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봉(1993). 하재봉의 비디오천국. 우리문학사.
10쪽
아직도 이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나는 진정으로 권하고 싶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캄캄하게 불을 켜놓고, 차가운 얼음 주스나 혹은 진한 커피 한 잔을 타 들고, 천천히 <파리,텍사스>속으로 걸어들어가보라고. 일단 한 번 그 속으로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면, 그리하여 두 시간이 흐른 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스태프와 캐스트의 명단이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할 때면, 당신은 이제 다시는 방안의 불을 켤 수 없을 것이다. 당신은 이미 삶의 온갖 비밀과 그 치유할 수 없는 쓸쓸함을 알아채버렸기 때문이다.
71쪽 ~72쪽
(전략) 지금은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한 친구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는 원래 6시간 필름인데, 일본/미국용으로 4시간으로 재편집을 해서 시장에 내놓았으며,국내에서 상영된 것은 흥행을 위해 그것을 다시 자른 것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또 충격을 받았다. 나는 그 친구에게서 4시간용으로 만들어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비디오 테이프를 한 벌 복사해서 보았는데, 영화를 다 보고 나서 이번에는 분노가 치밀어올랐다. 극장에서 내가 본 영화는 전혀 다른 영화였다. 분명히 같은 영화였는데, 전혀 다른 영화였던 것이다. 아무리 영화를 수입해서 들여올 때 국내 관객들의 수준을 생각한다고 해도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물론 그 이전에, <사막의 라이온> 같은 대작 영화도 하루 5회 상영하기 위해 2시간 남짓으로 여지없이 칼질당한 전례가 있었지만, 이처럼 앞뒤가 제 마음대로 편집되어서 상영되지는 않았다. 이것은 상업적인 목적 이전에 영화라는 예술 장르에 대한 분명한 도전이고 중대한 침해라고 생각한다.
극장 상영용 영화는, 본래의 필름을 2시간 40분 정도의 시간에 맞게 원본의 회상 장면 같은 것을 없애고 순서대로 배열한 것이었으며, 중요한 대목을 가위질한 것이었다. 내가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서 느꼈던 몇가지 의문들이 비디오 테이프를 보면서 비로소 풀렸다. 줄거리가 이어지지 않았고, 꼭 나와야 될 인물들의 행적이 후반부에 묘연해지는 것(예를 들어 로버트 드니로의 애인이었다가 나중에 제임스 우즈의 정부가)(71) 되는 데보라의 행적)도 실마리가 풀렸다. 지금 시중에 나와 있는 것은 다행히 240분으로 된, 원본 영화이다. 그런 점에서 비디오는 극장 상영 시간으로 생각하고 흥행을 걱정해야 되는 영화적 특성에서 얼마만큼 자유로울 수가 있으며, 그것 또한 비디오 테이프의 장점이라고 볼 수 있다.
78쪽, 80쪽
우리 시대가 보유하고 있는 가장 뛰어난 영화 작가중의 한 사람인(78)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작품이, 드디어 비디오를 통해 국내에 처음으로 소개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나의 사건이다. (이 작품이 일반 비디오숍에 과연 몇 개나 진열될 수 있을까? 싸구려 중국 영화와 3류 에로물,폭력물 사이에서 이처럼 수준 높은 영화가 버티기란 정말 힘들다. 영세적 규모와 한정된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지역 비디오숍에서, 다양한 특징을 지닌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비디오 체인점으로 현재의 비디오 시장은 점차 변모되어가야 한다. 그것만이 비디오를 영화의 하위 개념으로 종속시키지 않고 독자적인 비디오 문화를 싹틔울 수 있는 방법이다. 오락물 비디오에서 일반 교양, 다큐멘터리, 아트 비디오로 관심이 옮겨지기까지는 물론 지난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미리부터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자극적인 쾌락과 향락에 맡겨버리는 것이 된다.)
162쪽 ,164쪽
비디오는 나에게 무엇인가? 마그네틱 테이프로 옮겨진 영화를 시청하기 위한 단순한 매개물에 불과한 것인가? 내가 비디오와 연결된 TV 모니터를 통해 보는 거슨, TV방송국에서 제작한 드라마나 쇼 대신, 극장에서 상영되었던 잔혹한 액션물이나 예술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저급 포르노 필름이 아닌가? 나는 비디오를, 재생 영화를 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 것 이외에 또 무엇이 있나? 내가, 롯셀리니 감독의 <칼리큘라>를 이야기하면서 비디오의 사용에 대한 의문을 꺼내는 이유는, 그것에 대한 나의 개인적 경험이 <칼리큘라>와 이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 정품으로 비디오숍에 배급되어 있는 <칼리큘라>의 러닝 타임은 104분. 그러나 그것은 원본에서 40분 정도 잘려나간 것이다. 다행이라면 기본 줄거리는 그럭저럭 연결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소위 비품으로 보았다. 87년의 일이다. 내가 단골로 다니던 가게에서는, 비품을 별도로 라면박스 속에 숨겨놓고 빌려주고 있었는데(지금은 철저한 단속으로 비품이나 불법 복제가 거의 사라졌지만), 그 중에서도 포르노 테이프는 제목을 붉은 글씨로 써놓아 쉽게 구별이 되도록 하였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붉은 글씨 속에서 CALICULA라는 글자를 발견하였다. 포르노 테이프를 보지 않는 나였지만, 카뮈의 인상 깊은 동(162)희곡을 기억하고 있던 나는,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빌려와서 그것을 보았고, 곧 엄청난 충격에 사로잡혀버렸다.
나는 지금도, 내가 지금까지 본 어떤 비디오 테이프보다, 당시 비품으로 보았던 <칼리큘라>가 내 영혼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고 확신한다. 그런 점에서 모든 검열은 사라져야 한다. 정품으로 나와 있는 테이프에는, 충격적인 그룹 섹스나 수백 명의 성기가 거리낌없이 노출되는 정사 장면, 얼굴만 남기고 땅 속에 몸을 묻어놓고 칼로 목을 베는 잔혹한 살해 장면 등 다 잘려져 있지만, 그러한 장면들은 삶의 본질적 의미를 탐구해가는 깊이 있는 주제 아래 계산된 예술적 영상들인 것이다.
203쪽 -204쪽
나는 비디오 중독자다. 방안에서 이것저것 장난지차 더 이상 나를 자극하는 것이 없을 때, '비디오나 빌려볼까?' 생각한다. 내가 아는 어떤 여자는 스트레스가 쌓일 때, 비디오를 빌려본다는 것이다. 하룻밤에 세 개 정도는 보통이다. 휴일에는 일곱 개까지 '때린' 적도 있다고 했다. 그래야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것이다. 신경통이 있을 때도 마찬가지란다. 그렇다면, 비디오 테이프는 현대판 만병 통치약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슬리퍼를 끌고 집 나온 개처럼 어슬렁거리며 집 앞의 비디오 가게에 나가면, 수천 개의 비디오 테이프가 화려한 사각 상자에 갇혀 빼곡히 꽂혀 있다. 어떤 녀석들은 눈을 뱀처럼 뜨고 나를 노려보기도 한다. 나는 사열대 앞을 지나가는 장군처럼 그들을 일벌하다가 하나를 뽑아든다. 집에 돌아와서 비디오테이프의 직사각형 몸체를 들고 VCR 안으로 집어넣는 순간의 쾌감은, 섹스보다 뛰어나다. 가볍게 녀석의 몸을 손끝으로 밀면, 검은 기계는 그것을 삼킨다. 내 눈앞에서 비디오 테(203) 이프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