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원군
유주현
[ 제 2 권 ]
이하전의 부인은 남편이 죽자 천주교를 버리고 강화도 전등사 정사암에 들어가 망자의 명복을 빌고 있었다. 그 절에 상감의 만수무강을 비는 불공이 든다니 그녀는 그 곳을 떠날 수밖에 없다. 미망인이 떠난 뒤 임금을 위한 행선축원(行禪祝願)의 대축전을 위해 한림의 대제학 김병학 내외가 상궁 몇 사람과 스물여덟 명의 인원을 거느리고 파견되어 왔다.
그 중 한 아낙이 도정궁 대방마님의 행적을 묻는다. 그녀는 윤(尹)여인이었다. 언젠가 흥선에게 찾아와 오라비의 억원을 호소하고 윤수백을 심부름이나 시켜 달라면서 맡기고 사라진, 나합의 집에 자주 드나들며 그녀 앞에서 자라의 목을 자르던 바로 그 여인이었다.
농군들의 복놀이가 있던 날 흥선의 아들 재민, 재선과 민승호, 조성하와 하인으로 장순규가 천렵을 가서 놀고 있는 중에 언젠가 자객으로 흥선의 집 담을 넘었던 이상지를 만난다. 그는 이상하게도 전등사에 김병학 부인을 따라갔던 윤여인과 함께였고, 그녀가 그의 내외종 누이라고 하였다.
그 후 꽤 여러 날이 흐른 뒤 훈련대장 김병국이 흥선을 보잔다고 하여 따라나섰다가 인왕산 밑의 한 마을에서 이상지의 부친 이인서 노인을 만나고 그는 흥선이 여난(女難)을 당할 상이라며 명심하라고 말한다.
1863년 12월 8일. 국상이 났다. 열아홉까지 강화에서 나무지게를 지던 그가 하루아침에 임금이 되어 궁궐로 들어온 지 14년, 이제 서른셋의 젊은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것이다. 국상이 났는데도 흥선은 추선의 집에서 가야금 줄을 튕기며 주체할 수 없는 울분과 녹록지 않은 여정(女情)을 시름하고 있었다. 이호준과 장순규의 방문을 받고 그 사실을 안 흥선은 구름재에 잡인의 접근을 금하게 하고 소식을 기다린다.
대왕대비 조씨는 급히 창덕궁으로 환궁하여 흥선에게 연락을 하는 한편 원로 정원용의 조언을 받아 의식전례(儀式典禮)의 분부를 내리고 옥새를 확보한다. 드디어 섣달 열 사흗날 조대비는 원로 중신들을 모아놓고 왕통을 의논하게 한다. 의논이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조대비가 흥선의 둘째 명복을 지명하자 김병기와 김흥근이 항거하고 나서지만 조성하, 조두순, 정원용이 차례로 반박하였고 일은 이미 결정이 되었다.
대원위대감. 흥선은 대원군이 되었다. 그것은 임금이 아니었던 임금의 아버지, 생존한 대원군이란 이 나라 역사상 없었던 것이다. 소년왕을 태운 가교가 궁궐로 향했다. 대왕대비 조씨는 몸소 계하에까지 내려와 어린 왕을 영접한다. 그 첫마디는 ‘오오 내 아들’이었다.
교동 김좌근의 사랑엔 김문 일족이 다 모였다. 그들은 대책 없는 회의를 계속한다. 흥선은 추선에게 들러 그 간의 회포를 풀고 정을 나눈다. 조정의 김씨 세력들은 대원군의 예우를 놓고 필사적으로 항거한다. 내일의 어전회의에 대하여 흥선이 조두순과 밀담을 나누고 있던 그 시각 나합의 집에서는 윤여인이 밀담을 나누고 있다. 이상지가 오늘 밤 흥선을 시해할 것이라고. 나합은 이 이야기를 김좌근에게 전하고 둘은 내일을 기다린다.
어전회의 석상에서 조대비는 간밤에 흥선군댁에 자객이 들었는데 그는 무사하다고 일러준다. 회의는 계속되어 김좌근, 조두순, 김병기의 발언으로 흥선이 궁지에 몰리는 듯 하였으나 조대비가 흥선에게 섭정의 대권을 넘기겠다고 선언함으로써 의외의 결말을 맞게 된다. 이 순간 흥선은 회의장의 조대비 뒤에 은신해서 그녀의 결정에 힘을 보태고 있었다.
김좌근은 자객의 일로, 다른 김문들은 자신들의 입지 문제로 전전긍긍 불안과 혼란에 빠졌다. 흥선은 이를 즐기는 듯 아무런 조치가 없는 중에 초조해진 김좌근은 자결을 가장한 연극을 하고 김병국은 흥선을 찾기도 하는 등 각자도생을 위한 방안 찾기에 골몰한다. 마침 입궐한 흥선은 조대비로부터 김문 일족의 처리지침을 받아 나온다.
그러나 흥선은 조대비의 의사와는 반대로 김문 일족의 벼슬은 거두었지만 한명도 다치게 하지는 않았고 그들로부터 거두어들인 돈을 조대비에게 바친다. 운현궁의 사랑에는 방문객으로 넘친다. 흥선은 그 중 옛날 그로부터 뺨을 맞았던 적이 있던 이장렴에게 금위대장 직을 제수한다.
대원군은 경청군 이세보를 사면하고 조정대신들의 인사를 단행한다. 영의정 조두순, 좌의정 김병학, 우의정 유후조, 호조판서 김병국, 병조판서 정원용의 아들 정기세 금위대장 이장렴 등. 이하전 댁에는 부부인 민씨를 보내 위무토록 하고 모든 정치범에 대해 특별 사면령을 내린다. 그러나 동학은 제외되었다. 그 동안 자신을 도와 오늘이 있게 애써 준 조성하에게는 승지 벼슬을 주자 그는 반발하고 불만을 가진다.
대원군은 내시 이민화를 내시부에 일하게 하고는 천하장안의 누이들을 궁녀로 삼아 궁중의 동정을 살피게 하는 한편, 천하장안을 각도로 보내어 민심을 파악하고 탐관오리를 조사하는 마패없는 암행어사 역할을 하게 한다. 형 이최응이 김병기의 인사 청탁을 가지고 왔을 때는 돈을 먼저 받아 챙기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