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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위 바위 보 ㅣ 익사이팅북스 (Exciting Books) 23
패트리샤 매클라클랜 지음, 김영진 옮김, 크빈트 부흐홀츠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내가 어렸을 때 동생이 하늘나라로 갔다. 그 시절엔 어린 아이가 죽는 일이 흔했을 것이다. 그래서 내 또래의 사람들은 기억도 나지 않는 형제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 꽤 있는 것으로 안다. 내 경우는 그래도 어렴풋이 기억이 나는 것으로 보아 아주 어리지는 않은 듯하다. 그러나 기억나는 것이라고는 엄마가 울자 앞집 아주머니가 오셔서 방에서 함께 있었던 것뿐이다. 동생과 함께 길을 걸어가고 돌계단에 앉아 있던 것이 기억나는데 이상하게 슬펐던 기억은 없다. 그 후로 우리집에서 그 아이의 일은 아주 가끔, 그것도 꽤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엄마가 이야기할 뿐이었다. 솔직히 난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이 책에서는 주인공 라킨네 가족이 잃어버린 동생에 대한 아픔을 그대로 봉합한 채 억지로 웃으며 살아가려고 하지만 결국 그것을 드러내서 풀어야만 진짜 해결된 것이라는 걸 보여준다. 라킨은 모든 것을 인지하고 기억하는 나이(열두 살이다.)라 그런지 얼굴도 보지 못한 동생의 죽음에 매우 슬퍼한다. 그래서 책을 읽으며 나와 비슷한 상황이었는데 어쩜 그리 나와 다른가 의아하기도 했고 내가 너무 냉정한 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러나 나이라는 변수도 큰 몫을 차지하리라 본다. 대여섯 살의 기억과 열두 살의 기억은 현저히 차이가 날 테니까. 어디 기억 뿐일까. 사물을 받아들이고 추론하는 능력도 확연히 다르니 기억과 느낌도 당연히 다를 것이다.
식구들이 단 하루만 머물고 떠난, 이름도 없는 아기를 그리워하는 방법은 각자 다르다. 엄마는 말없이 작업실에 틀어박혀 그림만 그리고 아빠는 일하고 돌아와서 탭댄스를 춘다. 그들을 말없이 바라보는 할머니는 선뜻 상처를 들추지 못한다. 그러나 가장 힘들어하는 건 라킨이다. 본인은 아기를 본 적도 없지만 그 보다는 아무도 라킨에게 어떻게 되었는지 왜 그랬는지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으니 그저 부모의 눈치만 살필 수밖에 없다. 아기를 잃은 슬픔에 빠져 있는 부모를 보며 자신은 버려졌다는 생각을 했겠지.
그러다 우연히 집 앞에 버려진, 아니 잠시 맡겨진 소피라는 아기를 돌보면서 금기였던 죽은 아기에 대한 문제를 해결한다. 물론 그 과정이 순탄하지 않았고, 그 과정을 보여주는 게 바로 이 책의 주된 줄거리다. 그리고 나중에 소피를 통해 그들이 아픔을 이겨내고 세상으로 나오는 모습은 감동적이다. 라킨과 할머니, 아빠는 만나자마자 헤어질 게 두려워 소피에게 정을 주지 않으려 하지만 어디 그게 이성으로 되는 일인가. 작은 섬에서 온통 관심의 대상이 된 소피를 세 사람만 피할 수는 없다. 아니, 더 사랑하면 사랑했지 결코 덜하지 않다. 소피를 엄마에게 행복하게 떠나보내고 십 년이 흐른 후에 소피가 섬으로 라킨의 가족을 만나러 온다. 할머니를 떠나보내기 위해. 그들은 처음에 누군가를 떠나보낼 때 다른 누군가를 맞이했는데 마지막도 마찬가지다. 그래서인지 정확하게 아귀가 맞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