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어린이가 100명이라면 - 2021 독일청소년문학상 논픽션 부문 수상작
크리스토프 드뢰서 지음, 노라 코에넨베르크 그림, 강민경 옮김 / 청어람미디어(청어람아이)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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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가 100명의 마을이라면> 이라는 책이 나온지 꽤 되었다. 꾸준히 읽히고 있고 활용이나 인용도 많이 되고 있는 줄로 안다. 이번에는 어린이만 대상으로 한 이런 책이 나왔다.

전 세계 어린이의 인구는 20억이라고 한다. 상상이 안되는 큰 숫자다. 그래서 감을 잡기 편하도록 100명으로 줄여 여러가지 통계적 비율들을 보여준다. 100명이라는 단순한 숫자 속에는 여러 사람의 자료 조사와 복잡한 계산이 들어 있는 것이다. 이 비율의 개념은 저학년은 잘 이해하지 못할 것 같다. 그래도 원 숫자로 생각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큰 숫자 자체가 아이들의 사고를 넘어서니까.

30여쪽의 그림책 분량인 <지구가 100명...>에 비해 이 책은 100쪽이나 된다. 각 꼭지마다 꽤 자세한 설명이 붙어있다. 어떤 설명들은 꽤 흥미롭기도 하고 저자의 시각에서 본 해석이 들어있기도 하다.

대한민국에 대한 설명이 강조된 부분이 있는데 이건 번역 과정에서 추가된 것이겠지? 예를 들면 "게다가 더 놀라운 점은 어린이 100명 중 대한민국에서 온 어린이는 단 한 명이라는 사실이랍니다."(7쪽) "한국은 전쟁의 아픔을 겪은 나라예요. 어르신 중에도 지난 전쟁을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거예요."(28쪽) 같은 부분이다.

그림이 많지는 않지만 지도 위에 표현된 아이들 그림이 그대로 그림그래프의 역할을 해서 가시적인 효과를 주는 점이 좋다. [우리가 사는 곳]에서는 세계지도 위에 대륙별로 아이들 그림을 그려놓았는데 한눈에 보아도 아시아에 가장 많고 다음은 아프리카, 그리고 유럽, 아메리카, 오세아니아는 밀도가 낮은 것을 파악할 수 있다. [5명은 레고를 가지고 놀아요]에 나오는 지도가 내겐 인상적이었는데, 어린이 숫자와 그들이 1년간 받은 장난감 숫자가 대비되어 그려져 있다. 아프리카는 어린이 25에 장난감 10인데 비해 북아메리카는 어린이 4에 장난감 101이다. 지구상의 불평등을 아이들 눈높이로 이해하기에 아주 효과적인 자료가 아닐까 싶다. 저자가 덧붙인 이런 말도 신뢰가 갔다. "장난감이 많다고 해서 놀이시간이 길거나 더 행복한 건 아니에요. 여러분의 방에도 몇 년 동안이나 사용하지 않은 장난감이 있지 않나요? 과학자가 3살 이하 어린이에게 장난감을 4개 또는 16개 주는 실험을 진행했어요. 그 결과 장난감을 4개 이하로 받은 어린이가 더 오래, 그리고 더 창의적으로 장난감을 가지고 놀았답니다."

<지구가 100명...>책을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설명이 추가된 책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고 뒤에 나온 책에 대한 기대가 더 높아지기 마련이어서인지도 모르겠다. 5명은 길거리에서 살아요, 16명은 신발이 없어요, 54명은 유치원이나 학교에 가요(즉 46명은 못가요) 등을 보며 이야, 나는 정말 좋은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거구나 행복한 줄 알아야겠다 말고 더 할 수 있는 생각이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끝에서 두번째 꼭지는 [세상은 어떻게 바뀌었나요?]이다. 여기선 세상 어린이들의 삶을 개선하기 위한 그간의 노력과 실제로 개선된 수치를 간단하게나마 보여준다. 이를 통해 지금의 어려움은 개선의 필요를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모두의 관심과 실천이 있어야 함을 아이들이 알게 된다면 좋겠다. 관심은 보고 아는 데서 출발하는 것이니 아이들이 이 책을 읽는 것은 그만큼 의미가 있겠지.

마지막 꼭지 [이 숫자는 어떻게 알 수 있나요?]에서는 "솔직히 말할게요. 이 숫자가 매우 정확한 것은 아니에요. 그 누구도 명확히 알 수 없지요." 라는 저자의 고백을 볼 수 있다.^^ 당연한 것이다. 내용에 따라서 비교적 정확한 통계치를 얻을 수도 있고 접근하기 어려운 주제도 있다. 그런 설명이 오히려 내용의 신뢰도를 높여주었다. [5명은 장애를 가졌어요]라는 꼭지에서 "이 숫자는 곧 잊어버리는 편이 좋아요. 확실한 정보가 아니기 때문이에요."라고 되어 있어서 '뭐냐... 그럼 왜 다루지...'라는 생각을 첫눈에 했지만, 더 읽어보니 고개를 끄덕일만한 내용이었다. 궁극적으로는 장애인 비장애인 구분이 무의미하다. "이렇게 각기 다른 어린이들을 그저 장애 어린이라는 단어 하나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일인지 알았겠지요?"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이 가능한 한 많이 배우고 자신의 재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동등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는 점이에요." 이처럼 이 책에는 저자의 주관이 확실히 드러난 해석이 많이 들어가 있다.

가벼운 얘기로 마치자면, 이 책에 100명이 모두 해당하는 주제가 딱 한 가지 나온다. 그것은 음악에 관련된 내용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름대로 음악을 즐길 수 있다. 정말 음악은 신이 주신 선물, 공짜로 받는 선물이 맞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난 어릴 때 악기를 배우지 못했나 한탄하다가도 그저 노래를 듣고 부르는 일이 즐거운 나처럼. 아이들도 여기 나온 많은 주제들 중 자신에게 다가오는 주제가 있을 것이다. 그것이 아이들의 생각과 마음을 넓혀주는 일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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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세탁소 독깨비 (책콩 어린이) 57
김진 지음, 이창우 그림 / 책과콩나무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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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담임이라 수준에 맞는 얇은 책을 집어들어 무심코 읽었는데 오호~ 이건 얇다뿐이지 저학년용이 아니었다. 100쪽 남짓에 여섯편이 담겼으니 각 편도 아주 짧은데, 짧으면서 심오하다 해야 하나. 물론 저학년도 재미있게 읽을수는 있겠지만 이야기를 나누려면 중학년 이상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 짧은 건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읽어주고 활동하기에 시간제약이 없어서 좋으니.

무엇보다도 내용이 좋다. 재미도 물론 있다. 표제작인 <그림자 세탁소>는 발상이 좋을 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현실인식에 같이 한숨을 쉬게 됐다. '나'의 그림자가 어느날부터 말썽이다. 제대로 붙어있지 않고 덜렁거리고, 그림자 주제에 주인을 따라 하지 않고, 심지어 달아나기까지.... 그림자 세탁소집 아들인 태성이는 이렇게 말한다. "네 그림자, 그동안 지친 거야."

'그림자'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부터 많은 이야기가 나올 것 같다. 그림자를 자신의 내면, 드러나지 않은 무의식의 소망이라 본다면, 부모의 기대에 맞추어 학원을 전전하며 살아가는 '나'의 그림자가 어느날 창가에 붙어 운동장을 바라본다든가, 침대에 뻗어버린다든가 하는 사건들이 이해가 된다. 교육=입시로 전락해버린 세상에서, 상위권대학이라는 좁은 문을 뚫는 방법이 문제풀이 밖에 없게 된 세상에서, 조금이라도 일찍 학원의 수레바퀴에 밀어넣는 게 경쟁력이라고 믿는 부모 밑에서 아이들의 '그림자'는 이토록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두번째 작품 <오! 해피 봉순>에선 두 이름 한 강아지가 나온다. 오현준이가 주워서 아빠 몰래 키우던 강아지 해피를 학교에 데려왔는데, 그게 봉선혜가 잃어버린 강아지 봉순이라는 것이다. 이리저리 주인이 바뀌는 강아지보다 더 기구한 건 현준이다. 엄마가 나가버린 집에서 아빠랑 살다가 이제 엄마를 따라 이사가야 하는 현준이. 마지막으로 해피를 보러간 현준이와 배웅하는 봉선혜가 신파를 찍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렇게 쿨하게 잘 살어! 어른들은 별로 도움이 안될 때가 많어! 그래도 너무 기죽지 말고!

<초딩 결혼식>은 유머 속에 풍자가 빛난다. 이모 결혼준비를 지켜보는 유정이는 소꿉친구 은호와의 결혼을 꿈꾼다. 나는 이런 쪽으로 너무 앞서나가는 아이들이 별론데, 유정이는 귀엽고 이뻤다. 은호도 그대로만 자라면 아주 멋진 신랑이 될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주변에는 한남적인 특성을 가진 진호오빠가 있고, 아직도 구습에 젖어있는 이 사회의 결혼문화가 있다. 그 전복이 꿈꾸어지는 왠지 희망찬 이야기.^^

<슈퍼 울트라 우유맨>을 읽고 몸서리쳤다. 우유라면 나도 진절머리가 난다. "먹기 싫으면 우유 끊으면 된다. 억지로 먹으라는 게 아니다." 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끊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 아이들을 어째야 하나? 우유급식 중지 청원 올라온 것 보고 서명했다. (교사가 올린 청원 아니었음) 이 책에선 뚱뚱하고 무시당하는 지웅이가 우유 싫어하는 친구 우유를 먹어준다. 물론 원해서가 아니다. 그러다 어느날 폭발한 우유. 아 몸서리쳐진다. 어쨌든 지웅이가 이제 우유를 안먹는다니 다행이다. 아, 왜 나까지 우유에 원수를 졌지.... 먹고 싶은 사람만 적당히 먹을 일이다. 그리고, 순한 사람 함부로 건드리지 마라!

<고맙습니다 편지>는 가장 따뜻한 이야기다. 친구를 놀리다 선생님한테 걸린 채주는 편지쓰기 숙제를 받는데.... 선생님이 가르쳐준 방법에 난 무릎을 쳤다. "겉모습만 보지 말고 그 사람의 행동을 관찰해봐." 사실 몰랐던 방법은 아니고 나도 '오늘의 친구 관찰하기, 칭찬이불 덮어주기' 등 활동을 해봤지만 지속적이지 못했다. 이게 쉬운 일은 아니라는 뜻. 그래도 이 책의 채주는 잘 실천했고, 채주에게도 대상에게도 행복한 변화가 찾아온다. 나도 다시 해볼 때는 이 이야기를 읽어주고 해야겠다.^^

<누나 껌딱지>는 오카 슈조의 <우리 누나>가 생각나는 작품이었다. 지적장애가 있는 누나는 승건이가 챙겨줘야 하는 존재다. 껌을 너무 좋아하고 아무데나 껌을 뱉어 원성을 산다. 현실의 어려움에 비해 갈등해결이 쉽고 밝다고 느껴지지만 현실이 그렇기를 빌면서.... 이것도 따뜻한 작품이었다.

작가의 첫 책이라고 하는데 각 작품마다 녹아있는 다양한 주제들에 작가의 내공이 느껴졌다. "이 책이 누군가의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작가의 바람은 충분히 이뤄질 것 같다. 기회가 있으면 아이들과 함께 읽어보고 싶다. 이야깃거리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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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바로섬 법을 배웁니다 - 2020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2020 한국학교사서협회 추천도서, 2019 소년한국 우수어린이도서 천개의 지식 9
안소연 지음, 임광희 그림, 소재용 감수 / 천개의바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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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섬시리즈가 유용해서 맘에 든다. 여기는 따로섬 경제를 배웁니다책을 4학년 경제단원을 배울 때 아이들과 함께 읽었는데 중학년 정도의 아이들을 위한 입문서로 아주 적당했고 아이들도 재미있어했다. 이 책도 비슷한 역할을 할 것 같다. 분야는 이다.

 

시리즈의 일관성을 위해서인지 잘 모르겠지만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다시 나온다. 이 점도 좋은 것 같다. 이전 책에서 봤던 인물이 다시 나오면 아이들은 반가워한다.^^

 

10장에 걸쳐 법에 대한 기본적인 내용을 다루는데, 1장에서 법의 필요성을 다룬 것은 아주 당연하다고 본다. 법의 발생에 대한 이야기도 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선 주민들 사이에(까까 군과 반짝 아가씨) 분쟁이 발생했고, 점점 많은 사람들 사이에 분쟁이 생기게 된다. 큰뜻 할아버지를 찾은 주민들은 이런 결론에 이른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고 있지만, 각자의 입장이 다르고, 각자의 이익도 다르다보니 이런 다툼이 생기는 것이랍니다.”

이제 바로섬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을 정할 때가 된 것 같네요.”

 

2장은 <법을 만들어요> 법의 제정을 다룬다. 최고법인 헌법 아래 법률, 명령, 규칙과 조례가 있으며 그것들을 누가 만들거나 고치는지도 알 수 있게 간단한 도표로 정리도 되어 있다.

 

3장은 <힘을 나누어요> 삼권분립에 대해 다룬다. 바닷가 주민들의 고충을 해결하기 위해 방파제법을 만드는 과정, 그 가운데 권리를 침해받는 도끼 씨에 대한 재판과 판결 등을 통해 입법부, 행정부, 사법부의 역할을 알 수 있도록 이야기를 구성했다.

 

4<다툼을 해결하는 순서가 있어요>에서는 방앗간을 하는 곰곰 할머니와 버터 아저씨 사이에 발생한 분쟁을 해결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과정을 통해 재판은 최후의 수단이고 그 전에 협상, 조정, 중재의 과정이 있음을 알 수 있다.

 

5<개인의 다툼을 해결해요>에서는 민사재판, 6<법으로 범죄를 심판해요>에서는 형사재판을 다룬다. 예전에 6학년 사회 수업을 하면서 이 두 과정을 모의재판으로 진행해 본 적이 있는데 두 재판의 차이를 이 내용으로 설명하면 아주 쉬울 것 같다. 아울러 이 책의 내용이나 비슷한 내용으로 재판 시나리오를 써서 수업을 하는 것도 재미있겠다.

 

7<법으로 소비자를 보호해요>에서는 게임기를 산 꼬불이 이야기를 통해 소비자기본법에 대해 알려주고, 8<헌법과 관련된 다툼을 해결해요>에서는 헌법재판을 다룬다. 헌법재판소의 역할에 대해서는 나도 몰랐던 내용들이 있었다. 9<국민이 재판에 참여해요>는 국민참여재판에 대한 내용이다. 아이들도 TV에서 배심원들이 나오는 장면을 봤을 것 같은데, 이 책을 보면 그게 어떤 과정인지 잘 알 수 있겠다. 배심원들의 의견은 판사의 판결에 영향을 줄 수는 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도.

 

마지막 10<누구나 행복할 권리가 있어요>는 인권에 대한 내용이다. 이또한 마지막 장으로서 적당한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인권을 본격적으로 다룬다면 한 장은커녕 두꺼운 책 한 권으로도 부족하겠지만, 법을 다루는 책에서 마지막 장을 인권이라는 주제로 할당한 것은 법의 존재 의미가 인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는 지향점을 제시한다는 데서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쉬운 사례들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이라는 크고 무거운 주제를 부담없이 받아들이게 만든 이 책이 아주 유용해 보인다. 해당 내용의 수업을 할 때 함께 읽어도 좋고 주제에 따라 에피소드별로 읽어주어도 좋을 것 같다. 잘 기억해 두었다가 활용하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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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통 요정 그림책이 참 좋아 62
안녕달 지음 / 책읽는곰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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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속의 환경은 나와 비슷하되 추구하는 건 완전 반대다. 음 그렇다. 난 치우지 못한 물건들에 파묻혀 살면서 그것들을 외면한다. 언젠간 저것들을 싸그리 갖다 버리고 콘도같은 집에서 살아보겠다고... 추억 따위 구질구질한 건 개나 주라고 말이다. 그 지향을 바꿀 생각은 없다. 언젠가 동료분이 자긴 옷 버리는 쾌감을 좋아한다며, 가끔 아~ 그거 지금 있으면 좋을텐데 아쉬울 때도 있지만 옷장이 헐렁한 그 쾌감이 훨씬 크다고 하신 말씀에 매우 공감한 후, 당장 옷장을 뒤져 한보따리 버린 적도 있다. 역시 버리는 쾌감은 좋았다. 아직 표도 나지 않지만. 난 아직 목마르다. 더 버릴거야. 집안 구석구석 박혀있는, 없어도 사는데 지장없는 온갖 것들을 버리고 말거야!

그렇게 버려진 것들이 쑤셔박힌 골목의 쓰레기통에서 요정은 짜-잔! 하고 세상 발랄한 모습으로 튀어올랐다. 엄청나게 큰 알이 박힌 장난감반지를 머리에 쓰고 외친다. "소원을 들어 드려요!"

참으로 겁도 없다. 남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자 그 누구란 말인가? 사람들은 그 희망의 메시지에 제대로 답하지 않고 꺄악 소리나 질러댄다. 한 남자는 겨우 이렇게 말했다. "하아.... 하늘에서 돈이나 떨어졌으면 좋겠다." 요정은 십원짜리들을 긁어모아 뿌려줬으나 남자에게 기쁨을 주진 못했다. 점점 풀죽어가다 마침내 훌쩍이는 요정의 표정이 애처롭다.

하지만 요정은 진짜로 어떤 이들에겐 '소원을 들어' 주었다. 아끼던 애착인형을 엄마가 버렸다며 우는 아이, "우리집 할머니가 좋아할 만한 게 있을까?" 하시는 할아버지. 쓰레기통에서 사는 요정도 이들에겐 웃음과 힘이 되었다. 장난감 반지를 아낌없이 벗어준 요정. 그걸 소중히 들고 가 할머니의 손가락에 끼워준 할아버지. 그 투박하고 거친 두 노인의 손.
"결혼하는 거야?"
"그래. 결혼하는 거야."
"아.... 곱네."
할머니는 치매이신 것 같기도 하고 거동이 불편하신 것 같기도 하다. 냉기가 썰렁해 보이는 단칸방에 쓰레기통 요정이 보낸 따스한 빛이 감돈다.

쓰레기통 요정과 이웃들을 어느 구석엔가 품은 이 도시는 그렇게 무심히 저물고 또 밝아온다. 오늘도 요정은 새롭게 쏟아지는 버려진 것들 속에서 "소원을 들어 드려요!"를 해맑게 외치고 있다.

'소원'이란 게 참 그렇다. 그것으로 그 사람을 조금은 가늠할 수 있게 된다. 그의 최고 가치가 가족인지, 돈인지, 성공인지.... 독후활동을 하다 이런 내용이 나와서 보면 아이들의 답변도 가지각색이다. 물건이 간절한 아이, 자유가 간절한 아이, 관계가 간절한 아이, 그저 욕심이 많은 아이....

어른도 비슷하다. 그런데 죽음에 가까울수록, 유한성을 체감할수록 소원은 작고 소박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할아버지의 장난감 반지처럼.... 어린아이는 이와는 다르지만 순수함에서 뭔가 통하는 게 있을 듯하다.

난 아직 죽을 때가 멀었는지 가끔 조금씩은 속이 시끄럽다. 아직도 소중한 것을 쥐지 못한 느낌이고 왜 남들만큼의 능력이 없나, 난 왜 더 가열차게 살지 못하나 자책하기도 한다. 요정이 내게 묻는다면 대답할 말을 찾기 힘들겠다. 더구나 쓰레기 더미 속에서 말이다. "다 버리고 내집에서 손님처럼 사는게 소원이야." 라고 말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이 책 속엔 다양한 아이디어가 가득이어서 이리저리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책껍데기가 반투명 트레이싱페이퍼로 되어있는데 표지엔 온갖 쓰레기들이 그려져있다. 말하자면 책 한 권이 쓰레기봉투인 셈이다. 작가는 소중한 것의 소박함을 이렇게나 극단적인 표현으로 그려냈다.ㅎㅎ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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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 독보적 유튜버 박막례와 천재 PD 손녀 김유라의 말도 안 되게 뒤집힌 신나는 인생!
박막례.김유라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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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 / 위즈덤하우스>

하룻저녁에 책 한권 읽기 요즘은 힘든데 이 책은 그냥 드라마보듯 읽어졌다. 독서력 그런거 필요없다. 공감력만 있으면 됨?ㅎㅎ 아니다, 공감도 그냥 된다. 할머니 워낙 솔직하셔서.

난 이분이 어떻게 유명해졌는지, 얼마나 유명한지 사실 잘 몰랐다. 무슨 인공지능 가전과 입씨름하시는 광고를 보고 첨 알았고 욕쟁이 할머니신가 했는데 유명한 유튜버시라는 거다. 그러고보니 유튜브에서 눈에 띄었다. 내가 구독이나 좋아요를 누르는 유튜브 애용자가 아니라서 그냥 지나가는 요리 영상만 몇 개 보았다. 비빔국수 해드시는 영상 그런거.

책을 읽어보니 시작은 여행 동영상이었다. (주 동영상이기도 하다) 손녀딸과 함께 한 둘만의 여행에서 가족 공유 겸 시험삼아 올린 영상들이 어느날 대박을 쳤고 손녀딸은 그길로 PD겸 촬영감독으로 나섰다. 그 끝은 과연 어디인가? 알 수 없지만 지금도 신나게 진행중인 것은 분명하다.

할머니의 인생 전반부까지, 아니 후반부 직전까지는 불운의 연속이었다. 먹고살만한 집에서 태어났지만 딸이라는 이유로 공부 한 자 못하고 부엌데기로만 살았다. 그러다 스무 살에 떠밀리듯 시집을 갔다. 그걸 "인생 조졌다."고 호탕(?)하게 말씀하시는 할머니. 무슨 그런 남자가 있는지, (아니다, 그런 놈이 쌔고 쌨지) 할머니는 남편 덕이란 1도 못보고 평생을 사셨다. 이젠 이세상 사람도 아닌 분이지만 미련없이 거침없이 욕을 날리는 할머니. 어차피 행복은 할머니 혼자서 찾아왔으니까.

생활전선에서 치열하게 사느라 몸고생 마음고생으로 점철된 할머니의 삶. 그런데 인생 칠십부터 시작된 할머니의 신나는 인생은 독자들의 마음에도 살랑살랑 바람을 불어준다. 누가 어느날 대박나고 너무 잘 나가면 좀 배가 아파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근데 배가 하나도 안 아프다. 이유가 뭘까? 난 70 되려면 아직도 한참 남아서?ㅎㅎㅎ

근데 착각은 금물이야. 내가 70이 된들 그런 대박이 터질 리는 없잖아. 할머니의 대박엔 나름 이유가 있다고. 로또지만 로또만은 아닌.

첫째는 할머니의 성품이다. 흥이 많고, 사람 좋아하고, 주눅들지 않고, 솔직하고, 배우기 좋아하고 적극적이고. 거기다 입담과 유머까지. 이정도면 출중한 자기 재능인 거지. 거기다 보는 것마다 감탄하는 호기심과 새로운 것을 즐기는 도전의식까지. 유라 씨의 글에도 그런 말이 나온다.
"하고 싶은 게 참 많은 우리 할머니는 못하는 게 많아서 슬픈 사람이다. 자전거를 못 타서인지 자전거만 보면 달려가서 사진을 찍고, 영어를 못하고 배운 게 없다고 서러워한다. 그렇지만 그런 마음이 있기에 할머니는 지금 연세에도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고 믿는다." (276쪽)

둘째는 손녀 유라 씨의 기획력이다. 가만 보니 그녀는 보통이 아니다. 컨셉을 짜고 그걸 표현해내고 어필까지 하는데 아주 출중한 실력자다. 어디서 일하든 부각될 것 같은 사람. 유라 씨의 실력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폭발적인 행보를 이어가진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내 인생 가장 큰 즐거움은 성취감이다. 목표를 하나 세우면 그걸 깨 가는 과정을 마치 게임하듯 살고 있는 것이다." (313쪽)

그런 콜라보를 만나는 것이 인생의 행운인 것이지. 할머니는 사람이라는 콘텐츠를. 손녀는 그것을 구현해낼 기술을. 그 콜라보가 가져온 인생역전 드라마에 우린 모두 유쾌한 박수를 보낸다. 나는 비록 천하없어도 내 얼굴을 유튜브에 올리는 일 같은 건 하지 않을 거고 장래에 유라 씨같은 손녀가 생길지 알 수도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신나는 인생의 길이 하나는 아닐 테니까. 막례쓰가 파버렸다고 샘이 말라버리진 않을테니까. 오히려 길으면 길을수록 우물에선 맑은 물이 솟아오를 테니까. 자주 쓰는 말로 <마중물>

막례쓰 선생님! 아니 막례쓰 언니!!ㅎㅎ 우리의 마중물이 되어줘요. 대박은 그만 쳐도 돼. 창작의 고통도 괴로운 거니까. 부디 즐겁게만 살아주세요. 우린 그 모습을 보며 희망을 가질테니. 물론 인생에 즐거움만 있을 수 없다는 건 언니도 우리도 모두 알고는 있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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