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아의 숲 큰숲동화 14
유승희 지음, 윤봉선 그림 / 뜨인돌어린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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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이 나오면 꼭 챙겨보는 유승희 작가님의 책이라서 읽었는데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느낌이 든다. 세상에 참 안타까운 일이 많고 이 책의 세아 모녀 관계도 그러하지만 이토록 무섭고 기괴하게 그려내다니. 잘못된 부모노릇의 비극을 극대화하여 나타냈다는 느낌이다. 하지만 모른다. 내가 모르는 곳에 이 책보다 더 큰 비극이 있는지도.ㅠ

유승희 님의 동화에선 아이가 화자나 주인공이 아닌 경우를 많이 본다. 이 책에서도 화자는 교사지망생(임용고시 준비생) 민희 씨. 초등임용생이면 후배인지라.... 동질감 비슷한 게 느껴졌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잇따른 임용실패로 엄마와의 관계가 껄끄러운 민희 씨는 구인광고를 보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담양 무릉리라는 마을에서 한달 입주 가정교사를 구한다는 내용이었다. 보수가 후하다는 단서와 함께.

홀린 듯 그곳을 찾아간 민희 씨는 심상치 않은 일들을 마주하지만 "일단 가보자" 식의 마음으로 숲 속의 저택에 도착하고, 세아 모녀를 만나고 세아 엄마와 '계약'을 한다. '세아가 검정고시에 붙을 때까지 지도해준다'는 계약. 세아는 아주 똑똑했고, 검정고시란 그닥 어려운 시험이 아니기 때문에 계약은 아주 무난해 보인다. 하지만 이 일은 저택에 걸린 '에셔의 상대성' 그림처럼 끝도 시작도 출구도 찾을 수 없는 일이었다. 화가 출신인 작가가 배경으로 넣은 이 그림은 의미심장할 것이라 짐작해본다. 우리가 많이 보던 그 계단 그림 말이다. 올라가도 올라가도 꼭대기가 아니어서 끝없이 반복되던 그 계단.....

그렇다. 민희 씨는 계약을 함과 동시에 빠져나올 수 없는 그 '세계'에 빠져버린 것이었다. '그 시점'에서 멈춰버린 세아와 세아 엄마의 세계에. 여전히 딴 곳을 보고 딴 것을 갈망하는 그들의 세계에. 알면서도 모른척 돌아가는 그들의 세계에.

세아 엄마는 다시 '이쪽' 세계로 돌아올 수 없음을 알면서도 세아의 학업을 위해 가정교사를 고용하며, 올 수 없는 세아 아빠를 위해 매일 밤 파티를 준비한다. 세아는 엄마가 원하는 것을 하는 '시늉'만을 하면서 마음 속 깊은 곳으로는 누군가가 옆에 있어주기를,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따뜻한 엄마와 때로는 토닥이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걸 말할 수 있기를.... 기다린다. '그 시점'에 멈춘 이 상황에도 그들은 그러하다.

'그 시점'이란.... 차마 말하고 싶지 않다. 책 속에서도 명확히 표현해놓지는 않았다. 물론 충분히 짐작 가능하지만....ㅠㅠ 이 부분은 작년 화제 드라마였던 '스카이 캐슬' 보다 괴기스러웠다. 동화라는 장르로서 본다면 말이다. 그래서 민희 씨의 계약은 결코 이뤄질 수 없는 것이었고 에셔의 계단처럼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이 사실을 깨달은 민희 씨는 몸부림친다.

이 세계의 균열은 연락 안되는 딸을 찾아 마을까지 찾아온 민희 씨 엄마로부터 시작된다. 늘 투닥거리던 모녀. 구박에 가까운 잔소리를 퍼붓던 엄마. 아버지가 사고로 일찍 죽은 후, 먹고 살기도 힘들어 어린 민희에게 너무 많은 것을 맡겼던 엄마. 지금도 무뚝뚝한 엄마. 하지만 딸의 실종 앞에서 물불 안 가리는 엄마의 모습은 세아의 마음을 흔든다. 세아의 결단은 이 '세계'에 균열을 내고 마침내 세계는 무너져 덮여버린다. 그 와중에 오간 말들.
"엄마도 네가 행복하길 바라. 네가 다 자라면 엄마에게 고마워할걸. 다 너를 위한 일이야."
"다 자라서가 아니라 지금 행복해지고 싶다고!"
"널 위해 뭐든 다 해 줬는데....?"
"엄마는 내가 엄마를 사랑했는지도 모를 거야.... 안녕..."

'세계'를 건너와 엄마에게 달려가는 민희 씨의 모습은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었다. 대비되는 세아 모녀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을 섬뜩하게 할 것이다. 극단적인 모습이긴 했지만 우리 안에 그 모습이 없다고 단언할 사람 있을까?
자식 키우는 것의 엄중함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자식을 수단으로 삼는, 심지어 학대하는 부모도 없는 것보다는 나을까? 잘못된 부모됨의 비극은 어디까지일까?

어른이 봐야할 동화라는 생각도 들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더 많이 보게 될 텐데, 아무쪼록 아이들이 민희 씨 엄마를 자신의 엄마로 느끼길, 그래서 불현듯 깨달은 듯이 엄마에게 달려가 한번 품에 안겨 보길 바란다. 자신이 세아라고 느끼는 아이가 있다면 부디 용기를 내 보기를.... 그 '세계'에 갇혀 버리기 전에. 부디....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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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 거라면 자다가도 벌떡 신나는 책읽기 53
조지영 지음, 이희은 그림 / 창비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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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입에 짝짝 붙는 찰진 동화를 만났다. 책은 어제도 오늘도 쏟아져 나오는데 이상하게 한동안 슬럼프처럼 스파크가 안 일어날 때가 있다. 오늘 이 책을 읽음으로 모처럼 작고 예쁜 불꽃 하나가 튀었다. 좋은 징조다.ㅎㅎ

세 편의 연작 단편이 담긴 동화집이다. 주인공들은 금빛초등학교 1학년 차돌이네반 아이들이다.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
학교에 '똥 사건'이 일어났다. 1학년 화장실 바닥에 탐스런 똥무더기. 법석 떨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는 아이들이 이 호재를 놓칠소냐. 소리지르고 몰려다니고 아이구 생각만 해도 골아프다. 범인은 잡히지 않고 점점 미궁에 빠져가는 사건 때문에 교감 선생님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는데... 결국 똥무더기의 주인공은 밝혀질 것인가?
똥이야기 중에 가장 강력한 송언 선생님의 <마법사 똥맨>과 견주어도 될 만큼 강력한 똥펀치를 날린다. 예측이 어느정도 가능하긴 하지만 반전도 유쾌하다.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할지 눈에 선하네.ㅎㅎ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두번째 이야기는 참 잘 먹는 송이가 주인공이다. 송이네 엄마 아빠는 나와 비슷한 점이 많다. 보고 있자니 공감도 가면서 좀 찔린다.
"엄마는 많이 바라지도 않아. 우리 송이가 그냥 다른 친구들 하는 만큼만 하면 좋겠어. 너무 잘할 필요도 없고 그렇다고 너무 못하지는 말고. 그래야 친구들이 싫어하지 않지."
안전빵, 무난한 인생을 추구하는 나와 '튀지 말고 중간만 가라'하는 이 부모는 본질적으로 같다. 사실 송이 정도면 무난한 건데, 유난히 좋은 식성을 걱정한 부모는 "급식은 꼭 한번만 먹어. 대신 집에 와서 간식 마음껏 먹기."라고 약속을 한다. 하지만 인생은 마음먹은대로 되기 힘든 법. 송이는 어느새 친구들 앞에서 '잘 먹는 아이'가 되어있고 공개수업날 엄마 아빠는 신나고 행복한 송이의 모습을 바라본다. 평범하기는 커녕 튀는 딸의 모습을.
그렇다고 평범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강요된 평범, 조장된 튐이 문제인 것이지. 본인의 기질대로 행복하게 살도록 격려해 주는 게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산 넘고 물 건너]
보통 단편집의 제목은 단편들 중에서 대표작 하나를 골라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책에는 표제작이 없다. 하지만 굳이 뽑자면 이 작품이 표제작이라 할 만하다. '노는 거라면 자다가도 벌떡'이라는 표제와 가장 연관성이 많은 작품이다. 그동안 조연으로 나오던 차돌이가 전면에 등장한다. (난 개인적으로 차돌이란 이름의 느낌이 참 좋다^^)

이 작품을 읽으면서는 교사로서 뜨끔한다. 작가도 초등학교 교사시라고 한다. 같이 느끼는 미안함일 것이다. 현실적인 안전의 문제와 아이들의 욕구 사이의 괴리.

차돌이는 엄마 출근시간 때문에 일찍 등교하게 됐다. 그만큼 놀 줄 알고 신이 났는데 웬걸, '학교보안관' 아저씨에게 잡혀 도서실로 안내되었다. (모든 학교가 비슷하다. 정식 등교시간 이전에는 도서실에서 '아침돌봄'이 진행된다. 물론 수요가 있으니 생겨난 것) 차돌이는 왜 학교에서 맘껏 뛰놀 수 없는지 그것이 의아하다. 쉬는 시간에 찔끔 노는 것 정도로는 절대 직성이 풀리지 않는 것이다.

어느날 차돌이는 지각이 잦은 유리의 비밀을 알아냈다. 학교 옆 동네 놀이터에서 놀다 오는 것이다. 오잉, 이런 신세계가 있었다니! 그러나 그것도 학교와 집에 알려져 좌절... 그러던 어느날 등교길에 만난 삼총사는 즉흥적으로 산을 향하고, 그 아이들을 따라간 보안관, 교감, 담임선생님은....

"금빛 초등학교 운동장은 아이들 노는 소리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용할 날이 없었대."로 끝나는 해피엔딩이다. 동화는 해피엔딩이지만 현실의 문제는 물론 여전히 남아있다. 이 책을 읽으시고 부모님들이 "맞아! 학교에서 아이들을 놀게 해줘야지!"라고 하시고 방과 후 시간에 학원 뺑뺑이를 돌리신다면 앞뒤가 안맞는다고 생각한다. 우리들이 어릴 때 어떻게 놀았는지를 기억해본다. 학교 끝나면 누구네 집에선가 모여서 숙제를 후다닥 마치고는 책가방을 팽개쳐둔 채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놀았었지. 동네 뒷산으로 언니, 오빠들이 동생들 손 붙잡아 주며 함께 가서 놀다 왔었지. '놀이'의 책임은 어른들 모두가, 가장 크게는 부모가 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이 다니는 학원 하나씩만 줄여도 지금처럼 놀이터에 아이들 씨가 마르지는 않을 텐데.

그러나 나는 이 동화가 말해주는 아이들의 마음만은 늘 기억하려고 한다. 뛰어놀고 싶은 아이들의 마음. 놀면서 자라나는 아이들의 마음. 학교라는 짜여진 시간, 공간, 커리큘럼 안에서도 최대한 아이들과 콧바람을 쐬고 뛰어놀기를 추구하려 한다. 운신의 폭이 좁은 나는 아마 파격적이진 못할 것이다. 아이들이 더 놀려면 사회 전체가 바뀌어야 한다.

뭐가 그리 할게 많은지 책읽어주기가 뜸했던 요즘, 이 책으로 다시 문을 열어야겠다. 아이들의 이야기도 들어볼 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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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좋은 가을날 집에서 한발자국도 안나가고 뒹굴며 놀았다. 뒹굴때는 만화가 제격인데 오늘은 새로 도서실에 수서한 만화를 두 권 집어왔다. 하나는 400번대, 또 하나는 500번대다. 말하자면 과학(기술)분야라는 말씀.

전자는 정재승 교수가 참여한 <정재승의 인간탐구 보고서>, 후자는 백종원씨가 참여한 <백종원의 도전 요리왕>이다. 둘 다 1권이다. 후속편이 계속 나올거란 뜻이다.

 

 백종원씨는 외식업체 사장, 말하자면 장사꾼이지만 참 남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그의 요리책을 한 권 사보았고 공개된 레시피로 각종 양념장도 만들어 보았다. 적당히 대중적인 맛이 난다. 즉 실패할 염려는 거의 없는 맛이라는 것이다. 가끔 TV에서 멘토 역할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 한 분야에서 쌓은 그의 전문성과 투철한 직업의식을 볼 수 있어서 나를 돌아보는 기회가 되곤 한다. 그가 어린이책에 도전하다니. 그의 유명세와 이미지를 잘 살린 기획이라는 생각이 든다.

백종원씨가 어린이 요리 프로그램을 통해 동행자를 선발하여 함께 음식여행을 떠난다는 컨셉이다. 딱히 배운 건 없지만 왕성한 식욕과 천부적인 미각을 가진 나래, 학구적으로 요리를 대하는 노력파 보담이, 고기를 넘나 사랑하는 세찬이, 이 세명이 뽑혀 백대표와 동행하며 때때로 요리대결도 펼친다. 음식에 대한 지식을 접하면서 대결에 대한 긴장감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잘 팔릴만한 구성이란 생각이 들었다.

1권은 일본이다. 이미 우리에게 깊숙히 들어와버린 음식들이라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입맛을 자극했다. 라멘, 돈부리, 스시, 오코노미야키 등... 각 장 끝에는 만화가 아닌 정보면도 추가되어 있어 간단하게나마 일본의 역사나 문화에 대해 소개도 하고 있다.

만화의 그림체는 내 취향은 아니었는데 음식 그림에는 별 다섯 개를 주고 싶었다. 너무 먹음직스럽게 그려져서 말이다. 잘 튀겨진 돈가스를 얹은 가츠동, 반숙계란이 생생한 라멘, 지글지글 오코노미야키.... 츄릅! 먹는 즐거움은 인간에게 빼놓을 수 없는 것이고 그걸 책으로 구경하는 재미도 꽤 쏠쏠하다. 요즘 우리반 아이들과 세계 단원을 공부하며 클레이로 세계 음식도 만들어 보았는데, 아이들이 고사리손으로 스시나 카레, 피자 등을 만들면서 어찌나 좋아하던지. 이 책이 있었다면 참고가 많이 되었겠다. 2권까지 나와 있는데(중국) 3권부터는 어떤 나라일지 궁금하다. 개인적으로는 베트남, 태국 등의 아시아 나라들을 다루고 프랑스, 스페인 등 유럽도 다루면 흥미로울 것 같다.


 

정재승 교수가 기획자로 참여한 <정재승의 인간탐구 보고서>는 예고편을 보자마자 수서바구니에 담았던 책이다. 정재승 교수의 책은 한 권밖에 읽어보지 못했지만 '과학자가 글도 잘 써서 참 좋겠다', '무슨 분야든 글을 잘 써야 유명해지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난다. 그가 쓴 어린이책이라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담았는데, 이 책은 글작가가 따로 있었다. 만화 형식이라 그렇지 않았을까 짐작해본다.

'인간 탐구보고서'라니. 뭘 탐구한단 말인가. 표지를 보니 제목 위에 '어린이를 위한 뇌과학 프로젝트'라고 되어있다. 뇌과학. 관심은 있으나 내가 공부하긴 어려운 분야라 아는 건 별로 없는 상태... 이럴 때 아이들책에서 쉬운 걸 건지면 좋은데.... 1권의 부제는 '인간은 외모에 집착한다'

뇌과학이라고 하면 일단 신경세포, 시냅스 이런 걸 다루는 줄 알았는데 그건 아니고 '인간의 인식과 사고의 경향성'이라고 할까? 그래서 어떤 외계행성의 외계인들이 새로 정착할 곳을 찾아 지구에 왔다가 지구인들을 관찰하고 무지 신기해하며 그들의 행성에 보내는 보고서를 쓴다는 설정이다. 꽤 재미는 있다.^^

'인간은 외모에 집착한다' 음. 인정한다. 대체로 그러하다. 나도 내 외모를 가꾸진 않지만 예쁘고 잘생긴 사람을 보면 부럽고 인상적이긴 하다. 사실 따지고보면 껍데기일 뿐인데, 이 껍데기에 쏟는 인간의 관심과 에너지는 실로 지대하지.... 그리하여 1권에서는 외계인의 눈에 거기서거기인 지구인들이 그 미세한 차이의 외모를 가지고 구별하고 차별하는 모습들을 잘 표현했다. 2권은 '기억'을 다룬다고 살짝 예고되어 있다. '기억은 만들어진다', '조작된 기억'이란 말이 있지 않던가? 개인적으로 2권이 더 흥미로울 것 같다.

이러니 나부터도 2권을 읽어볼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은가? 출판인들의 새로운 노력과 아이디어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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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너랑 우리랑 - 건강하고 행복한 교실을 만드는 관계의 지혜
박광철 외 지음 / 교육과실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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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단 저자들의 이름부터 반가웠다. 지금은 SNS가 대세지만 얼마전까진 인터넷 사이트에서 많은 소통이 있었다. 초등교사라면 누구나 아는 '인디스쿨'이 있다. 막 육아에서 벗어나 어딘가 새로운 것을 보고 뭔가 실력을 쌓을 필요를 느끼던 내게 인디스쿨은 대단한 곳이었다. 오래 고민하고 만든 자료들을 막 댓가없이 퍼주고, 주말이면 수시로 '번개연수'들이 열리고 늦은 밤까지 눈이 반짝이는 글과 댓글들이 올라왔다.

저자들은 그당시 인디스쿨의 샛별들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어렸지만 그당시엔 연예인보다 더 멋진 선구자들이었다. 그들보다 고경력인 나도 그땐 30대였는데... 방학때 열리는 숙박연수에 수줍게 참여했을 때, 그때 날 반갑게 맞아준 샘(저자중 한분)은 노랑머리의 청년이었지.ㅎㅎ 그들이 이제 중년이 되었고, 요즘 젊은샘들 틈에는 감히 못끼는 나는 그때의 추억을 마지막으로 소환하며 이 책을 읽는다. 이제 아이돌은 아닌 그샘들은 지금도 그때의 열정을 갖고 있을까. 열정은 깊이 품고 더 원숙해진 샘들의 목소리가 내내 들리는 듯했다.

책을 읽고 시간이 지나면 기억은 희미해진다. 적용과 실천만이 무언가를 남긴다. 읽으며 실천하리라 마음먹은 것들을 중심으로 적어본다.

[1장 관계를 맺기 위한 준비]
교실환경에 대한 내용이 많은데 안정된 환경을 위해서 청결하고 정돈된 교실을 처음부터 만들고 학생들이 그 환경을 유지하게 할 것을 조언하고 있다. 이건 진짜 안되는 사람은 죽어도 안될거 같다.(몇명 떠오름ㅎㅎ) 나는 그냥 중간은 가는데, 조금 더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능력만 된다면 집이든 교실이든 깨끗한 곳에서 더 행복하다. 난 교실보다 집을 못치우고 사는데, 집이 잘 치워져 있다면 행복할거 같다. 교실도 마찬가지 아닐까. 2월 준비기간이 엄청 빡세긴 하지만 더 열심히 준비하고 아이들에게도 교실 공간을 아끼고 정리하도록 안내해야 할 것 같다. 잔소리만으로는 안되고 의미있는 역할분담 등 학급시스템이 잘 정비되어야 하며 무엇보다 노동의 가치와 책임감을 가르쳐야 한다.(노동이라니 거창해 보이는데 교사가 관리하는 교실에서 아이들이 하는 청소란 아주 기본적인 것들이다)

[2장 관계의 시작]
따말카드 활동이 맘에 든다. 이런저런 카드들을 구입만 하고 사용 안한 것도 많은데 이 활동이 정말 맘에 든다. 근데 카드 문구를 내맘에 들게 바꿀 수도 있으면 좋겠는데 그게 어려울 것 같다. 문구는 그때그때 바꿀수 있도록 제작된 것이 있다면 좋겠다. 파일로 되어있어 입력해서 출력할 수 있다거나.... 안될 말이겠지?^^;;;;

[3장 나와 너를 이해하고 협력하기]
스토리텔링을 가미한 협력 운동회가 대박이다. 작은 학교에서 하신 것이지만... 큰 학교에서도 학년 단위 정도로 가능하지 않을까. 가상의 상황에 대한 몰입도가 아이들은 대단하니까 운영만 한다면 반응은 폭발적일 것 같다. 스토리와 프로그램 창작 등 기획과 실행의 어려움이 문제다.^^;;; 또, 각장마다 관련놀이들이 소개되어 있는데 이 장에선 미로탈출 놀이가 맘에 든다.

[4장 소통과 문제 해결]
다툼을 해결하는 대화의 방법이 나와있다. 많이 사용하는 '행감바' '인사약'과 유사하다. 일단 '쿨하게 봐주기'라는 선택지가 있다는 점에서 미소가 지어졌다. 아이들은 웬만하면 봐줄줄도 좀 알아야 한다. 매사에 사과 받겠다고 달려들면 참 피곤해진다. 그러나 힘의 우위에 밀려 참는 경우도 있으니 불편함을 표현하는 절차는 꼭 있어야 한다. 여기서는 '잘지내요' '미상표'로 작명이 되어있다. 작명이야 편한 걸로 하면 된다. 여기서는 사안의 경중에 따라 교사가 이끌어가는 해결의 방법까지 상세히 서술되어 있어 도움이 된다. 나아가서 함께하는 고민해결 절차까지 나와있다. 진지하게 진행된다면 아이들이 많이 성장할 것 같다.

[관계의 매듭짓기]
학급의 다양한 이벤트 총집합이다. 이제 중견교사가 된 저자들의 내공 + 여전한 열정을 엿볼 수 있는 장이라 하겠다.

위에 쓴 것들과 같이 '이건 기억했다가 해봐야지' 하는 것도 있었지만 '아 이건 난 못해' 싶은 것도 있었다. 아이들에게도 기질 차이가 있듯이 어른(교사)도 각자가 가진 기질이 있고 그에 따라서 쉽게 되는 일도, 여간해서는 안되는 것도 있다. 난 지나치게 친밀한 관계보다는 적당히 거리가 있는 관계를 좋아한다. 스킨십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의 '친밀한 관계'(친구간 정, 사제간 정)에 나는 저자들만큼 관심이 없다. 적대, 비난, 시기가 없는 관계 정도면 족하다. 원숭이처럼 엉키고 부비는 사이보다 호랑이처럼 독립적인 관계가 좋다. 존중만 있다면.
또 나의 성향은 사람(들)과 오래 함께 있는 걸 싫어한다. 같이 있는 시간에 최선을 다하되 그 시간이 지나면 미련없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 이런 성격이라 나는 수업시간 외에 아이들과 더이상의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다. 저자들이 아이들에게 선물로 주신 그 숱한 추억의 시간들, 학급야영, 방학이나 주말에 하는 이벤트, 방과후 특별시간(학급회식) 등등은 내겐 상상만해도 고통스러운 부담이다. 그런 부분들은 내겐 전혀 적용 불가능했다. 이 책을 읽으며 오직 한가지 그점이 아쉬웠다. 내가 부족한 교사라서 그렇지 뭐.^^ 하지만 기질 차이라고 위안하며 나도 내 기질 안에서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보겠다. 특별 이벤트가 아니어도 일상 중에 취할 수 있는 방법도 이 책에는 많다.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긴 여정의 관계 이야기를 담았기에 연중 참고할 만한 책이다. 하지만 아무래도 초반부터의 일관성이 중요하므로 학급을 세우는 시기에 탐독하면 좋을 것 같다. 아직도 나의 학급 시스템은 무엇인가 딱부러지게 말하기가 어렵다. 내년 준비시기에 다시 한 번 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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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동화 2권에서 모두 같은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건물 유리창에 새들이 부딪쳐 희생되는 문제다. 전에도 종종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잊어버리고 있다가 두 권의 동화를 동시에 읽게 되니 '이 문제가 그리 심각한가?' 싶어 검색을 해보았다.

오우, 심각하구나. 신문 기사의 일부분을 옮겨본다.
"유리창이나 투명방음벽 등 투명창에 충돌해 죽는 새가 연간 800만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중에는 참매, 긴꼬리딱새 등 멸종위기종도 포함돼 있어 동물복지뿐 아니라 생태계 보전 차원에서 대책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에 환경부도 건물유리창이나 투명방음벽 등 투명창에 충돌하여 폐사하는 새들을 줄이기 위한 대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마음을 나눠주고 신경써야 할 문제들을 문학작품으로 쓰는 작가들에게 고맙다. 그것도 재밌게 감동적으로 말이다.

 

 

 

 

 

 

 

 

 

 

 

 

<휘파람 친구 / 추수진/ 샘터>


먼저 읽었던 책은 최근의 정채봉문학상 수상작인 <휘파람 친구>다. 이 책엔 두 편의 단편이 담겼는데 그중에 표제작인 '휘파람 친구'에 이 이야기가 들어있다. 이걸 주제로 내세운 작품은 아니지만 인상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외로운 아이 태호는 친구들의 괴롭힘으로부터 휘파람새 한 마리를 구해 주었다. 이후로 태호 옆엔 '이슬이'라는 친구가 생겼다. 이슬이와 여러가지를 함께 하는데 그중에 학교 유리창에 형광펜으로 줄을 긋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지막에 보니 이슬이의 정체는....   

 

 

 

 

 

 

 

 

 

 

 

 

 

<하늘이 딱딱했대? / 신원미 / 천개의바람>


그리고 이 책, <하늘이 딱딱했대?>를 읽었다. 이 책은 본격적으로 그 문제를 다룬 동화다. 궁금증을 일으키는 특이한 제목은 바로 그것을 말하고 있었다. 새들은 하늘을 날았을 뿐인데, 하늘이 딱딱했고, 그 딱딱한 하늘에 부딪친 새들은 죽거나 심하게 다쳤다.

새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 재미있고 유쾌하게 잘 담겼다. 그러면서 문제도 결코 가벼워지지 않도록 잘 다루었다. 숲속에 투명유리로 지어진 까페. 음~ 까페를 좋아하는 나는 한번 가보고 싶다. 멋지겠다. 하지만 세상에는 오직 인간에게만 좋은 것들이 너무 많다는 사실.

새들은 모여서 의논하며 여러가지 해결방법들을 찾아보았다. 돌을 떨어뜨리는 방법, 천천히 나는 방법, 나뭇잎들을 붙이는 방법 등. 하지만 생각처럼 되지 않았고 다치는 새들은 늘어나기만 했다.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은! 이것으로 인해 이 책은 유쾌해지고 해피엔딩이 되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책이 되었다. 어떤 방법이냐고? 마지막 문장을 보면 된다.^^
"아이들은 그곳을 '알록달록 똥까페'라 불렀답니다."

나 자신도 심각성을 잘 몰랐던 문제였지만 이제 아이들에게 이 책을 읽어주며 공유해봐야겠다. 신문기사를 보니 환경부에서도 대책을 마련한다고 하는데, 시민인 우리 아이들도 알고 있는게 좋겠지. 또 지구는 우리만 사는 곳이 아니란 걸 가슴깊이 느끼고 있어야 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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