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손잡고 갈래? 문지아이들 150
이인호 지음, 윤미숙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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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님의 책 두 권 중 나중에 나온 <팔씨름>을 작년에 먼저 읽었고, 첫 책을 오늘 읽음으로 완독을 한 셈이다. 독자마다 느낌과 취향이 다르겠지만 나는 이분의 작품이 아주 마음에 든다. 가볍지 않지만 한없이 무겁지도 않고, 유머가 있지만 경박하진 않고, 희망적이지만 고민도 있고. 새털같은 가벼움도 극단의 긴장도 싫어하는 나의 성향 때문인가. 이정도가 딱 좋아 라는 느낌. 물론 개인적인 느낌이다. 4편 모두 하나같이 어려운 상황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극적인 상황 반전도 없지만 그 안에서 자생력이 자라는 것을 엿보게되어 안심이 된다고 할까.

4편의 단편이 실려있다. 책의 제목을 담은 표제작은 없다. 말하자면 제목은 전체의 주제를 아우르는 셈이다. "우리, 손잡고 갈래?"

[계단]의 주인공 근호는 아빠 공장이 부도가 나서 달동네로 이사했다. 엘리베이터가 일상인 사회에서 '계단'은 내몰린 환경을 대표한다. 짐짓 아무렇지 않은듯 학교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걸 유지하기 위해선 거짓말을 밥먹듯 해야한다. 무너져버린 아빠의 모습은 근호를 더 비참하게 한다. 그곳에, 근호네보다 더 계단을 올라가야 하는 집에 나은이가 살고 있다. 느려터진 멍청이로 통하는 나은이에 대한 재발견. 근호네가 찾은 작고 소박한 희망.
(나은이가 내겐 너무 매력적. 실제로 보고싶다. 우리반에 있다면 더욱 좋을듯^^)

[3할 3푼 3리]에서 동주의 환경은 그리 나쁘지 않다. 야구에 푹 빠진 평범한 초딩이다. 어느날 앞집에 엄마 친구네가 이사왔다. 그집 아들 승재가 문제다. 공부벌레 책벌레. 말그대로 '엄친아'. 얘 때문에 동주의 팔자좋던 생활도 끝나고 방과후 시간은 학원들로 채워졌다. 승재를 보는 동주의 눈이 티꺼울 수밖에 없지 않겠나? 하지만 동주는 승재의 고통을 보고 말았다. 좁고 깊은 수렁에서 혼자 빠져나오긴 힘든 법이다. 고통의 신음도 잘 지르지 못하다가 곪고 썩은 후에야 폭발하게 된다. 그 직전에 동주를 만난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그리고 야구도.
(근데 작가님, 공 10개에서 3개를 치면 3할 아니에요? 3할 3푼 3리는 9개에서 3개를 쳤을 때의 타율이죠. 그게 거슬려서 몰입에 방해되었어요. 가능하면 고쳐주세요.^^;;;)

[내일의 할 일] 남매의 상황이 가장 아프다. 엄마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 이야기의 시작이니 말이다. 하지만 남은 이들은 살아야 한다. 엄마가 없어도 배는 고프고, 밥이 넘어가고, 그렇게 살아진다. 예전처럼 티격대면서도 서로에 대한 책임감을 더 느끼는 남매. 특히 남동생(서준)이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놓는 '내일의 할 일'에 나도 미소짓고 하늘에 계신 엄마도 활짝 웃을 듯하다.

마지막 [비밀번호]에서 지환이는 어릴적 입은 화상으로 큰 흉터가 남아있다. 그런게 약점이 되어 외톨이가 된다는게 참 슬프지만 우리 사회가 아직도 그렇다... 그런 지환이 앞에 불쑥 나타나 친구가 된 현택이. 하지만 평범하지 않은 현택이에겐 미심쩍은 면이 많은데.... 비밀번호와 관련된 일련의 사건들은 가슴이 두근거리는 긴장감을 주지만 동시에 가슴이 찡한 애틋함도 준다. 현택이의 상처는, 그럼에도 그 아이가 끝까지 지키려고 했던 것은.....

난 이 책이 딱 좋다고 했지만 그건 어쩌면 비겁한 취향인지도 모른다. 여기까지만 보겠어. 희망이 있는 데까지만. 인간성이 남아있는 데까지만. 다 잃지는 않은 사람들의 모습까지만. 하지만 세상에는 다 잃은 사람도, 갈데까지 간 사람도, 차마 입에 올릴 수도 없는 참혹한 일들도 많다는 사실을 알고있다. 그걸 부정하지는 않으면서 그래도 이런 책을 아이들과 같이 읽고 싶다. 아이들이 환경에 매몰되어 자신을 망가뜨리고 주변을 파괴하면서 행복을 포기하고 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손잡고 갈래?" 내미는 손도, 잡는 손도 용기가 필요하다. 아니 어느쪽이 먼저랄 것 없이 누구나 내밀고 잡아야 할 것이다. 그게 우리를 살릴 거라고 많은 이들이 힘주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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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동네에 혹등고래가 산다 키큰하늘 2
이혜령 지음, 전명진 그림 / 잇츠북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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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사와 심리묘사가 흥미진진해 한호흡으로 끝까지 읽게 되는 고학년 동화다. 도시 아이들에게는 약간 낯설게 느껴지는 어촌이 배경이고 진한 경상도 사투리에서 타지역 독자는 더욱 이질감을 느낄 수 있지만, 어딜가나 인간의 갈등은 비슷한가보다. 가족 안의 문제와 어려움. 그리고 친구 사이의 갈등. 그래서 이 책은 재미를 지나 성찰로 나아가기에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랑 단둘이 사는 도근이는 어릴때 엄마가 돌아가셨고 원양어선을 타고 멀리 나간 아빠를 기다린다. 객관적으로 시기를 받을 환경은 아니건만 찬영이는 도근이를 질투하며 마음의 몸살을 앓는다. 혹등고래를 알려준 아빠를 모험가라 자랑할 때, 누구보다 잠수를 잘하거나 그림을 잘 그리는 모습을 볼 때 찬영이의 마음은 부글부글 끓어오르다 보기싫게 꼬여버린다.

상황적으로는 엄마 아빠가 다 있고, (특히 엄마가 의식주를 살뜰히 챙겨주고) 운동도 잘하는 찬영이가 훨씬 나아보이는데도 찬영이는 질투를 한다. 아, 그런데 이해가 된다는 사실.... 꼬임은 각자 취약한 어디에선가 비롯된다. 그것이 부적 편향을 가져오고 미움과 분노를 낳는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이런 심리를 겪어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열등감과 질투, 그것에 대한 정당화와 포장. 내안에서도 평생 일어나던 작용들이다.

찬영이에게 그 꼬임은 아빠로부터 비롯되었다. 다리를 절고 좁은 구두수선부스가 세계인 아빠. 그런 아빠에 비해 비록 지금 옆에는 없지만 먼 바다를 누빈다는 도근이의 아빠는 너무나 커 보였다. 그래서 찬영이는 엄마가 전해주라는 반찬도 중간에 먹어버리고 미술시간에 물감도 빌려주지 않는 등 못난 짓을 한다. 행동으로만 보면 어찌나 찌질한지. 그러나 깊은 곳 그 꼬임을 따라가보면 마냥 혼낼 일만은 아니다. 하지만 찬영이는 그 근원을 감추고(아빠가 부끄러워 그런다는 말을 할 수도 없고 본인도 인정하기 싫은), 나타난 행동은 참 못났고, 그걸 보는 어른은 비난하게 되고, 아이의 행동은 더욱 못나지고 핑계는 다른 곳에서 찾고 대상에 대한 분노는 더욱 깊어지게 된다. 학교에서 많은 아이들이 이랬겠구나 싶다. 본인이 밝히지 않는 그 근원까지 봐준다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만 우리는 비난하지 않으며 원칙을 가르치고 본인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보도록 도와주는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찬영이의 마음이 누그러진 건 도근이의 불행 앞에서다. 유일한 가족이자 보호자이던 할머니의 병이 깊어지고 돌아가셨다. 할머니의 영정 앞에서 찬영이는 부끄러움을 느끼고 돌아선다. 아 정말 인간이란 실제로 이렇다. 남의 불행 앞에서 비로소 자신이 가진 것을 깨닫는 존재.... 게다가 돌아온 도근이 아빠와 관련된 엄청난 반전.... 이때 찬영이는 온 힘을 다해 도근이를 구하고 변호한다. 이정도만 해도 기특하고 훌륭하다. 하지만 열등감을 해소한 후에야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 우리 인간의 솔직한 모습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안되고 상대를 짓밟는 악질도 많으니 이정도에는 박수를 보내주자.

폭포수같은 감정의 분출을 겪었던 도근이도 아빠와의 새 삶을 잘 살아가겠다는 희망을 주며 이 책은 끝난다. 우정도 회복되는 해피엔딩. 적절하다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겠다. 분위기가 된다면 '찬영이'가 되어보았던 자기고백을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다. 직접적인 것이 부담스럽다면 등장인물 되어보기나 등장인물과 대화나누기로 자신 안에 있던 부끄러움을 인식하고 좀 더 멋진 모습으로 자신의 모습을 설정하는 기회가 될 수 있겠다.

문학의 가장 큰 의미는 '공감'과 '성찰'에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참 잘 쓰여진 책이다. 세상에 셀 수 없이 많은 문학이 존재하는데 아직도 더 쓰여져야 하는가? 그렇다. 수많은 인생만큼 수많은 이야기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너의 삶도 나의 삶도 모두 이야기다.

그러니까 잘 살자.(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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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멘티나는 빨간색을 좋아해 샘터어린이문고 57
크리스티나 보글라르 지음, 보흐단 부텐코 그림, 최성은 옮김 / 샘터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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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폴란드 작가의 동화는 처음 읽은 것 같다. 작가 이름도 처음 보는데 폴란드의 권위있는 문학상을 받은 인기 작가라 한다. 이 책은 따끈따끈한 신간이지만 쓰여진 건 거의 50년이나 되었다.(1970년작) 그러니 요즘 아이들의 정서와는 당연히 다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푹 빠져서 읽을지는 잘 모르겠다.(독서력과 취향에 좌우될 듯) 국내에 빨리 번역되었다면 나 어릴 때에 읽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만약에 그랬다면 무척 재미있게 읽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근데 이제 나도 늙었는지 세월에 따라 변해 버렸는지 그렇게 몰입해서 읽진 못했다. 그래도 꽤나 매력적인 면들이 많았다.

1. 여름방학을 맞아 '천사마을'이라는 시골 휴양지에 오게된 마렉, 아시아, 찐빵이 삼남매가 처음 등장하는 주인공이다. 돌봐주는 크림 아주머니가 있긴 하지만 아이들의 여름 생활은 거의 자유롭다. 요즘 아이들이 이런 상황에 처하면 어떨까? 그 널려진 시간을 감당할 수 있을까? TV도 컴퓨터도 휴대폰도 없는데?^^
부모들은, 학원도 없는 이 텅 빈 시공간 속에 아이들을 보낼 수 있을까? 돌봄자(이 책에선 크림 아주머니)는 막중한 안전의 책임을 무릅쓰고 아이들을 맡을 수 있을까? 무릎만 까져도 잡아먹을 듯 달려드는 요즘 시대라면? 그래서 오히려 이 책의 배경은 무척 매력적이다.^^

2. 동화 치고는 꽤 두꺼운 이 책은 단 하룻밤의 이야기만을 다루고 있다. 빨간색을 좋아한다는 '클레멘타인'의 실종과 추적. 가장 먼저 뛰어든 마렉 삼남매. 뒤이어 뛰어든 볼렉, 올렉 형제, 경찰인 아빠의 전화를 엿듣고 혼자(개와 함께) 나선 볼렉, 그리고 마을 경찰, 읍내 경찰, 기자 등등 많은 이들의 정보와 단서와 길은 번번히 어긋나기만 하고..... 결국 마지막 장에 가서야 퍼즐이 맞춰지며 모든 상황이 이해된다. 이 상황을 따라가는 독자들의 궁금증과 조바심이 흥미의 관건. (아 그래서 나도 이 책만은 스포를 조심함.ㅎㅎ)

3. 한밤중 숲속 실종. 이 상황에 가장 큰 난관은 갑자기 몰아닥친 폭풍우였다. 자연 속에서 밤과 낮이 얼마나 다른지 난 경험해 보았다. 거기다 폭풍우라니!! 그 밤에 내던져진 아이들. 아이구, 뉴스에 나올 일이다. 그 폭풍우 속 묘사가 아주 실감난다. 물론 현실이라면 생명의 위협일테지만 동화라서 그런 느낌은 부각되지 않음.

4. 현실에선 아이들을 위협하는 일 투성이고 모험은 커녕 조금의 방심도 용납이 안되는 게 요즘 세상이다. 아이들이 이 책을 읽으며 모험과 자유와 해방감을 간접경험이라도 하면 어떨까 생각해본다. 또 이 책을 매일 한 장씩(총 12장) 읽어주면 어떨까도. (스포 금지가 관건이니 책은 나만 갖고 있는다.) 아이들이 다음 장을 궁금해하고 클레멘티나 찾기를 함께 응원한다면 성공일텐데, 어떨지는....^^;;;;

5. 아이들도 따라그릴 수 있을 것 같은 그림작가 보흐단 부텐코의 단순한 그림체가 인상적이었다. 이 작가 그림의 특징이며 책에 상당한 영향을 주는 그림작가라 한다. 표지도 빨강, 삽화도 빨강으로만 되어 있어 책의 제목과 내용을 더욱 의미심장하게 만들어준다.

6. 개인적으로 비슷한 시대 같은 유럽의 작가이고 같은 추리적 기법을 사용했지만 린드그렌의 <소년탐정 칼레>처럼 재미있고 몰입되지는 않았다. 내겐 낯선 작가라 그럴수도. 어차피 요즘 아이들에겐 린드그렌이 먹히지 않는다고 슬퍼하던 중이니 이 책으로 도전해 보는 것도.... 아울러 다양한 나라의 다양한 명작들이 많이 번역되어 소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밝혀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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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마리아 칼라스>

더숲 상영 시간표를 보다가 이 영화를 골랐다. 난 음악에 재능이 없지만 음악영화는 좋아한다. 그리고 세기의 디바라는 마리아 칼라스의 음악과 일생이 궁금했다.

1. 인간의 목소리로 그런 고음을 그렇게 아름답게 낼 수 있다는 게 경이롭다. 전에 지휘자 선생님이 "내가 힘들면 듣는 사람이 편하다" 이런 뜻의 말씀을 하셨는데 관중의 귀에 편안한 고음을 내는 성악가의 몸은 호흡유지에 엄청난 힘을 쏟고 있는 것이다.(물론 프로들은 그런게 표시나지 않지만) 한 곡도 어려운데 수많은 관중의 주목을 받으며 긴 시간 연주해야 하는 공연은 성악가들에게 얼마나 큰 부담일까. 인생후반에 쇠약해진 그녀는 무대에 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노래는 목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었다. 예술(특히 성악)을 한다는 건 엄청난 자기관리다. 잘은 모르지만 조수미 씨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2. 그녀는 마리아(인간,여자)와 칼라스(공연자) 두 사람으로 살아가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이야기했다. 칼라스로서의 삶은 최고에 올랐지만 마리아로서의 삶은 행복하지 못했던 것 같다. 자신을 환호하는 관중 속에서도 그녀는 외로웠던 것 같다. 환호하는 저 많은 사람들도 공연이 끝나면 자신의 가족 곁으로 돌아갈 뿐 지친 그녀의 옆에 있어줄 사람들은 아니니까.... 문득 그녀의 외로움이 이해되었다. 그녀의 옆에는 늘 개가 있었다.(우리집 개처럼 쫄랑거리는 푸들이라 내 눈에 확 들어옴) 개의 존재가 내겐 그녀의 외로움의 표상으로 느껴졌다. 사랑도 하고 싶고 아이도 낳고 싶다고 했던 칼라스는 결혼도, 뒤늦게 찾아온 사랑도 다 상처로만 남았다.

3. 특출한 재능은 축복일까? 물론 그렇다. 하지만 본인 입장에서는 힘겨운 운명일수도 있겠다. 세기에 한명이라는 재능. 그것도 전세계에서. 얼마나 대단한가? 근데 그 재능을 나에게 주겠다면... 생각좀 해봐야 되겠다. 평범한 행복. 비범한 외로움. 뭘 선택해야 할지 말이다. (물론 평범해도 외롭다.^^;;; 하지만 외로움의 차원이 다르지 않을까.)

4. 이 세기의 소프라노 역할을 누가 맡았을까? 했는데 다큐영화였다. 오래된 자료영상만 가지고 한 인생을 조명하는 음악영화를 만들다니 그것도 대단하다.

그녀는 외로움과 불안, 우울 속에서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의 음악은 아직도 우리 곁에 있고 여전히 경이롭다. 그리고 그 재능을 조금이라도 얻을 수 있다면 그녀의 식탁에서 떨어진 빵부스러기라도 주워먹겠다는 지망생들이 줄을 섰을 것이다. 나야 뭐 그런 것조차 아니고 그래도 평생 득음은 한번 해봤으면 하는 소망이 있는데... 동학년 언니가 "나 올해 애들한테 소리지르다가 득음했잖아." 하셨는데 난 27년을 소리질러도 득음의 문턱에도 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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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선생 거선생 사계절 그림책
박정섭 지음, 이육남 그림 / 사계절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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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모로 특이하고 새로운 그림책이다. 일단 토끼와 거북 그 뒷이야기라는 점.... 자체는 새로운 게 아니겠지? 그 이야기의 변형은 이미 많이 나왔으니까.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단연코 새롭다.^^ 그리고 채색이 전혀 없는 백묘화라는 점. 그 그림들이 곳곳에서 김홍도의 풍속화를 연상시킨다는 점 등이 특이하다.

글투도 아이들 대상이라기엔 투박하고 구성지다.
"토끼가 시건방 떨다 그만
거북이한테 진 이야기는 다들 한번쯤 들어봤지?
그 뒷이야기가 쬐끔 재미지다고 하던데
어디 들어볼 텐가?"

이런 식이다.

토선생은 피하고 싶어하는 거선생을 계속 집적거린다. 물론 재경주를 하고 싶어서지. 그렇게 집요하게 쫓아다니다 결국 거선생의 등딱지를 토선생이 짊어지고 경주가 시작된다. 토선생은 등딱지가 무거워 힘들고 거선생은 추워서 덜덜 떨며 재채기를 한다. 등딱지를 돌려달라는 거선생의 애원을 뿌리치고 달려나가던 토선생은 뜻밖의 구덩이에 빠져버렸다. 거선생의 도움으로 구사일생 빠져나오지만.... 이미 둘 다 혼수상태다.

판소리가 관중과 함께 만들어가는 양방향 소통의 공연이듯이, 이 책도 등장인물들이 작가와 독자들에게 말을 건다.
"작가 양반 독자 양반, 우리 좀 살려 주시게.
우리가 죽으면 이 이야기도 끝이란 말이오."

이어서 떨어지는 빗발과 함께 관중(아니 독자)들의 소리가 쏟아진다.
- 그러게 왜 또 경주를 하자고 했나?
- 이미 답은 토선생이 쥐고 있지 않은가?

독자들의 소리에 정신이 든 토선생은 아직 혼미한 거선생을 등껍질에 태우고(등껍질은 여기에서 참 많은 역할을 한다) 날아올랐다고 해야하나, 튀어나갔다고 해야 하나, 책의 경계까지 부수고 탈출한 그들은 어디까지 가는 걸까? 열린 결말을 넘어선 '탈출한 결말'은 독자에게 어디까지의 상상을 가능케 할까?^^

등껍질에 올라타는 모습이 내겐 봅슬레이에 올라타는 오랜 동지의 모습으로 보여서, 앞으로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지 또다른 무수한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까지 이들은 승부를 다투는 경쟁자일 뿐이었지만, 이 책의 이야기를 겪고 나니 이제 더이상 경주는 무의미해졌다. 이 책의 뒷이야기를 또 쓴다면 더이상 경주는 안 나오지 않을까.^^

사실 이 책을 신청하면서 컬러링에 욕심이 났었다. 복사해서 반 아이들이 한장씩 색칠하고 묶어서 새 책을 만들어도 재미있겠다 하는. 그럭저럭 좋아하는 활동이 될 것 같긴 한데, 그보다도 튀어나간 주인공들은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하고 이야기 나눠보는 활동들이 더 재미날 것 같다. 그리고 컬러링을 하더라도 이 책의 바탕이 된 풍속화, 산수화 등을 감상하고 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따라서 중학년이나 고학년 활동으로도 가능하겠다.

재미있는 생각들이 샘솟게 해주는 책은 일단 좋은 책이라고 본다. 작가의 상상력이 전제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산만하다는 말을 듣고 살았지만 상상력의 크기가 '산만'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고 한다. 부럽다...ㅎㅎ 작가의 상상력에 빌붙어 이 책을 아이들과 재미나게 나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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