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유혹
시드니 셀던 지음, 정진우 옮김 / 세시 / 2009년 10월
평점 :
품절


중간 정도의 재미를 제공하는 소설인 것 같다. 크게 재미있다고 느껴지지는 않으면서도 지루하지는 않다. 책장은 잘 넘어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측천무후 5
원백대 / 보람 / 1995년 12월
평점 :
절판


女皇帝 則天武后

                                                                                                           原百代

 

[ 6 ]

도화의 향기

 

  겨울 11, 낙양 지역에 드물게 큰 비와 큰 눈이 잇달아 내렸다. 이 악천후 때문인지 황제의 건강이 다시 악화되어 침전에 눕게 되었다. 황제 곁에는 창종과 역지 외에 아무도 알현을 허락 받을 수 없었다. 황제의 재가를 받을 서류는 두텁게 쌓여 갔다. 그런 중에 조신들은 장 형제에 대한 모반을 상주하였지만 황제는 끔찍하게도 그들을 보호한다.

 

 조신들 사이에는 무력으로라도 황제를 퇴위시키고 태자 현을 천자로 세워 당실을 부활시킴으로써 천하를 안정시켜야 한다는 분위기가 구체화되어 갔다. 장간지, 최현위, 경휘, 환언범, 원서기 등 중신들은 하나하나 동지들을 엮어 나갔고 드디어 태자 현의 허락을 받아낸다. 그러나 거사 당일 현은 놀라고 무서워하며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다 신하들에 의해 반강제로 참여하게 된다. 의거의 군대는 영선궁으로 밀고 들어가 역지와 창종을 단칼에 베어버리고 침실로 뛰어들어 황제를 알현한다. 그들은 태자에게 양위를 주청한다. 투옥되어 있던 장동휴, 창의, 기 형제가 참형에 처해져 역지, 창종과 함께 천진교 남쪽에 효수되었다.

 

  드디어 황제는 태자 현에게 공식적으로 양위를 하였다. 이로써 중국사상 최초며 최후인 여황제 측천무후의 통치는 두터운 막을 내렸다. 때는 신룡원년(705) 124일이었다. 다음 날 현이 즉위하니 중국사상 희귀한 재조(再祚 : 물러난 임금이 다시 임금 자리에 나감)인 것이다. 중종의 나이 50세 때였다. 측천은 이제 상황() 되었다.

 

  논공행상이 행해졌다. 국호를 당으로 복구시키고 모든 것을 대주제국 그 이전으로 되돌려 놓았다. 장 형제를 따르던 무리들이 모두 일소되고 당의 광복이 성취되었다. 국호를 복귀시킨 뒤 태자비 위씨는 황후로 책립되었다. 중종의 유폐 시절에도 그를 격려하며 때가 오기만을 단단히 벼르고 있던 위후는 측천의 흉내를 내기 시작한다. 중종이 임조할 때 위후는 늘 황제의 옥좌 뒤에 처진 엷은 보라색 발의 그늘에 앉아서 처음부터 끝까지 정무를 듣고 있었다. 장간지 이하 조신들의 이마에 어두운 구름이 끼었다.

 

  혁명 이후에도 무삼사를 필두로 한 무씨 일족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삼사는 이제는 관직을 받아 황제의 비서로 있는 완아를 포섭하여 그녀와 깊은 관계를 맺고 황제에게 접근한다. 그런데 위후 또한 무삼사에게 눈독을 들이자 완아는 자신이 삼사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을 알고 굴욕감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완아는 은밀히 주선하여 위후와 삼사가 정을 통할 수 있도록 조치하기도 한다.

 

  이윽고 위후의 권유에 따라 중종은 정사의 결정에 관해 무삼사와 의논을 하게 되었고 이 때부터 무씨 일족의 세력은 이전보다 더 천하를 활개 쳐 나가게 되었다. 결국 황제의 결정이 삼사의 의견임을 알게 된 조신들은 무씨 일족의 제거를 극비리에 상주하지만 중종은 이를 무시한다. 삼사는 위후가 외간 남자와 은밀히 정을 통하고 있어도 그것을 전혀 눈치 못 채는 얼간이로 중종을 경멸하였고 이 의향은 그대로 위후의 감정이 되어 중종은 완전히 고립되었다. 또한 삼사는 조신들의 일을 눈치 채고는 무씨 일족을 한층 더 결속시켜 그들을 적대하는 세력들을 섬멸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황후는 삼사의 품에 안겼고 중종은 꼭두각시에 불과했다. 무씨 일족에 대한 배척 운동이 아무런 보람 없이 불발로 끝나자 삼사의 반격이 시작된다. 삼사는 위후와 짜고 간지 등 5중신을 열심히 참언하는 한편 혁명의 공적을 존중한다는 명목으로 그들을 군왕으로 봉하여 정권의 자리에서 추방한다. 그리하여 대권은 모조리 무삼사가 장악하게 되었다.

 

  측천무후 상황이 78세의 나이로 마침내 붕어하였다. 그리고 고종과 함께 합장되었다. 국장 이후 삼사는 5군왕의 역모를 상주하여 그들의 훈봉을 박탈하고 경관 복귀의 길을 막아버렸다. 입후 이후 외척 위씨 일족의 세력이 갑자기 화려하게 부상하자 삼사는 그들을 제어하고 중신들의 숨통을 죄기 위해 황후가 무삼사를 상대로 은밀히 추행에 빠져있다는 커다란 고찰(大高札)을 써 붙이게 하고는 이것을 이용하여 이전에 자신의 소행을 상주한 위월장을 제거하고 5중신을 무고하여 투옥시킨 후 제거하였다. 이리하여 혁명 지도자 5인은 전멸하였고 삼사의 권세는 임금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것이 되었다.

 

  제 3 황자 위왕 중준을 태자로 책립했다. 언제까지나 태자의 자리를 비워둘 수 없는 것 위후도 삼사도 일시적으로 중준을 내세웠다가 기회를 봐서 폐할 심산이었다. 입태자를 계기로 장안으로 천도하였다. 시아버지 삼사와 남편 숭훈은 태자를 폐하고 황태녀가 되라고 안락공주를 열심히 부추긴다. 교만하고 지기 싫어하는 안락공주는 태평공주를 능가하고 싶은 욕심에 천자의 묵칙제(墨勅制)를 이용하여 매관에 나서 세력을 끌어 모으고 황제에게 자기를 황태녀로 삼아 달라고 조른다. 하지만 황제는, 여제는 모제 한 사람으로 족하다는 생각에 결코 이를 허락하지 않는.

 

  중종이 이 부탁을 들어주지 않자 안락공주의 가슴 밑바닥에는 부제가 없다면......’하는 천인공노할 어처구니없는 생각이 독사처럼 머리를 쳐들었다. 이에 대한 실망감과 태평공주에 대한 경쟁의식은 건물을 짓는 사치로 나타나 언니 장령공주와 함께 경쟁적으로 호화 저택이나 산장들을 신축하기 시작한다. 세인들은 이것들을 목요(木妖)라 불렀다.

 

  이렇게 되자 다른 공주나 후궁 귀부인들과 위후의 두 여동생 등 그녀 주위의 아첨하는 무리들까지 갑자기 다투어 위세를 펴고 외정에도 직·간접으로 이것저것 관여하게 되었다. 묵칙에 의한 서관일 때는 사봉이라 칭했는데 사봉관의 수가 순식간에 수천 명이나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태자 중준이 누이동생 과아 부부가 자신을 놈이라 부르며 경멸하고 자신을 폐태자 시키려 한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 그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노호하며 지금까지 놀고 지낸 자신의 어리석음을 반성하고 결사의 대항책을 세우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자들을 은밀히 모아 나갔다. 드디어 거사 당일 무삼사의 집을 급습하여 삼사와 숭훈 및 친당파를 살육했다. 그러나 완아와 안락공주를 찾아 헤메는 동안 완아는 황제를 모시고 피신한 다음 삼사 일파를 규합하여 반격을 가한다. 란을 이끈 장수들이 죽고 태자 또한 부하들에 의해 참수 당했다.

 

  숭훈이 죽은 후에도 안락공주는 독수공방의 적적함이 전혀 없었다. 남편이 있을 때부터 이미 정을 통하고 있던 무연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황태녀 건에 대해서 자진해서 참모 역할을 했던 측천의 사촌언니 아들인 종초객은 안락공주가 여제가 되면 자신이 대권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이 원대한 계획을 위해 분투하고 있었다. 중종의 아들들은 모두 죽고 남은 아들은 10세의 넷째 은왕 중무뿐이었기 때문에 장차 스스로 제위에 오르기를 갈망하는 야심만만한 위후 또한 우선 안락을 황태녀로 삼으려고 마음먹고 있었다. 초객은 안락에게 최강의 적수인 상왕과 그를 강력하게 지지하는 태평공주를 제거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음행과 모반 계획이 탄로날 것을 두려워 한 위후와 황태후의 숙원 달성을 위하여 부심하던 안락이 손을 잡고 중종을 시해하는데 성공한다. 그런데 이 사실을 눈치 챈 태평공주와 완아가 급히 중종의 유칙을 작성하여 위후에게 전달한다. 예상치 못한 유칙을 받아 든 위후는 불안으로 바들바들 떨지만 방법이 없었다. 유칙에 의하면 은왕 중무를 천자로 세우고 당분간 위후가 섭정을 하며 상왕 단이 정치 고문으로 위후를 보좌하게 하라는 내용이었다.....

 

 역사소설은 역시 재미있다. 배울 것도 많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측천무후 5
원백대 / 보람 / 1995년 12월
평점 :
절판


[제6권] 병이 든 측천은 중종에게 양위를 한다. 무능한 중종, 위후와 무삼사가 국정을 농단한다. 중종이 암살되었고 융기가 거사를 일으켜 예종을 세우고 드디어 제위를 양위받아 황제의 자리에 오르니 그가 바로 찬란한 성당 문화의 꽃을 피우게 한 현종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측천무후 5
원백대 / 보람 / 1995년 12월
평점 :
절판


女皇帝 則天武后

                                                                                                           原百代

 

[ 5 ]

승선별곡

 

  내준신이 상상을 초월한 어처구니 없는 수뢰 사건이 표면화되어 좌천되었고 조신들이 이소덕의 비행을 상소하여 좌천되었다. 황제는 또 다시 존호를 덧붙여 자씨 월고 금륜 성신 황제(慈氏越古金輪聖神皇帝)’로 일컫게 되었다. 자씨란 미륵보살의 별명이다.

 

  약 6년 전 천당과 대불의 건조에 착수하면서 설회의는 입궁을 줄이더니 이제는 황제의 출사 지시에도 응하지 않았다. 이쯤 되자 설회의는 황제의 노여움이 두려워 자신의 보신책으로 1천 명의 힘센 승병을 친위대로 훈련 양성시키고 있었다. 시어사 주거는 이런 설회의의 동태에 의문을 품고 그의 규문을 강력하게 주청한다. 숙정대로 출두한 회의는 체포 직전에 갑자기 말을 타고 도망 가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명절을 맞아 성대하게 열린 무차회 끝에 설회의는 시승의 한 사람으로부터 황제의 시어의 심남구가 오래 전부터 설회의를 대신하여 황제를 모신다는 얘기를 듣고 울화가 치밀었다. 세찬 바람이 불던 그 날 밤, 천당 한 구석에서 갑자기 불꽃이 튀더니 순식간에 바람을 타고 번져 명당까지 몽땅 태워버렸다. 보고를 받은 황제는 그것이 회의의 소행임을 직감하고 모든 것을 불문에 붙이기로 결정한다.

 

  어느 날 태평공주의 사자가 설회의에게 전갈을 전하고 그는 요광전으로 그녀를 만나러 갔다가 계교에 걸려 포박, 살해되었다. 그의 시체는 은밀히 백마사로 보내졌고 몰래 화장되어 한 줌의 연기로 사라지고 말았다. 황제는 존호에서 월고’ ‘자씨두 존호를 스스로 없애고 천책 금륜 대성 황제(天冊金輪大聖皇帝)라 이름 하였다.

 

 또 다시 침략한 토번에 대패하였고 이어 침략한 거란에게도 참패하였다. 같은 해 돌궐 역시 침공하였다. 돌궐의 가한이었다가 주나라에 귀순하여 대장군이 되고 측천황제의 양자까지 되었던 묵철이 반역했다. 기주 자사 유사례가 낙주 녹사참군 기련요를 추대하기 위한 모반을 획책하다가 길욱에 의해 발각되고 길욱은 이를 내준신에게 은밀히 통보한다. 내준신은 이 사건을 자신이 담당하여 다시 원직 복귀를 희망하지만 황제는 이 사건을 군왕 무의종에게 일임하였다. 관련자 36명이 주살되었고 무려 천여 명이 유형에 처해졌다. 내준신은 장안으로 발령은 나지만 좌천은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준신은 여자를 탐하는 병적인 면이 있어 미인이라는 평판이 난 남의 처첩을 탈취하는데 정열을 보였다. 당시 낙양 주재 서번 추장 아사나곡필라에게 가무에 아주 뛰어난 미모의 어린 비첩이 있었는데 준신이 그녀를 훔치려고 해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래서 곡필라가 반역을 획책하고 있다고 무고했다. 그러자 이 소식을 들은 제국의 추장과 기타 수천 명이 궁궐로 밀려들어 자신들의 얼굴에 상처를 내고는 피투성이 인 채로 무죄를 주장했다. 유혈의 집단 항의에 놀란 준신은 어쩔 수 없이 고소를 취하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번은 모지지의 미모의 애첩 벽옥이라는 여자를 노리고 있었는데, 무승사도 미인 사냥 중 그녀를 발견하고는 신분과 지위를 이용하여 먼저 그녀를 가로채 갔다. 준신은 원한을 품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는데 지지가 거란 정벌을 나가면서 준 편지를 읽고 벽옥은 그만 자결하고 말았다. 준신은 무승사를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준신은 승사에 대한 복수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복수의 계획이 차츰 터무니없이 부풀려져 승사뿐만 아니라 무씨 제왕을 말할 것도 없고 태평공주까지 단숨에 대역음모로 무고하고, 황사 단과 노릉왕 현을 내세워 의거를 실현하면 일거에 황제를 공격하여 대위를 빼앗을 수 있다는 꿈같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 이를 시행하기 위한 구체안을 짜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러나 이 밀고의 대가는 얼마간의 방심이 있었던지 자신의 심복 부하 위수충에 의해 승사에게 밀고 된다. 무씨 일족은 의논 끝에 준신을 고발하여 체포, 투옥시키고 극형으로 다스릴 칙허를 청원했다. 황제는 며칠을 망설이다 극형의 칙허를 내렸다. 수많은 사람들을 무고하여 죽인 내준신, 무슨 얄궂은 운명의 장난인지 그가 무고하여 투옥 중이던 이소덕과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참형에 처해졌다. 내준신, 사형수의 신분에서 기막힌 술수로 풀려나 혹리가 되어 약 11년간 수많은 무고한 사람을 지옥으로 몰아넣었던 그의 기나긴 연극은 마지막에 자신의 피를 내뿜으며 그 막을 내렸다.

 

  설회의도 죽고 시어의 심남구도 곁에 없는 요즘, 황제의 외로움을 눈치 챈 태평공주가 미소년 장창종을 헌납한다. 창종은 황제의 허락을 받고 형 역지와 함께 황제를 모시게 된다. 황제가 이 두 형제를 위하여 자주 궐내에서 향연을 가지게 되자 자연스럽게 무씨의 일족들이 참석하게 되고 일족들은 황제의 총애를 받는 이 두 미소년에게 다투어 아첨하게 된다. 그러자 이 두 미소년은 얼마 되지 않아 오로지 일락만을 쫓는 탕아가 되어 갔고 난처해진 황제는 공학부를 설치하여 그들에게 운영을 맡겨 궁중 내연을 자제해 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
 
측천무후 5
원백대 / 보람 / 1995년 12월
평점 :
절판


[제5권] 혹리 내준신의 무고가 날로 더해가고 돌궐을 위시한 변방 오랑케들의 노략질이 심해진다. 황제는 미소년에게 빠지고 황사는 이미 결정되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댓글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