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일반판)
스미노 요루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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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책을 마지막으로 3주간의 방학을 마무리한다. 이것이 20편째 리뷰다. 거의 하루에 한편씩 쓴거 같다. 아이들 책이 대부분이었으니 쉬엄쉬엄 뒹굴면서 1년의 여독(?)을 다 푼 일상이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상이지만 텐션없는 작품이 매력없듯이 생활도 그런 거겠지. 이제 텐션을 채워야겠지. 아 넘 괴롭다. 하지만 살아가야 하느니라.

무심코 텐션이란 낱말을 썼는데, 생각해보니 이 책도 적절한 텐션으로 긴장감과 재미와 의미와 먹먹한 마음의 진동과 사색을 주는 작품이었다. 제목만 봤을 때는 비틀리고 지나친 텐션으로 일반취향을 가진 나같은 독자를 고문하는 책인가 했더니. 전혀 아니었네. 절제미가 가득한 작품이라고 할까.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반의 인기스타 발랄한 여학생.
그 사실을 우연히 알게된 존재감 없는 조용한 책벌레 남학생.
두 아이의 관계가 이야기의 주축이다. 새로울 것 없는, 아니 진부한 설정이다. 순정만화에나 나올 것 같은. (아참, 순정만화 무시하단 큰코 다치는데.ㅎㅎ)

제목과 시한부를 연결하면 답이 나오는구나. 여학생은 췌장암(암이라는 표현은 없었던거 같은데 췌장의 병이라니 아마도 그렇지 않을까)에 걸렸고 남은 삶이 1년 정도라고 한다. 여기에서 잠깐 의문, 암 중에서도 췌장암의 고통이 가장 심하다고 들었다. 그런데 시한부를 선고받을만큼 위중한데도 주인공이 병으로 고통받는 장면은 없다. 남은 삶의 버킷리스트를 이루려는 의욕은 좋지만 보통 허물어져가는 육신 때문에 그게 쉽지 않은 법인데 이 책에선 그런 낌새가 전혀 없다. 엄청 잘 먹고, 잘 돌아다니고, 심지어 술을 마시고, 입원을 했을 때도 병색이 없을 만큼. 이런 부분에서 작가가 병에 대한 취재를 제대로 한 것인지 의심스러웠다. 이러면 순정만화가 되는 것이다. (앗, 또 순정만화 무시^^;;;)

그러나 비록 병증에 대한 묘사가 현실과 다르다해도 그쪽으로는 눈을 감아버리고 싶을 만큼 다른 쪽의 묘사가 훌륭했다. 바로 그 아이들의 대화와 심리 묘사다.

그들은 우연히 가까워졌다. 아니 그 우연을 기회로 여학생이 남학생을 '찜했다'고 표현해도 될까. 남학생은 거기에 순순히 따랐다. 그도 그럴것이 죽은사람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하지만 결국 모든 것은 선택! 이었다고 여학생은 말한다. 남학생도 나중에는 수긍한다. 궤변이라 말하고 싶었지만 나도 역시 설득되었다.

젊은이들 특유의 쿨하고 경쾌한 대사들도 좋았다. 번역을 잘하신 탓인지 외국어였다고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여학생은 남학생을 '비밀을 알고 있는 클래스메이트'라는 긴 호칭으로 부른다.
".... 얼마 남지 않은 목숨을 도서실 정리 같은 것에 써도 괜찮아?"
"글쎄? 무슨 말을 하려는지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이를테면 비밀을 알고있는 클래스메이트도 죽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이 있어?"
"..... 없지는 않다, 라고 할까."
"근데 지금 그걸 안하고 있잖아. 너나 나나 어쩌면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야. 그런 의미에서 너나 나나 다를 거 없어, 틀림없이. 하루의 가치는 전부 똑같은 거라서 무엇을 했느냐의 차이 같은 걸로 나의 오늘의 가치는 바뀌지 않아. 나는 오늘, 즐거웠어."

이렇게 여학생은 시한부의 하루하루를 평범한 일상으로, 가끔 원하던 이벤트(여행이나 특별한 곳 방문, 맛있는거 먹으러 가기 등)로 채워간다. 되도록 모든 일상을 남학생과 함께 하려 한다. 왜냐하면 그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타인이며, 동시에 그 사실을 알고도 호들갑떨지 않고 무심히 일상을 공유해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길지 않은 기간 동안 둘 사이에 있었던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일들, 그리고 둘을 이어주었던 여학생의 투병일지(공병일기)의 내용, 에필로그와 같은 남은 이의 후일담으로 이 책은 마무리된다.

감정을 터뜨리지 않는 두 사람의 배려와 신중함이 좋았다. 애초부터 연애로 시작한 것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감정이었을리는 없지 않나. 그 감정을 소중히 다루고 조심하는 게 내 취향으로는 좋았다. 그리고 서로에게 도움이 되었음을, 소중한 사람이었음을 알고 기뻐하는 마음이 그 어떤 사랑보다 내 마음에 다가왔다. 수준높은 책에 이런 막말 죄송한데, 아끼다가 똥 된다는 말도 있지만 나는 감정은 아끼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게 오히려 나에게 정직한 일이다. 감정이 날 속일 때가 더 많기 때문이다.

여학생의 제의로 그들은 진실게임을 하곤 했는데 마지막 질문에 여학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너에게, 산다는 것은 뭐야?"
"아마도 나 아닌 누군가와 서로 마음을 통하게 하는 것, 그걸 가리켜 산다는 것이라고 하는 거야." (222쪽)
이 책의 화자는 남학생이다. 그는 나중에 자신의 변화한 마음을 이렇게 고백한다.
"나를 내려다보는 나에게 말해주리라. 나는 타인과 교류하는 것을 기뻐하고 있다. 태어나서 처음이다. 누군가와 함께 있으면서 나 혼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은 것은." (241쪽)

남학생만 여학생에게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 공병일기에 적힌 유서에서 여학생은 이렇게 고백한다.
"너는 타인과의 관계가 아니라 너 자신을 응시하면서 매력을 만들어내고 있었어.
나도 나 자신만의 매력을 갖고 싶어.
네가 진심으로 날 걱정해준 날,
친구라느니 연인이라느니 그런 관계를 필요로하지 않는 네가 나를 선택해준 거잖아.
처음으로 나는 나 자신으로서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란 걸 알았어." (290쪽)

여학생이 떠난 후, 그녀의 묘 앞에서 남학생은 또 고백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만으로는 부족했어.
그래서 서로를 보완해주기 위해 살아온 것이겠지.
그러니까 네가 없는 나는 혼자 일어서지 않으면 안 돼.
그것이 둘이어서 마침내 하나였던 우리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316쪽)

떼어내서 적어보니 읽으면서 든 느낌이 하나도 안 든다. 리뷰란 어쩌면 단면을 만드는 작업인 것 같다.
이제 내 자식들보다 더 어린 10대 학생들에게서 삶의 진지함을 배우다니.... 아마도 나는 책을 더 읽어봐야 하고 더 살아(?) 봐야 하는 것 같다.ㅎㅎㅎ

어차피 다 알려진 내용이니 중요한 반전도 이야기하자면, 여학생은 그 시한부 인생마저도 다 채우지 못하고 떠났다. 참혹한 사고로. 그렇게 원망스러운 결말인데도 표지의 벚꽃은 너무나 은은하고 따뜻하고, 슬픔을 다 토해낸 사람들은 또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구나. 인생이 어떻구나 하는 것은 평생 배워야 하나보다.

집에 이 작가의 책이 한 권 더 있는데, 오늘이 새울 수 있는 마지막 밤인데 읽을까말까 생각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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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1-01-23 0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애니메이션도 꼭 보세요. 잘만들었습니다.🙂

기진맥진 2021-01-25 10:37   좋아요 0 | URL
네, 애니도 영화도 많은 분들이 보시고 추천하시더라구요. 시간날 때 꼭 보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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팽이 도둑 - 제9회 정채봉 문학상 대상 수상작 샘터어린이문고 62
서정오 지음, 김효연 그림 / 샘터사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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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상 수상작인데 작가 이름이 서정오... 동명이인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는 서정오 님은 옛이야기 하면 대표로 꼽는 중견 작가이신데? 엇, 프로필을 보니 그분이 맞다. 왜 학교 백일장에서 선생님이 상타신 느낌이 들지?ㅎㅎ 어쨌든 반가웠다. 옛이야기가 아닌 서정오 님의 창작동화.

옛이야기 살려쓰기를 오래 해오신 탓인지 입말을 살려 쓰는 글투가 창작동화에도 적용되었다. 그런데 옛이야기의 입말체는 어른이 아이에게 들려주는 말 아닌가? 동화는 아이가 화자고. 그러다보니 글투와 화자의 연령이 조화가 안되어 부자연스럽다는 느낌이 살짝 드는 곳도 있었다. 세 편의 이야기 중 첫번째, 세번째는 괜찮은데 두번째 이야기 [누구일까?]가 특히 그랬다. 두번째 이야기는 화자가 여자 아이라서? 그렇다면 나의 편견이 반영되었다는 뜻인데.... 어쨌든 그부분에서 아이가 화자가 아니고 어른이 아이 이야기를 대신 해주는 느낌이 약간 들었다.
"아버지 친구분 가운데 시골 내려가 사는 이가 있는데, 그이가 자꾸 권한 까닭이랍니다." (53쪽)
"그러면서 아닌 척 하다니, 어른들은 좀 의뭉스러운 데가 있습니다." (54쪽)
이런 부분들이 좀 거슬렸다.

이상은 괜한 타박일수도 있다. 이야기가 좋은가 그게 문제지. 이야기는 좋다! 지금부터 그 얘기를 하려고 한다.

세 편의 이야기는 양지마을이라는 곳에서 사는 세 아이들이 주인공이다. 아이를 찾아보기 힘든 깊은 시골도 아니고 그렇다고 도시도 아닌 웬만한(?) 시골이다. 전교생이 40여명이라고 하니 그래도 한 학년에 한반씩은 있겠다. 들고 나는 일이 별로 없으니 아이들도 어른들도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 살아간다.

첫번째 이야기 [팽이 도둑]의 은호네는 도시에 살다 두 해 전에 내려온 가족이다. 그 집은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집이다. 할아버진 은호에게 세상없이 좋은 분이었다. 늘 은호 편이었고 잘 놀아주셨으며 손재주가 좋아 장난감을 뚝딱 만들어 주셨다. 이 대목 읽으며 아버님과 우리 아들 관계랑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아버님이 누가 버린 스케이트 주워다가 날 떼어 판자에 붙여서 만들어주신 썰매를 가지고 우리 아들은 얼음판을 휩쓸었더랬지... 그런 할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은호는 할아버지의 유품인 팽이를 너무나 소중히 여긴다. 그 팽이를 어떻게 만든 건지, 얼마나 잘 돌아가는지에 대한 설명에서 자랑스러움이 뚝뚝 묻어난다.

그런데, 도랑가에 두고 잠시 엿장수 구경을 하고 온 사이에 그 소중한 팽이가 사라졌다. 놀라 찾아다니던 은호가 며칠 후 동네 형이 갖고 노는 장면을 포착했지만 형은 아니라고 딱 잡아뗀다. 어른들께 이 일을 이야기해 보지만, 누구도 은호의 절실함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팽이는 하나밖에 없는, 지금은 살아계시지 않은 할아버지가 만들어주신 거라 소중한 것인데! 심지어 부모님조차도
"증거도 없이 함부로 그런 말 하는 것 아니다."
"아무데나 둔 게 잘못이야."
"요즘 팽이 하나에 얼마나 하냐?"
이러는 걸 보면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니 선생님은, 경찰서에 있던 어른들은 더하지 않았겠는가? 은호의 낙심은 깊어져 간다.

이때, 나선 이들은 동네 친구들이었다. 혼자는 상대할 수 없는 형에게 모두가 우르르 몰려가 따박따박 따지고 결국 팽이를 받아낸다.
"마침내 팽이가 내 손에 다시 돌아온 순간이었습니다. 2월 6일 목요일 오전 10시 15분에 일어난 기적 같은 일입니다."

때로 아이에게 소중한 것은 어른들에게 가 닿지 못한다. 이런 경험이 어느 아이에게나 있을 것 같다. 이 책을 아이들과 읽는다면 그 경험을 꼭 물어보고 싶다.
한편으로는 어른들은 이미 지나버려서 알 수 없는 것, 그것의 소중함을 공유하는 아이들이 이 책에서처럼 너희들끼리 문제를 좀 해결해보면 안될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게 안되는 건 아이들의 해결력이 떨어져서일까? 해결도 하기 전에 어른들이 끼어들어서일까? 아무래도 후자겠지?ㅠㅠ

두번째 이야기 [누구일까?]는 한달 전에 이사온 윤수의 이야기다. 현장학습 가서 깨달은 윤수의 특기는 바로 도끼질! 남학생들도 선생님도 못하는데 윤수가 쩍 하고 두동강내는 장면 묘사는 아주 생생하고 시원하다. 시골로 와서 윤수는 원하던 도끼질을 맘껏 해보게 되는가? 생각과는 달리 아빠의 반대가 심해서 산비탈 공터에서 나무를 주워 몰래 취미생활(?)을 하던 윤수, 그곳에 또다른 누군가가 취미생활을 하러 온다는 걸 알게 되는데... 남학생인 그 아이의 취미생활은?ㅎㅎ 성역할 고정관념에 대해서 이야기나눌 때 들려주면 아주 좋을 이야기.

마지막 이야기 [환한 날]은 다툼과 화해에 관한 이야기라 아주 훈훈하다. 다툼은 아이들이 아니라 할머니들 사이에서였다. 단짝이었던 현우 할머니와 지민이 할머니는 어느날 화투장 잘못 센 걸로 험한 소리를 몇마디씩 주고받다 오랜세월 우정에 와장창 금이 가버린다. 고민이 깊은 현우에게 지민이가 두번이나 아이디어를 내놓는데 그때마다 현우가
"이야, 진짜!"
이러면서 감탄하는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화해의 메신저가 된 두 아이. "온 세상이 환합니다"로 끝나는 이야기. 정말 환해지는 이야기다.

다투고 어색해지는 관계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메신저가 되겠다고 오지랖을 떨다 남의 관계를 더 망쳐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한번 어긋났다고 그걸로 끝이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적당한 오지랖도 자존심 적당히 굽히는 것도 다 필요한데.... 부디 모든 관계에 환한 빛이 쏟아지길.^^

서정오 작가님의 이 이야기들이 옛이야기처럼 입에 착착 감기면서 아이들의 내면에 힘을 주는 이야기들이면 좋겠다. 일단 한편씩 읽어주기로 아이들의 반응을 살펴보고 싶다. 작가후기에서 서정오 작가님은 "아이들에게는 응원이요 어른들에게는 충고" 라고 했다. 이 책의 소재들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하지만 진실은 사소한 것에도 들어있는 법이고 그걸 알아보는 건 아이들이지. 아이들이 가진 진실의 힘을 함께 응원해 보도록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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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를 부탁해 바일라 5
한정영 지음 / 서유재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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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에 가서야 전모를 드러내는 책이다. 그래서 초중반에는 좀 어리둥절하거나 이게 뭐냐 하는 짜증이 살짝 날 수 있다. 나는 이미 전체 퍼즐이 뭔지 알고 읽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반부엔 읭?? 하는 부분이 있었다.

스포를 안하고 이 책의 리뷰를 쓰기는 불가능할 것 같다. 나도 일부러 찾아본 것도 아닌데 알고 읽은 것처럼. 바로 이야기하자면 이 책은 세월호 가족 이야기다. 세월호라는 말은 한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그래도 정황이 너무나 같아서 읽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언제 쓰신 걸까 하고 서지정보를 보니 2019.4.16.
흠칫 하는 느낌이 들었다.ㅠ

그일이 있은지 5년 후에 이 책은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또 2년이 흘렀다. 벌써 7년이 흘렀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그때 내 아들이 같은 학년이어서 더 놀라고 어쩔줄 몰라했었다. 그 아들은 졸업을 하고 군입대를 하고 제대까지 했다. 부모 마음 속의 아이들은 아직도 고딩이겠지. 그리고 아들 또래의 청년들을 보면 '우리 애도 살아있다면 저만큼...' 하는 생각에 목이 메이겠지. 7년이 지났다고 그 슬픔이 사라지진 않겠지.ㅠㅠ

왜 다 지난 일을 들추며 이런 작품을 쓰냐고 말하면 안된다. 슬픔은 아직도 생생한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에. 그 슬픔을 소멸시킬 방법이 세상에 존재하진 않지만 그래도 충분한 위로를 받을 수는 있었을텐데, 적어도 한이 맺히진 않았을텐데 모든 것이 안타깝다.

이 책은 뭔가 드러내고 주장하려 쓴 작품으로 보이지 않는다. 그냥 힘들었던, 아니 지금도 너무 힘든 한 가족의 이야기가 담겨있을 뿐이다. 너무 아파서 제정신으로는 버틸 수 없기에 무의식이 손을 뻗어 그 정신줄을 놓아버린 사람이 있다. 그 가족의 아빠다.

자식 키우며 모진 소리 안해본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 그게 마지막 말이었다면. 다가올 참사를 상상도 못했기에 내뱉은 모진 말이 다가온 참사를 보고 마지막을 직감한 딸한테 마지막으로 한 말이었다면.
딸은 어지간히도 속썩인 아이였다. 그 아이도 아픔이 있었기에. 하지만 부모는 무슨 죄인가. 그리 살 수밖에 없는 환경이었던 것을. "그러게 잘 키울수도 없는 것들이 자식은 왜 낳았어."라고 비난을 해서는 안되는거 아닌가.
아이는 그렇게 떠났고 나중에 찾은 휴대폰에 남겨진 마지막 두 문장.
"아빠 미안해."
"엘리자베스를 부탁해."
이렇게 이 책의 제목은 <엘리자베스를 부탁해>가 되었다.

화자는 그 아이의 동생 아인이다. 아인이도 언니 못지않게 속을 썩이는 중이다. 누군가와 시비가 붙어 몇백만원의 합의금을 물어주게 생기자 엄마는 '탐정사무실'이란 곳에 알바를 하라고 보내버린다. (한참 뒤에 그 합의금 뒷얘기가 나오는데, 알고보니 상대는 단식투쟁 광장에서 폭식투쟁을 하며 조롱한 사람 중 한 명)

아빠에 비해 엄마는 빨리 정신을 수습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타로 마스터. 이 분야에 대해 아는게 전혀 없어서 아주 생소했지만 작가가 많이 알아보셨구나 싶고 흥미롭기도 했다. 아인이도 매일 아침 엄마 몰래 카드 한장씩을 뽑아들고 나오는데, 카드 내용과 사건 전개를 절묘하게 연결시키는 부분이 작가의 내공을 짐작케 했다. 그런가하면 탐정사무소 주민후 소장이 아인의 아저씨에서 아빠로 전환되는 부분은 매끄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아인이가 주아인이란 걸 안 순간 바로 짐작되기는 했지만.

탐정사무소 주민후 소장은 참 이상한 사람이었다. (이상한데 너무 착함) 그는 주로 고양이를 찾아주는 일을 한다고 한다. 사실 더 이상한 건 뻣뻣하게 툴툴대면서도 그 이상한 소장의 말을 들어주고 도와주는 아인이다. 왜 그런지는 금방 알게 되지만.

울컥했던 문장들.
"집에 가! 엄마아빠가 기다리시잖아. 기다리는 사람이 안오면 얼마나 슬픈데." (105쪽)
주 소장의 말이다. 가슴이 아픈 말.
제목에 울컥하기도 했다. 136쪽부터 시작되는 장은 제목이 '나의 아저씨'였다. 작가님 너무해 엉엉.ㅠㅠ
이 장에서 주 소장은 아인이를 괴롭히는 선자언니 패거리를 혼내주고 대신 머리에 벽돌을 맞는다.
웃겼던(아니 웃펐던) 장면은 주 소장이 "아빠를 찾아주겠다"며 아인이와 함께 한 하루다. 마지막 코스로 갔던 노래방에서 아인이는 이문세의 '파랑새'를 청했다. '삐릿삐릿 파랑새는 갔어도...' 그 노래는 옛날 아빠의 택배트럭에서 질리도록 들었던 아빠의 애창곡. (그런데 이문세를 보고 '원로가수'라고 하다니. 얘 아인아, 내 비록 이문세씨보다는 젊다마는 내 친구들이 오빠오빠하던 사람이 원로소릴 들으니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드는구나.ㅋㅋㅋ)
주 소장은 거기서 아이돌 노래를 부르고 동작까지 철저히 따라하며, 그러면서 울었다. 그래서 결국 웃긴 장면은 되지 못했다.ㅠㅠ

이 책에서 또 슬펐던 건 어른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아이들의 일탈이 폭력성을 띤다는 점이었다. 아인이 언니는 폭력을 당하고 전학갔고, 간 학교에서는 폭력를 행했다. 아인이가 선자 언니 패거리들에게 당하는 폭력도 지켜보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 폭력의 고리는 왜 끊어지지 않을까. 실제로 본다면 난 이 아이들을 불쌍히 여기기보다 싫어하고 끔찍해 하겠지. 그런 생각이 날 더 힘들게 했다. 지금도 어디선가 곰팡이처럼 번지고 있을 이 음울한 폭력.ㅠ

'엘리자베스'에 대한 이야기는 좀 남겨놓고 글을 마치고 싶다. 고양이라는 얘기는 해야겠다. 폭력을 당하고, 또 폭력을 가하던 언니가 마지막까지 부탁하고 떠난 엘리자베스. 여기저기서 상처입고 다리를 저는 것까지 언니의 분신 같던 엘리자베스. 그 엘리자베스를 찾아 헤매던 아빠. 엘리자베스는 돌아올까? 그리고 살아남은 이들은 남은 삶을 살아낼 수 있을까?

떠나버린 언니도, 남아있는 아인이도 가엾다. 그래도 더 중요한 쪽을 택하라면, 남은 아인이다. 삶이 남았으니 버티고 살아야지. 엄마아빠도 힘내세요. 이제 행복한 날도 있어야 해요. 누구에게나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게 인생이지만 이렇게 가슴아픈 일은 다시는 없어야 될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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