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제 - Assimilate, 2019

  감독 - 존 멀로우스키

  출연 - 조엘 코트니, 앤디 마티책, 칼럼 워시, 캐서린 맥나마라






  어느 외딴 시골에 사는 두 친구 ‘잭’과 ‘랜디’는 몰래 이웃과 마을에 관한 유튜브 영상을 제작중이다. 그들의 목표는 영상을 통해 돈을 번 다음, 마을을 떠나는 것이다. 그러던 중 그들은 몇 가지 이상한 점을 알아차린다. 우선 마을에 퍼져있는 작은 벌레들과 가족 구성원 중 몇몇이 진짜가 아니라 주장하는 아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한 둘은 어느 날, 교회 목사를 중심으로 한 사람들의 이상한 행동을 포착한다. 예전과 달라진 그들의 모습에 두 친구는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확신한다. 그러던 중, 이웃에 사는 학교 친구의 어머니가 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자, 둘은 그 집을 염탐하기로 한다. 놀랍게도 그들이 발견한 것은 죽어있는 클래스메이트 시체였는데…….



  영화의 한국 제목과 사람들을 물고 다니는 벌레를 보면서, 벌레가 사람 몸을 숙주로 삼는 영화인가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 학교 친구의 시체를 발견하고 이후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서, 잭 피니의 소설 ‘바디 스내처 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 1956’이었다. 역시 이런 설정의 작품들은 거의 다 소설 ‘바디 스내처’의 자식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부모 작품의 기본 설정을 바탕으로, 소설과 달리 청소년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켜 약간은 가볍게 만든 게 아닐까 싶다.



  물론 가볍다고 해서, 농담 따먹기라든지 희화화된 인물들이 등장해서 억지웃음을 유발하거나 과장된 행동을 하는 건 아니다. 원작에서 계속해서 얘기하는, 내가 아는 존재의 정의와 모든 것을 공유하면 과연 행복한가라는 문제 관해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사람은 언제나 한결같을 수가 있는 걸까? 또는 사람이 변한다는 건, 어디까지 바뀌어야 가능한 얘기일까? 또한 모든 것, 심지어 감정까지 공유하면 과연 차별도 없고 파벌도 없으며 다툼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될 것인가? 원작과 그것을 영화화한 작품을 보면,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런 문제까지는 다루고 있지 않다. 주인공들은 그들에게 잡히지 않으려고 안전한 곳을 찾아 도망 다니기 바빴다. 그 와중에 연애 감정도 싹터야했고, 어린 동생을 챙기는 모습도 보여줘야 했고, 동시에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번득이는 아이디어도 내야했다. 그것만으로도 바쁘고 벅차서, 다른 걸 보여줄 여지가 없었다.



  그런 부분이 좀 아쉬웠다. 청소년이 바라본 바디 스내처의 세상에 대한 감상이 드러났으면, 더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러면 1950년대, 1970년대,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의 감성과 또 다른 사고방식을 보여주며, 새로운 재미를 줬을 것이다. 물론 이건 내 취향이고, 제작진의 기호는 그게 아니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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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Hole in the Ground, 2019

  감독 - 리 크로닌

  출연 - 세아나 커스레이크, 제임스 코스모, 시몬 커비, 스티브 월






  어린 아들 ‘크리스’와 함께 시골로 이사를 온 ‘사라’. 집 뒤에 있는 숲에서 커다란 구멍을 발견한다. 불길한 느낌에 아들에게 가까이 가지 말라고 하지만, 어느 날부턴가 크리스가 이상행동을 보이기 시작하는데…….



  어느 감상문에서 적었는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작년에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한 공포 영화가 여러 개 있었다. 그 중의 몇 개는 아이들이 강력한 힘을 얻거나 기이한 존재와 접촉하여 서서히 변하는 내용이었다. 이 작품 역시, 그런 종류 중의 하나이다.



  집 뒤에서 발견된 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불길함, 변해가는 아들을 보며 불안함을 느끼는 엄마 그리고 천진함과 흉포함을 왔다 갔다 하는 어린 아들까지, 영화의 기본 설정은 어디선가 익숙한 느낌이 들지만 충분히 흥미로웠다. 거기다 그 와중에 이상한 행동을 보이는 이웃까지 등장하니, 전반적인 분위기는 암울했고 을씨년스러웠다.



  그런데 뭐랄까, 너무 우울하고 을씨년스러운 것에 치중해서인지 그렇게 크게 빵 터지는 사건은 별로 없었다. 후반부에 몰아치기위해 차곡차곡 쌓아간다고 여겨도, 중간에는 좀 심심했다. 슬쩍 지나가는 몇 장면이 있긴 했지만, 너무 스리슬쩍 지나가서 그렇게 ‘오!’하고 놀랄 정도는 아니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익숙한 느낌이 드는 기본 설정에다가 너무도 공식에 맞춘 흐름이다보니 예상이 가능한 전개였다. 암울하고 을씨년스러운 분위기 역시, 잘 살리면 러닝타임 내내 음산한 분위기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예상 가능한 전개다보니 분위기 역시 제대로 살아나지 못했다. 아깝다.



  무표정한 모자의 얼굴에서 이 가족에 문제가 있다는 걸 처음부터 짐작하게 한다. 그래서 가뜩이나 우울한 집안에 문제가 또 생긴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가족을 더 위기에 몰아넣지만, 사건이 해결되면 사이가 더 돈독해지는 결과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이 작품도 그런 흐름을 따르고 있긴 하다.



  하지만 뭔가 아쉽다는 느낌은 떨쳐버릴 수가 없다. 왜일까? 너무 전형적이고 틀에 박힌 구성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따르고 있어서? 인물들의 개성이 전혀 두드러지지 않아서? 하여간 영화는 보는 내내 평온했고, 다 보고 나서는 뭔가가 빠졌다는 생각만 들었다.



  사람을 난자하고 뼈와 살이 분리되어 타오르고, 피가 철철 흘러 강을 이루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보면서 오싹하고 ‘오, 괜찮았어!’하는 감상이 나올 정도만 바라는데, 그게 너무 과한 거였을까?



  아쉬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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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제 - 月女의 恨: Wal-nyo's Grudge, 1980

  감독 - 김인수

  출연 - 진봉진, 허진, 박병순, 이치우




 

  호러타임즈 2차 상영회 때 본 작품이다.



  ‘월녀’는 ‘금아랑’과 약혼한 사이였다. 하지만 지역 유지 ‘석탈’의 딸인 ‘유화’가 금아랑을 사모하다 못해 상사병으로 쓰러지면서, 문제가 생긴다. 석탈이 월녀의 아버지에게 거액의 돈을 주며 마을을 떠나라 협박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몰래 건달들을 고용해, 월녀와 아버지를 죽이라 명한다. 도망치던 월녀는 저주받은 연못이라 불리는 ‘흑묘못’에 몸을 던진다. 한편 월녀가 말도 없이 자신을 떠났다 생각한 금아랑은 유화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다. 결혼식 날 밤, 귀신의 공격으로 유화가 살해당한다.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월녀가 돌아오는데…….



  이 영화에는 또 다른 숨은 이야기가 있다. 바로 흑묘못에 얽힌 괴담이다. 예전에 마을에 젊고 아름다우며 용한 무당이 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녀와 하룻밤을 자고나면 남자들이 죽어나갔다. 사실 그녀가 기르던 검은 고양이가 남자들을 죽이는 거였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은 무당을 죽여 버린다. 그러나 무당의 원혼이 고양이에게 옮겨가, 마을 주민들에게 복수를 시작한다. 결국 그 힘을 봉인시킨 것이 흑묘못이라는 얘기였다. 월녀가 살아 돌아오게 된 계기는 바로 흑묘못에 깃든 무당과 고양이의 원한 때문이었다.



  영화의 설정만 보면, 한을 품은 여인의 복수극이라 생각할 것이다. 사실 전반적인 내용도 그랬다. 초반에는 흑묘못에 얽힌 무당과 고양이의 복수, 후반에는 월녀의 복수. 상당히 무서운 장면이 많을 것이라 은근히 기대하게 만드는 설정이다. 포스터를 보고 조금 기대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런데 생각보다 보면서 웃음이 나는 장면이 많았다. 뭐랄까, 지금은 쓰지 않는 어투라든지 다소 투박한 특수촬영기법은 40년 전에 만들어진 작품이니 그러려니 해도, 이야기가 어딘지 모르게 이상하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기 때문이다. 첫날밤에 신부가 죽었는데, 아무도 신랑을 잡아가지 않아 좀 웃기면서 놀라웠다. 부인을 잃고 전 약혼녀를 돌보는 걸 보면, 아무라도 저 놈이 범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그런데 그런 거 하나도 없다. 신부의 부모조차 그런 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딸 살리자고 남의 가족을 그렇게 죽였으면서! 진짜 딸이 죽었는데 왜! 정작 그들은 살아 돌아온 월녀가 무슨 말을 할까, 아니면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 걱정하고 두려워한다. 그런 배짱으로 어떻게 월녀와 아버지를 죽이라고 사람들을 고용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금아랑도 이상하긴 마찬가지다. 그렇게 귀가 얇아서 어디다 쓰려는지……. 왜 귀가 얇다고 평하는지는 적으려니 엄청난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서 넘어가겠다. 하여간 요즘 작품에서 저런 성격의 남자가 주인공이라면, 아마 게시판에 불이 붙을 것 같다. 남자 주인공 바꿔달라고.



  고양이들이 많이 나와서 무섭다기보다는 어쩐지 귀염귀염했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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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제 - Gehenna Where Death Lives, 2016

  감독 - 히로시 카타기리

  출연 - 저스틴 고든, 에바 스완, 사이먼 필립스, 랜스 헨릭슨





 

  리조트 개발을 위해 ‘사이판’으로 온 일행. 우연히 부지를 돌아보다가 숨겨진 지하 벙커를 발견한다. 위험하다는 현지인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안으로 들어간 그들은, 기이한 경험을 하게 되는데…….



  영화는 음, 뭐라고 할까? 붕어빵처럼 틀에서 찍어내지 않았을까 싶은 전형적인 인물들과 어디서 본 느낌이 자꾸만 드는 흐름 때문에 처음에는 집중하기 힘들었다. ‘이 상황에서 이 캐릭터는 이런 행동을 하겠지’ 내지는 ‘이쯤에서 뭔가 나오겠네.’라고 생각하면, 어김없이 맞아떨어지니 영화를 보는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 사실 호러 영화를 보다보면, 내가 신기가 있는 게 아닐까하는 착각이 들 때가 더러 있긴 하다. 그러다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혹시?’라는 번뜩이는 생각과 동시에 ‘설마?’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그게 영화의 반전에 해당하는 것이었지만, 초반이 너무 그저 그래서 중반에 살짝 드러난 복선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자세히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 넘어가지만, 이 영화는 사이판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0세기에 스페인의 지배를 받는 것을 시작으로, 독일과 일본을 거쳐 현재는 미국의 자치령이 되었다. 그래서 영화는, 10세기 이전에 주민들이 믿었던 종교와 그들을 악랄하게 지배했던 나라들에 대한 한이 결합된 ‘뭔가’가 바탕에 깔려 있었다. 이 부분은 일본의 지배를 받았고, 아직 그 시대의 잔재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우리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거기다 2차 대전 후 빠르게 성장한 덕분에 과거의 종교는 미신이 되어버리고, 돈이면 뭐든지 다 되는 물질만능주의 사회의 어두운 면까지 드러내는 점에서는 점수를 주고 싶었다. 조상과 후손의 단절이 빚은 비극이랄까? 하여간 그 ‘뭔가’가 영화의 중요한 설정이자 반전을 일으키는 열쇠였다. 그리고 떡밥을 꼼꼼히 회수하는 점에서, 영화의 기본 설정은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던 부분들, 인물의 개성이라든지 판에 박힌 흐름은 그런 설정이 쌓은 점수를 우르르 깎아먹었다. 혹시 초반에 보는 사람의 기대를 스르르 마이너스로 사라지게 하고, 나중에 ‘오, 생각보다 괜찮은데?’라는 말을 듣기 위한 고도의 술책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재미없는 초반은 다 까먹고, 볼만했던 후반만 머리에 남을 테니 말이다.



  그나저나 한국 제목은 영화를 보고 지은 걸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인물도 진부하고 극의 흐름도 전형적인데, 제목까지……. 거기다 다음이나 네이버 같은 포털에 이 영화를 검색하면, 포스터에 사막과 피라미드가 떡하니 그려져 있다. 설마 포스터 담당자도 영화는 보지 않고, 제목만 보고 이미지를 선택한 걸까?



  기본 설정이 너무 아까운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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