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먼트
혼다 다카요시 지음, 이기웅 옮김 / 예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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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이한 소문이 있다. 

죽음이 임박한 환자의 소원을 이뤄주는 사람이 병원에 있다....는 소문이 환자들 사이에서 돌고 돌았다. 노인 또한 믿고 있는 듯 했다. 놀랍게도 청소부의 옷을 입고 나타난다는 소원을 들어준다는 사람. 노인이 그 소문을 털어놓자 젊은이는 대답한다. 나였노라고.

다름이 아니라 대학교 등록금 마련을 위한 "소원들어주기"알바를 시작하게 된 것은 한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주면서부터였는데, 고객을 위한 비밀엄수를 지키기 위해 무슨 일을 했는지 알려주진 않았지만 결국 할머니가 죽고나서 들어온 수고비는 4배나 많은 돈이어서 무료로 다른 이들의 소원을 이루워주고 있다는 얘기였다. 

그에 노인은 젊은이에게 소원을 말하는데,

그는 젊은 시절 전쟁통에 어쩔 수 없이 살인을 해야했다. 자발적인 살인은 아니었지만 죄책감을 안고 살아왔던 평생의 짐을 덜고자 그 유가족의 행복을 보고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는 소원을 말하고 있었다. 

혼다 다카요시의 단편 모음집인 [모먼트] 속 첫번째 이야기인 [얼굴]은 그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길지 않은 단편의 길이감에 담긴 글들은 하나같이 독특한 상상을 담고 있었다. 다소 평범한 듯한 제목들 속에 담긴 작가의 상상력이 기발해서 책읽기가 멈추어지지 않는다. 

죽음을 앞 둔 순간, 당신은 무엇을 소원하겠습니까?

라고 묻는 저자의 물음. 얼마전 재미나게 읽었던 [통곡]의 번역가의 또 다른 번역작이라 선택했던 책이었는데 의외로 재미나게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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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기억
호사카 가즈시 지음, 이상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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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잔잔한 일상이 계속되는 소설의 두께는 생각보다는 두꺼웠다. 흔히 일본의 얇은 문고판 정도의 두께를 생각했는데 그 보다는 약간 더 많은 양으로 채워져 있었다. 특별한 사건을 향한 소설도, 그렇다고 특이한 캐릭터가 있는 소설도 아닌데, 이 많은 분량이 어떻게 쓰여진 것일까. 

아쿠타가와 상을 받았다는 호사카 가즈시는 [계절의 기억]을 무엇을 위해 집필한 것일까. 
자신이 한 때 살았던 동네를 배경으로 한 소소한 일상의 늘어놓음.  우리와 다를바 없는 늘어진 삶 속에서 그 어떤 매력이 숨어 있길래 [계절의 기억]은 다니자키 준이치로 상과 히라바야시 다이코 문학상을 받게 된 것일까. 

미처 내 눈에는 띄지 못한 문학적 소양이 이 소설의 어디쯤엔 숨겨져 있는 것일까. 

산책하고 밥 먹고 이웃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상의 지나감을 일기 형식도, 에세이 형식도 아닌 소설 형식으로 이 많은 분량을 기획한데는 작가의 특별함이 존재해야 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본다. 게다가 하루하루 일상이 별 일없이 지나가듯 소설도 별 일 없이 그냥 끝나버린다. 저절로. 

소박한 문체 속에 리듬감까지 느려 이 소설은 읽으면서 잠시 잠깐씩 멈추어야 했다. 책을 손에서 놓치 못할 정도의 긴박감이 없었던 지라 하던 일을 하면서 쉬어가면서 읽어가면서를 반복해도 전혀 하등의 문제가 발생되지 않았다. 

왜 제목이 계절이 기억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정적으로 기승전결이나 클라이막스를 거치지 않고 물흐르듯 고요히 읽게 된 소설은 기존의 틀을 많이 벗어나 있어선지 쉽게 눈에 익지 않았다. 하지만 읽고나서도 괜히 읽었다라는 후회를 남기지 않는 이상함이란 이 소설만이 가진 특징이 아닐까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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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번째 인격
기시 유스케 지음, 김미영 옮김 / 창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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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소녀 속에서 살고 있는 13개의 인격...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소설은 많다. 그 중 가장 먼저 읽었던 시드니 셀던의 2권 분량의 소설이 가장 재미있게 기억되는 건 아마 처음 읽었던 소재였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처음이라는 것은 우선 선점권을 갖나보다. 기억에서조차도.

[검은집]의 작가 기시 유스케도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소설을 집필했다. 제목이 [13번째 인격]이었는데 누군가의 리뷰를 보고 나서 이 소설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이야, 재미있다"였기 때문이다. 

제3회 일본 호러 소설 대장 장편부 가작인 [13번째 인격]은 호러성 공포를 안겨주진 않는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사람이다. 라는 느낌을 갖게 만드는 오츠이치의 섬찟한 비린 공포를 맛보았기 때문인지 기시 유스케의 치히로는 그저 병을 앓고 있는 소녀정도로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유체이탈과 그 13번째 인격인 이소라의 실체도 M정도의 놀라움 정도라고나 할까. 

마지막에 아직 끝나지 않은 그 잔혹성에 대한 잔재도 그랬구나 싶을 정도로 반전으로 다가오진 않았다. 왜냐하면 이런류의 반전을 우리는 너무 많이 봐 왔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식스센스 이후의 왠만한 반전은 이제 반전으로써의 힘을 잃어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은 훌륭했다. 첫 페이지부터 마지막 페이지까지 막힘없이 술술 읽혀졌고 단 한 순간도 지루하게 놓아두질 않았다. 그런면에서보면 소설의 재미는 탁월했다. 다만 신선도 면에서 많은 아쉬움이 남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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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 원숭이
이사카 고타로 지음, 민경욱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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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카 고타로는 독특하다.  흡사 외계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우주적인 상상력을 뻗쳐 우리는 사로잡는다. [마왕]이 그랬고 [사신치바]가 그랬다. [종말의 바보]나 [명랑한 갱이 지구를 돌린다]에서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쪽으로 스토리가 진행되더니 끝나버렸다. 

최근에 [그래스 호퍼]를 보면서 감동받았는데, 후작인 [sos원숭이]를 읽으면서 혼란에 빠졌다. 대체 이 작가 정신상태는 괜찮은 것일까 하고. 일반인들의 정도라든가 한계치 라든가 도덕적 관념이나 사회적 통념을 통해 그어놓은 선 따위는 가볍게 무시되면서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없애 버리는 작가. 

그래서 가전제품을 파는 엔도 지로가 히키코모리인 마사토의 엑소시스트를 떠맡을 수 있고, 20분 동안 300억 엔의 손실을 낸 주식 오발주 사고가 난 현실 속에서도 서유기의 손오공이 나타나 활보할 수 있다. 이사카 코타로의 세상이기 때문이다. 

나의 이야기와 손오공 이야기로 이분법화 되어 있는 듯 한 시점 속에서도 우리는 이야기의 전반 줄거리를 다 훑어내릴 수 있다. 이런 혼잡한 소재를 가지고 이토록 잘 조합되는 이야기를 짜낸다는 점에서 이사카 고타로의 필력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인간이란 존재가 누구를 구원할 수 있는 존재였던가. 자신도 완벽하지 못하면서 남을 구할 수 있을까, 과연. 이라는 의문.

역자의 표현대로 소설은 요란하다. 현란하고 화려한 것은 아니지만 요란스럽다. 그런 소설 속에서 진심이 전해지기 보다는 엉뚱함이 전달되는 것은 왜일까. 소설을 읽으면서 기대를 한다는 자체가 우습게 느껴지게 만드는 작가 고타로. 그의 작품을 두고 미루어 짐작을 해 본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처럼 여겨진다. 절대 짐작할 수 없는 길을 향해 소설은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sos신호를 보내는 사람들을 감지하는 능력을 가진 지로. 그는 신호를 보내는 모든 이를 구할 수 있을만큼 뛰어나거나 영웅적이지 못한 인물이다. 돕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쉽사리 어쩌지 못할때가 많은 우리와 닮은 그가 평범하지 못한 사건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것. 어쩌면 재미는 이 곳에서부터 시작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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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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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5년.
인도인 남자친구가 집안 살림과 함께 어느날 아침 사라져 버린 사건을 겪다.
이런 황당 시츄에이션을 겪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남들이 안 겪는 특이한 사건을 겪게 되는 것은 경험상 행운일까. 불행일까. 

결국 열 다섯 봄에 등진 엄마의 품으로 돌아가는 일은 그다지 유쾌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표현이 엄마의 집에 "실례"를 했다가 아닐지. 10년 만에 들어가는 집의 감흥은 그다지 달콤해보이지 않았다. 애인과 전재산을 몽땅 함께 잃어버린 주인공이 엄마의 집에 들어가 살면서 소통의 도구로 문자를 골랐다는 것도 평범한 일이 아니었지만 이런 딸에게 맞춰 종이에 답장을 써두는 엄마도 정상적이진 않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고 말았다. 

엄마의 창고를 빌려 달팽이 식당을 개업하고나서는 손님들과의 대화도 필담노트를 통해서 이루어졌는데, 이런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여러 사연의 손님들이 식당을 거쳐갔다. 그 사이 평생 그리워한 첫사랑의 남자의 부인이 되었던 엄마는 겨우 몇주만에 저세상으로 가 버렸고 딸은 필담용 노트를 관 속에 넣는다. 이건 또 어떤 의미가 있는 행동일까. 엄마와의 이어지는 소통? 엄마와의 화해? 

딸은 왜 엄마와 아웅다웅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책 속 모녀도 엄마의 죽음 뒤에 발견된 편지를 통해 서로의 얽혀있던 실타래를 풀어내고 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대상이면서도 가까이 있으면 서로 상처입히고 마는 존재. [애자]에서 잘 풀어냈던 모녀관계의 엉겅퀴가 이 곳에서도 발견되었다. 

"계속 하렴"이 담긴 엄마의 유언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매일매일도 그녀에겐 어떤 의미가 있었던 것일까. 달팽이 식당은 잔잔하면서도 에쿠니 가오리나 요시모토 바나나와는 또 다른 인간소통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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