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환과 엠시몽을 다룬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무리수'를 마셔야 할 사람은 오히려 언론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화비평가라는 사람들이 재판관이 되려는 한국 사회에서, 네이버 지식인에 문화평론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를 묻는 새싹들의 미래가 암담하다.  오히려 지금 물어야 할 건 연예인의 윤리가 아니라 언론의 윤리가 아닐까. 정말 한국의 대중문화 저널리즘은 재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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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int236 2010-09-16 0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장보고는 논개로 바꿔야겠는데요^^

얼그레이효과 2010-09-16 23:49   좋아요 0 | URL
아하. 뒤늦게 이해했습니다. ㅋ

2010-09-20 18: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당연하게도 여기에서의 관찰자는 더이상 실증주의 과학의 초연한 입장이 아니다. 또한 반드시 완전한 참여자도 아닌 것이다.그는 상응관계에 있다고 하자. 그는 분석하려고 하는 어떤 가치들을 이해하고 공감한다. 아마도 그것은 자기 반성에 부분적으로 바탕을 두고 있는 일종의 "심층 사회학"과 관계가 된다. 여기에 관해 어떤 확증을 갖고 있진 못해도 우리는 사회과학에서 이 방법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어느 정도 '공범자'가 된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이른바 '낭만적 사회학'에 관여하는 것이다. 사회의 이곳 저곳을 탐색하면서 그들은 많든 적든 그들 스스로 이미 지니고 있는 어떤 것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방법에 대해 그의 저서 중 가장 핵심적이라 할 수 있는 장에서 페라로티는 '상호작용으로서의 연대기'를 제시하고 있다. 개인연대기 그 자체가 경험임에 틀림없다는 것은 연대기가 '체험'을 고려하게끔 상정되기 때문이다. 

                                                                     - 미셸 마페졸리(1989), 일상생활의 사회학 : 인식론적 요소들 중에서 - 

한때 '일상생활의 사회학'이란 테마가 유행한 적이 있었다.(일상생활연구회라는 것도 덩달아 국내에 생겨났던 기억이 있다) 이 테마의 두 '본좌'를 꼽으라면, 앙리 르페브르와 미셸 마페졸리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르페브르가 현대의 기호와 언어를 통해 현대성을 규정하는 이미지들의 시선에 대한 해부를 놓치지 않았다면, 마페졸리는 인식론적인 차원에서 일상생활의 사회학을 위한 사유의 방법과 틀을 제조하는 데 관심이 많았다고 알고 있다. 사실 공부하는 사람에게 두 본좌의 유명세를 비교하는 것은 흔한 '가십'일 수 있으나, 좀 더 대중적으로 알려진 르페브르보다, 나는 마페졸리의 사고에 더 관심이 있었다. 아마도 이것은 내가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할까, 연구라는 것을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원딩' 초창기 시절, 그 시간에서 나온 고민의 어떤 형태를 마페졸리가 설명하는 구절들로 치유를 받았다고 할까? 그런 것에서 오는 감사함과 소중함으로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어찌 보면 내가 '문화연구'라는 학문 사회 내 하나의 영역으로 진입하면서, 가장 신기하게 느꼈던 부분이 "내가 살고 있는 이 삶 자체를 연구 주제로 삼을 수 있다니"라는 것이었다. 사람들의 시선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른바 '문화'라는 개념 아래 그 문화를 다룬 연구가 오늘날처럼 왕성하게 진행되고 있던 시간은 사실 그리 길다고 볼 수는 없다. (문화연구적 수업의 특징일지 모르지만) 대학원에 들어온 사람들이 수업 시간에 자신의 하루를 나누고, 그 하루 안에 특징지워진 삶의 순간들을 공유한다는 것은 오늘날 너무 당연한 태도인 듯하지만, 여전히 신기하다. 자신이 잘 보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의 특징들, 자신이 늘 타고 다니는 지하철 내 풍경들, 요즘 고민하는 가족 내 문제들 등등이 수업 시간에 봇물처럼 터져 나오고, 그것이 하나의 연구 논문으로 작성되는 순간은, 누구에게는 "먹물로 뒤덮어진" 심층 에세이일 수도 있으나, 어쩌면 이것은 학문과 그것을 마주치는 인간이 함께 노력하여 만든 우리 삶의 또 다른 행복이라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수업 시간을 채우는 연구 동료들의 수다 안에서 나는 여전히 이론이 갖고 있는 중심이 그리웠고, 그 중심 안에서 이론이 나에게 던져주는 '소유하고 싶은 무거움'이란 무엇일까 고민하게 되었다. 사실 한창 공부하고, 수업을 열심히 듣던 시간에는 몰랐다가, 졸업 논문 관계로 약 1년을 학교 밖에서 지내면서,  밀폐된 내 방에서 연출되는 나와 나의 대화, 거기서 다시 내가 끄집어냈던 책이 <일상생활의 사회학>이었고, 그 중에서도 마페졸리의 부분을 반복적으로 읽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쉽게 쓰면서, 그 의미를 제대로 몰랐던 게 '사회성'이란 것이었다. 마페졸리는 사회성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일상생활이 도처에 있기 때문에 새삼 그것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의 비판에 대해 나는 일상생활의 사회학이 새로운 붆석형태라기보다 사물들에 대한 하나의 독특한 조망이라는 사실을 길게 설명한 적이 있다.(중략)그렇다고 이러한 관계들이 결코 존재한 일이 없다거나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장님이 아니고서는 그들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그러나 이들 사회관계가 어떤 에토스, 그 속에서 현대성은 별로 중요하지 않는 어떤 '에토스'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때다. 이것은 내가 사회성이라 부르고자 제안한 것으로서, 사람들이 사회관계에서 최소한의 중요성을 가진 잔여요인으로 할 수 없이 인정하는, 단순한 사교성과는 매우 다른 어떤 것이다. 사회성은 유기적 연대,상징적 차원(커뮤니케이션)','비-논리적인 것',그리고 현재에의 관심을 포함한다.(중략) 우리에게 사회성이라는 주제는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는' 사회체계가 영속적인 상호작용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으며, 자연환경의 기반 내에서, 사회적 환경의 다양한 요소들 간에 항시 일어나는 역전성의 산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일상생활의 사회학'에서 강조되는 것은 현상이며, 그리고 그 현상에 개입되는 지식이다. 지식은 단순히 사회를 바라보는 개입의 도구가 아니라, 일상생활이라고 하는 우리가 흔히 '진부함'으로 치부하는 것들을 거리를 두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연구의 방식이자 관점이 된다. (최근에 발간된 피터 버거의 책 <의심에 대한 옹호>에서 피터 버거 역시 일상생활의 사회학을 주창하던 이였고, 그는 이 사회를 구성하는 상식과 지식의 역할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마페졸리는 일상생활의 사회학에 접근하기 위해서 사람들의 '상식'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는 사람들과의 술자리 등에서 주고 받는 통속적인 지혜 그 자체가 사회를 지탱하는 하나의 감각이라고 주장한다.(그는 이 감각을 '사회적 전신감각'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사회성이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단순히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교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사회 안에서 연결짓게 하는 일련의 방식을 의미한다. 마페졸리에게 그런 면에서 '사회성'이란 일상생활의 사회학을 위한 '태도'이기도 했다. 그래서 마페졸리는 알프레드 슈츠의 현상학적 사회학을 비롯해, 고프만이 펼쳐 놓았던 '연극무대로서의 삶과 의례'를 이야기하면서, 우리의 삶을 연구한다는 행복과 열정을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내 해석이지만) 마페졸리는 사람이 사회에서 살아나가기 위해 필요한 다양한 정체성, 흔히 '역할 놀이'라고 하는 부분들을 비난의 차원이 아니라, 이해의 차원으로 접근하면서, 사람들의 '생활의 역사'를 쓰는 것은 이 다양한 정체성으로 구성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하는 것 같다.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나오는 지혜, 그리고 매일 부딪히는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사람들의 잡담을 꾸준히 지켜보며, 거기서 사회의 묘미를 만끽하는 사람에게 솔깃할 듯한'제3의 장소'라는 개념은  이 개념을 주창한 사회학자 레이 올덴부르그의 재미있는 학술적 에세이를 지탱하는 힘이다. 집과 일터를 벗어나,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술집, 카페, 식당에서 사람들은 오늘도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아는 사람이 아는 사람끼리 만날 수 있고, 전혀 모른 사람과의 영화적인 만남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은 '제3의 장소'라고 불리는 이러한 공간의 소비를 통해 넓어진 사회적 관계를 체험한다. '제3의 장소'를 통해 사람들은 '이웃'의 발견을 경험하고, 그러한 경험이 주는 흥미가 쌓이면서, '제3의 장소'에 모인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즐기며 발설한다. 이 공간은 오히려 그 '누군가가' 많기 때문에 가능한 '나만의 공간'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제3의 장소'를 통해 마페졸리가 정의한 '사회성'을 체험하고 또 소비하면서, 그 공간에서 가능한 사회적 의례를 학습한다. 그리고 그 의례가 설정한 사회적 역할 놀이를 즐긴다. 여기서 발생하는 에피소드들은 매일 정해진 것일수도 있고, 때로는 전혀 예상치 못한 이야기의 다발일 수도 있다. 너무나 당연한 하루와 너무나 예상치 못한 하루. 그것이 사회니까. 오히려 이러한 진부한 설명 자체의 회피를 피할 수 없다는 것에서 나는 사회라는 것의 흥미를 느낀다.  

'진부해서 안된다'라는 강박에서 늘 헤메이던 시절, "그럼 진부함이란 과연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제대로  하지도 못한 나에게 마페졸리가 했던 조언은 "일단 새끼야, 진부함하고 부딪혀 봐"라고 지금은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진부함은 회피의 대상이 아니라, 연구의 대상이 됨으로써 다시 창조적 풍경으로 탈바꿈된다는 것. 그래서 나를 '일상적인 사람'으로 불러주는 친구들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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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13 12: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15 2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가끔은 전혀 다른 맥락에서 나온 말이, 적확한 맥락으로 탈바꿈 될 때가 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무서운 재미'가 가득찬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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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비평 92호 - 2010.가을 역사비평 92
역사문제연구소 엮음 / 역사비평사 / 2010년 8월
품절


천정환 선생의 <신자유주의 대학체제의 평가제도와 글쓰기>중 일부를 옮겨본다. / '학진 시스템'은 학문적으로 기여한 바가 많다.젊은 학자들이 정당한 학문적 이니셔티브를 갖게 됐으며,지원제도가 없으면 불가능했을 대규모 기초연구가 수행됐다. 또한 고식적인 학문 간 경계가 흔들리고 융합적 학문연구도 확산되었다.그러나 그늘도 깊어지고 있다. 그것은 우선 학의 세계를 평균화,전일화,국가화하며,모든 학자와 연구를 거대한 하나의 창구,하나의 틀 속에 밀어넣고 있다.그럼으로써'학진 시스템'은 모든 '외부'를 재빨리 지워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 의미는 무엇일까?-194쪽

'국가 안에서의'학의 자율성은 외관상 커졌지만,인문학이 가져야 할 가치인 '자유'는 위축되고 있다. 이는 양가성을 갖는다. '국가'는 인문학의 최후 보루이며,동시에 '인문학의 위기'를 오히려 극단화시키는 장본인이다.특별한 실천력과 신념을 가진 극소수를 제외한 모든 연구자의 모든(194) '연구 성과'가 거기 '등재'되도록 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 근대적 글쓰기와 근대자가 탄생한 이래 미증유의 일이며,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 것이라 본다. '학진 시스템'하에서 우리 모두는 '국가-학자'인 것이다.그래서 '학진 시스템'은 지식 생산의 문화를 전변시켜 인문,사회과학자의 존재방식을 바꾸어놓았다.'지식인'은 이제 소멸했다.'연구자'혹은'전문가'만 존재한다.'국가'에 대한 인문학자의 의존성은 지나치케 커졌다.-194,195쪽

2000년대 초에 일어난 '인문학의 위기'담론은 인문학에 대한 국가의 지원을 상시제도화하다시피 했다.이제 그것은 모종의 중독상태를 만들고 있다.이제 HK--BK같은 제도가 없는 한국 인문학을 상상할 수 있는가? 이 과정에서 '학진'은 그 자체로 무소불위의 리바이어던이 되던가,또는 리바이어던의 한쪽 팔이 되어 인문학을 지배하고 있다.'국가'에 의한 지원이란 언제나 정치(논리)와 절합될 가능성도 있다.과연 이 거대한 기계-동물을 제어할 수 있을까?-195쪽

'학진 시스템'하의 '학문'의 어떤 마디들은 점점 희화화,화석화되고 있다.학회의 정착,확산과 심사제도의 일상화는 '관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하게 마련이기 때문일 것이다.특히 '글쓰기'가 획일화되고 있다. 비슷한 문체,구성을 가진 수없이 많은 '논문'이,거의 똑같은 '원고 투고 규정'을 가진 '학회지'에 의해 대량생산되고 있다.모두가 [등재]학술지에 논문 쓰기와 심사평가-업적 보고에 목을 매달고 있지만,그것을 진실하고 온전한 인문학 활동이라 생각하는 인문학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그럼에도 이 제도는 그야말로 움직이기 힘든 '현실'로 실정화되었다.그래서 본연성에 대한 의식과 별도로 '현실'에 맞추어 살기 위한 적응력과 테크닉이 점점 고도화된다.또한 서론-본론-결론의 구성과 국문 초록-영문 초록-국문 핵심어-영문 핵심어 등의'액세서리'는 거추장스러운 '현실'이면서,점점 글쓰기의 본연을 잊게 만드는 매개다. -196쪽

더 큰 문제는 등재지 학술논문 중심의 '학진 시스템'인정구조가 강력한 경계벽이 되어 대학과 현실,학문과 현실 사이에 높은 벽을 쌓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논문'은 그야말로 양산되어 인문학이 발전하고 있는 듯하지만(196),그것은 '글쓰기'의 다른 존재방식인 비평과 '책'을 죽이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196,197쪽

'인문학의 위기'가 중,고등학생들까지 입에 올리고 다니는 상투어가 된 것이 2006~2007년경이다.그런데 불과 3~4년 사이에 작지 않은 변화가 있었다.오늘날 '인문성'을 규정짓는 한 변수가 시민을 향한,시민을 위한 인문학을 표방하는 인문학 강좌의 붐이다.전국의 지자체와 큰 지역 도서관과 대학 뿐 아니라,고급 백화점이나 대기업들도 '인문학'을 위해 나서고 있다.그리하여 이전에는 상상해보기 어렵던,극적이고 때론 코믹한 광경이 '인문학'덕분에 벌어지고 있다. -200쪽

'인문학'과는 가장 거리가 먼, 한국 사회의 양극에 있는 집단들이 각각 인문학 강좌를 듣고 있다.가장 돈 많고 권세 많은 대기업 CEO와 고위 공무원,그리고 '돈과 명예'양면에서 가장 '비천한'자리에 있는 노숙자,성매매 피해 여성, 재소자들이 그들이다. 인문학 강좌를 들은 CEO들이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실행자로 변신할 것이라고는 전혀 상상되지 않는다.또한 '인문학'이 가장 가진 것 없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그 '비참'을 덜 수 있는 힘과 보람이 될지에 대한 확신은 없다. -200쪽

그럼에도 인문(200)학자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는 분명할 것이다. 그리고 그 중간에 무수한 스펙트럼의 '시민'들이 인문학 강좌를 듣고 있다.요컨대,몇 년 사이에 인문학 독서시장은 황폐해지고 대학원생도 줄고 있는데,'인문학'은 교양시장의 새로운 트렌드가 되어 '시민'과의 접촉 부면을 넓힐 것이다.따라서 '편수'나 '논문 쓰기'는 제도 내부의 인문학과 외부의 인문학의 성격 및 주체를 지금보다 더 확연히 갈라놓을 가능성도 높다. 그러하기에 누가 '시민 인문학'의 주체이며,시장의 '인문학 서적'이 과연 어떤 것인지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그리고 인문학자들이 이런 흐름을 적극적으로 성찰하거나 동참할 필요가 있다. 이는 '학진 시스템'과 '업적 점수'에 타락하고 있는 '제도' 종속적인 정신을 세척하는 물줄기를 트는 일이다. 공부 결과를 '공공적인'생산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200,2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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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 2010-09-13 02: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리한 지적이 많네요. 전 정권에서 시작된 이 사업은 아마 곧 종료되겠지만, 저희 과도 bk를 받는 입장에서 평소에 느꼈던 답답함이 잘 드러난 것 같습니다. 언젠가 도서관에서 하이데거의 <세계상의 시대Die Zeit des Weltbildes>를 빌려봤는데 하이데거도 이미 그런 말을 써 놨더라구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데 '철학은 이제 사유denken하지 않고 연구나forschen 하고 있다'였나? 그 여백에도 어김없이 누군가 bk라고 써 놨었지요; 사실 제일 역겨운 것 중 하나가 최고지도자 인문학 과정인지 뭔지 하는 거 같아요.

얼그레이효과 2010-09-13 02:22   좋아요 0 | URL
바라님 오랜만입니다. 아, 하이데거가 그런 말을 했었군요. 좋은데요. 천정환 선생이 우려하는 걸 좀 감히 줄여보면 결국 '인문학의 국가화'와 '인문학의 (과한) 사회화(?)' 같은데요..요즘 제 주변도 그렇고,,'아카데미 내의 일정한 패배주의'라고 할까요..그런게 느껴져서 두렵더군요. 더 두려운 건 그 패배주의를 극복할 방안을 함께 모색하지 않고,그냥 돈 좀 내고..아카데미 바깥에서 좀 더 배우고 오면 되지와 같은 움직임들이 특히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강하던데..천정환 선생 글을 읽으면서,,고민을 더 해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바라님이 전념하시는 연구 분야와 이런 학문 '사업'의 결합에서 바라님을 포함한 공부하시는 분들의 상처 같은 게 감히 떠올려지네요..어떤 선까지 악수를 해야 하고, 어떤 선까지 거부를 해야 하는지 점점 그 고민의 두께가 두터워지는 요즘입니다. 그 시기에 또 이런 아티클이 다가왔네요..크윽. ㅜ.ㅜ (독립영화도 관변화하려는 이 시대에,,인문학의 국가화라..가끔 제가 콘텐츠 생산자는 아닌가하는 고민도 드네요..)
 

비디오 대여점 영업시간 자정으로 제한.비디오무비.1994.10.402쪽. 

오는 11월부터 비디오 대여점의 영업시간이 자정으로 제한돼 일부 대여점의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금까지 영업시간 제한이 없었는데,10월 한달동안 계몽기간을 거친 후 11월부터 본격적인 단속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심야시간에 일부 비디오 대여점에서 청소년층을 대상으로 불법비디오를 대여하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비디오 대여점 영업시간을 아침 8시에서 밤 12시 까지로 규정한 '음반,비디오판매업소 영업시간'은 건전한 유통질서를 확립한다는 취지아래 마련된 것으로 이를 위반한 업소에 대해서는 강력히 대처할 계획이다. 

삼전동 공간비디오.비디오무비.1994.10.397쪽. 

먼저 과감한 투자로 대여점 내부를 고치기 시작했다. 이중 진열장을 새로 설치하면서 테이프 수를 2배 가가이 구비해 놓았고 다른 대여점과의 차별화를 위하여 많은 희귀 작품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중략)소장가치가 있는 희귀한 작품들을 한쪽으로 진열해 놓고 고객에게 권하는 것도 공간비디오가 꾸준히 추구하는 서비스 방법. 고객들의 호응도 점점 높아져 입구를 들어서면 바로 희귀 프로코너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중략) 김용성 사장은 10년째 '삼전동 유지'로 뿌리를 내리고 있어 대여점을 운영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는다고 한다. 그동안 긴밀한 인간관계와 넓은 유대로 삼전동은 물론 가락동과 강남일대에 있는 고객까지 찾아오고 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한 가지 있다. 멀리서 찾아오는 고객이나 직업상 늦은 시간에 오는 사람에게 12시 이후에는 대여할 수가 없는 안타까움이 있다. 

극장성격으로 영화를 예측한다.비디오플라자.1994.8.409쪽. 

순수 예술작품을 고집하는 극장으로는 종로의 코아극장, 신사동의 뤼미에르, 대학로의 동숭, 그리고 호암아트홀을 꼽을 수 있겠다. 이들 극장은 다호 흥행이 미진하더라도 상업영화보다는 예술적인 아트필름들을 선호한다. 그러므로 그 달의 명화를 감상하고 싶다면 이들 극장 프로들을 살펴보면 된다. 그리고 상영관이 많아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시네하우스도 한 편 정도는 에이젠쉬타인의 전함 포템킨 같은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그리고 주로 오락적인 흥행작품은 서울극장, 피카다리,힐탑시네마,그랑프리,브로드웨이 등에서 선호하는 장르고 단성사는 장군의 아틀,서편제 등 우리영화의 중심극장으로 자리잡고 있으나 우리영화 흥행성은 피카다리가 가장 좋다. 그리고 국도극장은 재미있는 홍콩영화를 선호하는 편이다.  

불광동 진성비디오.비디오플라자.1994.8.365쪽. 

신프로를 비롯한 명작 프로가 실린 책자를 만들어 매달 매니아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고,철저한 컴퓨터 관리로 매니아 각각의 취향을 파악해 선호하는 장르의 비디오를 소개해 준다. 그래서 신프로를 들여 놓을 때,먼저 완벽하게 시사를 하는 것도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 중의 하나다. 주변의 다른 비디오 숍과의 차별화를 위해 그는 흥행물보다는 명작 위주로 작품을 구입한다.(중략)그는 비디오 숍을 운영하면서 가장 기분이 좋을 때가 매니아들이 '진성비디오에 오니까 이게 있구나'라고 말할 때라고 한다. 

영화마을 공항2호점.비디오무비.1998.1.158쪽. 

대여료는 신프로 2,000원(1박 2일),구프로 1,000원(4~5일)을 받고 있지만 신프로의 경우 빠른 시간 안에 가지고 올수록 서비스포인트가 많이 적립되어 손님 스스로가 대여점에 마련한 보너스를 받기 위해 테이프를 최대한 빨리 가져온다고 한다. 또한 구프로의 경우 학생들의 리포트나 명작감상을 위해 빌려가는 경우가 많아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감상할 수 있도록 손님들이 원하는 대여일을 존중한다. 청소년 보호법에 따른 청소년 유해환경에 대한 관심은 영화마을 공항2호점도 예외가 아니다. 이에 대해 구경희사장은 성인물, 고등학생, 중학생,연소자 등급을 엄격히 분리해 진열하고 있고 특히 성인물의 경우 카운터 바로 옆에 위치해 청소년들이 성인등급을 받은 영화에 대한 접근이 쉽지 않다. 하지만 각 등급의 진열대마다 공포,드라마,액션,공상과학,무협시리즈 등 장르별 진영과 우리영화,홍콩영화 등 나라별로 진열되어 있어 고객들이 취향에 맞는 비디오선택의 폭을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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