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학교니까! 라임 청소년 문학 15
츠지무라 미즈키 지음, 김윤수 옮김 / 라임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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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점 아름다운 이야기가 끌린다. 너무 어둡고 마음 아픈 이야기는-그것이 대개의 사람들이 겪는 실제라고 할지라도-이제 피하고 싶다. 간접적이라도 그렇게 힘들게 생활하는 청소년들을 만날 용기가 부족하기 때문일까. 한때는 현실을 무시한 아름다운 이야기에 대해 삐딱한 시선으로 보곤 했는데, 나도 나이가 든다는 증거인가 보다.

 

  첫 번째 이야기를 거의 다 읽을 때까지 이것이 단편인지 몰랐다. 페이지가 많이 남았는데 이야기가 거의 결말을 향해 가서 의아했는데, 알고 보니 세 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 단편모음집이었던 것이다. 첫 번째 이야기인 <약속의 장소, 약속의 시간>을 읽으며 마음이 따스해지는 것을 느꼈다. 물론 처음에는 전학생 유가 말도 별로 없고 행동도 민첩하지 못하며 연약한 모습이라 약육강식의 교실 법칙에 의해 타깃이 되는 게 아닌가 걱정했다. 특히 육상부에 제멋대로인 듯한 도모히코가 최신 게임을 갖고 있는 유의 정체를 알게 되었으니 더 위험해지리라 예측하며 마음 아플 준비를 하고 읽었는데 전혀 반대라 편하게 읽었다. 아니, 아름다운 이야기라 멋진 가을을 마음껏 즐기며 읽었다.

 

  두 번째 이야기의 마치는 자신의 의견을 명확하게 이야기 하지 못해 고치고 싶어한다. 중학교에 올라가서 고치겠다고 마음먹지만 학급임원을 선출하는 상황에서 또 다시 다른 사람의 의견에 휩쓸리고 만다. 미나미는 반장이고 자기주장이 확실해서 둘의 갈등상황이 벌어지는 게 아닌가 걱정했는데 이 역시 기우였다. 오히려 서로의 비밀을 공유할 정도로 친해지고 심지어 네 명이 여름방학 동안 과제를 열심히 하며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긴다. 또한 우유부단하고 소극적인 성격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마치가 서서히 변한다. 이는 친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학교는 성적과 친구관계가 걱정되는 곳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변화 가능성이 있고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마지막 이야기는 모호해서 몇 번을 다시 읽었다. 내용이 아니라 인물들의 관계도가 모호하다. 잇페이가 고등학교 영화 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여주인공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주변 인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가만히 살펴보니 잇페이 부모님은 아마 첫 번째 이야기에서 주인공이었던 도모히코가 아닐까 싶다. 중학교때 육상부를 했고 공부를 그다지 못했으며 친구와의 약속 때문에 약을 개발하는 것을 보면 그렇다. 미래에서 온 유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미하루를 구한 것에 대한 미안함 때문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서 우미노는 두 번째 이야기와 겹쳐지는데 이름이 다르다. 그래서 다시 읽어보고 이름을 찾아보았지만, 없다. 동일한 인물이건 아니건 상관없으니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학생이라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 학교. 그런 학교생활이 마냥 즐겁기만 한 학생은 없을 것이다. 그래도 어쨌든 그곳에 적응하고 지내야 한다. 적응하기 힘들 만큼 어려운 문제만 없다면 아이들은 나름대로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고 결국 성장하게 된다. 마치나 잇페이처럼. 세 이야기가 관통하는 지점은 친구가 아닐까 싶다. 남을 위해 희생하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적어도 함께 하는 것, 그것은 비단 학생들 뿐만 아니라 인간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일 것이다. 미래에서 온 유가 그래도 학교에 다니길 잘 했다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세 편의 잔잔하면서도 아름다운 이야기(아이들이 조금씩 성장해가는 모습이 아름답다)가 이 가을을 풍요롭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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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몬스터! 사계절 그림책
피터 브라운 지음, 서애경 옮김 / 사계절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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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받지 못한 이 세상 모든 선생님들과

이해받지 못한 이 세상 모든 어린이들에게

 

  작가의 헌사인 위의 두 줄이 책에 대한 모든 것을 설명한다. 서로 같은 것을 꿈꾸지만 바라보는 것이 달라 결국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를 흔히 본다. 같은 공간이지만 그들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니 더욱 그렇다.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알면서도 그렇게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비와 선생님의 행적을 따라가면 그에 대한 해답은 아닐지라도 힌트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 과연 일방적인 것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것은 상호작용한다. 즉, 바비가 바라보는 선생님은 몬스터지만 바비의 행동을 보면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나라도 그렇겠다는 무언의 격한 동의이다. 첫 장부터 바비에게 불리한 장면이 펼쳐진다. 순진한 얼굴을 하고 교실 가운데에서 수업 시간에 종이비행기를 날리는 바비. 다른 친구들조차 한심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모두 바비를 바라보고 있다. 선생님은 당연히 무서운 얼굴로 바비를 혼내준다. 바비가 바라보는 선생님은 손톱과 이가 날카롭고 목도 없을 정도로 뚱뚱한 초록색 괴물이다. 발소리도 쿵쿵거리고 목소리도 쩌렁쩌렁한, 쉬는 시간에 꼼짝도 못하게하는 못된 괴물일 뿐이다.

 

  그런 선생님을 하필이면 공원에서 '우연히' 만나고 만다. 이미 서로를 보았기 때문에 도망가지도 못하고 같은 의자에 앉는다. 물론 둘의 거리는 멀다. 또한 선생님은 엄청 크고 바비는 무척 작다. 모르긴해도 선생님도 속으로 무척 불편할 것이다. 서로 어색하게 조금씩 말을 이어가지만 대화는 매끄럽지 못하고 뚝뚝 끊어진다. 이때까지도 선생님은 바비의 이야기에 대답을 할 뿐 대화를 이어갈 적극적인 자세는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바람에 모자가 날아가고 그것을 바비가 찾아오면서 분위기는 반전된다. 너무 기쁜 나머지 선생님이라는 체면도 잊고 기뻐서 방방 뛰었던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 선생님이 말을 아낀 것인 권위를 지켜야한다는 생각때문인 듯하다.

 

  그런데 함께 꽥꽥이 놀이를 하면서 둘 사이의 거리는 사라지고 드디어 선생님과 제자가 아닌 인간으로서 서로를 대하기 시작한다. 물론 이때부터 선생님의 모습이 조금씩 변한다. 바비가 자신의 비밀장소로 선생님을 안내하고 그곳에서 선생님은 바비에게 종이를 줌으로써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 이제 선생님은 초록색 몬스터가 아닌 예쁜 선생님으로 변했고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을 봐도 둘의 사이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사실 바비는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수업시간에 여전히 종이비행기를 날려서 아이들의 눈총을 받고 선생님한테 혼난다. 선생님 또한 변한 것이 없다. 여전히 발소리는 쿵쿵거리고 목소리는 쩌렁쩌렁하다. 그러나 정말 변한 것이 없을까. 겉으로 보기에는 변한 것이 없지만 그들의 내면에서 모종의 변화가 있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누군가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가도 막상 그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충분히 공감가고 이해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커비 선생님과 바비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 이래서 사람은 소통을 하며 살아야한다. 이해를 위해서 필요한 과정 내지 절차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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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균 쇠 (무선 제작)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사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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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의 사회, 과학, 문화, 예술분야를 선도하는 그룹은 단연 유럽이다. 클래식 음악이라고 하는 것들이 유럽의 음악가들이 남긴 산물이며, 방학만 되면 예술의 전당이나 국립중앙박물관 회화전에서 놓치지 않고 전시되는 것들이 우리가 흔히 명화라고 일컫는 유럽 화가의 작품들이다. 과학 시간에 배우는 것들의 대부분을 유럽 사람들이 발명하고 발견한 것들이며 수학 공식 또한 그렇다. 그런데 희안한 것은 인류의 문명이 시작된 곳은 유럽과 멀어도 너무 멀다는 점이다. 고대문명의 발상지에 해당하는 나라들은 지금 어떤 모습이던가. 그나마 근래 들어 중국이 체면유지를 하고 있을 뿐 나머지는 전쟁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도대체 유럽은 무엇 때문에 세계를 움직이는 거대한 지적 유산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일까 궁금하던 차에 만난 책이 바로 , , 였다. 다 읽은 후 저절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저자는 직접 발로 뛰며 오랫동안 연구한 결과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작가소개에서도 드러나듯이 사회학과 과학을 두루 섭렵했기에 독자가 쉽게 수긍할 수 있도록 근거를 들어가며 설명해준다. 문명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그러한 문명이 어떻게 다른 지역으로 전파될 수 있었는지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왜 지금처럼 지역적으로 차이가 발생하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유럽은 대륙을 가로지르는 큰 장애물이 없었기 때문에 종횡으로 전파될 수 있었기에 결과적으로 오늘날 세계를 선도하는 문화를 만들 수 있었던 것이지 그들이 특별히 뛰어나서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게다가 중국이 4대 발명품을 최초로 개발했으나 그동안 주도권을 쥐지 못한 이유가, 그들에게는 밖으로 눈을 돌릴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풍부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명쾌하다. 또한 인류가 농사를 짓기 시작하고 동물을 길들이는 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자연스럽게 진화와 연결된다. 간혹 맛없는 복숭아를 먹을 때마다 맛있는 무화과나무가 선택되는 과정이 생각난다. 언젠가는 이 복숭아나무도 맛있는 복숭아나무에 밀려 사라지겠지라는 생각과 함께.

 

  처음 책을 접하는 사람들은 두께에 놀라 선뜻 결심하지 못하지만 읽기 시작하면 의외로 속도가 빨라진다. 중간에 중언부언하는 느낌도 있지만 책을 덮을 때쯤에는 무언가 해 낸 것 같은 뿌듯함과 세계를 바라보는 눈이 한층 높아진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토록 칭찬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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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 2010년 전면개정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홍영남.이상임 옮김 / 을유문화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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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낙 유명한 책이기에 진작 사 놓고 읽으려고 했으나 내용이 너무 어려워 쌓아 놓기만 했던 책인데 이번 여름에 다시 시도해보니, 읽을 만하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아마도 그동안 과학 분야 책을 읽었던 것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싶다. 즉 독서력이 좀 좋아졌다고나 할까.

 

책에 대한 설명이 따로 필요없을 정도로 워낙 유명하고 많이 읽히고 리뷰도 많은 책이지만, 또한 이 분야의 리뷰는 되도록 쓰지 않지만(대개는 책 내용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자신할 수 없기 때문에) 이번은 그냥 넘어갈 수가 없다. 대개는 책을 다 읽으면 바로 다른 책을 읽는데 이번에는 그럴 수가 없다. 이 감동이 사라지기 전에 뭔가를 끄적거려야 할 것 같은 중압감에 결국 간략한 느낌이라도 적어야겠다.

 

이 책에 대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인간을 유전자가 살아남기 위한 생존 기계로 보았다는 점인데, 맣은 사람들이 그랬듯이 처음에는 그 정의에 살짝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책을 읽어나갈수록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갔다. 생물의 궁극적인 목적이 자손을 많이 퍼트리는 것이라는 점에 동의한다면 저자의 의견에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자손이라는 것이 결국 유전자의 집합체이므로. 극단적인 표현으로 생존 기계라는 말을 사용했을 뿐이지 의미면에서는 동일하다고 본다. 30주년 기념판 서문에서 '한 여학생이 이 책을 읽고 인생이 허무하고 목적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며 교사가 항의 편지를 보냈다는데 이 또한 처음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으나 책을 덮을 때쯤에는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갔다. 다만 나는 '허무주의적 염세관'에 물들지 않고 오히려 자연의 신비에, 그리고 결국은 유전자의 신기함에 놀랐을 뿐이다.

 

진화론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어떻게 진화했을까 의문을 가지고 있었던 게 사실이다. 처음 생명체가 생겨날 때는 하나의 원소에서 시작했는데 어떻게 전혀 다른 개체들이 생겨났는지, 또 언젠가는 하나의 개체가 다른 개체로 수렴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갖고 있었는데 그게 조금은 해결되었다. 원시 수프(이에 대한 설명이 이 책에는 나오지 않는데 <코스모스>를 전에 읽었기 때문에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만약 <코스모스>를 읽지 않았다면 제대로 설명하지 않았다고 어깃장을 놓았을지도 모르겠다.) 에서 생명체가 태어나고 그러한 것들이 서서히 진화하여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지만 위의 두 가지 의문에 대해서는 해결이 안 된 상태였으나 이제 이해가 간다.

 

우선 진화란 유전적인 변화, 즉 돌연변이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유전자는 자기 복제를 하면서 개체를 만들고 끊임없이 이어져내려오는데 돌연변이가 없다면 언제나 같은 모습일 게다. 만약 돌연변이가 안 좋은 상태로 되었다면 오래 살아남지 못했을 테니 긍정적인 돌연변이가 결국 개체를 진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병목형' 생활사에 대해 병목말과 가지말을 예로 들며 자세히 설명하는데 명쾌하다. '병목'이란 개체가 단일 세포인 수정란에서 시작하여 수많은 세포분열을 한 후 완성된 개체로 발전하고 최종적으로 수정란이라는 단일 세포를 다음 세대에 전해주는 것을 의미한다. 이와 같은 병목형 생활사에서는 전혀 새로운 제도판으로 돌아가서 어떠한 돌연변이로 인하여 진화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개체가 다른 개체로 수렴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보인다. 어차피 유전자는 자기 복제자이므로. 기껏 변해봐야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므로.

 

그렇다면 원시 수프에서 하나의 원소로 시작했는데 어떻게 지금처럼 수많은 종이 생겨날 수 있었을까가 의문으로 남는다. 여기에 대한 설명은 13장의 '숙주와 기생자'에서 설명하고 있다. 기생자 유전자와 숙주 유전자가 후손을 남기기 위한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같이 일한다면 어느 순간에는 두 개의 몸이 하나의 몸이 되도록 진화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애초에는 두 운반자가 존재했다는 것조차 알아낼 수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즉 '우리 같은 개체는 이러한 유전자들 여럿이 합쳐진 궁극적인 통합체(412쪽)'라고 설명하는데 그렇게 되면 위에서 제기한 첫 번째 의문이 해소된다. 물론 <코스모스>에서는 조금 다르게 설명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의 방대한 내용을 내 짧은 지식으로 정리할 수 없으므로 인상적이었던 부분만 적어보았다. 이 밖에도 죄수의 딜레마가 인간의 생활뿐만 아니라 동식물의 생활에도 적용된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읽으며 그동안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사실은 치열한 경쟁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는 생각에 조금 씁쓸해지기도 한다. 그러면서 인생이 허무하게 느껴졌다는 여학생의 이야기에 공감이 간다. 그러나 저자가 이야기하다시피 어차피 유전자는 스스로 목적을 가지고 행동할 정도로 영악한 것이 아니라 미리 프로그램된 대로 행동할 뿐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냥 자기가 가던 길을 가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동안 읽었던 이 분야의 책들이 실은 이 책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원래 과학이라는 학문이 선과 후가 명확한 경우가 꽤 있다고 들었다. 따라서 저자의 의견을 기반으로 이후 더 많은 연구가 활발했을 테고 그에 대한 책을 읽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러한 책을, 그리고 어설프게나마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던 책을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여름은 뿌듯하게 보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모든 세포는 똑같은 유전자를 품고 있다. 다만 다른 종류의 특수화된 세포마다 다른 유전자의 스위치가 켜질 뿐이다. -417-

만일 흡충의 유전자가 달팽이의 난자나 정자 속에 들어가 다음 세대로 전해진다고 하면 두 개의 몸은 하나의 몸이 되도록 진화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애초에는 두 운반자가 존재했다는 것조차 알아낼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 같은 `단일` 개체는 이러한 유전자들 여럿이 합쳐진 궁극적인 통합체다.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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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말하기 좋아하는 말 더듬이 입니다 - 2014년 뉴베리 아너 상 수상작 마음이 자라는 나무 6
빈스 바터 지음, 김선영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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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대충 짐작이 가는 동화다. 뭐, 말더듬는 아이가 처음에는 위축되고 자존감이 낮았다가 노력해서 극복한다는 이야기겠거니 짐작할 만하다. 그런데 작가 소개를 읽어보니 자전적인 이야기란다. 그러면 이때부터 관심이 조금 더 가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이런 종류의 이야기는 훈계조 내지는 교훈조로 흐를 가능성이 큰데 자전적인 이야기라면 그럴 가능성이 조금 줄기 때문이다. 즉, 처음부터 약간의 프리미엄을 안고 읽기 시작했다. 게다가 2014년 뉴베리 아너상을 받은 작품이라니 일단 작품성은 인정받은 셈이니 즐길 일만 남은 셈이다.

 

읽을 때는 몰랐는데 이 글을 쓰기 위해 주인공의 이름을 말하려다 보니, 생각이 안 난다. 그래서 찾아보니 '나'로만 나왔을 뿐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자신의 이야기를 타자기로 치고 있다니 자기 이름을 직접 거론할 일은 없을 테고 보모는 작은 신사라고 불렀으니 이름이 나올 이유가 없다. 그러고 보니 자신의 이름에는 발음하기 어려운 'ㅂ'이 두 번이나 나온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으로 보아 본명을 그대로 사용하는가 보다. 여하튼 바터는 그냥 보았을 때는 여느 아이들과 다를 바 없지만 입을 여는 순간 다르게 본다. 왜냐하면 심하게 말을 더듬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을 시켰는데 이처럼 심하게 더듬으면 계속 들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중간에 끊을 수도 없고 난감하긴 하겠다. 그런 사정을 알기에 바터는 더욱 신경을 쓰고, 그럴수록 말을 더욱 더듬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그래도 바터에게는 래트라는 친구가 있다. 말더듬는 것을 그대로 인정해 주고 이름을 바꿔 불러도 신경쓰지 않는 그런 친구다. 래트가 방학에 할아버지댁에 놀러가는 사이에 바터가 대신 신문배달을 해주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바터가 던진 강속구에 입술이 터진 래트에게 뭔가 해주고 싶어 대신 신문배달을 하게 된 것인데 이것이 결과적으로 바터에게 인생의 터닝 포인트가 된다.

 

말더듬는 증상 때문에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두려워하고 누군가와 이야기 나누는 것은 더더욱 싫어하던 바터가 신문을 배달하며 만나는 사람과 서서히 우정을 쌓아가는 이야기가 가슴 뭉클하게 다가온다. 특히 스피로 아저씨와의 만남은 바터에게 많은 영향을 준다. 집안 거실을 가득 메운 책을 보고 지적 갈증을 느끼게 해주었고 보다 깊이 사고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는 멘토가 된다. 워싱턴 부인은 이제 막 어린 티를 벗고 청소년으로 접어드는 시기에 뭔지 모를 감정을 느끼게 해주지만 결국 인간에 대한 연민을 넘어 누군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게 만든다. 신문 대금을 받으러 갈 때마다 TV만 쳐다보고 있어 TV보이라는 별명을 붙여준 폴이 사실은 청각장애인이라 독순술을 배우느라 그랬던 것이라는 걸 알게 되면서 겉으로 보이는 것만 봐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한다.

 

그렇다고 신문배달 하며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라티 아저씨 때문에 가정부 맘과 바터가 죽을 뻔한 일도 있었지만 그 또한 바터에게는 인생의 좋은 경험이 된다. 가정부는 백인 아이와 같이 있을 때 버스 앞자리에 앉을 수 있다던가 동물원에 갈 수 있다는 것으로 보아 이 글의 시대적 배경이 아직 인종차별이 법적으로 사라지지 않은 시기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그런 제도에 대해 살짝 의구심을 갖기 시작하지만 더 이상 나아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 책의 주제를 벗어나니까.

 

주인공은 말더듬는 것을 고치지는 못했지만 극복해서 신문 기자로 활동했고 지금은 지역신문사를 운영하고 있단다. 아마 신문 배달을 하며 겪었던 일이 현실을 인정하고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지 싶다. 그때 만났던 사람들이며 그때 경험했던 다양한 일들이 바터의 내면을 튼튼히 받쳐주었다는 것을, 신문 배달을 했던 4주가 지난 후 바터가 부쩍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데 책을 다 읽어도 제목과 맞지 않는 듯해서 원제를 보니 'Paperboy'다. 나중에 보니 표지에도 적혀 있다. 그제서야 내용과 제목이 맞춰지는 느낌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읽으면서 우리와 다르다는 생각을 했던 부분이 있다. 바로 바터의 현재 아버지가 친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대처하는 방식이다. 우리네 드라마나 동화에서 흔히 보이는 반응을 생각했는데 전혀 의외다. 아마 우리 동화 같았으면 그것이 하나의 큰 사건이 되어 방황하다 결국 화해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바터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전혀 방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현재의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며 고마워한다. 사건의 축에도 못 끼는 것을 보며 또 한번 문화차이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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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물감 2015-06-05 20: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느낌 좋은 글이네요. 읽어봐야겠어요

봄햇살 2015-08-17 10:55   좋아요 1 | URL
표지는 좀 촌스럽지만 내용은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