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더 낫게 실패하라 - 위기의 순간을 사는 철학자들
이택광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제 - 위기의 순간을 사는 철학자들

  저자 - 이택광

 

 

 

  제목과 내용이 잘 연결되지 않았던 책이다. 물론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철학은 실패에 대한 사유이고, 또다시 실패할지언정 다시 시도하기를 요청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본문과 제목의 관련성을 찾지 못했다.

 

  책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있다.

 

  우선 첫 번째는 ‘철학자의 세계를 여행하기 위한 약도’라는 제목으로, 20세기이후의 철학사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그러니까 요즘 한창 유행하는 주류 내지는 비주류에 관한 얘기이다. 음, 옛날 것도 헤매는데, 현재까지 보려니 뇌에서 과부하가 일어나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요즘은 이런 것을 중시하는구나.’정도로만 간단하게 짚고 넘어갔다.

 

  두 번째 부분은 ‘철학자들을 만나다’로, 저자가 세계 석학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적었다. 총 열 명의 외국 인사들이 소개되었는데, 우리가 죽은 다음 후손들이 철학 시간에 배울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각각의 인물과 그들과 나눈 대화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슬라보예 지젝: 사유를 시작하라! - 제일 마음에 들었고, 웃어버린 문장이 있는 부분이었다.

  자크 랑시에르: 몫 없는 자들의 몫으로 - 행동을 중시하는 느낌이 들었다.

  지그문트 바우만: ‘2012년 현상’을 기억하라! - 자기가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가야트리 스피박: 정치적 행위자를 길러내는 교육 -교육과 욕망의 관계가 흥미로웠다.

  피터 싱어: 다윈주의와 윤리적 삶 - 인간외의 존재에 대한 관심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이먼 크리츨리: 실망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 음, 좀 혼란스러운 느낌.

  그렉 렘버트: 누가 ‘영구평화’를 두려워하랴? - 남북한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고, 더 많이 생각하는 것 같다.

  알베르토 토스카노: ‘평범한’ 마르크스주의 - 잘 모르겠다.

  제이슨 바커: 진리는 훨씬 더 도전적이다 - 청년에 대해 큰 기대를 걸고 있는 것 같다. 그림과 유머를 중시하는 그의 말에 조금 놀라웠다.

 

  어떤 대화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책장을 술술 넘길 정도로 이해가 갔고, 또 다른 대화는 잠시 생각하기 위해 책장이 멈춰있기도 했다. 역시 철학은 어렵다. 하지만 음, 읽으면서 내가 모르는 부분을 깨닫기도 하고,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놀라기도 하고, 그러면서 생각을 확장시킬 수가 있다. 그게 오래 지속되지 못해서 문제지만.

 

  아무래도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의 대화라서 그런지, 현대 사회의 문제점이라든지 요즘 유행하는 과학기기에 대한 논의가 자주 나왔다. 한창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는 트위터같은 SNS의 무분별한 확산이나 ‘월 가를 점령하라’와 같은 시민들의 행동이 그 예이다.

 

  가야트리 스피박의 ‘신기술을 이용하는 자들이 관건이다.’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정치적 행위자와 주체가 그것을 조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SNS는 해악이 가지 않는 선에서 인상적인 속도를 발휘한다는 말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또한 슬라보예 지젝의 ‘강력한 정보기관이 배후에서 민심을 조종한다거나 국가권력이 주도면밀하게 모든 것을 계획한다는 것은 강박적 상상’이라는 부분에서는 미안하지만, 크게 웃어버렸다.

 

  올해 다시 인터뷰를 한다면, 국정원 댓글 알바 사건이나 선거 개입 같은 우리나라 상황에 대해 알려준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해졌다. 인간이란 재미있다고 일본 만화 ‘데스 노트’에 나오는 대사를 읊조릴까? 아니면 자신의 예상을 빗나가는 예가 발견되었다고 신나서 연구를 할까?

 

  지젝이 한국 독자들에게 하는 말을 적으며, 리뷰를 마무리 지어야겠다.

 

  ‘사유를 시작하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자동적으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종교만 해도 복잡하다. 내가 믿는 신이 다른 사람에게도 신일 수 없다. 서로 교환되지 않는다. 이런 걸 고민해야 한다. 호기심에 그치지 말고 전 생애에 대한 고민을 해볼 수 있다.’ -p.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이 지우고 남은 것들 - 몽골에서 보낸 어제
김형수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제 - 몽골에서 보낸 어제

  저자 - 김형수

 

 

 

  이 책을 기행문이라고 해야 할까 그냥 수필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 고민을 했다. 총 여섯 개의 장과 프롤로그 그리고 에필로그로 구성되었다. 또한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시가 한 편씩 곁들여져있다.

 

  그런데 '첫 발자국 : 저 낮은 곳에 새들이 날고 있다', '풍문 : 무엇이 세계인가', '영감 : 바람의 사전', '순례 : 자연 속에 내장된 상형문자들을 찾아서'까지는 기행문의 성격이 강했고, '창작노트 : 『조드』를 쓰기까지'는 저자가 소설을 쓰기까지, 몽고에서 보고 느낀 것을 적어 놓았다.

 

  그리고 마지막 장인 '좌담 : 『조드』가 남긴 것'은 기행문은 아니다. 말 그대로 저자의 책에 관한 좌담이다.

 

  그래서 이 책의 성격을 어떻게 정의해야하나 고심을 했다. 하지만 굳이 그걸 정해야할 이유도 없고,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저자가 쓴 소설을 난 잘 모른다. 제목을 얼핏 어디선가 접했을지 모르지만, 무슨 내용인지 하나도 모른다. 그렇지만 저자가 몽고를 여행하면서, 그곳의 매력에 푹 빠졌고 급기야 그곳을 배경으로 한, 특히 칭기즈 칸을 다룬 소설까지 쓰게 되었다는 것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저자는 바랐던 것이다. 그가 몽골에서 느꼈던 그 모든 것을, 예를 들면 광활한 초원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라든지 자연의 위대함 내지는 그곳에서 살다간 인물의 역사 등등을 독자들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책은 자연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사진과 몽골의 과거와 현재를 다룬 사진이 많이 첨부되었다. 얼마나 멋진지 페이지를 넘기면서 '와-'하는 탄성이 절로 나올 지경이었다.

 

 

 

 

  그런데 독자에게 너무 많은 것을 주고 싶었던 걸까? 저자의 마음이 너무 과했던 걸까? 가끔 읽다보면 너무 과하게 감정이입을 한 부분들이 보였다. 음, 이 부분에서 저자는 많은 것을 깨달았나보구나. 아주 많은 영감과 감성이 터져나갈 것 같은 감동을 느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쉽게도 난 별로 동감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직접 가서 보는 것과 사진이나 글로 접하는 것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저자의 감정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몽골의 자연 풍경과 그들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우리 역사와 연결된 부분들을 알아보는 것은 좋았다.

 

 

 

 

 

 

  164페이지 '암각화의 문화적 가치' 부분에서 두 번째 줄에 '뿐 아니라'는 말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를 써야하는 게 아닐까 싶다. '뿐 아니라'를 쓸 때는 '책, 영화 뿐 아니라' 이런 식으로 앞에 연결되면서 사용되는데, 여기서는 온점을 찍은 다음에 이어져서 어색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느 것이 맞는지 확실히 모르겠지만, 낯선 기분을 받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청춘의 인문학 - 흔들리는 영혼을 위한
안상헌 지음 / 북포스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부제 - 흔들리는 영혼을 위한

  저자 - 안상현

 

 

 

  우와, 우와, 우와!

  석기시대 원시인들이 내뱉은 소리가 아니다. 이 책을 읽고 있는 한 독자의 입에서 나온 감탄사이다.

 

  찌잉-찌잉-찌잉-.

  무슨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아니다. 이 책을 다 읽은 아까 그 독자의 마음이 짠하게 울리는 소리를 의성어로 표현한 것이다.

 

  읽으면서 평소에 내가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쉽고 구체적으로 풀어놓으며 동시에 공감대를 형성하는 문장들 때문에 계속해서 감탄사를 연발하고, 다 읽은 다음에는 허기진 마음이 채워지는 그런 느낌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짠한 느낌이 들었다.

 

  이 책은 저자가 모 대학교에서 강의한 내용을 정리한 것이라 한다. 왜 내가 대학을 다닐 때는 저런 강의가 없었는지, 요즘 학생들에게 부러움을 넘어선 질투를 느낄 정도였다. 물론 달리 생각하면 예전과 지금 사회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서일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굳이 인문학이라고 따로 배우지 않아도, 교양 과목을 듣거나 개인적으로 공부하는 경우가 있었다. 전공은 둘째 치고 좋아하는 역사나 문학을 파고드는 학생들을 가끔 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떠한가? 인문학 공부를 한다고 하면, 그래갖고 먹고 살 수 있겠냐고 나중에 어떡하려고 하냐는 질문을 받기 십상이다.

 

  그런 상황은 점점 더 심해져서, 요즘 초등학교나 중학교에서는 수학이나 영어 빼고는 제대로 배우고 가르치는 경우가 없다. 얼마 전에 신문을 보니 미술 학원이나 피아노 학원이 점점 사라진다고 한다. 대신 보습 학원이나 영어 학원이 늘어나는 추세란다. 그러다 대학에 가려고 고등학교 때 미술 학원에서 스킬만 익힌다. 독서 역시 책을 좋아해서 읽기보다는 숙제 때문에 억지로 쓰거나, 원서 넣을 때 필요한 몇 권만 읽는다. 역사 공부 역시 단순 암기식으로 외우는 것에만 치중해서, 흐름이나 관련성에 대해서는 하나도 모르고 공부하기 싫은 과목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요즘 인문학이 유행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그건 공부해야할 과목이 하나 더 늘어난 것에 지나지 않을 것 같다. 회사에서 그것을 중요시한다고 하니, 취직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공부해야하는 분위기이다. 초중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제대로 배우지 않은 것을, 취업 때문에 공부한다고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입시학원처럼 단지 유용한 '스킬' 몇 가지만 배우고 끝나는 것은 아닐까?

 

  저자 역시 이런 점을 걱정한다. 아마 그 때문에 저자가 이런 강의를 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인문학이 무엇인지, 왜 공부해야하는지,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그리고 삶이란 무엇이고 행복이란 어떤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제일 인상 깊은 것은 꿈과 진로는 다르다는 말이었다. 무척 많이 공감이 갔다. 단지 유명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꿈이라면, 취직한 다음은? 취직하고 나면 그 사람의 삶은 끝나는 걸까? 취직하면 죽을 때까지 그 사람은 행복할까? 평소에 막연하게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던 부분이었는데,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 쳤다. 맞아, 그런 거야! 어쩌면 이렇게 쉽고 자연스럽게 설명을 할 수 있을까? 공감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역시 내공의 차이란……. 난 아직 멀었다.

 

  많이 공감하고 인상 깊은 부분의 책장 귀퉁이를 접다가 나중에는 포기해버렸다.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나도 언젠가는 내가 하고 싶었고, 생각해왔던 것들을 이렇게 잘 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제 새로운 길에 들어서는 어린 친구들과 같이 읽으면 좋을 책이었다. 내가 옆에서 뭐라고 말을 제대로 못하니까, 그냥 읽어보라고 슬쩍 들이밀어야겠다. 그들도 나처럼 뭔가 깨닫는 게 있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 사회는 어린 친구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모두가 다 A로 갈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를 만들어놓고, 거기에 끼지 못하면 루저라고 비난하는 분위기를 조성해놓고, 그게 싫으면 B로 가는 길을 너희들이 직접 만들어보라고 강요하는 것 같다. 그리고 A로 가지 못하거나 B로 가는 길을 만들지 못한, 그 때문에 루저라고 비난받는 사람들을 포용하지 못한다. 그래서 무척이나 미안하다. 할 수 있는 게 책 추천밖에 없는 못난 어른이라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치열한 무력을 -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사사키 아타루 지음, 안천 옮김 / 자음과모음 / 201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부제 - 본디 철학이란 무엇입니까?

  저자 - 사사키 아타루

 

 

 

  이제야 말하지만, 책을 읽기 전에 제목을 보고 어떤 내용일까 미리 추측해보는 버릇이 있다. 추리 소설을 좋아해서 그런가? 미리 짐작해서 맞춰보고 맞으면 혼자 좋아하고, 틀리면 '오오!'하면서 놀라곤 한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과 부제를 보았을 때, 도대체 어떻게 이 조합이 이루어지는지 한참을 고민했다. 일본이 요즘 자위대를 어떻게 해보려고 하는데 그런 무력 武力 증강에 관한 문제를 철학적으로 논하는 내용일까? 그런데 표지에 그려진 책은 뭐지?

 

  그런데 읽으면 읽을수록 어딘지 이상하다. 뭔가 말이 미묘하게 어긋나고 있다. 내가 생각한 힘에 대한 얘기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아차'하고 깨달았다. 제목의 무력은 武力이 아니라, 無力이었다. 하아, 어쩐지 내용이 이상하더라. 일본어를 못하기 때문에, 제목이 영어로 적힌 일본어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한자로 된 원제목도 적혀있지 않았다. 결국 다시 책을 읽어야했다.

 

  사사키 아타루라는 이름은 이번에 처음 접했다. 일본에서는 떠오르는 철학가이자 작가라고 한다. 이 책은 2011년부터 그가 참석한 강연이나 좌담회 등을 엮은 것이다. 그래서 그가 예전에 낸 책에 관한 언급이 종종 나온다. 하지만 난 여기서 이름을 처음 들었으니 책을 읽어봤을 리가 없다. 거기다 그와 같이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도 역시 처음……. 그래서 어떤 한 작품에 대해 구체적으로 얘기할 때는 그냥 머리 굴리지 않고 가만히 읽기만 했다. 무슨 말인지 모를 때는 잠자코 있는 게 제일이다. 괜히 이것저것 생각하고 추측하다가는 어디로 튈지 모른다.

 

  저자는 2011년 3월에 있었던 대지진 이후, 일본 사람들이 무력감에 빠졌다고 얘기한다. 하긴 그 정도 재난을 접하면, 사람들은 대자연의 위력을 느끼고 인간이란 얼마나 작고 하찮은 존재냐고 생각할 만하다. 그래서 그 무력감을 극복하기 위해, 저자는 철학과 소설의 역할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어떤 부분은 크게 감명을 받으면서 존경의 눈빛을 보내기도 했고, 또 다른 부분은 위에서도 말했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서 그냥 글자만 읽기도 했다. 나중에 다시 읽으면 그 때는 잘 이해가 갈 것이라는 기대를 품고.

 

  '우리의 제정신을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가르쳐달라'를 요약한 기본 주기 21개는 간단명료하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적어둔 부분이다. 그런데 저 제목, 어딘지 어색하지 않은가? '우리가 제정신으로'라고 해야 문맥상 더 맞을 것 같다. 하여간, 저 부분에서 21번째가 마음에 들었다.

 

  문학이나 예술이 무력하다는 뻔한 말을 하고 있을 여유는 없다. 우리는 훌륭하게 '제조'되었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우리를 만든 사람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작품을 통해 증명해야 한다. 이 참화의 나날 속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음을. -p.181~182

 

  제목처럼 무척이나 치열하게 글을 쓴다는 느낌을 받았다. 살아있다는 증명을 하기 위해, 무가치한 삶을 살지 않았다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 창작 활동을 한다는 생각 자체가 참으로 치열했다. 그냥 취미삼아서, 어쩌다보니 하는 게 아니었다. 내 삶의 흔적이란, 그야말로 내 존재의 증명과 비슷한 말이었다.

 

  저자의 언어에 대한 생각도 꽤나 신선했다. 언어와 이미지를 그런 식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게 재미있었다. 또한 책을 다르게 읽는다는 말도 공감이 갔다. 책이란 읽을 때마다 느낌이 달라지니까.

 

  저자와 다른 사람들이 소설과 철학에 대해 말하는 부분은 참으로 좋았다. '소설을 쓰는 것은 그 누구도 아닌 누군가가 되는 모험이다.' 라는 소제목도 특히 마음에 들었다. '아, 맞다. 그렇게 볼 수도 있구나.'라는 느낌이 팍 왔다. 작가가 그런 모험을 하니까, 읽는 독자도 같이 동참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글이란, 작가와 독자가 서로 교감을 할 수 있는 통로 같은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이 책은 천천히 다시 읽어봐야 할 것 같다. 그리고 그 때는 지금보다 여유 있게 이것저것 생각을 하면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말했다시피, 책은 읽을 때마다 내가 받아들이는 폭과 느낌이 다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기하는 용기 - 실존적 정신분석학자 이승욱의 ‘서툰 삶 직면하기’
이승욱 지음 / 쌤앤파커스 / 2013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부제 - 실존적 정신분석학자 이승욱의 ‘서툰 삶 직면하기’

  저자 - 이승욱

 

 


  이 리뷰를 쓰기 전에, 이 책의 저자가 진행하는 팟캐스트를 한번 들어보았다. 그런데 음, 책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 들어서 조금 놀랐다. 책은 조곤조곤 사례를 들어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펼치고 있는데, 팟캐스트는 다른 방식이었다. 난 책이 더 마음에 들었다.

 

  이 책의 목적은 첫 장을 펼치자마자 프롤로그에 굵은 글씨로 적혀있다.

 

  ‘적절한 시기의 올바른 포기는 인생을 얼마나 편하게 만드는지 모릅니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머릿속에서는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락날락했다. 우선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만화 ‘슬램덩크’의 명장면을 패러디한 컷이었고, 적절한 시기란 무엇인지 올바른 포기는 또 뭐란 말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욕망과 집착을 줄이라는 내용일지도 모른다는 상상과 추측까지 해보았다.

 

  이 책은 위에서 언급했듯이, 총 네 개의 장에 구체적인 사례를 곁들여 저자의 의견을 펼치고 있다.

 

  1장 나는 괜찮은 사람인가?

  여기서는 자신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예를 들면, 왜 남의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지, 내가 직면한 문제의 원인은 집착 때문인가 욕망 때문인가, 내가 남에게 인정받을 만한 것은 무엇이 있는지 등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2장 나는 누구로 사는가?

  이 장에서는 내 존재를 어떻게 누구를 통해 증명할 수 있는지, 무엇을 얻고자 노력하는지 말하고 있다. 자기연민과 자기혐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3장 나는 왜 불안한가?

  사람이 불안한 이유는 남에게 평가받는 것을 의식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미지의 것, 예를 들면 죽음 때문에 현재를 불안해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선택이 문제가 아니라, 그에 따른 책임을 지기 싫어서 두려워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4장 나는 타인에게 무엇을 원하는가?

  제목 그대로, 내가 남에게 집착하는 이유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다. 진정한 나 자신이 없기 때문에, 남에게서 그 빈 공간을 채우거나 자신을 찾기 위해 그렇다고 저자는 얘기한다.

 

  책을 읽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가는 대목도 있고 아니다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는 부분도 있었다. 그런데 공감하는 부분이 더 많았다.

 

  결국 부모와 자식의 관계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건 달걀이 먼저냐 닭이 먼저냐와 비슷한 문제 같다. 어릴 적에 받은 트라우마 때문에 커서 자식에게 집착하고 왜곡된 상을 주입시킨 부모 때문에 또다시 상처받은 아이가 태어난다.

 

  상처받은 상태로, 그것을 치료하지 않고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속으로 곪고 짓무르면서 고름과 피를 철철 흘리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그런 자신이 싫어서 자기 자신을 또 상처주고 경멸하며, 누가 이런 자기 속마음을 알까봐 불안해하는 동시에 누군가 상처를 치료해주길 바란다. 이런 모순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고, 집착을 하거나 강요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여 놓아버리라고 충고한다.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감을 갖고, 지나친 욕망은 버리라고 말한다.

 

  음, 하지만 요즘같이 물질만능주의 사회에서 남들과 다르면 어쩐지 뒤처지거나 루저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런 상황에서 무언가를 놓아버리라는 건 글쎄……. 지나친 욕망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사회에서 뒤처지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몸부림일 수도 있을 텐데.

 

  게다가 저자는 자신을 인정하기 위한 과정에는 세상에 알리거나 타인의 확인이 필요 없다고 하지만, 인간에게는 사회적 인정을 바라는 욕구가 있다고 배웠다. 그걸 버리라는 건가?

 

  이런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일어났다. 그러니까 내가 바라는 게 욕망인지 아니면 내 능력 안의 일인지 어떻게 알 수 있담? 그러자면 자기 자신에 대해 정확히 파악하는 게 우선이 아닌가?

 

  아, 그렇구나. 이제야 알 거 같다. 소크라테스가 왜 “너 자신을 알라.”고 말했는지, 그가 왜 시공간을 초월해서 추앙을 받는지 알 거 같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라는 요구는, 타인을 평가하는 잣대를 자신에게 적용하니 스스로 보기에도 별 볼 일 없고 사랑할 수 없더라는 자기 고백에 다름 아닙니다. -p.59

 

  타인이 당신과 똑같은 존재이길, 똑같은 감정표현 방식과 관계 방식을 갖기를 기대하지 않길 바랍니다. 만약 당신에게 그걸 요구하는 누군가가 주변에 있다면 그에게 싫다고 정중히 말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에 반응하는 상대방의 감정을 지나치게 개인적으로 받아들여 상처받지 마십시오. -p.20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