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난 사회 선생님의 수상한 미래 수업 - 내리막길을 거슬러 살아남을 10대를 위한 필수 지침서! 우리학교 사회 읽는 시간
권재원 지음 / 우리학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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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수업, 4차산업 이런 말을 들으면 마음에 그늘이 드리운다. 미래에 대한 전망이 밝지 않다는게 첫번째 이유고 두번째는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할 나에 대한 두려움이다. 디지털 보다는 아날로그적 활동을 좋아하고 신기술에 적응력이 떨어지는 내가 향후 약 10년간 아이들을 더 가르치려면 뭘 배워야 하는가?

청소년을 주독자로 설정한 이 책을 골라든 것은 그래서였다. 물론 페이스북과 전작들을 통해 접해본 저자의 통찰에 대한 신뢰 때문이기도 했다. 나는 솔직히 세상이 어찌 돌아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시사에도 어둡고(얼마전 그나마 보던 신문까지 끊었고...^^;;;) 독서는 아이들책에 집중되어 있어서 지식도 부족하다. 그래서 자타칭 천재인 저자의 눈을 빌어 미래를 한 번 내다보고 싶었다. 저자서문을 읽고 탁월한 선택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이 세상은 산업과 기술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 인간이 필요를 넘어서는 엉뚱한 행동, 쓸모없는 생각을 하는 잉여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산업과 기술, 혹은 혁신만이 우리의 고민거리인 것은 아니다. 또 그 산업과 기술의 변화에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만 있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저 둘은 우리가 마주해야 할 미래의 여러 변화 중 가장 사소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그 밖에도 정치, 문화, 혹은 도덕과 윤리, 생태 등 삶의 여러 측면을 이루는 분야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세상은 산업과 기술만으로 달랑 바뀌는 그런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사회의 여러 측면을 고루 보고자 하는 의도와,
"미래는 어디까지나 현재의 함수이며, 미래의 변화는 반드시 현재에 그 씨앗을 심어 두고 있다."
라는 지적처럼, 넘겨짚은 미래가 아니라 현재에 뿌리를 둔 미래를 살펴보겠다는 전제가 매우 신뢰가 갔다.

그리하여 이 책은 8가지 주제로 현재와 미래를 통찰한다. 각 장의 부제는 '~~의 위기'로 끝난다. 각 장의 도입 페이지에 그 주제의 키워드들을 배치하고, 각 주제에 대하여 현재와 미래를 논한 후 해결책으로 이어지는 구성이 좋다. 해결책이란 것을 쉽게 말할 수 있는 주제들이 아니기 때문에 정답보다는 저자의 견해라 하는 편이 낫겠다. 속시원하지 않은 것도 있었다. 그래서 신뢰가 가는 아이러니라 할까.

1장 [내 일자리는 어디에?]는 노동의 위기를 다룬다. 이 시대의 부모와 젊은이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문제라 하겠다. 익히 알듯이 인공지능은 벌써 많은 일들을 하고 있고 앞으로는 더 많이 하게 될 것이다. 그러니 필연적으로 인간의 일자리 상당부분을 점령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인간의 영역은 남아있고 앞으로 남을 영역은 어찌보면 더욱 인간의 본질에 가까운 것들이다. 저자는 몸으로 하는 일, 차이를 만들어내는 생각, 정서적 공감 능력 등을 꼽고 있다. 각오한 것 보다는 장밋빛이네? 진정 이러하다면 내가 중요시하던 교육들이 굳이 코딩교육 등에 밀려나지 않아도 될 듯한데 말이다. 코딩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라 보편교육으로 모두가 꼭 배울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필요한 사람만 배워도 인공지능 사회를 이루는데 부족하지 않다고 본다.
"사실 20세기는 '인간의 기계화'가 이루어진 시대였다. 대규모 공장에서 이루어지는 작업방식은 기계의 방식이며, 인간은 살아있는 기계로 투입되어 기계적으로 일할 것을 요구받았다. 하지만 이제 이 '인간기계'들이 기계로 대체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과제는 그동안 잊혔던 인간적인 일을 찾아내는 일이 될 것이다." (37쪽)
우리가 가장 걱정하며 아이들에게 겁을 주는 이 문제는 어쩌면 문제가 아니고 기회일 수도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진정 무서운 그림자는 뒷장들에서 나온다.

2장 [미디어로 포위된 세상]이 지목하는 위기는 '진실'이다. 진실이 왜곡되기 너무 쉬운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으며 그 도구는 발달한 매체들(미디어)이 되겠다. 저자는 해법으로 회의주의와 뿌리찾기(출처, 사실 확인)를 꼽고 있다. 그리고 매체문해력(미디어 리터러시)이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단시간에 길러지는게 아니겠다. 학교교육에서도 필요할 것 같다. 그러려면 교사가 먼저 매체의 의도와 진실성을 판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겠다.

3장의 제목은 섬뜩하다. [나는 네가 지난여름에 한 일을 알고 있다] 바로 사생활의 위기를 다룬다. 감시사회, 빅 브라더, 바이오 인식, 거대 미디어 등의 키워드들이 문제를 짐작하게 해준다. 그동안 내가 입력한 수많은 개인정보들은 누구 손에 들어가 어떻게 쓰이고 있는걸까 새삼 오싹해지는 내용이다. 이 장에서 저자가 제시한 해법들은 내가 잘 생각해보지 못한 분야이긴 했지만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겠다고 깨달은 부분이다.

4장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을까?]는 노년의 위기에 대한 내용이다. 얼마전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책을 읽기도 했고, 가장 다가오는 절실한 문제여서 심각하게 읽었다. 결론이 권샘의 글 치고는(?) 뜬구름처럼 느껴졌다. 친절, 봉사, 애정표현.... 마음먹기 달린 것.... 권쌤 글에서 이렇게 이성보다 감성에 어필하는 해법을 별로 못 본 것 같다. 하지만 달리 무슨 대책이 있겠는가 싶다. 어쨌거나 사는 동안 행복감을 느끼며 살아야 하고 그건 누가 해줄 수가 없는 일인것을.

5장 [당신의 국적은 안녕하십니까?] '정체성의 위기'라는 부제의 이 장은 내 인식을 가장 많이 흔든 장이라 할 수 있다. 저자의 이런 질문 때문이다. "과연 30년 뒤에도 민족국가가 의미있는 정치 단위로 남아 있을 수 있을까?" (133쪽)
저출산과 이주민, 다문화 사회의 문제는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가시적이고 체감되는 문제가 되었다. 무턱대고 환영하기에는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기도 하고, 자칫하면 차별이나 혐오로 넘어갈 위험이 있기도 해서 무척 어렵게 느껴진다. 어쨌거나 대상에 대한 공부와 이해가 두려움을 줄여줄 거라는 저자의 조언에 공감하며, '열려 있는 자아, 유동적인 정체성' 이라는 말을 기억해 두겠다.

지구의 위기를 다룬 6장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 될 것인가]가 내게는 가장 두렵고 암담하며 시급한 문제로 다가왔다. 에큐메네와 엔트로피로 설명한 문장이 숨이 턱 막히게 다가왔다.
"결국 인류 대부분은 지구 표면의 10% 정도에 몰려 산다. 그런데 이 10%는 바로 지구 위의 여러 자연조건들이 우연히 중첩되면서 만들어낸, 아슬아슬한 동적평형의 결과다.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지만 엔트로피가 치명적인 수치를 넘어서면 이 평형이 깨진다. 그럼 사람의 거주 환경은 서서히 나빠지는 것이 아니라 일순간에 무너져 버린다." (155쪽)
해법은 누구나 몰라서 실천 못하는 것이 아닌 방법들, 즉 걸어다니기(또는 자전거), 일회용품 안쓰기, 고기 덜 먹기 등이다. 페북을 통해 저자가 열심히 걸어다니시는 것을 보았기에 신뢰가 간다. 조금 더 불편하게, 욕구를 참는 것 외에 왕도는 전혀 없다.

7장 [가난, 선택이 아니라 필수?]에서 다루는 내용은 '성장의 위기'로 1장 노동의 위기와 함께 부모와 자녀들이 가장 걱정하는 주제다. 우리 또래들도 모이면 그런 이야기들을 한다. "우리 자식들이 우리만큼만 살아도 성공인데, 그러기가 어려운 세상이야."
성장은 둔화되었는데 부의 편중은 가속화 되었다. 장차 10%의 중산층과 90%의 빈곤층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다. 추락에 대한 두려움은 아이들을 비인간적인 경쟁으로 더욱 내몬다. 자신의 성취에 대한 불만족은 억울함으로, 질투로, 분노로 표출된다. 이와 같은 어려움에 대체 어떤 해법이 있을 수가 있을까? 상상이 가지 않았는데, 다음장엔 고개를 끄덕일 내용이 있었다. 물론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다. 첫째로는 '새로운 인생관'을 갖는 것이다. (과연 말처럼 쉽지 않겠지?ㅋㅋ) 사실 행복은 다 쓰지도 못할 소유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건전한 소확행을 추구하는 쪽으로 삶의 방향을 전환하면 좋을 것이다. 저자는 '약한 연결의 공동체'를 만들 것을 추천하고 있다. 매우 동의한다. 다음으로 '사회적 임금'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이건 내가 미처 몰랐던 부분이다. 건강한 합의에 의해 실현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삶을 윤택하게 하는 예술과 학문'이라는 해법에 쌍수를 들고 박수를 치고 싶다. 예술과 학문이 부의 상징이던 시대가 있었고 지금도 어느정도는 그렇지만, 방법을 찾아보면 예술을 즐길 방법은 전보다 기회의 문이 많이 열려있다. 학교가 이 장을 넓게 펼쳐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방향으로의 혁신을 나는 원한다.
청년들이 이 장을 읽고 자신들의 삶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토론해보면 좋을 것 같다.

마지막 8장은 민주주의의 위기다. [자유와 민주가 싸워요]라는 제목의 의미는 무엇일까? 많은 나라에서 독재정부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실현되었다. 그런데 오늘날 민주주의는 더 발전하기보다는 퇴행하고 있다. 그 토양은 바로 혐오다. 이 토양에서 정치는 실종되고 시민의 미덕은 증발되고 이기심과 선동이 난무한다. 요즘이 딱 그러하다. 매우 위험한 단계까지 우리는 와 있는거구나.... 그런데 저자의 해법 중 첫번째가 의외였다. 수학, 과학, 통계학!? 저자는 오늘날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협이 포퓰리즘이라고 규정한다. 대중을 홀리는 선동에 대처하려면 소양을 갖춰야 한다. 난 저 3가지에 모두 취약한데.... 잘하는 사람을 친구로 삼고 있어야겠다...^^;;; 두번째로 서사가 있는 예술을 꼽은 것에 크게 공감한다. 저자가 사회교사이면서 예술교육과 연극수업에 열정을 갖고 실천하시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마지막으로 토의와 토론, 그중에서 질문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책 내용에 의문이 있으면 질문하라며 저자의 이메일 주소로 끝맺음. 와우 너무 절묘한거 아닙니까?ㅎㅎ

똑똑한 사람들은 머리 속에 지도가 들어있는 것 같다. 그래서 한 치 두 치 앞을 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늘 안개 속을 헤맴.... 작은 손전등이라도 켜려면 부지런히 읽어야 하겠지. 이 책은 내일 독서모임에서 나눌 책이라 요렇게 정리하며 읽었다. 다른 샘들의 이야기가 기대된다. 부디 미래는..... 너무 절망적이지 않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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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고수
이현 지음, 김소희 그림 / 창비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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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 작가님의 신작이라니 어찌 기대하지 않을까! 꽤 두툼해서 한나절 푹 빠져 읽을 수 있겠다. 게다가 '전설의 고수'라니 뭔가 흥미진진한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지 않은가!

연년생 남매가 주인공이다. 정확히 말하면 동갑이다. 누나는 1월생, 동생은 12월생. 이렇게 태어날 수도 있구나.^^ 같은 학년에 다니니 거의 쌍둥이 남매 느낌이겠다. 평범한 이 남매에겐 드러낼 수 없는 비범한 능력이 있다고 한다. 그것도 수차례의 전생을 통해 이어져 온.

이런 이야기를 어설프게 썼다간 비웃거나 읽다 내던지기 십상일텐데 남매의 능력과 발현, 사건의 전개와 결말이 궁금해서 책장이 쉴새없이 넘어가는걸 보면 대단한 내공이 틀림없다. 현실의(이번 생의) 남매는 티격태격하는 그야말로 현실남매지만, 수많은 전생에서 아픈 운명을 함께 겪어 온 사이라고 한다. 나로서는 전혀 납득되지 않지만 소설적 재미가 커서 그냥 감안하며 읽게 된다.

읽어나가며 놀란 것은 제목에도 '전설'이 들어가듯이 설화에서 모티프를 가져왔거나 일부를 차용했나? 하는 느낌 때문이었다. 옛이야기에 관심이 있긴 한데 광범위하게 알진 못한다. 그래서 이 초능력 오누이와 오누이탑 이야기가 기존 설화에 나오는 내용인지 궁금했다. 할 수 없이 '오누이 탑'으로 검색을.... 내가 찾아본 내용 중에선 이 책에 나온 수몰된 오누이탑은 없던데, 그냥 내가 못찾은 것일수도.... 어쨌든 '오누이탑'은 곳곳에 있고 다양한 설화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우리 설화에서 '오누이'가 차지하는 비중은 꽤 높으며 그중에는 이렇게 괴력을 가진 오누이 이야기도 있다.

괴력 오누이라는 모티프, 전생이라는 설정 등을 통해 현대 동화이면서도 설화의 느낌을 극대화하는데 성공했다는 느낌이다. 이 책에서 초능력이 먼저 발현되는 사람은 누나인 형은이다. 동생 형수가 양아치 녀석들한테 약점을 잡혀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영웅처럼 나타나 그들을 물리쳐 준다. 이후로 형수에게 나타날 초능력을 독자나 형수 모두 기대하게 되지만, 전생의 기억은 조금씩 재생되는 반면 초능력의 발현은 좀처럼 되지 않는다. 그 와중에 동네에는 굵직한 형사 사건이 두 가지나 터졌고, 남매+친구 충호 트리오가 사건을 해결해나가는 과정이 스토리의 중심이고 가장 가슴졸이며 읽게되는 부분이다.

형수는 사건 해결 과정에서 초능력을 가진 누나에게 자존심이 상하고 비교의식을 느끼지만 그래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한다. 평소에 틱틱거리는 남매지만 위기 때에는 전생의 그 애틋한 남매애가 나타난다. (나타났다간 언제 그랬냐는 듯 쑥 들어가 버리는 것이 특징ㅎ) 그리고 결말에 이르러서야 형수에게 주어진 초능력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그 능력은 과연 지금에 와서 발현된 것인가?^^

'작가의 말'에 보니 작가도 옛이야기를 언급해 놓았다. "옛이야기 속 오누이는 대개 슬프게 끝납니다. 이들은 엄청난 초능력을 가졌지만 악당을 물리치지도, 영웅이 되지도 못합니다. 어른들로 인해 오누이는 무리한 내기를 하던 끝에 비극적인 최후를 맞기도 했지요. 그렇다면 이번 생의 경우는 어떨까요? 지금의 오누이는, 형은이와 형수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요?" (292쪽)
이 책의 결말은 더없이 바람직하고 흐뭇하다. 근데 앞날은? 그 생각까지 하면 복잡해진다. 여기까지가 딱 좋은 이야기.^^

좋은 책이라고 학교도서실에 사두어도 한참이 지나도록 책장이 넘겨진 흔적도 없는 책들이 많은데, 이 책은 벌써 여러 명의 손을 거친 듯 헌 책이 되어가고 있었다. 읽다가 책장 사이에서 다량의 머리카락 발견... 으윽 대체 어떤 놈이냐...ㅠ 어쨌든 확실한 건, 재미있는 책은 알아서들 찾아 읽는구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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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층 친구들 이야기와 놀 궁리 1
남찬숙 지음, 정지혜 그림 / 놀궁리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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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찬숙 작가님의 책들은 내가 어른이 되어 다시 동화를 읽던 초기에 국내창작동화에 애정을 갖는데 큰 역할을 했다. 괴상한 녀석, 니가 어때서 그카노, 받은 편지함 등이다. 이분의 책은 은근한 재미가 있었고 읽고 나면 인간에 대한 신뢰와 따뜻함이 느껴져서 좋았다. 그당시로는 파격적인(?) 소재라고 느껴진 작품도 있었는데 미혼모의 아들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안녕히 계세요>라는 작품이었다. 이 책을 읽다보니 옛날 그 책이 떠올랐다. 동화에 한정된 소재는 없구나. 이 책에는 두 할머니의 삶이 나온다. 아이들이 이해하거나 공감하기에는 다소 어려운, 차별과 희생을 안고 살아오신 할머니들의 삶이다. 대단한 역사적 아픔을 끌어안은 것은 아니지만 그시대가 아니라면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그런 삶. 82년생 김지영보다 더 고달프고 신산한 42년생(?정확한 연도는 모름) 김혜순, 김분한 할머니의 삶.

준희네 집이 아래층 아주머니의 층간소음 등쌀에 못이겨 단독주택으로 이사를 결심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단독주택은 아파트보다 싸면서 방도 하나 더 많고 넓었다. 그런데 이사와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양가에 우환이 터졌다. 이러저러하여 양가 할머니들이 집에 오셔서 여분의 방 하나에 함께 기거하시게 된다. 사돈간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 것이다. 2층 단독주택에서 1층에 있는 안방을 두분이 쓰시게 되었으므로 책의 제목은 <일 층 친구들>

상식적인 분들이라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며 처음에는 잘 지내시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인간들 있는 곳에 갈등 있는 법. 서로 다른 두 할머니는 그 차이만큼 갈등을 겪게 된다.
외할머니 : 도시 태생. 가까이 살면서 바쁜 엄마를 대신해 준희 남매를 키워줌. 곱게 화장하고 우아한 옷을 즐겨 입으며 취미로 노인회관에서 이것저것 배우며 합창단 활동도 하고 있음.
친할머니 : 시골에서 농사로 잔뼈가 굵은 할머니. 고향에선 할 일이 천지지만 도시에 오니 할 일이 없음. 딱히 취미활동도 없음. 준희네 집에 와서도 결국 마당에 농사를 지음.

이렇게 배경과 성향이 다른 두 할머니는 본의아니게 서로의 상처를 건드린다. 친할머니는 '못배우고 무식하다'는 것이고 외할머니는 '이혼했다'는 것이다. 여기 담긴 할머니들의 사연을 듣자면 진짜 '42년생 김할머니'가 나올 만하다. 여자라서 참고 살았던, 혹은 운명이려니 하고 살았던 삶에서 잃어버린 수많은 것들.... 친할머니는 그렇게 희생하고 살았으면서도 이혼 문제에서는 "무조건 여자가 참아야 한다, 자식 생각해서 참고 살아야 한다."는 입장을 강하게 피력하여 여적여의 느낌으로 외할머니 가슴에 못을 박는다. 그러나 드라마식의 반전이 뙇!하고 나타났으니, 준희 고모(즉 친할머니의 딸)가 같은 문제를 안고 등장한 것이다.

결말까지의 과정에서 작가 특유의 따뜻한 해결을 보게 되고, 선악 구도가 없는 주인공들의 인간미에 흐뭇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새삼 깨닫게 된다. 할머니들의 삶은 아직 완전히 극복된 게 아니구나. 세상 구석구석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구나. 이런 소재들을 같은 초딩이라도 내 어린시절처럼 엄마 우산 아래 곱게 자라는 아이들은 이해 못할 것이요, 어린 나이에도 산전수전 다 겪은, 생활의 전선에 선 아이들은 이해할 것이다.

할머니들 이야기만으론 동화로서 조금 아쉽다 할 텐데, 준희와 준희 친구들의 이야기도 교차되어 들어가 있다. 할머니들의 갈등과 해결을 거울 삼아 자신들의 문제도 해결해가는 친구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그러니까 네 말은 우리도 할머니들처럼 따로 또 같이 하자는 거구나?"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니까 내 말은 우리가 친한 친구 사이라고 해서 뭐든 같이 하란 법은 없다는 거야." (49쪽)


같은 맥락에서, 아이들이 이런 책을 읽어보는 것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자신 주변의 삶이 다라고 생각하면 세상을 보는데 많은 오해가 생긴다. 반대로 자신만 힘들다고 생각하면 슬프고 억울하다. '남의 이야기'를 읽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싸울 때는 다신 안볼 것처럼 가시 돋힌 말을 주고받아도 상대방의 어려움 앞에 말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미는, 자식의 앞길을 강제했던 걸 후회하고 안타까워하는 할머니들의 성정은 딱 보통사람들이다. 나도 보통사람 이상으로 살 순 없을 것이다. 할머니들이 보통 이하로 전락하기 직전의 포인트들은 다 내게 배울 점들이었다. 그렇게 보통만 하며 살길 바란다. 그것도 쉬운 것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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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합 독수리 난 책읽기가 좋아
박주혜 지음, 유설화 그림 / 비룡소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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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부에는 좀 유치하게 느껴졌다. 외모에 콤플렉스가 있는 대머리 독수리와 수다쟁이 앵무새의 캐릭터도 그닥 매력적이지 못했다. 그럭저럭 읽을 만한 정도여서 읽고 있었는데.... 중반부에 쏘리라이언(마음이 약해 뭐든지 미안해하는 사자)이 나온다. 삼총사가 결성되는 셈. 여기서부터 재밌어지기 시작하더니 막판엔 좀 감동이었다.

나는 힙합을 잘 모른다. 랩도 그닥 즐기진 않는다. 그러나 힙합정신(?)이란 게 있다면 그게 뭔지는 조금 알 것 같다. 그게 바로 이 책의 주제라 하겠다.

첫장부터 대머리 독수리의 시련이 나온다. 초원의 미녀 공작에게 다가갔다가 보기좋게 차이는 장면이다. 이유는 단 한가지.
"너는 너무 못생겼어. 게다가 그 대머리는 최악이야."
대머리 독수리는 가는 곳마다 외모 때문에 차별을 받았다. (심지어 선생님까지...ㅠ)
"대머리 독수리는 더 이상 이런 곳에 살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힘차게 날았지. 못생겨도, 머리카락이 없어도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찾아서." (12쪽)
그리고 다음 쪽으로 눈을 돌렸을 때 풋, 하고 웃게 됐다.
"그런 세상은 없었어." (13쪽)

절망한 대머리 독수리는 사바나의 귀퉁이 쓰레기장에 자리잡았다. 혼자가 되니 편했다. 쓰레기장에서 이것저것을 주워 꾸미고 노래를 불렀다. 대머리 독수리의 특기는 가사를 쓰고, 곡을 만들고,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거든. 혼자라는 생각에 마음껏 불렀는데 그곳엔 생각지도 못한 첫 관객이자 팬인 수다쟁이 짹이 있었다. 이 앵무새 또한 말이 많아 따돌림 당한 외톨이. (좀 찔린다. 나도 말많고 시끄러운 사람은 애고 어른이고 간에 싫은데...ㅠ)

이어서 둘은 세번째 주인공을 만났다. 사자 무리에서 쫓겨난 이 사자는 세상의 모든 것에게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발걸음을 뗄 때마다 흙과 나무, 벌레들에게 사과를 하는 사자. 이런 사자가 무리에서 떨궈진 건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뒷부분으로 갈수록 랩 가사가 많이 나온다. 이런 걸 쓰는 건 작가에겐 껌인가? 그렇지는 않겠지?^^;;; 초반부엔 유치함으로 느껴지던 랩 가사가 후반부엔 재미와 흐뭇함이 되었다.

"나는 나를 위해 살아. 너는 남을 위해 살지.
나는 내가 제일 최고. 너는 남이 항상 최고.
어떻게 생겨야 잘생긴 건데? 그건 도대체 누가 정한 건데?
내가 멋지다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정해.
그것이 바로 내 스타일." (50쪽)

"모두 함께 소리쳐. 난 너와 달라. 넌 나와 달라.
우리는 기계에서 만들어지는 인형이 아니지.
모두 다 같은 눈, 다 같은 코, 다 같은 입
그런 건 정말 별로야. 난 너와는 다르니까." (63쪽)

결말을 말하자면 대머리 독수리(대독)의 노래는 유명해졌고 이들은 환호 속에 공연을 했다. 사바나엔 힙합대회가 열리고 이들은 초대가수가 된다. 왕따들의 도전. 인간(?)승리의 드라마다.^^

스토리 자체는 단순하다. 분량도 80쪽 밖에 안되어 딱 저학년 책으로 보인다. 하지만 고학년 교실에서 읽어도 좋겠다. 정체성의 문제, 자존감의 문제는 고학년 교실에서 많이 앓고 있는 문제니까. 눈이 작아도, 다리가 짧아도, 유행하는 패딩을 유니폼처럼 입지 않아도, 쥐잡아먹은 듯 입술을 칠하지 않아도, 화장을 안한 쌩얼이어도 남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고개 들고 당당히 자신의 앞날을 향해 나아갈 수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많이 보고 싶다.

아쉬운 점은, 이 책을 내가 읽어주지 못하겠다. 랩 가사를 읽는데 넘나 쑥스러워서....^^;;; 반에 끼가 있는 녀석이 있어서 이 부분을 넘겨줄 수 있다면 흥겨운 책읽기가 될 수 있을텐데. 조만간 그런 기회가 오길 바라며 잘 기억해두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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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 내가 케이크를 나눈다면 질문하는 어린이 1
소이언 지음, 김진화 그림 / 우리학교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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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이라는 화두처럼 거대하고 민감한 주제가 있을까? 어찌보면 정치란 공정을 주장하고 실현하는 과정인 것 같다. 하지만 정치를 잘했다는 평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거의 없는 것처럼 공정을 실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공정에 대한 시각차가 존재하며 체감도 각기 다르고 자신의 문제일 때와 남의 문제일 때 입장이 달라지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그 공정함을 주제로 어린이책을 만들다니, 쉽지 않았겠다.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엔 만만해(?) 보인다. 그림이 많고(만화면도 있음) 설명은 길지 않다. 하지만 짚어야 할 점들을 잘 짚어가며 생각을 잘 인도해 주는 책이라고 느꼈다. 이런 주제로 수업을 하는 교사가 읽고 흐름을 잡기에도 좋고,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눈다면 더 좋을거라 생각한다.

이 책에는 초등 고학년으로 보이는 두 아이, 호두와 롱롱이가 나와서 대화를 나누다가 상황 제시가 되고, 그 주제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이 외에도 구석구석 삽화나 예화 등등 구성이 다채로워 아이들이 지루하게 느끼지 않을 것 같다. 호두와 롱롱이의 캐릭터가 고학년 교실 어느 구석에 있는 시니컬 한 명, 무난싱글싱글 한 명을 아무나 데려다 놓은 듯 친근하다는 점도 장점이다.

아이들은 공평하지 않음을 참지 못한다. 그런데 무조건 '똑같은' 것이 공평함일까? '똑같게' 해도 우리 마음에는 불편함과 복잡함이 생길 때가 있다. '옳음'이 빠졌을 때 그러하다. 그 '옳음'을 추가한 것이 공정함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 공정함은 '정의'의 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시대가 흐르며 공정함은 상당히 실현된 것으로 보인다. 태어날 때부터 신분이 정해져 있고 낮은 신분은 높은 신분의 지배를 받던 시대를 떠올려보면 말이다. 인류는 많은 피를 흘리며 누구나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왔다. 표면적으로는 거의.... 그렇다. 그러나 정말 노오오오오력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까? 여기에서 '출발선 논란'이 나온다. 이것을 조정하다보면 '역차별 논란'이 나온다.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고개를 끄덕일 공정함이란 게 세상에 있을까? 정말 어렵다고 느끼게 된다.

책의 후반부에 이 설명이 거의 결론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두 개의 잣대' 라는 비유다. 그대로 옮겨보겠다.
"우리에게는 공정함을 판단하는 두 가지 잣대가 있어요.
하나는 노력한 만큼 보상받는 거예요.
다른 하나는 자기 잘못이 아닌데 차별받는 사람들을 배려하는 거예요.
잣대가 두 개면 서로 충돌하기도 하지만 헤쳐 나갈 방법도 많아져요.
동전도 앞면과 뒷면이 있고, 어떤 일이든 빛과 그림자가 있잖아요?
어떤 일이든 이쪽으로도 생각해 보고 저쪽으로도 생각해 봐요.
잣대가 두 개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 세상이 더 근사해져요."


그리고 마지막 장, '사회안전망' 이라는 용어에도 주목하고 싶다. "노력한 사람과 노력하지 않은 사람을 똑같이 대접하라는 게 아니에요. 누구에게나 행복할 권리는 똑같이 주어져야 하고 모두가 그걸 지켜야 한다는 말이랍니다. 우리는 그런 사회안전망을 꼭 만들어야 해요. 마치 커다란 트램펄린 같은 안전망 말이에요. 그래야 누구든 바닥으로 떨어져도 다시 위로 점프할 수 있으니까요."

다른 사람의 불행 위에 쌓은 성취는 궁극적으로 행복하지 않을 뿐더러 위태롭기도 하다. 결국 공정성에 대한 고민은 안전하고 행복한 세상에서 살기 위한 노력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큰 테두리의 결론을 내려도 개별 사안에서 인간은 늘 충돌할 것이다. 교실 안도 그럴 것이다. 하지만 이정도로 테두리를 쳐 놓으니 그 논란은 할 만한 것으로 느껴진다. 아이들과 꼭 다뤄볼 주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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