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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의 학교 ㅣ 사계절 중학년문고 37
김혜진 지음, 윤지 그림 / 사계절 / 2021년 4월
평점 :
대작 판타지 동화를 쓰신 작가님이라고 하는데 나는 그 작품을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름이 익숙했는데, 작가 소개를 보니 내가 읽은 작품이 하나 있었다. 『집으로 가는 23가지 방법』이라는 청소년 소설이었다. 느낌이 아주 좋았던 작품이라 반가웠다. 그 책은 판타지는 아니었지만, 이 작가님은 판타지에 관심이 많으신 듯하다. 이 책도 그랬다. 그리고 오카다 준의 판타지들이 떠올랐다. 그건 아마도 무대가 학교라는 점, 현실에 뿌리를 둔 소소한 판타지라는 점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주일의 학교』라는 제목이 무슨 뜻인가 하면, 요일마다 다른 학교에 간다는 뜻이다. 당연히 그 학교들은 아주 많이 다르다. 간단하면서도 재미있는 상상이다. 매일 똑같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 이 상상을 아이들에게 던져주면 어떨까? 좋아할까? 변화를 싫어하고 일정한 루틴에서 벗어나면 힘들어하는 아이도 있고, “골치아프고 귀찮아요” 라고 할 게 뻔한 매사 귀차니즘 아이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눈을 빛낼 것 같다. 일상과 닿아있는 판타지이기 때문에 아이들의 생각을 끌어내기도 아주 좋을 것 같다.
나는 공립학교 교사로서, 학교를 악마화하는 시각을 만나면 솔직히 답답하다. 학교에서 배운 것이 하나도 없다든가, 학교는 감옥이고 선생들은 간수라든가, 어항속 물고기를 보여주며 학교는 헤엄쳐야 할 물고기에게 달리라고 강요한다든가.... 뭐 학교만 없애면 사회문제가 다 해결될 듯이 핏대 올리는 사람들을 보면 솔직히 그 사람이 그닥 똑똑해 보이지 않는다. 나도 학창시절이 즐겁기만 하지는 않았다. 학교가 즐거워서 간 적? 중학교때까진 간혹 있었지만 고등 이후로는 없었던 것 같고 아침에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질질 끌리는 발로 억지로 간 적이 훨씬 더 많다. 하지만 학교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다는 말에는 동의할 수 없다. 학교는 나에게 기본을 잡아주기도 했고, 틀을 갖추게도 했고(이것이 누구에게는 속박으로 다가올 수도 있었겠지), 혼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줬고, 게으름의 시간에 널브러질 나를 끌어올려줬고, 여러 면에서 종합적으로 다른 이들과의 격차를 줄여주었다. 지금도 학교는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주로 학교에서 배운 것 없다고 목청 높이는 사람들이 학교에 교육 아닌 더 많은 역할들을 요구하고 있고 그래서 학교는 터져나갈 지경이다.
아니, 재미있는 판타지 동화 리뷰에서 내가 왜 숨겨뒀던 울분을 터뜨리고 앉았나?ㅎㅎ 어쨌든, 학교를 마녀사냥하기는 쉽다. 입으로는 뭔들 못하랴. 하지만 학교를(기존의 교육과정을) 해체하면 더 나은 배움이 다른 곳에서 일어날까? 나는 회의적이다. 물론 학교는 완벽하지 않다.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으니. 변화가 필요한 부분도 분명히 있다. 하지만 학교의 기본적인 역할(교육)의 토대를 든든히 한 상태에서 고민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고민으로 참신한 상상도 좋다. 이 책처럼 판타지에서 출발한 생각이어도 좋을 것이다.
‘나’는 날마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아이다.(요일마다 다른 학교라는 뜻) 매일 만나는 친구도 있고 특정 요일에만 만나는 친구도 있다. 어느날 영문을 모른 채 앉아있던 ‘그 애’를 도서관에서 다시 만났고, 여기도 이사올지도 모른다는 말에 ‘나’는 일주일의 학교를 소개해준다. 그게 이 책의 내용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월요일의 학교엔 언제나 비가 와
화요일의 학교에선 운동화가 필수
알지? 수요일의 학교는 열쇠 없인 못 가
목요일의 학교에서 밤을 보았어
금요일의 학교는 아직도 미완성, 우리에겐 할 일이 있지
이 책의 차례를 써본 것이다. 각 학교들엔 작가의 판타지가 가득하다. 동시에 현실 아이들의 모습도. 곡이, 녹이, 록이, 복이, 촉이, 폭이 같이 초성만 바꾼 작가의 작명이 매우 특이하지만 아이들의 대화나 행동은 우리가 가까이서 보는 모습들이다.
실제로 요일마다 다른 학교를 다닌다면 어떨까? 고등, 대학생 정도는 상관없을 것 같다. 하지막 적어도 초등은 그럴 수는 없다. 어릴수록 루틴이 매우 중요하고 대하는 사람이 매일 바뀌는 것도 좋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이 무슨 교육개혁을 말하는 책도 아닌데 그런 걸 따질 필요가 뭐가 있겠어. 중요한 건 아이들이 재미있게 읽을까, 읽으면서 즐거운 상상을 할까, 그걸 즐겁게 표현하고 서로 나눌 수 있을까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고 아이들이 일주일에 하루쯤 가고 싶은 학교를 그려 표현해보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하루종일 게임만 하는 학교, PC방인 학교, 이런 걸 그리는 아이가 있으면 어떡해? 당연히 있지 왜 없겠나. 하지만 그게 대다수는 아닐 것이다. 아이들은 생각보다 건설적인 생각을 많이 하는 존재다. 분명히 건강하고 좋은 생각들도 많이 나올 것이다. 그렇지 않더라도 어쩔 수 없다. 이룰 수 없는 욕구라도 상상을 하면서 좀 해소될 수 있을 테고, 표현을 통해서 서로를 조금은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 테니까.
사계절 중학년문고로 출판된 만큼, 중학년 수준에 맞을 것 같다. 내 생각에는 3학년보다는 4학년에 딱 맞아보인다. 쉽고 편한 느낌으로 5학년이 읽어도 괜찮을 것 같고. 아래로 내려가 2학년도.... 좀 빠른 아이들은 가능할 것 같다. 간혹 작가의 사색이 담긴 듯한 의미심장한 문장도 있긴 하다. 목요일 편(밤에 열리는 학교)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밤은 거대한 생명, 아이들이 없다면 어찌 밤을 배불리 먹였을까. 밤도 부스러기를 흘려. 그게 바로 꿈이지. 우리는 잠 속에서 밤의 선물을 풀어 본다네. 모두 너희 덕분이야. 아이들이 학교로 모이기 때문.”
마지막 금요일의 학교는 ‘아이들이 만들어가는 학교’다. 교실부터 지어야 한다. 아이들이 실패했을 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어. 괜찮아. 그것도 수업에 포함되어 있단다. 대신, 확실하게 수습해야 하지.”
금요일의 학교까지 다 끝나고, 마지막 장에는 이런 문장도 있다.
“배워야 하는 것은 많아. 배우게 되는 것도 많고. 그 둘이 꼭 같지는 않지. 배우는 줄 모르고 배우기도 해. 우린 생각보다 많은 걸 알고, 또 할 수 있는걸.”
화자가 어린이인 것을 생각하면 어려운 문장이지만 각자 자기 입장의 문장에 눈이 뜨이기 마련이므로 이 문장은 교사의 눈에 뜨일 확률이 높다.^^
“오늘이 어땠든 내일은 또 다른 학교가 기다리고 있어. 겉으론 똑같아 보여도 속은 그렇지 않아. 그러니 안녕. 우리, 내일의 학교에서 만나.”
이 책의 마지막 문장이다. 판타지를 즐기고 살짝 현실로 돌아오는 느낌의 문장이다. 나에게도 그렇다. 어쨌든 우리반 아이들은 매일 내게로 온다. 아침독서 시간부터 정해진 루틴에 아이들은 이제 좀 익숙해졌다. (올해는 두달간 아이들을 일상에 적응시키는 일만으로도 온 힘을 쏟아야 했음ㅠ) 하지만 똑같으면서도 새로운 교실. 이것 또한 나의 몫이다. 경력 30년이 다가와도 끊을수 없는 고민이기도 하다. 월급을 받는 한 나는 이 고민을 계속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우리반이 4학년인데 이 책을 한 번 읽어봐? 읽을 책들이 줄서 있는데 끼워 봐? 고민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