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선생님은 AI / 이경화 / 창비>



<와일드 로봇>에 이어 로봇이 주인공인 책을 또 읽었다. 아주 쉽게 생긴 이 책이 내게는 어려웠다고 할까. 내용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감정이 바로바로 따라가지 못했다고 해야 하나. 느끼기보다는 이해해야 했다. 그래서 계속 반박자씩 늦었다.

안드로이드 로봇이 초등교실에 담임선생님으로 등장했으니 시대적 배경은 미래라고 해야겠으나 로봇 교사 외의 배경에서는 별로 미래의 느낌이 없다.

미래초 5학년 1반은 지원받은 아이들로 꾸려졌다. 지원 조건은 AI 선생님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 대목에 복선이 있었다. 작년 한민아 샘 반 아이들이 대부분 신청했다는 것. 그 샘은 어떤 교사였길래? 아이들이 주고 받는 말 중에서 추측하자면 젊고, 자유롭고, 사랑이 많고 아이들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는 교사였던 것 같은데....

'김영희'라는 전혀 로봇답지 않은 이름의 선생님을 아이들은 '인지쌤'이라 부른다.(인공지능을 줄인것) 이들의 첫 대면과 수업은 웃음을 자아낸다. 인지쌤은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ㅎㅎ 호기심과 짖궂음으로 AI 담임을 대하던 아이들도 점차 이 로봇을 '선생님'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아니, 받아들이고 싶어하게 된다....? 딥 러닝 기능을 갖추고 미세파동 생체 에너지까지 갖춘 인지쌤과 더 교감하고 싶었던 아이들은 직접 쓴 '코노피오'라는 동화를 인지쌤에게 읽게 한다. 그 결과는......

결국, 인간은 감정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인가? 그래서 로봇에게도 감정이입을 하고, 더 나아가 감정을 가진 로봇이라는 설정을 한 문학도 계속 나오는 것일까? 진짜로 감정을 가진 로봇이 가능하게 된다면, 그건 좋은 것일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감정은 불안정하고, 때론 아름답지만 때로는 추하다. 그런 감정을 로봇이 가진다면 그건 몹시 위험할 것이다. 안정적인 감정만 갖게 한다면? 그건 감정이 아닐 것이다. 뭐 '유사감정' 정도 되겠지. 우리에겐 그런 거라도 절실한 것일까?

그리하여, 오류로 멈춘 인지쌤을 구하려는 아이들, 로봇 교사를 반대하는 아이들로 맞서는 양상까지 교실에는 나타난다. 여기에서 작가는 여러가지 이슈들을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서 말하고 있다.

먼저 교장선생님.
"인간과 로봇의 차이점이 뭔지 아니? 자기 성찰 능력이란다. 잊지 마라. 자기 성찰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최고의, 그리고 거의 유일한 능력이란 걸." (101쪽)

그리고 한민아 선생님 사건을 잘 알고 있지만 뭔가 참고 계신 듯한 옆반 선생님.
"어디를 가나 로봇이 없는곳이 없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 맺는 법을 배우는 학교에까지 로봇이 있다는 건 재앙과 같아. 이제 사람들은 작은 실수도 할 수 없어. 실수를 하면 해고를 당하고 로봇이 그 자리를 차지하지. 실수할 기회가 없으니 성장할 기회도 없다. 협업은 거짓말이야. 사람을 로봇과 경쟁시키는 거지. 누가 이길지 뻔하지 않니? 사람들은 점점 로봇에게 밀려나고 마침내 로봇처럼 폐기 처분될 거다. 이건 단순히 한민아 선생님을 복귀시키는 것보다 더 큰 문제야. 인간의 미래가 달린 문제지." (108쪽)

과거에 아이들이 한민아 선생님을 잃게 된 사연은 스치듯 지나간다. 선생님은 쫒겨났던 것이다. 그토록 아이들에게 정성을 쏟았던 선생님이 학부모들의 불같은 민원을 받고. 잘못이라면 잘못이지만 사적인 공간이니 법적인 잘못은 아니라고 할 수 있는데.... 선생님은 개인 비밀 블로그에 아이들과 학부모에 대한 욕을 진탕 써 놓았고, 반의 똑똑한 아이 하나가 그걸 해킹해서 만천하에 공개됐다. 그렇게 잘해주던 선생님이 뒤에서 쓴 자기 욕을 읽었을 때 그 뒤통수를 맞은 기분은? 짐작 가능하다. 또한 그런 욕을 개인 공간에 써갈긴 선생님 심정 또한 이해하고도 남는다. 물론 동종업계 사람이어서 그렇겠지.ㅠ

다시 초기화된 인지쌤이 교단에 서며 이야기는 끝나는데, 마지막 문장이 또 미묘하다. 이 책엔 여러 생각들이 엉켜 있다. 그 중에 아이들이 어떤 가닥을 붙잡을지 궁금하다. 내가 붙잡은 건? 두 가지다. 첫째는 4차 산업사회 운운이 시끄러울 때, "앞으로 인간이 갖춰야 할 것들은 더더욱 인간적인 것들이다. 기계가 할 수 없는." 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한 동의다.
둘째는, 엉뚱할지 모르겠지만 다시 일어설 기회다. 리질리언스(회복탄력성)의 중요성이라고도 하겠다. 좋은 모습만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학생, 학부모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비밀 공간에 퍼부어 놓은 한민아 선생님. 좋아했던 선생님에 대한 배신감, 원망, 그리움이 혼재된 아이들. 그리고 해킹하고 앞장섰던 그 아이.... 모두가 성찰할 기회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제 그들에게 필요한 건 회복의 기회다.

이경화 작가님의 책은 두번째 읽는다. 찾아보니 13년 전에 <장건우에게 미안합니다>를 읽고 썼던 서평이 남아있다. 두 편 다 교사의 처신을 고민하게 만든다. 작가는 어떤 계기로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셨는지 궁금하다. 아래에 그 서평을 이어 붙이고 마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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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건우에게 미안합니다 / 이경화 / 바람의아이들>


이 책의 장점을 꼽으라면 단연 현실성이다. 문제가 있는 아이들을 교무실로 부르는 것과 선생님이 교무실에 있다가 종례를 한다는 점만 빼고...(그건 중,고등학교에서나 있는 일이다) 이걸 보니 작가분이 현직에 계셨던 분은 아닌 것 같은데 초등학교 6학년 교실의 풍경과 아이들의 심리를 이토록 현실적으로 묘사할 수가 있나? 때론 몰래 카메라에 찍힌 나와 우리 아이들의 모습을 보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쪽팔려 게임’ 그것 참 징하면서도 안 없어지는 골칫거리 게임 중의 하나다. 이 이야기의 발단은 거기에서 시작된다. 반듯한 모범생 반장 건우가 문제아 여자애들 무리가 했던 쪽팔려 게임 벌칙의 희생양이 되어 난데없는 뺨따귀 세례를 받은 것이다. 그런데 선생님의 반응이 정말로 의외다. 피해자인 건우에게 보내는 따뜻하지 않은 시선, 교무실에 불려온 가해자 여자아이들은 있었던 일을 종이에 썼을 뿐, 한마디 훈계도 듣지 않고 돌려보내진다. 오히려 남아야 하는 사람은 건우다. 남겨진 건우에게 선생님은 여자아이들의 가정형편을 상기시키며 이해할 것을 은근히 강요(?)하신다. 모범생 콤플렉스의 장건우. 치밀어 오르는 말들을 한마디도 내뱉지 못하고 “예, 선생님.”하고 돌아선다.

이 선생님은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선생님은 아니다. 그러나 어떤 마음으로 이렇게 하시는지는 십분 이해하고도 남겠다. 선생님은 소외된 아이들, 부족함이 많은 아이들을 감싸고 채워 주시고자 하는 것이다. 짐작컨대 사명감은 투철하되 경력은 다소 부족한 선생님일 것이다.

이 선생님을 통해 작가는 사명감이 투철한 교사가 빠지기 쉬운 역차별의 함정을 지적한다. 다른 아이들처럼 따뜻한 가정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도 못하고 학교에서도 인정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이 여자아이들은 선생님이 베풀어주시는 전폭적인 사랑과 인정에 고무된다. 자신감도 생기고 당당해지고 웃음도 많아진다. 그러나,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그늘이 드리워졌으니 바로 건우 같은 아이다. 선생님은 넌 부족한 것이 없으니 많이 가진 사람이 나눠야 한다며 건우에게 주실 사랑마저도 떼어다 그 아이들에게 부어주실 테세이지만, 인간은 자기 몫의 사랑까지 남에게 양보할 수는 없는 존재인가보다. 건우가 이토록 상처받는 것을 보면 말이다.

흔히들 선생님들은 공부 잘하는 아이들, 엄마들이 관심 있게 챙겨주는 아이들을 편애한다는 비난을 받곤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역차별은 그것에 대한 반작용일까? 나를 돌아보니 이 책의 김진숙 선생님 같은 쪽은 아니다. 가정형편과는 상관없이, 난 게으르고 양심 없고 남을 괴롭히고 말을 함부로 하는 아이들을 예뻐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부모님의 보살핌을 못받고 자라는 아이들이 이리될 개연성이 매우 높으니 나도 편애를 한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겠다. 김진숙 선생님처럼 하는 것,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쪽팔려 게임이나 하며 만만한 남자아이 불러세워 빰따귀나 때리고 낄낄거리는 여자애들을 감싸고 예뻐하라고? 그거 보통 인내심으로 되는 일은 아니다....

다음은 이 부족한 교사가 나보다는 조금 덜 부족한 김진숙 선생님께 드리는 글이다. “선생님, 마지막에 선생님이 아이들과 화해하는 장면을 보면서 선생님은 조금 서투르긴 했지만 그래도 훌륭한 선생님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잘 불리지 않는 이름부터 불러주려고 했던 선생님의 마음 잘 알겠습니다. 중간에, 건우엄마가 와서 따졌을 때 아이들 다 있는데서 건우에게 약간의 감정을 드러내신 것은 조금 미숙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때 저의 모습을 보는 줄 알았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의 신념은 타성에 젖은 저보다는 훌륭하십니다. 그런데요, 아이들 중에 선생님 관심 밖에 두어도 되는 아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감싸는 것만이 사랑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제몫을 할 수 있는 바른 아이로 키우는 것도 우리들이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선생님, 우리로 인하여 마음 다치는 아이들이 이젠 없도록, 모두가 웃을 수 교실을 만들도록 함께 노력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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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과 마음을 잇는 교사의 말공부 함께 걷는 교육 3
천경호 지음, 김차명 그림 / 우리학교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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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가 진정되는가 하고 몇가지 모임과 연수를 재개하려는 움직임이 있더니 세상에, 진정은 커녕 개학이 연기되는 초유의 사태에 이르렀다. 이마당에 모든걸 취소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4인이 모이는 독서모임. 소규모인데 괜찮겠지? 싶었지만 그래도 조심스러워 닫힌 공간을 피하고 근린공원에서 모였다. 마스크 쓰고.ㅠ

이 책을 역할극처럼 읽었다. 한챕터씩 읽을 때마다 막간의 침묵시간이 존재했다.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이나 누군가의 얼굴이기도 하고, 자책이기도 공감이기도 했다. 춥고 엉덩이가 시려서 끝까지 읽진 못하고 제목에 끌리는 몇챕터만 우선 골라서 읽고 다음을 기약했다.

1장 제목은 '의미를 묻는 너에게'이다. 장마다 10여개의 대화문(교사와 학생의 문답)이 있고 사이사이에 천샘의 코멘트가 나온다. 1장에는 '아이들에게도 의미가 중요하다' 라는 글이 있는데 이 글에 선생님들이 많이 공감했다.
"내가 하는 행위에 높은 수준의 의미가 있다고 여기며, 그 의미를 상기하고 행동으로 옮길 때는 그 일이 어렵고 힘들어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반면 행위의 의미가 낮은 수준이라고 여길 때는 큰 스트레스를 경험하기 마련이다. 의미가 곧 나의 정체성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높은 수준의 자아 정체성과 자아 존중감이 낮은 수준의 의미와 연결되면, 이 둘은 불일치하게 되고 개인이 하는 행위의 동기가 사라진다." (24쪽)

정말로 아이들은 의미를 구한다. 때로는 생트집 같아서 짜증날 때도 있다.(딴지 거는게 습관인 아이도 없진 않다. 그것도 이유가 있겠지) 하지만 그것이 교사의 역할인 것을. 끊임없이 의미를 캐내어 설득하고, 또 실제로 의미가 있을 수 있도록 내용을 채워 주어야 한다. 학교에 오는 것, 책을 읽는 것 등에 대하여 의미를 차근히 설명하는 천샘의 대화를 읽으며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리는 '대화'라는 낱말을 끌어올려 '교육'과 연관지어 보았다. 대화가 곧 교육은 아니다. 하지만 대화없이 이루어지는 교육은 없다. 마음의 연결 없이 이루어지는 교육은 겉돌 뿐이고, 그 연결을 이루어주는 것이 '대화'이기 때문이다.
"아이는 스스로 해내고 싶어하고, 잘하고 싶어하고, 자신을 좋은 사람으로 기억해 주기를 원한다. 스스로 해내도록, 잘 해내도록,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도록 기회를 주는 일, 그것이 바로 대화의 목적이다." (57쪽)
"자기 내면의 자기실현 경향성, 자기 결정성이 있음을 확인시키는 일이 바로 '대화'의 목적이자 훈화와 구분되는 점이다." (89쪽)

이 책은 바로 이런 '대화'를 담은 책이다. 순하고 차분하다고 평가받는 내게도 말의 공격성이 있다. 도발하거나 생떼쓰는 아이의 말을 누르려는, 받은 것만큼 돌려주려는 본능이 내 안에 있다. 그래서 이 책의 대화를 읽으며 속에 치받혀오르는 걸 느끼는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모임샘들도 비슷한 말씀을 하시고 공감의 뜻으로 함께 웃었다. 인간이라면 당연한 감정일 수 있으나 그게 교육에 방해된다면 조절해야 하는 것이 교사의 본분일 것이다. 말하자면 공부해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이다. 교사의 말공부.

대화문을 읽다가 장난끼 있는 한 쌤이 마지막 아이의 대사를 이렇게 바꿔 읽었다.
교사 : 약속할 수 있지?
아이 : 아니요! 싫은데요?
ㅋㅋㅋㅋㅋ 우린 모두 웃었다. 교육이 시나리오대로만 된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많은 시행착오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안에서 길이 조금씩 열리고 넓어질 것이다. 그 쌤은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이가 반대로 말한다 해도 이미 말은 그 안에 들어갔을 거예요. 지금 당장은 인정 못해도 그말을 기억할 거예요."
맞는 말씀이다. 그래서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사실 이 책을 읽다보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욱 하고 올라오는 부분이 있는데, 바로 그 부분에서 저자의 대응이 지혜롭다. 단지 온유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논리적이기도 하다. 이걸 어째야 하나. 외워야 하나?^^;;;;
"거친 말과 행동으로 너 자신을 함부로 다루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래야 친구들이 너를 소중히 여길 테니까." (71쪽)
이런 말은 좀 외워놔도 좋겠다.^^

저자의 책 중 가장 얇고 가벼워 보이는데 가장 많이 팔린 책이라고 한다. 교사들의 어려움을 가장 직접적으로 다룬 책이어서가 아닐까. 읽다보면 쉽긴 하되 그리 가볍지 않은 책임을 알게 된다. 소장하고 손 닿을 곳에 두는 것도 좋겠다. 아마 다시 펴서 특정 부분을 찾아보는 순간은 후회와 자책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면서 성장하는 거겠지. 저자도 그러셨다고 언젠가 밝히신 적이 있다. (솔직히 잘 믿어지진 않지만.ㅎ) 타고난 것도 있다고 난 생각함. 안 타고난 사람이야 더 노력할 수밖에. 그래도 이 책이 나왔으니 맨땅에 헤딩하는 것보단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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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드 로봇 와일드 로봇 1
피터 브라운 지음, 엄혜숙 옮김 / 거북이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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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책을 읽다가 와 이거 영화로 만들면 대박이겠는데 싶은 작품들이 많았다. 실제로 마당을 나온 암탉 같은 국내 작품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져 널리 상영되었고, 나니아 연대기나 로알드 달의 작품들은 실사, 혹은 실사가 결합된 영화로 제작되어 지금까지도 잘 활용된다. 아참, 비교불가인 해리포터도 있구나. 근데 이 책을 읽으며 어느 때보다도 강하게 '이건 그냥 영환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봇과 동물들이 주인공이니 애니메이션이 적당하고, 캐릭터를 잘 살리면 웃음코드에 감동코드까지 대박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성을 가진 로봇. 그 로봇의 사랑과 헌신에 감동하는 스토리는 생각해보면 역사가 깊은 것 같다. 아주 어릴 때, 우리집에 TV가 없던 시절에 '짱가' 라는 만화영화를 보려고 숨죽이고 이웃 친구집 신세를 졌던 기억. 짱가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자기의 목숨을 버렸지. 짱가가 죽었다며 우리는 목놓아 울었고.... 내 아이들이 아주 어릴 때, '아이언 자이언트' 라는 만화영화를 함께 보며 웃기도 하고 감동도 받았었지. 같은 맥락의 스토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몹시 새롭다.

새로움의 키워드는 '와일드'다. 인간을 위해 제작된 로봇은 인간이 없는 무인도에 표류된다. 그리고 호기심 많은 동물들에 의해 활성화된다.
"안녕하세요? 저는 로줌 유닛 7134입니다. 로즈라고 불러도 좋아요."
이렇게 깨어난 로봇 로즈는 원래 입력된 정보와 지식 외에도 학습력을 바탕으로 무인도에서 살아갈 방법들을 찾게 된다. 타고난 관찰력과 학습력으로 각 동물들과의 의사소통 방법을 익히고 그들을 도울 방법들을 찾아 실행한다. 그렇다. 그녀는 동물들의 가장 좋은 친구가 되었다.

가장 극적인 스토리는 그녀가 '엄마'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사고로 기러기 둥지와 부딪혔고 살아남은 단하나의 알을 보살피다 부화의 순간을 함께했다. 그렇게 로즈는 기러기 브라이트빌의 엄마가 되었다. 섬에는 겨울이 찾아왔고 모두 알다시피 철새인 기러기는 여행을 떠나야 했다. (이부분 '마당을 나온 암탉'과 상당히 겹친다.) 이별과 재회, 위기, 힘을 합쳐 맞서 싸움, 그리고 단념과 마지막 이별로 이야기는 종결된다. 아 그런데 이어지는 2편(와일드 로봇의 탈출)이 있다는.... 1편을 끝까지 읽은 아이들이라면 반드시 2편을 찾을만큼 강하게 끌리는 작품이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인공적 존재에 대한 이야기들은 왠지... 가슴을 울린다. 그게 가능한가? 혹은 그게 바람직한가? 라는 판단은 둘째치고 말이다. 왜일까. 정작 인간이 가진 감정은 순수하지도 한결같지도 않기 때문일까? 그래서 남을 돕게 설계된 로봇,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남을 도우며 사려깊고 조용한 감정으로 상대를 대하는 로봇에게서 커다란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

이 책은 두껍고(280여 쪽), 그림이 많지 않으며 그나마도 흑백이다. (하지만 피터 브라운의 그림은 아주 매력적) 그래서 처음 보기엔 고학년이어야 읽을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호흡이 긴 글에 대한 독서력만 조금 갖추었다면 중학년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읽어주기라면 2학년도 가능할 것 같고. 작년에 2학년 담임을 해서 겨울나기 수업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데, 이 책에 겨울나기(철새, 겨울잠)에 대한 내용이 꽤 큰 비중으로 들어있으니 그 즈음에 겸사겸사 읽어주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단, 기간은 꽤 잡아야 한다.

무엇보다 빨리 영화가 나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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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지구를 위한 세 가지 이야기 꿈터 책바보 19
움베르토 에코 지음, 에우제니오 카르미 그림, 김운찬 옮김 / 꿈터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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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의 유일한 동화책이라고 한다. 그의 유명한 <장미의 이름>이나 <푸코의 진자> 같은 작품을 읽어봤어야 하는 건데. 그 수많은 작품 중에 읽은 것이 없네. 이럴때 안타깝다. ^^;;;

이 책은 120쪽 남짓에 글밥도 적어 30분이면 충분히 읽게 생겼는데 분류는 고학년용으로 되어있다. 그럴 만하다고 생각한다. 쉽고 편한 언어로 되어있지만 전체가 상징이라 그 의미를 해석하려면 고학년에게 적당할 것 같다.

세 편의 이야기가 담겨 있으며, 각 편은 인류가 당면한 가장 큰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하겠다.
첫 편 [폭탄과 장군]에는 '아토모'라는 원자와 장군이 나온다. 아토모는 원자폭탄 속에 갇혔다. 동화지만 핵폭발의 원리가 간단히 나온다. 아토모는 슬펐다. 그러다 결심한다. 장군에 맞서 폭탄에서 빠져나오기로. 한편 장군은 자신의 탐욕을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
그러나 독자는 알고 있다. 원자들은 이미 빠져 나갔다는 것을.... 폭탄은 꽃병이 되었고 사람들은 전쟁을 없애야 할 이유를 가슴깊이 느끼게 되었다. 마지막 장면 장군의 모습은 본인에겐 어떨지 몰라도 우리에겐 해피엔딩.
인류는 이제 이런 해피엔딩을 맞기에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일까. 평화의 소중함과 평화를 방해하는 것들에 대해서 아이들과 이야기 나눌 수 있겠다.

두번째 이야기 [지구인 화성인 우주인]의 키워드는 '다양성'이라고 하겠다. '다름에 의한 차별'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알려준다. 실제로 세 편 중 이 작품이 젤 웃기다. 그런데 웃기면서도 뭉클한 감동이 있다.
화성에 간 세 지구인은 모두 국적이 달라 언어가 달랐으므로 그 먼 우주에 나가서까지 데면데면했다. 그러던 그들이 어느날 한가지 동질감을 느낀 이후로부터(비결은 '엄마') 가까워지고 이해하게 된다.
이번에는 그들이 화성인을 만났다. 그들 사이에 더 큰 차이가 놓이게 되고 그로인해 지구인과 화성인은 대적한다. 마지막 순간, 그들이 동질감을 느끼게 된 이유는? (이 부분에서 뭉클)
혐오가 만연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작품은 상당히 큰 메세지를 전한다. 차이를 극복하게 만드는 동질감은 찾으면 있기 마련이다. 차이-혐오-차별로 이어지는 수렁에 빠지지 전에, 이 작품을 읽고 이야기를 나눌 필요가 있겠다. 아주 좋은 텍스트다. 비유와 상징도 절묘하다.

마지막 [뉴 행성의 난쟁이들]에서는 환경문제를 짚고 있다. 어떤 황제가 새로운 땅(식민지?)을 찾고 있다. 지구상엔 더이상 없어 우주의 행성을 찾게 됐다. 마치 옛날 지구의 자연환경과도 같은 행성이었다. 우주탐험가는 그들에게 뻐기며 황제의 문명을 전해주겠다고 한다. 그러나 지구의 실상을 본 난쟁이들은 사양한다. 오히려 그들이 지구에 방문하겠다고 한다.
권정생 선생님의 <랑랑별 때때롱>이 떠오르기도 하면서, 마지막장에 "언젠가는 뉴 행성에 사는 난쟁이들이 정말로 지구에 올지 모릅니다." 라는 말이 우리들의 책임감을 일깨우는 느낌이다.

이렇게 세 편의 이야기는 움베르토 에코가 꼽은 '미래를 대비하는 인류의 이슈 3'이 아닐까 싶다. 평화, 다양성, 환경.
압축된 문장들에 많은 생각을 담고 있어서, 의미 파악과 이야기 나누기에 아주 좋은 책이다. 내용이 짧은 것도 이럴 때는 장점이다.

내가 더 생각해보고 싶은 점은 '아이들의 실생활과 연결해주는 고리'를 찾는 일이다. 상징의 의미를 찾는 것은 국어 활동으로 매우 효과적일 것이다. 하지만 거기에서 끝난다면 아쉽다. 아주 단순한 한 가지라도 실천으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관념에서 끝나고 말 것이다. 우리 교실에서 평화를 깨는 일은 어떤 것인지, 우리 안에 호전적인 모습은 무엇인지, 그걸 어떻게 평화로 바꿀 수 있는지, 우리가 다르다는 이유로 선을 긋는 일에는 무엇이 있는지, 우리 안에 편견과 차별은 없는지 생각해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특히 실천과제를 꼭 찾아야 하는 것은 3장이다. 앞의 두 주제는 생각의 전환으로도 어느정도 가능하지만 환경문제는 직접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이 장은 구체적 자료를 더 투입해서 후속 수업으로 이어가면 좋을 것 같다. 사실은 올 동학년이 생태전환교육 주제로 꿈실 신청서를 내서(아직 당첨되진 않았음) 온작품읽기와도 연결하려고 책을 찾다가 읽게 된 것인데, 그렇게 활용할지 아직 확정은 못하겠다. 그래도 덕분에 좋은 책을 한 권 발견하게 된 건 큰 소득이다. 어떤 방식이든 아이들과 꼭 읽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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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로 그리는 행복한 교실 - 선생님과 아이들의 삶을 담는 교육 이야기 교실 속 살아 있는 문화예술교육 1
이호재 지음 / 푸른칠판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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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 스타샘들이 다 부럽지만 그중에 특별히 인상적인 분은 이호재 선생님이다. 이런 이유에서다.

1. 내가 넘넘 잘하고 싶지만 넘넘 안되는 음악을 그냥 숨쉬듯이 한다.
2. 분명 유명하고 능력자인데 일반인처럼 보인다.(?) 유명하지 않은 내 글에도 좋아요를 눌러 주신다.ㅋ
3. 남의 마음에 못박는 일을 못하실거 같다. 댓글 하나도 가시 돋힌 걸 본 적이 없고 부드러우시다.

나는 이처럼 일반인 같은 전문가를 좋아한다. (양쪽에 다 방점이 있으나 전문가에 무게가 좀더 있음) 자기 방면에서 꾸준한 전문성을 쌓아 본인의 영역을 확실히 커버할 수 있는 사람들은 미덥다. 부럽기도 하고.

그의 음악교육 약 20년사가 책으로 나왔다. 시작이 오랜만큼 나도 저자의 자료를 산발적으로 갖고 있다. 페북에서 알기전 초등교사 커뮤니티에서 만난 그의 '노래와 함께 하는 학급운영' 월별자료를 보고 세상에 이런 분이 있다니 했다.(그게 벌써 오래전이다) 이후에도 자작곡이 꾸준히 나오고 해마다 수준높은 공연도 이루어져서 결국 책까지 결실을 맺었다. 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활용하는데 좀 부족해서 책으로 묶여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정말 반갑고 잘된 일이다.

저자의 초기 자료처럼 이 책도 월별 구성으로 되어있다. 거기에 이야기가 더 담겼다. 월마다 4곡을 선별해서 담고 그 곡과 관련된 사연을 소개했다. 곡은 모두 저자가 썼지만 가사는 아이들이 쓴 것도 많다. '리코더 지옥' 이라든가 '우리들의 떠드는 소리는' '아빠의 발냄새' 같은 곡들이 그렇다. 이렇게 아이들이 쓴 글에 곡을 붙이고 그것으로 아이들의 삶을 담은 공연을 만드셨으니, 전문합창단 아이들이 아니었어도 얼마나 공감 가득한 공연이었을까. 한번 꼭 관람하고 싶다. 출판사 대표님이 그 공연을 보고 감동받아 책 출판을 제안하셨다는 일화가 이해가 간다.

그뿐만 아니라 각 악보 옆에는 '이렇게 불러 봐요'라는 곡별 지도 요령이 붙어 있어 지도하는데 큰 도움이 되겠다. 여기선 저자의 음악적 전문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이 노래는 셔플 풍의 리듬으로 점8분음표와 16분음표로 이루어진 부분이 많은데, 노래를 부를 때 16분음표의 리듬이 뒤로 밀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리고 마디의 앞부분에 등장하는 4분음표는 스타카토의 느낌까지는 아니어도 약간 튕기듯 짧게 끊어 불러주는 것이 노래의 맛을 살리는데 많은 도움을 줄 것이다." (46쪽)
곡마다 이런 지도요령이 붙어 있으니 우와, 정말 대박이다. 내가 지도해 본 곡들을 찾아 이부분을 읽어보니 정말 이해가 잘 된다. 지도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겠다.

저자의 곡 중 많은 곡을 지도해보진 못했고 음악에는 문외한인지라 음악 자체에 대한 얘기는 하기가 어렵지만, 그냥 내 느낌을 말해보면 이렇다. 일단 가사에 아이들의 생활이 담겼고, 리듬이나 코드 진행도 단순하기보다는 세련된 느낌이다. 특히 리듬은 악보상에서는 꽤 어려워보이는 것도 많은데, 아이들은 생각보다 금방 배웠다. 뭔가 사람의 귀에 익숙한 리듬을 쓸 수 있는 저자의 노하우가 아닐까 짐작한다. 그래서 동요를 멀리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다가가기 좋은 것 같다. 약간 어렵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고음역의 곡이 가끔 있다는 것(높은 파까지) 이 노래들은 나도 부르기 어렵다.ㅎㅎ 물론 아이들은 나보다 낫지만.^^

아이들이 부른 곡들과 아이들과의 1년살이는 모여서 공연이 된다. 이 과정도 잘 담아주셨다. 시간에 쫒겨 급조하여 해치우곤 했던 학예회가 부끄러워진다. 호재쌤 반의 아이들은 누구나 추억 한자락씩을 갖고 살게 될 것 같다. 운이 좋은 아이들! 내가 호재쌤 반 아이여서 내 목소리를 녹음하고, 무대에도 서게 되었다면 그 떨림과 보람을 평생 못잊을 것 같다.

월별 노래이야기 뒤에는 생활노래들이 담겨있다. 기초생활교육에 안전교육의 내용까지 들어있다. 1학년 입학 초기 적응교육 때 무척이나 유용할 것 같다. 이 부분은 아직 지도해보지 못했다. 마지막장엔 선생님들을 위한 노래들이 들어있다. 교사힐링곡? 마지막곡이 '아무것도 안하기' 진정한 힐링곡일 것 같다.ㅎㅎ "너희에게 가는 길이 왜 이다지도 힘드는지 어두운 교실에 우두커니 앉아 창밖을 바라다보네" 22년 전에 만드셨다는 이 곡을 구슬피 부를 일은 부디 없길 빌며.^^;;;;

나는 답답할 때 글을 쓰면 좀 풀린다. 글이 거울이 되어 객관적으로 내 감정이나 생각을 보게 해준다. 그런데 그 외에도 표현의 도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림이나 춤이 그렇고, 저자와 같이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작곡) 그건 또 어떤 느낌일까. 궁금하다. 글을 쓰듯이 음악을 쓴다. 으음 멋지고 부럽다. 하지만 그게 모든 이가 가진 능력은 아니니 만들어주신 곡을 열심히 불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올해는 아쉽게도 음악이 전담시간이 되었다. 이 책을 읽고 관심가는 곡부터 틈틈이 들으며 귀에 익혀두면 내년에는 활용할 수 있겠지. 꿰어진 구슬을 받아든 기분이 꽤나 삼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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