족보 이야기 외전


 족보 이야기에서 밝혔듯이 우리 할아버지는 세도가 보통이 아니었으며 성질까지 대단해서 상민들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붙잡아서 곤장을 치고 재산을 뺏기도 했단. 그리고 양반입네 하고 신분상의 차별도 극심하게 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고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일본 놈들을 피해 다니는 입장이 되었으니 더 이상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는 일은 못하게 되었겠지만 그렇다고 그때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지은 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쁜 일을 저질렀으면 벌을 받아야 되고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치러야 하는 것이 신의 섭리다. 남의 눈에 눈물 흘리게 하면 자신은 피눈물을 흘리게 된다고, 그것이 일본 놈들에 의한 것이든 아니면 자신이 선택한 것이든 내가 생각하기에는, 아니 사촌 누나로부터 들어서 알게 된 바에 의하면 - 우리 할아버지는 그때부터 벌을 받기 시작했다.


 가족과는 생이별을 하였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가산은 탕진되었고 당신께서는 집도, 절도 없는 떠돌이 신세로 전국을 떠돌다가 객사를 하셨는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돌아가셨고 어디에 묻혔는지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수십 년이 지난 후 풍문에 어디에 묻혔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했지만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인과응보다. 뿌린 대로 거두고 지은만큼 돌려받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남의 가족에게 그렇게 못 살게 굴고 재산까지 빼앗았다더니 당신께서도 똑같이 벌을 받은 셈이었다. 심지어 양반이라고 으스대더니 상민들도 하지 않는 족보까지 팔아먹게 한 것이 모두 남들에게 못되게 군 할아버지가 지은 죄 때문인 것이었다.


 그런데 지은 죄가 얼마나 컸으면 자신이 치른 죗값으로 부족했던지 나머지 죗값은 아래로 대물림이 되었다.


 큰아버지들 집안은 일찍이 끝이 좋지 않게 멸절되었고(그 과정에서 며느리들이 모두, 할아버지가 그토록 미워하던, 술장사를 하기도 했단다.) 우리 아버지 홀로 남겨지게 되었는데 그 어른의 다 갚지 못한 업보를 아버지가 몽땅 짊어지게 되었다.


 아버지 없이 온갖 고생을 다 하고 자란 우리 아버지는 결혼을 하고 어머니와 돈을 벌러 일본으로 가셨다. 할아버지께서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는 쪽바리들의 밥은 얻어먹지 않는다던 말이 정반대로 부메랑이 되어 우리 아버지에게 돌아 왔으니 이것 역시 인과응보의 일단(一端)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리고 해방이 되어 귀국하여서는, 우리나라에 먹을 것이 없어서, 영양실조로 생때같은 두 아들을 잃었단다. 이 무슨 엄청난 저주였는지......? 그 아들들이 나의 형님들이신데 그래서 나는 우리집에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쨌든 아버지는 귀국 후 안정된 직장을 얻어 가족을 부양하셨고 덕분에 자식들은 큰 어려움 없이 생활할 수 있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업보로 부터는 자유롭지 못하였다.


 내 기억으로, 어느 어둑어둑해지는 해거름에, 아버지 고향 사람이라는 웬 분이 찾아와서, 할아버지가 자기네 산에 쓴 묘를 이장하라는 요청을 해 왔다. 아마도 할아버지가 세도를 믿고 우격다짐으로 남의 땅을 뺏은 결과인 것 같았다. 아버지

는 그분들께 백배 사죄하고 묘지가 들어선 땅을 사서 문중에 이전해 주었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업을 거의 다 해결한 줄 알았는데 진짜는 아버지께서 은퇴를 하고 나타났다.


 호구지책이라도 마련하겠다고 시작하는 사업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여 적지 않았던 퇴직금과 살던 집까지 몽땅 날리고 말았고, 결국은 할아버지와 자식 대까지 알거지가 된 꼴이었는데 그 대부분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로, 남을 쉽게 믿었거나 사기를 당해서 입은 손해였다. 그래서 나는 그것이 할아버지의 업으로 인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결국 그 어려움은 나에게까지 영향을 미쳤고 내가 스스로의 힘으로 기반을 잡을 때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 세월들이 그때는 어떻게 그렇게나 모질고 힘들던지, ,......


 ‘법 없이도 살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은 아버지나, 어릴 때, 성격이 예민하고 까탈스러웠던 나를 본 사촌 누나가 생긴 모습에 성질까지 할아버지를 꼭 닮았다고 하던 말이 항상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항상 감사하는 마음과 속죄하는 마음으로,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겸손하고 배려하면서 사는 것을 생활신조로 삼아 왔기에,


 아버지나 내가 남에게 지은 죄는 없을 것이라고 감히 단언하는데, 그렇게 겪은 어려움이 인과응보였다면 그 업은 할아버지의 것이 틀림없었다.


 ‘죄는 지으면 3대를 간다는 말을 나는 절감했다. 아버지와 내가 할아버지의 업보를 지고 살았고, 할아버지로부터 3대에 걸쳐 죗값을 치렀으니......


 그래서 내 머리 속에는 항상 업의 대물림에 관한 걱정들이 떠나지 않았는데, 이제는 내가 짓지 않은 죄로 인하여 고통을 받는 일이 발생하지도 않으며, 우리 아이에게도 아직까지 선대가 지은 죄를 대물림 받은 징조가 보이지 않는 것이, 그렇게 길고 지루했던 악업의 고리를 끊은 것 같아 여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해방이 되고 일제의 압제가 풀리자 할아버지께서 아버지를 찾아서 부자 상봉을 하셨다는데, 아버지는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 할아버지를 끝내 용납하지 않으셨단다. 그러나 그 후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풍문을 들은 어머니가 할아버지 제사를 모시는 것까지는 말리지 않으셨는데,


 이제는, 돌아가신 날을 몰라 음력 99일에 모시던 할아버지 제사를 할머니 제삿날로 옮겨 함께 지내고 있고 종종 아이들에게 할아버지 얘기를 하면서 항상 남

에 대한 겸손과 배려를 주문하면서 살고 있다.


 평생 할아버지의 업을 짊어지고 고생만 하다가 가신 우리 아버지를 생각하면 눈시울이 붉어지고 가슴이 먹먹한데, 아직 현직에 있었을 때, 주중에 회사가 쉬는 날을 이용해 혼자서 아버지 고향, 아버지가 태어나셨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었는,


 시골이었지만 듬성듬성 산재한 종씨들의 문패를 보면서 우리 성씨의 집성촌임을 확인할 수 있었고 아버지가 태어나신 집은 옛 모습은 찾아 볼 수 없었지만 위치만은 마을 한 복판, 양지바르고 배수 잘 되는 명당임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렇게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이면 가끔씩 아버지 생각에 가슴이 메어 오기도 하고...... 언젠가 조상 땅 찾긴가 뭔가가 있어서 조회를 해 보니 지리산 골짜긴가 봉우린가 어디쯤에 할아버지 명의의 땅이 있는 것을 확인하였는데, 그것은 그냥 그대로 두기로 했다. 더 이상 할아버지의 업에 얽혀들기 싫어서. 세월이 가면 비연고 토지로 국가에 귀속될 것이다.


 일제에 항거하여 가족을 버리고 전국을 유랑하신 할아버지의 행적을 조사해 볼까도 생각했지만, 그렇게 오래 지난 일을 어디서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도 막막하고 또 지금에 와서 조사해 본들 무엇하나 하는 생각이 들어 포기했었다.(‘항거라고 썼는데, 글쎄 항거라고 쓴 표현이 가당찮을까? 남을 괴롭혔기 때문에? 피해 다녀?


 독립운동가들도 피해 다녔잖아? 그리고 남을 괴롭힌 것과 일제에 협조하지 않고 피해 다닌 것은 별개의 문제 아닌가? 그래서 광의로 해석하여 항거’ ‘저항이래도 괜찮지 않을까? ‘에라, 모르겠다 그냥 그래도 두자. 내 맘인데


 아니, 일본 순사였던 아버지를 독립군으로 둔갑시켜 국회의원도 하고, 매국의 거두의 자손도 떵떵거리며 국회위원도 하는데, 일제에 협조하기 싫어서 멸문지화를 당하다시피한 우리 할아버지의 행위를 항거라고 표현한 것이 뭐, 크게 잘못된 것도 아니잖아. 그렇다고 내가 국회의원을 하자는 것도 아니고. ㅋㅋㅋ )


 (내가 우리 가계에 얽힌 이야기를 구구절절이 하는 이유는, 내가 죽기 전에, 우리 할아버지가 지은 죄를 자식과 손자가 이제 모두 갚았다는 사실을 하늘과 만천하에 천명(闡明)하고 더 이상 우리 집안에, 우리 아이들에게 나쁜 일들이 생기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임을 밝혀 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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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6-28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6-28 15: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자녀목 - 정진우 작품선 Vol.3
정진우 외 감독, 정윤희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감독 : 정진우

 출연 : 정윤희, 이대근, 김신재. 윤양하 

 수상 : 1980년 제19회 대종상 영화제 남우주연상(이대근), 여우주연상(

         희9개 부문 수상


 1980년에 지작된 영화로 정비석 작가의 단편 성황당을 각색한 작품이다.


 심심산골, 숯을 굽는 현보와 함께 사는 어머니는 오늘도 참한 며느리를 얻게 해

달라고 성황당에 빈다.


 그런데 그때 웬 낯선 소녀가 성황당에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녀는 남사당패 어

머니에게서 버림받고 뻐꾸기 소리를 따라 엄마를 찾아 헤매는 순이었다.


 어머니는 순이를 집으로 데려와 몇 해만 잘 키우면 좋은 색싯감이 될 것이라 생각하였다. 현보 모자는 그녀를 성황님이 점지해 준 은혜로 생각하였고, 이후 현보와 순이는 결혼을 하게 되지만,


 현보의 친구 칠성이와 산림주사 김일동이 호시탐탐 순이를 노리고 그들의 주위를 배회하는데......


 대종상 9개 부문을 수상한 상당히 짜임새 있는 작품이다. 정윤희의 출세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녀의 연기는 어째 좀 만족스럽지 못한 것 같다.


 자연 속에서 욕심 없이 살아가겠다는 사람들, 좀 가만두면 안 될까? 세상에는 항상, 이런 파렴치한들 때문에 억울한 경우가 생기는 것 같다. 나쁜 놈들. 귀신은 뭐 할까? 이런 놈들 안 잡아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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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 자녀목 - 정진우 작품선 Vol.3
정진우 외 감독, 정윤희 출연 / 아인스엠앤엠(구 태원)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정비석 작가의 단편 성황당을 각색한 작품이다. 버리고 떠난 어머니를 찾기 위하여 뻐꾸기 우는 소리를 따라갔다가 만난 인연이 불행의 시발점이었을까? 순박하기 만한 순이에게 세상은 너무 낯설고, 험하고, 거칠다. 대종상 9개 부문을 수상한 수작으로 평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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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열전 전 10권 완질
청화사 / 198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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女人列傳


3


異國殉愛譜

魯國公主

                                                                                 한용환


 원나라에 볼모로 가 있던 고려의 공자 왕기가 원나라의 노국보탑실리 공주와 혼인을 했다. 하지만 고려와 원나라의 혼인이 처음이 아니니 특별할 것은 없다. 그 이전에 이미 원순제와 황후, 고려의 충렬왕, 충혜왕 등의 혼인이 있었다.


 그런데도 유다른 점은, 황후 기씨의 배려로 혼례가 그 어느 때보다 성대하게 치러졌으며 노국공주의 미모가 천하절색인데다 심성 또한 훌륭하여 공자 왕기와 더불어 너무도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점이었다.


 일단 고려의 왕자와 결혼하게 된 공주는 그때부터 고려의 사람이 되기로 작정하였고 하루 빨리 공자가 고려의 왕이 될 수 있도록 힘쓰기 시작했다. 우선 원순제에게 여러 차례 청을 드리는 한편 그림 그리기에 빠져있는 공자를 무예를 익히도록 재촉하였다.


 당시 고려의 정치 상황은 매우 불안정하였는데 왕기가 공주와 결혼한 지 만 3

이 되자 원순제는 왕기를 고려 국왕에 책봉하였다.


 이리하여 왕기는 고려의 국왕이 되었는데 그가 바로 공민왕이었다. 왕위에 등극한 공민왕은 노국공주의 내조를 받으며 고려의 기강을 재정립하고 나라의 발전과 백성들의 안락한 생활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한편 외적의 침입에 대비한다.


 그러면서 원나라가 주원장 등 외적의 침입으로 국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최영, 이자춘 등의 장군들로 하여금 원나라에 빼앗겼던 북방의 고토를 회복하게 하는 등 국력을 더욱 튼튼하게 다진다.


 그런데 그만 아이를 잉태한 노국공주가 난산으로 아이와 함께 목숨을 잃고 만다. 평소 그렇게 금슬이 좋던 임금이 왕비를 잃게 되자 그날부터 실의에 빠져 일절 국사를 돌보지 않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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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열전 전 10권 완질
청화사 / 1983년 1월
평점 :


[노국공주] 재색을 겸비한 노국공주. 끔찍이도 사랑하였지만 난산으로 인하여 그녀를 잃고 실의에 빠진 공민왕. 고국을 떠나 원나라에 볼모로 있으면서 이루어진 사랑이기에 애틋함이 더 컸는지 도무지 그녀를 잊지 못하는데 또 그것을 이용하여 권력을 탐하는 요승 신돈. 그들의 관계도 얽혀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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