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쳐 쓸 용기 - 방송작가에서 어린이책 쓰는 교사로
안소연 지음 / 푸른칠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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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연결은 기억이 안나지만 안소연 선생님은 페이스북 친구 중에서 매우 인상적이고 부러우면서도, 친근하고 가깝게 느껴지는 페친이다. 서로의 글을 잘 읽어주고 공감표시나 댓글로 소통한다는 점에서 가깝고, 그의 다양한 이력이나 작가로서의 능력은 동경의 대상이다. 그는 젊은 시절 방송국에서 교양 프로그램 작가로 일했고 그러다 진로를 바꾸어 늦깎이 교사가 되었으며 여전히 살아있는 작가적 역량으로 어린이 정보책 몇 권을 썼다. 철저한 자료조사와 공부가 필요한 비문학 책쓰기는 그의 예전 작업과도 맞닿아 있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다. 어쨌든 그는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인재라는 느낌을 받는다. 한우물도 깊게 못 판 나로서는 관심이 가고 부러운 사람이다.

 

그의 이력이 담긴 에세이가 나왔다길래 당장 구입해서 읽어보았다. 이 책은 교사로서는 다소 특이한 그의 이력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글쓰기 교육 경험담 성격이 더 강한 느낌이었다. 제목은 이 두 가지를 절묘하게 아우르고 있었다. <고쳐 쓸 용기>

 

페북에서도 느꼈지만 저자샘과 나는 공통점이 꽤 있다. 독서와 글쓰기를 중시한다는 것이 그 첫번째이다. 저자샘 교실의 아침독서는 우리반 풍경과 비슷하다. 잔잔한 음악이 깔린 조용한 교실에서의 자유독서. 여기서 자유는 책 선택의 자유일 뿐 다른 활동이 허용되진 않는다. 교사들 중에서도 혹자는 이것을 대단히 부자연스러운 풍경으로 보시는 걸 보았다. 아침이라도 아이들이 좀 편하게 하고 싶은 말 하면서 부담없이 시간 보내게 하자는 말씀인데, 나의 경험으로는 그게 훨씬 더 어려웠다. 교사의 하루 에너지를 수업 시작하기도 전에 몽땅 낭비하게 만든달까. 그리고 이때 아니면 10분이라도 독서하는 시간을 만들기 어렵다. 이건 꼭 내가 '마련해줘야 하는' 시간인 것을 얼마전에 재차 확인할 기회가 있었다. 지난 방학때, 딱 한가지 방학숙제만 내주었다. 방학기간 주말 빼고 평일 날짜만 넣은 독서기록표였는데, 그날 읽은 책 제목과 쪽수 정도만 한 줄로 넣는 표였다. 안 읽은 날은 공란으로 두면 되니 솔직하게 기록해서 제출하라고 했다. 방학 안내장과 알림장에는 학교도서관 개방 시간, 지역도서관 이용 방법 등을 안내해주었다. 개학날이 되어 아이들이 제출한 기록표를 살펴보고 "열심히들 했네. 수고했어요." 라고 칭찬해주었지만 속으로는 조금 허탈하기도 하고 의욕이 불끈 나는 양가적 감정이 생겼다. 아이들 대부분이 책을 대출하거나 구입해서 읽은, 말하자면 새로운 자료를 구해서 읽은 기록이 전혀 없었다. 예를 들면 한 권의 예외도 없이 출판사가 집에 있는 전집 한 종이라거나 모든 제목이 유아때 읽었을 법한 흔한 옛이야기라거나 하는 식이었다. , 이 아이들 독서는 내가 시켜줘야겠다는 의욕이 불끈 솟는 결과였다.

 

이렇게 독서로 기반을 다져가며 저자가 연중 힘을 쏟는 교육은 글쓰기다. 교대 이전 학부때 문예창작을 전공하고 현장 작가로 일한 경험이 큰 자원이 되겠다. 책 속에는 글쓰기의 의의에 대한 작가의 풍부한 생각들이 들어있다.

- 나는 아이들에게 내 말을 들어줄 친구가 없다면 글을 써보라고 말한다. (69)

- 나는 교실 속 글쓰기는 혼자만의 활동이 아닌 함께하는 활동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100)

- 사람은 누구나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내 이야기를 글로 쓰고 그 글을 친구가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 사이에는 정서적 유대감이 생긴다. (124)

 

저자의 글쓰기 지도 과정을 보니 나보다 훨씬 많은 노력을 투자하고 있었다. 특히 피드백과 퇴고(이 책의 제목인 고쳐쓰기’)를 철저히 하고 계신 점에서 배울 점이 많았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지 알기에 존경하는 마음이 생겼다. 확신에 따라 지도하고, 그에따라 발전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독자 선생님들에게도 자신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또한 이 책은 글쓰기 교육서 뿐만 아니라 일반적 글쓰기의 지침서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특히 교사의 글쓰기에 큰 의미와 지침이 되어줄 수 있겠다. 나의 교직인생을 되돌아보니 기록한 만큼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100%는 아니지만 그 상관성은 매우 크다. 다행히, 나는 체계적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뭔가 끄적이는 성격이어서 페이스북에 교실 이야기를, 서재에 서평을 불규칙적이나마 남긴다. 그 기록이 축적물이 되어줄 때가 있고, 다른 이들과 소통의 매개가 되는 때도 많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영화 어바웃 타임을 예로 들며 자신의 경험을 복기하며 글을 쓰는 작업이 인생을 두 배로사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인생을 두배로라니! 아니기만 해봐! 라고 나에게 누가 달려든다면 말이 그렇다는 거지!ㅎㅎ라고 한발 물러설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그 느낌이 뭔지 확실히 알겠다. 이렇게 글쓰기는 모두에게 매우 유용하고 의미있는 작업이다. 이 책은 읽는 독자들은 확실히 느낄 것 같다.

 

기억하고 싶어 메모해두었던 구절을 다시 적어보면서 마무리해야겠다.

글을 쓰는 과정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자유롭게 선택하고 결정하면서 창조자의 희열을 맛볼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137)

표면적으로 볼 때 학생들에게 글쓰기 시간은 자유와 창조의 시간이기보다는 구속과 고통의 시간인 것으로 보인다. (하긴 창작의 고통은 작가들에게도 마찬가지지) 하지만 글쓰기가 자유와 해소와 위안과 소통의 역할을 하는 날이 반드시 오기는 한다. 그날까지 나도, 아이들도, 독자들도 모두 정진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안소연 선생님이 앞으로 쓰실 좋은 책들을 기대하며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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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미소 그림책 9
현단 지음 / 이루리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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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하지 않은 길~쭉한 판형의 그림책이다. 첫 번째 읽을 때 나는 아주 눈치없이 읽고 말았다. 희나의 특별함도, 놀이의 변형도 의식하지 못하고 읽으면서, 뭔가 이상한데? 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마지막 장에 거의 가서야 아, 이 책은 장애를 가진 아이와 친구들의 이야기구나 하고 깨달았다. 내가 눈치가 없는 면도 있지만 이건 작가님이 잘 표현하신 탓도 있다. 희나가 튀지 않게. 친구들 속에서 자연스럽게 어울리게.

그리고 놀이. 나는 어렸을 때도 뛰어노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아이였지만 그래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안해본 건 아니거든. 그런데 워낙 놀이 경험에 자신감이 없다보니 아 뭐지...? 무궁화꽃 놀이가 이런 거 아니지 않나...? 하고 갸우뚱하고만 있었던 거다. 그래, 원래 무궁화꽃 놀이는 내가 알던 게 맞다. 이 아이들이 변형해서 한 거다. 내가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게 맞나....?? 할 정도로 절묘하게.

희나는 시작장애인이지만 놀이에서 전혀 주눅들지 않는다. 첫 화면의 “시작한다!”도 희나가 외치는 소리다. 원래 무궁화꽃 놀이는 움직임을 들키면 걸리는 건데, 희나에게 맞추어 소리를 들키면 걸리는 것으로 변형했다. 와, 아이들은 이런 데 천재지. 실컷 놀아본 경험만 있다면 말이야. 요즘은 예전같지 않아서 가르쳐줘도 못노는 아이들이 많아졌지만 그 문제는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므로 패스.... 하여간 아이들은 내가 깜빡 속아넘어갈 정도로 변형된 놀이를 재미있고 진지하게 하고 있었다. 마치 희나 때문에 더 재미있어진 놀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로.

줄무늬셔츠 남자아이(‘나’)가 가장 재미있다. 반드시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만반의 준비를 한다. 콧구멍까지 휴지로 막고, 위기시에 고양이 소리내기 연습까지 하는 ‘나’는 우리가 아는 사랑스러운 장난꾸러기 딱 그모습이다. 놀이가 재미있어질 정도의 적당한 승부욕을 가진.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참지 못한 재채기. 거기에다 독가스 살포까지. 재채기에는 슬쩍 넘어가 주었던 희나가 독가스는 정확히 잡아내는 장면에 친구들이나 독자들이나 깔깔 웃게 된다.
마지막 장면,
“재채기는 봐줬다.”
“나도 방귀 뀌어 준 거거든.”
이런 현실대화. 슬픔이나 서러움은 없는.

장애어린이가 나오는 이야기가 점점 진화하는 느낌이다. 이야기만큼 현실도 진화하면 좋겠다. 이렇게 유쾌하게. 이렇게 자연스럽게. 배려라고 굳이 이름 붙이지 않는 배려가 가득하게. 그런데 그 배려가 모두를 행복하게.

이런 재미난 책들이 현실을 견인할 수 있기를 빌면서, 아이들과 함께 꼭 읽어보겠다. 아이들도 참 좋아할 것 같고 나눌 이야기도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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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보 까보슈
다니엘 페나크 지음, 그레고리 파나치오네 그림, 윤정임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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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페나크의 이 책 원작이 나왔던 1999년에는 나도 교직 초반부였다. 그때 한창 어도연 등 각종 권장도서 목록에서 빠지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나도 당연히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이 그래픽노블을 보니 완전 새로운 거야!^^ 오래됐기도 하고, 강정연 작가님의 <건방진 도도군>이랑 내용이 뒤섞여 기억 속에 묻혀 있었던 것 같다. 하여간에 내용을 많이 잊은 탓에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최초로 발표된 해는 1982년이라고 한다. 40년이 넘었다는 건데, 시대를 앞서가신 건가, 지금 읽어도 문제의식이 전혀 낡지 않았다. 그때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말이었겠지만 지금 사람들은 더더욱 들어야 할 말이다. 어떻게 보면 작가가 걱정한 방향대로 세상은 흘러온 것 같다.

이 책의 화자는 ‘개’다. (종 이름이기도 하고 개체의 이름이기도 하다) 소위 ‘주인’이라 할 수 있는 ‘사과’라는 소녀가 지어준 이름이 그렇다. (사과, 얘도 참 특이해 보인다ㅎㅎ) 사과에게 오기까지 ‘개’의 삶은 참 파란만장했다. 어떤 종이 섞인 건지 가늠도 못하겠는 잡종으로 태어나, 그중에서도 가장 못생겨서 팔리지도 않겠다는 이유로 낳자마자 물에 빠뜨려졌다. 쓰레기장에 버려졌으나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시컴댕이’라는 큰 개의 도움으로 생존에 필요한 것들을 배우며 살아간다. 늘상 위험이 도사린 그곳에서 결국 시컴댕이는 사고로 죽었고, ‘개’는 시컴댕이가 해준 말들을 기억하며 쓰레기장을 떠난다. 포획되어 유기견 수용소로 가게 됐고, 거기서 운좋게 바캉스 왔던 ‘사과’의 품에 안겼다. 사과의 특이한 취향 때문이다. “난 사나운 개가 좋아!”

그러나 어린이들이 대체로 그렇듯이, 사과도 관심사가 급변했고, 원래부터 달갑지 않아했던 엄마 아빠와, 마음이 변해버린 사과가 있는 집에서 ‘개’는 천덕꾸러기가 되어갔다. 시컴댕이가 “도시에 가서 여주인을 찾아내서 잘 길들이라”고 했건만.... 실패한 것을 깨달은 ‘개’는 집을 탈출해 다시 거리의 개가 된다.

그러다 만난 ‘하이에누’와 ‘멧돼지’의 모습은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우정을 잘 보여준다. 하이에누는 개고, 멧돼지는 사람이다. 거기에 끼어든 ‘개’까지도 멧돼지는 무심하게 반겨주었다. 가끔 꾸던 악몽까지도 가라앉게 되는 행복한 생활이었다. 하지만 ‘개’는 그곳도 떠났다. 다시 사과를 만나러. 개와 마주친 사과는 반색을 했지만 개는 호락호락 다가가지 않았다. 결국, 개는 ‘여주인을 길들였다’? 그렇게 말하는게 맞는지는 모르겠고, 어쨌든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이후 부모의 작당에 의해 또 버려지고, 돌아오는 과정은 아주 극적이고 흥미진진하며 통쾌하고 감동적이다. 책 읽는 맛을 제대로 볼 수 있는 결말이다. 이래서 몇십년이 지나도 사랑받는 작품, 현대의 고전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우리집에도 개가 한 마리 있다. 딸이 난데없이 데려온 개인데, 독립하면서 데리고 나갔지만 근처에 살아서 자주 온다. 딸한테는 귀찮은 일이지만 혼자 계신 아버님이 그녀석만 기다리고 계시니 주 2일 정도는 집에 데려다 놓는다. 난 그녀석한테 만날 “너 같은 팔자가 세상에 어디 있다더냐” 하면서 부러워하지만 그녀석도 그렇게 생각할까? 사실 온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는 것은 사실인데, 태생부터 철저히 인위적이었던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요즘 유모차보다 개모차가 훨씬 더 많이 팔린다던가.... 앞으로 돈을 벌려면 반려 사업을 해야된다고들 말하는 것처럼 반려동물한테 돈을 아끼지 않는 세상이 되었는데, 이면에는 여전히 버려지는 동물, 학대받는 동물, 공장식 축산, 터전을 위협받는 동물들이 있다. 인간의 빈부격차가 어마어마해진 것처럼 동물들도 그렇다고 해야 하나..... 그런데 이쪽 동물이나 저쪽 동물이나 다 행복하지 못할 것 같다. 물론 배부르고 등따신 동물들이야 고통당하는 동물들보단 훨 낫겠지만, 본성을 침해당하고 자신의 영역을 존중받지 못한다는 면에서 그들이 과연 원하는 것일까 라는 의문을 가진다.

인간의 생활 방식 자체가 동물과 친구가 되긴 어려운 형태가 되어버렸다. 현실 안에서 최선을 찾는 수밖에 없을 테지만 이 ‘개’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우리 마음가짐을 한번 점검해보는 기회는 될 것이다. 시종일관 ‘친구’의 관계를 추구하며 보여주는 이 책을 인간관계에도 대입할 수 있겠다. 서로의 영역을 지켜주며 자유를 존중해 주어야 하는 것은 사랑이나 우정의 기본이기도 하니까. 누굴 길들이겠다는 의도 자체가 우정이 아니니까.

원작을 다시 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이 그래픽노블은 원작을 축약했다는 느낌이 들지 않게 줄거리에 충실하고 느낌 또한 풍성하고 강렬하며 흥미롭다. 각색과 그림 표현을 정말 잘하신 것 같다. 원작자도 만족할 만큼이 아니었으려나? 원작과 병행하면 가장 좋겠지만 어린이들이 이 책으로 작품을 먼저 접해도 충분히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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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사고력 - 인류 진보의 핵심적인 역할 비판적 사고력 시리즈
마르크 가스콘 지음, 에두아르드 알타리바 그림, 손성화 옮김 / 아름다운사람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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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쪽 정도의 그림책 타입으로 만들어진 이 책은 얇은 분량과 화면을 꽉 채운 그림에도 불구하고 저학년용은 아니다. 비판적 사고력이라는 용어 자체가 고학년은 되어야 다룰 용어이기도 하니까. 여러 분야와 사례를 통하여 비판적 사고력의 필요성을 알려주는 책인데, 설명이 최대한 짧게 되어 있어서 쉽게 전반적 내용을 개관하기는 좋지만 뭔가 좀 자세히 알고 싶은데 라는 아쉬움은 있다. 하지만 한 책에 여러가지 컨셉이 공존할 수는 없으니, 이 책을 읽고 궁금한 것이나 더 알고 싶은 것이 생겼다면 그또한 이 책의 역할인 것이다.

비판적 사고력의 필요성이 대두된지는 꽤 되었다. 하지만 욕먹을 각오를 하고 내 느낌을 써본다면 지금 어떤 사람, 혹은 학생이 행사하고 있는 태도는 비판적 사고력이 아니라 '비난적 사고력'인 경우가 매우 흔하다. 그건 여러가지 다른 말로도 표현이 가능하다. 자기중심적 사고력, 내로남불 사고력, 프로불편러 사고력, 내놔 사고력.... 등등이다. 자신은 하지 않을 것을 남한테만 요구하는 이런 태도를 기반으로 하는 사고력을 비판적 사고력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비판적 사고력은 자기 자신이 축적해온 것까지도 부정할 수 있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언제나 유연하게 인정한다. 순서가 바뀌었지만 이 책의 마지막장 제목을 먼저 언급하자면 [천재의 조건:태도가 차이를 만든다] 이다. 요즘 아이들 지도하면서 '태도'에 주목하게 된 나에게는 눈이 번쩍 뜨이는 결론이었다. 비판은 무례와 억지를 바탕으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겸손이 바탕일 것이며 주제를 파악하기 위해 항상 자신을 점검할 것이다. 말하자면 자기객관화? 그게 가능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비판이다.

이 책은 역사, 환경, 사업(경영), 인권, 디지털, 과학 등의 분야에서 비판적 사고력의 역할, 혹은 부재시의 문제점을 알려준다. 서론 장에서 다룬 큰 비극, 스웨덴 전함, 타이타닉호, 챌린지호 등의 비극이 새삼 끔찍했다. 제너럴 모터스나 리먼 브라더스 등 잘나가던 대기업들의 몰락 원인도 결국 거기에서 찾을 수 있었다. 차별과 불평등의 극복에 비판적 사고력이 필수였던 것은 당연한 일이고.

온라인 정보와 소셜 네트워크의 영향력이 지대한 지금이야말로 비판적 사고력이 어느때보다 필요한 시대라고 이 책은 지적한다. 피부에 닿도록 느끼고 있는 문제다. 어어 하는 사이에 휩쓸려갈 수 있는 홍수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 책은 학습과 훈련을 통해 비판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 훈련이 무엇인지까지 알려주진 않았지만 바로 이런 책을 비롯한 독서가 그 첫째 아닐지 모르겠다. 심심풀이 책도 나름의 유용성이 있지만 도약을 위해선 인내심이 필요한 독서에도 도전할 필요가 있다. 이걸 학급에서 해보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데 손쉽게 되지는 않는다. 두번째는 스스로의 탐구, 세번째는 소통과 공유, 토론이라고 생각한다. 이상은 개인적인 생각이다. 나 또한 '내가 틀릴 수 있다'를 늘 유념하려고 한다.

이 책에 환경 관련 장이 따로 있는데 (3.인간은 자연의 일부) 결국 궁극적으로 생존을 위해서는 이 분야의 비판적 사고력이 가장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건 세상 전체의 시스템을 뒤흔드는 비판일 수도 있겠다. 그렇게 해서라도 우리의, 후손들의 터전을 지킬 수 있기를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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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참는 아이 장애공감 어린이
뱅상 자뷔스 지음, 이폴리트 그림, 김현아 옮김 / 한울림스페셜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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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노블도 꽤 관심을 가지고 보는 편인데, 학급의 어린이들은 도서실에 데려가면 만화, 만화, 만화에만 눈을 번뜩이면서도 그래픽노블에는 눈길을 잘 주지 않아 안타깝다. 지난 학기말에 국어 마지막 단원 제재가 만화여서 만화와 그래픽노블들을 단체 대출하여 교실에 일정기간 두고 읽었는데 이렇게 손쉽게 넘어가지 않는 그래픽노블들은 철저히 외면당했다. 아이고 어찌나 아깝던지. 그래도 눈이 밝고 깊은 아이들이 한두 명은 있기 마련이라 (많을 때는 서너 명도?) 그 아이들과는 감상을 나눠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런 책은 사실 어른도 읽는 책이니까, 읽을 때가 되면 읽겠지 라는 기대를 해보면서. 이 책은 브뤼셀 국제만화축제 최고작품상 등 그래픽노블 부문 여러 상을 수상한 작품이라고 한다.

이 책의 원제(Incroyable!)는 결말을 가지고 지은 것 같고, 번역 제목은 결말 이전의 어려움을 가지고 지은 것 같다. 내 생각은 원제가 훨씬 나은 것 같아서 번역 제목도 그에 준해서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긴 하지만, 이 제목도 나름대로 고심해서 지으신 것 같다. ‘숨을 참는’ 아이는 어떤 이유에서 그러고 있는 걸까.

아이의 이름은 루이다. 11살 남자아이다. 아이의 행동은 독자를 조금 긴장시킨다. 이 아이는 어떤 아이인 걸까? 과격하게 문제가 되는 행동은 없지만, 사람들과의 대면을 피하고 혼자 있고 싶어하며 혼자만의 생각과 혼잣말의 내용과 행동에서 강박 증세가 짐작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렇게 다소 특이하다 할 수 있는 루이의 곁에 보호자가 보이지 않는다. 보통은 일반적인 아이들보다 더 세심한 보살핌이 필요할 텐데.... 엄마는 없는 것 같고, 아빠도 목소리로만 등장한다. 게다가 그 목소리는 만날 똑같다. “잠깐만 기다려, 곧 갈게....”

루이의 옆을 지키는 것은 말을 탄 벨기에 국왕(?)이다. 필리프라는 이 존재는 물론 실존인물이 아니고 상상 속의 존재다. 국왕이라면서 혀짧은 소리를 하는 이 우스꽝스러운 어른은 루이의 친구이며 조언자이고 루이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며 때로는 루이의 분풀이에 쪼그라드는 존재이기도 하다. 루이가 몰두하는 일은 정보카드를 작성해서 주제별로 분류하여 모아두는 일이다. 1500장이나 작성했다고 한다. 우와, 이런 취미는 너무 좋은 거 아니야? 지적인 호기심과 정보 수집과 정리의 능력. 완전 학자의 자질 아닌가. 지금의 현실에도 가끔 이런 아이들이 보인다면 정말 흥미로울 것 같은데.... 아쉽게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래도 참 다행이게 루이는 그럭저럭 학교생활을 유지한다. 해야 할 일을 놓치지 않는다. 돌아가며 발표수업을 하게 되었을 때 루이는 눈에 띄고 싶지 않아 아주 흔한 주제를 골랐지만, 발표 당일 아주 운 나쁜 일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그런데 그걸 전화위복이라고 할까, 루이는 기껏 준비한 자료 대신 즉흥 발표를 하기 시작하는데, 오히려 성공이었다. 루이의 머릿속엔 1500장의 정보카드가 있잖아. 그중 최근 것으로 말을 꺼내기 시작했으니 완전 실감나는 발표였다. 아이들은 환호를 보냈고, 선생님도 놀랐다며 학교 대표로 대회에 나갈 것을 제안하신다.

루이가 ‘숨을 참는’ 아이였어도 이렇게 여지가 많이 남아있는 것은 그 증세가 무기력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닐까. 가만 보면 루이는 뭔가를 하고 싶어 했고 성취에 뿌듯해하는 아이였다. 실수도 있었지만 여차저차하여 전국대회까지 나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런저런 궁리와 시도를 하는 루이를 보면 엉뚱할지는 몰라도 훌륭하고 대견하다. 지금의 학생들 중에 이럴 수 있는 아이를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하지만 누구의 조력도 받지 못하고 나아갈 수 있는 아이는 없을 터, 부모가 나오지 않는 이 아이에게 삼촌과 선생님의 도움은 생수와 같았다.

아이가 아빠를 표현하는 부분에서 속이 상했다.
“아빠는 한 번도 제시간에 온 적이 없어.
아빠는 별이야.
끊임없이 움직이는 별.
눈 앞에 있는 것 같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진짜 아빠가 아니야.
아빠랑 나는 수만 광년쯤 떨어져 있어.”

한편, 아이가 소중히 여기는, 겉에 하트가 그려진 그 통의 정체가 엄마의 유골함이라고 해서 깜짝 놀랐는데, 나중의 더한 반전에 더욱 놀랐다. (심한 스포지만 그냥 씀)
“안 만날래.
난 엄마 안 보고 싶어.
엄마는 미쳤어.
살아있는 엄마보다 죽은 엄마가 더 좋아.
난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아!”

엄마는 심한 우울증을 극복하지 못해 병원에 몇 달째 입원해 있다. 엄마도 안쓰럽지만, 그걸 외면하면서 강박적으로 하루하루의 일과를 소화해내는 루이는 더 안쓰럽다. 루이는 금기처럼 들어가지 못하던 엄마의 서재에 들어갔다가 그 옛날 엄마 아빠의 사랑의 증거인 편지를 보게 됐고, 삼촌의 다정한 설득도 들었고, 그 말탄 친구 필리프와도 이별했다. 이 모든 과정이 루이의 성장의 과정이었다. 그리고.... 엄마의 병원에 들어선다.

첫 장에 버려진 바나나껍질이 왜 나오나 했다. 그리고 체홉의 말도. “무대 위에 권총이 있다면 누군가는 반드시 총을 쏜다.” 그 말 그대로, 바나나껍질은 괜히 나온 것이 아니고 주제를 이끌어갔다. 그리고 모든 등장인물들이 “놀라워요!”를 (아마도 원제인 Incroyable!) 외치게 된 결말로 향해갔다.

해피엔딩이어서 다행이었다. 현실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어려운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니까. 구석구석 잘 짜여진 그래픽노블이었다. 아마도 다시 읽는다면 보이는 것이 또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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