뚱뚱이 초상권 그래 책이야 33
김희정 지음, 정용환 그림 / 잇츠북어린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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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없고 재미있는 책이었다. 이야기의 소재를 볼 때 '와 이런 소재를 어떻게 취재하셨지 공부 많이 하셨겠다' 싶은 책을 만나면 존경스러운 마음이 든다. 이 책은 그런 쪽은 아니고 그냥 정말 편한 주변의 이야기다. 그래도 아무나 이렇게 쓰진 못할 것 같았다. 흔한 재료로 만들어도 오잉? 맛있네? 라고 느껴지는 음식처럼.

음식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이 책에서 먹는 이야기는 아주 중요하다. 주인공 미솔이는 먹는 낙이 가장 큰 행복인 아이다. 뚱뚱하기도 하고. 미솔이 엄마의 캐릭터가 어쩌면 이 책의 포인트이기도 한데, 딸래미와는 달리 날씬하고 이쁘고 먹는것보다는 보이는데 더 관심이 있다. 동화에서 흔치 않은 엄마 캐릭터이면서도 매우 현실적인 요즘 캐릭터라 웃음이 나온다. 인스타그램에 별별거를 다 올리며 댓글 보는 낙을 누린다든가, 그를 위해 음식이든 옷이든 사진찍기에 집착한다든지 말이다. 엄마가 그런데 반해 미솔이는 전혀 그런 쪽에는 관심이 없다. 남보기 좋은 외모에 먹는 즐거움을 희생할 필요를 못 느낀다. 인스타가 일상인 엄마가 보기엔 답답한 딸이려나? 그래도 엄마와 미솔이는 티격태격하면서도 속마음을 말할 수 있는 친구같은 모녀다.

'뚱뚱이 초상권' 이라는 제목 또한 인스타그램에서 나왔다. 배터지게 외식하고 들어온 날, 잠깐 눕자했다가 씻지도 않고 달콤한 잠에 빠져드는 우리의 미솔이. 그 모습을 사진 찍어 인스타에 올린 엄마. 모녀의 티격태격 속에서 나온 말이다.
"뚱뚱이 초상권도 초상권이긴 하지. 푸후후."

그런 미솔이에게 전학생 레오가 짝이 됐다. 좋은 냄새가 나는 잘생기고 삐쩍 마른, 오자마자 여자아이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는.... 자, 이후의 이야기는 짐작 가능.... 물론 "자극받아 미솔이는 살을 빼고 날씬해졌습니다." 이런게 아닐 것은 누구나 예상하겠지?^^ 다소 뻔한 이야기임에도 재밌게 읽어졌다. 나도 미솔이만큼은 아니라도 먹는 즐거움과 특히 꿀잠의 황홀함을 아는 바, 그런 묘사가 너무 실감나서기도 하고, 미솔이와 레오가 사귀는 과정에 엄마미소가 지어져서인 것 같기도 하다. <슈퍼독개꾸쟁>의 정용환 님이 그리신 실감나는 삽화도 재미에 한몫을 한다. 그림책이 아니지만 그림과 함께 읽으면 훨씬 더 느낌이 산다.

나는 초딩 애들이 '사귀는' 이야기를 굳이 좋아하진 않고, 뚱뚱한 여자아이의 외모 자존감 이야기도 새로운 건 아니고, 예쁘지도 않은데 나만 좋아해주는 캔디 스토리 비슷한 건 딱 질색인데, 이 책은 묘한 매력이 있었다. 읽는 재미가 있는 게 최고지. 주인공들에게 친근한 매력을 느낀다면 더 좋고. 이 책은 중학년 정도의 아이들에게 부담없이 건네주기 좋겠다. 주인공들 나이도 딱 그 또래.(4학년) '나다움'을 함께 얘기하는 책으로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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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건너는 아이 - 2022 경남독서한마당 선정도서, 2021 월간 책씨앗 선정도서, 2021 고래가숨쉬는도서관 신학기 추천도서, 2021 읽어주기좋은책 선정도서 바람어린이책 12
심진규 지음, 장선환 그림 / 천개의바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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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눈치를 챘어야 했는데. 강을 건넜다고 했으니. 세상의 한계를 뛰어 넘으리라는 걸. 하지만 현실(?)의 늪에 빠진 나는 예측하지 못했다. 대부분의 이야기에서 나오는 신분의 벽과 절망. 나도 그 안에 갇혀 있었다. 그러다 결말에 갑자기 지붕이 쩍 열린 느낌이었다. 당황했다고나 할까.^^;;;

난 역사동화를 꽤 읽었다. 일부러 찾아서 읽고 시대순으로 목록도 만들고, 반 아이들과 역사동화 프로젝트 활동도 해보았다. (말이 프로젝트지 별건 아녔음ㅋ) 이 책에는 우리가 아는 역사적 사건이 전면에 나오진 않는다. 동학농민운동이라든지, 임진왜란이라든지, 삼별초의 항쟁이라든지 등등... 다만 문종이 왕위에서 금방 죽고, 어린 임금 단종이 왕위에 오르고, 또 그 임금이 힘없이 쫓겨나고 숙부인 세조가 왕이 되는, 그 시대인 것만은 알 수 있다. 주인공 장쇠가 쫓겨난 어린 임금에게 연민을 품으며 권력의 무상함을 느끼면서도, 그를 쫓아낸 세조에게 발탁되어 꿈을 이룬다는 면에서 인생의 아이러니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이처럼 이 역사동화는 실제 인물보다는 역사적 상상력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쓰여졌다. 그런데 몰입감 면에서 그 어떤 역사동화보다 생생하다. 주인공의 상황에 가슴 졸이고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웬만한 드라마 저리가라 할 정도였다. 그래서였나보다. 장쇠의 큰 성취가 갑작스럽게 느껴졌던 것은.

이 책에선 내가 몰랐던 백정의 삶과 사냥꾼들의 삶이 나온다. 작가가 많이 찾아보셨겠구나 하고 느낀 부분이다. 장쇠의 부친은 솜씨가 뛰어난 백정이었다. 그러나 천민인 백정에게 솜씨가 뛰어나다는 건 삶을 안전하게 해주는 무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는 양반들에게 강제로 이용되고 버려지고, 위험은 혼자 감수해야 했다. 그는 그 삶이 끔찍해 처자식을 데리고 먼 산 속으로 떠나 새 삶을 일구려 한다. 하지만 행복은 언제나 짧았고 위기는 속수무책 다가왔다.

부모님을 떠나보낸 장쇠는 사냥꾼으로 성장한다. 사냥꾼의 삶도 백정과 다를 것 없었다. 양반들의 부름에 따라야 하며 위험은 혼자 짊어진다. 하지만 장쇠가 유능한 사냥꾼이 되어가는 모습은 멋있었다. 호랑이 앞에서도 침착하게 화살을 날리는 모습이....!!^^ 그리고 주변인물들, 아버지의 친구이자 사냥의 스승인 육손이, 그리고 그의 딸 복례, 착호인으로 나선 길에서 만난 친구 개똥이, 모든 것을 끌어안는 어른 차돌영감 등 조연들의 캐릭터들이 생생하고 활약도 눈부시다.

장쇠가 겪는 클라이막스의 고난이 지켜보기 힘들고 안타까웠다. 아마도 이것이 현실이었을 것이다. 현실이 이야기보다도 참혹한 법이니까. 하지만 이 책은 거기에서 벗어나는 장쇠를 보여주어 독자들에게 안도감을 주었고, 마침내 그가 넘고자 하는 강보다 훨씬 넓은 강을 건너 독자들에게 환호를 선사한다.

오랜만에 읽은 역사동화가 긴박감이 넘치면서도 그 시대 백성들의 삶을 머릿속에 그리며 공감하며 따라갈 수 있어서 좋았다. 흔히 보지 못하던 소재인 점도 좋았다. 아이들도 푹 빠져 읽을 것 같다. 특히 옴쭉달싹할 수 없는 신분의 한계 속에서도 배움과 성장을 꿈꾸었던 장쇠의 모습이 아이들에게 인상적으로 다가온다면 좋겠다. 어른이 보는 희망사항인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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털털한 아롱이 그림책이 참 좋아 72
문명예 지음 / 책읽는곰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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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장을 넘기면 아롱이가 나온다. 견종을 딱히 모르겠는게 아마도 잡종인 듯하고 집안에서 키우는 개 치고는 덩치도 꽤 크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덥수룩이~ 덥수룩이~ 털이 덥수룩. 게다가 털이 많이 빠지기까지 한다니.
"아롱이는 털이 엄청 많고, 또 엄청 빠져.
맨날 맨날 백 개는 빠질걸
아니 아니, 백천만 개는 빠질 거야."
아이가 아는 가장 큰 수를 동원했으니 얼마나 심한지 상상을 할 수 있다. 우리집도 어쩌다보니 개를 키우게 됐는데, 그나마 털빠짐이 제일 적다는 이유로 푸들을 데려왔다. (정확히 말하면 푸들 잡종) 내가 집안 청결에 무감각한 편이어서 그렇지 우리 엄마 같았으면 푸들 아니라 그 어떤 견종이라도 어림도 없다. 털 날리는 개~ 오우 노노~~

그러나 아롱이의 털은 스트레스 없이 흩날린다. 폴폴~ 날리는 털은 포근해 보이기까지 한다. 소문을 들은 동물들이 모여들어 아롱이와 함께 털춤을 추고 털바다에서 헤엄을 친다. 뒤엉킨 털 천지... 아이고야. 결말에 등장한 그것은 무엇일까?ㅎㅎ

털천지도 이해하지만 그게 현실이면 치우고는 살아야지. 개만의 세상도 사람만의 세상도 아니니까 적당히 절충해서.^^
널부러진 아이에게 엄마가 단호히 말한다.
"이제 그만!
아롱이 산책시키고 와."

깨끗해진 거실을 나서며 아롱이는 또 털을 흩뿌리고, 한구석에는 개구리 한 마리가 우산을 받쳐들고 웃음 빵 터지는 장면을....
"난 털은 딱 질색이야."

개나 고양이를 키우는 가족이라면 즐겁게 함께 읽을 수 있는 그림책일 것 같다. 흩날리는 털을 표현한 펜선은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고, 이 느낌에서 출발한 상상은 자유롭고 사랑스럽다. 이런 상상 속에서 크는 아이는 행복할 것이다. 날리는 개털... 너무 스트레스 받지 말자. 마지막에 등장한 그 물건이 있잖아.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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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 몰래카메라였습니다 높새바람 50
강정연 지음 / 바람의아이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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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방진 도도군> 이후로 강정연 작가님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작품을 빨리 쓰는 편은 아니신둣 어느정도 기다려야 새 작품이 나온다. 이 책이 나온 걸 보고 점찍어 두었다가 드디어 구입해서 읽어봤다. 생각보다 책이 얇았고, 게다가 단편이었다. (난 왜 제목을 보고 장편이라 상상했을까)

다섯 편의 단편은 각각의 길이는 짧았지만 그 안의 감정은 깊고 강렬했다. 다양한 경험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책이었다. 고학년 학급에서 함께 읽어도 좋고 초등교사나 초등학부모들의 독서모임에서 읽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피아노]는 딸의 이야기지만 실은 엄마의 이야기였다. 좁은 빌라에서 혼자 민지를 키우는 엄마. 벌어서 먹고 사느라 다른 생각할 겨를이 없는 엄마. 그 엄마가 민지에게 '피아노'를 꼭 시키고 싶어한다. 친척이 준다는 피아노를 덥썩 받아 좁은 집에 들여놓은 엄마. 부모는 자신의 못이룬 한을 자식을 통해서 이루고 싶어하는 본능이 있다. 난 그걸 좋게보지 않지만, 이 엄마의 꿈은 너무 곱고 소박하면서도 간절하여 응원하고 싶다. 아홉살 엄마의 종이 피아노 이야기. 다시 피아노 앞에 앉았을때 손등위로 떨어지던 그 눈물.....

엄마, 다시 배우면 돼요. 민지 말고 엄마가.
되돌아보면 딸이 초6일 때 나는 겨우 서른아홉이었다. 그때는 뭐라도 배울 수 있는 나이였다. (어르신들은 지금의 나를 보고 그렇다고 하겠지) 민지 엄마가 바쁜 일과 중에 틈을 내어 피아노 학원을 다니고, 그 충만함으로 피곤을 잊으며 눈을 빛내는 장면을 그려본다. 그 상상에 마음이 환해진다.

[누렁이, 자살하다]는 제목에서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불편한 이야기가 힘들다. 이 이야기는 불편보다는 슬펐다. 떠돌이개 누렁이를 옥상에서 거둬 키운 은지. 캐나다 엄마에게로 떠날 날이 예정되어 있어 한시적임을 알면서도 당장 거두지 않으면 안되는 절박한 상황이었기에 함께 했던 날들. 끝이 예정되어 있는 행복은 얼마나 가슴 저린지. 자신을 사랑해준 한 사람에 대한 개의 마음은 얼마나 애달픈지.

은지는 화자 선웅이에게 누렁이를 부탁하고 떠났다. 하지만 안다. 아이들에겐 그럴 힘이 없다는 걸. 은지 아빠는 옥상을 치웠고 누렁인 다시 떠돌이개가 되었고, 어느날 선웅이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는다.
"누렁이가 추락했다."
바로 그 옥상에서다. 개는 울 줄 안다. 은지의 흔적을 찾으며 옥상을 헤매던 누렁이는 어떻게 울었을까. 나는 그러다가 누렁이가 실족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웅이의 확신도 이해는 한다. 정말이지 너무 슬펐다.ㅠㅠ

[까탈마녀에게 무슨 일이]는 안쓰럽기도 하지만 흐뭇하고 대견한 남매의 이야기다. 엄마가 병으로 돌아가시고 그 자리를 채우려 애쓰는 누나. 그런 누나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2차 성징과 사춘기. 서로를 의지하며 건강하게 자랄 남매를 응원하게 되는 이야기.

[김밥천국에 천사가 나타났다]는 별볼일없는 현우의 여름방학이 특별함으로 바뀌는, 그 마지막날 하루의 이야기다. 각자 홀로인 두 아이가 만나면서, 무색의 날들에 색이 입혀진다. 현우는 부모님이 해고노동자라서, 지윤이는 백반증을 가진데다 엄마의 입원으로 이모인 김밥천국 아줌마에게 맡겨져서 홀로다. 둘의 만남이 이루어진 곳이 바로 김밥천국. 한 아이는 기타를 쳤고 한 아이는 자전거를 태워줬지. 마음이 깨어나는 소리가 들리는 이야기. 음, 기타라니, 자전거라니. 좋겠다.^^

표제작인 [이상, 몰래카메라였습니다]의 메세지가 가장 강하다고 느꼈다. 어린 시절에는 크느라고 여러가지 실수를 하는데, 그중에 관계적인, 감정적인 실수도 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다. 어느 수위 이상의, 반복적인 실수는 더이상 '실수'라 이름붙일 수 없다. 이런 경우 '손절'은 피할 길이 없다. 내가 재윤이라면 두번 생각할 것도 없이 손절했을 것이다. 이 책에서 누리는 두번째 실수하고 재윤이의 단호한 반응에 당황하며 후회한다. 화해와 사과의 제스처를 하며 이야기는 화해의 가능성 직전에서 끝나는데, 내가 재윤이라면 용서해주지 않겠다.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노는 일, 가장 나쁜 짓이기 때문이다. 잘잘못을 떠나 정이 떨어져서 더이상 친하게 지내기 어려울 것 같다. 더 사랑하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라고 했던가. 관계에서 우위를 점한 사람이 부리는 관계의 권력은 비열하다. 아이들이 이 권력 밑에서 절절매는 꼴을 보면 속에서 불이 난다. 이 멍청아. 니가 쟤보다 훨씬 낫거든. 좋은 친구도 알고보면 많아. 끊을 건 끊어! 이런 말을... 차마 아이들한테는 할 수 없어 답답하다. 한번은 용서해주고 두번째는 매몰찼던 재윤이의 태도가 맘에 든다. 화자인 누리는... 이런 아이 맘에 안든다. 하지만 이 아이도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기회를 주긴 해야겠지. 변화 가능성이 큰 아이들을 너무 단정하는 건 옳은 일이 아니기에, 나도 늘 조심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꽉꽉 찬 단편들이 들어있는 이 책을 잘 읽었다. 고학년 아이들과 읽을 만한 책이 정말 많다. 내가 이 감정과 관심을 몇살까지 유지할지는 자신이 없다만, 그만두는 날까지 아이들과 책을 통해 진심으로 소통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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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집 그림책봄 13
다비드 칼리 지음, 세바스티앙 무랭 그림, 바람숲아이 옮김 / 봄개울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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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인생이 반영된 이야기인가? 싶은 이 책에서 '집'이란 단순히 건축물로서의 집만은 아닐 것이다. 작가의 배경, 환경, 나아가서 작가가 추구하는 가치와도 연결된다고 생각할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인생을 회고하는 노년층에게도, 슬슬 노년을 바라보는 중년층에게도, 인생의 정점을 달리고 있는 청장년층에도 두루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어린이와 청소년 또한 그나름대로 자신의 눈높이에서 보이는 것이 있을 것이다.

"나한테 딱 맞는 집을 찾는 일이 나는 항상 어려웠어." 라는 첫문장에서부터 느껴진다. '집'이란 인생에서 찾아가는 그 무엇이구나. 누구나 결핍을 느낀다. 이것인가? 하고 쫓아가보면 또 그것만은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쫓아감의 연속이 인생인지도 모른다. 쫓아감의 끝은 결국 어디인가? 이 책은 그 과정을 가장 단순하고도 극적으로 보여준다. '집'을 많이 옮기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겠지만....

바닷가 작고 허름한 집에서 자란 주인공은 대학생(아마도)이 되면서 작은 도시의 다락방으로 이사했다. 졸업 후엔 파리의 북적이는 예술가 거리에서 살았다. 20년 정도.... 그는 충분히 '성공한' 예술가가 된 듯하다. 하지만 왠지모를 답답함이 그를 외국으로 이끌었고 그는 더 큰 도시의 아파트 19층에 살며 날마다 멋진 풍경을 보았다. 세월이 더 흐르자 그것도 시들해졌고 삭막한 도시에 대한 회의도 들었다. 그는 친구가 빌려준 언덕 위의 호화로운 빌라로 거처를 옮겼다. 와우, 집에서 수영도 골프도 할 수 있는? 그럼 뭐해. 그건 그에게 별로 즐거운 일도 아닌걸....

그는 이번엔 작은 섬으로 갔다.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하지만 너무나 '아무 일도 없었다'. 그는 아예 집 없이 떠돌아다니기로 했다. 몇 년을 떠돌던 중 드디어 '어떤 집'에 꽂혀 그 집을 사 버렸다. 그 집은 어떤 집이냐면......

그림책의 줄거리를 적으면 위와 같이 단순하다. 하지만 그림책에서 읽을 것은 줄거리만이 아니다. 그림에 볼 것이 더 많다. (정확히 말하면 '그림과 함께' 읽어야 한다.) 그림을 보며 다양한 건축물들에 재미를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소년기부터 노년기까지 한 예술가의 일생에 초점을 맞춰 볼 수도 있을테고, 숨겨놓은 상징을 찾아 해석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그림 자체의 아름다움에 감탄해도 좋다. 가는 펜선에 깔끔한 파스텔톤의 채색이 입혀진 그림이 나도 꽤 맘에 들었다.

나는 주인공처럼 많은 집을 옮겨다니지 않았다. 추구하는 것에 별 변화가 없었다고 할 수도 있고 섣불리 저지르지 못하는 소극적인 성격 때문이었다고 할 수도 있다. 혹은 '추구하는 것'이 그렇게 강렬하지 못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내가 추구했던 건 '월급'과 그에 값을 치르는 일에 대한 책임? 그리고 그 월급으로 꾸려가는 가족들과의 평탄한 일상? 정도였으니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든다. '여행은 되돌아오기 위한 떠남이다' 이런 말도 있지만 어쨌거나 떠나야 되돌아올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떠날 여지도 없이 옴쪽달싹도 할 수 없는 삶이라면 출발도 할 수 없으니 도착도 할 수 없는거 아닌가? 멀리 돌아 도착한 원점은 귀하지만, 출발조차 할 수 없었던 원점이 귀할까? 그런 이들이 이 책을 보며 느끼는 감정은 "부럽다...." 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완전히 그렇진 않지만 약간은 그런 감정도 든다.^^;;;;

건축물로서의 '집'에 대해 생각해보면 어린시절의 추억이 떠오르기도 한다. 최초의 기억은 셋방살이다. 본채와 셋방이 떨어져 있었고 화장실도 밖에 있었던... 그때 주인집 언니가 우리 언니랑 동갑이었는데 날마다 주인아줌마한테 혼나고 두들겨 맞았고, 그때마다 아줌마는 우리 언니를 소환했고, 언니는 본채로 들어가 같은 학년이던 주인집 언니의 공부를 봐줬다. 겨우 초등학교 1학년이던 때.^^;;; 다음 집은 한옥집. 봄이면 제비가 날아와 처마밑에 집을 지었고, 골목길엔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나와 함께 어울려 놀았다. 다음엔 경춘선 기차길 바로 옆의 연립. 기차가 지나갈 때마다 TV가 지직거릴 정도로 기차길에 인접한 집이었다. 그후 연립을 한번 더 거치고서야 아파트에 살게 됐다. 지금도 아파트에 살고 있다. 페이스북 같은데서 다른 분들의 색다른 주거형태를 보면 부럽기는 한데, 절대 따라하진 못할 것 같다. 신경쓸 것이 많은 삶은 엄두가 나지 않아서.... 주인공이 호화빌라에 살면서 느끼던 감정에도 공감한다. 그냥 딱 세간살이랑 책 꽂아두고 잠자고 먹고 책 보고 강아지 한마리 기를 수 있는 치우기 적당한 공간이면 족할 것 같다.^^;;;;

그동안 그림책을 실용적 목적(읽어주기나 수업에 써먹음)으로 주로 보던 편이었다. 이 책을 그렇게 할지는 아직 전혀 모르겠다. 하지만 소장책으로 아끼는 책이 될거 같다. 가끔 다시 꺼내보면서. 다시 볼 때 다른 느낌이 또 든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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