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5면. 1976.1.13. 보고싶은 프로를 원하는 시간에. 

76년에는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것을 볼 수 있는' 텔레비전 혁명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같은 TV 혁명이 이루어지면 시청자들은 TV방송국의 프로변화에 더이상 구애되지 않게 될 것이며 어린이 쇼우프로를 보려는 아들과 축구경기를 보려는 아버지간의 다툼이 사라지게 될 것이며 시청자들은 오늘날 녹음기나 전축으로 하는 것처럼 좋아하는 쇼우를 쉽게 녹화할 수 있고 좋아하는 영화나 연주회 강연등을 쉽게 볼 수 있게 된다. 

이 같은 TV혁명의 기수는 아직 시판단계에 있는 비디오 녹화장치를 갖춘 새로운 TV수상기인데 이것이 금년에는 미국전역에 보급되어 그같은 TV 혁명을 대중화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TV수상기는 한편으로는 TV영상이 브라운관에 나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브라운관에 나타난 것은 물론 나타나지 않은 다른 방송국의 프로를 동시에 녹화할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에 시청자들은 같은 시간에 방영되는 다른 방송국들의 2개프로 중 하나는 그 시간에 보고 다른 하나는 녹화해두었다가 편리한 시간에 볼 수 있으며 꼭 보아야 할 프로가 방영되는 시간에 외출을 하게 되는 경우 그 시간에 보고자하는 프로가 녹화되도록 해놓았다가 귀가해서 볼 수 있으며 인간의 달착륙과 같은 역사적인 장면을 녹화하여 영원히 보관해둘 수 있게 되었다.   

박완서(1979.11.9). 살아있는 날의 시작<34>.동아일보 4면. 

"(전략) 과외방은 여름엔 서늘하고 겨울엔 따뜻하죠. 방음장치도 잘 돼 있고요. 그리고 누구네 다 있는 테레비말고 아직은 귀한 비디오가 있어요. 통때는 그림의 떡이던게 갑자기 신기한 실용성을 띠고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죠. 먼저 입맛을 다시는 놈이 비디오를 조작하죠. 엄마 우리는 나무라지 마세요. 우린 그게 거기 있었으니까 본 것 뿐이니까요. 거기있는 비디오테이프는 다 일본말로 녹음된거죠. '대부'도 '광야의 무법자'도 연기는 코쟁이들이 하는데 시부렁 거리긴 일본말로죠. 구경군은 열여덟 살의 한국소년이고요. 상상력이 풍부한 나이죠. 코쟁이는 행동하고, 왜놈은 말하고 엽전은 사고한단가요? 그 광경을 한 번 상상해 보세요. 그야말로 코메디죠."  

박완서(1979.11.12).살아있는 날의 시작<36>.동아일보 4면. 

"엄만 '에마뉴엘 부인'을 보셨어요?" 

"뭐라고? 너 지금 뭐랬니? 그럼 거긴 그 테이프까지 마련돼 있더란 말이냐?" 

그 여자는 불에 덴 것처럼 잡고있던 아들의 손을 뿌리치며 대경실색했다. 

"아니예요. 전 봤다고 안했어요? 보셨느냐고 여쭤봤을 뿐이죠?" 

"못봒다. 안봤어. 그 해괴한 걸 왜 보니?" 

"보시지 않으셨다면서 해괴한 건 어떻게 아셔요?" 

"소문도 못듣냐? 세상에 아들하고 이런 얘기까지 해야하다니.." 

"엄마, 어제던가요. 그제던가요. 아뭏든 가외에서 시험을 본 날이었으니까요. 며칠전서부터 시험본다, 시험본다로 협박받다가 마침내 시험을 보고난 다음이었기때문에 우린 모두 다 어지러울 정도로 피곤했죠. 어두운 골목에서 한 녀석이 책가방을 드립다 태질하면서 말했어요. 야아 새끼들아 우리 심심한데 계나 하나 모으자고요. 참 시시한 놈도 다 있죠. 쳇 대학 뒤구녁으로 들어갈 기부금 계라면 우리 엄마가 이미 하고 있을 걸. (중략)그랬더니 녀석 씩 웃으면서 뭐랬게요? 야, 왜 그렇게 말이 많니? 내 계는 '에마뉴엘 부인'계다. 들래? 안들래? 우린 모두 다 어두운 골목에서 말없이 더운 침을 삼켰죠." 

"얘야,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 엄마는 뭐가 뭔지 하나도 못알아듣겠다." 

"보충설명을 하죠. '에마뉴엘 부인'의 비디오테이프는 빌리기만 하는데도 돈이 꽤 든다는군요. 그래서 그 자금을 우리끼리 합자를 하자는 소리였어요." 

(중략) "실망했어요. 엄마도 다른 엄마들과 조금도 다르지않군요. 우리들의 책상서랍속의 담배 한 갑, 우리들 속에 있는 '에마뉴엘 부인'에 대한 호기심만 얼핏 엿보고도 대경실색, 우리를 죄인취급 하려는 건, 학교에서 가끔 예고없이 우리의 주머니나 가방을 뒤져서 꽁초나 연애편지를 찾아내가지곤 사건 난 것처럼 우리를 망신 주고 수틀리면 퇴학이나 정학까지도 불사하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는 한마디로 웃기는 일이에요. 엄마는 물론 담배보다는 '에마뉴엘 부인'이 더 용서할 수 없는 무도덕이라고 생각하시겠죠? 근데 왜 제 방에서 담배만 찾아내고 '에마뉴엘 뷰인'은 못찾아 내셨나요? 문맹도 아니면서.." 

 


 

음반법 개정안 마련 제작 업자에 체형도. 경향신문(1980.2.23).7면. 

정부는 시중에 범람하고 있는 비디오테이프에 대한 법적규제를 신설하고 불법,불량음반제작자에게 체형을 가할 수 있도록 단속벌칙규정을 강화한 음반법개정안을 마련했다. 22일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오는 임시국회에 상정될 음반법개정안은 음반에 영상과 음이 함께 녹화된 비디오테이프를 포함시키고 음반제작업체의 등록 취소요건을 강화, 등록을 취소당한 자는 1년 이내에 재등록할 수 없도록 규정했다. 또한 단속공무원에게 불법불량음반을 적발, 수거할 수 있도록 새로 규정, 단속공무원의 권한을 법적으로 뒷받침했고 벌금형으로 그치던 벌칙도 강화, 2년 이내의 체형을 부과하거나 벌금을 현행 1백만원이하에서 3백만원 이하로 대폭 인상했다. 

김성녕(1980.2.26).VTR.경향신문.4면. 

하오 7시. 어둠이 깔린 서울의 신흥 주택가 한가운데 있는 H씨 집앞에 3대의 택시가 동시에 멈췄다. 10여명의 장년들이 그 집으로 우르르 몰려 들어갔다. 돌 잔치라도 있는 것일까. 그러나 그 집에서는 어처구니없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었다. 모두 숨을 죽이고 한 곳을 향해 시선들을 집중하고 있었다. 성인용 VTR을 보기 위해 퇴근 후 직장동료들이 몰려든 것.  

VTR, 곧 비디오테이프레코더는 TV화면에 나타나는 영화로서 성인용의 총아라고 일컬어지고 있는 모양이다. 돈푼깨나 있다는 집에는 한 대쯤 준비돼 있는 일종의 '스테이터즈 심벌'이기도 하다. 밤만이 아니다. 낮에는 그집 주부의 친구들이 요지경(?)을보기 위해 모여 들어 똑같은 장면이 벌어지곤 한단다. 이에 뒤질세라 아이들까지 어른들이 집을 비운 사이 몰래 안방에 들어가 슬쩍(?)해 본다니 문제는 여기서부터 벌어진다.   

김유경(1980.4.29). 유익한 문화정보 생생히..주한 문화원들-자국 문화영화 상영. 경향신문.4면. 

독일 미국 프랑스 문화원은 서울에 모여 있는 주한외국문화원 가운데 그중 활동이 두드러진 곳이다. 도서실 이용과 함께 여기서 정기적으로 상영하는 영화나 영상녹화필름(VTR)은 해당국의 각 분야에 걸친 문화권을 생생히 보여주는 역할을 해내고 있어 이용도가 높은 편이다. 영화상영의 경우 어느나라보다 번잡한 일정을 잡고 있는 프랑스 문화원은 68년 문화원 창설 당시 매주 2회의 필름을 상영하던 것을 74년부터는 연 72편으로 늘려 매일 4회씩 상영하고 있다. 프랑스 국내 제작회사 소유의 흥행권에 대한 상업성이 소멸한 영화를 16MM필름으로 복사, 각국의 문화원으로 보내지는 것인데 1940년대 영화에서부터 70년대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망라돼있고 작품수준 역시 형편없는 영화에서부터 화제를 일으켰던 수준작까지 다양하다. 

서울에서 보게되는 프랑스영화는 방콕을 중심으로 동남아권을 도는 필름 중 연초에 주한 프랑스문화원에서 선택해오는 것들이다. 매주 화,목요일에는 특별히 전문영화인을 위해 또는 보통 때 시간을 내지 못하는 일반인을 위해 상영되기도 한다. 국내에 거의 소개되지 않는 감독이나 작품을 대할 수 있어 긴요한 참고자료가 된다는 게 이용자들의 말이다.  

영화클럽에서는 감독이나 그 영화기법에 따른 관찰자료로 문화원의 영화상영프로그램을 애용한다. 모두 영어자막이 따라나와서 영화의 이해는 불어를 듣고 이해하거나 영화를 해독하는 층만이 감상이 가능하다.  낮은 천장으로 불편한 1백10석의 자리는 대부분 학생들로 메워진다. 이곳의 입장권은 1백50원. 

(중략)77년부터는 영상녹화기에 의한 비디오필름 4백80여편이 확보됐다. 최근에는 아비뇽축제 파리오페라단등이 비디오필름에 담겨 소개됐다.  (중략) 미국문화원은 불규칙적으로 매달 1회나 2회 '흘러간 명화'의 상영이 있다. 그러나 영상녹화기의 이용이 높고 16MM의 문화영화필름이 예술 경제 등 각 분야 별로 수백 편이 비치돼 있다. 
 

김상(1980.4.11). 늘어가는 비디오이용. 동아일보.5면.  

"아빠 우리는 비디오 안 사" 이웃집에서 VTR로 컬러만화영화를 신나게 보고 온 꼬마가 아버지에게 매달리져 졸라댄다. "생일날엔 꼭 비디오를 사달라"는 아들의 말에 김모씨(37.회사원)의 표정은 심각해진다. 특권층의 표상으로만 여겨오던 VTR가 언제부터 아이들의 입에서까지 오르내리게 됐을까. (중략) 1956년 개발된 VTR가 우리나라에 흘러들어온 것은 10여년전부터, 해외여행자 및 미군 부대등의 복잡한 루트를 통해 음성적으로 침투한 음향과 영상의 이 마술상자는 일부 특권층과 부유층으로 퍼졌다. 자체 프로그램을 제작,공급하는 프러덕션도 없을뿐더러 여러가지 정치 경제적 여건에 묶여 VTR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비디오를 갖춘 상류층에서는 일본에서 제작된 혹은 일본 프로그램을 복사한 외설테이프를 구입해서 돌리게 된 것이다. 뿐만아니라 비밀요정 등의 고급유흥업소에도 비디오를 설치, 비밀영화관을 차리게됐다. 

그러다 70년대 후반에 접어들어 VTR의 대량생산으로 가격이 1백50만원 정도로 다소 떨어지고 대중의 관심이 쏠리자 VTR는 대중업소에도 등장했다. 낙지집 주점 다방 등에 설치된 VTR는 주로 일본의 스포츠나 쇼프로그램을 복사한 것. 청소년들은 비디오에 대한 호기심으로 어두컴컴한 '청소년출입금지구역'에서 시간을 보내고 일어 자막에도 별 저항을 느끼지 못한 채 저질테이프에 몰두해 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VTR의 건전한 이용도 시도되고 있다. 요즘 고급주택가나 호화 아파트 주변의 유치원에서는 "비디오가 있어야 유지가 된다"는 말까지 생겼다. 동기야 어쨌든 이렇게 설치된 VTR는 유희 등의 유아용테이프를 사용, 교육에도 이용되고 있다. 또 회갑이나 결혼식의 모습을 비디오 카세트에 담아주는 대행업소도 늘어나는 추세. 주로 아파트촌과 고급호텔예식부를 무대로 활약하는 이들 잔치녹화업자들은 건당 5만~8만원씩 받으며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아직은 소규모이고 자체 프로그램을 제작할 정도는 못되지만 그런대로 VTR의 올바른 이용이 이뤄지고 있다. 일부 대기업이나 대학에서도 연수 특별교육용에 사용, 제방향을 잡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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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짓기 -상 -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21세기총서 3
피에르 부르디외 지음, 최종철 옮김 / 새물결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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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中-일상적으로 사용되는 협소하고도 규범적인 의미의 '교양culture'을 문화인류학적 의미의 '문화'culture의 포괄적인 맥락으로까지 확대하지 않는다면,그리고 극히 세련된 대상에 대한 미려한 취향을 음식 맛에 대한 기본적인 취향과 연결하지 않는다면 문화적 실천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다.-21쪽

때로 전형적인 '현학적'용어로 예술작품에 대한 '독해'라고 불리는 행위의 논리가 위와 같은 대립의 객관적인 토대를 보여주기도 한다. 이 경우 소비는 의사소통과정의 한 단계 즉 판독 또는 해독 행위로서, 이를 위해서는 암호나 약호에 실천적으로 통달해 있어야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볼 수 있는 능력은 지식 또는 개념 즉 단어들에 의해 측정되며, 지식이나 개념들은 보이는 것들을 명명하며, 따라서 지각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시한다. 예술작품은 오직 문화적 능력, 즉 해독의 기준이 되는 약호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나 의미가 있고 오직 그런 사람의 관심만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23쪽

회화나 사진에 대한 대중적 평가는 칸트 미학과는 대극에 놓여 있는 '미학'(이것은 실제로는 에토스이다)에서 유래한다. 미학적 판단의 특수성을 개념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칸트는 기쁨을 주는 요소와 희열을 가져다주는 요소, 더 일반적으론느 대상을 주시하는 말 그대로의 미학적 특징을 보장해주는 유일한 요소인 무사무욕과 선을 규정하는 이성의 이해관심을 구분하려고 노력한 반면 민중계급은 모든 이미지가 분명하게 하나의 기능을 하기를(단지 기호로서만 가능하더라도 마찬가지다)바라며, 도덕규범이나 기꺼움 등을 참조로 하여 작품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흔히 아주 분명하게 드러난다. 비난하건 칭찬하건 이들의 음미는 항상 윤리적 토대를 갖고 있다.-28쪽

취향과 문화 소비를 연구하는 과학은 전혀 미학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침범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시작된다. 즉,음악이나 음식,회화,스포츠,문학과 헤어스타일에 대한 선호도처럼 얼핏 보기에는 전혀 같은 잣대로 잴 수 없어 보이는 '선택들'을 서로 연결시키고 있는 관계를 이해가능한 형태로 드러내려면 정통 문화를 고립무원의 독립된 우주로 분리시키고 있는 성스러운 경계선을 없애버려야 한다. -30쪽

제1장 문화귀족의 칭호와 혈통 中 - 측정된 능력이 학교 교육제도에 의해 공인될수록, 그리고 측정기술(39)이 '학교적일수록' 수행 능력performance과 학력자격 titre scolaire간의 관계는 밀접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정규 학교교육을 받은 햇수를 표시하는 지표로 기능하는 이 학력자격은 가족으로부터 상속되는가 아니면 학교에서 획득되는가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문화자본을 완벽하게 보증해주며, 이 문화자본의 지표가 된다.-39쪽

학력 귀족이 보기에 '교양인'의 본질에 스스로의 삶을 일치시킨다는 이야기는 곧 교양인이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조건, 교양인이라는 말 속에 암묵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조건을 받아들인다는 이야기와 마찬가지가 되는데,각 칭호의 위광이 높아질수록 이러한 조건도 크게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학교 교육체계가 정통적인 독학을 목표로 제시하고 그에 필요한 수단을 제공해주는 것은 전혀 역설적인 일이 아니다.-58쪽

'일반 교양'을 획득하기 위해 필요한 이러한 정통적인 독학은(각 부문,과목,전공 또는 등급간에 존재하는) 교육의 위계상층으로 올라갈수록 그만큼 강력하게 요구된다. '정통적 독학'이라는 말은 본질적으로는 모순적인 표현인데, 이 말을 사용하는 것은 아주 높이 평가되는 학력자격증 소지자의 '자유 교양'과 독학자의 비정통적인 자유 교양 간의 종적인 차이를 가리키 위해서다.-58쪽

비정통적 자유 교양의 사회적 부가가치는 오직 기술적 효율성의 정도만큼만 가치화되며, 따라서 사적 공간이나 가정이라는 우주를 벗어나 공인된 능력과 경합을 벌일 때마다(무자격 의사에 대한 제재처럼) 법적인 제재에 노출된다. 그러한 교양이 독학에 의해 축적된 지식이건, 아니면 요리법이나 식물재배법, 공예가의 기술 또는 다른 사람으로는 대체(58)할 수 없는 전문지식처럼 실천 속에서 또 실천을 통해 그리고 특히 특정한 실천을 주입하고 그러한 실천의 획득여부를 공인하기 위해 설립된 기관의 통제 밖에서 획득하는 '경험'이건 상관이 없다.따라서 이것은 공식적으로 특수한 능력을 보장하는 학위증(고급기술자 자격증을 예로 들 수 있다)의 암묵적인 규정 속에 명기되는데, 이러한 자격증은 그 소유자가 '일반 교양'을 즉 자격증의 권위가 보장해주는 만큼 폭넓은 일반 교양을 소유하고 있음을 실제로 보증해준다.-58,59쪽

학력이나 등급 구분에 의한 공식적 차이는 분류되는 각 개인들에게 누구나 그러한 차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지지하고 있다는 믿음을 불어넣음으로써 실제적인 차이를 만들어내는(또는 재강화하는)경향이 있으며, 따라서 이를 통해 실제적인 존재를 공인된 존재와 일치시키려는 행동을 취하도록 만든다. 따라서 일기를 쓰거나, 진한 화장을 하는 일, 극장에 가는 일, 또는 댄스홀에 가는 일, 시를 쓰거나 럭비를 하는 일 등 제도의 명확한 요구사항과는 전혀 무관한 행동들도 다양한 매개를 통해 끊임없이 강조되는 암묵적인 요구로서 교육기관 안에 할당된 위치 안에 각인될 수 있다. -60쪽

이러한 매개체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교사의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인 기대와 동료집단의 압력을 꼽을 수 있는데, 다시 이들의 윤리적 성향 자체는 교육기관에 의해 도입되고 재강화되는 집단적 가치에 의해 규정된다. 이러한 할당효과와 이 안에 담겨있는 신분배분 효과는 분명 학교 안에서는 가르치지도 않고 심지어는 명확하게 요구하지도 않지만, 신분(60)이 가리키는 위치에 부여되는 속성과 그러한 위치가 부여해주는 각종 자격증이나 또는 이를 통해 접근할 수 있는 사회적 위치 등으로 구성된 문화적 실천을 성공적으로 강제하는 데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60,61쪽

의문의 여지없이 이러한 논리는 특수한 부류의 작품들, 즉 학교의 기본도서목록에 의해 공인된 문학작품이나 철학저서와의 빈번한 접촉을 통해 획득한 정통적 성향이 예를 들어 아방-가르드 문학처럼 그보다는 덜 정통적인 작품이나 또는 영화처럼 그보다는 학교의 공인을 적게받는 영역으로 확대되어 나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중략)영화감독의 이름처럼 '쓸데없는'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적성이나 능력이, 수입이나 주거장소 그리고 나이에 따라 크게 빈도수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영화관람보다는 학력자본과 밀접하고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61쪽

영화감독에 대한 지식은 단순한 영화관람보다는 문화자본고 한층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중략) 영화관람도 학력자본에 따라 크게 달라지지만(하지만 박물관 관람이나 연주회에 가는 일만큼 그렇게 크(62)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소비형태의 차이만으로는 다양한 학력자격증 소지자간에 나타나는 영화감독에 대한 지식의 차이를 설명하기에 충분하지 않다. 이러한 결론은 재즈,만화,추리소설 또는 공상과학(sf)소설처럼 이제 막 문화적으로 성별되기 시작한 장르들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62,63쪽

이러한 능력은 본질적으로는 일부 '영화광'이나 '재즈 팬들'이 몰두하고 있는 '아카데믹한' 노력(예를 들어 영화의 판권 안에 언급되는 내용을 카드식 상자에 일일이 베껴놓는 일을 들 수 있다)을 통해서는 획득할 수 없다. 이런 능력은 흔히 가정이나 학교에서 정통 문화를 몸에 익히거나 주입받으면서 획득한 성향을 바탕으로 해서야 비로소 가능해지는 무의식적 학습을 통해 습득된다. 결국 이러한 성향은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일련의 지각도식과 평가도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영역에도 이항가능하며, 따라서 이러한 능력의 소유자들이 다른 문화적 경험들도 이와 비슷한 태도로 대하도록 하며, 각 경험을 상이하게 지각(64)-64쪽

하고, 분류하고 기억할 수 있도록 해준다. 예를 들어 똑같은 영화에 대해서도 어떤 사람들은 '버트 랭커스터가 나오는 서부 영화'라고만 이야기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존 스터게즈 감독의 초기작품'또는 '샘 펙킨파의 최신작'이라고 말한다. 이때 어떤 부분을 볼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보고, 따라서 제대로 영화를 보는 올바른 방식을 정할 때, 각자는 자신이 속해있는 사회계급 전체("그 영화 봤니?"나 "그 영화는 꼭 봐야 돼"하는 식의 말을 통해 지침을 주고 주의를 환기시킨다)그리고 각 집단에 의해 정통적인 분류 방법과 거명할 만한 예술적 향유에는 반드시 따라다니게 되는 담론을 생산하도록 권한을 위임받은 비평가 집단의 협력을 통해 지침을 얻는다. 따라서 학교에허 가르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명시적으로 요구하지도 않는 문화적 실천들이 학력자격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변화하는 이유 또한 이런 식으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65쪽

극히 헌신적인 '영화광'은 문화자본을 물려받은 쁘띠 부르주아지 사이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감독이나 영화배우에 대한 이들의 지식은 해당 영화에 대한 직접적 체험을 훨씬 넘어선다. 공무원의 약 31%가 보지도 않은 영화배우의 이름을 거명했으며, '의료보건 서비스직 종사자'의 약 32%가 보지도 않은 영화감독의 이름을 거명했다. -64쪽

작품이해와 평가는 분명히 소유자의 의도에 따라서도 크게 달라지지만, 이 의도 자체는 이미 특정한 역사적-사회적 상황에서 예술 작품과 관계를 맺는 방식을 규정하고 있는 실천적 규범과 이러한 규범에 적응할 수 있는 소유자의 능력 즉 예술적 훈련의 산물이기도 하다.그러므로 이러한 악순환에서 벗어나려면 예술작품을 '순수하게'예술 작품 자체로 지각한다는 이상은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예술 영역에 자리잡게 되는 진정 미학적인 정통성을 구성하는 원리들이 공표되고 체계화된 결과란 점을 간파하기만 해도 충분할 것이다. 오늘날 미적 지각 양식은 '순수한'형식을 획득했지만 이 형식 자체가 이미 예술 생산양식의 특정한 상태에 조응하고 있다. 기능에 대한 형식의 절대적 우위.-68쪽

'교양 있는'관람객들의 구별distinction에 관심을 갖는 것은 외적인 요구(이것은 수수료라는 형태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에 맞서 자신의 자율성을 고수하고, 기능보다 자신이 완전하게 통제할 수 있고 예술을 위한 예술, 즉 예술가들을 위한 예술을 통해 순수한 형태의 예술로 나가도록 이끌어주는 형식을 우선시하려는 예술가의 관심(생산의 장의 자율성이 높아질수록 이것도 증가하게 된다)과 비견될 수 있다.-72쪽

대중 '미학'中 - 문화자본이 전혀 풍족하지 않기 때문에 노동계급과 중간계급 분파들이 모든 종류의 형식 실험recherche formelle에 대해 갖게 되는 적대감은 연극과 회화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며,이 두 부분보다 훨씬 더 정통성이 없는 사진과 영화에서는 한층 분명하게 드러난다.-73쪽

사진의 가치는 각 사진이 전달하는 정보에 대한 관심과 이러한 정보전달 기능을 명확하게 수행할 수 있는 정도, 간단히 말해 정보의 가독성에 의해 측정되는데, 이 가독성은 그 자체가 정보의 의도나 기능의 가독성에 따라 변화하며, 따라서 각 정보에 대한 평가는 시니피에에 대한 시니피앙의 표현상의 적합성 정도에 따라 크게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사진에는 제목이 붙어있으리라고 기대되며,또는 실제로 사진에는 표제가 붙어있어 사진으로 찍힌 내용이 의미하려는 내용을 제대로 드러내고 전달해주는지를 판단할 수 있도록 해준다. -90쪽

'통달한 사람'connaisseur의 능력은 문화획득 도구를 무의식적으로 완숙하게 다루는 데서 찾을 수 있는데, 이들은 천천히 시간을 두고 대상에 익숙해지려는 노력을 통해 이러한 능력을 획득하며,바로 이것이 작품과 친숙해질 수 있는 토대가 된다. 이 능력이 바로 기예로 이것은 사유방식이나 생활양식처럼 결코 지침이나 처방으로는 제대로 전달할 수 없는 실제적인 숙련을 의미한다.-132쪽

모든 제도화된 학습은 어느 정도의 합리화를 전제하는데, 이것은 소비되는 재화와의 관계에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유미주의자의 지고지순한 쾌락은 얼마든지 개념규정 없이도 이루어질 수 있다. 이것은 '초심자'의 아무 생각 없는 쾌락(이것은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의 눈이라는 신화를 통해 이데올로기적으로 찬미된다)만큼이나 쁘띠 부르주아와 '벼락부자'parvenu의 소위 무쾌락적인 사유와도 대립된다. 이들은, 막상 보지도 않은 영화에 대해 정말 시시콜콜히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영화광처럼 항상 경험보다는 지식을 우위에 놓으며, 작품에 대한 논의를 위해 작품감상을, 다시 말해 훈련askesis을 위해 감각aisthesis을 희생하는 금욕주의적 타락의 형태에 노출되어 있다. -133쪽

획득양식의 효과는 가구,의복,요리처럼 일상생활에서 진행되는 통상적인 선택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이것들이 옛날부터의 뿌리 깊은 성향을 특히 분명하게 드러내 주는 이유는 교육체계가 개입할 수 있는 장의 바깥에 놓여 있는 이것들이 실제로 노골적인 취향에 직면하기 때문이다.이러한 취향에서는 주간여성지나 '이상적인 가정'을 단골 주제로 다루는 잡지처럼 정통적이지 않으면서도 정통성을 실현하기 위한 심급들instances말고는 취향에 대한 분명한 지침이나 요구를 찾아볼 수 없다.-155쪽

문화적 자기투자(예를 들어 독학)-163쪽

구식 독학자의 특징은 기본적으로 특정한 문화에 대한 경외감에서 찾을 수 있는데, 실제로 이 경외감은 어릴 적에 급격하게 정통적인 학교교육으로부터 배제되었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따라서 이들은 항상 문화에 대해 열렬한, 하지만 터무니없는 숭배의식을 갖고 있지만, 정통 문화의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그러한 숭배를 기이한 충성서약으로 생각하게 된다.-165쪽

자신의 창의적인 노력에 의한 철저한 사숙이나 독학을 통해 너무 이른 시기에 야만적으로 단절되어버린 궤적을 계속 이어나가기 위한 수단을 모색하려는 독학자들이 정통 문화와 그 문화의 담당자인 교육기관 당국과 맺고 있는 모든 관계에는,배제된 사람들로 하여금 본인이 배제되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해줄 수 있는 체계의 낙인이 찍혀 있다. 이와 반대로 신식 독학자들은 흔히 교육체계에서 상당히 놓은 수준에까지 적을 두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처럼 오랜 기간 고생만 하지 제대로 대가를 돌려받지 못하는 재학기간을 통해 정통 문화로부터 '해방되는' 동시에 서서히 미몽에서 깨어나, 이 문화와 친밀한 동시에 환상에서 깨어나는 관계를 맺게 된다. 이것은 멀리서 경외감을 감추지 못하는 구식 독학자들의 태도와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다. 물론 구식 독학자들처럼 강력하고 열정적으로 자기 투자를 하지만, 전혀 다른 영역 즉 학교 교육체계에 의해 외면당하고 무시되는 영역에 투자한다.-166쪽

고전음악이나 재즈, 연극 또는 영화 등에 대한 특수한 능력은 상이한 시장 즉 가정, 학교 또는 직업시장이 그 능력을 축적하고 응용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기회의 크기에 따라, 다시 말해 각 시장이 이러한 능력의 획득을 강화하고, 새로운 투자를 유도할 수 있는 이윤을 약속하고 보증해줌으로써 그러한 능력을 획득하도록 촉진시킬 수 있는 정도에 따라 달라지게 된다.-170쪽

영화나 재즈, 더욱이 만화나 SF 소설 또는 추리소설과 같은 '중간수준'의 예술은 문화자본을 학력자본으로 전환하는데 완벽하게 성공했거나 정통적인 방식으로(즉 어릴 적부터 익숙해짐으로써)정통 문화를 획득하지 못했기 때문에 주관적으로나 객관적으로나 두 면에서 모두 정통 문화와 불편한 관계를 갖고 있는 사람들의 투자를 유도하는 경향이 있다.-172쪽

분석도구에 대한 성찰적 분석은 인식론에 특유한 섬세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얻는 데 필수불가결한 조건인 것이다. 실증주의적인 태만함에 몸을 맡기면 확인된 관게의 측정조건 자체를 문제시하는 대신 그러한 관계의 강도를 소극적으로 검증해보려는 노력으로 그치고 말게 된다.측정 조건 자체를 문제시하는 경우에만 다양한 관계들의 상대적 강도를 설명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184쪽

문화 능력은 각 능력의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인 사회적 시장에서 획득되기 때문에 이러한 시장에 따라 크게 달라지게 되며, 따라서 문화를 둘러싼 모든 투쟁의 목표는 행동양식을 통해 획득조건의 몇몇 특수한 요인들 쪽으로, 즉 특수한 시장의 특징이 뚜렷이 새겨져있는 생산물에 가장 유리한 시장을 만들어내려는 쪽으로 집중된다. 따라서 오늘날 '대항문화'라고 불리는 것은 학교시장의 제약요소(신식 독학자들만큼은 자신감이 없는 구식 독학자들은 자신들의 생산물의 특징을 미리 규정짓는 이러한 제약요소에 그대로 복종하고 만다)로부터 벗어나려는 새로운 유형의 독학자들의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187쪽

이들은 전혀 다른 시장을 창조함으로써 그렇게 하려고 한다. 사교계나 지식시장과 마찬가지로 그 나름의 독특한 서열화와 성별을 행하는 기관과 행위자들을 갖고 있는 이 시장은 문화상품 시장을 완벽하게 통일함으로써 학교시장이나 또는 최소한 극히 '학교적인' 영역을 지배하고 있는 능력과 행동 방식의 평가원리를 강요하는 학교 교육체계의 의도에 도전할 수 있다.-18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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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도서관 앞에 놓여진 몇 송이 국화꽃, 조촐한 인원만이 모인 가운데 치뤄진 추모의 목소리, 스쳐가며 구경하는 사람들, 시끌시끌한 신촌의 젊은 기운. 시험기간이라 길게 늘어서있는 도서관 대기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무엇을 기념하며, 현재의 삶을 고민할 것인가.  













































사진 원본 : http://www.mlbpark.com/bbs/view.php?bbs=mpark_bbs_bullpen09&idx=485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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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11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슴이 콱 막혀요ㅠㅠ

얼그레이효과 2010-06-15 13:51   좋아요 0 | URL
오랜만입니다. 학교 지나가다 관련된 어떤 풍경이 있어 사진을 퍼왔어요.

saint236 2010-06-11 1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만 아니면 돼라는 분위기가 팽배한 거죠. 그러니 무관심한 거고. 이젠 이한열이 누구인지, 전태열이 누구인지 대학생들은 관심조차 없습니다. Need가 삶을 지배하는 거죠.

얼그레이효과 2010-06-15 13:52   좋아요 0 | URL
236님의 고마운 분노 속에서, 또 알게 모르게 역사와 희망을 되새김질하는 동시대인들이 있다는 소망 하나 가져봅니다.

미지 2010-06-28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시대를 거치고 또다시 이 자리라는 것이 아프고 슬픕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6-28 20:56   좋아요 0 | URL
또 다음은 무슨 페이지를 넘길 수 있을까요..기대와 두려움을 동시에 갖습니다.
 


나는 에픽의 타블로 결국 내 말대로 지도 한장으로 한국 힙합의 TOP으로
학벌로 계산적으로 밀어붙힌 PR 수단으로 대중의 눈에 선망과 반감의 대상으로
내 존재 내 손에서 벗어나 왜곡돼 가요계 변두리 상아탑에 구속돼
대중과 매니아 줄다리기 밧줄이 내 목을 매, muthafuckin' haterz 나를 죽여도 부족해
삼도내 위에 힙합이란 배가 돛을 펴, 날 욕해봤자 당신의 혀가 노를 져
그만둬, 벌써 눈 부릅떳어 나... 다른 MC들의 손에 든 Brutus의 칼
잘 갈아봤자 꿰뚫을 수 없는 EPIK HIGH, 니가 존경하는 수많은 MC들의 대필자
mc와 rock star 경계선을 지워가, 그래 나 - 한국힙합 표준의 배신자  

- 에픽하이의 정규앨범 High Society(2004) 중 <뒷담화> 2절 

 6.2 지방선거가 끝나고 인터넷에 분 '타블로 바람'. 이른바 '타풍'.  

결국  이선웅을 깠던 자들이 맞은 '역풍'  

타블로 바람에 신이 나 키보드에 두드리는 광기의 손엔 다같이 '순풍' 

캐나다 놈이 한국 돈 실컷 버는 것도 기분 나쁘고, 군대도 안 간 것에 

화가 나 '기절초풍 '

그러나 그들의 기절초풍에 스며든 자본주의적 삶이 선물한 증오와 경쟁,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학벌에 대한 어긋난 선망과 미디어의 말장난  

그리고 이 안에서 쌓여가는 도를 넘긴 그들의 적대는 '광풍' 

결국,아니면 됐고와 미안합니다란 말 한 마디로 타블로에게 보살로 살 것을 

제안하는 그들의 바람은 

어쩌면 또 다른 타블로를 찾아나설지도 모르는 '태풍'   

mc 얼그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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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11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MC까정?

얼그레이효과 2010-06-15 13:52   좋아요 0 | URL
그냥 인터넷에 타블로 너무 까이길래, 유사 래퍼가 되어 봤습죠.에헴.
 

 1

진부한 회한이 될 수도 있지만, 나를 비롯한 젊은이들은 '계간지'의 체온을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지금 내가 소속된 '당대비평' 일도 내 몸에 익숙하게 만드는 데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다. 서점에 가서, 차라리 <지큐>나 <에스콰이어>에  실린 '새끈한' 문화비평이나, '시사평론'을 읽고 "야, 허지웅이 쓴 그 칼럼 봤어?", "김현진이 쓴 에세이 봤어?"로 말문을 트는 친구들이 익숙한 세대에 속한 나로선, 가끔 <창작과 비평>이나 <실천문학> 이야기를 꺼내는 내 또래 친구들을 보면 신기하다 못해 징그럽기까지하다.(물론 이 징그러움은 좋은 의미다) 

출판 시장을 그리 잘 알지 못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출판론>이란 학부 강의 때, 모 메이저 출판사 사장님으로부터 '인문,사회 출판 시장의 죽음'을 듣고 난 이후로, 또 내가 실제 공부 이외의 활동으로, 책 만드는 일을 하면서 느끼는 한기와 온기란 게 있다. 각종 칼럼을 통해 '앓이'를 표시하는 그런 인문 사회 비평 저서의 '감기 현상'을 글로 아닌, 내가 직접 체감할 때, 좀 깊은 고뇌를 하게 된다.  

나는 다행히 '인복'은 있어서, 90년대 문화 관련 잡지들의 출간이 활황이었을 때 그 주도자들과 친분을 쌓고 산다. 그래서 그 시대의 '무용담'들을 종종 들을 때가 있다. 그리고 이제는 절판되어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잡지들이 진열된 장소로 초대받아, 옛 추억들을 매만질 수 있는 시간도 가진다. 많은 분들이 그 시대를 그리워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 시대는 또 이 시대만의 룰이 있다는 걸 부정만 하고 살 수는 없다. 늘 이런 회한이 나오면 등장하는 현실의 체제는 '인터넷'일 것이다. 글만 잘 쓰고, 시각만 독특하면, 또 그것으로 주목을 받으면 출판사는 러브콜을 보낸다.  

2

하지만, 인문/사회비평 쪽에선 유난히 '젊은 피'에 대한 판단 유보가 센 것도 있다. 특히 나같은 대학원생들에 대한 출판사 쪽의 아쉬움이라고 할까. 나도 필자 섭외 때 그런 걸 경험했는데, '논문체'에 익숙한 친구들은 출판사로부터 몇 가지 지적들을 받는다. 아마 대중과의 소통 부분일텐데, '쉽게 읽히는 글의 방식'에 대한 트레이닝을 요구하기도 한다. (나도 그런 지적을 대중문화를 다루는 모 잡지에서 꽤 받았다. 하지만 결국 부적응으로 난 그 자리를 나올 수 밖에 없었다). 흔히 이런 구분선이 작동한다. '시의성의 문제'. 내 또래 공부 한다는 친구들은, 늘 한윤형이나 노정태 이야기를 자주 꺼낸다. "나는 그 친구들처럼 시의성있는 사건들을 빠르게 해석못하겠더라구."로 시작하는 핑계들. 그래서 좀 호흡이 길 수밖에 없고, 글을 쓰게 된다면, 이런저런 학술적 살붙임이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미리 겁을 준다(?). (물론 상황 자체를 빨리 해석하고,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형태로 녹여내는 그 가치는, 분명 지금 주목을 받는 개개인이 스스로에게 투여한 노동의 성과일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성과들을 존중한다.)

실제로 그런 친구들의 글을 받아보면, 정말 겁난다. 그런데, 이런 겁이란 자신이 속한 학술적 제도 안에서 스스로가 연구자로서 잘 살고 있음을 '티 내고' 있다고 부정적으로만 해석할 수는 없다. 오히려 '헤비한' 이 글들의 정체를 직시해보면, 그들에겐 "난 역시 대중과 소통할 자격이 없어."로 시작하는 두려움이나 자괴감이 보인다. 그래서 많은 젊은 연구자들이 연구실 안에서 논문과 함께 숨었다. 그 현상은 아마 더 심해질 것이다. 

'계간지'가 제대로 돌아가기엔, 참여하는 사람들이 워낙 바뻐, 실제로 내가 들은 '귀동냥'에 의하면 좀 엉성하게 만들어지는 경우가 꽤 있는 것으로 안다. 이 시장도, 충분한 개인의 자금 확보력이나 물적 토대의 지원을 '카리스마'있게 해주는 개인이 없으면 당장 무너질 모래성이 많다. 내가 속한 장르를 '인문,사회 비평지'라고 하자면,  이 장르의 오랜 생존자인<문화과학>은 유구한 전통을 갖고 있다. 나는 <문화과학>의 시선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소통의 형식을 놓지 않기 위해 공들인 노력과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으면, 존경심을 표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문화과학>의 목차만 보면, 지금 하는 이야기들이 예전에 했던 이야기들의 재판인 경우도 많다는 걸 느낄 때도 있다. 이건 지식인들이 갖는 예리한 '예언자적 촉감'일수도 있고, 시대가 부딪히는 '문화적 순환'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쨌든 이들의 '생존'으로 인해, 나는 그런 생존의 양식들을 뷔페음식 먹듯이 경험하는 행복함을 누릴 수 있다는 걸 부정할 수 없다.  

'카리스마적 개인'의 존재. 비하인드 스토리엔 이 표현이 낯익다. 누군가가 열성적으로 많은 비중의 글 노동(글쓰기 뿐만 아니라, 필자 섭외를 비롯한 업무를 포함)을 하지 않으면, 한 권의 책을 내기가 어려운 구조는 늘 존재해 왔다. 학생들에게 강의도 해야 하고, 본인의 연구도 해야 하며, 또 각각 학술 모임에 참여해 인사도 해야 하고, 학교 외 업무를 하다 보면, '계간지'의 그 두터운 내용을 챙기기 위해 매번 '출석체크'를 해줄 수 있는 기대는 늘 이상이 되고 만다. 그러다보면, 개인의 '비평 감'에 의존하게 되고, 또 잘 나가는 필자들의 '비평 감'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그러면 판매와 호응의 측면도, 결국 약간의 '감'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젠 어떤 기획 아래 모여 무엇을 만든다는 건 참 힘든 시간임은 부인할 수 없을 듯하다.)

'유명한 필자', '스타 지식인'을 모셔올까.라는 '이름값 효과'에 대한 유혹도 생기지만, 비평적 존심이 있는 분들은 이런 전술에 고개를 흔들기도 한다. 그리고 그 대안으로 '발굴의 노동을 시도하자!'라고 의견을 공유하다보면, 현실 비평계에 대한 '냉혹한 판단과 사람들이 두르는 찬사에 대한 보류'로 하루를 마감할 때가 많다. 

5  

세대 교체. 젊은 피의 수혈. 사실 내가 속한 <당대비평>(줄여서 '당비')은 이 전술에 대해 실패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그나마 '당비'를 아는 사람들은 아직 문부식 선생이나, 임지현 선생의 '당비'로 기억을 많이 한다. 이 그늘을 벗어나야 하는 게 아마 나를 비롯한 젊은이들의 고민이 아닐까 생각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책을 좀 팔아야 한다는 현실적 고민 안에서, 이 '유혹의 기술'이 주는 속물성을 벗어나고자 어떤 '진정성'을 발휘할 것인가라는 쉽지 않은 고민이 내 마음 깊은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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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0 18: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11 00: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11 10: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15 1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0-06-10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범상치 않은 사람이다'라는 제 감이 역시 범상치 않았군요 ㅎㅎ
그리고 제 눈치 없음 또한 '범상치 않은' 수준이었고요.
그래도 힘내세요.
얼그레이님을 응원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저는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6-11 00:19   좋아요 0 | URL
아구 과찬이십니다. 더 열심히 살아야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