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거나 말거나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무더운 장마철이다. 이쯤에서는 시원한 것들이 먹고 싶고 등골이 오싹한 공포영하도 보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내가 듣고, 겪은 실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 본다.
어릴 때는 외갓집이 참 좋았다. 외할머니도 계시고 이모도 있었는데, 내가 외갓집에 가면 그렇게 좋아하고 반겨주었다. 그래서 나는 자주 외갓집에 가서 외할머
니나 이모를 졸라서 무서운 옛날이야기를 듣기를 즐겼다.
외할아버지께서 겪은 이야기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농사일을 하시는 분이셨는데 젊은 시절에는 기골이 튼튼하셨고 담도 컸었단다. 그런데 어느 날, 집안 일 때문에 멀리 다녀와야 할 일이 생겼다. 새벽밥을 먹고 집을 떠났지만 돌아오는 길은 벌써 어둑어둑해졌고 몇 개의 산길도 지나야 했다.
깜깜한 산길을 더듬어 가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자시(子時)나 되었을까? 얼마 전부터 숲속에서 외할아버지 뒤를 따르는 뭔가의 기척을 느꼈단다. 사람은 아닌 것 같고, 귀신인가? 산짐승인가? 길가 바위에 걸터앉아 장죽에 담배를 재서 한 모금씩 빨면서 주위를 살펴도 아무런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단다.
그러기를 몇 번, 길이 반나마 줄었을 무렵, 산모롱이를 도는데 갑자기 옆에서 뭔가가 외할아버지께 흙을 한 삽 정도를 확 끼얹었다. 놀란 할아버지는 머리가 쭈삣 서며 등골에 식은땀이 흘렀지만 정신을 가다듬었고, 상대가 호랑이임을 직감했다. 산짐승은 불을 무서워한다고 외할아버지는 다시 담배를 피우면서 길을 재촉하는데,
이놈의 짐승이 다시 흙을 뿌리며 장난을 한다. 멈춰 서서 숲속을 보니 주먹 만한, 새파란 두 개의 불꽃이 외할아버지를 노려보고 있다. 외할아버지는 공포심으로, 이미 온 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생각을 하며 호랑이를 달래기 시작했다.
“산신령님, 산신령님. 우리 마을에 가면 살찐 암캐가 있는데 같이 가면 제가 대접을 해드리겠습니다.”하면서 계속 어르고 달래고, 불붙인 담뱃대를 빙글빙글 원
을 그리듯 돌리며 떨리는 걸음을 재촉하였다.
그리하여, 드디어 마을이 보이는 산모롱이를 도는데 멀리 마을에서 캥-하는 개의 단말마의 비명소리가 들리더니 사방이 조용한 적막에 휩싸였다.
외할아버지는 온통 땀에 젖고 흙을 뒤집어 쓴 험한 몰골이었지만 무사히 집에 도착 하셨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옆집에서 키우던 개가 밤사이에 사라지고 없다고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단다.
우리 외갓집은, 우리집에서부터 어른이 걸어도 40분은 넘게 걸리는 시골이었는데(옛날에는 그랬다. 시내만 벗어나면 바로 시골이었다.), 아이 때 내 걸음으로는 족히 1시간 반은 걸렸을 것이다. 그래서 엄청 멀게 느껴졌는데, 그 중간에, 밤에는 혼불도 자주 나타나는 공동묘지가 있고, 오색 깃발에 알록달록한 커다란 조화들로 장식된 낡은 상여집이 있었으며, 사람도 잘 다니지 않는 산모롱이를 지나야 해서 낮에도 좀 으스스했다.
그런데 꼭 외갓집에서 정신없이 놀다보면 해가 져야 집으로 출발했다. 깜깜한 밤길을 자갈이 깔린 신작로를 따라 아이 혼자 바작바작 걸으면서 누군가가 함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한 50미터 저 만큼 앞에 하얀 소복을 입은 여자가 가고 있다.
같이 걷고 싶어 급히 따라간다, 빠른 걸음으로 걷다가 뛰어간다. 내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그녀와의 거리는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고 좁혀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여자는 자갈 밟는 소리도 내지 않는다. 맙소사! 그녀는 발이 없다.
그러더니 소복의 여인은 산모롱이 상여집으로 통하는 길로 들어서더니 상여집 앞에 딱 멈추어서 나에게 오라고 손짓을 한다. 나는 기겁을 하고 놀라 죽을힘을 다해 그곳을 벗어났다. 소복을 입은 여자 귀신이 나를 부른 것이었다.
그렇게 땀을 뻘뻘 흘리며 숨을 헐떡이고 집에 도착하면 어머니께서는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나는 한 번도 정직하게 대답한 적이 없었다. 다시는 외갓집에 못 가게 할까 봐. 그 일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 과외공부를 시작하면서 외갓집에 가지 못하게 될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런 것을 겪고 성장해서인지, 보기와는 달리, 나는 별로 겁이 없고 무서움을 타지 않는 강심장이다.
현직에 있을 때는 항상 낚시를 같이 다니던 후배 파트너가 있었는데, 은퇴를 하고 보니 일정이 맞지 않아 혼자 낚시를 다녔다. 겨울이 지나고 날씨가 풀리면, 보리가 누렇게 익을 때까지 언제나 놓치지 않고 볼락 밤낚시를 다니는데, 깜깜한 밤에, 주위에 아무도 없이 홀로 바닷가에 앉아 탈탈거리는 손맛을 느끼며 볼락을 낚아 올리는 재미는 거의 환상이다.
그 손맛을 못 잊어서 항상 찾아가는 나만의 낚시 포인트는, 뭍에서 도선을 타고 섬으로 건넌 다음 1시간가량을 산으로 난 오솔길을 걸어서 섬 최남단의 갯바위로 가야하는데, 중간에 공동묘지를 지나야 했다.
어느 날, 일기예보를 보니 비는 오지 않는단다.(내 낚시 포인트는 물때, 바람, 이런 것과는 아무 상관없다. 내 시간이 허락하고 비만 오지 않으면 항상 조과가 보장되는 명당이다.) 그래서 장비를 챙겨 낚시터로 향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한참을 재미있게 볼락을 낚아 올린다. 그날따라 왜 그렇게 씨알 좋은 볼락이 그렇게나 물어대던지 정신없이 낚고 있는데 멀리서 마른번개가 치기 시작하더니 천둥이 울린다. 볼락 입질이 뚝 끊어지고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변덕 많은 봄날 날씨라니’, 투덜거리며 바위 옆으로 비를 피하는데 좀처럼 비는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고 번개는 계속 친다. 이런 날 낚시하면 큰일 난다. 낚싯대
가 카본 소재이기 때문에 벼락 맞아 죽을 수가 있다.
시계를 보니 자정이 훨씬 지나 있었고 빗방울이 조금 잦아들면서 가랑비로 변하는 것을 보고 철수를 결정했다. 큰놈들을 꽤 많이 잡아 무거워진 쿨러를 어깨에 메고 낑낑거리며 철벅철벅 비에 젖은 오솔길을 따라 걷는데 어디서 꽹과리, 장구, 북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이 비 내리는 야밤에 누가 굿을 하나? 무슨 소린가 하고 공동묘지가 보이는 마루로 올라서는데, 맙소사! 공동묘지 위에서 사발만한 파란 불덩이들이 널뛰기를 하고 하얀 그림자들이 왔다 갔다 하면서 귀신들이 무슨 잔치를 벌이는 듯 꽹과
리, 장구, 북을 치며 야단이 장난이 아니다.
허걱! 나는 그 자리에 그만 얼어붙었다. 내가 무서움을 모르는 강심장의 소유자이기는 하지만, 그 때 만은 뒷머리가 곤두서고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덜덜덜덜 떨리기 시작했다.
오지도 가지도 못 하고 그 자리에 꼼짝없이 서 있는데, 귀신들의 대화가 귀에 들려온다.
“오늘 최 서방 댁 막내딸을 데려오면 다음은 누구 차례고?”
“응, 다음은 김 주사네 셋째 아이가?”
“가만있자, 오늘이 그믐이니까 얼마 안 남았네.”
“그래, 그래. 아무튼 우리한테는 경사니까 신나게 놀자.”
“그래, 그러자.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쾌갱 깽깽 깽 깽 깽 깽······”
나는 정신을 수습하고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잡귀들아 물렀거라. 인간을 이기는 귀신이 어디있냐? 죽은 귀신이 산 사람을 어떻게 이겨?’
“어이, 어이, 물렀거라.”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빠른 걸음으로 공동묘지 위를 지나는데, 그 때는 눈앞이 캄캄하고 흡사 귀신들이 어깨를 가로챌 것 같은 느낌으로 등골이 섬뜩섬뜩했지만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렇게 무사히 공동묘지를 지났고, 옛날에 사람들이 많이 살 때, 도선의 매표소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사람들이 모두 떠나 간혹 낚시객들이 이용하는 콘테이너 박스에 도착하여 랜턴을 켜 놓고 몰골을 보니 이건 뭐, 사람의 꼴이 아니다. 비에
젖어 식은땀에 젖어,
대충 정리를 하고, 벽에 몸을 기대고 눈을 좀 붙일까? 하고 휴식을 취하는데 귀에서 계속 “쾌갱 깽깽 깽 깽 깽 깽······”하는 꽹과리 소리가 들려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비몽사몽간에 새벽녘에 설풋 잠이 들었는지 날이 희뿌옇게 밝아 오는 듯하다.
찌뿌둥한 눈을 뜨는데, 분위기도 어색하고, 느낌도 조금 서늘하고 축축한데 쿰쿰한 냄새도 나는 것 같으면서 바닥에 뭔가 시커먼 것들이 꼼지락거리는 것 같다. 랜턴을 켜고 보니, 이크! 이게 뭐야!? 손가락 굵기 만한 지네들이 바닥에 버글버글 거리는데 징그러워 소름이 쭉 돋는다.
그런데 맙소사! 이건 또 뭐지? 내가 앉아 있는 곳이 매표소 콘테이너가 아니고 웬, 다 쓰러져 가는 폐가의 헛간 같은 곳이 아닌가? 나는 놀라서 짐을 챙겨 후다닥 그곳을 벗어났는데, 나오고 보니 약 20미터 전방에 매표소 콘테이너가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이고! 간밤에 분명히 매표소 콘테이너로 들어갔는데 그곳이 폐가의 헛간이었다니, 틀림없이 그 밤에 나는 귀신에게 홀렸던 모양이었다. 다시 한 번 소름이 끼치고 등골이 오싹하다. 다행히 비는 그쳤고, 언제 비가 왔더냐는 듯이 날씨가 화창하다.
부스스한 몰골로 도선을 타고 출발을 기다리며 눈을 감고 앉았는데, 동네 아주머니들이 두런두런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간밤에 최 서방 댁 딸이 갔단다.”
“아이고, 안됐네. 도회지 나갔다가 병을 얻어 왔다는 그 딸 맞제?”
“응.”
“그 아이가 몇째고?”
“막내 아이가.”
“몇 살인고?”
“올해 스물다섯이란다.”
“아이고, 한창 나이에 정말 안됐네. ㅉㅉㅉ”
뱃고동이 뭍에 도착했음을 알린다. 집에 돌아오니 할매가 몰골이 왜 그 모양이냐고 핀잔이다. 비를 맞아서 그렇다고 해야지 귀신 이야기는 절대 하면 안 된다. 안 그러면 다음부터 낚시하러 못 가니까.
그래도 그날 잡은 굵은 놈들은 손질을 하여 굵은 소금 철철 뿌려 구어서 시원한 맥주 안주로 맛있게 먹었고, 그 후로도 나는 변함없이 혼자 그 곳으로 낚시를 다
녔는데,
어느 날은, 함께 낚시를 하러 가는 노인 두 분이 나를 보더니 혼자 낚시 다니면
위험하고,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르니까 조심하란다. ㅋㅋㅋ
‘영감들아, 지가 하고 싶어 하던 일 하다 죽으면 그것이 바로 행복인지는 모르
제?’ㅋㅋㅋ
코로나 때문에 낚시도 못 가고 있는데 내 포인트는 잘 있는지? 그때 백화현상으로 인해서 몰이 점점 줄어들고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궁금하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