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심홍
노자와 히사시 지음, 신유희 옮김 / 예담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소설의 묘한 느낌은 풀어가는 방식뿐만 아니라 그것을 남기는 방식에서도 느껴지곤 했다. [심홍]을 접했을때 머리위로 벼락이 떨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전달되었다. 이런 소재의 소설도 있구나 라는.
기존에 가해자와 피해자로 나뉘는 많은 사연들이 소설의 소재가 되어 왔지만 피해자의 딸이 가해자의 딸을 찾아 그들의 공통점을 찾아가는 이야기는 이전엔 들어본 바가 없었다. 잘 짜맞춰진 추리소설 같았다면 감동은 덜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당연히 존재하는 호기심을 누르지 못하고 범인의 딸을 찾아내는 가코의 모습은 차라리 인간적이었다. 게다가 스스로를 체벌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던 미호에게도 망가질 수 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동정심이 기울어진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이들은 둘 다 피해자다. 누가 먼저 잘못했고, 누가 더 크게 잘못을 했던 간에 그들 부모 사이의 일은 그들의 일이고 동갑내기인 열 두살 두 소녀의 삶이 일그러진 것은 소녀들의 탓이 아니었다. 수학여행길에 가족이 살해된 사실을 알고 인생이 바뀐 가코도, 어느날 밤 돌아오지 않는 아빠 대신 들이대어지는 사람들의 손가락질과 시선을 참아내야했던 미호도 사건 속에서는 피해자다.
하지만 피해자인 동시에 그들만이 멈추지 않는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이었기에 견뎌내야하는 쪽도 그들이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소설 속에서 진실은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가코의 아빠가 의도적 도발을 해 버린 것인지, 미호의 아빠쪽이 심실상실 상태의 범죄를 저질렀던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풀어지지 않은 채 끝나도 좋았던 이유는 포커스가 두 소녀, 즉 20살이 된 두 여성에게 맞추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못한 채 미호에게 접근했다가 도리어 그녀의 지난 8년간의 삶이 자신과 똑같이 닮아 있다는 것을 깨달아버린 가코.같은 슬픔을 공유하고 있는 범인의 딸에게 묘한 공동심리를 품게 되었지만 반대로 그녀를 망치고 싶은 마음도 함께 공유하며 아슬아슬한 본인만의 도덕적 줄다리기를 해야했을 가코가 소설의 주인공이다.
혼자만 살아남았다는 죄책감은 언제나 그녀를 옭죄어 왔는데,나만 살아남아서 미안해....라는 되뇌임은 균형이 맞지 않는 고백이기도 했다. 살아남은 것은 그녀의 죄가 아니기 때문이다.
단란해 보이는 가족이 살해당하는 도입부에서의 감정과 범인의 상신서로 시작되는 또다른 진실 속에서의 변화하는 감정, 자신의 삶은 물론 타인의 삶까지 망가뜨리고 싶어진 20살 가코와 마주치는 미호가 나오는 대목에서의 감정은 바닷가의 급물살처럼 파도를 타며 자꾸만 뒤집혀져 갔다.
마지막 장을 덮을때까지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만들면서 몰아가는 소설의 감정선은 그래서 막장을 다 읽고나서 탈진하게 만들었는데, 그만큼 강렬한 필체로 노자와 히사시가 적어가고 있었기에 글의 재미는 어느 순간에도 늦춰지지 않았다.
심홍. 제목도 소재도 내용도, 필체도, 스토리 라인까지 너무나 진해서 한동안 계속 머릿속을 맴돌게 될 듯 하다.
거울처럼 닮은 두 여인의 삶은 20살 언저리에서 교차되었다가 다시 각자의 길을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