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 딱지 - 제15회 마해송문학상 수상작 문지아이들
주미경 지음, 정지윤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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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우의 첫 책> 작가의 다음 동화가 나온 것을 보고 따질 것도 없이 바로 구입했다. 이번 책은 생활동화라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아, 그냥 생활동화라기엔 '마술'이 좀 들어가긴 했구나. 딱지의 마술.

주유라는 예쁜 이름의 10살 소녀가 주인공이다. 동탁이와 딱지왕을 다투는 활기 넘치는 소녀지만 요즘 마음이 편치 않고 복잡하다. 엄마와 단둘이서의 생활에 변화가 생겼기 때문이다. 봉추 아저씨라는 새아빠가 들어왔다.

요즘 아이들의 가정은 다양한 형태, 다양한 사연을 안고 있다. 그걸 궁금해할 필요도 알려고 들 필요도 없겠지만 다양한 가정의 이야기를 아이들이 접하게 해줄 필요는 있을 것 같다. 주유를 그려낸 작가의 따뜻한 시선이 느껴져 독자에게도 주유는 참 사랑스럽게 다가온다.

주유에게 '새'아빠가 생겼지만 '헌'아빠는 원래부터 없었다. 엄마는 대학때 주유를 낳았고 임신 소식을 들은 남친은 꽁무니를 빼 버려서, 주유는 엄마 성을 갖고 엄마와만 살아왔다. 새아빠가 생겨 제일 서러운 것도 엄마 품에 자지 못하는 것이다. 거기다 아빠가 별로 멋져 보이지 않는다. 뚱뚱하고, 깔끔하지도 않고, 집에만 있고, 동화를 쓴다고 하는데 아직 결과물은 없다.

그래도 살얼음판 갈등은 없는 것이 이 책의 편안함이다. 그냥 좀 아쉬울 뿐이다. 엄마와 온전히 하지 못하는 것이 아쉽고, 새아빠와의 어색한 시간이 아쉽고.... 그런 주유의 마음을 알아주는 '마술딱지'. 이 딱지가 부린 마술은 결국 무엇일까?^^

외로운 사람들끼리 만났다고 잘 살라는 법은 없다. 상처는 서로의 상처를 더 공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새 가족은 잘 살 거라는 확신이 든다. 외로워도 혼자 설 수 있던 사람들이어서. 서로가 한쪽은 기대고 한쪽은 괴어주며 잘 살겠지 싶다.

이런저런 동화들에서 눈에 익은 정지윤 님의 그림도 이 책에 잘 어울린다. 야무지고 씩씩하면서도 한쪽 끝이 외로운 지유와 헐렁한 듯 사람좋은 새아빠의 캐릭터를 잘 살렸다. 한가지 미심쩍은 것은 '이 책은 아이들에게 어떤 매력이 있을까?'하는 의문이다. 아이들에게 익숙한 '딱지'라는 매개체? 탁월한 심리묘사? 새로운 가정의 결합을 너무 심각하지 않고 따뜻하게 그려낸 분위기? 이상은 내 마음에 든 부분인데 아이들에게는 어떨지 모르겠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많이 읽어본 편인데 요번 책은 감이 쉽게 오질 않는다.^^;;; 딱지에만 꽂혔다가 넘어가는 아이들도 있을 것 같고, 감정의 결이 섬세한 아이들은 주인공들의 외로움과 손잡음을 들여다보고 공감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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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슬펐어?
고정욱 지음, 송혜선 그림 / 거북이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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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정욱 작가님의 책 중 읽은 것을 헤아려보니 가방 들어주는 아이, 안내견 탄실이, 아주 특별한 우리 형, 경찰 오토바이가 오지 않던 날, 등 10여 권 정도 되는 것 같다. 이게 많이 읽은 게 아니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작가님의 책 중 20분의 1정도(?) 읽은 것이니까. 주로 장애어린이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을 읽었지만 텃밭 가꾸는 아이, 친일파가 싫어요 등을 읽었을 때는 아, 이분이 장애 소재의 작품 뿐 아니라 더 다양하고 넓은 작품세계를 갖고 계시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까칠한 재석이 등 청소년소설도 한 번 읽어봐야겠다 생각은 했는데 아직 읽어보진 못하고 있다.

이 책도 장애를 소재로 다룬 책이다. 장애가 있는 아빠를 가진 아들 준이가 주인공이다. 실제 모델은 작가의 아들이다. 그러니까 동화 속의 아빠는 바로 작가 자신인 것. 이 책을 작가 자신이 홍보하시는 영상을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보게 됐다. 어떤 계기로 이 책을 쓰게 되셨는지, 학교에서 울고 온 아들에게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 그 말씀에 숙연해졌는데 정작 작가 자신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씀하셔서 보는 사람의 기분까지 좋아지는 것 같았다. 그 실화를 바탕으로 쓰신 책이다.

동화작가인 아빠는 집필, 강연 등으로 늘 바쁘다. 그러면서도 장애인의 날에 본인의 동화책에 싸인을 해서 아들 딸의 학급 친구들에게 선물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날 아침 식사자리에서 아빠는 아픈 이야기를 듣는다.
"야! 너네 아빠 장애인이잖아. 너 같은 게 뭐가 잘났다고 잘난 체야!"
이런 말을 듣고 울음을 터뜨렸던 아들에게 해준 말. 바로 동영상에 나왔던 말이다.
"아빠가 장애인이라서, 그래서 슬펐어?"
"네."
"넌 아빠가 장애인이지? 난 본인이 장애인이야. 그래도 하나도 안 슬픈데?"
"네?"

아빠가 가진 이런 당당함과 긍정의 힘도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니다. 아빠의 어린 시절 회상 장면에는 아빠를 '찔룩이'라 부르며 괴롭히던 아이가 나온다. 아빠도 지지 않으려 맞붙었지만 깨닫게 된다. 주먹으로, 싸움으로 절대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많은 고통과 결심의 시간들이 흐른 후에 동화작가로 굳게 설 수 있었을 거라 짐작한다.

홧김에 준이에게 막말을 쏟아냈던 가람이도 이내 후회하고 부끄러움을 알았을 뿐 아니라 깊이 사과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막말과 남탓을 보기는 쉽지만 진정한 사과와 용서와 화해는 보기 어려운 세상이다. 이 책의 결말이 무척 훈훈하다. 이런 훈훈한 결말을 아이들도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훈훈함을 가져 온 한 마디. 이 책의 제목이다.
"그래서 슬펐어?"
상처받은 아이에게도, 상처 주고 후회하고 있는 아이에게도 손내밀어주는 위로의 말. 세상엔 착한 사람들이 그래도 더 많다고 믿는다. 작가님이 바라는 따뜻하게 어우러진 세상을 나도 바란다. 아이들에게 읽어줄 책으로도 적당하겠다. 중학년 눈높이로 쓴 책인 것 같고 2학년까진 읽어줄 만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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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이 2019-09-24 0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고정욱 작가님 신간 <나에게도 자존감이란 무기가 생겼습니다>도 강추예요~ ^^ 꼭 읽어보시면 좋겠어요~~~
 
경찰 오토바이가 오지 않던 날 사계절 중학년문고 5
고정욱 지음, 윤정주 그림 / 사계절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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씁쓸하다.

하지만 공허하진 않다.

왜냐하면 현실을 반영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게... 말하자면 현실이 씁쓸하다는 얘기가 되겠다.

 

맞다. 현실은 씁쓸하다. 어디 씁쓸하기만 한가. 참혹한 일들도 천지다.

그러니까 미담사례가 아닌 이런 씁쓸한 책이 나온 것도 의미가 있다고 본다.

 

고정욱 님의 <사랑의 도서관>을 읽고 바로 이 책을 읽었다. 사랑의 도서관에서의 천사는 사서 선생님, 그리고 이 책에서의 천사는 경찰 아저씨인가...? 했더니 예상치 못했던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상에 천사는 그리 많지 않은 것이다. 세상에 많지 않은 천사가 책에만 잔뜩 있다면 그건 책 읽을 맛을 떨어뜨리는 이유가 될지도 모른다.

 

현실을 반영한 씁쓸한 이야기는 대충 이렇다.

걷지 못하고 업마 등에 업혀 다니는 동수는 시골 작은 학교에서 서울 큰 학교로 전학 와 적응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지만 언제나 당당히 모든 일에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다. 그러던 중 동수의 등하교를 돕겠다는 경찰 아저씨가 나타난다. 아저씨는 멋진 오토바이에 동수를 태우고 다녔고, 이 일은 유명해져 신문에도, 방송에도 나온다. 이 과정에서 동수를 부러워하는 아이들도 생기지만, 인터넷 까페를 만들어 욕을 하는 아이들도 있다. 이 모든 과정을 겪고 지켜보는 동수의 마음은 이상하게도 편치 않고 우울하다.

어느날 평소처럼 경찰 아저씨의 오토바이를 기다리는데 아저씨는 오지 않는다. 그리고 아저씨가 이 일로 특진을 했다는 소식도 듣는다. 며칠을 앓아 누웠던 동수는 털고 일어나 엄마가 장만해주신 스쿠터로 등교를 한다. 그런데 학교로 멋진 제복을 입은 경찰 아저씨가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그동안 이러저러해서 못왔다며 미안하다고 한다. 음... 그런 사정이 있었겠구나... 라고 독자인 나까지 납득을 하려는 찰나, 아저씨는 본심을 드러내고 만다. 경찰서 게시판에 자신을 위한 글을 좀 써달라는..... 아저씨는 반 아이들의 쏟아지는 비난 속에서 퇴장하고, 동수를 애자라고 욕하고 놀리던 친구들까지 한마음으로 분노하며 멀어지는 순찰차를 바라본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 다르다고, 경찰 아저씨가 처음에는 정말 동수를 돕고 싶은 마음에서 그 일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동수 어머니의 큰 짐을 덜어줬다는 점에서 큰 보람도 느끼며 그 일을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일이 알려지고 찬사를 받으며 아저씨는 결국 졸업 때까지 그 일을 하겠다는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약속은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은 참 간사하기 때문이다. 난 이 아저씨를 심하게 비난할 마음이 없다. 나보다 아주 크게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나 같으면 약속은 했으니 어떤 방법으로든 지키기는 하겠다. 하지만 처음과 끝이 한결같은 마음일 것이라고는 장담하지 못하겠다. 살면서 나의 간사한 마음을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이 일이 비록 세상의 씁쓸함을 알게 했을지라도 동수의 마음을 더 단단하게 하고 지켜보는 친구들에게도 많은 깨달음을 주었을거라 생각한다. 인간은 대체로 이것밖에 안된다는 것 - 하지만 그 안에서도 당당함을 잃지 않고 인생을 개척해 갈 수 있으며, 그렇게 가다보면 동행하는 진실한 사람들 몇은 곁에 있을 거라는 것, 그것만으로도 세상은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기우인지 모르겠지만, 이 책이 경찰이라는 직업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그려진 점은 좀 걱정이 된다. 어떤 직업군이든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섞여있기 마련인데, 이런 공개적인 매체에 자신의 직업군이 부정적으로 그려지면 나같이 소심한 사람들은 상처받는다.^^;; 훌륭하신 분들이 더 많다는 걸 알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2011년에 다른 곳에 썼던 것을 옮겨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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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88
박혜선 지음, 이윤희 그림 / 시공주니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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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우울증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 그러나 이야기는 서럽지 않고 재미있었다. 상황이 힘든 사람은 있어도 악한 사람은 없었다. 난 이런 이야기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갈데까지는 가지 않는 이야기....?

동화의 주인공으로는 주로 말썽쟁이들이 많이 나오지만 이 책의 종현이는 보기드문 모범생이다. 사려깊고 예의바르고 차분하고 준비성 있고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자기 할 일은 제 시간에 알아서 해 놓는다. 우와, 완벽하다. 이런 아이가 자식이거나 제자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종현이가 이런 자신의 정체성을 원망하고 떨쳐버리려는 순간이 온다. 바로 엄마 때문이다.

첫장면, 저녁 식탁의 대화는 살얼음판 같다. 할머니는 무슨 그런 병이 있냐 하고 아빠는 신경이 곤두서 있고 엄마는 꺼질듯 무기력하다. 엄마의 우울증 진단이 내려진 후 집안의 모습이다. 결국 종현이는 할머니의 혼잣말을 듣는다. "할 일 없으니 별 병이 다 걸리지."

든든한 할머니 덕에 그동안 엄마는 마음놓고 직장생활을 했다. 하지만 직장을 잃고 다시 구하지 못해 집에 있게 되자 설 자리를 못 찾고 헤매다 우울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할머니의 혼잣말을 들은 종현이는 결심한다. 내가 엄마를 성가시게 만들겠다고.

이때 롤모델이 된 친구가 같은반의 안하람이다. 생각보다 말과 행동이 열 걸음은 앞서가는 아이. 하루가 멀다 사고를 치고, 하람이 엄마는 쫓아다니며 뒷수습에 정신을 못차린다. 종현이가 과연 이 모델을 닮을 수 있을까?^^

원판 불변의 법칙이라고, 타고난 게 얼마나 징글징글한 건데, 어림도 없다. 하지만 정말로 최선을 다하다보니 몇가지 사고치기엔 성공했고, 결국 엄마는 학교에 불려오게 됐다. 그때까지 종현이와 하람이, 학급 친구들이 벌이는 이야기들이 꽤나 재미있다. 엄마의 우울증이라는 소재는 조용히 따라갈 뿐 주로 천방지축 안하람과 그를 닮으려는 이종현의 분투가 이야기를 끌어간다. 캐릭터들은 나름 다 매력이 있다. 뒷목 잡게 만드는 안하람을 미워하지 못하고 웃음을 깨무는 선생님도 훌륭한 교사 여부를 떠나서 참 좋은 사람이다. 선생님은 일탈하려 몸부림치는 종현이의 어깨를 말없이 두드려 주거나 꼭 안아주기도 했다. "왜 저만 봐줘요. 이건 차별이잖아요." 라는 항변을 듣기까지. 그리고 종현이가 바란대로 엄마는 상담을 오게 됐다.

나이들어서 그런지 종현이의 할머니, 그러니까 엄마의 시어머니의 입장도 이해가 된다. 사돈댁이 와서 화내며 탓하기까지.... 열심히 살림하고 손자 키워줬을 뿐인데 이제와서 어쩌라고? 이 집을 나가야 되나 고민하는 노인네의 모습을 보니 안타까웠다. 손자와 함께 엄마 생일선물로 줄 시집을 고르며 고민하는 할머니의 모습이 참 고맙다. 얼핏 눈에 띈 시집제목은 <여행> 많은 것을 암시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이 책의 제목이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이건 청개구리 안하람의 트레이드 마크이자, 학급에 유행시킨 말이기도 하다. 교사 입장에선 열받지만, 자신이 납득한 대로, 자신의 방식대로 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다. 그게 이유없는 어깃장이거나 가당치 않은 궤변이 아니라면 귀기울여줄 필요가 있다. 모범생이라는 틀에 끼어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도 못하던 종현이에게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자, 그리하여 종현이는 자기 목소리를 찾으며 한걸음 성장한다. 하지만 이종현이 안하람 되지는 못할 것이다. 이한철의 '안되는 건 안돼' 라는 노래가 있다.
"일등이 꼴찌하기 어려울걸 어려울걸~
잘해봤자 안되는 건 안 돼~"
생긴 대로 사는 것이다. 내가 나이고, 이런 나는 세상에 나 뿐이니까.
가끔은 나도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며 살 것이다. 사실 난 그 말을 꽤 잘 하는 편이다.ㅎㅎ

시공주니어문고 중학년용이고 주인공들 연령도 4학년이다. 분량은 중학년 수준이지만 내용상 5,6학년도 괜찮겠다. 4학년 아래로는 어려울듯. 아이들은 어른과는 다른 시각에서 재미를 느낄 것 같은데, 어른들이 권하고 싶은 책일지는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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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라이앵글의 심리 -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의 마음으로 읽는 학교폭력
이보경 지음 / 양철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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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빌려다놓고 한참 미루다가 이제야 손에 들었다. 아마 절박하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최근 3년간 평화로운 출근을 하고 있어서, 나한테 닥친 일이 아니어서.... 하지만 당장 내년에 우리 학급에 어떤 일이 생기고 그 일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 어떤 결말을 몰고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남의 일이 내 일 되는 것은 한순간인데, 풀어져 있다 닥치면 대응하기 훨씬 어렵다. 이 책을 지금 읽기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제목처럼 '심리'에 주목하는 책이다. 가장 근본을 파헤치는 일이라 하겠다. 이미 일이 벌어진 후에 심리타령을 하고 있기는 어렵다. 그때는 납득할만한(그런게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처리가 중요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들을 관찰하고 지도하는 단계에서는 '심리'에 대한 안목이 매우 중요하다. 이 분야에 공부와 활동을 많이 하신 선생님이 쓰신 책이라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을 정확히 짚어주는 내용,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주는 내용 등 나를 일깨워주는 내용이 많았다.

'트라이앵글'이 제목에 쓰였듯이 이 책은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 세 각도에서 당사자들의 심리와 그에 대한 접근방식을 다룬다. 버릴 내용이 없을만큼 밀도있고 설득력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더 아득해지기도 했다. 이토록 어려운 일을.... 나는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 주어진 이 평화에 감사하며 조심조심 하루하루 살아야 하는 걸까. 어제도 오늘도 뉴스에서 성인폭력보다 더 끔찍한 청소년폭력의 사례들을 보았고, 청소년법 폐지하고 엄벌하라는 댓글들이 빗발치는 것을 보았다. 책에 언급된 사례들만 보아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사람이고 가장 다루기 힘든 것은 사람의 마음이구나 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확실히 인간이란 건, 나부터가 말이다.... 절대로 고귀하지 않다. 역겹고 냄새난다. 자연그대로 두면 아름다울 거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가꾸고 다듬어야 그나마 봐줄만한 정원이 되는거고, 그냥 두면 잡초 천지 발디딜 틈도 없는 살풍경이 되는 거다. 인간에게는 악의 발현을 억누르는 여러가지 동기들이 있다. 나를 비롯하여 다행히 이게 작동되는 인간들은 속으로는 남을 욕하든 뒤통수를 갈기든 어쨌거나 겉으로는 남에게 크게 나쁜짓은 안하고 살아간다. 하지만 그 동기 자체가 없는 인간은? 제어장치가 듣지 않는 인간은? 이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우리 사회는? 그게 나의 제자라면?

트라이앵글은 책의 2부에 나오고, 1부에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찰을 주는 여러가지 이야기가 담겼다. 첫번째 꼭지가 <파리대왕>인 것은 여러가지를 시사한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에 나오는 '두 남자와 장인' 이야기에선 자신을 도운 사람을 오히려 견제하고 거리를 두는 인간의 심리를 볼 수 있다.(헉, 찔렸다...ㅠ) '모방의 힘'을 언급한 꼭지에선 영향력, 특히 부모의 영향력의 지대함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교사의 영향력도 무시 못할 수준이니 다시 한 번 내 언행을 돌아보게 된다. 그룹에서의 분리를 죽음처럼 여기는 아이들의 심리,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자의식을 언급한 꼭지에서는 이것이 인간의 보편적 심리라기보다도 우리나라의 특별한 국민적 심리 아닌가 싶어 입맛이 씁쓸하기도 했다. 자존감이 부족하고 남과 비교하며 체면을 중시하는 국민성 말이다. 독야청청이 씨가 마른...ㅠ

이어서 몇 군데 밑줄친 구절들을 적어본다.
■ 힘을 얻기 위한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어떤 힘을 얻고자 하는지는 아이들이 접한 환경과 경험에 따라 다양하다. 이것을 가치관이라고 할 수 있다.(힘을 갖고 싶어요-64쪽)
: 교사로서의 책임감을 막중하게 느끼는 부분이었다. 건전한 가치관을 가르치는 일이 교육으로 가능할까. 여기에 고개를 젓는다면 나는 당장 짐을 싸야 할 사람이다. 참으로 무겁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앞으로 한걸음 나가고 싶다.

■ 작은 행위가 큰 행위로 번져 나가는 것을 교사가 즉각 감지하거나 인지하고 막을 수 있어야 한다.(깨진 유리창의 법칙-67쪽)
: 깨진 유리창의 법칙은 정말로 교실에 그대로 적용된다. 유리창 하나가 깨지지 않도록 사전에 감지하고 막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혹시라도 깨졌다면 한 장이 두 장 되지 않도록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 한다. 끔찍해서 뒤로 물러서는 순간, 그 교실은 끝장이다. 나는 학급붕괴를 경험한 적은 없지만 그 아주 미세한 떨림을 감지해 본 적이 있다. 털끝만한 흔들림이었는데도 지금 생각해도 모골이 송연하다. 이 꼭지에 정말 공감했다.

■ 교사는 학급 내 집단 역동에 대해 예리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동조하는 이유-84쪽)
: 위 꼭지와 일맥상통하지만 학급 내의 집단 역동에 초점이 있다. 권력 위계가 굳어지면 손쓰기 어렵다. 그 안에서 권력에 의해 부당한 억눌림을 당하는 약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당연한 것, 상식이 되어야 한다. 어떤 해에는 이게 저절로 되지만 어떤 해에는 교사가 돌파해야 한다. 눈물겹게 어려울 때도 있다.

■ 교사는 학생들 사이에 이러한 집단이 만들어지는 것을 막아야 하며 잘못된 위계 형성을 깨부수어야 한다. 옳고 그른 것에 대해서 용기있게 따르고 상황을 비판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도덕적인 비판적 사고력을 키워 주도록 해야 한다.(90쪽)
■ 이렇게 우리는 비인간적인 행동을 해서라도 인정받고 싶어하는 본질적인 나약함이 있다. 우리는 이런 나약함에 분노와 실망을 느낀다. 그렇기에 더욱더 이런 나약함을 인식하고 아픔을 공감하고 자신을 바르게 세울 수 있는 정의감, 정의에 대한 당당함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교육해야 할 것이다. (집단에 충성하는 아이히만 -93쪽)

: 공감과 성찰이 결핍된 채로 역할에만 몰두한 아이히만의 사례는 자주 언급된다. 아이들도 이런 경우인 경우가 많다. 딱히 모나고 드세지 않은데도 악행에 충실히 가담하는 아이들. 그 눈을 뜨고 객관적으로 자신의 상황과 행동을 살펴볼 수 있는 각성을 제공해 주어야 한다. 물론 무척이나 어렵지만....

2부에선 피해자, 가해자, 방관자 순서로 그들의 입장과 마음을 다루었다. 피해자 장에선 '호모 사케르'라는 용어가 나왔다. 한병철 님의 '피로사회'를 같이 언급한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이 피로사회의 어른들 틈바구니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은 탈출구로 호모 사케르를 찾고, 자신이 호모 사케르가 될까 두려운 아이들은 더 적극적인 공격자가 되기도 한다. 피해자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와같이 단순하지 않으며 이것은 우리 사회를 반영한다. 단지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원인이 깊으니 해결책 또한 단순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가 처한 어려움이다.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가장 우선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위로하고 힘을 주어야 하는 대상은 피해자다. 일에 휘말리면 마음에 집중하기 쉽지 않다고 들었다. 상처만 안고 그로기 상태에서 끝난다. 학폭법에 대한 문제제기도 우리 사회가 꼭 귀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와 더불어 회복탄력성을 언급한 부분에 매우 공감한다.
■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덜 상처받을 수 있을까 가르쳐주고 대처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다. 마음의 근육을 키울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그것이 사회구조를 변화시키고 학교의 위험요인을 제거하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142쪽)
: 피해자를 도와야 한다는 것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지만 사실 가해 피해가 명확한 경우보다도 현장에선 그 경계가 애매한 경우가 더 많다. 아이들이 회복탄력성(리질리언스)을 가지고 스스로의 마음을 지킬 수 있다면 우리 모두의 고민은 상당부분 줄어들 것이다.

가해자의 마음에 신경쓰는 것도 중요하다. 그들을 감싸기 위해서가 아니며 그들의 행위에 책임을 지는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그들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어야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도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을 돕기 위해서 옆에 있어줄 필요가 있다. 보통 분노가 일기 마련이므로 참으로 수양이 된 인격이거나 숙련된 전문가여야 할 필요가 있지만....

마지막으로 방관자 장에선 회복적 생활교육을 다루었다. 이에 대해선 따로 책 한권으로 다뤄도 부족한 분량이니 간단한 소개만 했다고 할 수 있다. 전체 앞에서 중재한다는 것은 참 쉽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나름의 대안으로 그래도 가장 결실을 보는 방법인 것 같아 관심이 간다.

책의 내용에 전반적으로 만족하고 배울 점이 많았지만 마지막에 덧붙인 '나가며'라는 장은 내게는 사족처럼 느껴져서 약간 불편했다. 개인의 감정이 들어가니 전문성이 떨어지는 느낌이랄까... 사실은 그 모든 감정을 알아야 전문성이 높아지는 것일테지만, '나도 그 입장 되어 봤는데'가 반드시 객관성을 가져오는 건 아니다. 내가 편집자라면 이 장은 뺐을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다.)

이 책에 언급된 모든 것을 알아도 극복할 수 없는 사안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실패할 때 하더라도 숨겨진 마음, 그 이해에 집중하려는 저자의 원칙에 나도 동의한다. 그를 위해 공부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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