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만자립청년 - 남다르게 먹고사는 청춘 11인을 만나다
이정화 지음 / 페이퍼쉽미디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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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전 세대보다 훨씬 높은 스펙과 학력을 갖고 있어도 취업은 바늘구멍 지나가듯 어렵다고 한다. 예전처럼 좋은 대학을 나와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면 골라서 입사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워낙 부족한 일자리에 비해 취업자들이 많아 경쟁률이 높아져서 원하는 회사에 들어가기 힘든 세상이다. 그 대안으로 떠오르는 것이 청년창업이다. 즉, 1인 기업이 되거나 자영업을 하도록 내모는 것은 아닐까? 젊은 청년들에게 도전과 열정을 가지라며 자신이 배운 전공을 살릴 기회조차 줄어드는데 몇몇 성공사례만으로 '젊어서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로 인생을 건 모험을 쉽게 말한다. 사실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일자리에 대한 문제는 청년 세대만의 고민거리는 아닐 것이다. 이 책에서 만난 청춘들은 대안적 일자리를 모색해본다는 점에서 의미를 갖고 있다. <낭만자립청년>에 소개된 사람들을 보면 각자 많은 고민들을 했을 것 같다. 자신들이 걸어가야 할 길을 찾았다면 행운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든다. 그 선택이 결코 쉽지 않을거라는 건 불확실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것 하나 내 삶을 보장해주는 건 없다. 직장에 다녔다면 매달 들어오는 월급으로 설계가 가능했지만 자립을 한다는 건 스스로의 월급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실천적 대안을 찾아 길을 개척해나가는 모습이 많은 자극이 된다.


토스트는 바쁜 직장인들이나 간단하게 끼니를 떼우기 좋은 음식이다. 광운대 인문대 수석졸업자의 집(이하 광인수집)도 광운대 후문에 위치하여 자리목은 좋다. 가게를 찾는 손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소통한다는 그의 모습에서 비록 수입은 적을지라도 자유와 안정 속에서 행복을 모색한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장사가 잘 될 때도 있고 안 될 때도 있다는 마인드가 참 좋다. 우리가 사는 인생에서 정해진 길이 있을까? 다만 이런 시도들이 여러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청춘들에게 다른 대안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에 소개된 분 중에서 전공을 살리고 발전시키거나 그 재능을 오랜기간 축적시켜 독자적인 직업을 확립한 사람도 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고 무엇을 만드는 일은 자립의 필수적 요소일까? 어떤 면으로 보면 이들은 당장 자립할만큼의 수익이 들어오지 않더라도 정신적으로 자유롭고 행복할 것 같다. 자체 생산한 상품을 팔아서 얻은 수익으로 자립을 해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많은 시행착오와 어려움 속에서도 이들은 어려운 시대에 자립하기로 나선 청춘들이다. 방법은 분명 찾으면 있을 것이다. 한 때 귀농이나 귀촌을 고민하던 내게 인상적이었던 꽃비원을 운영하고 있는 정광하·오남도 부부였다. 논산 훈련소 근방이라 땅값이 저렴한 곳에서 농부를 하고 있는 이들은 진정 자립이 가능한 구조다. 직접 기른 채소들을 수확해서 마트에 갈 일이 없고 도시에서보다 풍성한 반찬들로 매끼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직거래를 고민할 때 프리마켓, 마르쉐 등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선순환 구조는 마르쉐를 통한 농산물 직거래였다고 한다.


먹고 사는 일만 해결하면 되는데 참 힘들다. 그냥 평범하게 직장생활을 하면서 안정적인 수익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할 청춘들인데 프리랜서, 자영업의 길로 나서도록 만든 건 사회의 책임이 아닐까? 일자리가 많고 선택지가 다양하다면 모르겠지만 이를 청년기업이라는 말로 포장하면서 실패했을 때 회복성을 담보할 수 있는 안전망은 전무하다. 그래서 이들의 노력과 꿈을 지지하고 싶고 부디 잘 되었으면 좋겠다. 취업의 또다른 대안이 아닌 자신들의 길을 개척한 청춘으로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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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역습 진격의 일본 - 아직 끝나지 않은 한일 간 비극의 역사
조용택 지음 / 북클라우드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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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우리가 흔히 일본을 떠올릴 때 주로 쓰는 말이다. 가까운 데 멀다는 건 이웃나라라는 감정까지는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삼국시대부터 끊이지 않고 해안가 주변 마을로 왜구 해적들이 쳐들어와서 살육했던 때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임진왜란 당시에도 쳐들어와서는 잔혹하게 귀를 짜른다거나 마구잡이로 칼로 베는 등 그들의 잔인함은 치를 떨게 하기에 충분했다. 일제강점기에 와서는 민족말살정책으로 조선사편수회를 통해 역사왜곡을 주도했고 위안부와 강제징용을 하며 그들의 욕구해소용이나 총알받이로 이용했다.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민속놀이를 없애고 일본의 민속놀이가 스며들었고 조선신궁을 세워 우리 말도 쓰지 못하고 개명을 해야 사회생활을 할 수 있었으니 철저하게 조선을 짓밟으려고 교활하고 주도면밀하게 내부 깊숙한 곳으로 파고들었다. 땅 곳곳에 민족정기를 없앤다며 쇠를 박았고, 창경궁은 동물원으로 만들어버리고 경복궁은 조선총독부를 만든다며 근정전 앞 궁궐을 파괴하였다. 여전히 독도영유권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땅이라는 뻔뻔함을 갖고 있다. 일본 정부의 우경화와 제특회의 활동은 같은 궤를 하며 지금도 틈만 나면 전쟁전범들이 있는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이 위안부 사죄를 하지 않거나 독도영유권을 주장할 때면 민족감정이 실리는 것은 당연하게 되었다.


일본은 <국화와 칼>이라는 책에 나와 있듯 그들은 평화와 전쟁이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또한 사무라이의 칼이 지배했던 사회여서 지금도 복종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고 애매모호한 말로 완곡하게 표현한다. 직접적으로 거절하기 보다는 상대방의 기분에 맞춰서 말한다. 거리는 늘 깔끔하며 어디에도 쓰레기가 나뒹구는 곳이 드물다. 집단 속에서는 그들에게 맞추려고 하기 때문에 의견분쟁을 최소화하며 협조적이다. 일본에 대해 갖고 있는 이미지 중에 좋은 것도 많다. 남의 물건에 함부로 손을 대지 않고 조금만 남에게 피해가 가면 사소한 것이라도 사과한다. 정직함과 성실함은 기본이며 남에게는 상냥하게 대한다. 우리는 감정적으로 욱할 때도 많지만 우리에게 갖고 있지 않은 건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에 대해 과연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일본 고대사와 한반도 침략사를 보면 역사적으로 볼 때 화가 난다. 진정성있는 사죄를 하지 않는 그들을 볼 때면 더욱 그렇다. 조선과 일본의 국운을 가른 결정적 장면은 예송논쟁과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꼽을 수 있는데 조선이라는 나라가 유교를 숭상하던 계급사회라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은 결과로 귀착되는 듯 싶다. 반면 일본은 외국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큰 거부감이 없었다. 네덜란드 상인으로부터 배운 신문물을 통해 그들의 기술은 급전직하게 발전할 수 있었다. 


일본은 여전히 하이테크에서는 세계제일의 나라다. 제조업 분야에서도 세계 1위의 영향력을 가질 정도로 기반을 탄탄하게 갖췄다. 경제도 대기업 위주가 아닌 수많은 중소기업들이 서로 공생하기 때문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점도 좋은 조건이다. 우리는 대기업에게 모든 경제, 산업기반을 몰빵해줘서 전반적으로 볼 때 균형이 어긋나고 허약하다. 만약 한 대기업이 무너지면 그 여파로 인해 관련 하청업체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무너져버리는 구조다. 경제적으로 부강해졌다고 하지만 아직 우리는 일본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언제까지 일본에게 당하고 있어야 하는가? 안일한 대처로 일본에게 먹혔던 과거 역사의 교훈을 되새김질 하지 않으면 또 반복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있을까? 일본 자위대법 개정을 그래서 주목해야 하고,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친일파와 독립운동 후손에 대한 천대는 아킬레스건이 될 것 같다. 비극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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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6
김진명 지음 / 새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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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또 읽어도 역시나 스케일에서 독자들을 압도하는 책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반도>, <사스>, <글자전쟁>까지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들면서 과연 그랬을까에 대한 생각을 한 번쯤 해보게 만드는 몰입감이 상당하다. 그의 책에 빠져들고나면 마치 역사의 한복판에 떨어져서 과거 미스터리한 사건의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뛰어드는 기분이 든다. <한반도>의 개정판으로 나온 <1026>도 어김없이 순식간에 휘몰아치는 전개 방식은 읽고나면 숨이 가파오른다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처음은 우연히 시작된다. 하버드대학교 앞 케임브리지 광장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잠시 용돈 벌이 겸 한국을 알리기 위해 판소리를 한소절 부르고 있는 서수연과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마주한 이경훈 변호사. 그들은 대학 선후배 사이인데 요 몇 년간 연락이 끊기다가 타지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단지 수연으로부터 전화만 받아달라는 부탁을 받았는데 한밤중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노인의 것이었다. 박대통령과 10. 26 비밀을 수연... 하우스...라는 말만 남긴 채 숨지고 만다. 그 분은 제럴드 현인데 블랙 3에 해당하는 중요인물이었다. 공무원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꾸준히 연금을 받고 있었고 수연에게 현금 180만달러를 유산으로 남겼다고 한다. 점점 제럴드 현에 대한 궁금증과 증폭되기 시작하는데 변호사인 경훈은 자신의 상관이기도 한 케렌스키 대표에게 연금 관련 정보를 부탁한다.



사건은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새로운 점들이 발견된다. 자신에게 가방을 부탁하며 라스베이거스로 가줄 것을 부탁한 케렌스키 대표가 갑자기 실종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에이펙스에서의 생활을 마무리하고 10.26에 대한 정보를 더 찾아볼 생각에 한국으로 온 경훈. 제럴드 현의 본명은 현강일이라는 걸 알게 되고 주변 인물을 조사하던 중 그의 충복이었던 오세희를 알게 되어 캐나다로 가 만나면서 구체적인 증거들을 더욱 많이 들을 수 있게 된다. 이 책의 핵심은 평소 자주국방을 외치면서 핵 개발을 비밀리에 진행한 박정희와 이를 꾸준히 감시하면서 지켜본 CIA를 비롯하여 한국에 파견된 현강일. 김재규가 박정희를 시해하게 된 배후에는 과연 어떤 세력이 존재하는지. 수없이 도상훈련을 하면서 '김학호 준비해'라는 말만 했으면 모든 일이 순조롭게 흘러갔을텐데 그 현장에서 박정희와 차지철을 사살하고 남산이 아닌 육본으로 차를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 아직까지 미스터리로 남은 사건이다. 아마 김재규는 군과 미군이 자신을 지지해줄 것이라 믿었고 자주국방을 주장하는 박정희를 경계하던 미군으로써는 이대로 가다간 안되겠다는 생각이 깔려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김재규를 이용하지 않았을까라는 추정이다. 과연 단독범행인지 우발적으로 총을 쏜건지 아니면 철저하게 계획 하에 이뤄진건지. 김제규를 취조하면서 드러난 사실들도 흥미롭고 분명 미 비밀문서에는 여러가지 정보들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후반부로 가면 괴한으로부터 납치되어 목숨을 잃을뻔한 수연과 점점 10.26의 진실을 파헤칠수록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는 경훈 등 사건이 긴박하게 흐른다. 죽을줄로만 알았던 케렌스키 대표가 엄청난 증거를 갖고 돌아오는데 엄청난 돈을 들여 도박을 한 이유는 특정 대상의 시선을 돌리기 위해서였다라고 한다. 열쇠를 풀 수 있을거라는 기대감을 갖게 하지만 숱한 의문과 궁금증만 자아낸다. 대통령으로부터 초대를 받았을 때 경훈은 한반도의 안전과 미국과의 관계가 조금은 서로를 존중하는 대등한 관계로 발전시켰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말한다. 민족주의자이기도 한 현 선생님도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그런 고민들을 했던 것 같다.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안된다는 사명감. 그 당시의 사건들을 재현한 듯 생생하게 전해져오는 대화들은 아픈 우리들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 같다. 아직 한국은 그때까지만해도 미국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국가가 아닌 감시와 견제를 받으면서 그들의 의도대로 정치와 경제를 지배당하였던 것 같다. 오랜만에 읽어도 가슴을 뛰게 만든 대단한 소설이다. 




- 다음뉴스 펀딩 https://storyfunding.daum.net/episode/3114


※ 본 서평은 새움 서포터즈 1기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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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위대한 질문 - 우리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 위대한 질문
배철현 지음 / 21세기북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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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대 고전문헌학 박사이자 서울대 종교학과 배철현 교수가 쓴 <인간의 위대한 질문>은 인문학적인 시점에서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에 관하여 쓴 책이다. 우리는 종종 살면서 덩그라니 놓여진 내게 질문을 던지곤 한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은 인간 스스로 나약한 존재임을 인정하기에 신을 찾는 것이다. 기독교를 인문학으로 해체하여 보면 낯설게 느껴진다. 게다가 이 책을 보더라도 복잡하고 어려워 보이는 느낌을 표지에서부터 풍겨온다. 하지만 겉만 봐서는 알 수 없듯 곰곰히 생각하면서 읽어도 될 정도로 알기 쉬운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살짝 든 거부감은 크리스천이기에 전적으로 무심론자의 시점에서 읽게 된다면 어떻게 받아들일 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던 탓일 듯 싶다. 아마 다양한 작품을 읽고 공부하는 이유는 저자가 말하듯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교양을 쌓는 것이다. 좁은 내 시야에서 보는 세상이 전부이고 진리라 믿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 지 미쳐 알지 못했던 것 같다. 아마 이 책을 읽게 되면 특정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이더라도 삶의 중요한 성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걸어온 행적. 그리고 저자가 성경과 예수님을 통해 분석한 인문학적인 분석은 놀랍다. 편협한 내 자신을 여지없이 깨트리고 무너지게 만든다. 율법주의적인 잣대로 세상을 제단하며 나와 너로 분리한 채 바라보지 않도록 깨달음을 준다. 그 불편함 조차 내가 신약성경을 읽으면서 알았던 예수님에 대한 이미지와 말씀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크리스찬에겐 성경은 경건한 책 그 이상이다.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 담겨있는 책이기에 성스럽고 그 어느 구절조차 함부로 반박할 수 없다. 


"인간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자신들의 욕망이 투사된 신을 만들어 숭배한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을 예배한다. 그리고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신을 '이단'이라고 손가락질 한다. 자신이 이해하는 신만이 참된 신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p.318~319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종교를 본인의 사리사욕을 위해 이용하여 성경구절을 멋대로 해석하는 사람이라면 이단이라 할 수 있지만 유일신인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를 과연 종교라는 테두리에서 부를 수 있는 지.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에 비춰보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신을 인정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이 문장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철저하게 무신론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말이기 때문이다. 간혹 성경 말씀과 배치되는 문장들이 있어서 크리스찬들의 생각을 헷갈리게 만들 수 있다. 분명 성경에 있는 말씀을 다른 방식으로 말하는 이유는 뭘까? 기독교의 핵심 논리 중 하나인 천국과 지옥을 단지 내 마음이 동하는 곳이 천국이라고 해석해버리면 어디든 천국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닌가? 아직까지 종교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는 건 내 믿음을 시험하며 흐트러뜨릴까 주저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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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강요 - 상 - 1559년 최종판 세계기독교고전 44
존 칼빈 지음, 원광연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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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 1559년 최종판은 상·중·하로 구성되어 있으며, 책이 굉장히 두껍다. 크리스천이면서 오랫동안 교회생활을 한 사람들이라면 대부분 알만한 내용들이다. 어릴적에 교회학교에서 배우고 수백 번 설교를 들어왔기 때문인지 몰라도 내용 자체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었다. 단지 두꺼운 분량에 압도되었을 뿐이다. 존 칼빈은 종교개혁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인물이기도 한데 그의 탁월한 성경에 대한 해석은 진리를 갈구하는 영혼들에게 핵심만을 전달하였다. 특히 다른 개혁자들이 주목하지 않은 성령의 역사와 인도, 조명을 강조하였는데 초기 교회에서 성령운동으로 교회가 부흥된 역사에 비춰보면 그의 설교는 선구자적 관점에서 성경을 해석하였던 것이다. 중세시대의 종교는 교황 위주의 낡은 관습에 젖어들어 일반 시민들이 올바른 신앙과 성경을 배우는 데 가로막이었다. 자신의 사상을 가장 충실하게 해석한 요약본이자 기독교 교리의 완전한 해설서이기도 한 <기독교 강요>는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는 사람에겐 교본과도 같은 책이다. 


<기독교 강요>를 천천히 목차와 상관없이 읽어도 성경공부를 다시 하는 기분이 들었다. 귀가 닳도록 들었고 성경을 완독까지 했으니 내겐 익숙함이 더 컸다. 하나님의 섭리가 존 칼빈을 통해서 그의 영광을 위해 드러나게 하심을 그의 책을 통해서 역사하고 있다. 혼탁한 중세에 성경의 본질을 꿰뚫어보고 하나님의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파악하여 일반 성도들이 기독교의 교리를 깨달아 거짓이 횡행하는 시대에 빛과 소금이 되도록 이끌어주었다. 크리스천이지만 <천로역정>은 많이 들어 알고 읽었지만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처음 알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 중세시대 종교개혁을 이끌었던 개혁자가 크리스천의 기본 바탕이 되는 기독교의 교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배울 수 있기를 바란다. 탐욕과 권력에 눈 먼 시대에 한줄기 빛이 되어 성경에 담긴 말씀의 진리만을 탐구하였던 그 결실이 바로 이 책이다. 성경을 멋대로 해석하거나 왜곡시켜 전파하는 걸 보게 되는데 다시 기독교의 순결했던 진리를 이번 기회에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이런 책은 진득하게 읽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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