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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군도 6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26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김학수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1월
평점 :
수용소 군도
(Архипелаг ГУЛАГ)
알렉산드르 솔제니찐
[ 6 ]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 말라는 것이 사회주의의 원칙이다. 그런데 혁명 전의 러시아에서는 유형수들에게 일도 시키지 않고 매월 일정 금액의 돈을 지급하여 생활하게 하였다.
지급하는 금액도 상당하여 유형수들이 유형지에서 그 돈으로 집도 사고 안락한
생활을 하기도 했는데 그런 일들이 혁명 후에도 일정 기간 지속되었다.
1920년대에 들어서는 농민에 대한 공격도 시작되었는데 그것은 농민은 ‘소부르주아’라는 도그마에서 시작되었다. 볼셰비키들은 프롤레타리아인 공장의 노동자(숙련공 제외)와 큰 기업주인 부르주아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이 ‘소부르주아’의 범주에 놓았다.
그들은 1920년대를 통하여 ‘꿀라크(부농)! 꿀라크!’하면서 기회 있을 때마다 농민들을 공공연히 지적하며 비난하고 질타하더니 1929년부터 그들 중 절멸시켜야 할 사람들의 명단을 작성, 그 재산 몰수나 강제 이주를 시행하였다.
그렇게 하여 꿀라크 박멸 운동의 결과 아주 근면하고, 농업경영을 잘하는 현명한 농민, 러시아 민족을 떠받치고 있던 농민들이 근절되어 갔다.
그런 면에서 보면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다는 사회주의가 오직 노동자 외의 모든 사람들, 심지어 농민들까지도 타도의 대상인 적으로 삼았다는 얘기가 되는 것 같았다.
꿀라크 박멸 운동의 강제 이주는 이제 제(諸) 민족에게 적용되도록 지시됐다. 그 최초의 시도는 만주와 몽골 국경 부근에 살던 수십만 명의 한국인들을 재빨리 극동의 카자흐스탄으로 이동시키는 것이었다.
이 사례를 시작으로 여러 지역에서 다른 민족들의 강제 이주가 계속되었다.
작가는 형무소와 수용소에서 보낸 8년의 형기를 마치고 유형지로 갔다. 그때 스탈린이 죽었다. 열흘쯤 지나자, 초상화 뒤에서의 싸움과 그 무정부 상태 속에서 MGB가 폐지되었다. 하지만 6개월 후에 KGB가 부활되었는데 MGB와 똑 같았다.
유형지로 간 작가는 우여곡절 끝에 자신이 원하던 수학 선생님이 되었는데......
마지막 권인 제6권에서는 유형(流刑)과 강제이주 등을 다루고 있는데 강제이주의 경우 그것은 시간적인 여유도 없이 너무도 급속하게 이루어졌다.
주어진 시간 안에 집단적으로 이주가 시행되는데 여유시간은 24시간, 12시간, 어떤 지역에는 2시간, 심지어 1시간으로 단축되어 시행되기도 했다.
스탈린이 죽었지만 그렇다고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형기를 모두 마치고 자유인이 된 사람들도 고통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수용소 생활이 몸에 배어 정신과 달리 몸은 아직 노예상태에 머물러서 배급이 없는 자유인의 생활이 몹시 힘들었다.
소련에서는 아무리 중요한 사회적 사건이 일어나도 두 가지 길밖에는 없었다. -묵살되거나, 아니면 왜곡되거나. 수용소 군도의 존재도 그 예외는 아니었고 스탈
린 사후 흐루쇼프가 정권을 잡았을 때에도 수용소 자체는 부정되었다.
그러면서도, 1956년 제20차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스탈린 격하 운동이 벌어졌지만 수용소 규율은 더 강화되었다.
작가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유를 애호하는 서방의 좌익 사상가들이여! 좌파 노동당원들이여! 미국, 독일, 프랑스의 진보적인 대학생들이여! 당신들한테는 이것으로는 아직 부족하겠지. 당신들은 나의 이 책만으로는 아직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손을 뒤로 돌려라!’는 명령이 있을 때, 당신 자신이 우리나라의 수용소 군도에 발을 들여놓을 때 비로소 모든 것을 한 번에 알게 될 것이다.』
그리고 소련의 있으나 마나 한 법률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얘기하며 끝을 맺었다.
『우리나라의 공기에서는 여전히 간교한 비밀의 냄새가 나며, 여전히 부정의 어둠이 뒤덮여 있다. 공장 굴뚝에서 뿜어대는 연기보다 그 안개가 더 지독하다.
강철의 테가 둘러져 있는 거대한 국가가 우뚝 솟은 후에 벌써 반세기 이상이 흘
렀지만 테는 있어도, 법률은 없는 것이다.』
이 작품은 작가 자신이 직접 등장하는 실명 작품인 동시에 그 속에 227명이나 되는 다른 정치범들의 이야기와 기억과 편지들이 수록되어 있는데, 기록의 사실적인 면에서 보면 그것은 히틀러의 유태인 말살과도 비교할 수 있는 잔혹한 세계 역사의 한 부분을 점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작가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를 읽으며 느꼈던 수용소의 생활은 이 작품 「수용소 군도」에 비하면 호화로운 생활이 아니었나 여겨질 정도로 때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분노와 아픔으로 가슴이 먹먹해지는 것을 느끼기도 했다.
도대체 노동자 계급의 천국인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연방에서 스탈린은, 도대체 인민들에게 무슨 만행을 저지른 것인지...... 우리 사회에서, 이미 역사적으로는 그 평가가 끝났지만 아직도 사회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의 필독을 꼭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