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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빛난다 -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
휴버트 드레이퍼스 외 지음, 김동규 옮김 / 사월의책 / 2013년 6월
평점 :
절판
부제 - 허무와 무기력의 시대, 서양고전에서 삶의
의미 되찾기
원제 - All things shining : reading the Western
저자 - 휴버트 드레이퍼스,숀 켈리
어떻게 뭐라고 써야할지 멍한 상태였다. 날씨때문일까? 아니면 책을 다 읽고도 받아들여진 것이 없어서 그런 것일까? 모르겠다. 마음 속 구석에
처박힌 비뚤어진 심성을 드러내면, '그래요, 아는 거 많아서 좋겠네요.'라는 툴툴거림이 지금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았다.
어쩌면 부러움일지도 모르겠다. 작은 사건에서 중심을 잡아내고, 그것에 연관된 작품을 떠올리고, 거기에 연결되는 철학 사조나 역사를 연상하는 건
보통 일이 아닐 것이다. 심지어 그 철학 사조나 역사가 시간별로 차근차근 정리되어있다면, 또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그 사이사이에 교묘하게
드러내고 있다면, 그건 놀랄 일이다. 처음엔 '이렇게 연결시킬 수 있구나!'라고 감탄하고, 뒤이어 그 능력을
부러워한다.
저자들이 이 책을 쓴 이유는 부제에서 잘 드러나 있다. 요즘 사람들은 허무주의에 빠지거나 무기력하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데,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생각할 거리를 제공한 것이다. 특히 서양 역사나 고전을 현대에 접목시켜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처음에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읽다보니까 차례차례 연결이 되어있었다.
1장 '선택의 짐'에서는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제일 많이 하는 것, 선택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자신의 안전도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을
구하는 마음은 어디서 오는 걸까? 이 질문에서 저자들은 이야기를 확장시킨다. 데카르트와 니체까지 연결되면서 신의 유무에까지 다다른
것이다.
그러면서 2장 '우리 시대의 허무주의'에서는 데이비드 포스터 월러스라는 요절한 작가의 얘기를 꺼낸다. 왜 글을 쓰는지에 대해 다루다가 루터와
소설 '백경 Moby Dick'으로 연결된다.
3장 '신들로 가득한 세상'에서는 그리스 로마 신화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 '펄프픽션
Pulp Fiction, 1994'으로 이어진다.
4장 '유일신의 등장'은 이제 그리스 로마 신들이 물러가고 기독교가 그 자리를 차지한 때를
이야기한다. 너무도 상반된 두 시대이기에 기존의 신화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예수는 어떤 입장이었는지에 대해 다룬다.
5장 '자율성의 매력과 위험'은 단테의 '신곡 神曲 La Divina Comedia'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칸트와 데카르트를 등장시켜 실존과 허무주의에 대해 얘기한다.
6장 '광신주의와 다신주의 사이'에서는 소설 '백경 Moby Dick'이 다시 등장한다. 여기에서 저자들은 이 소설에 대해 낱낱이 해부하고
분석한다.
7장 '우리 시대의 가치 있는 삶'에서는 루 게릭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생 최고의 순간에 병으로 죽어가야 했지만, 좌절하지 않았던 사나이.
그와 다른 사람들의 얘기를 하면서, 저자들은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논한다.
선택에 관한 문제에서 인생을 살아가는 방향으로 맺어지는 책 전반적인 흐름이 놀라웠다. 그렇다고 해서 그 연결이 어색하다거나 끊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왜 이 이야기가 나올까하는 의문이 들었지만, 뒤로 가면 고개를 끄덕이면서 ‘아, 그렇구나.’라고
중얼거렸다.
그리고 소설 ‘백경’이 그런 의미를 담고 있는 줄 몰랐다. 어쩐지 읽어봐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이 팍팍 느껴졌다. 안 읽으면 안 될 것 같다.
6장에서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의 심리와 대사를 분석하는데, 와 진짜 저런 식으로 비평받으면 작가의 멘탈이 가을에 곡식 추수하듯이 탈탈 털릴
것 같았다. 어쩌면 멜빌이 이미 죽은 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뭐랄까, 책을 다 읽었는데 기억나는 건 단 두 가지이다. ‘백경’과 ‘펄프 픽션’.
언젠가 이 두 개를 꼭 만나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