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북 : 누가, 왜, 어떻게 힘을 가졌을까? - 2020 아침독서신문 선정도서, 2020 4월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 2020 한국학교사서협회 추천도서, 2020 고래가숨쉬는도서관 신학기 추천도서 천개의 지식 10
클레어 손더스 외 지음, 조엘 아벨리노 외 그림, 노지양 옮김, 록산 게이 외 추천 / 천개의바람 / 2020년 1월
평점 :
절판


파워. 우리 말로는 힘. 한자어로 '~력'으로 끝나는 다양한 말들을 살펴보면 힘의 본질을 어느정도 파악할 것 같다. 권력, 능력, 경제력, 정치력, 영향력, 통제력, 경쟁력, 지배력.... 이 책은 '누가, 왜, 어떻게 힘을 가졌을까?' 라는 부제처럼 사회적, 역사적으로 '힘'을 조명해보는 책이다. 록산 게이의 추천사에 있는 문장을 옮겨본다."저는 평범한 사람들이 힘의 본질을 더 잘 이해할수록 힘을 가진 사람들이 더 큰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을 통해 함께 배워봐요. 힘을 갖는다는 건 어떤 것이고 그 힘으로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 이야기해 봅시다."

나도 힘에 대해 관심이 있다. 넓은 범위까진 아니고 교실이라는 좁은 사회 안에서 벌어지는 힘의 속성과 역동에 주목한다. 그러는 이유는 바로 이것이 교실 평화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힘을 추구하는 본능이 있는 것 같다. 이것을 권력이라 하겠다. 아이들 사이에서도 가진 자원이 다르고, 인기와 영향력도 다르다. 그러면서 힘은 고루 분산되기 보다는 편중된다. 많이 가진 아이에게 권력이 주어지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시작된다. 여러가지 양상이 전개된다.
1. 어떤 아이는 본인에게 그런 권력이 있다는 것을 의식조차 못한다. 혹은 알아도 굳이 내세우지 않는다. 그 권력은 행사되지 않고 그냥 사라진다.
2. 어떤 아이는 그 힘을 좋은 곳에 쓴다. 자신도 정의롭게 행동하고 자신을 따르는 아이들도 그럴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돕는다. '선한 영향력'이라 부를 수 있겠다.
3. 어떤 아이는 주어진 알량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해 안달한다. 남들을 강제하여 자신의 파워를 확인하고 싶어하고 그 안에서 자존감을 채운다.
4. 어떤 아이는 대단히 편중된 권력을 갖고 있으며 그것을 휘두른다. 수직적인 권력관계(서열)가 형성되어 관계엔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다. 관계적인 폭력이 싹트고 수동적으로 따르는 아이들과 괴롭힘에 신음하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1,2가 대다수인 학급이라면 걱정할 게 없다. 수업만 잘 준비하면 아이들은 잘 배우며 성장한다. 문제는 3,4인데 이런 경우가 굉장히 많다는게 힘든 점이다. 인간이 권력을 쫓는 본능을 갖고 있어서인지.... 힘을 고르게 갖는 것, 가진 힘을 선하게 행사하는 것, 잘못된 힘이 행사되고 있을 때 이를 바로잡는 것 등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바로 민주시민교육이자 인권교육일 것이다.

이 책이 나온 것은 그래서 배우 반가운 일이다. 위의 교실상황과 관련해 '운동장 권력'이라는 꼭지가 있었다.(16~17쪽) 이 꼭지를 읽으면서 이인호 작가의 <팔씨름>이라는 단편집이 떠올랐다. 그 작품을 온작품읽기로 읽고 교실 속 권력행사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며 이 책도 함께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어서 이 책은 세상을 바꿔왔던 여러가지 힘들을 소개한다. 절대권력이 아닌 진정한 지도력을 발휘했던 지도자들, 세계대전의 비참함을 겪고 설립한 국제조직(UN), 누구나 한표의 권리를 갖게 된 선거, 새로운 세상을 앞당겼던 다양한 형태의 혁명... 등

다음 장에선 여러가지 불평등과 부당함, 차별에 관련된 꼭지들이 나온다. 이는 힘의 잘못된 적용의 원인이 되는 것들로, 소수자들에게 힘을 보태 주어야 할 사례들을 보여준다고 하겠다. 세계관, 인종주의, 남녀문제, 무지갯빛 권리, 장애... 등에 대한 꼭지들로 되어있다. 이 장의 마지막 꼭지는 '보이지 않는 힘' 인데 이것은 불문율, 다시 말하면 사회규범을 뜻한다. 사회규범은 인간의 도리를 지키게도 하지만 변화하는 사회를 따라잡지 못하고 차별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이 꼭지에서 여러가지 상황들이 떠올랐다.

마지막 장에선 '나의 힘'을 다룬다. 자신의 힘을 키우는 방법이라고 할까. 자존감을 키우는 것, 배우고 생각하는 것, 자신의 생각을 퍼뜨리는 것 등을 제시하고 있다. 납득이 가는 것들이다.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인 '힘'을 이렇게 다각도에서 어린이 눈높이로 다룬 책이 또 있을까. 펼친화면 두 쪽에 한 꼭지의 내용을 배치하고 꼭지마다 깨끗하고 선명한 바탕색의 변화가 돋보인다. 눈길을 끌 뿐 아니라 흥미를 잃지 않고 넘기기에 좋은 구성이다. 그림도 글을 보조할 정도로 적당하게 들어있다. 무엇보다 '힘'이라는 하나의 키워드로 이 사회의 전반을 비춰본다는 점이 놀랍고 신선하다.

힘은 존재하는 것이다. 이것을 어떻게 나누어 고루 가지며, 가진 힘을 선하게 사용하고, 어떤 힘을 어떻게 견제하여 부당한 힘의 행사를 막을 것인지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통찰을 이 책은 제공한다. 자신이 속한 작은 공동체에서부터 국가, 세계라는 공동체까지. 학년 수준에 맞추어 범위를 확대하며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자신이 가진 힘의 크기를 가늠하고 그것을 귀하게 사용하고 참된 힘을 기르는 일이 학생들의 과업임을 깊이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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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놀이 82 - 일상의 그림책이 놀이로 연결되는
성은숙 외 지음 / 교육과실천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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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그림책과 관련된 책이 어찌나 많이 쏟아져 나오는지, 비슷한 제목의 책들도 많아 헷갈릴 정도다. 학교도서실 교사용 도서로 착실히 구입해두곤 했는데 요즘은 너무 많아 포기했다. 서가도 좁은데 한쪽 분야 책만 너무 많아도 안될거 같아서... 그정도로 그림책에 대한 관심은 어느순간 폭발적으로 확대된 것 같다. 그만큼 그림책이 아이들의 발달과 성장에 긍정적인 도움을 주고, 예술로서의 가치도 있으며, 수업활용이 다양하게 용이하고, 나아가 어른들에게도 큰 의미와 위로를 주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처음에 이 분야에 대해서 읽은 책은 2007년에 나온 <그림책과 예술교육>이라는 책이었다. 유아교육 교수님이 쓰신 책이었는데 그 책을 읽으며 '읽어주는 것' 이상의 활용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사례들은 유치원 사례들이었지만 참고가 많이 됐다. 그 중의 한 사례를 변형해서 공개수업으로 구성해본 적도 있다. 하지만 깊이있는 공부가 부족해서 더 나아가진 못하고 쏟아지는 그림책수업 책들도 읽어보지 못하고 있던 중에 이 책을 골라들게 됐다. 딸과 친구들이 유아교육 쪽을 공부하고 있어서 소개해 주고 싶은 맘도 있고, 처음에 읽었던 <그림책과 예술교육>의 영향일 수도 있다.(이제 그 책 내용은 다 잊어버림ㅎ)

유아교육에서의 수업은 대부분 놀이활동으로 진행될테니, 책의 제목도 '그림책 놀이'고 영역별로 다양한 놀이활동들이 소개된다. 상상놀이, 인성놀이, 자연놀이, 문제해결놀이. 모두다 입맛 당기고 궁금하다. 차례에 그림책 제목들이 함께 나오는데 아는 책은 아는 책대로, 모르는 책은 모르는 책대로 관심이 간다.

1. 상상놀이
어른보다 아이들이 잘하는 것, 첫번째가 상상 아닐까. 아이들은 즉각 상상에 빠져들 수가 있다. [곰 사냥을 떠나자] 책을 읽고 즉석에서 소품들을 준비해 마임놀이를 한다. 이 활동에서 내가 다시 떠올린 건 소품의 효과다. 제대로 된 소품이 아니라 '그렇다고 치는' 소품 말이다. 연극놀이 연수에서 보자기 하나 가지고 별거별거 다했던 기억이 나는데, 여기서도 큰 비닐봉지, 한지 같은 것으로 즉석에서 장소 전환의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다. 나머지는 아이들이 한다. 상상의 힘으로.^^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에선 빙 둘러 긴 줄을 함께 잡고 큰 만두피를 빚는다. [괴물들이 사는 나라]에선 스카프 한 장씩을 들고 괴물 나라로 여행을 떠난다. 마스킹테이프 하나면 바닥에 큰 텔레비전을 그려 그 안에서 마술놀이를 할 수도 있고, 몇 가지 색깔 천과 블록으로 동물들의 마을을 구성할 수도 있다. 이걸 보면서 장난감 하나 없었던 나의 어린시절이 떠올랐다. 거의 모든 놀이는 상상놀이였지. 요즘 아이들에게 필요한 놀이도 이런 놀이가 아닐까. 비싼 걸 사주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는.

2. 인성놀이
이 장에서 처음 나온 [친구는 좋아!] 책의 활동은 주로 첫만남의 활동들인데 초등에서도 많이 하는 놀이들이라 반가웠다. 자기소개놀이, 반가워놀이(자리바꾸기 놀이), 이름맞추기 놀이 등.... 다가올 3월을 위해 이 그림책을 읽어봐야겠다. 그 외에도 도움, 가족, 생명존중, 남의 입장 이해 등의 키워드로 할 수 있는 다양한 활동과 관련 책들이 소개되어 있다. [우리 동네 한 바퀴] 책으로 하는 동네 수업도 관심있게 봤다. 같은 주제 수업이 초등에도 나오기 때문이다. 살고 싶은 동네 만들기 활동도. 나는 주로 상자 등의 재활용품을 사용해서 만들었는데 이 책의 유아들은 유닛블록 등을 이용해 만들거나 마커로 바닥에 그리기도 한다.(그게 깨끗이 지워지나?) 이게 훨씬 더 재미나 보인다.ㅎㅎ 차이가 있다면 일시성이란 점. 곧 해체해야 하니 아쉬움이 크겠다. 하지만 사는게 다 그런건데. 쌓고 허물고.^^

3. 자연놀이
학교보다는 확실히 유치원에서 자연놀이를 많이 하시는 것 같다. 학교도 가능한 한 많이 하는 것이 아이들 정서에 좋을 거라 생각하지만 나는 이쪽에 좀 취약한 편이다. 꽃으로 하는 활동, 그림자 활동, 비오는 날 활동, 나뭇가지로 하는 활동, 마지막으로 줄로 하는 활동이 소개되어 있다. 내 동생이 공동육아 아빠들과 밧줄놀이를 기획해서 하곤 했는데 여기에도 비슷한 활동이 나온다. (요즘은 아이들이 긁히기만 해도 골치아픈 세상이라 이런 건 엄두가 잘 안 남ㅠ) 그 외에도 줄로 표현하는 놀이, 털실로 손뜨개 활동까지 나온다.

4. 문제해결놀이
이 주제로 두 장이 배정되어 있다. '생각과 행동을 조절하는'과 '소통하고 관계를 맺는'이다. 유아들이 부딪히는 문제도 초등 아이들과, 어쩌면 어른들과도 큰 차이가 없는지도 모른다. 이 장에 익숙한 책들이 많이 나왔다. [도서관에 간 사자] 부터 시작해서 긍정적 타임아웃을 다룬 [제라드의 우주 쉼터]도 나오고 [소피가 화나면 정말정말 화나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말] 등등. 이를 통해 규칙, 감정조절, 행동조절, 바른 언어 생활 등을 배운다.

이렇게 하여 총 82종의 알찬 놀이가 소개된다. 적당히 큰 판형에 너무 빡빡하지 않고 부담없는 지면 구성이 편안하다. 사진자료와 설명도 시원시원하고 간결한 느낌이면서도 과정과 상황을 잘 파악할 수 있게 되어 있다. 일단 일독해 두었다가 필요할 때 다시 찾아 읽으면 도움이 많이 되겠다. 읽으면서 유치원 선생님들의 수업강도와 준비작업에 새삼 감탄을.... 이런 과정을 거쳐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오는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되었고, 학교에서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도 생각해보게 된다. 모든 걸 떠나서 몰랐던 그림책 몇 권, 새로운 아이디어 몇 개를 챙긴 것만으로도 책을 읽은 보람은 넘친다.

유초중을 막론하고 머리를 맞대고 연구하고 적용하고 사례를 모으고 정리하는 교사들의 열정은 눈부시다. 교육현장이 갈수록 힘들지만 이런 선생님들의 책이 세상에 나와 조금씩이라도 더 비옥해질 거야, 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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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카와 겁을 먹고 자라는 돼지 우리학교 그림책 읽는 시간
루이제 미르디타 지음, 윤혜정 옮김 / 우리학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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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제...는 많이 들어본 이름이지만 미르디타...는 처음 들어본다. 독일의 작가라고 한다. 그런데 1994년생...? 와우, 20대의 젊은 작가네. 앞날이 창창한 젊은 나이에 이런 열매를 맺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니 부럽다. 그림책에 대해 전문적으로 알진 못하지만 이 책은 참 잘 만든 것 같다. 그림도 아주 인상적이고 메시지와 상징도 좋다.

절반정도까지는 단색의 그림인 줄 알았다. (완전 흑백은 아니고 약간의 갈색조. 그래도 무채색의 느낌이 든다.) 절반 이후부터는 조금씩 색이 들어오다가 마지막장은 완전 칼라다. 앞면지와 뒷면지도 이런 식으로 대비된다. 이건 주인공의 심리를 반영한다.

가장 큰 상징은 돼지다. 제목을 봐도 알 수 있다. <아니카와 겁을 먹고 자라는 돼지> 근데 난 제목이 거의 답을 말해주는 게 살짝 아쉽다. 독일어를 몰라서 확실치는 않지만 원제는 그냥 '아니카와 불안 돼지' 정도인 것 같은데. 그것도 좀 어색하고.... 고심해서 고른 제목일테니 가장 적당할테지만 그래도 제목은 간결해야 더 매력적이었을 것 같다. '아니카와 어떤 돼지' 정도? 이건 너무 밍밍하고, 아이고 모르겠다!^^;;;;

어두운 밤 아니카의 침대에 처음 나타난 돼지.
"처음 나타났을 때, 돼지는 아주 작았어요."
그러나 돼지는 점점 커지고, 어디서나 아니카를 지켜보며 참견하고 무시하고 비웃는다. 아니카는 발표할 때 말을 더듬고, 심지어 가장 자신있던 노래도 망쳐버린다. 돼지의 몸집은 이제 거대해져서 존재감이 대단하다. 그림책 한 쪽에 다 들어찰 정도. 아니카를 악질적으로 놀리는 두 녀석과 함께 쫓아오는 돼지는 무시무시하다.

도망치던 아니카는 풀밭에서 한 아이를 만났다. 아이가 건네주는 달팽이를 손에 올려보며 둘은 바로 친구가 되었다. 혼자가 아니란 건 이런 것이다. "괜찮다" 라는 느낌.
그때 악당녀석들이 또 나타났다. 친구는 녀석들을 용감하게 쫓아버린다. 이 장면부터 그림은 칼라가 선명해진다.

그러나 다음날 함께 등교한 두 아이는 달팽이들이 들어있던 유리병이 악당녀석들 손에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한다. 잔인한 짓에 아니카는 분노한다. 녀석들에게 진심으로 화를 낸다. 당당하게!

돼지는 어느새 처음처럼 작아져 있다.
"돼지는 점점 작아지고 있어요.
그렇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요.
그러니까 돼지를 제대로 다루는 방법을 알아야 해요."
돼지를 제대로 다루는 방법이란 어떤 것일까?^^

내 안의 돼지의 존재에 난 공감한다. 아이들도 대부분 그러리라 생각한다. 겁을 먹으면 먹을수록, 그걸 영양분 삼아 무럭무럭 자라는 돼지.... 있는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게 막고, 나의 도전을 비웃고, 열등감과 무력감에 빠뜨려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하는 돼지. 이 돼지의 존재를 인식하고 조절할 수 있다면, 장벽에 막히지 않고 아니카처럼 나아갈 수 있을 텐데. 겁이 앞서서 있는 능력도 발휘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아이들에게 이 책은 인생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숨지 말자. 당당히 말하자.

또 한 가지 중요한 것. 그런 마음을 낼 수 있도록 안정된 마음을 준 건 친구라는 존재였다. 옆에 있는 존재. 단 한 명이었어도 없는 것과 있는 것은 하늘과 땅 차이였다. 커져버린 돼지에 짓눌린 이가 있다면 옆에 있어주는 것. 꼭 필요한 일이다.

손에 잡히지 않는 마음의 어떤 작용을 '돼지'로 형상화한 것은 아이들을 위해서 참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다룰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이미지가 인식되기 때문이다.
"돼지에게 먹이를 주지 마."
"돼지의 비웃음에 굴복하지 말아요."
겁쟁이들이 많은 교실이라면 이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겠다. 돼지에 맞서는 일에 서로서로 격려해 준다면, 여기저기서 즐거운 자기 고백들이 쏟아져 나올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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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풀니스 - 우리가 세상을 오해하는 10가지 이유와 세상이 생각보다 괜찮은 이유
한스 로슬링.올라 로슬링.안나 로슬링 뢴룬드 지음, 이창신 옮김 / 김영사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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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이 좋다길래 독서모임에서 읽을까 하고 여쭈었더니 다들 찬성하셔서 읽어봤다. 독서력이 좋으신 분들께는 심심풀이 책이 될지 몰라도 나한테는 꽤 걸리는 책일거 같아 개학 전에 읽으려고 서둘러 구입했다. 예상대로 속도가 쭉쭉 나는 책은 아니었다.(내게는) 하지만 매우 흥미로운 건 사실이었다. 왜냐하면 내가 당연히 그런줄만 알고 있던 것들을 대부분 부정하고 새로운 시각에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호 그렇구나 끄덕끄덕' 하면서 동시에 한쪽 마음은 '그런데 이건 맞는 해석이야?' 라는 의심이 계속 드는 것은... 저자가 말한 본능 중에서 부정 본능인가?ㅠ 그래도 일단 오호 끄덕끄덕 쪽에 집중하자 마음먹고 읽어나갔다.

저자는 독자들에게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게 하려고 이 책을 썼다. 팩트풀니스(사실충실성)라는 저자의 신조어가 그것을 말해준다. 그것을 가로막는 인간의 극적인 본능 10가지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1. 간극 본능
인간에게는 이분법적 사고를 추구하는 강력하고도 극적인 본능이 있는 것 같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래서 세상을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로 나누고 그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가 보여주는 통계에 따르면 양 극단 사이에 중간층이 존재하며 우리의 고정관념보다 그 층은 실제로 훨씬 두텁다는 것이다.
세상을 두 집단으로 나누는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자는 4단계 구분법을 사용했다. 저자가 설정한 소득수준 4단계에 따르면 나는 4단계(가장 높은 층)에 해당되었다. 일일소득 32달러 이상을 4단계로 분류했는데 32달러면 4만원 정도일텐데 내 직종의 최고 호봉에 거의 다다른 나는 이보다 훨씬 많이 번다. 우리나라 최저임금도 8시간 일한다고 쳤을 때 1.5배가 넘는다. 그렇다면 극심한 사각지대에 처한 빈곤층 말고는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이 4단계라는 뜻 아닌가? 저자도 "이 책을 읽는 사람이라면 4단계 삶을 살 게 거의 분명하다."고 밝히고 있으며 "독자가 사는 나라에서 가난이라고 하면 '극도의 빈곤'이 아니라 '상대적 빈곤'을 뜻한다." 라고 말한다. 저자의 4단계 구분법에 따르면 1:3:2:1 정도로 중간층인 2,3단계가 많은 것이 확실하다. 그런데 이 구분과 기준값이 합당한가? 약간은 갸웃한다.

저자는 인류의 삶의 질이 하락보다는 향상되었으며 격차도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극단적이지 않음을 말하는데 여기에 온마음으로 동의되지 않는 것은 역시 상대적 박탈감을 염두에 둔 탓이겠지? 지인이 어떤 책을 읽고 "옛날에 안 태어나고 지금 태어나서 너무 다행이다' 라고 말하던 게 생각났다. 지금의 세상이 지옥이라고 한다면 예전의 세상은 그보다 더한 지옥이었던 거지.... 인류는 진보해가고 있다. 그건 사실이다. 4단계 소득수준이 대다수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가용을 소유하는 것, 원하는 가전제품을 대부분 사용하는 것, 끼니를 걱정하지 않고 때로는 외식에 비싼 돈을 지불하는 것 등이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지 못한 형편을 끔찍하게 여길 뿐.... 그런데 과거를 조금만 기억해보면 어릴때 아버지 월급날이나 되어야 엄마는 고기를 사다가 맛있는 반찬을 해주었고, 끔찍하게 덥던 어느 해 여름 나는 만삭이었는데 에어컨을 살 엄두도 내지 못했었다. 지금은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누리고 있지만.... 그러니 우리가 체감하는 빈곤이란 저자의 말처럼 상대적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상대적인 것에서 우위를 점하고자 몸부림치다보니 우리의 삶이 피곤하고 만족이 없고 불행감에 젖어 사는 것이 아니겠나. 안써도 되는 사교육비에 생활비를 쏟아붓고 비정상적인 집값을 지불하면서도 대도시에만 모여 살고... 하지만 어떻게 과거보단 낫다는 이유로 현재에 감사하며 사는 우리가 될 수 있을까. 그래서 좀더 여유있게 주변을 둘러보며 살고, 다양한 직업과 삶의 방식에 자족하며 살 수 있을까. 그것을 모르겠다. 이것이 문제로다.

2. 부정 본능
우리는 세상이 점점 나빠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우리 안의 부정본능(좋은 것보다 나쁜 것에 주목하는 본능) 때문이다. 그 원인은 과거에 대한 호의적인 기억(과거는 아름다워~), 자극적이거나 선별적인 보도들(하긴 괜찮은 건 뉴스거리가 되지 않으니까), 이런 세상을 좋다고 말하면 감수성 없는 사람인거 같아서? 등이 있겠다. 솔직히 세번째가 젤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저자는 강하게 말한다. "나는 순진한 소리나 떠벌리는 낙천주의자가 아니다. 나는 아주 진지한 가능성 옹호론자'다." 라고. 즉 세상에 있는 문제를 외면하자고 말하는게 아니라는 것, 발전을 인정하는 것과 더 큰 발전을 위해 싸우는 것은 상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3. 직선 본능
도표의 선이 직선으로 계속 뻗어나갈 것으로 직관하는 본능이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현상은 도표상으로 다양하게 나타난다. S자 곡선, 미끄럼틀 곡선, 낙타혹 곡선 등등... 그러므로 세상은 현재까지의 추세대로만 반드시 직진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이 장은 이해하긴 쉬웠다. 그리고 수학시간에 그래프를 가르칠 때 "이 그래프의 다음 값을 예상해보세요.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같은 문제들이 기억났는데 매우 조심스럽게 설명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도 든다. 저자의 이 주장은 저자의 전체 주장을 함정에 빠뜨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세상은 어쨌든간 통계적으로 좋아지고 발전해 왔다고 주장하는 것인데, 지금 이 시점 혹은 아주 가까운 미래가 그래프 상 급락이 시작되는 정점이라면 어쩔 것인가? 아이고, 난 아무래도 저자가 말하는 부정본능과 공포본능에 휩싸인 사람인건가. 일단 다음 장으로 넘어감.

4. 공포 본능
공포는 생존을 위한 본능이지만 위험을 과대평가해서 세상을 오해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자극적인 언론이나 선동가들은 침소봉대를 전략으로 삼는 것이 아닐까. 우리가 흔히 음모론, 괴담이라 부르는 것도 같은 맥락인 것 같다. 나도 살면서 괴담이나 침소봉대에 부화뇌동하고 흥분한 적이 없지 않았기에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저자가 괜찮다고 하는 것들이 진짜로 괜찮은건가에 대해선 의심이.... 예를들면 방사능에 대한 내용 같은 것... 저자가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통계를 보는 방식이고, 때로는 그 안에 잡히지는 않으면서 도사리고 있는 어떤 실체가 있을 때도 있지 않을까.

5. 크기 본능
우리는 제시된 어떤 수치를 보면서 흥분하기 쉽다. 하지만 비교 없이 한 수치만 보면 비율을 왜곡하고 중요성을 오판하기 쉽다. 대중을 호도하기 위한 수치를 던지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걸 판별하는 눈을 가져야겠다.

6. 일반화 본능
사람들은 범주를 정하고 그 안의 특징이 동일할 거라는 일반화를 하곤 한다. 저자도 젊은 의사 시절 엉터리 일반화를 믿고 널리 퍼뜨린 부끄러운 과거를 고백했다. 특별한(예외적) 사례를 전체인 것처럼 인식하는 것, '다수'라는 말 속에도 다양한 층위가 있음을 간과하는 것 등을 조심해야겠다.

7. 운명 본능
터고난 특성이 사람, 국가, 종교, 문화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생각을 말한다. 그래서 그 집단이 현재 어떠한 것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고 앞으로도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읽고 보니 나도 이런 경향이 꽤 있는 것 같다. 이것이 곧 우월감이나 편견을 가져오는 것 아닐까. 아주 더딘 변화도 무시해선 안된다는 것, 어떤 지식은 유통기한이 빠르니 항상 업데이트 해야 된다는 것을 이 장에서 배웠다.

8. 단일 관점 본능
이 장에서 가장 많이 나를 돌아보았다. 주의를 사로잡는 한 가지 관점에 혹해서 그 관점으로만 세상을 보려는 경향이 내게도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에게도 매우 많아 보인다.
"이런 식으로 생각하면 시간이 많이 절약된다. 어떤 문제를 밑바닥부터 배우지 않고도 의견과 답을 낼 수 있고, 따라서 다른 문제에 신경 쓸 여유도 생긴다. 하지만 세계를 이해하는 데는 올바른 방법이 못 된다. 특정 생각에 늘 찬성하거나 늘 반대한다면 그 관점에 맞지 않는 정보를 볼 수 없다. 현실을 이해하고자 한다면 이런 식의 접근법은 대개 좋지 않다." (267쪽)
이 점을 인식한다면 불필요하면서도 사나운 논쟁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소극적이고 귀찮아서 논쟁 같은 건 웬만해선 하지 않지만, 세상을 보는 눈이 단선적이라는 점은 깊이 인정한다. 망치와 못의 비유가 매우 적절하다. "내가 좋아하는 생각이 망치라면 드라이버나 스패너 또는 줄자를 가진 동료를 찾아보라." (288쪽)

9. 비난 본능
이 내용은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의 경향을 아주 잘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뭣 때문인지 우리는 울분에 차 있고 '팰 놈'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 있으며 일단 찾으면 작신작신 밟아서 만신창이로 만들어 놓는다. 힘들게 진실을 밝혀내도 아님말고 하면 끝이다. 양심적으로 역할을 수행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사회 기반을 구성하며, 그 사회 기반에 많은 덕을 보고 살아가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감사를 떠올리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세계를 정말로 바꾸고 싶다면 누군가의 면상을 갈기겠다는 생각을 버리고,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부터 이해해야 한다." (315쪽)
악당이나 영웅보다 원인과 시스템에 집중하자는 저자의 의견에 크게 동의한다.

10. 다급함 본능
지금 당장 결정하라며 몰아치는 일 중에 실제로 다급한 것은 많지 않다. 오히려 차근히 따져보지 않아 우를 범하는 경우가 더 많다. 현실적인 것은 극적이지 않은 것이 더 많다. 말하자면 우리는 더 침착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부화뇌동하지 말고.

혹여나 이 책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개혁이나 혁신 의지를 꺾는다거나 좋은게 좋은거지 뭐~ 하는 안일한 생각을 갖게 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이 약간은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진실을 보는 정확한 눈이다. 그것을 토대로 하지 않은 외침이나 주장이 힘을 가질 리 없다. 저자는 말한다. "사실에 근거한 세계관은 삶을 항해하는데 더욱 유용하다. 그리고 사실에 근거해 세계를 바라볼 때 마음이 더 편안하다는 것이다." (365쪽)
마음 편하기 위해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나? 그게 중요한거야? 라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내내 들었는데.... 중요한 것 같기도 하다. 조급하고 비관적이고 절망적인 관점에서는 시야가 좁아지니까.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노력도 반드시 해야하지만 좀더 많은 사람이 좀더 적절하게 더 넓은 안목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을 잘 읽었다고 생각한다. 참말로 사람은 평생 배워도 부족하구나. 내 분야에 전문성을 쌓고 겸손하며 신중할 것. 이 긴 리뷰에서 내게 적용할 요약은 딱 이 한 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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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 열두 달 이야기 - 교사와 학부모를 위한 교실 생태계 안내
한희정 지음 / 이후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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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력이 몇년이나 되었더라.... 이젠 까먹는다. 25년 넘었다. 30년은 안됐고.... 이정도면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이겠지? 미안하지만 그렇지가 않다. 내 경험은 한정되어 있다. 그 무엇보다도, 이날 이때껏 1학년을 안해봤다는 거! 5,6년 전까지만 해도 이게 커다란 핸디캡은 아니었다. 내가 굳이 지원하지 않아도 1학년 지원자들이 부족하진 않았다. 그보다 더 옛날엔 1학년을 주로 하시는 샘들도 많으셨다.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지금 우리 학교에선 1학년이 기피학년이다. 6학년에는 희망자가 있어도 1학년엔 없다. 몸도 마음도 축나는게 1학년이어서다. 절대 2년 연속 못한다고 정평이 나 있는게 1학년이기도 하다. 그러니 나는 좌불안석일 수밖에.... 피하자니 양심불량이고, 하자니 이 나이에 경험이 전무하다는 걸 누가 믿어주겠어? 걱정이다, 걱정.

그러던 차에 이 책이 나왔다. 내가 알고 있는 초등교사 중 가장 똑똑하고 추진력 있으며 상황파악 깊고 넓고 정확한 한희정 선생님이 쓰신 책이다. 이분의 깊이 있는 공부는 대학생들도 충분히 지도할 만한데 현장에선 1학년 전문가로 통한다. 어린 연령일수록 배움이 깊은 교사가 가르쳐야 한다는 것을 증명해 주듯이. 그의 지도는 일상적인 것에서부터 아주 세세하고 숨쉬듯 자연스러워 교육보다도 생활에 가까워 보인다. 하지만 그 밑바탕에 깊은 배움과 이론적 배경이 깔려 있다는 것이 들여다보이니 나도 까막눈은 아니라 하겠다.^^;;;

이 책은 교사와 학부모 모두를 대상으로 한 책이다. 1장은 교사, 2장은 학부모 대상의 내용인데, 서로의 내용을 살펴보는 게 피차 더 도움이 된다. 3장은 어린이 발달이라는 관점에서 교과학습 내용을 살펴보는 장이다. 비고츠키를 깊이 연구하고 교육과정에 통달한 저자의 내공이 돋보이는 부분이다. 특히 저자의 교실 속 학습 활동들을 소개하고 있어 1학년이 막막한 교사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3장의 이야기를 먼저 해보겠다.

국어에서 가장 감탄했던 내용은 아이들의 말과 글을 수업 텍스트로 되돌리는 과정이었다.
"입문기 문자교육에서 '삶을 가꾼다'는 명제는 교과서에 가두어 두었던 말공부와 글공부를 해방시켜 아이들의 삶과 경험, 배운 것을 표현하기 위해 말과 글을 부려 쓰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요? 이런 공부에는 교과서도 따로 없고 학습지도 따로 없습니다. 아이들의 생활에서 경험한 것을 나누는 과정이 교과서고, 그 교과서에 나온 말과 글을 익힐 수 있도록 역동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학습지가 됩니다." (212쪽)
이 말에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나도 고학년 수업에서 아이들의 글을 소식지 형태의 얇은 문집으로 만들어 그걸 수업시간 텍스트로 활용한 적은 있었다. 물론 글의 완성도는 교과서에 비할 바가 못되지만 몰입의 깊이는 훨씬 더하다. 그런데 1학년의 말과 글로도 그런 수업이 된다고? 저자는 '주말 이야기 나누기'를 그렇게 활용했다. 화자(발표자) - 청자(나머지 친구들) - 조언자 및 기록자(교사)의 구도로 진행하니 이게 가능하구나. 교사가 정선하여 즉석에서 타이핑한 문장들을 아이들의 희망대로 출력하여 여러가지 활동의 자료로 활용한다. 마지막에는 묶어서 책으로 만든다. 이 과정에 아이들에게는 표현과 공유, 숙달, 교사에게는 진단활동 등이 모두 포함된다. 학문적 바탕이 제대로 깔려있고 깊은 고려가 들어간 수업에선 이렇게 동시다발적 효과가 나타난다. 교사의 공부는 그래서 필요하구나.

그 외에 낱말불리기 공책, 수업활동 후 돌아가며 소감 말하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교사가 문장으로 기록하기, 급수표에 의한 받아쓰기가 아닌 학급 이야기 받아쓰기 등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있다. 모두 하나의 활동에 두 가지 이상의 의도와 효과가 있다. 심지어 기록과 평가까지 동시에 진행된다. 저자처럼 대외적으로 바쁜 교사가 학급살이를 어떻게 그렇게 알차게 꾸려갈까 늘 궁금했었는데, 중요한 비결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수업준비 따로, 수업 따로, 기록 따로, 평가 따로 하다보면 하루종일 동동대도 시간이 부족하고 마음에 여유가 없어 너그러워지기도 힘들다. 저자의 이런 노하우를 나도 많이 만들고 싶다.

수학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며 아이들의 발달에 대한 이해가 지도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깨닫는다. 그 이해가 있으면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지도할 수가 있다. 일상의 경험에서 시작해 구체와 추상으로 유연하게 넘어가는 길은 수업을 '예술'로 비유했던 책의 내용을 떠오르게 한다.

국어, 수학에 이어 통합교과에서도 성취기준과 교과내용을 정리한 표가 나오는데 솔직히 지도서를 숙독하지도 않고 수업내용만 확인하고 수업을 준비하는 경우가 많았어서 이렇게 정리된 표는 참 유용해 보인다. 특히 경험을 바탕으로 서술해놓은 단원별 유의점들은 매우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주겠다. 대주제별로 소개된 몇몇 활동들에도 의미가 충실했다. 나눔장터(알뜰장터)는 나도 거의 매년 하는 활동인데 기부로 이어가지는 못했다. (소심하고, 먼지만큼이라도 치사한 소리 듣는 걸 못 참아서 그렇다...ㅠ) 여기에서 좋은 팁 하나를 얻었다.

거꾸로 올라가서, 2장에는 학부모가 궁금해하는, 알아두면 이해에 도움이 되는, 알고 있어야 오해하지 않을, 몰랐을땐 겁났지만 알고 보면 별게 아닌.... 등등의 알짜 정보들이 가득하다. 학부모의 이해를 돕는 것은 저자 뿐 아니라 모든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인 바, 어떤 게 필요한 정보인지, 어떻게 설명하고 이해시킬지 참고하려면 교사들도 꼭 읽어두는 게 좋겠다.

1장은 '교사를 위한 월령가'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월별 교실살이에 대한 내용이다. 월별로 꼭 처리해야 할 일이나 시기에 따른 수업 내용 등이 나와 도움이 많이 된다. 그러나 이것들보다도 가장 인상적인 것은 아이들을 대하는 저자의 태도와 마음가짐이다. 아직 모든 면에 낯설고 미숙한 아이들을 충분히 감안하여 대비하는 마음, 성장을 지켜보며 놀랍고 흐뭇한 마음, 정들어 헤어지기 싫은 마음까지. 1년의 사랑의 기록이라고 하겠다. 저자가 아무리 지적으로 월등한 교사라 해도 이런 면이 없었다면 쭉정이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보다 백배 우수한 교사인 저자도 교실 속 혼돈에서 때로는 아찔한 순간도 만나고 아차 싶은 순간도 있고 이게 맞나 고민하기도 한다. 모든 영역을 커버해야 하는 초등교사는 신이 아니므로 모든 면에서 완벽할 수 없고 천리안이 아니므로 모든 상황을 다 꿰뚫고 있을수도 없다. 다만 자신의 배움과 경험의 토대에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뿐이다. 그런 의미에서 학부모-교사, 학생-교사 간에 서로에 대한 신뢰와 호의가 일단 전제되었으면 한다. 이게 너무 지나친 욕심일까.ㅠㅠ

아까 3장에서도 기록에 대해 잠깐 언급했는데 1장을 읽으면서도 내가 적용 포인트로 붙잡은 낱말은 '기록'이다. 나는 쓰는데 거부감이 없는 편인데도 매년 마음먹어도 이 '기록'이 쉽지 않다. 저자는 그것을 그때그때 바로바로 현장에서 하는 노하우를 터득하신 것 같다. 기록에 의한 학교생활 통지와 그에 따른 학부모의 회신에는 신뢰가 가득했다. 이 기록은 또 상담으로 이어진다. 가슴이 뛰었던 구절을 그대로 옮겨본다.
"아주 작은 진보지만 그 작은 진보를 서로 확인할 수 있는 것. 그래서 나는 이런 진보의 기록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기록합니다. 그 다음은 기록을 통해 기억을 갱신하고 오늘을 갱신하는 것입니다." (93쪽)

또 아이들의 학습결과물 하나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잘 갈무리하며 가정에 확인시켜 주는 것도 여러 면에서 중요하다. 책으로 엮어주는 방식을 선호하시는 것 같다. 아이들의 학습 결과물을 소중히 여겨주고 공유하며 소통의 자료로 삼는 것은 나도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것인데 저자처럼 체계적이지는 못했다. 큰 그림을 그리고 실행을 해봐야겠다. 그리고 1년이 다 지난 후 가정에 보내주는 방식보다는 중간중간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면 다음 활동에 탄력을 받을 수 있겠다. 저자는 부모님의 소감을 회신서로 받으시던데 이건 아이의 성장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지고 연대하는 두 주체의 소통인 것이다. 그걸 알면서도 난 이걸 잘 시도하지 못한다. "아우 성가시게 뭐 어쩌라고~" 이런 말이 환청으로 들려서리....;;;;; 이 부분 고민이 좀 더 필요하겠다. 어쨌든 일관적인 계획에 의한 아이의 결과물은 아이의 '역사'다. 이 소중함을 알고 있지만 다시 한 번 상기한다.
"발달은 곧 역사입니다." (110쪽)

사실 난 올해도 1학년을 희망할 생각은 없기 때문에(희망대로 되는 건 아니라서 어찌될진 모르지만), 평소 한희정쌤의 글을 사랑하는 사이가 아니었다면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았을 것이다. 읽으면서 몇번이나 읽기를 얼마나 다행인가라고 생각했다. 1학년 교사들에게는 말할 것도 없는 필독서이고, 다른 학년 교사들에게도 여러가지 시사점들이 있다. 한희정쌤을 보면서 지적인 힘을 공공을 위해 사용했을 때의 선한 영향력을 본다. 그는 어떤 의미에서 시치프스의 돌 같은 공교육을 떠받치고 희망을 이야기하려 애쓴다. 그 희망에 작은 돌 하나라도 괴고 싶은 맘 간절하나 체력도 지력도 부족함이 한이로다....;;;; 한쌤은 계속 배움과 실천을 글로 쓰셔야 한다. 나는 계속 충실한 독자가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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