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보기는 처음이다. 처음, 영화 보러가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난 무언가에 골몰하느라 정신이 반은 나가있었다. 그 이유가 컸다면 컸을까. 어떤 영화인지 분명 들었는데, 분명 다섯 글자였는데 뭐였지..뭐였더라.. 나와 같다면? 아니 너와 같다면? 아니 너를 부르면? 내 머리는 분주했다. 영화 제목이 뭐라고? 한마디면 되는데 그걸 못하겠는거다. 그날따라 그랬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날따라 그랬다. 결국 영화관에 도착해서야 오늘 내가(우리가) 볼 영화는 <너의 이름은>이라는 걸 알.았.다.
이런 정.신.으.로. 나는 이 영화의 후기를 쓰기 위해 다음과 같은 일을 겪는다.
감독: 신카이 마코토
등장인물: 미츠하(여), 타키(남)
위 사항은 '적어도 나에겐' 매우 중요한 영화 정보가 아닐 수 없다. 왜냐면 왜냐 하면,
신카이 마코토 신카이 마코토..미츠하 미츠하 심지어 타키 티키까지.. 이 무한반복의 입놀림 끝에 겨우(그러니까 아무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드디어!) 타.이.핑.을 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된다. 상태가 이 지경인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요즘 유행하는 그 '자괴감'이 몰려온다. 이러다 너의 이름은 커녕 나의 이름도 생각나지 않을 수 있다. 상황이 이러한데 무슨, 문장을 외우겠다고? 한 문장도 아닌 페이지를 통째로? 와 나 정말 커다란 포부를 지녔구나. 이대로 밀어붙이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고 하늘도 모르고 땅도 모르...
아무튼 그렇다치고,
생각난 김에 <언어의 정원>에 대해서나 한마디 하고 끝내야겠다. 이 애니도 신카이 마코토 작품인데, 얼마나 디테일에 신경을 썼는지 넌더리가 날 정도다. 이건 마치 계절과 기후가 만들어내는 풍경의 아름다움을 완전 극한으로 밀어붙임으로써 인간 내면의 상상력이라든가 자유로운 심상을 어쩌면, 아니 오히려, 파괴하는 것은 아닌가 싶을 만큼 질리도록 보여준다. 감독의 얼굴에 미소가 어린다. 이 정도면 뻑 가지 않겠어? 그리고 또 하나 그 와중에(?) 변태성욕의 끝판이 끝판에 결국 드러난다. 결국 이 지루한 줄다리기 끝에는 일본 어덜트 무비의 근원으로 가고자 하는 욕망이 반드시 있다. 내 생각이다. 정신없지만,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