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보기의 은밀한 매력 / 비디오드롬
박찬욱 지음 / 삼호미디어 / 1994년 4월
절판


한국판 비디오에는 셀리나가 캣우먼으로 변신하는 과정이 빠져 있다. "여보, 나 왔어요...아 참, 난 독신이지"의 독백이 처절한 느낌으로 되풀이되고, 평범하 여성의 행복과 희망을 상징하는 물건들이 파괴되고, 스스로 PVC의 상을 지어 입는 과정들 모두가 생략되었으니, 이야기 진행에 무리는 없으되 가장 의미심장한 표현 한 묶음이 사라진 꼴이다. 특히, 네온 싸인으로 벽면에 쓰여진 문장 '안녕 hello there'의 두 글자가 깨지면서, '여기는 지옥 Hell Here'으로 변하는 재치는 더욱 아까운 것. 단지 두 시간짜리 카세트에 영화를 구겨넣기 위해 이런 악행까지 서슴지 않는 상흔이니 만큼, 마지막에 붙어 있는 멋진 주제가 [face to face]역시 남아나지 못했음은 당연하다.[팀 버튼,배트맨 2]-89쪽

고다르는 평소 가장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였던 [조용한 미국인](조셉 맨키위츠 감독)이 성우들의 더빙 때문에 그 다중언어의 묘미가 사라진 것에 심한 혐오감을 가져왔다. 그래서 그는 제작자의 여비서를 4개 국어 동시 통역자로 설정함으로써 영,불,이, 독어의 뉘앙스를 온존시키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이런 노력마저도 이태리,미국 개봉판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배급업자들이 한 나라 말로 모두 통일시켜 더빙해 버렸던 것. 미국판을 수입해 찍어낸 한국 비디오는 그래서 엉터리다. 더구나 놀라운 것은, 이들이 그림에도 손을 댔다는 사실이다. 있을 장면은 다 있으되, 지루함을 피한답시고 몇 초씩 줄여낸 쇼트들 때문에 배우들의 동작은 마구 튄다.[고다르, 사랑과 경멸]-112쪽

시작부터 서부극 팬은 배신 당한다. 광활한 평원의 아이드 스크린 - 물론 한국 비디오로는 TV 연속극과 다름이 없는 종횡비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으로 펼쳐지면 우리는 잠시 느긋하게 그 롱쇼트의 풍경과 곧이어 따라나올 장중한 남성합창을 감상할 준비를 하게 된다.[세르지오 레오네,석양의 무법자]-128쪽

최근에 [스팔타커스]는 오리지널 196분으로 복원, 전미 재개봉되었다. 여기에는 감독 의사와 무관하게 무식한 제작사에 의해 삭제되었던 부분이 추가되었는데, 그 내용은 로렌스 올리비에[크랏수스]가 자기의 노예 토니 커티스[안토나이너스]를 성적으로 유혹하는 일련의 에피소드들이다. 권력의 본질에 관한 큐브릭의 이 야심적인 해부가 우리나라 비디오판에는 당연히 없다.[스탠리 큐브릭,스팔타커스]-148쪽

경찰서 장면을 눈여겨 보면, 짐이 형사의 방으로 옮겨가면서 넥타이 길이가 바뀌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영화에서 가장 저질러지기 쉬운 실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튿날 등교길의 짐이 실내에서는 넥타이를 매고 있다가 집밖으로 나올 땐 노타이 차림인 것까지 실수로 본다면 그것이야말로 실수이다. 실내 마지막 쇼트 끝에서 짐은 넥타이를 풀면서 프레임 아웃한다. 다만 화면이 좌우로 잘려나가는 바람에 그 동작이 보이지 않을 뿐이다.부르주아 가정의 억압적 분위기에 대한 짐의 반항심을 표현하는 중요하는 코드가 비디오업자의 무지에 의해 파손당한 경우, [반항]은 무엇보다도 시네마스코프 미장센의 탁월함으로 유명한 작품이므로 마땅히 '우편함'처리를 했어야 옳았다.[니콜라스 레이, 이유없는 반항]-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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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비평>을 다시 읽는다. 오늘은 첫번째 시간, 1997년 조세희 선생님의 창간문 몇 구절을 담아 본다.  



<창간호를 내면서>- 무산된 꿈, 희망의 복원 / 조세희(1997년 9월) -16p~17p

누구든 아주 조금만 생각해도 속으로 눈물 날 바로 이 1997년에 우리는 긴급한 마음으로 <당대비평>을 내놓는다. 시작은 셋이 했다. 우리는 이미 여름 기운이 느껴지는 어느 날 밤 아주 심각하고 또 더할 수 없이 비장한 마음으로 편집회의를 시작했는데,그 자리에서 우리가 결정하고 다음 날부터 급히 청탁에 들어가 만들어낸 것이 물론 미흡한 점이 수없이 많을 이 창간호이다.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해주시고, 차근차근 준비해 알찬 내용의 책을 경제 상황이 나아질지 모르는 겨울이나 내년 봄, 또는 아예 1년 뒤에 내라는 분들의 충고도 있었지만, 좀더 많은 사람들과의 합의나 계획, 대안, 그리고 경제적 문제에 대해서는 1997년이 가하는 정신적 압박이 크니까 우선 그것에 저항하고 보자고, 우리는 생각했었다. 나 개인은 1995년에 시작해 1997년까지 이어진 두 나라 노동자들(두 나라는 한국과 프랑스, 얼그레이효과 설명)의 투쟁, 즉 신뢰할 수 없는 권력이 결정하는 조건에 따르지 않겠다는, 미래를 위한 당당한 저항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 실제로 우리가 책을 만드는 시간에도 지난 긴 세월동안 우리를 지배하고 절망으로 이끈 구독재체제의 또 다른 얼굴들이 21세기까지 점령해버리겠다는 음모,거래,암투를 계속하고 있었다. 지난 독재시절 이들 하나하나가 사실은 자기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자유인이 아니었다.  

내가 문학을 하는 사람이라 더욱 그랬던지, 나에게 그들은 손에 국민의 피를 묻힌 권력자 밑에서, 또는 그 권력자와 제휴한 또 다른 독재자 밑에 들어가 노예의 삶을 산 종들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이 우리에게 안겨다주었던 갖가지 절망이 지금 나로 하여금 이런 글을 쓰게 한다. 

20세기를 우리는 끔찍한 고통 속에서 보냈다. 백 년 동안 우리 민족은 너무 많이 헤어졌고, 너무 많이 울었고, 너무 많이 죽었다. 선은 악에 졌다. 독재와 전제를 포함한 지난 백 년은 악인들의 세기였다. 이렇게 무지하고 잔인하고 욕심 많고 이타적이지 못한 자들이 마음놓고 무리져 번영을 누렸던 적은 역사에 없었다. 다음 백 년의 시작, 21세기의 좋은 출발을 위해서라도 지난 긴 세월의 적들과 우리는 그만 헤어져야 한다.  

16~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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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 자유주의자들 - 요한복음 복음서와의 낯선 여행 1
김진호 지음 / 동연출판사 / 2009년 12월
품절


특히 현대신학은 <요한복음>의 종말론적 입지를 '실현된 종말론' 혹은 '실현되어가는 종말론'으로 이해함으로써, 종말론적 신앙담론과 세속적 근대사회 사이의 어정쩡함을 벗어나는 신학 내적 논리를 발견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 복음서는 '현대신학의 꽃'이 되었다. 불편한 것이 아니라, 가장 익숙하고 가장 빛나는, 현대화된 신학적 의미가 넘쳐나는 텍스트가 된 것이다. -28쪽

"로고스가 '살덩이(싸륵스)가 되었다"(14절a), '몸'(소마)이 아니라 살덩이다. 성/승화된 혹은 성/승화 가능성이 있는 존재가 아니라, 철저히 세속화된 몸이다. 어떤 아름다운 말로 치장해도 결국은 드러나고 마는 적나라함 그 자체다. 반면 '소마'는 미화할 수 있는 언어를 가진 육체/존재를 가리킨다. 예컨대 영웅의 몸, 예언자의 몸 등과 같은 것이다, 허나 어떤 영웅인들, 어떤 위대한 예언자인들 그 속이 곪아터지지 않은 육체를 갖고 있으랴. 다만 그 시대의 언어가 그렇지 않은 듯 포장하고 있을 뿐이다. -31쪽

그런 점에서 '살덩이'는 '현실'에 대한 냉혹한 평가를 전제한 존재의 실체적 모습일 수 있다. 그래서 이상화된 궁극인 '로고스'와 결코 이상화될 수 없는 현실의 존재인 '살덩이(싸륵스)' 사이에는 공유점이 전혀 없다. 그런데 '그 로고스가 싸륵스가 되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이제 로고스는 싸륵스를 통하지 않으면 실재하지 않는다. 교회는 로고스의 육화('소마'화)를 자부했다. 또 장로와 예언자와 감독과 교사 등, 지도자들은 '승화된 육체'였다. 그렇게 믿었다. 궁극 그 자체는 아니지만, 그것에서 파생된 무엇이라는 일종의 '잠재적/예(31)비적 궁극'이었다. 그렇기에 분쟁이 있을 때 교회는 분쟁의 조정자가 될 수 있었고, 지도자들은 갈등의 해결사가 될 수 있었다. 그들은 재판관이었다. 옳고 그름을 판별한 예비적인 거룩한 몸이었다. 신이 덧입혀짐으로써 그 육체가 '예비적인 거룩의 몸'이 된 것이다. -31,32쪽

한데 실재 그런가. 도대체 누구의 몸이,감독인들 장로인들 예언자인들 교사인들, 타인과는 조금이라도 거룩한 무엇이 있으랴? 실재를 들여다보면 한시라도 추잡한 욕구를 떨칠 수 없는 약한 육체가 그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 아닌가? 어떤 육체가 싸륵스이면, 다른 누구의 육체도 예외가 아니다. 그럼에도, 다른 육체, 승화된 소마를 주장하는 이(들)가 있다. "로고스가 싸륵스가 되었다." 이 말은 그런 주장을 부끄럽게 한다. 그런 주장의 효력을 절멸시킨다. 기존의 철학적 사유를 빌려서 상투적인 신조적 나열을 하는 것으로만 보였던 서언은 바로 이 대목에서 통념을 전복시킨다. -32쪽

우리가 주목할 것은 '하느님'이라는 표현은 그 내용이 무엇이냐를 지시해주는 게 아니라, 그것을 주장하는 자신들이 정통성을 갖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데 초점이 있다는 점이다. 요컨대 '요한복음'은 이런 대비법에서 한 편의 메시아주의가 가짜 메시아주의임을 강변하고 있을 뿐, 자신의 메시아주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44쪽

주류 사도계 그리스도교에 대한 동기의식에도 불구하고, 요한계 공동체는 유대교를 모방하여 독자적 발전을 기획하는 주류 교회들의 예전화, 제도화 추세를 경계하고 있다. 요컨대 당시 주류 그리스도교 운동은 로마제국적 영웅주의나 유대 메시아주의를 닮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모두가 혈통적,육정적,남성주의적 메시아주의에 몰두해 있을 때, 대중적 구원담론이 패권주의와 겹쳐지고 있을 때, 이 공동체는 거기에서 한 발짝 물러서서, 그 모두를 비판하는 제3자로서 남아 있으려 했다.그것을 '자발적 소수자'가 되려는 선택이다. 그것은 권력 게임의 정당한 비판자로 남아 있기 위함이다.또한 자신들도 좀처럼 자유로워지지 못한 그 강렬한 욕망, 그 권력 본능으로부터 자기 자신을 해체하려는 것이다.-49쪽

사적 네트워크를 통해 생존 가능성을 높이려는 전략적 선택의 합리성이 닮음꼴에 대한 무의식적 욕망과 어떻게 연루되고 있는지를 보게 된다. 아무튼 그 결과 우리 사회는 대단히 획일적인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리고 이질적인 것에 지나치게 배타적인 얼굴을 하게 되었다. 미궁 속에 가두어둔 자신의 괴물적 속성은 이들 이질적인 존재를 희생양 삼아 존재하는 우리 내면의 야수성인 셈이다.이질적인 약자를 잡아먹는 미노타우르스는 우리 문명이 낳은 우리 자신의 괴물적 속성인 것이다.-59쪽

한데 역사적 교회는 영을 억압하였다. '영의 정치'를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배제하였고, 순화된 영만을 주변부로 포용하였다. 오늘날 주변부에서 일어나 새로운 중심을 형성할 기세로 확산되는 이른바 성령파 그리스도교는 영의 제도화이지 제도를 넘어서는 '영의 정치'가 아니다. 아무튼 교회가 영과의 변증법적 관계를 잃어버렸다는 것은,자기를 근원적으로 성찰할 신앙 내적 잠재력을 상실한 것을 의미한다.그리스도교 신학은 영이 부재한 교회의 변증론에서 출발했으며, 그것을 넘어서고자 할 때조차도 근원적인 자기 성찰을 시도하지 못해왔다.-69쪽

'축도한다'는 표현을 들으면서 예수의 축도 행위가 빵을 불리는 마술적 능력을 낳았다고 연상하였을 것이다. 한데 '요한복음'의 예수는 빵을 받아먹고 감사기도를 드린 후에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그렇다면 예수가 빵을 늘리는 마술을 행했다기보다는 작은이에게서 나온 음식이 시발점이 되어 제각기 먹을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의 것을 내놓아 서로가 먹게 되었다는 상상이 가능하다. -95쪽

그 거대한 담론들은 고통 받는 이의 시선에서 이야기하기보다는 고통을 거래함으로써 성취감을 얻을 수 있는 부류의 체계 혹은 사람들의 이야기인 것이다.-115쪽

확실성에 관한 기억, 그 환희어린 '각'의 체험은, 그 체험으로 말미암은 확고한 신념으로 구성된 정체성이라는 것은, 이 세상의 많은 것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아니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단순 명확하게 그 색깔을 드러내리나는 믿음이 그 환희어린 정체성 속에는 필연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선명함 속에 인류의 만행이, 인간이라는 종의 그 잔혹성이 존재의 속성으로 새겨지고 있었던 것이다. -143쪽

안병무 선생이 촉발한 이 복음서의 민중신학적 상상력은 오늘 우리에게 매우 신랄하다. 왜 우리 신앙은 자신도 모르게 배타적인 심성을 강하게 담고 있는가, 왜 우리 신앙은 선교 현장마다 증(241)오를 낳고 싸움을 낳고 주검을 낳는가, 왜 오늘 우리 시대의 사람들은 우리의 신앙을 문제시하는가, 왜 사람들은 속속 교회에서 철수하고 있고, 왜 대안적 신앙에 대한 바람을 그토록 강력하게 타전하고 있는가.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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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돈 셈'에 밝을 나이도 된 듯 하지만, 아직 은행에 가면 울렁증 비슷한 것이 있다. 번호표 뽑을 때, 괜히 손에 땀이 나고, 은행직원이 상냥하게 내 번호를 부를 땐 더 그렇다. 은행 직원이 알아서 친절하게 다 해주겠다는 데 왜 이리 긴장한 얼굴로 자신을 대하냐고 핀잔을 주는 것 같은 느낌. 이게 비단 나만의 경험이 아니란 것을 알게된 건 내 또래 친구들 혹은 평소 친분을 쌓고 지내는 평론가 몇몇 분들과의 만남에서 나온 소소한 대화 때문이었다. 

정겨운 자리가 점점 끝나가고, 돈을 내겠다고 주섬주섬 바지를 매만지는 나의 지인들은 대부분 차분하게 지갑 안에서 빳빳한 지폐를 꺼내기보단, 여기저기 쑤셔넣은 흔적이 강한 꼬깃꼬깃한 지폐를 이리저리 꺼내본다. 내가 미처 돈이 없을 땐, 그런 동작이 "어랏, 이 사람 한턱 쏘겠다더니, 허풍이었어?"로 오인하게 만들기도 한다.(순간 흐르는 땀. 혹은 이런 상황을 세심하게 즐기는 친구도 몇 명 있더랬다.) 전혀 상상하지 못한 곳에서 돈이 나올 땐 웃음이 나온다. 구겨진 만원짜리 지폐들, 가방 저 깊숙한 곳에도 나오지 않아, 결국 가방을 털털 털어보니 쏟아지는 동전과 지폐들. 한 평론가는, 이게 다 책만 파는 놈들의 습성이라고 우스갯소리로 넘긴다.  

무슨 예금이니, 무슨 적금이니 이런 것도 이제는 준비해야 할 나이, 아니 벌써 준비해야 할 나이라고 스스로 꾸짖을 때는 종종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올 때다. 소위 '걸려든 것'이다. 왠일로 전화를 받았냐는 심정으로, 준비된 멘트를 길게 소화하는 한 남자의 은행 상품 소개를  차분하게 들어준 적이 있다. 회의를 가야한다고 거짓말도 해봤지만, 남자는 나의 귀를 놓아주지 않았다.  "죄송합니다.."하고 확 끊을까 하다가, 정성이 갸륵해 결국 거의 다 들어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문득 집 깊숙한 곳에 쳐박아 둔 통장을 꺼내본다. 컴퓨터 옆에 조용히 놓여진 지갑을 다시 꺼내본다. 제대로 쓰지 않는 몇 장의 체크카드 뒤로 그나마 잘 쓰는 반찬가게 적립카드가 소심하게 삐져나와 있다.  주민등록증에 있는 얼굴을 매일 보지만, 오늘은 새롭다.  

갑자기 몇 년 전,  주식을 독학하겠다며, 휴가 귀대일에 몇 권의 주식 관련 서적을 사서 갖고 온 후임 녀석의 귀여운 말이 생각난다. 

"병장님 이제 곧 제대도 얼마 안 남았는데, 저랑 같이 이런 거 공부 한 번 하시죠. 세상 사람들 제 또래 애들 요즘 장난 아니에요." 

고놈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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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6-15 1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찬가게도 적립카드가 있군요...
그런데 어째 이 대목에서 울컥하네요.
적립카드를 만들었을 정도면 반찬을 늘 사드신단 얘긴데
음,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네요...

얼그레이효과 2010-06-16 01:45   좋아요 0 | URL
혼자 산 지. 13년째에요.ㅋ(군대 포함)

마늘빵 2010-06-15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금이니 펀드니 뭐니 하면서 가입하라고 전화가 자주 와요. 그때마다 저는 "저 그런 거 할 돈이 없어요. 정말 돈이 없어요." 그럽니다. -_- 그럼 아 네, 하고 끊어요. ^^

얼그레이효과 2010-06-16 01:45   좋아요 0 | URL
오 다음에 써먹어야겠어요 ㅎ
 

양근만(1992.10.18). 비디오테이프 대여때 종이에 담자. 조선일보. 2면. 

서울 동작구 흑석 2동 현대아파트 단지에서 비디오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이후극씨(36)는 최근 들어 비디오테이프를 빌려줄 때 담아주는 비닐봉지에 문제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tv나 신문을 통해 비닐이 백년 지나도 썩지 않는 대표적 공해물질임을 새삼 인식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 하우에 나가는 비닐봉지는 대략 60~70장 정도. 이 씨는 얼마전까지만 해도 테이프상자에 넣어 비디오를 빌려주고 이를 다시 사용했던 사실을 기억했다.  

(중략) 전국의 비디오가게는 대략 4만여개. 비디오가게 한 곳이 하루 평균 50장의 비닐봉지를 나눠준다고 할 때 하루 2백만장 이상의 비닐이 소비되는 셈이다. 한달이면 6천만장, 1년이면 무려 7억 2천만장에 이르는 양이다. 비디오가게가 최근 1~2년 사이 크게 늘면서 이전에 테이프를 담아주던 종이상자나 종이봉투는 어느 틈엔가 자취를 감추고 그대신 비디오공급 도매상들이 무료로 주는 비닐이 일상화된 것이다. 비디오를 빌려가는 고객들에게도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더러는 비닐봉지를 거절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테이프가 안보이게 감싸주는 비닐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이씨는 "비닐대신 종이봉지를 주든가, 이전처럼 테이프상자를 사용하는 방안이 바람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하원(1994.8.30). 비디오 대여료. 조선일보.30면. 

2천원 안팎을 내야 하는 비디오테이프를 단돈 3백원에 빌려주는 대형 비디오점이 나란히 두개나 들어서 영화팬들을 즐겁게 하고 있는 동네가 있다. 보는 사람이야 싸면 쌀수록 좋지만 이들의 속사정을 그리 간단치 않다. 비디오 염가대여 전문 체인점 6개를 운영하는 (주)화랑유통이 서울 지하철 도봉역 근처에 도봉역비디오를 개설한 것은 지난 5월. 30여평 규모의 가게에 1만여편의 비디오를 비치하고 손님을 끌기 시작했다. 대여료는 5백원. 인근 영세비디오대여점 20여곳이 당연히 반발하고 나섰다. "이대로 가다가는 모두 망한다"는 위기의식으로 뭉치기 시작. "화랑유통이 덤핑을 중지하고 정상가격을 받을 때까지 맞불작전을 쓰자"는데 의견을 모았다. 1인당 1백만원씩 각축. 지난달 도봉역 비디오 바로 옆 건물 1층을 세내 도봉비디오라는 비슷한 이름으로 대여점을 차렸다. 이들이 소속된 영상음반 판매대여협회로부터 비디오를 지원받아 같은 가격으로 대여를 시작했다. 영업은 회원 20여명이 한나절씩 당번을 정해 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들이 간판을 내건 다음날 화랑유통은 곧바로 가격을 전격 인하했다. 1편에 3백원. 이들도 즉각 3백원으로 내렸다. (중략) 소문이 퍼지면서 의정부 등지에서까지 비디오를 빌리러 오는 손님이 끊이질 않고 있는데, 고객들은 그러나 "밀려야 할지 박수를 쳐야 할지 모르겠다"며 곤혹스런 표정들이다.  

임호준(1995.3.12). 비디오점 "주민증 제시" 시비. 조선일보.21면. 

"주민등록증은 왜 내라고 합니까." "이거 사생활 침해 아닙니까." 최근 문화체육부가 미성년자의 성인비디오 관람규제를 위해 비디오테이프 대여시 고객의 주민등록번호를 기록하라는 지시에 따라 전국 비디오 대여업소에서 벌어지고 있는 승강이다. 문화체육부는 작년말 각 시-도와 한국영상음반판매대여업협회에 보낸 행정지침을 통해 미성년자에게 연소자 관람불가 테이프 대여를 방지하기 위해 이같이 지시한데 이어 지난달부터는 협회의 추천을 받아 시-도지사가 임명한 1백50여명의 지도요원들이 이에 대한 단속에 나섰다.  

조선일보(1995.3.14). 아파트 단지내 유망사업. 조선일보.15면. 

아파트 단지내상가에서는 어떤 업종이 가장 유망할까. 단지규모나 가구 구성원 연령층에 따라 달라지지만, 5백가구 규모에 가구주 대부분이 20~30대의 젊은 중류층이라면 비디오테이프 대여점이 가장 수익성이 높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중략)그러나 비디오 대어점의 사업성은 앞으로 케이블tv의 활성화 여부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큰 변수가 남아 있다. 감정원 조사결과 정육점 미용실 중국음식점 약국 등은 입지성과 수익성에서 우수 평가를 받았으며, (중략)또 식품점과 제과점,속셈학원, 미술학원,피아노학원 등도 각각 하나씩의 우수 평가를 받아 권장할 만한 업종으로 평가됐다.  

[편집장이 독자에게] 비디오숍 콘테스트를 진행하며.씨네21.2000.1.11 

(전략) 좋은 비디오대여점을 가까이 두고 있는 게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얼마만한 행운인지는, 이 곳에 이사온지 얼마 안돼 곧 알게됐다. 예전에 나의 비디오대여점 출입은 대체로 개봉관에서 빠뜨린 신작들을 건지자는 목적이었다. 하지만 비디오 3만편을 소장하고 있는 이 대여점을 드나들면서 목적이 다양해졌다. 개봉관에서 빠뜨린 신작영화 줍기, 내가 좋아하는 감독의 작품연보를 체크해가며 한편씩 봐치우기, 신작 위주의 개봉관에서는 절대 볼 수 없는 고전들 찾아보기. 영상자료원이나 사설 시네마테크를 찾아다닐 시간 여유가 없는 나는 '내 인생의 영화'들 상당수를 이 비디오숍에서 빌려보았다. 물론,70년대 이전 한국영화나 세계영호사의 고전 리스트가 몹시 빈약한 한국 비디오산업의 얄팍함을 일선의 비디오숍들이 결코 넘어설 수 없는 것이지만 말이다.  

(중략) 사실, 나는 좋은 영화는 일단 극장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비디오란 영상매체의 입체적 효과를 반감시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극장이라는 유통구조 바깥에 있는 영화라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비디오 얘기가 나왔으니 평소에 비디오 관람을 방해하는, 작지만 아주 중대한 문제 하나를 짚고 넘어가려 한다. 영화의 마지막, 아마도 모든 감독이 가장 고심했을 바로 그 장면의 여운을 음미할 겨를도 없이 대문짝만하게 뜨는 '감사합니다'라는 자막이다. 이 자막은 엔딩타이틀을 내내 가리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것은, 간혹 괜찮은 TV영화를 보았다 싶은데 엔딩타이틀은 물론 마지막 신 일부를 잘라먹으면서 cf가 튀어나오는 것에 견줄 만큼 김새는 일이다.  

조종국,이윤이.씨네21.2000.1.11. 2000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 [1].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를 계기로 살펴본 비디오대여업계의 오늘과 내일 

"비디오숍은 사양 산업이다." 비디오숍을 운영하는 많은 사람들의 푸념이다. 실제로 이번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에 참가한 대다수 비디오숍 점주들의 생각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디오숍의 최고 활황기로 꼽히는 94년 즈음 우리나라의 비디오숍은 3만7천개, 행정관청에 등록하지 않은 업소까지 포함하면 줄잡아 4만5천개로 추산됐다. 하지만 비디오업계에서는 지난해 영업중인 비디오숍을 1만5천개 정도라고 추정한다. 게다가 상당수 비디오숍이 점포를 내놓았다는 소문이 파다한 것을 보면 사양산업이라는 푸념이 실감난다.  

한편 점주들의 위기의식과는 달리 비디오업계에서는 우리나라 시장 크기라면 1만개 정도가 적정하다고 보고 있다. 심지어 3천개 정도로 줄여야 한다는 이들도 있다. 사양산업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그간의 거품이 걷히면서 산업적인 꼴을 갖춰가고 있다는 얘기다. 꽤 오랫동안 2000원대를 유지하던 대여료가 1000원대로 떨어진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상당수 숍들이 '반찬 값이나 버는' 부업 정도로 생각하고 점포를 차려 안이하게 운영하다 문을 닫거나, 이런 상황을 교묘하게 활용해 덤핑 공세를 펴는 업자들이 득세하던 때도 있었으며, 정작 대여점보다 중고 테이프 유통업자 들이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이런 분석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중략) 첫번째 다이어트, 으뜸과 버금 그리고 영화마을. 

비디오대여업계는 근래 몇년 사이에 이미 한단계 재편 과정을 거쳤다. 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적정 규모에 소프트를 제대로 갖추고 사업적 전망을 가진 사람들이 비디오숍을 시작하면서 한차례 거품을 빼냈다. 87년 이후 대기업이 비디오 시장에 진출해 소프트 선점을 위한 경쟁을 벌이면서 생겨난 거품이 88년 올림픽을 거쳐 VTR보급률 75%를 넘어선 90년대 중반까지 부풀기를 계속하다 이 무렵 한차례 다이어트를 거칠 수밖에 없게 된 것.  

동호회 성격이 강한 으뜸과 버금과 본격적인 비디오 대여점 체인 구축에 나선 영화마을이 업계 개편을 선도했다. 이들은 점포를 깨끗하고 밝고 환하게 바꾸고, 고전,명작 등 소프트를 제대로 갖추면서 경쟁력을 급속하게 높여 나갔다. 이들에 자극받은 다른 숍들도 중대형화,전문화, 복합화하는 쪽으로 나아가면서 질적 성장을 이뤄갔다. 99년말 현재 150개 회원숍을 가진 으뜸과 버금과 643개 숍을 가맹점으로 구축한 영화마을의 경쟁력은 초보적 경영개념을 비디오숍에 접목한데서 비롯된 것이었다.히지만 최근 2~3년 사이 대여점수가 급격하게 줄어든데서 드러나듯, 전반적인 비디오업계 불황은 거품이 빠지는 과정으로만 볼 수 없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PC방과 케이블로 이탈하는 고객. 

그 첫째 원인으로 비디오 숍 점주들은 여가문화의 다양화와 미디어 환경의 급속한 변화를 찾는다. 이를테면 비디오 이외 소일거리가 없던 서민들도 놀이동산으로 외식 점포로 나가는 횟수가 늘어나고, 케이블, tv,게임,인터넷에 매달리는 인구가 늘어났다는 것이다. 으뜸과 버금 부평점을 경영하는 김인수 씨는 "대박 프로는 물론 고전과 명작을 소비해주던 젊은층이 pc방으로 이탈했다"고 말한다. 95년 케이블tv방송 시작과 97년 pc방 출현 등 비디오숍쪽에서 보면 악재가 꼬리를 물었다. 특히 짧은 기간에 급격하게 퍼진 PC방은 청소년층은 물론 적지 않은 대학생, 장년 고객 등을 빼앗아갔다. (중략) 으뜸과 버금 방배점 대표 김선영 씨는 "인근의 카페 골목에서 일하는 젊은 고객들이 심야에 단골로 찾아왔는데, PC방이 성업을 이루면서부터는 절반 가량 줄었다"며 여파를 체감한다고 했다.  

다음으로는 업계에서는 비디오 소프트의 부족을 비디오숍이 위기에 직면한 또 하나의 원인으로 꼽는다. 김인수씨는 "전에는 대박 프로가 한 달에도 너덧 편씩 나왔는데 요즘은 한두편 정도"라고 말했다. '기본적으로 장사할 밑천이 없다'는 말이다. 대기업이 영상산업쪽에서 대부분 철수하면서 수입영화가 줄고 큰 영화도 덜 들여오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부터 직배사들이 풀어놓은 상당한 소프트가 이제 거의 다 소진됐고, 신작 외에는 더이상 출시할 소프트가 없게 됐다는 주장도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영화마을 종로점의 이주현 씨는 '대박'보다는 오히려 중간급 프로의 부족이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98년 봄, 비디오테이프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고 난 후 비디오숍에서 중간급프로 살 돈을 아껴서 대박을 사는 추세였다"며 이렇게 되자 A급 흥행작이 아니면 잘 안 나가는 경향까지 생기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중략) 비디오+만화+잡지, 플러스 인터넷 

이런 위기상황 속에서도 불황을 극복하기 위한 시도도 있었고 적극적인 응전을 모색한 실험도 있었다. 한때 비디오숍에 만화나 잡지 등을 비치해두고 도서대여점을 병행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또 외국의 대형 복합 매장을 들여오기도 했다. 

(중략)또 하나의 가능성 ,DVD 

전체적인 환경 변화에 따라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활발하다. 비디오숍 불황 타계책을 새 매체로 떠오르고 있는 DVD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대표적인 사례다. 논리는 간단하다. 비디오에서 DVD로 소프트가 대체된다면 비디오숍도 DVD대여점으로 바꾸면 된다는 것이다. DVD는 작은 공간에 많은 양의 소프트를 비치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영화마을 본사 권영호 이사는 "테이프 1개가 차지하는 공간에 DVD는 최대 7장까지 진열이 가능하며, DVD로 진열을 한다면 소형 숍에서도 2만장 정도까지 진열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옥선희.2000.1.11. 2000 우수 비디오숍 콘테스트 [2].씨네21. 

비디오를 즐겨보는 이들의 가장 큰 불만은 왜 영화 잡지에 소개된 좋은 비디오는 우리 동네 가게에서 찾아볼 수 없냐는 것과 tv방영까지 된 고전을 왜 비디오로 볼 수 없냐는 것이다.  

(중략) 초창기부터 대어업을 해온 이들은 좋은 프로를 많이 구비하고 있었지만 사업에 매력을 잃어 창고처럼 숍을 방치하고 있어 안타까웠다. 최근 개업한 점주들은 넓은 매장, 밝고 깨끗한 인테리어에 아르바이트를 고용하여 두세개 숍을 경영하는 등 편의점 체제를 택하는 적극성을 보였다. 고객 취향에 맞는 프로 안내와 같은 휴먼 터치는 기대하기 어렵지만 대여점이 하루빨리 구멍가게를 벗어나 대형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야한다고 생각하므로 바람직한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우리 현실에 비추어 볼 때 비디오와 책 비율이 5대 1인 20평 매장이 이상적으로 보였다.  

점주들은 한결같이, 게임방,pc방, 인터넷 등의 새로운 오락거리가 생겼는데, 비디오 소프트는  예전에 비해 양이나 질에서 떨어져 고객이 줄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좋은 영화를 찾아보는 고객이 현저하게 줄어 영화광이 과연 존재하기나 하냐는 의문을 갖기도 했다. (중략) 관람 등급별 분리 진열은 반드시 폐지해야 할 사항으로 지적했다. <007>시리즈를 한자리에 모을 수 없다든가, <스탠 바이 미>같은 청소년 영화가 빨간 등급이라는 것은 이제 우스개로 회자된다. 속칭 16mm로 불리는 국내 창작 극 영화 등을 제외하고는, 감독,배우,장르별로 진열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통신에다 출시 안 된 복사판 비디오 본 자랑을 늘어놓는 것은 마니아가 할 일이 아니다. 고전 비디오 봐주기 운동이나 출시 요구 서명을 하는 '행동하는 마니아'가 나올 때도 되지 않았나.세계 각국 고전이 보고 싶다면 그런 영화를 적정한 가격에 대여해 보고 구입, 소장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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