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 H : 지독한 학교 행성 생활 - 제1회 이 동화가 재밌다 대상 수상작 이 동화가 재밌다
신소영 지음, 음미하다 그림 / 고릴라박스(비룡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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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살짝 4차원인 친구와도 친하고 우리반 4차원 녀석과 농담도 잘 주고받는데.... 아 근데 이 책에 나온 4차원 소녀에게는 미안하지만 별로 마음이 가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내가 보수적이어서 격식을 파괴한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캐릭터가 너무 부자연스럽다는 이유도 있다고 본다. 난 아이들 책을 읽다가도 폭 빠지기 일쑤인데 이 책에는 좀처럼 들어가지지 않았다.
책을 읽다보면 주인공이 허구의 인물인 걸 잊을 때도 있고 가까운 어딘가에, 아니면 먼 어딘가에라도 있는 존재로 느껴지는데 이 책에선 그냥 인형을 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러니 호불호를 떠나서 작품과 독자의 거리가 좁혀지질 않았다. 이야기보다는 그냥 활자를 읽었다는 표현이 맞겠다.

비룡소에서는 스토리킹에 이어 '이 동화가 재밌다' 공모를 시작했나본데 이 책이 1회 대상을 받은 책이다. 심사위원들이 매우 '재밌다'고 평가했으니 뽑혔을 것이다. 읽으면서 좀 당황스러웠다. 아 어쩌지.... 내 취향은 이제 트렌드와 멀어졌구나. 웃으라는 지점을 알 것 같긴 한데 안 웃겨.ㅠ

하지만 한심해(소녀 H) 양이 사람들의 한숨을 모아 꽃송이로 만든다는 발상은 맘에 들었다. 한심해 양을 보고 한숨을 안 쉬는 사람은 드물었다. (나라도 쉬었을 것 같다. 너무 과장된 캐릭터라 생각함) 한심해 양은 사람들의 한숨들을 열심히 채집해 검은 비닐봉지에 모았다. 그리고 꽃송이로 바뀐 그것들을 나눠주고자 하지만 그걸 알아보는 사람들은 없다. 오직 현수만이 소녀 H의 호의를 제대로 받아주는데....

그런데 현수는 용용 패거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 소녀 H는 이 사실을 어른들에게 부지런히 알리지만 어른들은 무관심하거나 무마하려 할 뿐이다.(이 부분 내가 느끼는 현실과 다르다.ㅠ) 하지만 이걸 극복한 방법은 멋졌다. 역시 어린이들, 당사자들이 깨어야 진정한 해결이 된다. 또래가 보내는 눈총이 어른의 꾸중보다 무섭고, 또래의 건강한 압력은 후환없이 깔끔하게 문제를 해결한다. 이 책은 마지막에 이런 내용을 잘 보여 주었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재미나게 읽으며 작가의 메시지에도 주목한다면 훌륭한 독서가 될테니 뭘 더 바라랴. 내겐 산만하고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아 마음이 가지 않는 책이었지만, 내게 별로인 책이 남에게는 인생책이 될 수 있는 것이 바로 독서라는 점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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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쓰는 엄마 그래 책이야 19
송언 지음, 최정인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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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송언 선생님 책의 리뷰를 쓴다. 3년 전에 우리 학교 독서축제 때 모셨을 때까지는 현직에 계셨던 걸로 알고 있는데, 이젠 퇴직하셨다고 들었다. 현직에 계셨을 때 더 다작을 하셨던 것 같다. 털보 선생님 교실의 온갖 개성쟁이들이 주인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다. 하나같이 재미있었지만 한편으로는 느낌이 비슷비슷하다는 생각도 들었었다. 그런데 오늘 읽은 이 책.... 오랜만에 나온 이 책을 읽고 나는 울컥했다. 엉뚱하고 고집센 말썽꾸러기가 교실을 휘저으며 털보선생님과 온갖 유쾌한 실랑이를 하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이 책의 아이는 지적장애가 있어 특수학급과 복지관 치료 프로그램을 다니는, 학급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가온이다. 그리고 애타는 눈길로 딸을 바라보는 엄마가 함께 나온다.

가온이는 한글을 모른다. 읽지도 쓰지도 못한다. 당연히 일기도 못 쓴다. 그런데 가온이 엄마는 담임선생님이 아이들 일기에 댓글을 달아주신다는 얘기를 친구엄마에게서 듣는다. 그날부터 엄마는 가온이에게 이것저것 물으며 하루 일과를 대화하고, 그것을 일기로 써서 학교에 보낸다. 선생님은 거기에 댓글을 써 주신다. <일기 쓰는 엄마>라는 제목은 그래서 나온 것이다.

아이들은 송언 선생님 책을 정말 좋아한다. 아마 좋아하는 작가, 아이들에게 인지도 있는 작가 1순위일 것이다. 이유는 당연히 재미있어서다. 송언 선생님 책에 나오는 특유의 주인공은 그와 비슷한 아이에게도, 반대의 아이에게도 위안을 주는 모양이다. 그런데 이 책도 재미있어 할까? 잘 모르겠다. 사려깊고 공감능력이 있는 아이들은 나와 다른 이들의 아픔과 어려움을 느끼고 이해할 기회가 될 것 같다. 그러나 유쾌함만 생각하고 이 책을 펼친 아이라면 "별로 재미없던데." 할 수도 있겠다. 경험의 폭에 따라 공감의 한계도 있는 게 사실이니까. 그러나 독자가 엄마나 교사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이 책은 일기와 일기 아닌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기는 앞에 말한 대로 가온이 엄마가 쓴 것이다. 거기에 선생님의 댓글, 엄마의 대댓글이 붙어 있다. 가장 절절하게 눈에 보이는 것은 느린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딸에 대한 애틋함, 가여움, 안타까움, 기특함, 미안함 등의 감정이다. 손에 잡힐듯 다가온다. 엄마는 인내심이 강하면서도 여리고, 감정적이지 않으면서도 때론 깊이 상처받는다. 주변을 배려하고 작은 일에도 감사하는 사람이다. 선생님의 댓글과 관심도 작은 일은 아니지만 거기에 대한 엄마의 감사 표현이 더 놀라웠다. 들여다보면 아쉬운 부분도 없지 않을텐데 불만이나 요구보다는 감사 표현이 앞서는 가온이 엄마를 어떤 사람들은 답답하게 볼 것도 같다. 예를 들면 가온이가 친구들과 잘 어울리려 들지 않을 때, 단체 활동을 기피해서 혼자 개별활동을 할 때 "왜 우리 아이를 소외시키냐?" "아이 좀 잘 살펴라" 라며 불만과 요구를 쏟아놓으시는 경우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데 말이다.

일기는 여름방학때 좀 쉬었다가 2학기에 다시 시작된다. 평이한 문장들 속에 매일 아침 약을 먹어야 하는 이야기(약을 먹으면 급식을 잘 못 먹고 안 먹으면 과잉행동으로 사고를 치게 되고ㅠ), 바지에 똥 싼 이야기, 교실에서 치마를 훌렁 벗어버리고 안입겠다 고집부린 이야기, 사고치고 혼나고 사라져 애먹인 이야기 등등 쉽지 않은 상황들이 들어있다. 그러다 어느날 엄마는 절필(?)을 선언한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지만 누구도 힘이 돼 줄 수 없는 엄마의 외로움과 막막함이 다가와 눈물이 난다.
"내일모레면 12월이잖아요. 또 한 학년 올라간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하고 걱정 때문에 눈앞이 캄캄해지네요. 다가오는 1년을 또 어찌 보내야 할지 막막하기도 하고요. 이런 심정을 누가 알아줄까요?"

이후로 선생님은 더이상 가온이(엄마)의 일기를 볼 수 없었다. 3학년에 올라간 가온이는 복도에서 만나도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완전히 선생님을 잊은 듯했다......
그러다 그 다음해 가을, 선생님은 두 통의 편지를 받는다. 아주 짧은 편지와 아주 긴 편지였다. 짧은 편지는 아, 삐뚤빼뚤한 가온이의 편지. 이제 첫 발을 떼는 가온이의 글씨였다. 긴 편지는 엄마의 편지. 그동안의 공백을 채우기라도 하듯 진솔한 문장으로 가득차 있었다. "....느닷없이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이기도 했습니다. 이 세상 누구도 가온이의 삶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막막함이 찾아온 것이었지요..... 그러자 언제까지 가온이의 일기를 대신 써주어야 하나 머릿속이 아득해지면서, 까맣게 타버리는 것 같았습니다....."

긴 편지는 "더 나은 희망의 빛을 찾아 가온이랑 꿋꿋하게 살아가겠습니다." 라는 말로 끝이 난다. 여리고도 단단한 엄마의 앞으로의 발걸음을 응원한다. 좌절과 일어섬의 경험은 이게 끝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도 외로움과 막막함은 점점 덜해지길, 그런 사회이길 바란다.

재작년에 우리반에도 발달장애 학생이 있었다. 한 친구가 느닷없이 내게 와서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이는 행복할까요?"
난 깜짝 놀라 황급히 대답했다.
"그럼. 니가 행복한것처럼 ♡♡이도 행복하지. 너랑 느끼고 생각하는게 똑같진 않지만 그렇다고 행복하지 않은 건 아니야."
"그래도 ♡♡이가 똑똑해졌으면 (황급히 수정) 아,아니 지금도 똑똑하지만 더 똑똑해지면 행복할 것 같아요."
"지금 이대로도 행복할 수 있어. 그리고 니가 ♡♡이가 혼자 있을 때 같이하자고 말해주고 도움이 필요한거 같을 때 도와준다면 더 행복하겠지."
"저는 그럴래요."
"혼자서 그런 생각을 하다니 선생님이 감동받았어. 고마워."
아이는 결연한 표정으로 자리에 들어가더니 이후 ♡♡이를 챙기려 애썼다. 뭐 솔직히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천둥벌거숭이들이 챙기면 뭘 얼마나 챙기겠냐마는....

미친듯한 속도로 남을 앞서려는 강박에 사로잡힌 이 사회에서 저마다의 속도는 제각기 다르며, 그 속도에 맞추어 저마다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희망은 어디까지 가능할지. 가온이 엄마한테 그 희망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벼랑 끝에 서 있는 것 아니에요. 때로는 내려놓고 쉬어도 돼요.

아참 잊을 뻔 했다. 털보 선생님! 퇴직하셨다고 교실 이야기가 그만 나오는 것은 아니지요? 늘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다른 아이와 털보선생님의 이야기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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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특별수사대 1 - 비밀의 책 목민심서 조선특별수사대 1
김해등 지음, 이지은 그림 / 비룡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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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동화 프로젝트 수업을 해보겠다는 생각이 있다. 5학년 담임을 할 때 살짝 맛보기로 해본 적은 있는데 그리 깊이 들어가진 못했었다. 그때 만들었던 역사동화 목록이 40권이 넘는다. 시대배경까지 넣어서 만들었으니 꽤 공을 들여 만든 목록이다. 3년 전이니 지금은 훨씬 더 많을 것이다. 여러 출판사를 통해 다양한 작가들의 역사동화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

 

김해등 작가님의 책으로 최근에 나온 책이 반가워 읽어보았다. 음 역시 일단 재미와 긴장감이 있어 좋았다. 역사동화는 역사적 상상력으로 쓴 동화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일단 허구의 인물이 등장하게 마련인데, 그래도 역사적 인물과 역사적 사건이 기둥을 받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것을 찾아내기 어려웠다.

 

일단 시대적 배경은 조선 후기, 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세도정치가 기승을 부리던 시기다. 임금의 행차 때 꽹과리를 울린 한 평민이 고리대금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백성들의 실태를 고발한 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일로 암행어사를 파견했으나 그 또한 급체라는 미심쩍은 병명으로 죽고 만다. 임금은 고심 끝에 믿을만한 엄 교리를 고을 사또로 파견한다. 그가 해야 할 일은 빙산의 일각인 이 일들의 몸통을 밝혀내야 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제목은 <조선 특별 수사대>이다.

 

추리의 요소가 들어간 책은 누가 봐도 흥미롭다. 게다가 이 책에는 작가가 창조한 매력적인 인물들이 있다. 무릿매 던지기가 특기인 오복이가 엄 사또의 통인(심부름꾼)이 되는데, 가족을 잃고 원한이 맺힌 고통의 상황이지만 특유의 익살과 장난기가 이야기의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한다. 결정적인 순간에 날리는 무릿매는 골리앗 앞에 선 소년 다윗을 연상시킨달까.... 다음은 엄 사또의 책객(업무를 돕는 사람)으로 따라온 어리버리 무진. 알고보니 신출귀몰한 호위무사였다는... 드라마로 친다면 가장 젊고 잘생기고 여성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인물.^^

 

이들은 죽을 고비를 여럿 넘기면서 마침내 잠채(불법 금광 채취)의 현장과 그 몸통을 드러내는데 성공한다. 그 사이 긴박감이 넘치는 많은 장면들은 책으로 읽어봐야 하고.... 크고 작은 반전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반전은 몸통의 정체. 근데 중반부터는 짐작이 가기 시작한다. 그래도 맞을까? 아닐까? 기대하며 보는 재미는 있다.^^

 

이런 사건의 전개와 결말 과정에 역사책에 나오는 실제 인물과 사건은 없다. 그러면 역사동화로서의 의미는 부족한 것이 아닌가?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 책에서 떠오르는 것은 실존 인물은 아니지만 목민심서라는 실존 서적이다. 허 사또가 이 책을 거울삼아 자신의 본분을 다하려고 하는 모습이 여러 번 나온다. 또 하나는 정감록이다. 이 이야기 속에서 조선의 질서를 부정하고 범죄행위를 했던 이들이 신봉했던 책이다. 몸통당신이 세우고자 하는 새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라는 엄 사또의 질문에 이런 대답을 한다. “천하의 만물은 공물이오. 만물을 백성들이 소유하는 세상이오.” 물론 그 자신도 행위 자체는 이 이념에 부합하지 못했지만.... 이런 책이 나오게 된 이유도 생각해 볼만하다.

 

물론 허구적 요소도 많다. 특히 무진이라는 인물은 정말 드라마적이다. 실제라면 죽었어도 벌써 다섯 번은 죽었을 것 같은....^^;; 그러나 결국 흠모하던 여인과 함께 무사히 길을 떠난다. 드라마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진짜 스케일을 좀 키워서 대본을 만들고 드라마 제작을 해도 재미있을 것 같다.

 

앞에서 역사동화 프로젝트 얘길 했는데, 내가 살짝 해봤던 방법은 아이들이 목록의 책을 한 권씩 골라 일정기간동안 읽고, 그 책의 배경이 된 역사적 사실과 배경, 인물에 대한 조사를 하고, 책의 내용과 감상, 조사 내용을 결합하여 독서신문을 만드는 수업이었다. 학교 독서축제 기간과 맞물려 전시를 하기도 했다. 이정도도 바로 시도되는 쉬운 작업은 아니다. 하지만 개인활동이고 정적인 활동에 그쳤다는 아쉬움이 좀 있다. 모둠 협력활동으로 하고, 연극 같은 활동이 최종활동으로 들어가서 다함께 즐기고 감상하는 시간이 된다면 더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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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뜨는 모꼬 꿈꾸는 돌고래 4
유승희 지음, 윤봉선 그림 / 웃는돌고래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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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좋아하는 작가의 안 읽은 작품이 있으면 빵꾸난 기분이라 그자리를 채워야 직성이 풀리는데, 유승희 작가의 이 책을 도서실에 채워 놓고도 한참동안 잊고 있었다. 엊그제 도서실을 훑다가 눈이 번쩍 뜨여 가져왔다. 읽기 전에 검색해보니 이 작가의 책 중 가장 덜 팔린 책이다. 판매지수가 밑바닥이다. 근데 내 취향이 독특한 건지, 작가의 역량이 덜 알려진 건지는 몰라도 나는 이런 작품이 너무 재밌다. 너구리가 사람의 말을 하고 천체관측을 하고 '무한한 것들에 대하여' 생각을 하며 산다? 그러니 현실동화는 아닌데 이 너구리를 만나는 강사장은 속물적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인물이다. 둘의 만남과 대화가 정말 웃긴다.

동화책인데, 화자가 강사장이다. 너구리도 아니고 강사장 아들 민우도 아니고. 어 이거 색다른 시도인데? 은근 재밌어 라고 생각하며 읽어나갔지만 그건 내가 화자와 같은 어른이어서 감정이입이 더 잘 되어 그런 것이고, 아이들에게는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이 아이들에게 많이 읽히지 않은 이유는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동화인데 왠지 어른들이 읽어야 할 이야기 같은.... 하여간 나는 이 어수룩한 속물 남자 사람한테 꽤 공감을 하고 있었다. 너구리랑 말할 때 보니 나랑 말투까지 비슷했다.
"나는 어른이고! 아따, 그 너구리 참 말 많네."
"고만하긴, 얌체같은 놈아."
뭐 이런 말투들.ㅎㅎ

강사장은 부동산 개발업자다. 선바위골에 전원주택 단지 개발을 하려고 눈독을 들이는 중이다. 장씨 할아버지네 산과 과수원을 사야 가능한데 여의치가 않자 아예 그 옆 빈집으로 이사를 왔다.(부인과 아들은 서울에 두고) 장씨 할아버지 마음을 돌리려고 일손을 돕는 등 정성을 쏟으며 밤이면 뒷산에 오르던 길에, 운명적 만남을 한다. 바로 말하는 너구리. 너구리는 특이한 말투에 강사장을 '임자' 라고 부른다. "임자, 어서 오믿."

말 뿐이랴. 너구리는 사색하며 탐구하기까지 한다. 코앞의 것에만 눈이 벌게 생각이 뭔지도 잊고 살던 강사장은 당황한다.
"인간들도 생각하며 살지 않으믿?"
"무,무슨. 당연히. 그럼. 생각하고 살지."
"무슨 생각 하시믿?"
"아, 나야 뭐. 그냥, 여러가지 생각을, 하고 살지."
"여러가지란 말은 없다는 말과 같은 뜻이라던데...."

이렇게 강사장을 부끄럽게 하던 너구리도 먹을 것 앞에서는 우리집 강아지와 똑같은 모습이 된다. 그것 때문에 더 웃겼던 것 같다. 참치 통조림을 따서 그릇에 담는 동안 침이 뚝 떨어지는 모습, 라면을 맛보고는 "나면, 나면, 전말 마짓으믿!" 하고 감탄하는 모습이. 이렇게 얻어먹은 너구리는 호칭을 임자에서 '슨상님'으로 바꿔준다. 난 임자가 좋은데...^^
어느새 너구리는 장씨 할아버지와도 친구가 되어 있었고 각각 홀로 외로웠던 셋은 꽤 즐거운 시간들을 함께 보낸다.

그런데 웃을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다. 생의 마지막이 다가옴을 짐작한 장영감은 드디어 강사장에게 과수원을 팔았고, 기다려왔던 개발은 급속도로 진행되었다. 파헤쳐가는 주변 모습에 놀란 너구리가 강사장을 찾아왔고 시원찮은 변명만을 듣고는 분노에 차서 떠나가 버린다. 이후의 일들은 우울하다. 다시 만난 너구리는 올무에 걸린 모습이었고, 애써 올무를 풀어주었지만 깊은 상처가 난 몸으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 버렸다.

현실적인 속물 캐릭터 강사장이 그 캐릭터를 끝까지 유지하려면 이 책은 해피엔딩이 되어선 안 된다. 그런데 강사장은 참 어설픈 속물이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그 전후로 슬프고도 따뜻한 일들이 있었다. 완전치는 않지만 절반의 공존 가능성이 열린다.(그래, 너구리가 말을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것도 기적에 가까운 일이라 비현실적이다. 사람이 욕심을 포기하는 일 말이다. 비현실적이고말고.)

강사장을 중심으로 이 책은 두 줄기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 시골의 이야기가 절반이라면 서울에 있는 가족 이야기가 나머지 절반이다. 평범한 주부인 아내와 아들 민우는 날마다 전쟁이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 공부시키느라 마음이 조급한 엄마와 "한번 태어나서 가는 짧은 인생 허무하다"며 자유를 주장하는 민우는 사사건건 부딪히고, 강사장은 일하는 와중에도 이들을 중재하느라 애를 먹는다. 엄마의 욕망과 조급함은 요즘 유행하는 한 드라마의 상류계층 여자들과 수준은 다르되 일맥상통한다. 그러니 기다려주지 못하고 자식은 자식대로 미치고 엄마는 엄마대로 환장한다. 엄마를 무턱대고 욕할 수는 없다. 대체 우리는 왜이리 불안한 것일까?

너구리는 밤마다 별을 보고, 탐구하고, 기록한다. 그런데 강사장이 이야기 나누어보니 천동설로 천체를 이해하고 있는 것 아닌가! 첨단장비도 사전지식도 없는 너구리가 혼자 거기까지 알아낸 것도 대단한 일. 답답해서 펄쩍 뛰던 강사장은 어느 순간 입을 다물고 너구리를 격려한다. 이 대목을 통해 작가는 얼마나 많은 말을 하고 싶었을까? 남의 자식한테는 이게 되지만 자기 자식에게는 두개골을 열어서라도 넣어주고 싶은게 부모의 본능 아니겠는가. 그래서 돈만 있으면 수억을 들여서라도 입시 전문가를 옆에 붙이고, 능력을 극대화시키고 없으면 부풀려서라도 대학을 보내고. 그 다음은....?

유승희 작가님의 동화에는 의인화된 동물들이 많이 나온다. 이 책에는 진짜 인간과 함께. 이게 이질감 없이 실소가 나오지 않고 자연스럽기는 참 힘든데 작가의 능청스러움은 이를 다 커버한다. 이야기는 어차피 '거짓말을 얼마나 능청스럽게 하는가'에 달렸다고 했다. 그런 의미에서 찰진 대사로 눙치는 작가의 능청스러움을 나는 참 좋아한다. 비록 비현실적이라 하지만 따뜻한 결말도 좋다. 희망을 보여주는 게 문학의 역할이기도 할 테니까.

(전에 한 후배가 "개발과 관련해서 아이들과 읽고 이야기 나눌 책 추천해주세요." 했을 때 비문학책을 알려 주었는데 그때 이 책을 추천해 주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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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시골에서 검은달 1
김민정 지음, 전명진 그림 / 스콜라(위즈덤하우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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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실에 새 책이 들어온 다음날 도서실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새 책 탐색을 했다. 한 남자아이가 이 책을 잡더니 홀딱 빠져서 보다가 다 못 읽었다며 대출을 해갔다. 다음날 아침 반납을 하러 가면서 "선생님, 이 책 보셨어요? 이거 되게 재밌어요."
다른 아이들이 "무슨 책인데?" 하며 궁금해하자 아이는 한 마디로 말했다. "어, 공포야."

ㅎㅎㅎ 아이들은 왜 무서운 걸 좋아하는 걸까? 비오고 컴컴한 날이면 무서운 얘기를 해달라고 하고, 드라큘라 게임을 하자고 하고, 출처불명의 괴기 만화를 가져와 몰래 보는 걸 좋아하고....

난 아이들과 달라서 공포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공포 영화는 절대 안 보고, 책은 영화보단 낫지만 그래도 별로다. 이 책도 아이가 말한 만큼의 재미는 없었다. 하지만 몇가지 끌리는 점이나 새로운 점은 있었다.

1. 게임중독 까칠 소년 장우는 여름방학 동안 동생과 함께 깊은 시골의 외할머니댁에 맡겨지게 된다. 요즘으로선 흔치 않은 일이다. 장우는 툴툴거렸지만 그래도 외할머니의 사랑은 잘 알기에 마지못해라도 시골에 갔는데.... 할머니의 낌새가 이상하다. 손자들이라면 뭐든지 베푸시던 그 따뜻한 할머니가 아니다. (여기서 독자는 느낀다. 할머니는 희생됐구나, 할머니를 해친 존재가 할머니의 두껍을 쓰고 있구나. 그건 누굴까.)

2. 인물들은 독자들보다 그 사실을 늦게 깨닫는다. (당연히 그래야 독자들의 속이 타지) 할머니와 옆집 소녀는 이들에게 의문점만 던져 주고, 여러 단서들을 가지고 아이들이 사태를 파악했을 때는 이미 늦었다.....

3. 이야기 중엔 기존 옛이야기의 화소를 변형한 내용들도 나온다. 사람의 손톱을 먹는 쥐 ,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나무, 우물 같은 것들....

4. 정체가 밝혀진 쥐는 "너희는 아마 다른 종, 특히 인간에게 멸시받는 존재로 산다는 게 얼마나 끔찍한지 상상도 못할거야. 우리를 거리로 몰아낸 것도 모자라 없애려고..... 매일 벌벌 떨며 사는 게 쥐들의 삶이라고...." 라며 형제에게 복수의 이유를 선포했지만 그리 와닿지는 않았다. 쥐의 말투가 좀 겉돌고 어색해서 아주 못하는 연기를 보는 느낌이기도 했다. 생명체들의 공존.... 아주 중요한 이야기이긴 한데 쥐라니 공감을 하기 힘든거다. 실제로 이 책을 읽으면 쥐에 대한 혐오감이 더 깊어지니 이 일을 어쩌지....ㅠ 어쨌든 주인공은 괴물을 무찌르고 할머니는 돌아온다. 안 그러면 안 되지.

5. 책표지를 보니 '검은달001' 이라고 되어있다. 시리즈 이름인데 공포이야기 시리즈가 아닐까? 검은달. 이름 잘 지었다.^^ 001이니 이제 첫 권인 것. 계속 나온다는 얘기구나. 우리반 그 녀석이 좋아하겠다. 아주 무섭고, 아주 재밌고, 문학성도 높은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 책은 내 마음을 사로잡지는 못했지만 무서운 거에 목마른 아이들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을 것 같다. 피 줄줄 괴기만화에 방치하는 것보다는 정성껏 쓴 작품을 권하는 게 백번 나은 일. 아참, 갑자기 생각났는데 공포동화 목록을 만들어 놨다가 진도 나가고 여유있는 어느 장마철, 밖에는 비가 퍼붓고(천둥도 치면 더 좋고) 으스스할 때 교실로 단체대출해 읽게 하면 어떨까? 책이라 불을 끄고 읽을 수는 없어 아쉽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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