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장길산 세트 1-10 완결 세트
창비 / 1996년 2월
평점 :
장길산
황석영
[ 8 ]
갑자에 시작된 흉황은 이듬해인 을축년에도 계속되어 난민은 갈수록 늘어났으며 점점 거칠어져 관에서도 어쩌지 못하고 있었다. 이전부터 구월산 일대에서 일어난 명화적이 활빈당을 자처하며 해서 전역은 물론 도계를 넘어 송도 부근까지 발호하여 왔는데도 속수무책이었다. 그러자 수많은 난민들이 명화적의 행동을 본떠서 스스로 활빈 무리임을 자처하였다.
해서의 조읍에는 해서에서 가장 큰 포창(浦倉)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세곡을 관장하다보니 물화가 풍부하고 장사치들도 붐볐다. 따라서 도적들도 많아서 백주에도 사람을 죽이고 물건들을 약탈하였다.
포창의 나루터에서 갑자기 시끌벅적한 소란이 일어나더니, 한 가족인 듯한 여섯 명의 난민이 결박된 채 나타났다.
그들이 화적질을 하다 붙잡혔다는데 모두 누더기 차림에 맨발로 몹시 쇠약해 있어서 누가 보아도 난민임을 알 수 있었으며, 설마 저런 것들이 화적당이랴 싶은 의아스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김기와 강말득이, 마감동, 변가 등이 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 그들은 조읍포창을 노리고 우대용이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는데 김기는 말득이 잡힌 일가족들을 구출하여 달아나도록 조치를 하였다.
그리고 구월산 패들은 토포군관으로 변복을 하고 조읍 일대를 완전 장악한 다음 유사과의 재산을 모조리 약탈하여 귀중품은 실어 내가고 곡식들은 난민들을 불러모아 모두 나누어 주고 바람과 같이 사라져 버렸다.
조정에서는 난리가 났고 부임 2개월도 안 된 황해도 관찰사 임규를 대신하여 승지 신엽을 관찰사로 임명하였다. 그리하여 부임 전에, 지금은 파직되어 장사치가 되어 있는 최형기를 은밀히 포섭하여 그에게 활빈당을 토포하는 만호에 임명하고 전권을 그에게 부여하여 적당들을 쓸어버리도록 지시를 하였다.
임지에 부임한 신엽과 최형기는 이런 일들을 모두 비밀에 부치고, 한 겨울에 호랑이 사냥을 한다며 군사들을 조련시키는 한편, 활빈당으로부터 직접적인 피해를 입은 유사과의 아들들을 차출하고 장교들과 함께 적정을 기찰하도록 하였다.
한편, 박대근도 새로 온 관찰사의 성향을 파악코자 하였으나 그들의 철저한 속임수에 넘어가 크게 걱정을 하지는 않았고 다만, 토포군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토포군의 공격이 개시되었다. 토포군들은 구월산 전체를 포위하여 도주로를 차단하고 한 밤중에 공격을 시작하였는데, 사선골과 탑고개, 된목이골을 공격하여 불을 지르고 쑥대밭을 만들었다. 토포 작전은 완료되었으나 길산을 잡지 못한 작전은 백성들의 원성만을 남기고 실패로 끝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