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8월 17일 화요일 11시~12시는 한국언론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날로 기억될 것이다.  

결국 방송의 내용 공개 자체를 막음으로 인하여, 이 정부는  자신들의 오류를 만천하에 알린 셈이 되었다.  

욕도 아까운 정부다.  (아래 내용은 원래 방영 예정이었던 피디수첩 관련 요약문임)  

참고로, 오늘 방송 예정이었던 피디수첩은 급히 vj비하인드스토리란 프로그램으로 대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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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수심 6m ··· 누가 밀어 붙였나?
2008년12월15일, 국가균형발전위원회 회의에서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가 발표됐다. 소규모의 자연형 보 4개를 설치하고, 강변 저류지를 21곳 설치하며, 4대강의 퇴적 구간에서 홍수를 소통시킬 수 있도록 2억 입방미터를 준설한다는 안이었다. 이 발표 후 정부는 이 기본구상을 토대로 마스터플랜 수립에 들어갔다. 그 후로 4개월 뒤인 2009년 4월27일,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 중간발표에서는 자연형 보 4개가 대형 보 16개로 늘어나고 5.7억 입방미터 준설을 통해 낙동강의 경우 최소수심 4~6m 수심을 확보한다는 것으로 계획이 변경되었다. 4대강살리기사업이 대운하를 위한 포석 아니냐는 의혹을 받게 된 배경이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와 경위로 애초의 기본구상이 바뀌었을까? 4대강살리기사업 마스터플랜 연구총괄책임자인 김모 박사는 국가균형위에 보고된 바 있는 ‘4대강살리기 프로젝트’안을 전달받은 바가 없다고 PD수첩에 밝혔다. 그렇다면 누구의 지시로, 어떤 근거로 4대강살리기 프로젝트가 변경된 것일까?  
이와 관련해 PD수첩은 국토해양부 산하 한강홍수통제소에서 08년9월부터 12월 사이, 4대강 살리기 계획의 기본구상을 만들기 위한 비밀팀이 조직됐으며 이 팀에는 청와대 관계자 2명을 비롯, 국토해양부 하천 관련 공무원들이 소속돼 있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2008년 6월 특별기자회견을 통해 대운하 사업 중단 의사를 밝힌지 불과 3개월 지난 시점이다. 당시 이 모임에 참석한 청와대 행정관은 대통령의 모교인 동지상고 출신과 영포회 회원인 것으로 확인됐다. 또 이들이 수심을 6m 확보해야 한다는 구상을 실현시키겠다는 의사를 지속적으로 전달했다는 정보도 입수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운하를 포기한 지 수개월밖에 안된 상황에서 운하와 너무 닮은 계획을 밀어붙이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많다는 판단 하에 소규모 안으로 결정됐으며, 수심 6미터 안은 추후 구체화한다는 복안도 있었다는 것이다. PD수첩은 방송을 통해 당시 이 모임 참석자와 논의내용, 이후 소규모 계획이 운하와 닮은 대규모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로 변경된 경위 등을 상세히 밝힐 예정이다. 

본류에 확보하는 13억㎥의 물 ···· 대부분 “흘러보낼 용도”

정부는 보와 준설을 통해 모은 물로 고질적인 물 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주장한다. 어느 지역에 얼마의 물이 부족한 것일까? 우리나라 하천관리계획 중 최고상위단계인 수자원장기종합계획에 따르면, 낙동강의 경우 2016년에 필요한 물의 양은 1.4억 톤이다. 하지만 추진본부는 2016년 낙동강에 10억 톤의 물을 확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수자원장기종합계획의 부족량보다 6배나 많은 양이다. 왜 이렇게 많은 물을 추가로 확보하려는 것일까? 추진본부는 낙동강에 확보할 물 10억 톤의 상당량이 하천유지용수라고 해명했다. 하천유지용수란 생활용수, 공업용수, 농업용수가 아니라 하천의 유지를 위해 그냥 ‘흘러 보내는 물’이다. 
문제는 하천유지용수가 정작 필요한 곳은 본류가 아니라 지류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주요 지류는 갈수기에 바닥을 드러내왔다. 4대강 마스터플랜 초안에는 ‘지류 48개에서 모자라는 하천유지용수’가 17억톤이라고 적시하며 물 확보의 근거로 삼았다. 즉, 지류에 부족한 물을 확보를 위해 본류에서 무리하게 보를 만드는 셈이다. 
PD수첩은 국토해양부가 고시한 물 부족 지역의 지도에 4대강 본류의 위치를 표시해봤다. 그 결과, 4대강 본류 주변은 물부족 지역과 무관하다는 것이 확인됐다. 문제는 정부의 대응이다. 지류에 부족한 물을 왜 본류에 확보하느냐는 비판이 제기된 후 정부는 마스터플랜을 수정됐다. 마스터플랜 초본에는 ‘지류 48개에 부족한 하천유지용수가 17억톤’이라고 적시했는데, 최종본에는 ‘4대강 주요 지점에 부족한 하천유지용수가 17억톤’이라고 수정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류 48’개를 ‘4대강 주요지점’으로 왜곡한 것이다. 정부가 보를 만들어 생태를 파괴하면서까지 대량의 물을 확보하는 근거를 대지 못하자 마스터플랜까지 왜곡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정부는 왜 무리하게 대량의 물을 확보하려는 것일까? 이 문제에 대한 마스터플랜 연구총괄책임자인 김모 박사의 발언이 입수됐다. 김박사는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낙동강 살리기 사업으로 확보할 10억 톤은 계산된 수치가 아니라, 수심을 확보하기 위해 준설을 하고 난 후 공간을 계산했더니 10억 톤이다’라는 취지로 설명한 바 있다. 즉 물 부족을 해소하기 위해 보를 만들고 준설을 하는 것이 아니라, 준설을 했더니 10억톤이라는 물의 양이 나왔다는 것이라고 실토한 것이다.    

낙동강, 1%의 홍수예방을 위해 99% 상습수해지역 외면

정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을 통해  홍수피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생태파괴 논란을 무릅쓰고 4대강 본류 구간에 5.7억㎥을 준설한다는 계획이다. 4대강 본류 강바닥을 준설하면 우리나라의 홍수피해가 근본적으로 해소되는 것일까?
 PD수첩은 국토해양부가 고시한 상습수해지역 지도를 입수했다. 이 지도에 4대강 본류의 위치를 표시해 봤다. 그 결과, 4대강 지류는 상습홍수지역과 무관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같은 사실은 통계로도 입증된다. 1999년~2003년 사이 발생한 홍수 피해 중 4대강 등 국가하천 피해액이 3.6%였고, 나머지 96.4%가 지방하천과  소하천에서 발생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상남도의 경우, 지난 10년 동안 전체 홍수 피해액 중 낙동강 본류에서 발생한 홍수피해가 1.3%로 확인됐다 나머지 98.7%의 홍수피해는 지류와 소하천에서 일어난 것이다. 이 통계는 정부의 주장대로 4대강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지더라도 90% 이상의 홍수피해는 그대로 진행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생태를 파괴하면서까지 4대강을 준설하는 것일까? 추진본부는 4대강 전 구간에서 200년 빈도의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준설한다고 밝혔다. 4대강 본류 주변에 대도시와 공단이 위치하기 때문에 홍수가 발생할 경우 대량 피해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PD수첩이 확인한 결과 4대강 본류 주변의 대구 부산 등 대도시 구간은 이미 200년 빈도의 홍수에 대비해 설계된 것으로 밝혀졌다. 더구나 지방하천을 끼고있는 소도시와 공단들이 상습적으로 수해를 겪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본류 강바닥을 준설하겠다는 정부의 논리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4대강에 개발 바람이 분다.
여당 ‘수변개발 특별법’ 추진한다
 

4대강사업을 통해 확보할 대량의 물은 어디에 사용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 문광부가 추진 중인 리버크루즈 계획이 주목을 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관광연구원은 2009년 10월 독일의 프랑크푸르트, 쾰른을 포함한 다섯 개 도시의 답사를 다녀왔다. 답사의 목적은 독일의 리버크루즈(River Cruise) 운영 및 관광 상품화 등 해외 사례를 조사하기 위한 것이다. 답사를 다녀온 책임연구원은 ‘독일 강의 갈수기 수심은 2~3미터이지만 우리나라는 4대강사업을 통해 6~8m의 수심이 확보되기 때문에 배를 띄우는 데 문제가 없다’ 고 보고했다. 이 같은 자료를 기초로 문광부는 4대강을 운항할 리버크루즈 계획을 수립했다. PD수첩이 확보한 관련 자료에는 2012년 시범 사업, 2014년에는 본 사업에 착수한다고 되어있다.  
4대강주변의 개발계획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대구시는 낙동강 강정보와 달성보 사이에 에코워터폴리스(Eco-Water Polis)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현재 달성습지가 자리한 곳이다. 이곳에 20만톤 규모의 크루즈선을 도입해 카지노 호텔을 운용하고 경정장, 놀이시설 등 테마파크를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이미 지난 5월 미 투자은행인 프로비던트 그룹(Provident Group)과 ‘에코워터폴리스 개발 및 투자유치를 위한 MOU’를 체결한 바 있다. 
 4대강주변을 개발하기위한 입법도 추진 중이다. 이미 ‘친수구역 활용에 관한 특별법’ 이 한나라당 의원들에 의해 발의되어 있다. 이 법안에 대해 민주당 등 야권은 ‘4대강 주변의 난개발을 부추기는 법’이라며 반대의사를 밝혀왔다. PD수첩이 입수한 문건에는 여권이 9월~10월 사이 이 법안 통과를 추진할 것으로 되어있다.

2010년 8월17일 방송될 제869회 PD수첩 ‘4대강, 수심 6m 비밀’에서는 4대강살리기사업의 추진 과정, 마스터플랜 작성 과정 등 미공개 사실이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방송된다. 

기획: 김태현 CP 
연출: 최승호 PD
홍보: 남궁성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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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10-08-17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뭔일이 있었는데요~~~ 어제 그 시각에 텔레비전을 안봐서뤼~~ 대형사고인가요?

얼그레이효과 2010-08-17 23:41   좋아요 0 | URL
피디수첩에서 4대강 문제로 방송을 할 예정이었는데, 김재철 사장이 틀지 말라고 막았다는군요. 그래서 갑자기 지금 vj 비하인드스토리란 프로그램이 방송되고 있습니다. 예전에 우루과이라운드 관련보도하여, 이렇게 불방처리 된 적이 있었는데, 20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하더군요.

웽스북스 2010-08-17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어이없는 일. -_-

얼그레이효과 2010-08-17 23:46   좋아요 0 | URL
김재철 사장, 조인트까이는게 두려웠나 봅니다.-_-

웽스북스 2010-08-17 23:48   좋아요 0 | URL
그니까요. 너무 알아서 기는 것 같은데,
얼마나 무서우면 그럴까 싶기도 하고 (이해한다는 얘기 아님 ;;;)

얼그레이효과 2010-08-17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중권이 그랬나요? 이 정부는 '밥줄'을 끊어버린다고...지금 티비에서 밥집 소개 나오는데,,묘하네요..ㅡ.,ㅡ

pjy 2010-08-18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러고도 자유민주주의 공화국이죠 ㅡ,.ㅡ; 참,

얼그레이효과 2010-08-18 00:28   좋아요 0 | URL
너무하네요.이 정부 진짜.,.

마늘빵 2010-08-18 06: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어이 없는 일. 피디수첩도 안 돼. 추척 60분도 안 돼. 저 정신나간 것들을 어찌 해야 할지. '자발적 독재'라는 새로운 정치체제가 수립된 나라로 기록해야. -_-

얼그레이효과 2010-08-18 11:57   좋아요 0 | URL
정말 욕하기도 지치는 정부네요..

쉽싸리 2010-08-18 0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네, 저도 티브를 안보는데 아침 인터넷 뉴스 보고 알았습니다.
20년 만의 사태라고 하더군요.(1990년에 우루과이 문제 방영못한 이후)
상식이하의 일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8-18 11:57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정말 상식도 모르는 놈들일 겁니다..

2010-08-18 17: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9 00:1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8-20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디 수첩 불방은.. 정말 한스러운 일입니다.
화가 나고 어이없는...... 정말 현 정권의 한계를 명확하게 보여준 사건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8-21 03:45   좋아요 0 | URL
정말 어이가 없었죠..다음주는 과연 어떻게 될지..
 

 

 

 

 

 

 

 

 

때론 더러운 공중화장실이 그리울 때가 있다. 문을 열었을 때, "아이씨, 여기엔 무슨 화장지도 없어!"라고 버럭하다가도, 막상 넉넉한 화장지, 우리집보다 더 좋은 향기를 배출하는 방향제의 위력을 느낄 때면, 옛 화장실이 생각나는 것이다.  (<순수와 위험>의 저자 메리 더글라스는, 이미 예전부터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사람이었다)

인간이란 참 간사하구나,라는 생각을 뛰어 넘어, 나는 인간에게 순수함과 더러움이라는 그 경계를 생각하게 만들어놓은 그 지각의 도식, 그 경계선에 대해 궁금할 때가 많다. 똥을 봐도, 더럽지 않네,라고 말할 수 있는 세상을 그려보고, 너무나 깨끗한 친구네 집에 놀러갔을 때, "야, 아무리 혼자 살지만..."으로 시작되는 말을 하는 상황을 상상해본다.  

그 경계를 문제삼을 때, 인간은 혼란스러워질 것이다. 너무나 상식적인 예상이지만, 질서와 무질서를 딱 잘라놓던 장면들은 흐릿해질 것이다.  

가끔 이런 '변태'같은(물론 이 '변태같다'는 표현 자체도, 인간이 그동안 살아오면서 만든 문명의 기호라는 한계가 있지만)생각들이, 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큰 힘이 된다는 건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만, 오늘날 세상이 만만치 않은 건, 변태도 그냥 변태면 되지 않고, '합리적 변태'라는 상을 이 시대가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변태'도 나름 의미를 붙일 수 있는. 아니 붙여야 하는. 

변태에게도 정치적 의미를 붙여야 하는 상황이 왔을 때, 나는 처음에 그것이 혁명이라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그것은 자본주의가 보여준 최고의 함정이 아니었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차라리 인간에게 남은 건, 이쁜 변태, 예의 있는 변태, 합리적 변태를 가려내는 그 자체가 아니라, 아예 그것을 인식하는 선 자체를 붕괴시키는 것일텐데... 

장경섭 작가의 만화 <그와의 짧은 동거>를 읽으면서..문득 담배를 피고 싶어졌다.-정확히 말하자면 배운다는 표현이 맞을듯.담배를 피워 본 경험이 없다) (이럴 때, 사람들은 담배를 피는구나,같은 괴로움 그 상태에서. 일시정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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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에 들어와서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이 문제. 논문의 첫 머리에 소설 몇 구절을 인용하는 것에 대해 친구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나는 예전에 이 대화의 내용을 졸업논문 준비 세미나 시간에 발표했고, 지도교수와 동료들은 깊은 관심을 나타내었다. 이것은 어쩌면 지난 날 내가 무심코 저질러버린 짓에 대한 반성. 논문이란 과연 무엇인가?  연구란 과연 무엇인가? 에 대한 성찰과도 이어진 것이었다.  

내 경험을 소개하자면, 나는 2008년에 대학교 총학생회를 연구 대상으로 하여 문화기술지를 쓴 적이 있었다. 나는 이 연구를 통해 과거 pd나 nl같은 노선에 의해 좌우되었던 기존 연구의 시선에서 벗어나, 대학교 총학생회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일상을 스케치하고 싶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대체 잠은 언제 자는지, 스트레스는 어떻게 푸는지, 교수와의 관계는 좋은지, 바쁜 시간 쪼개어 연애는 하는지,혹시 선배가 등떠밀어 출마한 것은 아닌지, 등등 관련 연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질문들을 준비했고, 나름의 틀을 구성하여, 그들이 차마말할 수 없는 부분들이 어떻게 그들을 차갑게 보는 학생들의 시선과 대립되는지를 조명하고자 했다. 문화기술지라는 연구 방식을 아우르는 질적 연구의 경우, 최근에 강조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치유적 글쓰기'인데, 이는 연구를 하는 사람과 연구 대상이 된 이들이 함께 연구 문제를 놓고 서로가 사회를 살아가면서 느꼈던 삶에 대한 상처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라는 부분들을 고민해보는 것이었다. 특히 이 경우 연구를 하는 나 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시선은 그런 그들의 상처를 오해하지 않도록 오히려 더 냉정해야 한다. 그리고 나 스스로를 더 돌아봐야 한다.  

특히 난 당시 논문의 그 '딱딱함'이 싫었고, 내 연구 주제를 뭔가 재미있게, 뭔가 따뜻하게, 쓰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문화연구라는 '혼성과 절합의 지식 장'이 있기 때문에, 그런 욕심은 쉽게 이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문제는 논문을 다 완성하고 나서, 그리고 발표를 하고 나서, 지도교수와 동료들에게 칭찬을 듣고 나서부터 발생했다. 어떤 죄책감? 내가 정말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같은 생각들이 논문을 쓰고 난 지 일 년 후(2009년),  세게 닥쳤다. 폭풍의 눈은 이것이었다. 내 논문에 인용된 소설들. 내 기억으론 강석경의 숲속의 방과 이문열의 젊은 날의 초상 중 기쁜 우리 젊은 날의 한 대목이었다.  

난 논문을 쓰던 당시 나를 이렇게 합리화시켰던 것 같다. "그래. 나는 딱딱한 논문만 읽는 사회과학도가 아니라구. 난 평소에 소설도 읽으면서, 이렇게 내 감성도 키워가고 있다구." 난 거북 등껍질 같은 그 딱딱함이 싫었고, 그래서 한때 '문학 같은 논문'을 쓰고 싶다는 대책 없는 선언을 동료들,그리고 교수들에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런 내 글쓰기 자세에 대한 반론이 들어왔다. 국문학을 전공한  오랜 친구가 나의 논문을 보더니, 일침을 놓는 것이었다. "오빠, 난 이렇게 요즘 문화연구자들, 자기 연구에 소설을 딱 앞에 갖다 놓고 시작하는 거 마음에 안 들어. 너무 무례한 거 아닌가? 문학에 대해. 소설에 대해" '무례'라는 표현이 인상 깊었다. 난 도대체 내가 인용한 소설에 대해 어떤 무례를 저질렀던 것일까? 

5  

바로 지점을 콕 찝어보면, 내 무례는 문화연구가 갖고 있는 한계에서 시작한다. 문화연구는 미학적 관점에 약한 부분이 있다. 미학적 판별보다는,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맥락. 흔히 우리가 말하는 제도, 환경, 기술 등등에 밀착하다보니, 내가 읽고 있는 /접촉하고 있는 텍스트에 대한 꼼꼼한 독해는 사라지고, 그 독해를 둘러싼 '사람들의 행위'에만 집중하게 되는 것이다. 결국 나는 '사람들의 행위에만 집중하다'란 측면에서 두 가지 문제를 쉽게 지나치고 말았다. 첫째, 내 서재에 있는 소설 중, 요 놈이 이번 내 연구에 적절한 참고가 되겠어. 내 논문을 적당히 부드럽게 만들어 주겠지? 난 그래도 통계돌리는 놈들과는 차별된 그 무엇이 있겠지?라는 어긋난 과시. 결국 나는 연구 대상자가 아닌 '내 행위에만 집중한 꼴'이 되고 말았다. 둘째. 소설에 대한 어림잡기였다. 이는 저자에 대한 어림잡기이기도 했다. 그래, 이 구절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거의 비슷하네, 라는 그 추측으로 인해 핀셋에 걸려버린 몇몇 문장들에 대한 내 예의없음. 그래서 나는 적어도 그 구절들이 나오게 된 맥락들을 꼼꼼하게 챙겨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다. 결국 소설 속 사람들의 말을 죽이고, 내 말을 살리고 만 꼴이 되었다.  

소설을 논문의 액세서리처럼 생각하는 문화연구자들(나를 비롯한)의 오류는 이것이다. 그들은 문화를 통해 사람들의 생활을 연구하는 만큼, 소설에 담긴 내용을 생활 자체로만 치부하는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그래서 내가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다다르지 못한 생활상에 대한 접촉, 그것에만 머무른다) 그랬을 때, 우리가 소설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책을 만지면서, 글자를 쓰다듬으면서 생기는 새로운 입체적 시각들, 그 황홀함에 대한 깊은 고민들은 사라지고, 소설의 구절들은 단지 내가 접해보지 못한 세계에 대한 실천으로만 머무르게 된다. 

특히 나처럼 문화를 사회과학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사람들의 오류가 여기서 드러난다. 이들은 '문학적 상상력'이라는 개념을 빌어, '문학'과 '상상'이라는 어감이 주는 '부드러운 창조력(?)' 같은 자신만의 기대치를 만드는데, 이것은 깊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인 듯하다. (이들의 관용 표현을 꼽자면, 이와 같다 "역시, 소설을 읽어야 해. 왜 내가 이걸 몰랐지? 소설이 주는 그런 맛이 있거덩요. 문학이 주는 그런 감수성이 필요합니다"같은 과장)그것이 과연 소설 몇 구절을 인용한다고 해서 해결 가능한 것일까? 오히려 이런 '인용의 빈번함'으로 인하여, 연구자인 '나'는 오히려 나의 '지적 빈곤' 그 자체를 과시해버린 것은 아닐까? 소설이 논문의 액세서리가 되었을 때, '억압된 것으로서의 소설'은 결국 내 목을 조를 날이 온다는 것을 안다.  혹시 주위에 소설을 정말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휴대폰 고리에 걸고 다니는 이들을 발견한다면(<-비유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의 감수성을 조심하라.  최근에 나온 소설들을 두루두루 이야기하면서, "정말 재미있지 않아?", "난 그거 별로던데"라는 말 정도로 오랜 시간 수다를 떠는 이들,'(원딩)을 조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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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16 15: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8-16 16: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20년간 IT 분야만 했답니다. 그래서인지, 인문 쪽 용어들이 정말 어려워요.
웃으시겠지만, 미학이 무엇인지도 모르겠구, 사회과학적이 무엇인지두 잘 모르겠구.
아마.. 제가 전산 관련 용어로 무엇인가를 다룬다면, 그 분야를 모르는 분들도 마찬가지 느낌일까요?
문득 궁금해집니다.......... ^^

가끔 동시대를 사는 사람인데, 아아, 난 왜이리 모르지 라는 생각과 함께 흥미롭기도 합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8-17 02:42   좋아요 0 | URL
그것도 몰라요?라고 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겠죠..^^

2010-08-17 10: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7 12: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많은 채널 서비스에 가입해도, 결국 집중적으로 보게 되는 채널은 한정되어 있다. 영화 채널 안에서도 그런 법칙은 유효하다. 캐치온 같은 유료 서비스나, 오시엔, 채널 시지뷔 같은 채널이 아니면, 그 이외 채널들은 소외받기 마련이다. 하지만, 오히려 소외받는 채널들이 주는 사소한 재미들 또한 있다고 본다. 

요즘 만두를 빚느라(내 블로그에 자주 들어오는 분들은 이 '만두'가 진짜 만두는 아님을 알 것이다) '야행성'체질로 바뀌면서, 좀처럼 보지 않던 채널들을 틀어놓는 습관이 생겼다. 이 채널들은 보고 싶은 최신 영화나 다시 봐도 질리지 않는 옛 작품들을 틀어주진 않지만, 조금만 참고 있으면, 나름의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옛 영화, 혹은 몰랐던 작품의 진가를 발견하도록 한다. 

시간대도 버리는 시간대, 새벽 1시~ 4시 사이. 이때, 사람들이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영화들이 마구 쏟아진다. 내가 요즘 '버리는 영화'라고 명칭을 붙인 그 작품들은 일반적으로 나의 눈보다는, 리모콘 버튼의 사랑을 더 받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약간의 인내심만 있으면, 자신만의 보물로 만들 수 있다.  

 

사실, 요즘 내 눈에 자주 걸리는 작품은 아주 모르는 영화들은 아니고, 특히 남자들의 뜨거운 성교육 교재로 활용되기도 했던 잘만 킹 감독의 대표작 <레드 슈 다이어리>다. <와일드 오키드>에서 미키 루크의 그 끈적한 모습을 마음 한 켠에 늘 두고 있었던 나에게, <레드 슈 다이어리>를 최근에 이렇게 야심한 밤에 만난다는 건 또 다른 재미로 다가왔다. 무엇보다 <레드 슈 다이어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에피소드가 소개 되기 전, 개와 함께 등장해 인생의 모든 허무함을 다 껴안은 것 같은 데이빗 듀코브니의 모습이다. 듀코브니는 자신에게 도착한 에로틱한 사연들을 읽고, 개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한다. 구구절절히 설명하지 않고, 짧게, 그리고 강렬하게. 하지만 언제나 목소리는 지긋이 깔면서.  이 작품에서 온갖 '똥폼'을 다 잡는 그를 보다가, 미드 <캘리포니케이션>에서 맡은 섹스 좋아하는 작가의 모습을  떠올려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버리는 시간대'에 만나는 또 한 명의 반가운 인물은 섀논 트위드이다. 지금은 인터넷 때문에 그 열기가 식었지만, 비디오 문화가 한창이었을 때, 비디오 가게 에로 칸을 자주 채우던 이 여인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녀는 에로 스릴러 장르의 대표 주자였으며, <데드 섹시>같은 작품은 꽤 재미 있어서 세 번 정도 봤던 기억이 난다. 섀논 트위드는 이제 과거의 인물이 되었지만, 그녀의 전성기 모습은 여전히 '버려진 시간대'를 통해  자주 볼 수 있다. 언제나 에로 영화 특유의 색소폰 소리와 잘 어울릴 것 같은 그녀이지만, 그녀의 남편은 너무나 유명한 락 그룹 키스의 멤버 진 시몬스이다. 예전에 유방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완쾌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요즘 이 '버려진 영화'들을 통해 얻는 깨달음은 이미 오래전 쿠엔틴 타란티노가 했던 말과 같다. 

"이 세상에 쓸모 없는 영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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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jy 2010-08-17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레드 슈 다이어리> 는 저도 참 재미나게 봤었는데요^^

얼그레이효과 2010-08-18 01:41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보니. 듀코브니의 젊은 모습이 어색했다는..^^
 

 

"벌써 가?"  

"응 약속이 있어서.." 

"응. 그래. 잘 가"   

"형, 잘 가세요!, 오빠 또 다음에 나와요"

"벌써 가?"(이놈, 휴가 좀 그만 나오지. 요즘 군대 많이 좋아졌나봐) 

"응 약속이 있어서.."(사실, 혼자 집 봐야 하는데. 하지만 눈치 주는 것 같아서. 반기는 사람도 없고) 

"응. 그래 잘 가"(나는 숙제 해야 되서 이만)   

"형, 잘 가세요!,오빠 또 다음에 나와요"(어휴, 저새끼 간다. 좀 그만 나오지. 너무 자주 나오는 거 아냐) 

15분 후  

3  

작별 후 다시, 그는 돌아온다.  

"어? 선배? 간다고 하지 않았어요?" 

"응. 그게 내가 길을 너무 빨리 나선 것 같아서..시간이 남네" 

아무렇지 않은 사람들. 군대 가기 전날 밤, 나 없으면 죽을 것 같은 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자신의 삶을 살 때 속상함. 

세상은 정말 나 없이도 잘 돌아가는구나,라고 느꼈을 때 다가왔던 당혹스러움. 

 

나같은 경우, 일부러 휴가증을 학교에 놔두고 와선 잃어버린 척 했던, 지금 생각하면 꽤 유치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라도 해야, 날 기억해줄 것 같아서.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휴가는, 갑자기 일을 하게 된 휴가이며, 가장 '불쌍한'휴가는 군인들의 휴가가 아닐까 싶다. 

(더운 여름, 그들의 주적은 개구리복이 아닐까 하는 1인의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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