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정도 중국 친구의 초대를 받아 중국에 다녀왔다. 결혼식 초대였다. 일주일 내내 먹고 예쁜 것 보고 좋은 사람들과 깔깔거리며 웃고 아주 공주같은 대접을 받고 왔다. 중국식 결혼식 그리고 중국식 대접의 대단함을 몸으로 느꼈달까. 


자영업한지 만 2년이 지나서 나는 내가 자영업자로서 누리는 자유도 값을 쳐서 계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일어나고 싶은 시간에 일어나고 잠들고 싶은 시간에 잠드는 자유, 마음대로 일을 쉴 수 있는 자유, 얼굴 보기 싫은 사람과는 만나지 않을 자유 이런 것들. 이번에 일주일간 장사를 쉬며 매출은 다소 줄어들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그냥 놀고 싶을 때 누구의 눈치도 볼 필요 없이 내 멋대로 놀 수 있다는 것이 퍽 만족스러웠다. 직장 다니면 백만원 이백만원을 낸다고 해도 살 수 없는 자유이니까. 내가 내 휴가 쓰겠다는데 며칠이나 눈치를 보고 팀장에게 사유를 눈치보며 말하던 그 감각을 생각하면 지금의 자유가 너무나 소중하다. 물론 지속가능한 자유로운 생활을 위해서는 여러모로 궁리를 하고 노력을 해야 하지만 말이다.


일주일 동안 좋은 중국 사람들에게만 둘러싸여 있다보니 중국에 대한 사랑이 깊어졌고 중국어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층 더 강해졌다. 사실 가을즈음까지 열심히 장사를 해서 돈을 모으고 겨울엔 따뜻한 남쪽으로 가서 중국말을 쓰며 살아보고 싶다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겨울을 따뜻한 나라에서 보내고 싶다는 것은 나의 오랜 소망이고, 중국어를 잘 하고 싶다는 것은 나의 실용적 목적이다. 이번에 결혼한 새신랑 친구는 나의 장사를 보더니 이리 말했다 "누나 장사를 할 거면 광저우를 가고 타오바오에서 팔아야 해요. 물건 하나에 80원 100원 남겨도 중국은 사람이 많아서 그게 다 돈이 되는거에요. 한국 인구가 5천만명인데 우리성 사람이 1억명이 넘어요" 내가 중국어를 배우고 중국에서 기웃거린다 해서 그게 돈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기웃거려 보기라도 한다는 것에 의의가 있는것이 아닐까. 운이 들어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내가 남자친구에게 "저 중국어 이렇게 못해서 안되겠어요. 중국가서 좀 배우고 와야겠어요" 운을 띄웠더니 남자친구는 정색하여 내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다. "안돼요. 열흘 넘게 못보는 건 안돼요." 이 말을 들은 내 친구들은 요즘 세상에 이런 남자가 어디 있냐며 좋아하였고 내 동생은 '자고로 여자는 배 남자는 항구 어디 남자가 여자 앞길을 막냐'며 화를 내었다. 나는 내 핏줄을 부인하기 어렵다 생각하였다. 어쨌든 나는 갈 것이니까. 


남자친구는 여전히 바쁘다. 그리고 엄마는 나이 든 딸이 오랜만에 연애하는게 그리 좋은지 매일매일 말을 바꾼다. 하루는 '그래 돈 버는게 뭐가 문제냐 열심히 일하고 바쁘면 좋은거지' 그러다가 또 하루는 '그렇게 바빠서는 안되겠다. 결혼하고 평생 그렇게 일만 할거다'이런다. 사실 이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거 같다. 그냥 인형놀이를 하듯이 이렇게도 대어보고 저렇게도 대어보며 소녀처럼 신이 났다. 


귀국하자 마자 밀린 일을 하느라 몸이 탈이 났다. 혹은 일주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면 탈이 나는 나이든 몸이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몸은 정상이 아니지만 꾸역꾸역 급한 일들을 해치웠고 이젠 6월을 살아가야 한다. 언제나 약간은 낭만적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운명을 기다리며 설레었고 그렇게 잘 살다가 올해 처음으로 내 운명의 노를 잡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뭔진 모르겠지만 내 의지로 방향을 잡고 나아가 보고 싶다고. 그렇게 보낸 반년. 물결의 힘을 느끼며 그래도 스스로 노를 저어보기는 했구나 하고 느낀다. 운명은 아주 느리지만 조금씩 내가 편안한 방향으로 움직였다. 내가 노를 열심히 저어서가 아니라 물결이 그리 거세지 않았고 바람이 내가 가고 싶은 방향과 얼추 비슷하게 내가 탄 배를 밀어주었기 때문이다. 세상이 언제나 나에게 다정하지는 않겠지만 따뜻한 바람이 부는 동안은 감사히 이 행복을 즐기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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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가 동생들을 소개시켜 준다며 자신의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제비집 요리 해줄게요." 무서워서 못 먹는다 했더니 여자 몸에 좋다며 꼭 만들어주겠단다. 나는 중국 사람의 집에는 제비집 하나쯤은 당연히 있는건가 싶어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어쨌든 먹어보기로 하였다. 


남자친구네 집엔 같이 사는 사람도 있고 또 언제든 드나드는 사람들도 많아서 현관에 신발을 벗고 들어서니 꼭 열한켤레의 남자 운동화와 한 켤레의 슬리퍼 그리고 나의 가죽 슬링백 구두 한 켤레가 오밀조밀 모여있게 되었다. 내가 손님이라는 이유로 가만히 앉아 쉬는 동안 네명의 젊은 남자들이 야채를 씻고 면을 삶고 육수를 내고 상을 펴고 분주히 일을 했다. 예쁜 풍경이었다. 


식사가 시작되고 술이 돌자 한 동생이 나에게 이 고기 좀 먹어보라고 내민다. "이제 뭐에요?" "그냥 고기에요." 내가 반쯤 먹자 쳐다보던 동생들이 "누나 그거 오리 혀에요!" 하고 깔깔 웃는다. 남자친구가 만든 시금치 무침과 땅콩소스냉면도 먹었다. 굳이 오늘 준비할 필요는 없었지만 내가 얼마나 요리 잘 하는지 봐야겠다 했더니 준비한 음식들이다. 8시에 시작한 중국식 식사는 새로운 손님이 오고 종류가 다른 술이 테이블 위를 차례대로 돌며 새벽 3시까지 이어졌다. 돈 이야기, 장사와 사업 이야기, 가족 이야기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중국식 예절들을 하나씩 보고 듣고 배웠다.


밤이 깊어 드디어 자리가 정리되고 남자들이 요리를 준비할때처럼 다같이 일어서서 정리를 하는데 나는 또 손님이라서 또 술이 취했다는 이유로 남자친구의 침대에 길게 누워 바깥의 그릇소리 물소리 발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들어와 내 옆에 앉더니 말했다. "우리 결혼할까요?" "...저 밥도 못하는데요." "밥은 제가 다 해결할 수 있어요. 예쁜 딸 두 명 낳고 싶어요. 저는 아이한테도 존댓말을 할 거에요. 반말은 할 줄 모르거든요."


지금까지 외국 남자들을 만날때는 이국의 사람이 주는 그 이국적인 정서와 느낌이 좋았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소통하며 자유롭다는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이 친구와는 한국어로 대화하고 이국적인 느낌보다는 나보다 한 세대 앞선 다른 시대의 사람과 연애를 한다는 느낌이 있다. 그에게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다는 것이 의문의 여지가 없는 당연한 경로이고 나에겐 아직도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그는 다정한 가부장이 될 것이다. 나는 내가 어떤 아내 어떤 엄마가 될지 모르겠다. 그는 처자식을 위해 기꺼이 고생을 할 사람이지만 나는 내 산후우울증을 상상만 해도 괴롭다. 


남자친구집으로 걸어가며 생각했었다. 언젠가 나는 아 예전에 중국 남자랑 사귀었었고 그 사람 보겠다고 이 동네까지 와서 걸은 적이 있었다고, 그런 추억을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고... 지금까지의 연애는 모두 새드엔딩 혹은 새드도 되지 못할 무미건조한 엔딩이라 해피엔딩은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남자친구에게는 어떤 답도 하지 않았다. 그냥 그가 귀여워서 웃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는 어서 집을 사야 한다며 새벽까지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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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5-17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라일라님. 좋네요. 정말 좋아요...

2017-05-27 00: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미달 2017-05-26 16: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남친이 어떻게 받아들이나요? 프로포즈인 것 같은데, 그냥 웃음으로 무마하는거라면..NO인건가요? ^^

LAYLA 2017-05-27 00:50   좋아요 0 | URL
아직 사귄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서로를 잘 몰라요. 남자친구는 제가 허락할때까지 기다린다 하네요.
 

남자친구와 등갈비 먹으러 갔다.


"이런데 데이트할 때 잘 안 오는 거 알아요?"

"왜요?"

"서로 예쁜 것만 보여주고 싶은데 이거 먹으면 못나지잖아요."

"몰랐어요. 잘 못 데려와서 미안해요. 하지만 정말 좋아하면 못난것도 예뻐보여야 하는거 아니에요? 레이라씨 모습 제가 다 받아요(받아 들여요) 걱정말고 드세요." 


밥 먹고 산책을 했다.

"@@씨 지금까지 고생 많이 했잖아요. 앞으로도 고생 더 할 거 같아요?"

"필요하면요." 


헤어지고 집에 돌아와 주차장에 차 넣는 찰나에 전화가 왔다. 주차중이라 했더니

"네. 제가 자기 전에 다시 전화 드릴게요."


자기는 먼저 잔다 해서 나는 아직 할 일이 남아 있어 좀 더 있다 자겠다 했더니

"빨리 자 주세요."





안 예쁜 말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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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5-12 1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LAYLA 2017-05-12 18:20   좋아요 0 | URL
락방님 댓글보니 갑자기 와인이 마시고 싶어졌어요^^
 

내가 좋아해서 먼저 쫓아다닌 중국남자. 길에서 보는 흔한 중국 관광객 같은 그런 남자. 나 만날 때 야구모자 쓰고 츄리닝 입고 운동화 신고 나온다. 내 생일 선물로 뭘 사줄지 모르겠다며 직접 만나서 마음에 드는거 사라길래 오늘 교보에 함께 가서 중국작가가 쓴 책 한권을 골랐다. "이거 너무 싸지 않아요? 더 사고 싶은거 없어요?" 이 책 단 하나라야 더 소중할거 같아서 그것만 사달라 하였다. 그리고 책 앞 페이지에는 나에게 중국어로 편지를 써달라 했더니 난처해하며 몇 시간을 고심하다 이런 말을 적어 주었다. 


"따뜻한 날에 당신같은 따뜻한 사람을 만나 따뜻한 인연을 만들게 되었어요. 세상이 당신에게 늘 부드럽길 바래요. 당신을 만나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세상이 나에게 부드럽길 바란다는 말에 그에게 한 번 더 반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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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의 생활을 꾸려가는게 3년 쯤 되는데 올해 봄부터 무언가 내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혼자 생활에 어느정도 기틀이 잡힌 것이기도 하고 세상과 사물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더 밝고 더 진취적이고 어찌 말하면 더 속물적인 변화, 하지만 나는 그 변화가 반갑다. 


지금까지는 장사하면서 손님에게 많이 배운다 생각했는데 올해는 공급자들에게서 많은 걸 배운다. 빠른 응대, 정확함, 친절한 태도 같은 교과서적인 요소들 외에도 거래하는 상대방을 먼저 믿는 태도에서 많은 감명을 받았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대단하다는 선진국 사람들에게선 이런 장사꾼의 자질을 본 적이 없다. 아니, 이미 모든 것이 메뉴얼화되고 시스템화 된 그 회사들에게선 그럴 필요도 이유도 없다. 당신이 물건대금을 입금하면 발송해주면 그만이고, 당신의 계정을 담당하는 직원은 뭐 언제든 그만둘 수 있는 것이고... 최근에 거래하는 소위 개도국의 공급자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 자신의 업이기에 필사적이고 진지하고 진실하다. 자신의 상품 퀄리티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를 믿는다. 사람을 믿는다. 한 공급자는 내가 물건 대금을 입금하기도 전에 물건부터 발송해버렸다. "너와 내가 함께 할 길이 얼마나 긴데 널 믿지 않겠니?" 

이건 사랑 아닌가. 세상에 이런 종류의 사랑도 있구나. 장사꾼들 사이의 사랑.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새로운 경험이라 신비롭다. 이런 사람들과 새벽까지 메시지를 주고 받는다. 지금도 내 왓츠앱은 띵띵거린다. 시차를 고려한다 하여도 그곳도 자정이 넘은 시각. 난 왜 지들 퇴근 시간 지나면 연락 안되는 미국애들보단 이런 공급자들이 더 정감이 갈까. 이렇게 절박한 사람들 물건을 팔아주고 싶다. 그리고 나도 이런 물건을 팔아 돈을 벌고 싶다. 내 나름대로 올해는 목표도 거창하고 구체적이며 그것을 달성하고자 하는 의지도 충만하다. 그리고 설사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해도 충분히 다시 일어설 수 있을 정도로 마음도 성숙하였다 생각한다. 

올해 들어 배우기 시작한 중국어는 이제 슬슬 중급단계로 접어들고 있다. 흥미보다는 필요에 의해 배우기 시작한 것인데 의외로 재미가 있어서 스스로 당황스럽다. 그리고 이렇게든 저렇게든 중국어로 또 새로운 계획과 꿈을 그리고 있다. 잘 되면 좋겠지.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꿈을 꿀 수 있는 동력이 있다는 것이 즐겁다. 작년에 배운 일본어는 JLPT2급까지 따고 나름 중급까지 공부를 했지만 실질적 측면에서는 성취도가 낮았고 제일 중요한건 내가 비지니스에서 써먹을 수는 없었다는 점이다. 일본 사람들은 예의를 중시하다보니 겨우 의사소통 되는 수준의-완벽한 존대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내 메일은 내가 내 돈주고 물건을 사겠다고 하여도 응답도 하지 않았다. 올해 새로운 일본 파트너가 생기긴 했지만 영어가 아주 능숙하여 나랑 영어로 커뮤니케이션 하는 사람... 나중에 사람의 일이 어찌 풀릴지 모르지만 이걸로 봐선 내가 일년 공들인 일본어는 최상급이 아니기 때문에 무용지물인 상황이다. 일본의 격식차리는 문화 특성 때문에. 중국어는 그렇지 않으리라 기대하고 있고 그렇지만 이번에는 이 언어를 내가 정말 어려움 없이 능숙하게 구사하는 단계까지 가야지 다짐하고 있다. 

불쑥불쑥 샘솟는 내 내면의 힘 때문에 스스로도 놀라고 당황스러운 나날들. 내가 원래 이런 인간이 아닌데. 올 연초까지만 해도 모든 것 다 버리고 외국으로 나가겠다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어찌 이리 되었나 모르겠다. 좋은거지 뭐. 내일도 아침부터 자정까지 계획이 잡혀져 있다. I do what I can do. 혼자 사는 사람들에겐 일단 움직이는 이런 자세가 필요하다. 가만히 있는다고 월급 줄 사람 없으니까. 이걸 머리로 알고 몸으로 익히기 까지 3년이 걸린건가 싶다. 해보지 뭐. 안되면 말고. What can be possibly go wrong? 

근데 이런 나를 보고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똑똑한 언니가 이랬다. "넌 답이 없는 곳에서 답을 찾는구나? 넌 장사할 사람이 아니야." 언니 말이 맞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일단은 지금 일이 재미있다. 지금 정한 나의 목표에 도전하지 않고서는 그만둘 수 없다.

산다. 나라서 이렇게 살고, 이렇게 살기 때문에 나라는 것을 조금씩 깨달으면서. 행복하다. 더 행복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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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7-04-07 08: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까지 막 에너지 뿜뿜하게 되는 글이에요, 라일라님.
응원합니다.
:)

2017-04-09 00:10   URL
비밀 댓글입니다.

혜덕화 2017-04-10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는 일은 정성이다. 제가 좋아하는 말입니다. 청화스님 말씀이구요. 상대를 믿고 진지하게, 열심히 사는 사람들을 응원합니다. 라일라님의 사업도 잘 키워나가시기를...

2017-04-13 01: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