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엔 무슨 영화를 볼까?(6월3주) <기간종료>


<아무도 모른다>의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또 하나의 가족 이야기, <걸어도 걸어도>.  대강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사랑과 원한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한 가정의 이야기. 15년 전 끔찍한 사고로 죽은 맏아들의 기일날 온 가족이 모이면서 그간 숨겨져 있던 비밀들의 실체가 드러난다. (네이버 펌)  



영화의 줄거리 소개는 마치 한편의 스릴러물 같지만, 사실 이 영화는 어떤 비밀을 밝히는 것에 주목하는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에서 주목하는 것은 '숨겨져 있던 어떤 비밀'이 아니라 가족이란 무엇인가, 그 가족은 무엇으로 구성되고, 어떻게 움직이며, 어떻게 유지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성실한 답이다. 이 영화는 오래 떨어져 살던 가족들의 1박 2일 동안의 만남이라는 짧은 시간을 다루고 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가족의 모습은 감독의 날카로운 시선으로 천천히 해체되어, 관객들 앞에 낱낱이 드러난다.   

- 예습이 필요해 -



따라서 이번 영화를 보기 위해 예습이 필요한 것은 고레에다 감독의 전작들, 그 전작들 중에서도 <디스턴스>다. 이 영화 <디스턴스>는 옴진리교 테러 사건의 가해자 가족들의 어떤 하룻밤을 다루고 있다. 이번 영화 <걸어도 걸어도>처럼 어떤 가족의 짧은 시간을 다룬다는 점은 유사하지만, 이 영화는 옴진리교 테러 사건이라는 거대한 폭력의 가해자의 가족이 주축을 이룬다는 점에서는 이 영화와는 어떤 대구를 이룬다. 이 영화는 2001년도 영화인데, 그동안 고레에다 감독이 가족을 보는 시선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살피는 것도 꽤나 흥미로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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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거핀 2009-06-22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로 쓰고 싶지 않은 글을 억지로 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떤 형식을 만들고, 그 형식에 맞추어 글을 쓰는 것.

앞으로 영화 추천 글은 이런 관련된 다른 어떤 것(영화가 될 수도 아닐 수도)을 같이 추천하는 형식으로 계속 써볼까 한다. 나름 재미도 있고.ㅋ
 
드래그 미 투 헬 - Drag Me to Hell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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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샘 레이미 감독들의 전작을 거의 못 봤다. 아마도 이 영화 <드래그 미 투 헬>을 보러 온 관객들 중에는 그의 유명한 전작들, 그러니까 <이블 데드> 시리즈라든가, <스파이더 맨> 시리즈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블 데드> 시리즈 때는 영화를, 더구나 그런 공포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았던 때라, 그리고 무엇보다도 꽤나 어릴 때라 보지 못했고, <스파이더 맨> 시리즈는 워낙 '~맨' 시리즈들을 좋아하지 않는 터라 보지 않았다. 그나마 본 것은 그가 기획에 참여한 <그루지> 시리즈지만, 그 때는 원작인 <주온>을 보고 받은 인상이 워낙 강렬하던 터라, 그 영화의 리메이크 작인 <그루지> 시리즈들을 씹기에 바빴을 뿐이다. 아..할리우드는 또 이 무서운 공포 영화를 이렇게 꼬아 비틀어 버리는구나..하고 말이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보니까 다시 조금은 알 것 같다. 샘 레이미와 <주온>은 엄청나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주온>을 비롯하여 한 때 유행했던 일본산 공포물들은 뭐랄까, 특유의 분위기가 있다. 그 분위기는 뭔가 어둡고 무거운 것과 맞닿아 있다. 예를 들어 주온에서 출몰하는 토시오를 비롯한 혼령들의 그 원한 같은 것들 말이다. 한 때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링> 시리즈라든가, <주온>이나 <검은 물밑에서>와 같은 시미즈 다카시, 나카다 히데오 등의 영화들을 보면, 살아있는 사람을 괴롭히고, 그들을 어딘가로 같이 데려가려 하는 혼령들은 대부분 어린 시절 학대를 받았거나, 주위의 따돌림을 받았거나, 학대를 받은, 사실은 불쌍한 영혼들이었다. 여기에는 유머는 없다. 단지 엄숙한 비장미와 감추고 싶은 비밀, 몸서리쳐지토록 슬픈 이야기들만이 남을 뿐이다.

그리고 아마도 공포영화의 계보도를 그린다면 그런 일본산 공포영화들과 상당히 먼 지점에 이 영화 <드래그 미 투 헬>은 위치하게 될 것 같다. 이 영화에는 묘한 밝음이 있다. 또한 상당한 유머가 있다. 물론 이 영화에도 일본산 공포영화들처럼 유령이나, 악귀가 나온다. 그러나 이 유령이나 악귀는 어딘지 모르게 밝다. 예를 들어 일본산 공포영화들의 악귀들이 아주 깜깜한 밤에, 엘리베이터 같이 폐쇄된 공간에서, 혹은 아주 깊은 오래된 우물 속에서 슬며시, 아주 조심스럽게 나타난다면, 이 영화의 악귀는 밝은 대낮에, 낄낄 웃어가면서 쩍 하고 나타나는 식이다. 물론 상당수의 할리우드 영화에서 공포물은 그다지 어둡지 않다. 예를 들어 그 유명한 <스크림> 시리즈도 사실 얼마나 은근히 밝고 코믹적인가. 아름다운 선남선녀들이 뛰노는 청춘물 같은 분위기에, 여전히 이곳저곳에서 패러디되고 있는 코믹한 대사들과 상황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우스꽝스러운 가면이라니. 그러나 이 영화는 또한 <스크림> 시리즈와도 다르다. <스크림>이 밝은 웃음이라면, 이 영화의 웃음들은 어딘지 모르게 자조적이고, 냉소적인 데가 있다. 아마도 그것이 어느 정도는 샘 레이미 본인을 반영한 것이겠지만. 

(미리니름이 시작됩니다)

이 자조적이고 냉소적인 유머들은 영화 곳곳에서 은근히 빛난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일단 첫번째, 이 여자 크리스틴(알리슨 로먼)이 혹염소 악귀(물론 여기서부터 유머다)에 시달리게 되는 이유부터 홀딱 깬다. 혹 일본산 공포영화였으면, 어린시절의 학대 혹은 주위의 왕따 같은 무거운 얘기들이 들어갔을 거다. 그러나 크리스틴이 노파에게 저주를 받게 되는 이유는 너무 현실적이라 픽 웃음이 난다. 바로 은행직원인 크리스틴이 노파의 대출 상환 기한 연장을 거부했던 것. 그후에도 이 현실성은 악귀에게 지옥으로 끌려들어간다는 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상황 속에서 계속 나타나며, 하나의 유머 코드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나중 크리스틴과 만나게 되는 영매는 예전 다른 영혼을 흑염소 악귀에게 빼앗긴 사연을 처음에 보여주며 나름 비장하게 등장하지만, 여기에도 여전히 만 달러라는 돈은 필요하다. 그러나 더욱 어처구니 없게도 꽤나 잘나가는 은행직원인 크리스틴은 그 만 달러도 구하지 못해, 전당포에 가재도구를 넘기며 받은 부족한 돈을 앞에 두고 눈물을 흘리며 아이스크림이나 꾸역꾸역 먹고 있다(전직 뚱녀였던 크리스틴은 스트레스를 먹을 것으로 극복해왔던 것). 아니, 지옥으로 끌려들어간다는데, 집을 팔아서라도 마련해야지, 지금 아이스크림이 넘어가니. 하.

(미리니름이 강해집니다)

유머는 계속되니, 영화의 처음에 '악귀에게 복수할거야'를 외치며, 비장하게 등장한 이 영매는 어처구니 없게도 허망하게 죽어버리고(그것도 일종의 심장마비인 듯 하다), 그 영매를 소개해준 심령술사는 기껏 한다는 소리가 "영매는 악귀에 대항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며, 사실은 그 저주받은 물건을 다른사람 주면 되는 방법이 있었노라고 뒤늦게야 고백한다.(하..고객 데리고 장난하니?) 옳거니, 그럼 되었구나, 그 물건을 알코올 중독에 빠진 어머니 드리면 되겠구나, 하고 생각한 것은 내가 <링>에 너무 빠진 까닭. 다시한번 말하지만, 이 영화는 일본산 공포물이 아니고, 그런 윤리적인 문제를 슬며시 제기할 만한 심각한 영화가 아니다. 이건 그냥 샘 레이미의 유머 공포물이다. 물론 이후에도 이 유머는 여전히 계속되니, 공동묘지에서 하필이면 십자가에 머리를 맞고, 물속에 빠져들어가는 크리스틴의 모습은 아마도 그 정점이라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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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나는 이 영화를 까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영화의 스토리가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거나, 무섭지는 않고 웃기기만 하더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것이 샘 레이미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아주 약한 공포와 아주 약한 유머, 그리고 그 이후에 약간은 센 공포와 조금은 더 센 유머, 그리고 마지막에는 커다란 공포와 그 이후에 터지는 허탈한 유머를 적절히 배합하는 것이 샘 레이미의 작전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이 작전은 어느정도 꽤 들어맞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이것이 <씨네 21>에서도 지적했던 이 영화의 리듬, 그 리듬의 훌륭함인지도 모른다. 관객을 쥐었다가 놨다가, 다시 조금 쥐었다가, 놨다가 하는 것, 그리고 여기에 소리와 장면전환으로 리듬을 부여하는 것 말이다.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샘 레이미의 소리를 활용하는 방식은 상당히 고전적이다. 그리고 많은 관객들이 사실 영화를 보고 나온 뒤에 "뭐야 괜히 소리로 놀래키기나 하고, 소리없으면 하나도 안 무섭겠네."라고 푸념하는 것은 소리를 그만큼 적절하게 사용했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그래서 이 영화는 은근히 재미있다. 그리고 꽤나 무섭고, 꽤나 웃기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일본산 공포영화들처럼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기분이 찜찜하다거나 이상야릇하거나, 무겁게 만들지 않고(사실 나는 이것도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한다. 하.), 그저 사우나에서 땀 뺀 기분으로 상쾌하게 나올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이 영화의 매력이 아닐는지 모르겠다. 



p.s.
며칠 전에 홍상수의 신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에 대해 이야기하며 남자의 찌질함에 대해 썼었는데, 거기에 하나의 경우를 추가해야 할 듯하다. 바로 남자 둘이서 공포영화 보면서 조잘조잘 떠드는 것. 내 옆자리에 한 칸 띄어 앉았던 어떤 두 녀석 이야기다. 나는 니들이 왜 떠드는지 잘 알지. 입 꼭 다물고 보면 너무 무서워서잖아. 물론 혼자서 보러오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일 테고.
그런데 나가면서 "별로 무섭지도 않네."하고 허세는 왜 부리실까. 에라 이넘들아. 아까 영화관에서 니들이 양 주먹 꼭 쥐고, 팔걸이 움켜쥐는 팔에 힘줄 나오는 거 다 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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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그 미 투 헬 - Drag Me to H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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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지의 선택을 강요하던 화장실 귀신 이후로, 이렇게 웃기게 무서운 얘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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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자기보다 못한(다고 믿는) 사람들을 보는 것은 너무 재미있다. 그러나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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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 - Like You Know It 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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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리니름이 될 만한 내용이 있습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 말에는 명백하게도 그 뒷부분이 숨어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왜 아는 척을 하세요?) 그래서 이 말은 영화 속 고순(고현정)의 대사와 사실은 같은 의미라고 봐야할 것이다.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하세요, 라고 했던 그 대사 말이다.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한다....간단하고 당연한 말 같지만, 어떻게 보면 매우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무엇보다도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하려면, 우리 자신이 어느만큼 아는지를 본인이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 자신이 어떤 것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다고 판단하는 문제는 매우 어려운 문제에 속한다. 그것은 아주 간단한 것에서부터, 매우 복잡한 것에 이르기까지, 상당히 판단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그래서 대체로 우리는 자주 자신이 잘 모르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거나, 혹은 그 반대로 잘 아는 것들이라도 말하기를 주저하게 된다.

우리 자신의 어떤 것에 대한 판단은 대체로 과거의 경험에서 얻은 기준에 따르게 된다. 어떤 새로운 것, 혹은 새로운 상황이 나타났을 때, 과거 그와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 때 이렇게 말한다. "아! 나, 저거 알아, 저거 본 적 있어." 그것은 간단한 문제에서부터, 아주 복잡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어떤 사람이나 어떤 상황들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적용된다. 즉 이는 어느 정도 필연적으로 반복의 형태를 띠게 된다. 과거의 어떤 상황에서 어떤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다음의 비슷한 상황에서도 비슷한 방식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비슷하다'라는 것에 있다. 즉 비슷한 것이지, 같은 상황이 아니라는 점이다. 같은 상황이란 실험실이 아닌, 실제의 경우에서는 거의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체로 이 반복은 차이를 불러 일으킨다. 예전의 어떤 것과 비슷하기는 하나, 같지는 않은 상황. 이 상황에서 과거 행동의 반복은 성공할 때도 있으나, 실패할 때도 많다. 그래서 실패했을 때 우리는 그렇게 말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나서기는 왜 나서.

그래서 이 홍상수 감독의 신작, <잘 알지도 못하면서>의 주제,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하세요'는 그간 감독의 전작들이 가진 공통의 형식적 특징, '반복과 차이'를 다시 생각나게 한다. 즉 주인공에게 어떤 상황을 반복해서 만나게 하며, 그 반복된 상황에서 주인공이 벌이는 비슷한, 그러나 또 약간은 다른 행동을 살펴보면서, 소위 '인간성'을 탐구하는 것 말이다. 그것은 이 영화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마찬가지이다. 이 영화는 전작 <극장전>이나 <생활의 발견>과 유사하게, 거의 같은 형태로 반복되는 1, 2부로 나뉘어진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전작들에서 그래왔던 것처럼 주인공은 유사한 상황에서 유사한 사태와 유사한 사람에 직면하며, 비슷한 패턴으로, 그러나 또 동시에 약간은 다른 패턴으로 행동한다. 즉 이 영화의 주제의식은 주인공이나 주변인물들의 대사를 통해, 그리고 그와 동시에 이 영화의 형식을 통해 말해진다.

그런데 상당히 재미있었던 것은 이 영화는 왠지 주인공들에게만 이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하세요'를 요구하는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우리 관객들에게도 '너는 어느 정도나 알고 있지? 사실 니가 아는 것은 별로 없어. 그러니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 하지마.'라고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영화의 상당수의 사건들이 상당히 묘하게 처리되어 있다. 예를 들어, 대표적인 사건인 주인공 구경남(김태우)이 제천에서 후배 부부 부상용(공형진)과 유신(정유미)를 만나게 되는 이야기만 해도 그러하다. 과연, 구경남은 왜 부상용에게 그렇게 인간 쓰레기 대접을 받으며, 거기서 도망쳐야 했을까. 과연 어떠한 사건이 일어났길래 말이다. 이는 비단 이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또다른 경우, 예를 들어 제천에서 공현희(엄지원)가 자신이 강간을 당했다며, 구경남에게 화를 내는 장면. 과연 실제로 이 사건은 일어난 것일까. 그렇게 믿을 수도 있지만, 어떤 의미에서 보면 이도 의심스럽다. 더구나 공현희 자신도 본인이 술에 매우 취했었다며,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이런 일은 이 영화에서 비일비재하다. 또다른 경우로 구경남은 아침에 여배우가 흥행감독의 방에서 나오는 것을 보며, 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하지만, 그것이 구경남이 생각하는 그런 일일까.

이 영화에는 이러한 이른바 '모호한 상황과 모호한 사건들'이 가득차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상황을 구경하는 남자인 구경남은, 아니 우리는, 계속적으로 어떠한 판단을 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이 판단은 따라서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귀결된다. 과연 당신은 어느만큼 알고 있는 것일까. 따라서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내가 이 영화의 주제의식이 '아는 만큼만 안다고 하세요'라고 말하는 것에는 필연적으로 다음의 말이 뒤따를 것이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해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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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지도 못하면서 몇 마디 한 김에, 한 마디 더 해야겠다. 이번에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라는 말의 숨겨진 뒷부분인 (왜 아는 척을 하세요?)에 살짝 주목해서 말이다.

홍상수의 영화에는 늘상 그렇듯이 '찌질남'이 등장한다. 물론 '찌질녀'도 나온다. 그러나 대체로 이 '찌질남'들의 포쓰가 워낙 강하기 때문에 '찌질녀'들은 묻히는 경우가 많다. 이 찌질남들은 왜 이렇게도 찌질해 보이는 걸까. 글쎄. 내 생각에는 그 포인트가 이 '아는 척'에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 '척'에 있다. 사람이 가장 찌질해 보일 때는 언제일까. 그것은 아마도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으면서 무언가 '척'을 하고자 할 때, 그러나 이 '척'이 너무 낮은 수준이어서 그 의도가 빤히 보일 때일 것이다. 이 '척'은 '아는 척'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센 척, 고상한 척, 깨끗한 척, 배려심 많은 척, 여자 안 밝히는 척, 모르는 척, 안 졸리는 척, 재미있는 척....여기 영화를 통한 몇 개의 경우를 보자.

[경우 1] 센 척

제주에서 선배(유준상)의 학생들과 만난 구경남은 술자리를 같이 하게 된다. 이 때 학생 하나가 다가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자, 구경남은 자유가 어떻고 하는 시답잖은 말을 늘어놓는다. 그러자 이 학생은 그에게 팔씨름을 청하는 것으로 소심한 복수를 한다(센 척).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구경남이 양천수에게도 나중에 이 팔씨름을 청하는 것을 그대로 써먹는다는 점이다. 양천수에게 거부당하자, 이번에는 양천수의 성 기능을 운운하는 것으로 그를 당황하게 만들려 한다. 물리적인 힘으로 경쟁하고자 하는 시도가 실패하자, 그를 다른 방식의 힘으로 제압하려는 시도가 드러나는 재미있는 장면.

[경우 2] 고상한 척 또는 여자 안 밝히는 척

제주에서 만난 구경남의 선배(유준상)는 밤의 술자리에서 여학생과 양천수와의 어떤 불확실한 관계가 일어난(났다고 추측되는) 다음날, 구경남에게 전화로 그 여학생의 험담을 늘어놓는다. 이는 그 여학생의 평소의 부도덕한 행실을 말하며 선배를 걱정하는 방식이지만, 아마도 이의 내면에는 자신은 왜 그 여학생의 상대가 되지 못했는가에 대한 분노가 더 크게 숨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구경남은 선배에게 욕을 하는 것으로 대응하지만, 사실 이에도 구경남 역시 그 여학생과 어떤 관계를 가지지 못함에 대한 분노가 작용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사실 구경남이 그 전날 술자리에서 떠나온 방식은 그 전 제천의 술자리에서 흥행감독이 사용한 방식과 거의 유사하기 때문이다. ("먼저 잘께.")

[경우 3] 깨끗한 척

제주에서 조씨(하정우)는 구경남과 고순의 관계를 적발한 후, 양천수에게 전화로 울면서 말한다. 더럽습니다, 억울합니다...글쎄. 더러운 건 그렇다치고, 억울하다는 것은 도대체 뭐가 억울하다는 것일까. 어떻게 보면 이는 예술계의 위대한 선배에 대한 애정심의 일부로 보이기도 하나, 아마도 그보다는 조씨의 욕망과 관계된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조씨는 아마도 고순에 대한 어떤 욕정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은 선배에 대한 존경심 혹은 권위에 짓눌려 지금까지 참아왔는데, 고순은 저렇게 처음 만난 남자와도 자는 그런 여자였다니(조씨는 구경남과 고순의 예전의 관계를 모르므로). 지금까지 괜히 참고 살아왔지 않은가...나도 한 번 자달라고 할 것을, 그깟 선배가 뭐라고. 혹 이런 억울함은 아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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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가. 위의 3 경우 모두 참 찌질하지 않은가. 그러니 실제로 세지도, 고상하지도, 여자를 안 밝히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면서 '척' 하지 말자. 그게 조금이나마 덜 찌질해 보이는 길이다. (왜 '덜' 찌질해 보이는 거냐고? 아예 찌질하지 않는 법은 없냐고? 어차피 세지도, 고상하지도, 여자를 안 밝히지도, 깨끗하지도 않으면 가만히 있어도 찌질해 보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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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6-10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정우가 '억울합니다'라고 울먹이는 장면이 너무 웃기더라구요.
하여튼 홍상수 영화 속 그 찌질함과 능청스러움이란 참..ㅎㅎ
비슷비슷한 구조와 인물과 대사로 그럼에도 계속 나아가고 있는 것도
참 신기해요.

맥거핀 2009-06-10 22:53   좋아요 0 | URL
음..그렇죠? 사실 맨날 홍상수는 똑같은 얘기 하고 있는데
볼 때마다 꽤나 빵빵 터져요. 요즘에는 더 그렇구요.
늘 영화를 보면서 감독이 과연 어떤 사람일까 매번 궁금해하고는 하는데,
홍상수는 그 궁금증의 정점에 있어요.
홍상수의 영화는 자기반영적일까요.
하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말하면 안되겠죠.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