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자본주의 - 자본은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에바 일루즈 지음, 김정아 옮김 / 돌베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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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심리 단위라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그 이상으로, 감정은 문화 단위이자 사회 단위이다. 곧 감정이 표현되는 장소는 구체적 , 즉각적 관계이되 항상 문화적, 사회적으로 규정되어 있는 관계이며, 이로써 우리는 감정을 통해서 인간됨 personhood의 문화 규정들을 구현enactment하게 된다. 요약해보자면, 감정이란 극도로 압축되어 있는 문화 의미들과 사회(15)관계들이며, 감정이 에너지를 보유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고도로 압축되어 있는 덕분이다(감정이 에너지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은 감정이 반성 이전pre-reflexive상태, 때로 반의식semi-conscious상태에 있음을 뜻한다). 감정이 행동의 여러 측면 중에 고도로 내면화되어 있고 비반성적인 측면인 이유는,감정에 문화와 사회가 충분히 포함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15,16쪽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행동을 "안"으로부터 이해하고자 하는 해석학적 사회학은 행동의 감정적 색조에, 그리고 실제로 무엇이 행동을 추동하는가에 주목해야 한다. -16쪽

이 책에서 나는 두 가지 주장을 펴겠다. 첫째, 자본주의가 형성된 과정은 고도로 특화된 모종의 감정 문화가 형성된 과정과 궤를 같이 했다. 둘째, 자본주의의 여러 차원 중에서 바로 이 감정의 차원에 초점을 두게 되면, 자본주의의 사회조직으로부터 새로운 질서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17쪽

실용서는 1920년대에 영화와 함께 문화산업으로 부상했고, 나중에는 심리학의 개념들을 유포하고 감정 규범들을 설명하는 가장 튼튼한 발판이 된다. 실용서는 여러 가지 요건들을 한꺼번에 충족시켜야만 한다. 첫째, 실용서란 일반적인 어법을 사용해야 한다.다시 말해 법칙 비슷한 언어로 법칙 비슷한 명제를 진술해야 한다. 그래야 실용서의 권위를 확보할 수 있다. 둘째, 다양한 내용의 문제들을 다루어야 한다. 그래야 일정하게 소비되는 상품이 될 수 있다. 셋째, 초 윤리적 태도를 견지해야 한다. 다시 말해 섹슈얼리티나 사회관계에(31)서의 처신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 중립적 관점을 제공해야 한다.그래야 가치와 시각을 달리하는 다양한 독자층을 확보할 수 있다.끝으로 신용할 수 있는 적법한 출처를 밝힐 수 있어야 한다.-31쪽

엘튼 마요는 두 가지 점에서 경영이론에 혁명을 일으켰다. 첫째, 자아됨이라는 윤리의 언어를 심리학이라는 냉정한 학문의 용어로 개조했고, 둘째, 한창 기세등등하던 합리성이라는 엔지니어들의 수사를 "인간관계"라는 새로운 어휘로 대체했다. -40쪽

많은 사회학자들은 기업에서 심리학을 활용하기 시작한 것을 새로운 노동 통제 방식, 곧 교묘하고 따라서 더 강력한 통제방식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심리학이 노동자들 사이에서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한 이유는, 그것이 권력 관계였던 노동자-경영자 관계를 민주화하고, 사회적 지위와 무관한 인성이 사회적,경영적 성공의 열쇠라는 새로운 믿음을 주입했기 때문이다.-45쪽

언어학적 소통모델은 (문화도구지아 문화 레퍼토리로서)행위주체들이 외적 관계(동등한 존재로 간주되며 동일한 권리를 부여받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및 내적 관계(외적 관계들의 조율에 필요한 복잡한 인지 장치 및 감정 장치)를 조율하게 해준다는 용도를 갖는다. 요컨대 "소통"이란 자기관리의 테크놀로지로서, 언어와 올바른 감정관리에 광범위하게 의존하며, 대인적 감정inter-emotion의 조율과 내부적 감정intra-emotion의 조율을 모두 포함하는 감정 조율의 엔지니어링을 목표로 삼는다.-50쪽

감정 자본주의는 여러 감정 문화들을 재배치하면서, 한편으로는 경제적 자아를 감정적이 되게 만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감정들을 좀 더 도구적 행위에 종속되게 만들었다.-55쪽

친밀성의 문화 모델에는 20세기에 여성적 자아를 구성한 두 가지(곧 심리학과 자유주의 페미니즘이라는 문화 설득 담론)의 핵심 동기들과 상징들이 포함되어 있다. 곧 근대적 친밀성의 이상은 평등, 공정,중립적 절차,감정 소통,섹슈얼리티, 감춰진 감정의 극복과 표현, 언어적 자기표현의 중시 등을 핵심으로 하고 있다.-65쪽

치료학이라는 설득 담론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행복의 문제를 의학적 은유를 동원해서 표현했으며 평범한 삶들을 병리화했다.(94) / 건강한 관계는 친밀한 관계였고, 친밀성은 건강함이었다. 이렇듯 친밀성 개념이 건강한 관계의 규범 내지 기준으로 설정된 후에는, 친밀성의 부재가 새로운 치료학적 자아 내러티브의 편성 틀이 될 수 있었다. 곧 이런 내러티브에 따르면, 친밀성이 없는 사람은 이제 감정이 어딘가 잘못되어 있는 사람, 예를 들어 친밀성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는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94,96쪽

감정 장이 작동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병리의 영역을 구축,확대하는 것과 감정건강의 영역을 상품화하는 것이 하나이고,이른바 감정능력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사회능력에 대한 접근권을 규제하는 것이 또 하나다. 곧 문화 장이 문화능력-문화물과 관계할 때 내가 상층계급에 의해 승인된 고급문화에 정통해 있다는 것을 알릴 수 있는 능력-에 의해 구조화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감정 장은 감정능력-심리학자들이 정의,판촉하는 감정양식을 보여줄 수 있는 능력-에 의해 규제된다.-126쪽

치료 내러티브는 특화된 시장을 창출한다. 시청자는 잠재적 환자 겸 소비자로 정의된다. 치료학관련 직업,출판 산업,텔레비전 토크쇼는 "너무 사랑하는"사람(105)들 혹은 "옛사랑을 못 잊는"사람들을 소비자 겸 환자로 구성한다.둘째, 치료 내러티브는 감정-이 경우에는 죄의식-을 공적 대상, 곧 발현의 대상, 토론의 대상, 논쟁의 대상으로 만든다. 주체는 "사적"감정들을 구성,발현함으로써 공적 영역에 참여한다. 셋째,내가 내 인생의 이야기를 치료 내러티브로 다시쓰기 하는 원동력은 바로 이야기의 목표이다.-105쪽

이렇듯 감정지능은 자아수행을 경제적 수행의 핵심으로 하는 경제에서 요구되는 능력일 뿐 아니라 심리학자들의 강도 높은 전문화 과정의 결과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역사적으로 심리학자들은 감정 생활을 정의하고 규제할 자격을 독점해왔으며, 이로써 감정생활을 장악하고 관리하고 계량하기 위한 새로운 척도를 세워왔다.-131쪽

마이클 왈처나 수전 오킨 같은 페(133)미니스트 이론가들이 매우 설득력 있게 주장한 것처럼,정의의 이론은 각각의 생활 영역들의 가치를 설명하고 존중해야 하며, 시장에서 중요한 재화들과 가정에서 중요한 재화들을 구분해야 한다.우리가 가족과 사랑을 자율적인 의미 및 행동 영역으로 간주하기 시작하면, 이어서 우리는 이것들을 윤리적 재화 -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아와 행복의 내용이다-로 분석할 수 있게 된다. -133,134쪽

다시 말해 부르디외의 모델을 거꾸로 적용할 때 우리는 특정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특정한 감정 아비투스 쪽으로 사회화되는 방식들, 그리고 특정한 감정 아비투스를 가진 사람이 친밀한 관계의 영역에서 특정한 형태의 에우다이모니아eudaimonia(행복,웰빙)에 도달하는 방식들을 탐구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친밀성과 우정이 다른 재화와 마찬가지로 사회적으로 분배되고 할당되는 방식들을 탐구할 수 있다.-134쪽

전통적인 비판론, 특히 문화연구에서 빈번하게 사용되는 비판론은 이른바 "순수성에 대한 갈망"을 그 특징으로 한다. 많은 문화비평가들이 문화를 그토록 중시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문화를 아름다움,도덕성,정치의 이상들을 발견할 수 있는(발견해야 하는)영역으로 보기 때문이다. 순수한 비판론은 문화를 정치 영역 안에 포섭하는데, 그러다 보니 순수한 비판론이 결국 하는 일은 문화가 어떻게 해방의 수단이 되거나 억압의 수단이 되는지, 문화가 어떻게 "쓰레기"를 만들어내거나 "보물"을 만들어내는지 그 방법들을 열거하는 일이 되어왔다.이러한 입장은 우리의 문화 분석을 자칫 빈곤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위험하다.-175쪽

문화를 정치로 포섭하려 할 때 발생하는 마지막 문제는 비평가가 신의 자리와도 같은 머나먼 자리로 쫓겨나게 된다는 데 있다. 문화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오늘날, 이러한 비평적 거리는 점점 그 근거를 잃고 있다. 아도르노가 재즈를 거부했던 것도 문화의 토양인 구체적(178)경험과 의미로부터의 급진적(그리고 잘못된)거리두기의 유명한 사례 중 하나다. 비판론이 위력을 발휘하는 때는 신적인 순수성을 버리고 평범한 작용주체들의 구체적 문화 실천들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모색할 때이다.그러다 보면 순수성이 "훼손"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그러나 후기 자본주의 시대의 문화비평가는 고도로 상품화된 전장을 비판하면서도 비평가 자신도 (선택이든 필연이든)전장 안에 자리매김되어 있고, 그런 만큼 순수성은 더욱 훼손돼야 한다.19세기 지식인은 자본주의가 미치지 못하는 "다른 곳"으로 물러서서 자본주의를 비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오늘날의 비판론 가운데 자본주의 제도들 및 기구들의 영향력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178,179쪽

물론 그렇다고 해서 비판론을 포기하고 온갖 사회 영역들에 대한 자본주의의 지배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우리가 맞서고자 하는 시장 세력 못지않은 교묘한 해석 전략들을 계발해야 한다. 비판론의 힘은 대상에 대한 친밀한 이해에서 나온다. 이는 비판론을 없애자는 말과는 전혀 다르다.오히려 우리는 비판론이 필요하다. 요컨대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비판론은 문화가 일정한 정치적 아젠다(평등,해방,가시화)를 어떻게 증진하는가(혹은 증진하지 못하는가)를 "열거"하는 비판론이 아니다.-179쪽

약속날짜를 합리적으로 결정하려는 이 환자를 나는 초합리적 바보hyperrational fool라고 부르겠다. 초합리적 바보란 판단하는 능력, 행동하는 능력,선택을 내리는 능력이 비용편익 분석(통제를 벗어나는 비교 대상들을 합리적으로 계량하려는 노력)으로 인해 손상되어 있는 사람을 뜻한다.-211쪽

지(212)금의 문화는 판타지를 끊임없이 엔지니어링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 판타지는 전에 없이 풍요롭고 다양하다. 하지만 지금의 문화는 판타지를 점점 현실에서 유리시켜 초합리적 시장 세계(시장과 관련된 선택 및 정보로 구성되는 세계)내부에서 조직하고 있고, 그런 의미에서라면 판타지가 오히려 빈약해졌다고 말할 수도 있다.-212,2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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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얼마나 팔렸는지 잘 아는 출판사 주간에게 물어봤다. 판매부수가 예상수치보다 어마어마하다. <정의란 무엇인가>가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는 기사를 실은 언론들의 프레임은 이것이었다.  '자기계발서 'vs '인문-사회과학'의 그 진부한 구도 말이다. 아직 책을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센델이 정치철학을 소개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하나의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 드는 사례 배치의 '자기계발서식' 형태가 센델의 이 책에 고스란히 적용되어 있는 느낌이다.그래서 고리타분하지 않고, 입력이 잘 되는 느낌이라고 할까. 그러나, 이런 느낌에 대해 이 책과 저자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한국 사회 안에 들어있는 '종교적 제의의 두드러짐'? 그런 것을 요즘 많이 돌아보게 하는데, 여기에 이 책을 소비하는 문화도 자리 하나를 차지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회개'라는 말까지 과장되게 쓰고 싶지는 않다. (한국 사람들이 그 정도로 착하다고 생각하진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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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9 11: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19 17: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늘빵 2010-07-19 1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술이 매우 자연스럽고 부드럽죠? 생각보다 술술 읽힙니다. 얼마전 나온 <하버드, 철학을 인터뷰하다>는 반면에 좀 딱딱 끊어지는 느낌이네요. 잘 읽히지 않고, 생각보다 내용이 별로 없어요.

얼그레이효과 2010-07-19 17:26   좋아요 0 | URL
아프락사스님의 근면독서가 부럽습니다. 저는 요즘 사실 책에 대한 성실함이 떨어져서 걱정이네요.힝.

마늘빵 2010-07-20 07:16   좋아요 0 | URL
저도 요새 책을 안 읽어서... 하버드 두 책만. 올해는 영 읽기가 부실하네요.

얼그레이효과 2010-07-20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복하시겠지요.^^!
 

일전에 '계간지'문화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내가 속했던 <당대비평>은 2005년 휴간을 했고, 2007년 커뮤니티를 다시 살려보자는 소수 기획위원들의 의지 아래, '단행본 기획신서'형태로 2010년까지 활동을 했다. 그러나 결국 며칠 전 모임에서 조용히 이 커뮤니티를 해소하기로 결정했다. '당비'라는 상징을 그대로 살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커뮤니티로 재출발할 것인가, 논의 상 갈등이 있었지만,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지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앞으로 그 누군가 다시 의지를 갖고 움직이지 않는다면, 사회 비평 공간 안에서 '당대비평'이든, '당비의생각'이든 그 이름을 찾아보기 힘들 것이다. 모두들 이 상징성을 무덤으로 가져가길 두려워했었기에, 머뭇거렸지만, 결국 '당대비평'의 소임은 이미 다했다는 것을 스스로 가슴 속에 새기게 되었다.  

시대적 변화에 뒤떨어진 것은 사실이었다. '당대비평'은 세대교체에 실패했고, 그렇기때문에 '당대비평'이란 이름이 무색하게, '오늘날' 무엇을 이야기할 것인가에 대한 적극적 의지가 제대로 모아지지 않았다. 진부한 판단이긴 하지만, 너무나 뼈아픈 '지식인들의 위상 추락'. 그것에 따른 지식 형태와 그 수용 변동에 대해 '당비'는 안타깝게도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했다.  

'당비 내부의 성찰처럼, 오늘날 인기있는 지식은 참여연대를 비롯한 '씽크탱크'에서 나온다. 그리고 가장 활발한 지식 수용의 피드백을 보고 싶다면, 당신은 처음엔 의욕적으로 출발했지만 갈수록 그 의지가 감퇴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인문/사회 비평 웹진이 아닌, kt 경제경영연구소 사이트를 찾는 게 좋을 것이다. 특히 아직까지 많은 좌파들이 기업에서 산출되는 연구 형태와 지식 구조를 무시하지만, 오늘날 기업 내부 안에서 만들어지고 구성되는 지식의 영향력과 그 중요성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날 좌파들은 이것에 대해 거의 이야기하지 않거나, 아직도 깔보고 있다. 나는 이것에 대해 준비중이다) 

인문,사회 지식 생산 공간의 순혈주의를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아카데미와 비-아카데미라는 구분선을 긋고 싶은 것 역시 아니다. 다만, '지식의 전유' 차원에서, 어떻게 지식 자체가 변용되고 시장화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을 계속 갖지 않는다면 위험하다는 것이 내 소견이다. 

주류 언론이 주도하는 기획성 담론의 공간 안에서 지식인들의 이야기가 휘둘리는 듯한 구조 또한 깨야 한다. 상당히 신나게 자신의 독특한 시선을 각종 미디어를 통해 제시하는 것 같지만, 내가 보기에 그런 미디어가 제시하는 담론의 공간 안에서 '자유의지'를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는 지식인들의 '스킬'만이 횡행하는 것 같다. 그렇기에 '최적화'된 논술-언어만이 사회평론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고, 그 틀을 깨고자 하는 언어는 공간에 끼어들 수 있는 자격을 부여받지 못한다. 

아카데미 구조 안에 스며든 생존 상황도 '무엇을 말할 것인가'의 문제와 겹쳐, 어두움을 더해가고 있다. 예전과 달리 '무엇을 말할 것인가'에 대한 의지를 제대로 펼치기엔 '삶 자체'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것은 지식인들도 피해갈 수 없다. 학문 사회 안에서 자신의 소득을 고정화하기 위한 몸부림 또한 펼쳐나가야 하기 때문에, '당비'와 같은 커뮤니티에 헌신적으로 임할 수 있는 이는 갈수록 줄어드는 것이 사실이며,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단행본 하나를 내더라도, 자신의 '생존 점수'와 연관되어 있는 일에 참여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물론 이것은 어쩔수 없는 현실이다) 

결국 이런 복합적인 상황 안에서 '당비'는 다시 산소호흡기를 제거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모두 오랜 잠을 자기로 했다. 하지만 그것은 외면의 잠은 아니다. 언젠가 돌아올 날을 기다린다. 그리고 거기에 내 이름을 다시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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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모임을 마지막으로 '당대비평' 간사직을 그만두기로 했다.  알라딘 블로그에 내 삶의 고민들을 두텁게 쓰는 데 많은 도움을 준 커뮤니티인지라, 애착과 아쉬움이 큰 것 같다. 보다 새로운 자극과 또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미래를 기약하면서, 약 2년 간의 추억을 정리하러 마지막 모임 장소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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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쇼(1990.12). VIDEO LAND. 

277쪽 

아마도 걸작을 '갈구'하는 비디오매니아라면 극장에서 만나지 못했던 이 작품을 비디오 브라운관으로 꼭 관람해야 할 것이다.  

 - 이상 <1900> 

이 영화 <필사의 도전>은 내용뿐 아니라 스케일, 감동에 있어서도 대작으로 일본비디오판이 2시간 40분인 것에 반해 우리나라에선 원래의 상영시간 3시간 12분이 1,2부로 나뉘어 그대로 출시될 예정이다. 

288쪽 

홍콩영화는 비디오시장에서 '대박'으로 통한다. 이중 <흑전사>는 극장에서 그다지 큰인기를 끌지 못한 작품이지만 작품성이 높아 <영웅본색>이 그랬던 것처럼, 비디오 팬들에게 뒤늦게 사랑을 받고 있는 작품.  

(중략) 우리영화는 전혀 그림자도 볼 수 없다. 홍콩영화가 9편, 미국영화가 5편, 그리고 대만영화 1편만이 차트를 메우고 있다. 결코 우리영화가 출시되고 있지 않아서는 아니다. 매달 5~10편은 꼭 출시되고 있음에도 비디오팬들에게 외면을 당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영화가 미국영화,홍콩영화만 못해서 인가,아니면 비디오팬들의 이해부족에서인가. 어떠한 이유에서건 비디오 문화마저 외국에게 빼앗기고 있다는 사실은 심히 염려가 된다. 

스크린(1989.12). VIDEO TOTAL. 

230쪽 

벤을 중심으로 마을의 현지주 일가의 애증이 일시에 폭발하는 파란만장한 드라마의 전개는 비디오만으로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 <길고 뜨거운 여름> 영화 소개 중. 

231쪽 

국내 굴지의 비디오 프로덕션인 대우와 SKC가 만화영화비디오에 뛰어들었다. 그들은 몇몇 군소 프로덕션에서 시도를 해오고, 이른바 '비짜'로 통하는 비디오가 유통되어 왔으나 본격적으로 대메이저가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일부 유흥업소와 호텔 디스코 텍에서 틀어주던 <톰과 제리>가 인기를 얻고 비디오 선택권이 아동들에게 크게 좌우되는 현실에 비추어 그 예상은 오래된 일이다. 

스크린(1989.9). 스크린 9월 취재기자 방담. 

<첩혈쌍웅> 비디오만 세 가지 

참, 주윤발의 <첩혈쌍웅>의 인기가 대단하죠? 극장에 동원되는 관객수도 관객수지만, 학생들 사이에서는 극장 영화가 많이 잘렸다는 소문이 돌아 비디오를 더 많이 본다는군요. 그런데 아뭏든 어떤 학생들은 완전히 '뿅'갔어요.  

비디오의 자막 번역에 문제가 커요. 보통 존칭과 비칭이 엇갈려 형인지 동생인지 모르고, 홍콩영화의 경우엔 특히 음과 훈히 바뀌고 족보와 이름이 제멋대로죠.<첩혈쌍웅>의 경우에도 비품으로 세 가지가 돌고 있는데, 그 세 가지가 각각 다른 데서 나온 것이라서 이름과 대사가 모두 달라요. 

그런 것은 보통 영화가 나오기 3,4개월 전에 대충 번역을 하는 데서 나온 결과죠. 교회나 절,경찰조직 등 어떤 전문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이 주관적으로 번역하다보면 결과적으로 말도 안되고 웃기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죠.  

로드쇼(1990.6). VIDEO LAND. 

286쪽 

렌탈마켓이 주를 이루었던 우리 비디오 시장이 점차 세일마켓을 개발하여 그 영역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비디오 샵에서의 대여만을 위주로 제작, 판매되었던 비디오 프로그램을 점차 판매가를 낮추고 '하우트 프로(hOW TO PROGRAM)'을 출시하면서 비디오 샵이 아닌 일반 소비자를 최종 소비자로 겨냥하고 있는 것. 

로드쇼(1991.12). VIDEO LAND.  

282쪽 

1991년 한 해 동안 자그마치 600여편의 정품 비디오프로그램이 비디오샵에 쏟아져 들어왔다. 그중에는 물론 극장 개봉작들이 대다수일뿐만 아니라 개봉을 놓치고만, 혹은 도저히 개봉할 수 없었던 컬트, 졸작들까지 몽땅 몰려들었던 것이다. 우리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영화들을 비디오를 통해서 접할 수 있었을까? 

(중략) 특이할 점은 풍요로운 비디오 소프트웨어로 인해 이전처럼 비품을 선호하는 경향들이 사그라지고 바른 비디오문화의 정착을 엿볼수 있다는 것. 각 비디오샵에서 대여 순위의 특징으로 꼽는 것은 역시 개봉된 작품들이 불티나게 팔리는 비디오로 랭크되고 있다는 점이다. 

(중략) 극장가에서의 홍콩영화퇴조 현상이 비디오 렌탈 박스에서도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음이 독특하다. 

 로드쇼(1992.8). VIDEO LAND.   

281쪽 

로드쇼는 싸움을 걸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것은 혈흔이 낭자한 격투가 아니라, 네모진 비디오 갑속에 숨어있는 뻔뻔스런 상혼과 걸작모독에 대한 전면적 항의인 것입니다. 구석에서 찾아낸 공포소설의 귀재 스티븐 킹의 호러 무비 올 리스트와 함께, '복원'을 위한 비망록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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