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렌즈로 세상을 찍다 - 여행하는 사진가 케이채의 사진과 이야기
케이채 지음 / 퍼플카우콘텐츠그룹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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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제 - 여행하는 사진가 케이채의 사진과 이야기

  저자 - 케이채

  사진 - 케이채



  저자의 이름을 보고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외국인인가? 하지만 표지를 넘기고 나타난 저자 약력을 보고는 웃어버렸다. K. Chae. 아, 그런 의미였구나.


  저자가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과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이 짤막하게 담겨있다. 그 사진을 찍을 때 상황은 어땠는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리고 찍은 후에는 어떤 느낌과 감동을 받았는지 등등. 별다른 미사여구나 수식어 없이, 담담하게 풀어내고 있다.


  그런데 그게 또 괜찮은 조합이었다. 하긴 멋진 경치를 보면서 감탄하고 있는데, 옆에서 자꾸 말을 걸면 분명 귀찮을 것이다. 게다가 금방 끝나는 얘기가 아니라 주저리주저리 길게 늘어진다면……. 음, 그래서 설명이 간략하게 붙어있거나, 저자가 하고 싶은 말을 먼저 한 다음에 사진을 보여주는 편집을 취한 것이 구나라고 나름 생각했다.




  몇몇 사진들은 ‘와!’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오기도 하고, ‘혹시 그림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색감이 멋진 작품들도 있었다. 특히 책 표지로도 쓰인 사진은 처음에는 간혹 인터넷에 올라오는 실사 같은 그림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또한 사진을 먼저 찍기 시작한 사람으로 앞으로 찍으려는 사람에게 당부하는 글도 중간에 들어있다. 렌즈를 비싼 것으로 쓴다고 좋은 사진이 나오는 게 아니라, 어떤 사진을 찍을 것인지 미리 구상하고, 그 화면을 잡기 위해 철저한 사전답사와 끈기 있게 기다려야한다는 부분에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문득 명필은 붓을 탓하지 않는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하긴 한석봉 어머니도 불을 끄고도 떡을 고르게 써실 정도로 달인이셨다. 꼭 사진작가가 아니더라도,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달인이 되려면 여러 가지 준비를 해야 할 것이다. 자기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실히 알고, 그것을 이루려면 어떤 방법을 택해야할지 판단해야할 것이다. 의욕과 노력 그리고 끈기는 필수이고 말이다.


  그런데 어떤 사진은 두 페이지에 걸쳐서 연결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보면 결정적인 포인트, 그러니까 저자가 사진에서 말하고 싶은 중요 부분이 접히는 바람에 눈에 들어오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특히 ‘라파엘 트레호 복싱장에서’ 찍은 사진은 저자의 설명을 보고 소년이 어디 있냐고 한참 찾다가, 설마 하는 느낌에 책을 쫙 펴니 그제야 보였다. 그런 부분은 아주 많이 아쉬웠다.


처음엔 소년이 어디있는지 한참 헤멨다.



  오타 발견! 212페이지. 두 번째 문단 네 번째 줄. ‘동얀인이라니!’는 ‘동양인이라니!’가 맞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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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위로 한 그릇 - KBS 아나운서 위서현, 그녀의 음식 치유법
위서현 지음 / 이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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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부제 - KBS 아나운서 위서현, 그녀의 음식 치유법

  저자 - 위서현



  처음에 몇 장 읽다가 배가 고파져서, 책을 덮었다. 그리고 허기를 달랜 다음에 다시 읽었다. 식욕을 자극하는 문장이 왜 이리도 많은지……. 사진은 정적인데 문장이 동적이다.


  이 책은 저자가 음식을 통해 느끼고 생각하고 깨달은 것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가령 미역국을 먹으면서 다시금 깨우친 엄마의 사랑, 단팥죽을 먹으면서 느꼈던 사람 사이의 든든함과 따뜻함, 완탕면에서 알아차린 유쾌한 인생의 맛 등등.


  얼마 전에 읽었던 ‘내 인생의 화양연화’가 영화나 소설에서 깨달은 인생에 대한 얘기였고, ‘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가 미술 작품에서 떠올린 사람과 삶에 대한 생각이었다면, 이 책은 음식과 관련된 여러 가지 짧은 생각들에 대한 기록이다.





  음식은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필수 요소이다.


  인간은 먹지 않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 살려면 먹어야 한다. 그리고 동시에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준다. 사람이니까 밥그릇, 국그릇, 반찬그릇을 따로 구비해놓고 수저로 천천히 떠서 식사를 한다. 한 그릇에 몰아넣고 입으로 먹는 건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그리고 음식에는 각 사람마다 나름의 사연과 추억이 깃들어 있다.


  누군가는 라면만 먹는 게 지겨워서 자장면을 사 달라 졸라 먹으면서, 어머니는 자장면이 싫다고 대답하셨다는 GOD의 노래 가사와 비슷한 기억이 있을지도 모른다. 또는 큰올케처럼 생오이를 썰어서 고추장에 찍어먹을 때마다, 그걸 좋아하셨던 시아버지를 떠올릴 수도 있다. 아니면 남동생처럼 생일 케이크만 보면, 좋다고 까불다가 케이크 상자를 엎어서 생일날 펑펑 울었던 추억이 생각날 수도 있고 말이다.


  어쩌면 우리는 음식을 먹으면서 단순히 영양소만 섭취하는 게 아니라, 그것을 접할 때마다 떠오르는 추억을 같이 먹고 있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저자는 단순히 추억을 회상하는 것뿐만 아니라, 음식에게 의미를 부여했다. 의미 없는 몸짓이지만 이름을 불러주어 꽃이 되었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모두에게 다를 것 없는 비슷하고 평범한 음식이었지만 저자의 이야기가 곁들어진 순간, 그 음식은 특별한 성찬이 되었다.


  그렇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먹을거리였지만, 그날따라 더 맛있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때가 있다. 그리고 그날이후 비슷한 상황이 닥치면, 그 음식을 찾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날의 맛과 100% 똑같지는 않다. 하지만 어쩐지 그 날의 기분이 되살아나면서 허기를 달랜다.


  여기서 허기를 달랜다는 건, 그냥 단순히 고팠던 배를 채운다는 의미가 아니다. 배가 빵빵하게 불러도 계속해서 심적으로는 뭔가 부족한 것 같고 아쉽고 덜 채워진 것 같은, 그런 느낌의 허기가 가득 채워진다는 뜻이다. 이럴 때는 반드시 만족스러운 미소와 함께 이제 무슨 일이 닥쳐도 다 해낼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꼭 따라온다.


  그 때가 바로 음식으로 몸과 마음이 가득 채워지는, 부제에서처럼 치유가 되는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단순히 위만 채우는 게 아니라, 그 날의 추억으로 감정도 채워지는 그런 상황. 아마 그런 음식 한 두 개쯤은 갖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은 자기 전에 나의 치유 음식은 뭔지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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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럴 아포리아 - 뻔한 도덕을 이기는 사유의 정거장
사토 야스쿠니 & 미조구치 고헤이 엮음, 김일방.이승연 옮김 / 글항아리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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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뻔한 도덕을 이기는 사유의 정거장

  저자 - 사토 야스쿠니,미조구치 고헤이 공편




  '모럴 아포리아'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그래서 검색을 해봤다. 모럴 Moral은 도덕적이라는 뜻이고, 아포리아 aporia는 하나의 명제에 대해 증거와 반증이 동시에 존재하므로 그 진실성을 확립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한다. 그러니까 도덕적으로 양쪽의 의견이 너무 팽팽해서 쉽게 결론을 낼 수 없는 명제들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역시 책도 그런 내용이었다.


  이 책은 특이하게 한 명이 다 저술하는 것이 아니라, 19명의 일본 교수들이 각각 한 개의 난제를 담당해서, 여러 가지 예와 설명을 하고 있다. 그러니까 총19개의 도덕적 난제와 그에 대한 명제(여기서는 테제)와 반대 명제(여기서는 안티테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들은 어느 쪽이 더 옳다고 딱 잘라 말하지는 않는다. 읽는 사람들이 생각을 정리하고 결론을 내리도록 하고 있다. 드라마로 따지면 열린 결말이라고 해야 할까? 물론 간혹 어느 쪽에 더 힘을 준다고 적거나 현재 세계적으로 어떤 추세를 따르는지 덧붙이기도 한다.


  책에서 다룬 것들 중에는 여러 가지 흥미로운 난제들이 있었다. 간혹 온라인 게시판이나 실제 생활에서도 다툼이 일어나는 문제이기도 하다. 결론이 나지 않는 논쟁거리들이다.


  예를 들면, 6장 '종의 보존인가, 아니면 인간의 삶인가'라는 명제가 있다. 이의 테제는 '모든 생물은 동등한 생존권을 가진다.'이고, 안티테제는 '인간 이외의 생물의 생존보다 인간의 생존 또는 이익이 우선한다.'이다. 이 문제는 8장 '생명은 어떤 경우라도 존중받아야 하는가?'와 묘하게 맞물리면서 역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의 테제는 '생명은 어떤 경우라도 존중받아야 한다.'이고, 안티테제는 '그렇지 않다.'이다.


  모든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면, 다른 생물의 동등한 생존권을 보장해야한다고 할 수도 있다. 모든 생명을 존중한다면서, 인간의 생존권만 우선한다면 말이 안 되지 않을까? 문득 개고기 논쟁이 떠올랐다. 그리고 개발이라는 이름하에 자행되는 무분별한 자연 훼손도 생각났다. 인간의 주거지와 농경지를 얻기 위해 다른 동물들의 주거지를 파괴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라는 문제가 기억났다.


  또한 11장 '신앙은 시민생활을 넘어설 수 있는가'는 요즘 핫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문제이다. 경전에 적힌 법과 인간의 법률이 충돌될 때, 어느 것을 따라야하는 건 문제이다. 종교를 믿는 사람은 당연히 경전에 적힌 대로 해야 한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이상 국가의 법을 따라야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13장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가'도 예전부터 계속 문제시되고 있는 것이고 말이다. 자신의 몸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다고 한다면, 자살 방조죄 같은 것은 당연히 없어져야 할 것이다.


  아마 저자들은 이런 문제를 통해 개인적으로 깊이 생각하고 어느 쪽으로든지 자신의 생각을 확고히 해서, 남에게 휩쓸리지 않고 자기 주관을 갖는 인생을 살길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어디 가서 논쟁을 해도 밀리지 않는 철학적 학문적인 생각의 배경을 주려고 했을지도 모른다.


  이런저런 사회적 이슈들과 연관 지어 읽으니까, 글이 조금은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걸 다 이해하지는 못했다. 어느 대목은 도대체 이 저자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중에는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예를 들어서 쉽게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냥 학문적이고 이론적으로만 접근해서 난이도가 느껴졌다. 도덕적 사고란 어렵구나라는 생각만 들었다.


  내가 좀 더 생각을 깊이 할 수 있고, 사회적인 시야를 넓히며, 철학이나 사회사상 쪽으로 견문을 더 넓히면 그 때는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쉽게도 지금은 반 정도밖에 받아들이지 못한 책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에 나온 명제들은 싸움나기 딱 좋은 것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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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화양연화 - 책, 영화, 음악, 그림 속 그녀들의 메신저
송정림 지음, 권아라 그림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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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책, 영화, 음악, 그림 속 그녀들의 메신저

  저자 - 송정림




  포털 사이트의 사전에 화양연화(花樣年華)는 말 뜻 그대로 꽃처럼 아름다운 시절을 가리키며,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한 지점을 의미한다고 나오고, 책에서는 그 중에서 특히 여자의 가장 아름다운 때를 의미한다고 적혀있다. 부제와 더불어 생각해보면, 다양한 예술 작품에서 보여줬던 여성들의 삶에 대해 다루고 있는 내용이라는 추측을 하게 된다.


  저자는 마흔 무렵부터 이 책의 내용을 한 편씩 써내려갔다고 한다. 자신과 비슷한 나이쯤의 다른 여성들은 어떻게 그 시기를 넘겼을지, 그녀들의 인생과 시간을 훔쳐보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행복한 중년을 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녀가 접한 다른 여성들은 현실에서 살다간 사람도 있었고, 책이나 노래, 영화 또는 그림 속에서 살다간 존재도 있었다. 또는 순천 조계사처럼 저자가 느낀 묘한 분위기를 가진 장소도 있었다.




  마흔이라는 나이는 참 묘하다.


  그렇게 젊지도 않고 나이가 많은 것도 아닌, 기혼자라면 아이들이 이제는 다 커서 품을 떠날 나이, 더불어 슬슬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생기는 때. 미혼자라면 이래저래 고민이 많을 때다. 결혼을 해서 아이를 갖기엔 너무 늦은 게 아닐까하는 불안감도 들고, 주변의 친구들이 다 결혼을 해서 가끔은 혼자라는 생각에 외롭기도 하고. 고민이 없는 나이가 있을 리 없겠지만, 노년을 생각해야하는 때이기에 마흔이라는 숫자는 불안정하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소개한 여성들은 달랐다. 아니, 그녀들도 사실은 불안했으리라. 그러나 그것을 뛰어넘고 자신이 원하는 목표에 모든 것을 던졌다. 비록 결말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지라도, 위기에 처한 상황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은 선택한 길에 망설이지 않았다. 불안함과 망설임마저 용기와 헌신으로 바꾸어버렸다.


  에린 브로코비치는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마음으로 불의에 맞서 싸웠다. 잊힌 여인이 되고 싶지 않았던 마리 로랑생은 평생을 아폴리네르와의 사랑을 평생 마음에 간직하고 살았다. 펄 벅은 진정으로 딸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결과가 그들이 원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어도, 그들은 그것마저 기꺼이 감당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비록 그 때문에 아파하고 평생을 죄책감에 시달릴지라도 말이다.


  그래서 저자는 고독이 두렵지 않다고 말했나보다. 고독을 친구 삼을 줄 알면, 연륜이 쌓여가도 슬퍼할 일이 아니라고 담담한 어조로 충고하는지도 모르겠다. -p.238


  하지만 그들은 후회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을 위해 앞으로 나아갔던 그 순간이, 그들에게는 인생에서 가장 찬란하게 빛나는 때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이라 칼라스와 에디트 피아프는 죽기 직전까지 노래할 수 있었고, 빌리 홀리데이는 그 슬픔마저 목소리에 담았다.


  꼭 젊을 때만 사람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젊을 때가 제일 예뻐 보이긴 하지만,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매력적이고 자신만의 멋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아름답다는 것이 꼭 외적인 것에만 국한되는 말은 아니다. 링컨의 말했듯, 마흔 이후의 얼굴은 그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보여준다고 하니까.


  이 책은 그런 얘기를 들려주고 있다.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자신의 의지로 살아갈 때 존재한다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때, 비로소 삶을 제대로 돌아볼 수 있다고. 그리고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금 이 순간이 가장 빛나는 때라고.


  타인에게 내 인생을 맡기고 행복을 찾으려고 했던 것은 꿈이 아니라 환상이었습니다. -p.75


  순수란 거짓이 없다는 뜻이고 책임을 질 줄 안다는 뜻입니다. 순수는 남의 잘못은 용서하지만 자신에게는 엄격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순수하게 살아간다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래서 순수는 더 가치 있습니다. -p.121


  이 책의 그림은 어딘지 글과 비슷한 분위기를 낸다. 화려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차분한 묘한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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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을 기억해 - 이주은의 벨 에포크 산책
이주은 지음 / 이봄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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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이주은의 벨 에포크 산책

  저자 - 이주은




  벨 에포크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책을 대충 휘리릭 넘겨보니 외국 명화가 많이 들어있어서, ‘미술관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벨 에포크란, ‘belle epoque, 좋은 시대’라는 뜻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대략 1차 세계 대전까지 파리의 평화로운 시대 그리고 그 문화를 회고하여 사용되는 단어라고 한다. 꼭 프랑스 파리만 뜻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비슷한 시대에 비슷한 문화를 가지면 다 해당하는 것 같다.


  그럼 이 책은 그 시대의 그림을 통해 문화를 설명하는 책인가?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 시대의 그림 얘기를 하긴 한다. 동시에 그 당시 유행하던 화풍이나 유명인 얘기라든지 커다란 사건 그리고 문학작품도 다룬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 아니다. 저자는 거기에 현대를 덧붙인다.


  저자는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의 감각과 현실, 이상을 백 년 전인 20세기 문화와 연결시킨다.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니 거의 열 번 넘게 바뀌었을 기간인데도, 두 시대의 연결은 자연스럽기만 하다.




  도리어 어떤 부분에서는 그 때가 더 화려하고 낭만적이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지금처럼 치열하게 오로지 한가지만을 위해 무작정 살아가는 것이 아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위해 살아간다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또 어떻게 보면 그 때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느끼는 것은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세기말이 다가오면서 느꼈던 기대와 불안과 초조, 하지만 세기 초가 되어도 전과 하나도 달라지지 않은 삶, 이런 상반된 현실이 준 뭔지 모를 상실감과 허무함과 동시에 그것을 통해 변화를 추구하는 욕망까지. 두 시대는 다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많이 닮아 있었다.


  저자의 섬세하고 풍부한 감수성이 느껴지는 문장과 그 시대의 화려하면서 감각적인 그림을 나란히 보고 있자니, 어쩐지 가을이 떠올랐다. 신기한 일이다. 그림의 색감만 보면 모든 것이 새로 태어나는 화사한 봄인데, 쓸쓸한 분위기의 글과 함께 읽으니 서서히 사라져가는 가을이 떠올랐다. 아마도 그 시대를 추억하는 저자의 마음이 전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유행은 돌고 돈다고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것을 다시 한 번 알 수 있었다.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100% 똑같지는 않지만, 완전히 다르지도 않다. 사람의 본성은 세대가 지나도 별로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럼 인류는 그동안 내적이건 외적이건 진화가 아닌 그 자리에 머물러있었다는 걸까? 약간의 변화만 덧붙이고?


  책을 보면서 이런저런 추측과 가능성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처음에는 옛 시대를 회상하는, 단순한 그림이 곁들어진 사적인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간단한 책이 아니었다. 그래서 꽤 마음에 들었다. 요즘 나이 들면서 감수성이 메말랐다고 한탄하는 친구에게도 권해줘야겠다.



  책의 제목에서 암시하는 순수함이란, 하나를 포기할 때 비로소 느껴지는 미덕이다. 아무 욕망에도 눈뜨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눈을 떴음에도 그것에 마음을 주지 않았기에 순수한 것이다. -p.51 소설 ‘순수의 시대’에 대한 얘기 중에서


  결국 진실과 기억 사이의 간극은 허구로 꾸며지게 된다. 허구는 공백이 아니라 경이로움이다. 세상에 돌아다니는 감동적이고 아름답고 창조적인 것들은 대부분이 진실이 아닌 허구의 영역 안에 있다. -p.62


  살다보면 기쁜 때도 있고 슬픔에 빠지는 때도 있지만, 그 순간들은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가는 물살처럼 결코 잡히지 않는다. 모든 것이 흘러간다. 그러다가 언젠가 어떻게든 모이고 합쳐져 하나의 삶을 이룬다.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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