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소설 - 상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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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은 친구를 마중나온 기분으로 [본격소설]에 빠져들었다.
 
일본판 [폭풍의 언덕]이라는 설명을 굳이 보지 않았어도 읽게 되었을 이 책은 히스클리프 같은 남자 주인공을 바라고 시작한 소설이 아니었다. 본격소설이라는 다소 엉뚱한 제목이 붙었다는 생각은 다 읽고 나서도 접지 못한 채 오랜만에 선 굵은 문학작품을 읽은 담백한 기분으로 2권 모두 읽기를 마쳤다. 단 반나절 사이에 두 집안과 그 사이에 얽힌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읽어버린 것은 어쩌면 미안한 일인지도 모르는 일일테지만.


농촌의 순수를 잃고 콘크리트의 나라가 되어버린 일본에 실망감을 느꼈다는 저자 미즈무라 미나에. 그녀의 생각은 남자 주인공 아즈마 다로에 고스란히 입혀져 작품 곳곳에서 그의 대사로 내뱉어진다. 다소 냉소적이고 과묵하지만 후미코에게만은 정직하게.

시작의 대부분은 이 이야기가 미즈무라 미나에 자신이 들은 이야기이며 주인공인 아즈마 다로를 보았던 어린 시절, 저자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아 마치 진실을 모티브로 한 것처럼 꾸며놓았다. 정말 저자의 말처럼 연인의 이야기가 진실인지 아니면 이것조차 작가의 트릭인지는 알 수 없지만 상당부분 이야기가 시작되지 않고 자신이 바라본 미국과 일본, 그리고 그맘때의 사람들에 섞인 아즈마 다로에 대한 이야기는 결코 지루하지 않았다. 또한 다시 아즈마 다로를 떠올리게 만들 유스케와의 만남 뒤엔 유스케가 일본에서 우연히 듣게 된 성공한 이 남자의 과거사로 이야기를 옮겨간다. 하지만 그 모든 이야기를 바라보는 화자는 가정부 후미코다. 

후미코의 시각이 가장 객관적이면서 따뜻해서였을까. 누가 화자가 가에 따라 이야기는 추할 수도, 탐미적이 될 수도, 가난한 누군가의 성공기로만 남을 수도 있었을 일이기에 후미코는 결코 가볍게 이해되어서는 안되는 인물 중 하나다. 

시게미쓰가와 사이구사가, 그리고 하인 아즈마 가 사이에 얽힌 세월의 애증은 소설 두 권 속에서 일본의 근대화와 함께 맞물려 변화되고 있었다. 괴롭힘과 질투, 시기와 무시함의 관계가 표면화되고 인간보다는 계급의 문화가 일반시 되던 시절을 벗어났지만 여전히 부림의 혜택을 유지하며 살아온 노파3인방. 그 중 큰 언니인 하루에의 밉살스러움은 결국 세월도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소설을 읽으면서 이제껏 이토록 밉살스러운 노인네를 만나본 적이 없다. 

미나에의 기억속 아즈마 다로는 어딘가 필사적인 스무살 청년이었다. 영어를 배우려고 필사적이었던 그가 어느새 회사 제 1의 세일즈맨이 되고 종국엔 회사의 부당한 계약갱신조항 때문에 타 회사로 스카웃 되어 성공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녀의 기억속 남자는 언제나 스무살 청년 아즈마 다로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에겐 다른 다로의 모습을 엿볼 기회가 주어졌다. 유스케가 별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48세의 성공한 아즈마 다로부터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학대받는 소년 아즈마 다로에 이르기까지 [본격소설]은 완벽한 고전의 틀 안에서 인물의 일대기를 묘하게 비틀어 보여주고 있다. 

영감을 준 사람. 
소설을 쓰기전 사연이 소설의 분량만큼이나 길었떤 소설. 본격소설.
"정말 있었던 이야기"를 꾸며낸 이야기처럼 썼다는 작가에게 아즈마 다로는 영감을 준 사람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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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경찰의 밤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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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여섯 편의 연작 소설을 읽으며 잠시 생각했다. 
내가 하고 있는 운전이란 과연 어떤 것인가. 를.

운전이 익숙해지면서 언젠가부터는 자연스러워졌다. 그 사실이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 채 운전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긴장상태를 유지하면서 나는 물론 타인의 운전까지 신경써야지만 안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교통경찰의 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그랬다. 누가 가해자인가 피해자인가를 떠나서 그들은 운전을 너무나 가볍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실수일뿐 타인은 잘못 이라는 이중잣대로 교통사고를 판가름하고 있었는데 무엇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이라는 사실에 무서워졌다. 세계 어딘가에서 1초마다 일어나고 있을 교통사고. 

초단위로 쪼개어가며 신호체계를 분석하는 놀라운 [천사의 귀]나 법망의 구멍을 드러내버린 [분리대],초보운전자의 복수를 그린 [위험한 초보운전], 불법주차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불법주차], 쓰레기가 입힌 수거가 교통사고로 이어진 [버리지 마세요], 무언가 미심쩍은 [거울 속으로] 등등. 짧은 단편이라는 길이감을 무색하게 할만큼 재미있다. 역시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스럽다. 

그에게 이제 소설이란 장르불문, 길이불문인 모양이다. 자유자재로 글을 가지고 놀면서 독자를 재미로 몰아가는 작가의 노련함. 교통경찰의 밤은 그의 그런 능력을 또 한번 세상에 드러나게 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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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계단 - 제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밀리언셀러 클럽 29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 황금가지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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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과 반전이 함께 공존할 수 있을까.

제 47회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인 [13계단]은 그런 의미에서 잘 짜여진 추리소설이다. 읽는 내내 공포는 없었다. 데드맨워킹을 보면서도 나는 사형집행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을뿐 100% 반대의견을 낼 수 없었다. 영화는 감동적이었으나 이야기 속 인물이 아무리 자신의 삶을 반성한다고 해도 그가 빼앗의 삶의 피해자들의 목숨은 되돌릴 수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을 인간으로 보게되었으나 그에 앞서 짐승으로 살았던 시간 속에서 그들의 악행으로 목숨을 빼앗긴 사람들에 대한 마음을 쉬이 접을 수 없는 까닭이었다. 그리고 이제 13계단의 읽기를 마쳤다. 원 기대대로 공포물은 아니었으나 이 소설은 읽는 순간순간 나를 놀래키고 있었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감탄으로 인한 놀라움이었다.

 

신인작가가 이토록 완벽한 글을 써내다니. 일본의 추리소설계는 정말 무서운 곳이 아닐 수 없었다. 좋아하는 작가인 미야베 미유키의 극찬을 받은 작품이라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고른 의미는 충분했으나 읽어가면서 미미여사의 극찬보다는 독자들의 극찬이 쏟아져 나올 작품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익명의 인물로부터 의뢰를 받은 두 사람. 보통은 유명한 같은 탐정에게 의뢰하게 마련인 이 사건을 익명의 인물은 의외의 사람에게 의뢰한다. 현 교도관인 난고. 그리고 그의 권유로 조사를 맡게 되는 상해 치사 전과자인 준이치. 그들은 교통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형수의 무고를 밝혀내야만 했다. 그것도 사형이 언도되기전에. 기껏해야 석달 가량밖에 남지 않은 그 기간동안 그들은 무얼 할 수 있을까. 교도관이라는 신분과 전과자인 청년의 발품에는 한계가 있어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전직(?)을 100% 발휘해 사건을 풀어나간다. 사형수 료는 등장하지 않은 채 진범을 추적하는 두 사람.

 

하지만 의외의 현실에 부딪히고 마는데 그것은 준이치가 사건 당시 그 곳에서 연행된 사실이 있다는 것이며, 매몰된 폐사찰에서 나온 살해증거품에서 준이치의 지문이 발견되어버린 일이었다. CSI라도 나타나서 증거의 무효를 밝혀내야하는 상황에 치닫게 된 두 사람.

 

사형제도의 모순을 밑바탕에 깔아두고 사건의 반전은 뒤로 미루어 놓은 채 작가는 두 인물에게 집중하고 있었다. 각자 다른 이유로 밤바다 신음하는 두 사람. 교도관이라는 직업으로 인해 두 사람을 살해하고 종국엔 또 한 명을 살해하고야마는 난고와 사고를 가장해 복수극을 펼친 준이치의 계획된 살인.

 

우리는 이 두 사람의 살인을 묵과해주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되는 순간 공범이 되어 버린 느낌을 떨칠 수 없게 된다. 죽음까지 가는 13단계. 그리고 예전에는 밟았을 13개의 계단. 폐사찰에 숨겨져 있는 13개의 계단. 소설에서의 계단은 덮여진 곳이면서 동시에 떠올리면 무서워지는 상징물이기도 했다.

 

다카노 가즈아키의 첫 작품을 읽으면서 나는 다음 작품에 대한 기대도 함께 가지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작가의 치밀함은 한 작품으로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작품에서 작품으로 이어지는 습관같은 것임을 발견해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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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크 라이프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노블마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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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7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인 파크라이프는 요시다 슈이치라는 이름때문에 선택했다.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들은 대체적으로 가볍다. 내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몇몇 작가의 작품 중 하나다. 책의 두께도 얇지만 언제든 가방에 한 권 정도 넣어가지고 외출할 수 있을 그런 작품들이 많다. 그래서 잠깐의 짬이 허락되는 날들엔 그의 소설들이 단골친구가 되어 외출한다. 

그런데 이 작가의 작품은 언제나 50%다. 
코드싱크율이 그렇다. 나와 코드가 100%맞는 작가들도 있고 0%나 30% 정도의 작가들도 있지만 독자의 입장에서 50%는 언제나 재미와 지루함을 극단적으로 오갈 수 밖에 없게 만든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는 내게 50%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의 작품 중 재미난 다음 작품을 발견하기 위해 부지런히 찾아다니고 있기도 하다. 매니아도 아니면서 말이다. 이번 작품은 글쎄. 나는 긍정의 점수보다는 부정의 점수를 좀 더 높게 주고 말았다. 잘라보기, 내려다보기, 초점 흩뜨리기 등등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소설이라지만 어딘지 모르게 산만해져 버려 내용이 공중에 흩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때로는 날카로운 칼에 찔리듯 옆구리를 자극하는 소재들도 있었는데 [파크라이프]는 그런 작품들에 비해 민숭민숭해져 버린 듯한 느낌이 강했다.

"죽은 후에도 계속 살아가는 것이 있습니다."라는 극 중 장기 이식네트워크의 상업 광고 만이 충격적으로 남아 계속 생각해보게 만들고 있다. 부디 다음 작품은 긍정의 50%쪽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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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츠지 히토나리 지음, 안소현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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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개의 단편에 후기대신 쓴 짧은 소설하나까지. 총 6개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츠지 히토나리라는 작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본다. 남자면서도 어딘지 모를 남자도 여자도 다 흡수해버리는 중성적 감성을 가진 작가, 여러편의 유명작 속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매니아가 되기에는 머뭇거려지게 만드는 작가, 어느날은 그 깊이가 바다같고, 또 어느날은 그 높이가 하늘 같지만 그 어떤 것도 한 순간에 날려버리고 의미없게 만들어버리는 작가. 그는 내게 그런 작가였다.

[냉정과 열정사이]의 열렬한 매니아이면서도 소설의 매니아일뿐 작가의 매니아가 될 수는 없었다. 공지영 작가와의 합작 소설을 읽으면서도 그의 소설에는 매료되었지만 그의 작품을 일부러 찾아다니지는 않았다. 부족함이 없으면서도 가득 채울 욕망을 가지지 않게 만드는 묘한 작가의 필력. 

그래서 나는 이번 책을 펼쳐들면서도 욕심없이 읽을 수 있었다. 
다섯 편의 이야기 중 [내일의 약속]이라는 이름이 붙은 실질적인 아카시아가 등장하는 내용이 가장 마음에 들었는데,  의외의 계기로 부족국으로 들어와 그들과 함께 동화되어 살아가는 의사와 그의 아이를 줄줄이 낳는 부족국의 여인 아카시아의 삶은 짧은 이야기 속에서도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또한 그들의 삶을 속속들이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명의 혜택을 입었을 그가 불편함보다는 이 부족국가가 문명화 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흥미롭게 보였다. 

그는 아이들이 태어나지만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고 나이도 헤아리지 않았다. 그들 나름의 차별없는 세상에 길들여져 가고 있던 남자는 자신의 나이도 잊어버렸다.  이곳으로 들어왔던 스물일곱 이후의 나이는 생각나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 대목만으로도 우리는 얼마나 매일매일을 치열하게 살아가며 스트레스 받고 있는지 비교하게 된다.  가진것을 놓아버렸을때 평화로움은 나태함과는 다른 모양이다. 영화 아바타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자연스럽다는 것, 자연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 자연적이라는 것의 의미를 되새겨보면서 나는 오늘의 나를 다시 되돌아보고 있다. 

오늘밤 일기는 꽤 길것만 같다. 소설이 일으킨 문제성에 대해 토해놓을 문장들이 많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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