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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 투 킬 2
존 그리샴 지음, 김희균 옮김 / 시공사 / 1996년 10월
평점 :
품절
타임 투 킬(Time To Kill)
존 그리샴
교도소에서 3년을 복역하고 나온 악질 중의 악질 빌리 레이 콥과 나이는 빌리보다 많지만 그 밑에서 빌어먹고 사는 피트 윌러드는 술에 취한 채 10살 밖에 되지 않은 흑인 소녀 토냐를 강간한 뒤 폭행하고 개울에 던져 버렸다.
그들은 체포되었지만 보석으로 석방될 상황에 이르자 소녀의 아버지 칼 리가 그들을 사살하여 정의를 구현하였지만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된다.
사건은 매스컴을 타고 전국적인 관심사로 부상하여 자신의 영달을 노리는 변호사들이 욕심을 부리기 시작했으며 급기야 인종 문제로까지 비화되어 흑인 단체와 KKK단이 개입하여 폭력 사태에까지 이르게 된다.
그런 중에도 배심원들은 자신들의 책무를 다하여 합의된 평결을 도출해 내는데......
‘법정 스릴러의 대가’의 탄생을 알리는 작가의 처녀작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활용하여 미국 사법제도의 맹점(盲點)을 적절하게 파헤치며 탄탄한 구성으로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어린 딸을 강간한 인간 말종인 두 파렴치한을 응징하여 정의를 구현한 아버지. 그 아버지를 법정에 세웠다. 정의를 구현한 아버지를 법정에 세우는 것은 법이 정의를 심판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정의는 국가가 제정한 법에 의해서만 재단(裁斷)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곤경에 처한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는 것도 정의고 악당들을 처치하는 것도 정의다. 작은 정의는 개인이 할 수 있고 큰 정의는 국가가 해야 한다는 것인지?
현실적으로 보면, 법과 정의는 역시 힘 있는 자와 가진 자의 전유물이 된 지는 오래됐고, 부정과 편법과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재판 과정을 거쳐 가해자가 가벼운 벌을 받는다면 피해자가 입은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는 무엇으로 보상 받을 수 있는지? 평생을 트라우마 속에 고통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지? 그토록 외쳐대는 거룩한 인권이 왜 유독 가해자에게만 강조되어야 하는지?
소설 속에서 재판의 요지는, 피해를 입은 소녀의 아버지가 두 사람을 사살한 것이 정상적인 정신에서 한 것인가가 아니고 그의 행위가 정의로웠는가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점점 더 흉포화 되어 가는 세상에서 사회 질서를 지키고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고조선 시대의 ‘팔조금법’과 함무라비 법전의 ‘탈리오의 법칙’을 부활시켜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