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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교실 ㅣ 이야기 파이 시리즈
김규아 지음 / 샘터사 / 2020년 4월
평점 :
아, 어쩌면 이토록 깊은 고난과 좌절과 슬픔과 두려움을 이렇게 잔잔하고 섬세하게 펼쳐 놓았을까. 이게 현실이라고 상상하면 도저히 견딜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아이는 지금 살아가는데 필요한 가장 중요한 감각 하나를 잃을 위기에 놓여있다. 두렵고 슬프다. 부모의 마음은 또 어떠할까. 그러나 격동의 감정은 표현되지 않았다. 모두가 담담하다. 하지만 또 그게 더욱 가슴아픈 법이지.
정우는 밤늦게까지 수학 학원에서 공부를 한다. 이런 부모는 많지. 선행학습으로 아이를 학대하는... 그런데 가만 보니 그런 경우는 아니었다. 아이는 "정확한 건 왠지 맘이 놓여서 편안하다. 수학처럼 말이다." 라고 한다. 엄마 아빠는 늘 다투었고, 지금은 별거 중이다. 그러는 중에도 아이는 시계처럼 정확한 일상을 살아간다.
두꺼운 안경을 쓴 말 없고 특이한 모범생. 그게 정우의 캐릭터다. 문제는 정우의 안경을 계속 바꿔야 할만큼 눈이 불편하다는 것인데... 또 찾아간 안과에서 아빠는 심각한 설명을 듣는다.
어느날부터 아빠는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고, 엄마는 전에 없이 정우와의 시간을 보내려고 애쓰는데, 엄마에게 상처주는 말을 내뱉고 후회하던 그 밤, 아빠는 모든 상황을 말해준다. "끝없는 밤이 올 수 있다." 는 슬픈 표현으로.
이제 정우의 시간들은 같은 듯 달라졌고, 정우의 생각과 감정도 많은 것이 교차한다. 조용하게 혼자서만 하는 생각들이 더욱 슬프다. 내게 무엇보다 슬펐던 장면은 정우가 스스로 안대를 사서 쓰고 어둠을 연습하던 장면... 속 깊은 아이는 왜 이렇게 지켜보기 가슴 아픈지.ㅠㅠ
그래도 정말 다행인건, 이 특이한 아이가 그동안 왕따가 아니었고, 자신과 아주 다른 절친들이 있고, 좋아하는 여자 짝꿍도 있고, 선생님도 좋은 분이고... 결정적으로는 '늑대 음악 선생님'을 만났다는 것.
선글라스를 쓰고 기타를 메고 등장한 늑대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거침없이 자신의 이야기도 해주었다. 왜 선글라스를 썼는지, 왜 사냥보다 음악을 사랑하게 됐는지, 왜 밤의 음악교실을 좋아하는지.... (그러고 보니 이 책의 제목이 바로 '밤의 교실'이다.) 늑대 선생님은 정우 안에 잠자던 많은 것들과 새로운 감각들을 일깨워 주었다. 조지 거쉰의 <랩소디 인 블루>를 들려주었고 <문라이트 세레나데>라는 재즈곡을 추천해주었다. (전자는 알지만 일부러 들어보진 않았던 곡이고, 후자는 모르는 곡이다. 둘다 다운받았다. 듣다보면 늑대선생님과 정우를 더 이해하게 될까.ㅠ)
늑대선생님의 마지막 수업이자 밤의 연주회에서 연주한 곡은 늑대샘이 작곡하고 정우가 제목을 붙인 곡, <나의 눈은 달빛>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늑대선생님은 정우에게 달 브로치를 선물로 주었다.
"달빛처럼 살아. 어두운 곳을 비추면서."
"앞으로도 연주 즐겁게 하렴. 약속."
사소한 스트레스도 힘들어하거나 회피하려고 하는 나보다 이 초딩 소년이 훨씬 어른이다.
"나는 믿는다. 나의 밤하늘에 별이 가득 채워지고 있다는 걸."
삶에는 예기치 못한 슬픔과 절망도 있겠지만 의외의 기쁨과 소소한 희망도 많다는 걸, 만화책을 읽으며 깨닫는 나. 이 만화는 실로... 대단하다. 아이들이 다 이해할까 싶을 만큼. 이 책에는 삶을 대하는 진지한 태도가 담겼다. 늑대 선생님의 말씀이다.
"맞아, 재즈는 정확한 악보가 없어서 늘 새롭지. 마치 인생 같아. 예상할 수 없는 기쁜 일, 슬픈 일이 모여서 인생이 되는 것처럼."
"안 좋은 일이 생길 때마다 생각해. 내 삶이 하나의 곡이라면 어떻게 연주하고 있는 걸까."
"원한다면 모든 걸 표현할 수 있어. 기쁨, 슬픔, 햇살, 바다, 바람... 마음만 먹으면 모두!"
"그래! 네 삶을 연주해 보는거야."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