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얄밉지만 돈카츠는 맛있어 반갑다 사회야 25
김해창 지음, 나인완 그림 / 사계절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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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있는 작명과 컬러풀한 표지그림를 보고 "와, 재밌겠다~" 하고 펼치면 약간 실망할 위험성이 있는 책이다.^^ 책이 얇고 그림이 많은데도 지적인 욕구와 독서력이 어느정도는 있어야 읽어낼 수 있는 책인 듯하다.

첫번째 챕터에서는 개요에 해당되는 이런저런 내용들이 나오는데 이부분이 좀 딱딱하게 느껴졌다. 세출과 세입, 행정조직도 등에 관심을 갖는 초등학생은 거의 없을 것 같아서.

그리고 아주 사소한 것이긴 하지만, 10쪽에 일본에서 가장 긴 강 3위까지를 귀여운 그림으로 소개했는데 그림상으로는 1등이 제일 짧고 3등이 제일 길다. 직관적으로 알게 하기 위해 그림으로 제시하는 건데 이렇게 제시하면 의미가 없는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이 책의 특징을 꼽자면 설명용 만화그림을 제외하고는 모든 그림이 일본의 옛 그림으로 제시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그림작가가 컨셉에 맞추어 그린 새 그림보다는 그림읽기에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일본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이 책의 차별성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첫장이 개조식으로 되어있다면 두번째 장부터는 입말 식으로 서술되어 있다.
- 한국과 일본,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을까?
- 일본의 정치와 법을 살펴보자
- 일본과 이웃나라의 관계를 살펴보자
- 일본의 생활, 문화, 교육을 살펴보자

위와 같은 4개의 주제로 설명한다. 개인적으로는 세번째 주제가 가장 관심이 갔다.(참 여러 나라와 풀어야 할 문제가 많구나) 문화에 대한 내용도 관심이 갔는데 책으로 간단하게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으므로 문학이나 공연 문화는 실제 접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일본에 특별한 감정이 없다. 매사에 그다지 관심이 없는 성격이라 그런 것 같다. 남의 나라가 남의 나라지 뭐, 이런 생각이랄까? 한가지 분명한 건 밉건 좋건 간에 밀접하게 관련될 수밖에 없는 운명의 이웃나라라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에 대해 잘 이해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얄밉다는 감정, 맛있는 돈카츠에 대한 선호를 넘어서서 말이다. 이 책은 그런 뜻에서 쓰인게 아닌가 싶고 그런 의미에서 다루는 내용도 적절하다고 본다.

잘 기획된 책이고 차별성도 있지만, 조금만 더 욕심을 부린다면 초등생들 수준에서 좀더 관심있게 책장이 넘어가는 책이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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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교실 이야기 파이 시리즈
김규아 지음 / 샘터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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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쩌면 이토록 깊은 고난과 좌절과 슬픔과 두려움을 이렇게 잔잔하고 섬세하게 펼쳐 놓았을까. 이게 현실이라고 상상하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아이는 지금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감각 하나를 잃을 위기에 놓여있다. 두렵고 슬프다. 부모의 마음은 또 어떠할까. 그러나 격동의 감정은 표현되지 않았다. 모두가 담담하다. 하지만 또 그게 더욱 가슴아픈 법이지.

정우는 밤늦게까지 수학 학원에서 공부를 한다. 이런 부모는 많지. 선행학습으로 아이를 학대하는... 그런데 가만 보니 그런 경우는 아니었다. 아이는 "정확한 건 왠지 맘이 놓여서 편안하다. 수학처럼 말이다." 라고 한다. 엄마 아빠는 늘 다투었고, 지금은 별거 중이다. 그러는 중에도 아이는 시계처럼 정확한 일상을 살아간다.

두꺼운 안경을 쓴 말 없고 특이한 모범생. 그게 정우의 캐릭터다. 문제는 정우의 안경을 계속 바꿔야 할만큼 눈이 불편하다는 것인데... 또 찾아간 안과에서 아빠는 심각한 설명을 듣는다.

어느날부터 아빠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엄마는 전에 없이 정우와의 시간을 보내려고 애쓰는데, 엄마에게 상처주는 말을 내뱉고 후회하던 그 밤, 아빠는 모든 상황을 말해준다. "끝없는 밤이 올 수 있다." 는 슬픈 표현으로.

이제 정우의 시간들은 같은 듯 달라졌고, 정우의 생각과 감정도 많은 것이 교차한다. 조용하게 혼자서만 하는 생각들이 더욱 슬프다. 내게 무엇보다 슬펐던 장면은 정우가 스스로 안대를 사서 쓰고 어둠을 연습하던 장면... 속 깊은 아이는 왜 이렇게 지켜보기 가슴 아픈지.ㅠㅠ

그래도 정말 다행인건, 이 특이한 아이가 그동안 왕따가 아니었고, 자신과 아주 다른 절친들이 있고, 좋아하는 여자 짝꿍도 있고, 선생님도 좋은 분이고... 결정적으로는 '늑대 음악 선생님'을 만났다는 것.

선글라스를 쓰고 기타를 메고 등장한 늑대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거침없이 자신의 이야기도 해주었다. 왜 선글라스를 썼는지, 왜 사냥보다 음악을 사랑하게 됐는지, 왜 밤의 음악교실을 좋아하는지.... (그러고 보니 이 책의 제목이 바로 '밤의 교실'이다.) 늑대 선생님은 정우 안에 잠자던 많은 것들과 새로운 감각들을 일깨워 주었다. 조지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를 들려주었고 <문라이트 세레나데>라는 재즈곡을 추천해주었다. (전자는 알지만 일부러 들어보진 않았던 곡이고, 후자는 모르는 곡이다. 둘다 다운받았다. 듣다보면 늑대선생님과 정우를 더 이해하게 될까.ㅠ)

늑대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이자 밤의 연주회에서 연주한 곡은 늑대샘이 작곡하고 정우가 제목을 붙인 곡, <나의 눈은 달빛>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늑대선생님은 정우에게 달 브로치를 선물로 주었다.
"달빛처럼 살아. 어두운 곳을 비추면서."
"앞으로도 연주 즐겁게 하렴. 약속."

사소한 스트레스도 힘들어하거나 회피하려고 하는 나보다 이 초딩 소년이 훨씬 어른이다.
"나는 믿는다. 나의 밤하늘에 별이 가득 채워지고 있다는 걸."
삶에는 예기치 못한 슬픔과 절망도 있겠지만 의외의 기쁨과 소소한 희망도 많다는 걸, 만화책을 읽으며 깨닫는 나. 이 만화는 실로... 대단하다. 아이들이 다 이해할까 싶을 만큼. 이 책에는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가 담겼다. 늑대 선생님의 말씀이다.

"맞아, 재즈는 정확한 악보가 없어서 늘 새롭지. 마치 인생 같아. 예상할 수 없는 기쁜 일, 슬픈 일이 모여서 인생이 되는 것처럼."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생각해. 내 삶이 하나의 곡이라면 어떻게 연주하고 있는 걸까."
"원한다면 모든 걸 표현할 수 있어. 기쁨, 슬픔, 햇살, 바다, 바람... 마음만 먹으면 모두!"
"그래! 네 삶을 연주해 보는거야."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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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들 - 2021 어린이도서연구회 추천도서, 2021 아침독서신문 선정도서, 프랑스 아동청소년문학상 앵코륍티블 상 수상 바람청소년문고 11
클레망틴 보베 지음, 손윤지 옮김 / 천개의바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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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멋지고 유쾌한 그림의 500pcs 퍼즐이 한조각의 빈틈도 없이 딱 맞아떨어진 느낌이다. 맞추는 동안도 지루하지 않고 내내 흥미진진했다.

돼지들. 이 책의 제목인 '돼지들'은 3명의 청소년기 여성이다. 같은 학교 학생들이 sns에서 투표로 뽑은 '올해의 돼지'에서 금은동을 차지했다. 프랑스는 우리나라보다 인권의식이 더 앞서있을 것 같은데 이런 일이 가능하다니? 좀 의아하다. 우리는 이 비슷한 일만 있어도 학폭위가 열릴텐데? 선생님이 "인터넷에서 일어난 일이라 학교에선 어쩔 수 없다."고 했다니 믿을 수가 없다. 하지만 문학작품은 다큐가 아니니 이정도 의문은 넘어가자.

세상은 미의 기준을 일방적으로 정해놓고 그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사정없이 몰아세운다. 나도 그 '미의 기준'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 외모로 덕을 본 적은 일평생 없었던 것 같다.ㅋㅋ 다만 뚱뚱하진 않았어서 그런 종류의 비하를 받은 적은 없는데, 확찐자의 시대에 나 또한 예외가 아닌지라 외모는 갈수록 나의 핸디캡이 되어가고 있는 중? 그래봤자 예뻐보이고 싶다는 욕구가 게으름을 이기지 못하므로 달라질 건 없을 것이다.ㅎㅎ

이 정도면 다행인 거라고 생각하는 바이다. 그냥저냥 '내가 평균이야." 이런 정신승리로 살아가면 편한데, 내가 보기엔 충분히 예쁜데도 남들이 만들어놓은 편협한 기준에 자신을 끼워넣고 자신의 자원을 낭비하는 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이 책을 보라!! 당신들보다 백배천배는 멋진 '돼지들'이 있으니!

이 책의 화자이자 돼지들의 대표격인 미레유는 엄마가 싱글맘으로 낳은 아이다.(지금은 새아빠가 있음) "그러게, 누가 못생긴 남자랑 자래요?" 이런 식으로 말도 거침이 없고 은근히 유머도 뛰어나며 솔직하고 당당한 모습이 넘 맘에 든다. 하지만... 모르겠다. 이 아이를 현실에서 만났을 때 이렇게 매력적으로 느낄지는. 어떻게보면 나도 이 대회를 만든 말로 류의 찌질남들과 같은 시각을 갖고 있을지도.

초월한 듯 호탕하게 말하지만 완벽하게 괜찮을 수는 없을 터. 자신을 찾아온 아스트리드를 만나 마음을 나눈 미레유는 나머지 한명인 하키마까지 찾아간다. 셋은 완전체로 만나게 된 것. 게다가 미레유는 아주 특별한 한 사람을 더 만난다. 휠체어에 앉아있는 눈부신 남자. 하키마의 오빠인 그는 전장에서 부하들을 이끌고 작전에 투입되었다가 유일하게 생존했으며 두 다리를 잃었다. (미레유는 그를 '선샤인'이라 칭한다) 여기서부터 기가 막힌 퍼즐이 맞춰지기 시작한다. 얼마 후 파리에서 열릴 엘리제 궁의 가든파티를 찾아갈 이유가 모두에게 생겨버린 것이다. 이들이 만나야 할 사람이 여기에 다 모인다니! 각자가 만나야 할 사람들은 이렇다.

• 미레유 : 친아빠. 그는 미레유의 존재를 모른다. 그리고 그가 지금 어떤 신분인지 안다면 누구나 놀랄 것이다.
• 아스트리드 : 프랑스 최고의 록밴드 엥도신. (난 처음 듣는데 검색해보니 실존 그룹이다. 한 곡 다운받아 들어봤는데 내취향은 아닌듯했다.^^;;)
• 하키마 남매 : 선샤인을 사지로 내몬 사신 장군

이렇게 각자의, 그리고 공통의 목표로 의기투합된 이들은 파리를 향한 머나먼 여정을 준비한다. 이동수단은 자전거! (선샤인은 휠체어) 그리고 세 대의 자전거 뒤에는 푸드트럭을 달고! 약 일주일 걸리는 험난한 길을 그들은 출발한다. 이 이벤트성 여정은 눈에 띄었고, 화제가 되었고, 실시간 보도가 되었고, 많은 이들이 그들을 기다리기까지 했다. 끝까지 비밀에 붙여진 것은 그들의 여행 목적. 과연, 그들의 목적은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졌을까? 그들은 목적을 달성했을까? 그들은 최초의 목표를 끝까지 고수했을까?

화자인 미레유의 입담은 거침이 없다. 이 책 재미의 절반은 그녀가 담당한다. 그녀의 입담=작가의 필력이다. 번역되었음에도 느껴지는 생생한 유머. 작가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을 정도다. 앗 그러고보니 번역자도 실력자이신 것 같다.

미레유를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든다. 어떤 상황에서든 찌질해지지 않을 수 있다고. 핑계 대지 말자고. 눈을 깔고 파고만 들어가지 말고 고개를 들자고. 그리고 함께 하자고. 당당한 표출과 함께 적당한 관용과 내면의 성찰도 필요하다고.

초등에게는 6학년이라도 권해주기는 좀 어렵겠고,(아쉽) 중2 이상이면 재미를 만끽하며 함께 읽기 좋겠다. 아주 건강미가 넘치는 책. 응원심이 샘솟는 책, 함께 페달을 돌리고 싶어지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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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번 레인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2
은소홀 지음, 노인경 그림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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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소재에 대하여,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쓸 수 없을 것 같은 글을 만나면 설렘이 뽀골뽀골 올라오는게 느껴진다. 이 책의 시작이 그랬다. 올라오던 그 설렘은 퍼져나가 전체를 휘감았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새로움이었다.

스포츠를 다룬 동화들은 꽤 많다. 내가 읽은 바로는 야구가 제일 많았던 것 같고, 축구도 꽤 있고, 농구나 육상 등등도 본 적이 있다. 이 책은 수영. 수영은 처음 본다. 수영이란 운동은 구기종목처럼 다채롭진 않잖아? 어떻게 수영으로 장편동화가 될지, 궁금했다. 아 그런데 정말 내가 본 어떤 스포츠 동화보다도 감각적이었다. 가장 안타까운건 나에게 그런 경험이 없는 것. 나는 세숫대야에 얼굴도 담그지 못한다고. 엉엉...ㅠ 이 책의 감각들을 정말 몸으로 느껴보고 싶은데 이생망이라고 하겠다.^^;;;

처음보는 작가이신데, 이분은 왕년에 수영선수였을까? 아니면 수영이 취미? 수영종목의 광팬? 아니면 자녀가 수영 유망주? 이런 상상을 해볼 정도로 이 책은 실감났다. 위의 예상이 모두 빗나갔고 '그냥 쓴 거'라면 헐~ 너무해.ㅎㅎㅎ

한강초등학교 수영부 선수들이 이 책의 주인공이다. 엘리트 체육과 운동부 운영에 대해서 좋은 소리를 못들어본거 같은데 이 책에 나온 모습들은 꽤 보기 좋았다. 코치님도 친절, 성실하신 좋은 분이고 아이들 간의 관계도 아주 훈훈하다. 각기 개성과 장점이 있으면서 시기하지 않고 서로의 방법대로 서로를 격려한다. 그중 대표 주인공은 수영부 에이스 강나루. 선수출신 부모님을 둔 나루는 어릴 때부터 두각을 나타냈고 1등을 놓치지 않았다. 그런 나루가... 얼마전부터 등장한 다크호스 푸른초등학교의 김초희한테 1등을 한번 넘겨준 뒤로는 속절없이 밀리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중심인 나루에게 한꺼번에 밀어닥치는 일들. 복잡한 심경을 안고도 일단은 걸음을 포기하지 않는 나루는 여전히 수영실의 자물쇠를 스스로 열고 아침운동을 계속한다. 답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이 길이 아니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는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 나루가 그 또래 아이들이 갖고 있지 않은 대단한 특별함을 갖춘 건 아니다. 나루도 물살을 가를 때만 빼고는 평범한 6학년 소녀일 뿐이다.

수영부 주장 지승남과는 여섯 살때부터 함께 수영을 한 사이고 이웃사촌이며 온가족이 함께 어울리는 사이다. 항간에 커플이라는 소문이 돌기도 하는 이들은, 이제 친구에서 사귀는 사이로 넘어갈 것인가?

아마추어 수영대회 입상전력이 있는 태양이는 선수들의 세상을 맛보고 싶어하며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 학교에 전학왔다.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수영부 입단에 성공! 태양이의 눈과 마음에 꽉 차버린 나루. 둘은 친구가 될까? 아님 다른 그 무엇이 될까?

나루의 롤모델인 언니 버들이. 수영자매였던 그녀들 중 언니가 먼저 우수한 성과를 내며 체육중학교에 진학했지만 잠시 부진을 겪던 언니는 바로 다이빙으로 전향해 버렸다. 대회에서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기도 하면서 한발짝씩 나가는 언니. 언니는 사소한 성취에도 기뻐하는데 그런 언니를 보는 나루의 마음은 복잡하다.

삽시간에 나루를 추월하고는 선두자리를 절대 내주지 않는 초희. 새로운 여왕 같은 초희는 사적인 마주침에서도 언제나 쾌활한데 나루는 저절로 조여드는 긴장감을 조절하기 힘들다. 어느날 같은 샤워실을 쓰게 된 나루는 초희의 수영복을 집어들었다가 얼떨결에 자기 가방에 넣어버리게 되고 초희쪽은 난리가 나는데, 반듯하게 살아온 나루는 이 대참사를 어떻게 처리할까? 나루는 자신 앞에 떳떳한 사람으로 다시 돌아올수 있을까?

사람들마다 자신의 길을 간다. 여러 길 중엔 남보기에 참으로 이해 안되는 길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사서 고생하고 눈에 보이는 열매는 없는 길이라 하겠다. 하지만 어떤 길이든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면 응원받을 자격이 있을 것이다. 자신이나 남을 파괴하는 길이 아니라면 말이다. 인내심이 부족한 내게 스포츠 선수의 길은 너무 보장없고 괴롭고 확률 낮은 길로 보인다. 하지만 남의 길을 그런 잣대로 재지 말 일이다. 이제 나의 자식들보다도 어린 주인공들의 진정성을 보면서 난 그걸 느꼈다. 그들이 고된 인내의 달콤한 열매를 따먹든, 그렇지 못하든 그들이 지나갈 모든 과정은 그 자체로 아름다울 것임을. 나루도 나처럼 그것을 깨달았을까.

집안에 틀어박혀 지내는 코로나 시대의 아이들을 본다. 어떤 선생님 표현대로 강건너에 밥상을 차리는 심정으로 수업을 만들어 올린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라고 하는데 그 진심에 응답하는 일부의 아이들이 있다. 그들 또한 진정성을 보여준다. 일부지만, 이 동력으로 힘든 시간들이 굴러간다. 그게 없었다면 모든 것은 마른 먼지처럼 퍼석하게 흩어져버렸을 것이다. 나루와 친구들을 보며 나자빠지지 않고 버티는 우리 아이들이 생각났다. 대충 해서 올려도 출석은 되는데 정성껏 해서 올리며 늦게 하교하는 (우리반은 학습시작과 끝시간에 단톡에 등하교 신고를 한다)아이들. 첫 결과물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한번 더 할 수 있게 시간을 더 주실 수 있냐고 문자를 보내오는 아이들. 이런 아이들한테서 나루를, 태양이를, 승남이를 본다.

이 책으로 서평이벤트를 열어볼까 하는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원하면 빌려주되 서평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위에 우리반 아이들을 꽤 미화했는데, 그건 극히 일부인데다 그 아이들조차 책은 썩 좋아하지 않아서 아마도 무안한 제안에 그치게 될 수도 있다.ㅎㅎ 그리고 다른 내용은 다 가라앉고 러브라인만 동동 떠올라와 보일수도...ㅋㅋ 방학전에 학년도서로 확보되어있는 진형민 작가의 <사랑이 훅!>을 배부하고 읽게 했었는데, "선생님은 왜 자꾸 이런 책을 읽으라는거지?" 할지도 모르겠다.^^;;;

표지에는 5번 레인에서 홀로 전진하는 주인공의 모습을 담았다.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는 5번 레인의 역주. 아름다운 역주를 응원한다. 아이들아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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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소리
젬마 시르벤트 지음, 루시아 코보 그림, 김정하 옮김 / 분홍고래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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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리에 좀 예민한 편이다.
큰소리에 잘 놀라고, 소음에 짜증을 낸다.
이런 내가 선생이 되었으니, 직업선택을 잘못했다고 볼 수 있는데, 대대로 우리반은 어느반 못지않게 시끄럽다는 슬픈 현실.ㅎㅎ
퇴근하고 집에 가면 TV 볼륨부터 줄인다.
"조용히 좀 살자."
ㅋㅋㅋㅋㅋㅋㅋㅋ

하지만 정말 완벽한 침묵을 추구하냐면 그렇진 않다.
일단 출퇴근 때 귀에 이어폰을 꽂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뭐든 그때그때 꽂히는 음악을 듣는다. 젊을 때는 클래식을 들었는데 요즘은 거의 가요지만, 조금씩 다른 것도 듣는다.
귀의 쾌락(?)을 추구한다고 표현해도 될까? 지금은 좀 아득하게 멀어졌지만, 젊을 때 클래식을 듣던 시절에 '가장 감미로운 감각은 청각이구나.'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어디서 어떤 곡을 들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데, 하여간 그런 생각을 했다는 기억은 난다.

이 책은 그런 감미로운 청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그림책이다. 판형이 크면 책장에 꽂기 힘든 경우가 많아 부담스러운데, 그래도 이 책은 판형이 커서 만족스럽다. 그림이 너무 좋아서다.

배경은 바닷가와 숲속, 두군데다. 소피아네 집은 바닷가고, 외갓집이 숲 근처다. 두 배경이 큰 화면 가득 펼쳐질 때 정말 느낌이 좋다. 그리고, 은은하게 느껴진다. 자연의 소리가.

자연의 소리는 소음이 되지 않는다. 그거 참 신기하지 않은가? 소음이 지속되면 사람은 견디기 어렵고 심하면 멘탈이 파괴된다. 층간소음으로 일어나는 불상사가 그걸 말해준다. 그런데 자연의 소리는 하루 종일 지속되어도 괜찮다. 빗소리에 미치고 환장하는 사람은 없다. 바람소리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적당한 볼륨의 자연의 소리는 음악처럼 우리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장면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림에서 들려지는 소리. 신기한 경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첫 배경인 바닷가는 눈앞에 펼쳐진 바다의 일렁임이 리듬으로 느껴지는 듯하다.
숲 속 풍경 속에선 더 다양한 소리들이 들린다. 여기선 각 소리들을 의성어로 표현했고 글씨 크기와 배열에도 변화를 주어서 좀 더 실감나게 느껴지도록 했다. 의성어 수업을 할때 활용을 해도 좋을 것 같다.

밤의 숲은 실제로는 좀 무섭다. 어둠이 삼킨 색과 형태는 빛을 머금었을 때와는 달리 무섭게 느껴진다. 반면 소리는 더욱더 섬세하게 살아난다. 한두 가지가 아닌 다양한 소리들이 귀를 가득 채운다. '숲의 교향악'이라 할까? 본문에서도 오케스트라의 연주에 비유를 했다. 그리고 색채 면에서도, 분명 채도가 낮은 어두운 녹,청,갈색이 사용되었는데도 무섭지는 않고 따뜻함과 포근함이 느껴진다.

마지막 뒷면지에 QR코드를 따라가면 연주된 음악을 들을 수 있다. 부모님과 아이가 함께 보다가 음악으로 마무리하는 그림책 독서도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아주 좋은 느낌을 선사한 책이었다. 새삼 그림책의 넓은 영역과 힘에 감탄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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