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쓰레기 탐색자 - 소비문화와 풍요의 뒷모습, 쓰레기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
제프 페럴 지음, 김영배 옮김 / 시대의창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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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Empire of Scrounge

  부제 - 소비문화와 풍요의 뒷모습, 쓰레기에 관한 인문학적 고찰

  저자 - 제프 페럴



  간혹 미국 드라마를 본다거나 뉴스 사진을 보면, 커다란 카트를 밀고 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대개 쇼핑 몰에서 온갖 생필품에서 식재료 내지는 다양한 상품들을 담는 카트이지만, 거기서 본 카트에는 다른 것들이 담겨있다. 불룩한 비닐봉지가 여러 개 옆에 주렁주렁 달려있고, 카트 안에는 상자나 캔 같은 것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그것을 미는 사람들은 쓰레기에서 쓸 만한 것을 주워 자기들이 사용하거나 돈이 될 만한 것을 팔고 있었다. 대개 쓰레기를 주웠는데 그 안에 시체가 들어있다거나, 술이나 약에 취해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다가 사건의 목격자가 되는 전개가 흔하다.


  한국에서는 유모차를 밀고 다니면서 빈 병이나 캔 내지는 종이와 신문 종이 상자들을 모으는 노인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내가 사는 골목에도 그런 일을 하는 할머니 한 분이 계신다. 그래서 골목에 사는 사람들은 버릴 종이 박스나 신문이 생기면, 누구나 할 것 없이 그 할머니 댁 앞에 놓아둔다. 막내 조카도 자기 집이나 우리 집에 택배 상자나 선물 상자가 생기면, 주섬주섬 모아서 그 집으로 후다닥 달려간다.


  간혹 골목 입구에 장롱이나 상, 책상 컴퓨터 같은 것이 버려져있을 때도 있다. 그러면 사람들이 지나가다가 쓸 만한 걸 가져가곤 한다. 아줌마 아저씨들이 주의 깊게 보면서, ‘이거 잘 씻으면 괜찮겠지?’라든지 ‘우리 집 상다리하고 맞으려나?’하는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예전에는 귀신 붙었다고 오래 된 물건을 꺼려했지만, 요즘은 그렇지도 않다. 사실 최근에는 사람들이 귀신이 붙을 정도로 물건을 오래 사용하지도 않는다. 귀신의 귀자를 꺼내는 순간, 한심하다는 듯이 볼 것이다. 내 경험담이기도 하다. 어머니가 어디서 바구니를 주워 오시기에 ‘엄마 귀신…….’이라고 했다가 이상한 소리 한다고 등짝 스매싱을 당했었다.


  전에 우리도 밥그릇이 한두 개 깨져서 새로 세트를 맞춘다고 남은 것을 버린 적이 있다. 아마도 그건 어느 집에 가서 괜찮은 용도로 사용되고 있을 것이다. 두 시간 정도 지나서 다시 가봤더니 이미 그 자리에 없었으니까.


  갑자기 왜 미국 드라마와 동네 얘기를 하느냐면, 이 책이 그런 내용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저자가 8개월 동안 동네에서 버려지는 쓰레기에서 쓸 만한 물건을 찾아다니고, 그것을 가져다가 파는 사람들과 나눈 교류 그리고 그것에 대한 정부의 반응과 저자의 생각이 이 책의 내용이다.


  사람들은 왜 아직 쓸 만한 것을 버릴까? 필요가 없기 때문에 버릴지도 모른다. 또는 유행이 지나갔거나 거 좋은 게 나와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왜 필요 없는 것을 샀을까? 이런 식으로 질문을 거듭하다보면, 자연스레 과소비라든지 과잉 생산, 자원 고갈과 자원의 재활용 그리고 분배에까지 생각이 미친다.


  물론 책에서는 단순히 필요 없는 경우뿐만 아니라, 다른 예도 나온다. 기억하기 싫고 간직하기 싫은 과거 추억의 잔재들이기에 버리기도 한다.


  그런 특별한 경우를 빼고, 저자는 얼마나 많은 쓸 만한 것들이 버려지고, 그것이 수집되고 어떻게 재활용되거나 돈과 바뀌는지 얘기하고 있다. 그 와중에 여러 사람을 만나 겪은 경험담이나 대화를 곁들인다.


  또한 미국 정부의 대처가 얼마나 불필요한 것이고 현실 반영이 되지 않았는지 일침을 가하고 있다. 보기에 좋지 않다고 쓰레기를 주로 모아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없애버리려고 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얘기는 자세히 나오지 않아서 확실히 그 이유를 알 수는 없었다.) 저자는 쓰레기 탐색자들이 생존을 위한 수집을 하는 것은, 사회 질서 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존재가 범죄의 원인이 아니라면, 굳이 없앨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재활용을 국가에서 제대로 관리할 자신이 없다면, 그들을 이용하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둘째조카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만 해도, ‘아나바다 운동’이 아주 활발했었다. 또한 학교별로 알뜰 매장이라는 것을 분기마다 개최했었다. 지금은 일 년에 한 번 정도? 하지만 예전과 비교해보면 많이 달라졌다. 그냥 애들이 싼값에 떡볶이 같은 간식과 장난감을 구입할 수 있는 기회만을 주는 것 같다. 그만큼 사람들의 생활환경이나 의식이 바뀐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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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가의 연인들 - 소설로 읽는 거의 모든 사랑의 마음
박수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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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소설로 읽는 거의 모든 사랑의 마음

  저자 - 박수현



  이런저런 생각이 든 책이었다. 저자는 열 두 개의 소설 속에서 열한가지의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소설로 사랑을 읽고, 사랑으로 소설을 읽다’라는 띠지에 적힌 문장이 딱이라는 느낌이었다.


  소설을 얘기하기 위해 사랑 위주로 서술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사랑에 대해 말하기 위해 소설을 선택했는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저자가 모 인터넷 신문에 ‘연애 상담소’라는 칼럼을 연재한다고 하니, 어쩌면 후자가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소개한 열 두 권의 책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았다. 사실 있는지조차 몰랐던 소설이 더 많았다. 그래서 처음에는 접하지 않은 소설과 관련되어 주제를 설명하는 것이면, 과연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도 잠깐 했었다. 하지만 저자가 단지 책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 괜찮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사례라고 생각하고 읽으니 괜찮았다.


  저자가 말하는 사랑하는 연인들의 유형은 다양하고, 읽기에도 참으로 힘들어 보였다. 인간이라면 누군가 또는 무엇엔가 애정을 느끼고 사랑에 빠지는데, 한번쯤은 겪어보는 그런 보편적인 감정일 텐데, 왜 그리도 힘든 것인지…….


  소설 속의 어떤 이는 상대를 사랑하지만 제대로 응답받지 못한다고 느끼며 고독에 빠지게 된다. 또 누군가는 상대를 끝없이 의심하고 자기가 만들어놓은 환상 속에 상대를 맞추려고 하다가 결국 파국을 맞기도 한다. 또 다른 사람은 불안하고 또 불안해하다가 결국 서로를 파멸의 길로 이끌기도 한다.


  책에 나온 사랑에 대해 읽다보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어디선가 이런 말을 읽은 기억이 난다. 수학 문제보다 풀기 어려운 것이 연애라고. 확실히 그렇다. 어쩌면 수학 문제는 답이 정해져있고, 내가 혼자 풀면 되는 것이라서가 아닐까? 연애라는 것은 내 마음만 가지고 되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내가 적극적으로 다가가서 호감을 표현하고 사랑을 갈구해도, 상대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반대로 누군가 나에게 다가와도, 내가 싫으면 거들떠도 보지 않는다. 책에서 나온 대로 우연에 우연이 자꾸 겹쳐서 사랑이 되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게 바로 운명 내지는 붉은 실의 인연일 수도 있겠다.


  아, 그래서 사랑에 대한 다양한 사례가 나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도 모르겠는데 남의 마음까지 알려고 하니까, 똑같은 것을 두고 난 A라고 말하지만 상대는 B라고 할 수도 있으니까, 나와 상대의 표현법이나 생각하는 것이 같지 않으니까. 나와 많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에 확신을 갖지 못하고 의심하고 불안하고 확인을 받고 싶은 것이다. 그 사람이 나와 똑같은 감정을 느끼길, 내 마음을 정확히 알아주길, 그 사람의 마음을 내가 알 수 있길 바라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고 ‘바디 스내처’처럼 획일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걸 바라는 건 아니다. 그냥 이 넓은 세상에서 온전히 날 이해해주고 내 편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다양한 연인들의 얘기를 따라가면서, 예전 내 모습이 떠올랐다. 음, 나도 그랬지. 맞아, 비슷해. 아, 이 사람도 그랬구나. 39쪽에 나온 사랑이 깊은 커플일수록 지독하게 잘 싸운다는 문장을 보고는 뜨끔했다. 생각해보니 연애 초기에는 많이 다퉜다. 걸핏하면 애인님은 한숨을 쉬고, 난 엉엉 울었던 기억이 난다. 아마 환상 속의 틀을 만들어서 서로를 끼워 맞추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다 예상대로 안 되면 실망하고 왜 내 뜻대로 안 해주냐고 서운해 했다. 난 대놓고 말하는 편이고, 애인님은 속으로 삭히다가 안 되겠다 싶으면 말하는 스타일이고…….


  열 두 권의 소설을 하나도 읽지 않았지만, 어쩐지 읽은 기분이 들었고 등장인물들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러면서 문득 나는 사랑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사랑에 정답은 없다고 하지만, 성숙한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아닌지, 서로를 파멸로 이끄는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직 확신을 갖고 있는지 차분히 생각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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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들리는 순간 - 인디 음악의 풍경들
정강현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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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제 - 인디 음악의 풍경들

  저자 - 정강현



  노래를 자주 듣는 편이지만, 인디 음악에 대해서는 별로 아는 게 없다. 아무래도 라디오나 텔레비전에서 잘 나오지 않아, 접할 기회가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홍대 클럽을 가는 것도 아니고.


  저자는 몇 번 예능 프로그램이나 심야 시간에 하는 음악 프로그램에서 한두 번은 봤을지도 모르는, 또는 아예 생소할 수 있는 인디 밴드들에 대해 적고 있다. 하지만 포털 사이트에 적혀있는 밴드 소개 글이나 위키피디아같은 백과 사전류의 기록과는 다르다. 그들이 데뷔한 해나 멤버 수, 앨범 판매, 공연 횟수 같은 숫자나 기록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었다.


  음악을 하는 사람과 그들이 추구하는 음악에 대한 감상을 말하고 있었다. 특히 밴드들의 노랫말에 집중하였다. 저자가 소개한 몇몇 노래 가사들은 아름다웠고, 애절했으며, 동시에 처절했고 자유분방했다.


  ‘1부 생활 저항의 록 스피릿’에서는 록 음악을 연주하는 그룹들에 대해 얘기한다. 자유분방하면서 저항적인 노래를 하는 그들의 노랫말에서 젊음의 고뇌를 엿볼 수 있었다.


  ‘2부 두근거리는 무한의 음악’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나온다. 스카라든지 재즈, 국악 그리고 바로크 메탈처럼 낯선 장르의 음악을 연주하는 고집스러우면서 순수한 열정을 가진 마음이 소개된다.


  ‘3부 소박한 소리들의 풍경’은 소규모 밴드라고 하여, 보컬과 기타 하나로 노래하는 그룹이 등장한다. 단출하지만 감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멜로디와 노랫말을 보여준다. 쓸쓸하기도 하고 애달프기도 하며 때로는 청춘이기에 표현할 수 있는 감성을 드러낸다.


  ‘4부 당신이라는 유일한 음악’은 혼자서 노래하는 사람들을 다룬다. 싱어 송 라이터라 불리는 자들이다. 자신의 감성을 고스란히 멜로디와 노랫말 그리고 음색에 담아내는 그들만의 독특한 철학을 말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가는 사람을 보면 언제나 부럽기만 하다. 비록 사람들이 기준을 세워놓은 성공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들 나름의 만족과 성취를 이루고 있을 것이다. 비록 그와 동시에 여러 가지 문제, 그러니까 우리가 흔히 인디하면 떠올리는 경제적인 문제 같은 것들이 존재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것들은 깊게 파고들지 않는다. 이 책은 사회 비판물이 아니니까.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책은 부드럽고 온화하다는 느낌을 주었다. 저자가 그들을 보는 시선이 따뜻해서인지도 모르겠다. 응원하고 격려하는, 엄마 미소로 그들을 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그래서 의미를 가진다. 주류가 아니면 기록에 남겨지기도 힘든 세계에서, 어쩌면 제대로 된 평가조차 받지 못하고 사라질 수 있는 인디 밴드들에게 보내는 애정 어린 시선이고, 그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입문서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각 그룹들의 사진이 다 들어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누구는 사진이 있고, 누구는 없고. 그 부분이 좀 마음에 안 들었다. 어쩌면 사진은 올리지 말아달라고 부탁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래도 욕심 같아서는 공연하는 사진이라도 있길 하고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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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테스키외의 로마의 성공, 로마제국의 실패 - 로마에게 해악은 분열이 아니라, 번영이었다.
샤를 드 몽테스키외 지음, 김미선 옮김 / 사이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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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Conside'rations sur les causes de la grandeur des Romains et de leur de'cadence (1734년)

  부제 - 로마에게 해악은 분열이 아니라, 번영이었다.

  저자 - 샤를 드 몽테스키외




  몽테스키외라니! 예전에 학교 다닐 적에 책에서 이름을 본 기억이 났다. 그 당시는 그냥 무조건 외울 대상의 하나로, 책에 적힌 하나의 단어에 불과했다. 그런데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그가 나에게 다가와 ‘어서와, 내 책은 처음이지?’하면서 말을 건네는 순간 그는 의미 있는 이름이 되었다. 그냥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예전에 살아 숨 쉬었던 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이 책은 그가 저술한 것으로, 로마가 어떻게 세력을 확장하고 번영을 누렸으며 어떤 식으로 몰락해갔는가를 설명하고 있다. 부제에도 나와 있지만, 그는 로마의 번영이 몰락의 시초라고 주장한다.


  특이한 관점이다. 대개 한 나라의 역사를 다루는 것을 보면 번영 후부터 몰락의 원인을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는 그 나라가 융성할 때부터를 시초로 본다.


  하긴 무척이나 잘 살던 시기가 지나가면 쇠퇴기가 온다. 그건 어느 나라건 비슷했다. 대제라 불리는 왕이 영토를 넓히고 국가를 부강하게 만들어 놓으면, 그의 후계자들이 다툼을 벌이면서 나라를 조각내고 결국은 망한다. 음, 그렇다면 국가의 몰락 시기를 번영 때로 잡은 몽테스키외의 관점이 더 타당할지 모르겠다.


  로마가 세력을 넓히는 과정을 읽으면서, 참으로 교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쩜 저렇게 상대를 속이고 자의적으로 조약을 해석하며 뒤통수를 치는 걸까? 그런데 다른 나라가 당하는 걸 보면서도 그와 비슷한 방식으로 로마에게 점령당하는 나라들을 보니, 참 어수룩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라는 말도 모르는 건가? 아니, 이런 상황에서는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해야 하나? 하여간 로마의 정치가들은 참으로 대단했다. 신뢰라 신용 같은 건 애초에 없던 모양이다. 오직 그들에게 있는 것은 자기 나라의 부국강병뿐!


  로마가 서서히 망해가는 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하나도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역사는 되풀이 된다는 말과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이 떠올랐다.


  문득 생각나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는 역사를 왜곡시키는 걸로 모자라, 어떤 부분은 잊으라고 어린 세대를 교육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그 나라가 로마처럼 화려하게 꽃을 피운 것도 아니다. 하아, 그 나라가 어찌될지 걱정된다. 이민을 떠나지 않는 이상, 내가 죽을 때까지 살아야 하는 곳이니 말이다.


  로마 민중은 이제 더 이상 국사에 관여하지도 않았고, 대다수는 해방 노예이거나 직업도 없이 국고를 소비하면서 살아가는 신세로 전락하여, 느끼는 것이라고는 자신들의 무능밖에 없었다. 그들은 마치 여성이나 어린 아이들처럼 애통해하면서 나약한 자신들의 처지를 비통해했다. -p.206

  우리가 평민이라 부르는 로마 민중은 가장 악랄한 황제들조차 증오하지 않았다. 민중은 권력을 잃고 난 뒤 더 이상 전쟁에 몰두할 일도 없어졌고, 결국 그 어떤 민족보다 비열한 처지로 추락해버렸다. (중략) 그들은 각종 시합과 구경거리에 열중하게 되었다. 그들의 얘기를 들어줄 호민관도, 또 정무관을 선출할 일도 없어지자 이런 쓸데없는 오락거리만이 중요해졌고, 나태함 속에서 기호만 날로 높아졌다. -p.212


  어디서 많이 본 상황 같다. 로마라는 글자를 다른 것으로 바꾸고, 몇몇 상황을 현대적으로 고치면……. 문득 삼십여 년 전부터 유행한 3S 정책이 생각난다.


  그나저나 콘스탄티노플의 민중이 두 개의 당파로 나뉘어져 싸웠다는 대목에서는 웃어버렸다. 청색당과 녹색당으로 나뉜 이유가 어느 배우를 더 좋아하는가에서 비롯되었다니! 그 결과 제국의 모든 도시가 두 파로 나뉘어 경쟁했고, 유스티니아누스가 청색당을 지지해서 편애하는 바람에 갈등이 더 깊어졌다. 그래서 동로마의 분열이 가속화되었다고 한다.


  아니, 이런 코미디 같은 일이. 하지만 지금도 가끔 벌어진다. 전 국민이 열성적으로 하진 않지만, 아이돌 팬들끼리는 싸우긴 한다. 음, 그런 거였구나.


  돌고 돌아오는 것은 부메랑이나 패션만이 아니다. 역사도 그러하다. 부메랑은 잘못 받으면 던진 사람 손만 아프고, 패션은 따르지 않아도 개성이니까 넘길 수 있다. 그렇지만 역사를 잘못 다루면 미래가 사라지는 비극이 일어날 수 있다.


  역사 공부의 중요성을 새삼 느끼면서 책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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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상처 떠나보내기 - 행복을 부르는 좋은 엄마의 조건
재스민 리 코리 지음, 김세영 옮김 / 소울메이트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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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The Emotionally Absent Mother (2010년)

  부제 - 행복을 부르는 좋은 엄마의 조건

  저자 - 재스민 리 코리



  제목만 봤을 때는, 상처받은 엄마를 자식들이 도와주는 내용일거라 생각했다. 엄마의 상처니까, 당연히 상처받은 사람은 엄마가 아닐까? 그런데 조금 읽다가 ‘설마 이거 엄마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의 얘기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더 읽고 확신했다. 이 책은 엄마에게 상처받은 사람들이 그것을 극복해가는 치유의 과정을 담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엄마의 상처’가 아니라,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책을 다 읽고 나니, 두 개의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어느 카페의 댓글에서 본 것인데, ‘운전도 면허가 필요하듯이 부모도 면허를 줘야 할 거 같아요.’라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가끔 어머니가 하시는 말씀인데, ‘너도 나중에 결혼해서 너 같은 자식 낳아보면 알 거다.’였다.


  부모가 되려면 자격증을 줘야한다는 말이 공감이 되는 내용이 많았다. 부모, 특히 엄마가 어린 아기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다. 아이는 스스로 혼자 크는 것이 아니다.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배우며, 그들의 행동에 따라 감정의 변화를 느끼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롤 모델을 하는 사람들이 자기감정을 추스르지 못해 허우적대면서 우울해하고 아이를 과보호하거나 반대로 방치한다면, 아이들은 적절하고 올바른 역할을 익힐 수가 없을 것이다.


  책에서도 비슷한 대목이 적혀있다. 무관심해서 아이를 방치하거나, 신경질적으로 아기를 대하거나, 너무 과보호를 한 엄마 밑에서 자란 아이들의 심리적 상태가 나온다. 애정결핍을 느낀다거나, 자기 자신에게 확신을 갖지 못하기도 하고, 욕구 불만으로 화난 상태로 자란다고 적혀있다. 또는 남에게 의존하지 않는 성격이 될 수도 있다고도 한다. 물론 엄마와의 관계도 좋지 않고 말이다.


  이건 엄마가 자기가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에 빚은 결과라고 생각한다. 아이를 기른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엄마가 되거나 준비가 안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아이를 기르려면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받은 사람만 부모가 돼야 한다는 말도 어느 정도 맞는 것 같다. 그래서 미국은 부모가 제대로 아이를 기르지 못한다고 판단되면 정부에서 강제로 입양을 시키는 제도가 있나보다. 무관심에 방치하거나 학대하는 친부모보다는 사랑을 줄 수 있는 양부모가 더 나을 수도 있으니까.


  하긴 가장 상처를 크게 주는 관계는 친구도 지인도 아닌, 피로 맺어진 가족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타인은 아주 개념이 없는 사람이 아닌 이상, 어느 정도 예의를 갖춰서 나를 대한다. 나를 마구 대하는 사람들은 인연을 끊으면 그만이다. 그렇지만 가족은 그럴 수가 없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누구보다 가깝다는 이유로 행동을 함부로 하거나 상처 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엄마에게 받은 상처가 제일 오래 흔적을 남기고 절대로 지워지지 않는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상처를 받고 자란 아이들은 나중에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며 엄마와 화해를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물론 다 그런 게 아니라, 일부가 그렇고 또 나머지는 화해는커녕 더 골이 깊어지기도 한다고 적혀있다.


  화해를 하는 경우는, 아마 그제야 엄마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너 같은 자식 낳아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었다. 음, 그러면 자식을 낳지 않으면 절대로 엄마와 화해를 할 수 없는 걸까?


  어쩌면 엄마와 화해를 한다는 건 엄마를 이해한다는 말도 되지만, 그냥 받아들이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몇 년 전부터 엄마와 얘기를 좀 더 자주 많이 하게 되었다. 어릴 적에는 왜 엄마는 나에게 이러는 걸까라고 불만이 있었다. 분가한 오빠와 동생만 언제나 챙기고, 같이 사는 난 뒷전인 거 같았다. 거기다 자라면서 사랑한다는 말이나 포옹을 받은 기억도 없다. 그런데 손자들에게는 아주 지겹도록 해주신다. 심지어 뽀뽀까지! 샘나게. 아, 조카에게 시샘하는 고모라니…….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봤다. 엄마는 원래 그런 성격이니까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고, 난 또 성격이 다르니까 원하는 것도 반응하는 것도 달랐던 게 아닐까? 그렇게 생각하니, 엄마를 대하는 게 편해졌다.


  음, 이 책은 그렇다고 엄마가 아이에게 전적으로 매달리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엄마에겐 엄마의 삶이 있다. 그걸 희생하라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자기 생활을 하면서,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라는 말이다. 엄마라고 모든 것을 자식을 위해 희생할 이유는 없다. 만약 그러라고 하면, 그건 엄마의 인생을 무시하는 처사가 될 것이다. 부모자식간의 관계에서 사랑은 쏙 빠지고 의무감만 남는 건 그리 좋다고 여겨지지 않으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취급받은 대로 자신을 대하는 경향이 있다. -p.317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을 잘 돌보면 스스로에게 “나는 너에게 관심이 많아. 너는 소중하거든.”이라는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p.318


  그런데 아빠의 존재감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아빠에 대한 건 한마디도 나오지 않는다. 인간의 성장에 아빠가 주는 영향은 없다는 건가? 궁금해졌다. 설마 2권으로 ‘아빠의 상처 떠나보내기’가 나오는 건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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