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다라의 돼지
나카지마 라모 지음, 한희선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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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만한 영어문법서보다 두꺼운 책이지만 읽고 싶었다.

도착했을때 그 두께를 보고 "바퀴벌레 50마리쯤은 때려잡아도 한 방"이라고 생각할만큼 튼튼한 책의 모양에 놀라긴 했지만.

 

팔 년전 아프리카에서 딸을 잃은 민족학자 오우베.

 

이 한 줄이 시작점이었다. 오우베는 딸을 잃었다. 일본인들에게 자식이란 어떤 의미일까. 우리는 흔히 자식에 대한 애증을 말할때 엄마를 떠올린다. 많은 소설의 소재가 된만큼 [애자],[마더],[엄마를 부탁해]등등에서도 그 일맥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요즘 읽게 되는 일본 추리소설 속에서는 "부정"이 많이 발견된다. 얼마전에 읽었던 통곡도 아이를 잃은 아버지가 딸을 되살리기 위해 벌이는 연쇄 유아 살인이 소재였다. 그리고 이번에도 딸을 잃은 아버지가 나온다.

 

그는 마을 사람 전원이 주술사인 쿠미나타투 마을에서 "바나나 키시투"를 훔친다. 하지만 대주술사 바키리의 저주를 받고 쫓기게 된다.

 

이 줄거리만으로는 매력점을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단 책장을 넘기기 시작하면 거짓말처럼 이 방대한 양들이 물밀듯이 밀려들어와 읽기를 멈출 수 없다. 마치 홍수 속에 버려진 한 인간의 나약함을 체험하듯 말이다.

 

47회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장편장 수상작이 될만하다. 하지만 그보다 더 기이한 점은 작가의 이력이었다. 이런 캐릭터가 소설에 등장한다고해도 하나도 이상하지 않을만큼 그는 평범하지 않았다. IQ 185. 너무 넘치는 가능성 때문인지 그는 정상적으로 삶을 살지도 행복하게 삶을 영위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의 이런 기이성이 [가다라의 돼지]나 [감옥에서 하는 다이어트]등을 쓰게 만들었을까.

 

감옥에 갇히고, 알코올성 간염에, 마약, 종국에는 예언대로 계단에서 떨어져 죽은 마지막까지 그는 기이한 인간이었다. 김유신의 머리일까를 읽은 다음이라 그 재미는 다소 반감된 듯 하지만 이 작품을 단독으로 하나만 읽었다면 분명 많은 감탄사를 내뱉으며 서평을 남겼을지도 모르겠다.

 

작품보다 작가의 삶에 더 궁금증을 느끼게 된 것은 처음이 아닐까 싶어졌다. 독특한 그의 작품을 읽으며 작가의 삶을 더 파헤쳐보고 싶은 충동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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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곡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8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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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쿠이 도쿠로의 작품은 [프리즘]이 첫단추였다.

이어 이번달에 [우행록]을 읽으면서 탄력이 붙기 시작했고 [통곡]을 세번째로 읽었다. 세 권 정도 읽으니 그가 어떤 식으로 쓰는 작가인지 어렴풋이 알 듯 하다.

 

책을 여러권 읽다보면 좋은 책을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 같다. 물론 나와 코드가 맞는 책을 찾아내는 능력에 포함된 양서고르기 능력을 뜻한다. 비슷하면서 다른 이야기이지만 한 작가의 작품을 꾸준히 읽다보면 해당작가의 글쓰는 패턴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신기하게도 그렇다.

 

마치 외국어에 미쳐 한 6개월쯤 공부하다보면 어느날 귀가 트이는 것처럼 책읽기도 그렇다. 누쿠이 도쿠로의 장편소설을 3권쯤 읽다보니 작가의 글쓰는 패턴이 보이는 것 같다. 그리고 그가 잡은 소재나 그가 주류로 다루고 있는 이야기의 맥 등 누쿠이 도쿠로 라는 작가를 누군가에게 소개할 때 말할 수 있는 특징이 몇가닥 잡혀 온다.

 

이야기보다 그 점들이 더 재미있어지기 시작했다. 68년생인 누쿠이 도쿠로는 와세다 상학부 출신이다. 그런 그가 추리소설에 매료되어 미스터리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만든 작품은 시마다 소지의 [점성술 살인사건]이라고 했다.

 

또 누군가가 세상 어디에서 누쿠이 도쿠로의 소설로 인해 소설가를 꿈꾸게 될지도 모르겠다. 펜의 힘은 이렇듯 운명도 바꿀 수 있는 것임을 작가의 변을 통해 알게 된다. 그의 소설 [통곡]은 트릭을 평행선 상에 숨겨 놓았다. 드러나 있는 반전이지만 소설을 끝까지 읽어야만 퍼즐이 다 꿰맞춰진다.

 

읽고 나서 소름 돋을만큼 섬뜩해진다거나 인간이 무서워진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책을 덮고나서 이 소설의 제목이 [통곡]이었다는 사실이 다시 떠올려지면 마음 한 구석이 쓸쓸하고 무거워진다. 한 인간의 슬픔은 타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의 통곡 내지는 절규 같은 것이 가슴 밑바닥에 남아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연속되는 유아 유괴 살인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범인의 동기가 밝혀지면서 그만 입을 다물어 버리게 만드는 소설의 진실은 차라리 거짓을 믿고 싶을만큼 잔인하게 느껴진다. 슬픔에 빠져 타인의 불행에 눈감은 사람이 더 나쁠까, 그렇지 않으면 슬픔에 빠진 인간을 이용해 먹는 종교지도자가 더 나쁠까.

 

판단은 독자의 몫이겠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할 수 없게만드는 소재가 바로 이 책에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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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간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이규원 옮김 / 북스피어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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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난다. 끝에서 끝으로 가는 여행이라 여행이 길다. 
종착역에 이르기까지 자그마한  간이역에 자꾸만 멈춰선다. 창밖으로 보이는 소소한 풍경구경이 점차 재미있어진다. 재미가 붙어갈 무렵 기차 안에서도 내렸다 올랐다 인사하며 지나치는 승객들도 있지만 꽤 오랫동안 함께 타고가는 승객들의 얼굴이 눈에 익어가는 것이 느껴진다. 

이런 여행을 떠난 것 같은 느낌으로 읽혀지는 책이 바로 미야베 미유키의 [얼간이]다. 

얼간이. 나는 이 제목에 동의할 수 없다. 소설 속 "밝히는 자"격인 헤이시로를 향한 이 단어는 그를 지칭하는 적당한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는 얼간이가 아니다. 그저 느린 사람일뿐이다. 생각보다 날카로우며, 통찰력이 있고, 감정적으로 쉽게 판단하지 않는다. 스스로는 인정하지 않겠지만 그는 리더로서의 능력이 갖춰진 인물이다. 

4번째 아들로 태어났으나 아비의 당주자리를 물려받아 남부 마치부교쇼에 소속된 도신으로 조용히 살아가고 있는 하급무사 헤이시로. 사람의 목숨을 간단히 빼앗을 수 있는 시기인 에도 시대를 살면서도 그의 일상은 평화롭다. 그러던 어느날 "나가야"에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김전일이라도 있었다면 범인은 이 안에 있다~!!며 일동 정지를 외쳤겠지만 자신의 결혼을 위해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안락사 시키고자했던 오빠 다스케를 여동생 오쓰유가 우발적으로 살인한 것이 공공연한 비밀이 된 채 사건은 무마된다. 이 과정에서 나이 60줄이던 "나가야"의 관리인 규베가 사라지는 일 정도가 센세이션이 되었달까. 

그리고 새로 온 관리인은 새파랗게 젊은 스물 일곱의 가키치. 주인인 소에몬의 먼 친척이라는 이 젊은이는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왠지 "나가야"의 주민들은 자꾸만 이사를 나가게 되고, 이 자연스럽지 못한 일들을 파헤치고 파헤쳐보니 꽤 여러사람들이 얽혀 있음이 발견된다. 조용히 꾸준히 그러나 냉철하게 모든 것을 조사하는 헤이시로. 

베일에 쌓인 인물인 미나토야 소에몬 일가의 비밀이 밝혀지는 순간 모든 내막이 드러나고 사건과 인물이 집결되지만 그렇다고해서 극단적인 일들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저 물 흐르듯이, 헤이시로의 성격마냥 진행될 뿐이다. 

얼간이는 생각보다 따듯한 느낌이 전달되는 소설이었다. 아이가 없는 헤이시로가 양자 1순위인 친척의 아이 유미노스케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사건에 얽힌 사람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한 까닭이 아닐까 싶어진다. 나쁜 일들이 일어나지만 결코 나쁜 사람을 남기지 않는 소설. 특이하게도 이 소설을 쓴 작가가 미미여사라는 점이다. 그녀는 사회성 짙은 고발성 소설을 써왔다. 우리에게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며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무서운 존재이며 타인에 대한 원한 없이도 해를 입힐 수 있는 "폭발성이 잠재된 인간"들에 대해 소설로 경고해 온 작가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가 사건보다는 사람을 이해하도록 유도하는 따뜻한 필체의 소설을 써내고 있었다. 놀라울 따름이다. 마치 송지나 작가가 로맨스소설을 쓴 것 같은 아이러니랄까. 

하지만 역시 미야베 미유키답다. 단번에 마음을 사로잡는다. 

죽은 사람은 산 사람에게 결코 해를 끼치지 않는다

는 소설 속 대사는 작가가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또한 

살아도 세상에 보탬이 안 되는 사람과 차라리 죽는 게 보탬이 되는 사람 중에 어느 쪽이 더 많을 것 같으냐?

라는 질문은 화두로 남는다. 고요 속 날카로움이 숨겨져 있다. 이런 면에서 역시 이 소설은 미미여사답다. 다른 듯 해도 역시 그녀의 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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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행록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2
누쿠이 도쿠로 지음, 이기웅 옮김 / 비채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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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은 결코 하나가 아니었다.

단 한 줄로 이루어지는 반전이 글의 전반을 뒤엎을 수 있다면 그 글은 충격을 던져주고도 남을 법한 이야기일 것이다.

 

누쿠이 도쿠로의 [프리즘]을 읽으면서 사실 작가의 명성은 약간 과장된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었다. 책이 주는 재미는 쏠쏠했지만 극찬할 정도의 그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쓰여진 요코미조 세이시의 작품들이 훨씬 더 감질맛을 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우행록]을 읽으면서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 있었다.

 

단 하나의 이야기였지만 진실은 여러갈래로 우리를 헷갈리게 만들었다.

 

결국 모두가 진실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도 우리는 정답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라쇼몽]이라는 옛날 영화는 하나의 사건을 두고 여러명이 각자의 진실을 말하고 있었다면 [우행록]은 하나의 사건에 얽힌 두 남녀를 두고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들의 평가가 진실이라는 사실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누군가를 바라보는 시선이 진실이어도 굴절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가 선한가 아닌가를 떠나 내가 그를 어떤 시선으로 보고 있느냐에 따라 상대방이 선한 사람으로도 악한 사람으로도 변할 수 있다는 사실. 그 사실이 소설의 프리즘화 되어 각인될 수 있다는 사실은 작가가 가진 또 하나의 훌륭한 소설적 장치로 쓰여졌다.

 

침입자에 의해 부유한 주택가에 살고 있던 한 젊은 부부와 그의 아이들이 몰살되는 이야기가 사건의 처음이자 끝인 간단한 이야기였지만 범인을 색출하기 위한 주변인들의 인터뷰를 들으면서 시선은 범인이 아닌 부부에게로 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 우리는 범인을 잊어버리게 된다. 범인을 알아내는 일은 더이상 중요한 일이 아닌 것이다. 누가 죽였을까에서 왜 죽었을까로, 왜 죽었을까에서 죽어마땅한가로 변화되는 독자의 시선들.

 

중간중간에 누군가가 자신의 오빠에게 보내는 진실은 이야기를 방해하지 않고 작품 속 또다른 이야기가 되어 이어진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는 고백이 되어 남는다. 그 고백속에서 우리는 반전 2가지를 발견하게 되는데, 둘 다 상상하지 못할만큼의 놀라운 것이라 작가의 치밀함에 치를 떨게 된다.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는 반전이 아니었다. 수사일지처럼 보이던 인터뷰의 본질을 깨닫는 순간, 그리고 고백 속의 그녀가 아이의 출생비밀을 밝히는 순간 나는 책을 탁 떨어뜨려 버렸다. 익살스머프의 익살 상자를 열었을때처럼 놀라움이 번져나가면서 나는 이 책이 미야베 미유키식의 사회 고발적내용과 요코미조 세이시의 추리적 서사형식이 합쳐진 재미를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앞으로 더 재미난 책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만큼 놀라움을 가져다준 책을 쉽게 만날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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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스호퍼
이사카 고타로 지음, 오유리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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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고타로의 상상력은 이상하다. 언제나 그랬다.

 

상상력....이라고 하면 흔히 판타지나 sf적인 것들을 생각하기 쉽지만 그의 상상은 다른 곳으로 뻗친다. 그래서 감탄하면서도 농락당하는 느낌이 든다. 이 근사한 생각을 왜 나는 쉽게 해내지 못했지?라는....

 

그는 저 멀리 별같은 천재성을 뿜어내는 작가가 아니라 우리 옆에 나란히 서서 다르게 빛나는 존재처럼 재능을 뿜어낸다. 그의 작품을 읽을때마다 나는 내 자신이 살리에르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의 작품은 그정도로 독특하다.

 

[사신치바]를 재미있게 읽으면서 나는 작가의 작품들에 탐닉되기 시작했다.그래서 [그래스 호퍼]를 발견했을 땐 슬며시 웃음 지어졌다. 작가만의 독특한 비틀림을 구경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으로....

 

[그래스 호퍼]. 다소 낯설고 딱딱한 이 제목으로 이사카 고타로만의 세상보기가 시작된다. 킬러들의 세상을 보여주면서 그가 말하고자 했던 말들을 세상에 쏟아놓는다. 댐에서 물이 터져나오듯...

 

- 이 세상은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뉘지 않아.(룰을 정하는 건 높으신 양반들이지)

 

- 누군가 책임을 지고 자살하는 방법은 나름 효과가 있다

 

- 의심많고 소심한 자는 제 속 편하려고 끊임없이 수를 쓴다

 

- 상대할 가치도 없는 해충

 

라는 생각은 우리도 할 수 있지만 쉽게 내뱉진 못하는 말들일 것이다. 자신의 의견을 피력한다는 것, 언제나 빠져나갈 양쪽의 길을 확보하고 사는 우리들에겐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작가의 용감함은 엉뚱함이 되기도 한다.

 

작품 속엔 여러명의 등장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아내를 죽인 남자를 쫓기 위해 그의 회사에 위장잠입하는 전직 수학선생, 15년째 사람들이 자살하도록 유도하는 자살유도 킬러로 살아온 구지라, 일가족 몰살이 특기인 꽃미남 킬러, 세미, 밀치기 전공인 아사가오 등등 각자의 삶을 살아가는 듯 보이던 그들이 페이지의 진행 속도에 맞추어 퍼즐 맞추듯 짜맞추어지는 스토리 전개에도 혀를 내두를만 하지만 자신의 개성을 잃지 않은 채 조화되는 맛 또한 대단하다.

 

그래스호퍼는 마치 비빔밥 같았다. 각자의 고유한 맛은 그대로 살리면서도 합쳐짐으로써 조화된 맛 또한 보장되는...

 

이 작품 역시 이사카 고타로 다웠다. 히가시노 게이고와 이사카 고타로의 책은 어떤 책이든 작가의 이름이 브랜드 네이밍이 되고 있다. 두터운 신뢰만큼 작품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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