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가지 책 사용법 저학년은 책이 좋아 8
박선화 지음, 김주경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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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를 권하는 책들이 많다고 들었다. 그런 동화가 많다는 사실은 확실히 안다. 내가 읽어본 것만 해도 꽤 되니까. 이 책도 그 범주에 넣을 수 있겠다. 또다른 각도에서 이 책은 시장논리에 의해 사라져가는 소중한 것에 대해 말한다고도 볼 수 있다.

시장님은 마을에 큰 도서관을 지었다. 하지만 갈수록 실망스러웠다. 돈이 되지도 않는데다가 파리만 날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장님은 임기가 끝나기 전에 도서관을 허물고 그 자리에 쇼핑몰을 짓겠다고 공언한다. 사서선생님은 눈물을 머금고 마지막 독서캠프를 준비한다.

마지막 캠프는 성황리에... 열리기는 커녕 참가자가 없었다. 빨리 정리하고 싶은 시장님이 손을 썼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참가자가 한 명 왔으니 바로 책 읽기를 끔찍하게 싫어하는 염소 매리엄이었다. 한 명의 참가자를 위해 사서 선생님은 캠프를 진행한다. 다양한 책놀이에 빠져가고 있던 매리엄은 "쓸모없는 책" 운운하는 시장님 말에 발끈하여 생각지도 못한 말이 튀어나와 버렸다.
"책이 얼마나 쓸모가 많은데요! 아마 100개하고도 1개쯤은 더 있을걸요!"

이리하여 매리엄은 시장님과 내기를 하게 되어버린 거다. 일주일 안에 책의 쓸모를 101개 찾으면 도서관를 없애지 않는 걸로. 주인공의 이런 위기 상황. 이건 독자들에겐 몰입 상황이지.^^

나 또한 101가지가 어떤걸까 궁금해하며 책장을 넘겼는데, 정말 공감가고 고개 끄덕일 것도 있었고 이건 쫌 아닌데 싶은 것도 있었다.^^;;; 일단 책의 물적 상태를 이용한 것은.... 이것도 책의 쓸모라면 쓸모지만 그걸 진정한 쓸모라 할 수 있을까? 뜨거운 냄비 받침이라든가 컵라면 뚜껑 같은 거 말이다. 으으으.... 이건 정말 내가 질색하는 거라고.... 버리는 과월잡지가 아닌 담에야 냄비받침이 웬말이냐. 이건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함. 그리고 아빠가 엄마 몰래 비상금 넣어두는 장소. 이것도 책의 역할로 동의할 수 없도다! ㅎㅎ

하지만 이런 대목엔 공감했다. "할아버지가 보고 싶으면 난 이 책을 보고 또 보곤 해. 이 책으로 할아버지를 추억하는 거란다." 이 대목에선 요시다케 신스케의 <있으려나 서점>의 한 장면이 생각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친구가 필요할 때', '좋은 생각이 필요할 때' 등엔 동의. '잎새 말리기'까진 소싯적에 많이 해본 짓이라 동의. 그 외 대부분은 책의 본질로서의 역할과는 거리가 멀어서.... 잔뜩 했던 기대에 비해서는 다소 실망했다. 고정관념을 뒤집는 발상? 그런 쪽으로는 의미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이 부분을 읽다보면 최은옥 작가님의 <책으로 똥을 닦는 돼지>책이 바로 떠오르는데, 이 책에선 마을의 동물들이 모두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책을 사용하고 있다. 똥을 닦는 것도 그중 하나다. 거기선 시장님이 책을 '읽는' 즐거움과 기쁨을 공유하기 싫어서 혼자만 책을 읽고 있는 모습으로 나온다. 결국 마을의 모든 동물들이 책은 '읽는' 것이고 그 안에 참 의미가 있다는 깨달음에 이르게 된다. 솔직히 난 그 주제에 공감하기가 훨씬 쉬웠다. 책이라는 물건으로 할 수 있는 일이 101가지, 아니 201가지라 해도 뭐하나. 읽고 이해하며 공감하지 않는다면. 거기까지 가는 길에 동기부여나 보조수단으로 다른 역할이 사용될 수는 있겠지만.

결국 매리엄은 약속한 날에 책 사용법 101가지를 다 찾지 못한다. 그래서 도서관은 허물게 되었을까? 반전이 있다. 그리고 거기에 아까 '추억'을 말씀하시던 할머니가 큰 역할을 하셨다. 이 부분은 살짝 감동적이었고 더할 수 없이 좋은 결말이었다.

제목에는 죄송하지만 난 책의 사용법이 101가지나 되지 않아도 좋다. 1가지만이라 해도 그게 귀하다면 뭐가 문제랴. 좀 더 들어가서, '책을 읽어서 얻게 된 것'이라면 101가지가 넘고도 넘칠 것 같다. 각자마다 얻은 것들이 백인백색 다를 것이니 말이다. 그걸로 이야기를 만들어도 재미있고 의미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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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부리 영감이 도깨비를 고소했대 - 제26회 눈높이아동문학상 장편 부문 대상 수상작 눈높이 고학년 문고
공수경 지음, 전미화 그림 / 대교북스주니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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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이야기 패러디 작품들을 꽤 읽어보았는데, 읽고 잊어버린 작품도 많다. 이 책은 잊어버리지 않을 것 같다. 아주 인상적이면서 재미있었다.

보통 패러디 작품들은 고정관념을 뒤집으면서 인물을 새롭게 조명한다. 즉 원작에선 보이지 않는 그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인데, 무리한 시도는 살짝 억지스러워 보일 수도 있다. 옛이야기를 재화할 때는 그 원형이 가진 가치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고 들어서, 한때 옛이야기 패러디의 유행이 살짝 달갑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원작은 원작, 패러디는 패러디. 원작을 먼저 제대로 읽고 패러디를 읽는다면 그 비교 지점에서 다룰 수 있는 이야기들이 많을 것 같다. 이 책도 그러하다.

제목에서 바로 알 수 있듯이 이 책의 원작이 되는 옛이야기는 '혹부리 영감'이다. 착한 혹부리 영감은 혹을 떼고, 욕심을 부린 혹부리 영감은 도리어 혹을 붙였다는 그 이야기. 의도하지 않은 행운은 받아들여도 좋지만 욕심을 품고 접근하면 오히려 화를 자초한다는 이야기로 욕심에 대한 경계, 권선징악의 교훈이 들어있는 옛이야기다. 이대로도 물론 충분히 좋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두번째 혹부리 영감의 입장을 조명했다. 그게 아닐 수도 있잖아? 혹시 오해였다면?

그 주인공은 동네 부자인 최영감이다. 그는 혹을 하나 더 붙이고 흠씬 두드려맞고 온 후 너무나 억울하여 사또에게 재판을 청했다. 사또는 포졸들을 시켜 재주도 좋게 도깨비들을 잡아오는데는 성공하였으나.... 도깨비가 괜히 도깨비가 아니지 않나. 신통술을 써서 모두 달아나 버렸다. 이 과정에서 최영감을 돕는 어린 조력자들이 등장한다. 기산이, 개동이, 만석이 세 소년이다.

이들의 조언으로 최영감의 고소는 산신령에게로 향한다. 산신령은 금도끼 은도끼의 그 산신령! (나무꾼도 나온다) 그러고 보니 한작품만 패러디한 게 아니네. 본격적인 재미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산신령의 재판. 이제 이야기는 재판극으로 흐르고 어린 조력자들의 눈부신 활약이 시작되며, 주인공의 숨겨진 사연과 심리도 조명된다. 재미있는 극적 요소를 고루 갖춘 셈.^^

여러 번에 걸친 재판의 과정이 흥미진진하고, 양심적이고 정직한 인물, 사익에만 눈이 어두운 인물, 비열한 수를 쓰다 제 꾀에 제가 넘어가는 인물 등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잘 담았다. 그런데도 결말은 훈훈하여 더 마음에 든다. 최영감 뿐 아니라 도깨비 대장도 마지막엔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책을 읽고 아이들과 하고 싶은 것 두가지가 떠오른다. 하나는 모의재판인데, 몇년 전 6학년 사회에서 법원의 역할에 대한 수업을 할 때 민사재판, 형사재판 시나리오를 써서 아이들과 모의재판을 재밌게 했던 기억이 난다. 꼭 사회 교과와 연계하지 않아도 이 사건으로 창의적인 재판 시나리오를 아이들이 구상하고 역할극을 해보면 재밌을 것 같다.
또 한가지는 '편견이나 선입견'에 대한 경계다. 이것을 빼고 대상을 보면 대상의 입장을 이해하고 공감하기 쉬워진다. 이 책은 그런 주제를 진지하게 나눌 수 있는 소재가 되겠다.

옥의 티를 굳이 얘기하자면, 디테일에 까다로운 못된 성격 탓인지 딱 한가지 넘어가기 어려운 게 있었다. 현장조사를 하던 소년들이 '들쥐 이빨자국이 난 고깃조각'을 발견하고 들쥐를 증인으로 채택하는 대목이다. 들쥐가 남은 고깃조각을 먹은거야 당연하지만 '이빨자국'만 남기고 고기를 남기고 갈 리는 없지 않은가? 더구나 소년들이 조금 가진 육포에 환장하는 들쥐가 말이다. 아주 작은 옥의 티지만 조금 아쉬운 대목이었다.
그리고, 도깨비에 대한 고찰이다. 난 사실 제대로는 모르는데 우리가 흔히 표현하는 도깨비는 전통적인 우리 옛이야기가 다루는 도깨비가 아니라는 얘기를 들은 것 같다. 이 책은 이야기 자체에선 문제가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삽화는... 원시인 복장을 한 저 도깨비 대장은 맞는건가? 잘 모르겠다. 이런 부분은 딱히 중요하지 않은가? 잘 아는 분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다.

5학년들과 읽으면 딱일 것 같고 재밌는 걸 찾는 6학년, 조금 수준 높은 4학년과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책꽂이엔 후보작들이 추가된다. 소확행이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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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왕따 특공대 - 개구리 왕국을 구하라! 꿈터 어린이 26
고정욱 지음, 이상미 그림 / 꿈터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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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소감은 고정욱 작가님이 힘 빼시고 편하게 쓰셨네 하는 느낌이었다. 왠지 휘리릭 금방 쓰셨을 것 같은 느낌? 하지만 생각해보니 이게 선입견일수도 있겠다. 읽기 편하다는 것과 쓰기 편하다는 것은 다르니까. 곰곰히 들여다보면 여러가지 키워드를 발견하게 된다.

1. 환경 : 개구리 왕국에 비상이 걸렸다. 환경재앙이었다. 늪의 물이 마르고 먼지와 오염물질이 왕국을 뒤덮었다. 범인은 용이 되려다 실패한 이무기. 상류를 틀어쥐고 앉아 둑을 만들어 물길을 막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분노의 독소들을 뿜어낸다.

2. 개구리 : 이 책의 주인공들과 문제해결의 용사들은 개구리들이다. 개구리 보기가 전보다 어려워졌다고 한다. 특히 토종개구리들. 개구리들이 돌아왔다는 건 우리에게 좋은 소식일 것이다. 이 책의 개구리 특공대는 청개구리, 참개구리, 황금개구리, 두꺼비, 산개구리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생김새와 특징을 좀더 잘 알 수 있게 사진면이 따로 추가되거나 삽화에 좀 더 잘 나타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이 개구리라는 동물에 관심을 갖고 생태계의 한 부분인 그들에게 좀더 애착을 가졌으면 해서다. 이 책에는 황소개구리도 나오는데, 이무기 편에 붙어 그의 하수인 노릇을 하는 역할로 나온다. 우리 생태계의 골칫거리임을 감안할 때 적당한 배역이라 하겠는데, 책에서도 이들에 대한 대안은 딱히 제시하지 못했고 결국 조건부 수용을 하는 식으로 해결이 된다. 그만큼 어려운 문제라는 뜻이겠지...

3. 왕따 : 개구리 왕국의 위기를 해결하러 나선 특공대의 면면을 보아하니, 거의 외인구단급이다. 제목에선 이들을 '왕따'라 명명했다. 프로디는 말썽만 부리는 청개구리에, 참개구리 대죽이는 시끄럽고 목소리만 크며, 황금개구리 메롱이는 혀가 너무 길어서 놀림만 받던 개구리다. 두꺼비 칙칙이는 혐오대상이며, 산개구리 왕눈이는 다리에 장애가 있다. 주류가 아닌 아싸, 즉 왕따인 이들은 의기투합하여 상류로 정찰을 나간다. 결국 이무기 앞에 당도하고 이무기를 물리치고 둑을 허물기까지, 그들의 약점으로 인식되었던 특징이 때에 따라선 커다란 강점이었음을 알게 되기도 하고, 약점 밑에 감춰져 있던 강점이 드러나기도 한다. 왕따의 재발견이라 하겠다. 이런 서사는 옛이야기의 공식이기도 한 것 같다.

옛이야기의 특징을 차용해서인지, 서사가 선이 굵고 빠르고 통쾌하기는 했으나 왠지 깨알재미가 부족한 느낌이 내게는 들었다. 내가 너무 디테일을 추구하나? 대화체도 그렇고 문장들에서 새롭게 끌리는 유머를 발견하진 못했다. 프로디가 금개구리왕에게 약속대로 왕국의 절반을 상으로 받는 장면도 왠지 내겐 떨떠름했다. 나만 그러나? 아이들이 재미있어한다면 위의 세 가지 키워드를 위해서는 읽어주고 싶은데.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 아이들이 재미있어한다면 위에 적은 아쉬움은 모두 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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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퉁이 하얀 카페 심쿵 레시피 푸른숲 어린이 문학 9
박현정 지음, 신민재 그림 / 푸른숲주니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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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인 동화책을 읽었다. 이 표현이 내겐 딱 적당했다. 매력적. 검색해보니 아주 많이 팔린 책은 아니다. 근데 내겐 책장에 소중히 꽂힐 책이 될거같다. 고학년을 맡으면 함께 읽어 보려고.

같은반 친구 네 명이 각각 화자로 나오는 연작 단편집이다. 네 아이는 서로 오해하기도 하고 싸우기도 하고 이해하기도 가까워지기도 하는 흔한 인간사 어딘가를 통과하는 중이지만, 누구나 자신의 문제가 우주보다 큰 법이고 그걸 어떻게 통과하느냐가 중요하므로 이 아이들의 고민은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이 아이들을 들여다보는 작가의 눈이 바로 '매력적'이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힘든 아이들의 이야기는 많다. 근데 난 정답을 정해주는 책도 싫지만 답없는 책도 깝깝하다. 그래서 어쩌란 말인가? 어쩌면 현실을 직시하기 피곤한 나의 회피일수도 있지만, 아이들과는 다큐 같은 동화보다는 이렇게 '동화 같은' 동화를 같이 읽고 싶다. 적당한 판타지가 있는. 그게 꿈이고 허상이고 심하게 말하면 마취라 할지라도 어쩔 수 없다. 가라앉기보다는 떠올라보고 싶으니까. 차영아 작가의 '쿵푸 아니고 똥푸' 책에서 "산다는 건 백만 사천 이백 팔십 아홉 가지의 좋은 일을 만나는 것"이라는 대목을 아이들이 무척 좋아하는데, 그런 거다. 말하자면 희망. 그것 없이 아이들을 대한다는 건 고문 같았어서 말이다. 나도 날마다 이 모퉁이 까페의 음료 한 잔씩으로 충전해야 한다고.

첫번째 이야기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주인공은 해진이다. 의도하지 않게 상황은 꼬이고 그 속에서 오해받고 움츠러드는 아이의 이야기다. 해진이는 친구들에게 '허언증 걸린 아이'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헬리시움이라는 최신식 아파트에 입주를 앞두고 아빠의 사업이 잘못되어 재개발구역의 연립 지하방에서 살게 된다. 해진이에겐 같은반 아역배우 나라와 어릴 때 같이 오디션을 봤던 기억도 있다. 이런 것들이 아이들에겐 '뻥'으로만 비춰졌고 생각없이 날아다니는 말들은 잔인했다. 모든 상황이 최악이 된 비참한 날, 해진이는 빗속을 뚫고 주머니 속 광고지에 있던 '모퉁이 하얀 까페'를 찾아갔다.
"이럴 땐 너만을 위한 특별 레시피가 필요해."
까페 언니는 이렇게 말했다. 이 책의 제목이 심쿵 레시피.(사실 심쿵이란 제목은 그닥 내맘엔 안든다;;;) 찾아온 아이들마다 추억을 찾고 힘을 내게 해주는 메뉴들이 이 책의 각별한 재미 중 하나다. 작가는 "함께 나누면 행복하고 마음의 아픔도 치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음식과 동화는 닮았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책의 까페 장면엔 꼭 맛있는 음식과 음료가 나오는데 그게 군침돌기도 하면서 독자에게도 따뜻함과 안도감을 준다. 까페는 보였다가 사라지는, 말하자면 판타지인데도.

까페 자체는 판타지지만, 그곳에서 무슨 마법이 일어나진 않는다. 까페를 나온 해진이는 울며 딸의 가방을 들고 나온 엄마를 만났고, 둘은 서로를 위로했고, 겹겹이 쌓였던 아이들의 오해는 아주 작은 실마리 하나로 풀려간다. 지하방의 냄새나는 수건 같던 해진이의 존재를 다시 빛나게 해준 건 해진이의 노래였다. 상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그토록 노래를 잘 부르고 싶어하는 건데, 타고나지 못한데다 딱히 노력하는 것도 없으니 바랄 일이 아니기도 하다. 하여간, 해진이는 다시 빛을 찾았다. 집안형편의 반전은 없지만, 달라진 존재. 해진이는 그후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에서도 중요한 조연으로 나온다.

두번째 이야기 [됐고 대마왕의 대굴욕]의 동권이는 해진이를 놀리는데 앞장섰을 뿐 아니라 발레를 하는 남학생 선유를 괴롭히다 다치게까지 하는, 표면적으로 객관적으로 못된 놈이다. 솔직히 난 이런 아이가 싫다. 심술, 무매너. 민폐. 이런 아이의 내면도 보여주는 게 문학의 매력. 심술이 꽃을 피우다 결국 선유를 다치게 한 상황에서 벼랑끝에 몰린 동권이는 까페를 찾게 된다. 까페누나는 동권이를 위한 레시피로 매직슬러시와 피자를 가져다 주었다. 동권이가 제일 좋아하는 피자. 그 맛은 동권이를 유치원시절 추억으로 이끌었다. 거기에 선유가 있었다.

까페를 나온 동권이는 가장 먼저 가야할 곳이 어딘지를 알았다. 선유에게 사과하고 속얘기를 하고 선유만 알고있는 자신의 약점으로 놀림을 당하면서도 마음이 편안했다. 둘은 함께 웃는다. 다행이다. 하지만 열쇠는 선유의 용서에 있었다는 걸 잊으면 안된다. 이녀석아. 넌 더 배워야 된다. 그러길 빈다.

세번째 이야기 [마음 속 새 한 마리]에선 선유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개인적으로 등장인물 중 선유에게 가장 마음이 끌렸다. 선유는 발레를 배우는 남학생이다. 그건 동권이에겐 놀림감이고 아빠에겐 못마땅함이었다. "남자가 무슨..." 더구나 선유는 특별히 천재적 자질을 타고난 것도 아니었다. 발전은 느렸고 아빠의 매의 눈에 질린 선유는 무대에서 실수하고 무대 공포증까지 생겼다. 이런 상황에 너무나 감정이입이 되었다. 특별난 재능 없고 소심하기까지 한 나... 하지만 선유는 멋있었다. 물개박수를 보내는 나의 편애를 보라.ㅎㅎ 솔직히 나는 마음으로는 편애한다. 어떻게 선유랑 동권이를 똑같이 좋아할 수 있냐고. 표 안내려고 조심하고 과정에 불공정이 있지 않도록 조심할뿐. 남의 마음을 사는 건 본인의 처신이고 책임이다. 고학년쯤 되었으면 말이다. 징징거리지 말고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것. 멋있을 기회는 있으며 누군가의 눈은 그걸 꼭 보아준다. 나도 그런 눈을 가지려고 애쓰는 사람이고.

이 이야기에서 직업적으로 주목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있었다. 선유의 부상과 '학폭위'에 관련된 부분이었다. 솔직히 이정도 사안은 학폭위가 열린다 해도 담임으로서 전혀 말릴 수가 없는 상황이다.(사실 경중에 관계없이 어떤 상황에서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 팔을 다친 그날, 아빠는 다짜고짜 만년필과 수첩을 꺼내들더니 이렇게 말했다.
"김선유. 지금부터 친구들하고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빼놓지 말고 자세히 얘기해."
아빠는 회의록을 작성하듯 내 얘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적어 내려갔다. 중간중간 동권이가 어떤 성격의 아이이고, 언제부터 알고 지냈는지 물었다. 내 얘기가 끝나자 아빠는 수첩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내일 당장 병원에 가서 입원해." (99쪽)

엄마의 만류와 두 아이의 자체적 해결(사과와 용서, 다시 단짝됨)로 결국 학폭위까지 가지는 않았다. 이 대목을 보며 학폭법을 다시 생각한다. 위에 적은 아빠의 해법대로 했다면 아이들은 무엇을 배웠을까? 회복의 기회는 있었을까? 그러나 동권이가 후회와 반성을 할 줄 모르는 아이였다면?(모퉁이 까페에 다녀오지 않았다면) 이와같이 적절한 지점은 참으로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모든 과정에 교육적 고민이 들어가야 한다는 것. 그걸 가로막는 여러가지가 있다. 말하자면 길지만, 개선과 고민이 필요하다. 작가의 의도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내용이 나온 것이 현장교사로서는 고마웠다.

마지막 네번째 이야기 [확 삐뚤어지고 싶은 날]은 아역배우 나라의 이야기다. 빛이 있는 곳에 그림자가 있다고,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는 나라의 처지가 그리 좋기만한 것은 아니었다. 특히 매니저 역할을 하는 엄마의 속박에 나라는 터질듯한 압박을 받는다. 친구들도 나라를 동경은 할지언정 좋아하는 건 아니었다. 확 삐뚤어지고 싶은 날, 나라도 그 광고지를 발견한다. 모퉁이 까페로 가는.... 나라 이야기는 짧았다. 거기서 끝이었다. 좋게 봐서 그런지 그것도 절묘하게 느껴졌다.^^ 하나는 열린 결말로 남겨두는 게 좋지. 상상하기도 이야기 나누기도 좋으니까.

전체 이야기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이야기가 있다. 그게 내가 가장 문제적 인물로 생각하는 선유 아빠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는 게 아이러니.^^ 좋은 말은 하기 쉽지만 그걸 자신과 자기 자식한테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선유아빠가 일일교사로 왔을 때 했다는 말의 내용은 이런 것이다.

- 나비가 고치를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걸 지켜보던 한 아이가 있었어요. 아이는 손가락으로 아주 조금 고치를 벌려 주었죠. 그 뒤에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나비는 날갯짓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맴 돌다가 죽어버렸어요. 날개에 힘이 없어서 날지 못했던 거예요. 나비는 딱딱한 고치를 뚫고 나오면서 날개에 힘이 생기거든요. 그런데 아이가 도와준 나비는 날개 힘이 부족해서 혼자 날아갈 수가 없었어요. (125~126쪽)


부모와 교사가 갖출 덕목을 '애타는 인내심'으로 표현한 어떤 선생님의 말씀이 기억난다. 고치를 빠져나오려 몸부림치는 모습을 그저 지켜보는 건 얼마나 안타까운가.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격려와 응원 뿐임을 다시 기억한다. 아이들, 그중에서도 이 책을 함께 읽을 독자들을 응원하며 그들의 목소리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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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아의 장풍
최영희 지음 / 북멘토(도서출판)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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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덜트소설, 그중에서도 SF에 매진하시는 최영희 작가님의 신작이다. 난 '인간만골라골라풀'이라는 중학년동화를 읽고 이 작가님을 알게됐지만... 이 작품을 읽으니 청소년기 아이들의 입맛에 맞을듯한 툭 던지듯 쿨한 대화와 문장들이 재미있다.

동화나 소설을 읽으며 나는 작가의 입장을 생각해보는 편인데 주로 이르는 결론은 참 어려웠겠다, 대단하시다 등의 감탄이다. 간혹은 상당히 쉽게 그냥 관습적으로 엮은 플롯일 거 같은 느낌을 주는 작품도 있지만 그런 작품은 드물다.^^;;; 특히 SF를 쓴다는 것은, 읽는거야 쉽지만 현대과학의 토대에서 미래를 상상하고 (그 상상이 황당무계할 수 있음. 이 책처럼) 그것에 나름의 논리를 세워 독자로 하여금 실소 대신 다음장을 넘기게 하는 힘, 그것을 갖춘다는 것은 보통 내공이 아닐 거라 짐작한다. 이 말에 반대하시는 분은 본인이 직접 써보시고 그게 얼마나 웃긴지 직접 읽어보시면 알 것 같다. 나는 알고 있으니 굳이 그러지 않겠다.ㅎㅎ

이 책에서 작가가 보여주는 세계관은 나로서는 썩 공감가지 않았지만 '오 이런 상상도~' 정도의 느낌은 주었다. 내가 공감했던 건 작가의 상상보다도 그 안에 넣어놓은 현실인식이었다. 현아의 외로움에 대한. 나아가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우주 어딘가에 절대자(설계자) 집단이 있고 지구는 그들이 조종하는 시뮬레이션 공간이라고 작가는 설정했다. 그런데 그 절대자 집단도 절대자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게 이 책의 웃음코드이자 매력인 것인가... 청소년 설계자들의 과제이행 중 하나의 실수로 설계자의 능력과 과거 인간(최배달이라는 무도인)의 백업 데이터가 한 인간에게 흘러들어가게 되었다. 그게 바로 17세 여고생 강현아다. 현아가 가지게 된 설계자의 능력이란 '락싸멘툼'(팽창)이다. 말하자면 장풍을 쏘게 되었다는 것이다. 절대자 집단으로선 절대자들만 가질 수 있는 에너지 활용능력을 가진 피조물을 그대로 두고 볼 수가 없는 일. 하지만 그들도 나름의 윤리가 있는 바, 시뮬레이션 세상에 개입하여 '존재값을 없애는' 일을 함부로 할 수는 없다. 하여 청소년 절대자 한 명을 지구로 파견한다. 그는 현아네 반에 '손미카'라는 전학생으로 등장한다. 그에게 주어진 일은 밀착 감시, 그리고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 시 지체없이 현아를 제거하는(존재값을 없애는) 일이다. 그들에게 현아는 이름 대신 오류X로 불린다.

청소년 절대자 손미카를 볼작시면, 인간을 초월하는 몇가지의 능력을 가졌을 뿐 딱히 다를 바가 없어보인다. 절대자 세계에서도 청소년들은 예측불가하고 얼빵한 것인가. 이야기의 깨알재미는 거기서 비롯된다. 어쩌면 감동도 그러하다. 현아를 밀착 감시할수록 미카는 그녀를 이해한다.

"미카는 자신을 이 세계로 내려보낸 어른들에게 욕을 퍼붓고 싶었다. 그들 중 누구도 이 세계의 변수에 대해 충고해 주지 않았다. 눈앞의 참사를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인간의 입장에 대해서 알려준 이도 없었다. 설계자들은 관찰 모니터상의 데이터들만 노려보고 있을 뿐, 이 세계를 속속들이 알지는 못했다. 이곳은 데이터로만 가늠할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52쪽)

감시자이자 실행자의 임무를 띠고 세상에 온, 지구인의 눈에는 전학생인 미카가 현아 주변을 맴돌며 겪는 에피소드들이 이 책의 중반부이며 청소년소설 특유의 쿨내 진동하는 재미를 주는 부분이다. 난 사실 청소년들을 대변할수도, 그들을 웃길 재주도 없다. 그런 면에서 작가님에게 또한번 감탄했다. 웃긴 문장이 많았는데 내 입장에서 웃겼던 문장을 하나 골라 적자면, 현아에게서 최배달이 발현되어 태권도장에서 수련생을 한 수 가르치는 장면이다.
"상대가 궁금해하지 않는 걸 굳이 가르쳐 주기, 자기가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상대를 몰아가기, 그래 놓고 결국 자기 입으로 정답 말하기. 수련생들은 무도인의 가공할 꼰대력에 입이 딱 벌어졌다." (99쪽)

후반부에 이르러 책은 웃기기를 멈추고 독자들에게 연민과 안타까움, 긴장감 등을 몰아준다. 현아가 어떤 아이였던가. 초반에 현아는 아이돌 그룹의 해체설에 세상이 무너진 광팬으로 등장했다. 가만보면 그 철저한 팬심은 텅 비어버린 그의 세상을 채우는 충전재 같은 것이었다. 캠퍼스 커플로 무지 사랑해서 결혼했던 부모님은 세월과 함께 사랑이 변하여 이혼을 했고, 아빠는 재혼해서 외국으로, 엄마는 남친에게로 떠나고 현아가 DMZ라고 표현한 다세대 주택에는 현아 혼자 살고 있다. 부모가 미성년자 딸을 홀로 두고 제 살 길을 찾아 떠날 수 있는지 나라면 그럴 수 없을거 같지만 크게 잘못된 거라고 정죄하고 싶지는 않다. 인생의 빈 공간을 팬심으로 채우며 그 대상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려고 자신을 관리하는 현아가 놀라울 뿐이다. 그런 청소년이 있을까? 잘 모르겠다. 엎치락뒤치락 우여곡절 끝에 가까워져버린 미카에게 현아는 이런 속마음을 얘기한다.

"정확히 언제쯤인지는 기억 안 나는데 엄마 아빠가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 그래도 엄마 아빠는 날 낳고 키웠잖아. 그래서..... 그립다거나 원망스럽다거나 하는 맘은 별로 없어. 그냥 두 사람한테 지금까지 신세지고 사는 느낌이야." (128쪽)

어쩌면 좋은가. 마카는 임무를 이행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 계속되는 독촉 끝에 절대자 세계는 미카의 복귀 명령을 내린다. 임무는 다른 절대자에게 위임되고, 그건 현아의 존재값이 지워질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 며칠 동안에 일어나는 숨가쁜 일들, 스펙터클한 활극(^^), 그리고 반전들이 이 책의 후반부를 차지한다. (활극 편은 다소 황당하다는 느낌도 솔직히 없진 않았다.)

다 읽고 내 가슴에 가라앉은 하나의 이미지는 '달'이다. 작가도 이것을 노린 것 같지만.
달.... 어린 현아가 등장하는 장면. 딸에게 밥을 먹이지만 눈은 논문에 가있는 엄마 대신 거기에 있었던 달. 밥을 먹다가도 몇번씩이나 존재를 확인했던 달.
개인적으로는 이것만 다루었어도 충분하지 않았을까 싶다. 인류의 문명이나 인간의 가치까지 다루려면 작품의 스케일을 더 키웠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17살 현아의 어깨에 외로움 말고 더한 것을 지운다면 너무 심한거 아닐까.

한편, 이 책에서 현아의 락싸멘툼을 쓰게 만든 못되고 한심한 어른들의 모습에 난 불편하고 많이 슬펐다. 학생의 인권을 무시하는 교사, 상식과 논리를 물말아먹은 광기어린 종교집단의 모습 등.... 문학이야 현실을 반영하는 매개체인 바, 그런 이들이 존재하니 작품에 등장했겠지만....ㅠㅠ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아니 이게 너무 큰 꿈이라면 때로 기대고 대화를 요청할 수 있는, 상식적이고 양심적인 어른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홀로 외로운 개인들이 모여 외롭지 않은 사회를 만들었으면 한다. 어차피 외로움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그걸 기본값으로 잡고 말이다. 말이 좀 안되는 것 같지만 이게 내가 원하는 건강한 지구의 모습이다. 나라면 그러지 않겠지만 현아네 부모 같은 이들이 있어도 아이들이 병들지 않을 수 있는. 어렵겠지....

이 책에 멜로를 좀 더 강화하면 드라마의 원작이 되는 것도 가능할 것 같다. 이세계, 저세계, 체인지(빙의) 등은 인기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들이니까. 최근 2년간(3년인가...) 드라마를 끊어서 내 감을 믿을수는 없지만 그래도 강추해본다. 음... 아마도 현아와 미카의 캐스팅이 관건일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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