 까불이, 투덜이....

20마리 아기토끼의 엄마아빠가 며칠 집을 비우며 할머니에게 아기들을 맡겼다. 할머니는 부모의 설명을 참고해 아이들 등에 스티커를 붙였다.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스티커가 날아가버려 그건 헛일이 되어버렸는데, 지내며 보니 스티커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결국 딱지붙이기(규정짓기)의 무의미함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그런데 나의 경험은 이 주제에 대하여 살짝 이의를 제기한다. '규정짓기'의 위험성에는 백번 공감하지만 아이들의 성향에 대한 이름짓기가 전혀 무의미하거나 백해무익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는 '누가봐도 그러한' 면이 없지 않다. 그걸 가지고 맞네 틀렸네 옳으네 그르네 착하네 못됐네 하는게 문제지 아이들이 고유의 특성을 가지고 있고 그게 상당히 고정적인 것은 사실이다. 물론 변화의 가능성은 열려 있으니 그 가능성 안에서 아이들을 봐야 한다는 점을 잊지는 말아야 한다.

그 외 조용한 밤, 무슨 벽일까?, 두둑의 노래 등도 인상적인 책이었다. 먹고 산책하고 수다떠느라 북스테이지만 북에는 많이 집중하지 못했다. 뭐 그런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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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 지도 샘터역사동화 5
조경숙 지음, 안재선 그림, 이지수 감수 / 샘터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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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역사동화를 부지런히 찾아읽고 시대배경별로 정리도 해두었는데 한참동안 뜸했다가 오랜만에 신간을 한권 읽게 됐다.

제목이 비밀지도. 첫장에 대동여지도가 나온다. 김정호의 지도 작업에 대한 이야기인가? 아니 그보다 약간 후대의 이야기였다. 19세기 후반. 이 시대, 특히 이 사건을 주제로한 역사동화는 이 책이 처음이 아닐까 한다. 그 사건이 드러나기 전 책의 초반에는 계속 궁금해하면서 읽었다. 이 역사동화는 어떤 역사적 사건을 다루었을까?

홀어머니와 여동생을 책임지려고 분주히 심부름을 하며 푼돈이라도 벌기 위해 애쓰는 재동이라는 소년이 작가가 창조한 허구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실존 인물은 '이소바야시'라는 일본인이다. 일본에서 사업차 왔다는 이 인물은 재동이의 눈썰미와 영리함을 알아보고 길안내를 요청한다. 어머니의 약값이 필요했던 재동이는 짭짤한 품삯에 감사하며 함께 길을 나선다.

그는 약을 팔러 다닌다고 했다. 초반부에 그는 꽤나 인간적인 신사의 모습으로 보인다. 재동이도 힘을 다해 뭐라도 그를 도우려 애쓰고, 힘든 일도 함께 겪으며 그들에겐 얼핏 동지애가 싹트는 듯하기도 하다. 하지만.... 그 일본인의 행태는 볼수록 수상쩍다. 영리한 재동이는 이것을 놓치지 않는데.... 마침내 눈치챈 그의 비밀은....

제목이 '비밀지도'인데다 첫장에 대동여지도가 나오니 그 일본인의 수상쩍은 비밀행위를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그의 신분은 원래 군인이었고 조선의 주요 지역을 다니며 비밀리에 지도를 제작하고 있었다. 조선 침략을 위한 사전 준비였음은 물론이다. 재동이는 그 놀라운 사실에 남몰래 몸을 떨며 어떻게 이것을 저지할 수 있을까 궁리했지만 틈이 나질 않는다. 마지막으로 배를 타고 강을 건널 때, 재동의 작전은 멋지게 성공.... 이소바야시는 넋이 나간 채 입만 벌리고 있어야 했다.

책은 그렇게 끝났고, 어린이 독자들은 재동이와 같이 환호할 수 있겠지만 실상을 보면 일본이 계획한 지도제작은 실패하지 않았다. 실패는 커녕 놀라울만큼 치밀하게 제작되고 활용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실존인물 이소바야시는 갑신정변 때 흥분한 군중들에게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내가 알기로) 한 번도 쓰여진 적 없는 이런 소재의 역사동화가 새롭게 나온 것을 반갑게 생각한다. 일제강점기의 고난과 일제의 만행, 독립운동 등을 다룬 역사동화도 의미있지만 일본의 치밀한 사전작업, 그에 전혀 대비하지 못했던 조선의 속수무책도 다시 봐야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역사는 현재의 길을 안내해주는 길잡이이기 때문이다. 100여 년의 시간이 흐른 후 역사는 지금의 순간을 어떻게 평가할까? 자신이 선 곳을 바르게 보는 일이 가장 어려운 것 같다.

작가분이 새로운 소재의 역사동화를 쓰신 김에 갑신정변 등의 한마디로 평가하기 어려운 역사적 사건들도 다루어 주시면 흥미있게 읽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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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의 편지
조현아 지음 / 손봄북스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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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웹툰을 웹상에서 본 적이 거의 없는 웹알못?이다. 책으로 나온 것은 몇 권 읽어봤지만 강풀의 만화들이나 윤태호의 미생 같이 매우 알려진 작품 정도. 우연히 아주 젊은 작가의 첫 단행본을 보게 됐다. 깜짝 놀랐다. 그림을 빼고 스토리만으로도 충분히 멋지다고 느낄 정도였다. 거기다 빼어난 그림까지 더해지니 얼마나 매력적인지. 딸 뻘인 듯한(확실치는 않지만 아마도 20대 초중반?) 젊은 작가의 능력에 감탄과 부러움을 토해내는 내 모습이 웃기다. 그래도 우와~ 앞이 창창한 나이에 벌써 이런 재능을 가졌으니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걸 어쩌랴? 이건 지극히 아줌마스러운 부러움이다.ㅎㅎ

솔직히 말하겠다. 내가 이 젊은 작가를 부러워하는 건 이 만화에 거슬리는 점이 하나도 없어서인지도 모른다. 무척 보수적이고 융통성 없고 금기가 많은 나의 취향을 이렇게 만족시킬 수 있다는 건 한옥타브의 음역대 안에서 대곡을 완성시킨 것에 견줄 수가 있다.ㅋ 정말 감탄했다. 이렇게 옳으며, 이렇게 반듯하며, 이렇게 선하며, 이렇게 조심스러우면서도 이렇게 재미있을 수가 있단 말인가!

중학생 이소리는 어느날 참지 못하고 나온 한마디 때문에 모두의 표적이 되어버린다. "그만해!" 집단괴롭힘을 당하는 아이를 보다못해서 외친 한마디. 그 한마디만 아니었으면 그럭저럭 지낼 만했을텐데. 표적이 된 이상 제정신으로 견뎌내긴 힘들었다. 할머니 댁에서 학교를 다니던 소리는 다시 아빠한테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어릴 때 살던 곳이다.

전학간 첫날. 깊은 트라우마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는 소리. 아이들의 눈빛도 웅성대는 소리도 다 두렵다. 배정된 책상 위에 "죽어라, 나대지 말고" 같은 글자가 보이지만.... 사실은 아니었다. 책상은 깨끗했다. 서먹함과 두려움에 눈물이 그렁하던 소리는 책상 밑에 붙은 편지를 발견한다. 첫 번째 편지.

첫 번째 편지부터 마지막(열 번째) 편지까지가 이 책의 목차다. 이야기는 편지를 따라가며 전개된다. 누가 편지를 보냈을까? 왜 보냈을까? 다음 편지는 어디에서 발견될까? 왜 거기에 놓여져 있을까? 다음 편지엔 어떤 내용이 있을까?..... 그러다가 이 친구는 지금 대체 어디에 있을까?에 이르면 독자도 소리, 동순이와 함께 애타는 마음으로 함께 찾게 된다. 어디에 있을까 이 친구는? 지금 어떻게 된 걸까?

정글이 된 학교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주지만 그 안에서 양심을 잃지 않고 꼿꼿이 버티는 작고 어린 영혼들을 따뜻하게 감싸안는 작가의 손길이 느껴진다. 이 아이들이 끝내 짓밟히지 않고 손잡으며 우정을 나누고, 그 우정의 한쪽 끝을 애타게 찾아 헤매는 모습이 대견하고 아름답다.

요즘 유명 연예인들의 과거 학폭 전력이 밝혀지며 시끄럽다. 현실은 아닌 것 같아도 인과응보는 엄연히 있는 것일까? 확실히 그렇다고 하기엔 여전히 고통받는 아이들이 있다. 이런 작품이 고맙다. 착한 것은 바보같은 것이 아니다. 도덕을 따르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누굴 생각해 주고 그를 위해 시간을 내 주는 것은 한심한 것이 아니다. 올바름의 멋있음, 착함의 가치가 널리 퍼져 상식이 된다면 교실의 약육강식은 사라질까?

잔인하지도, 기괴하지도, 엽기적이지도, 선정적이지도, 비꼬지도, 배꼽잡게 웃기지도, 판타지가 멋진 것도 아닌 이런 작품이 선풍적 지지를 받았다는 사실이 놀랍다. 그건 단 하나 튼튼한 스토리의 힘이다. 다음 편지를 애타게 따라가게 만드는 스토리의 힘.

이 만화는 네이버 웹툰 연재시 9.98이라는 기록적인 평점을 받으며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나같은 꼰대와 취향이 같은 웹툰 매니아들의 안목을 높이 사고 싶다.ㅋㅋㅋ 단행본으로 나오자마자 판매지수가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학교도서관 수서목록에도 슬쩍 넣었다. 교사용으로 넣었다가 학생용으로 돌렸다. 아이들아 많이 읽어라. 너희들 눈에는 누가 멋지니? 너희들도 멋져. 절대 멋짐을 포기하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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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석 2019-06-13 2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연의 편지>를 출간한 손봄북스의 김효석이라고 합니다. <연의 편지>를 따뜻한 마음과 관심으로 전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연의 편지>의 마음을 좋을 글로 풀어주셔서 너무나 감동이였습니다. 혹 실례가 안된다면 올려주신 글을 <연의 편지> 단행본 홍보에 사용해도 될지 의견 여쭙고자 문의드립니다. 바로 답변이 어려우시면 books@sonbom.co.kr 로 연락주시면 확인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기진맥진 2019-06-14 13:14   좋아요 0 | URL
안녕하세요. 책이 너무 좋아서 리뷰를 쓴 것 뿐인데 감사의 마음을 전해 주시니 제가 더 감사합니다. 출처를 밝히고 사용하셔도 됩니다. 정선된 글이 아니고 후다닥 쓴 거라 좀 부끄럽긴 하네요.^^;;; (그리고 게시된 내용을 저도 좀 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효석 2019-06-17 1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네, 게시되는 곳은 books@sonbom.co.kr 으로 메일주소 보내주시면 정리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다시한번 고맙습니다.
 
고양이 3초 그래 책이야 23
양지안 지음, 최담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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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우, 이 이야기는 내가 평상시에 우리집 애들이나 학급의 아이들한테 하던 얘기랑 일맥상통하는 데가 있다. 사실 그건 나 자신한테 하는 이야기도 되는데, 아이들한테 기염을 토하며 말하지만 실은 나도 잘 못하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눈꺼풀 올리는데 3초가 걸린다는 게으른 비만고양이 삼초의 이야기와, 또나마을의 재능또나들이 겪는 이야기가 번갈아 나오는 구성이다. 처음엔 두 이야기가 어떻게 연결되는 건가 어리둥절했는데 점차 알게 된다. 재능또나들의 이야기는 삼초의 내면(발현되지 않은 정체성)의 세계를 표현한 것이라는 것을.

이 책을 작년 그 아이에게 읽히고 싶다. 수학과 체육에는 몹시 약했지만 그림을 잘 그리고 문학 감상력도 좋은 편이고 감수성이 예민했던 그 아이. 그 아이는 굴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그 굴 안에는 엄마가 있었다. 애착이 남다른 두 모녀는 굴 안에서 서로만 끌어안고 있었다. 아이를 세상으로 내보내야 한다고 설득해도 네네 대답만 할뿐 놓지를 못했다. 아이는 게을렀고 무기력했고 비만이어서 외모에 대한 자기비하도 심했다. 저학년도 아닌데 날마다 학교 앞으로 엄마가 마중나와 있었으며 현장학습을 다녀온 날 엄마와 시간이 안맞으면 아이는 울었다. 교문에서 보이는 곳에 자기 집이 있는데도 말이다.... 싫어하거나 부담스러운 활동(특히 체육)이 있는 날은 여지없이 아침에 배가 아프다고 했고, 엄마는 결석 문자를 내게 보냈다.ㅠ 친구들에게서 "어휴...'라는 느낌을 살짝 느끼기만 해도 집에 가서 울고불고 해서 엄마가 여러번 전화했다. 본의아니게 그런 느낌을 풍긴 아이에게는 꼭 사과하게 했다.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아이는 일으켜 세워야 했기에, 학교 상담사님과 시간도 잡아주고 외부기관과도 연결해 주고 아이가 조금이라도 잘하는 것부터 특기를 키워주도록 집밖 활동을 권장해 봤지만 결국 기어들어가는 곳은 굴속이었다. 안타깝지만 더이상 방법이 없었다. 내가 엄마한테 정신 좀 차리라고 화를 냈으면 좀 달라졌으려나.... 그렇게 하진 않았다. 듣자하니 올해는 결석이 더 잦다고 한다.ㅠㅠ

동물이 나오는 TV 프로그램에서 엄청난 비만 고양이를 보여준 적 있었다. 이 녀석은 움직이기를 끔찍하게 싫어하고 늘 늘어지게 드러누워만 있었으며 하루종일 먹고 자기만 했다. 이 책의 삼초는 TV속 그 고양이보다 더하다. 스스로가 움직임을 어떻게 하는지조차 잊은 듯하다.

한편 또나마을의 재능또나들(정의에 불타는 무술맨 바로착, 논리 수학에 강한 미리알, 걱정이 많지만 언어재능이 뛰어난 또마레, 정신 사납지만 음악연주를 잘하는 릴리아)은 지진을 감지하고 그 근원을 찾아 숲으로 들어간다. 놀랍게도 숲은 좀좀넝쿨이 온통 휘감고 있었으며 휘감는 힘과 속도는 갈수록 강해졌다. 그 가운데에 넝쿨에 휘감긴 한 덩어리가 바로 근원이었다. 또나들이 목숨을 걸고 넝쿨을 제거해주자 그 안에서 나온 또나의 이름은 '천성이'ㅎㅎ(이와 같이 이 책은 작명에서 작가의 의도를 다 볼 수 있다. '또나'도 그렇고.)

다시 삼초에게로. 이 집에 새로 들어온 강아지 팔랑이는 특유의 친화력과 오지랖으로 삼초를 어떻게든 움직이게 해보려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게 해버렸다. 이제 진짜로 못 움직이는 건가? 오히려 이 일로 삼초의 움직임 본능이 살아난다. 삼초는 비로소 캣타워에 올라가 좌중을 굽어본다.^^

결국 무엇인가? 한심한 인종에게도 잠재력은 있다. 그러나 그걸 혼자 끄집어내기는 너무 어렵다. 천성이를 억지로 강가로 끌고간 또나들, 사고이긴 했지만 삼초를 계단에서 떨어뜨려준 팔랑이. 사람에게도 이런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사랑의 채찍질(아니다, 폭력적 느낌이라 말을 바꾸겠다. 자극제!)가 되어줄 존재.

난 작년에 그 엄마나 아이한테 좋은 말로 권유만 하지 말고 뭔가 쎄게 충격을 주어야 했던 것일까...ㅠㅠ 자식들도 언젠간 깨닫겠지 하지 말고 얼굴에 얼음수건이라도 문질러 주었어야 되는 거였나....^^;;;;

정답은 없으니 적절한 지점과 상황에 맞는 방법이 있을 뿐. 뭐라 한마디로 잘라 말할 수는 없다. 분명한 건 내가 넝쿨에 얽혀있을 때 그걸 끊어준 존재라면 난 고마워 할 거라는 거. 함께하는 이들은 서로가 그런 역할을 해주면 좋지 않을까. 늪에 빠져 침잠해가는 모습은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들이 힘을 내어 걸어나오기를 빈다. 아이들 중에 그런 아이가 있어 이 책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정말 의미있는 책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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