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운표(교수).경향신문.1960.8.27.시청각교육으로서의 영화 상.4면.
작금 영화계의 하나의 과제로서 소위 영륜 문제가 논의되고 있어 오랜 독재정권 하에서 관이 일방적으로 영화를 검열하던 것을 국산영화의 제작자나 외화수입업자가 영화내용이나 선전 방법들에 자율적인 규제를 설정하여 이 '매스.미디아'가 국가사회에 미치는 악영향을 특히 청소년들에게 주는 해독을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시속에 맞는 움직임으로 보아 기꺼운 일이라 할 것이다.(중략). 그러나 이와 같이 영화의 창시자들이 영화의 교육성을 예언하고 또 상업성을 부정배격한데 반해서 영화는 그 제작과정의 거대한 기구는 대량대중성을 띤 전달방법의 특질상 또 특히 그 극적인 편집상의 감정유발력, 극단적인 자극성 등등으로 말미암아 일개인의 창작이기보다 근대산업의 하나의 상업품으로서 성장하여 영화는 창작예술이기보다 먼저 대중의 흥취물로서의 상품으로 교육물이기보다 선전오락물로 발달하였고 또 그것이 대량대중을 특질로 하는 근대사회정신계보의 표현수단으로서 등장하게 되어 이제 전세계에 걸쳐 영화산업은 자유기업주의에 편승하여 놀라운 성장을 이루었으니 영화가 가지고 있는 대중영합의 날극적요소는 대중을 유인흡착케 하여 대중은 부지불식간에 영화광이란 불치병에 걸리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세계의 연간영화투자액삼십억불, 영화관 육만오천, 주간평균입장자 이억오천만의 놀라운 숫자를 나타내고 있으며 한국 역시 국산영화제작본수, 내외국영화상영본수, 그 놀라운 영화감상열로 보아 그 어느나라에 못지 않은 영화애호국으로 성장한 것이다.
권이혁(교수).경향신문.1962.11.5.가을과 학회광.3면.
(중략) 여러가지 취미광이 있다. 독서광,영화광,연애광,야구광,등산광,텔리비광 등 각양각생이다. 이들에 비히여 못지 않은 것에 학회광이 있다.
경향신문. 1978.1.14. 영화 7인의 독수리. 5면.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영화를 별로 보질 못했다. 특별하게 싫어해서라든지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항상 비행기에 관한 일들로 쫓기다보니 그렇게 됐을 뿐이다. 새삼스레 이런 일을 생각해보니 참 재미없게 살고 있는 것 같다. 전에 한 두번 영화를 보기도 힘들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특정한 영화를 세 번씩이나 보게 됐으니 남들이 들으면 갑자기 영화광이라도 된 듯 생각할지 모르겠다.
조화유 생활영어.경향신문.1985.2.7.그 여자는 영화광이야.6면.
야구를 대단히 좋아하는 사람을 가리켜 야구에 미쳤다는 표현으로 '야구광'이라고 흔히 부른다. 이 '광'에 해당하는 영어표현은 buff이다. 영화광은 movie buff,골프광은 golf buff이고, 골동품광은 antique buff이라고 한다. (중략) buff라는 단어가 얼른 생각나지 않으면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fan이란 단어를 써서 movie fan, baseball fan이라고 해도 같은 뜻이 된다. 이밖에도 광이란 뜻으로 freak와 addict가 있지만 이것은 몰라도 좋고 buff fan 두 가지만 기억하면 족하다. buff와 fan을 굳이 구별하자면 buff는 buff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가지고 좋아하는 사람이고 fan은 덮어놓고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다.
송혜숙 (교수). 경향신문. 나의 여가(16) 짜릿한 행복에 젖는다. 스크린 속에 나를 묻고. 1985.6.14.6면.
내가 영화를 보러다니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부터인가 싶다. 처음엔 부모님이나 대학생이던 언니를 따라 다니던 것이 곧 혼자 영화관을 다닐 정도로 담대해졌고 점점 영화를 즐기는 광이 되어가고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즈음 그간 본 영화편수를 세어봤더니 무려 150편 정도가 되었다. 요즈음 영화의 내용이나 다양성과 비교해볼 때 꽤 괜찮은 영화적 상황 속에서 자란 셈이다 싶아 새삼 다행스러웠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많은 영화의 무엇이 그리 좋았었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캘 수는 없으나 못본 영화가 상영이 되는 곳이면 어디에 있는 상관없이 쫓아다니며 봤고, 영화를 보는 순간만은 나는 모든 것을 망각한 채 가장 행복한 사람이 되는 느낌이었다. 수없는 영화들속에서 나는 세상을 배웠고 주인공과 함께 갈등을 겪으면서 컸다. 아무리 시시한 영화라도 내게는 다 배움이었고 즐거움을 주었다. 그러는 동안 영화배우나 감독을 다 기억하게 되었고 이들의 경향까지도 내 나름대로 터득하게 되었으며 이른바 영화광이 되었다.
영화에 대한 나의 취향은 미국 유학시절에 접하게 된 베리만 영화시리즈를 보면서 달라지게 되었다. 나는 베리만의 영화세계에 빠졌고 그의 영화적 자전기를 읽어내게 되었고 그의 배우들을 감탄스러워했으며 이어서 펠리니의 영화들을 계보적으로 훑으면서 봤고, 이러한 편력은 트뤼포,뷔뉴엘,파스비더,안토니오니,헬조그 등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이들의 영화도 횟수를 더해감에 따라 특정한 매너리즘에 빠져들기 때문에 여기서 채워지지 않는 불만을 나는 지하영화들까지도 찾아다니며 해소해야 직성이 풀리게 되었다. 그러한 나의 영화 편력은 한국에 온이래 전면중지에 처하게 되었는데 이점은 살재미가 없어질 만큼이나 안타깝다. 그런대오 의무감 반, 호기심 반으로 보는 습관을 갖게 돼 미흡하기는 하나 배창호라는 감독과 안성기라는 배우때문에 희망을 새삼 갖고 이들의 영화적성장을 꾸준히 따라다니며 보고 있다. 습성처럼 되어버린 영화벽은 감독이나 배우가 인간으로서 성숙하는 변화의 모습을 작품으로 귀결시키는 과정을 즐기는 버릇으로 변신된 것이다.
동아일보.1990.7.27. 스타 "연기 제대로 해낼지 겁나요" '너에게로 또다시' 신인배우 정주연양. 30면.
(전략) 정주연이 연기자의 길로 들어선 것은 반드시 우연이나 행운만은 아니었다. 중학생때부터 워낙 영화를 좋아해 주3편 정도는 관람을 하고 중고교생관람불가의 짙은 성애물도 훔쳐보는 영화광이었다는 것. 그리고 끝내 연기자가 되기 위해 대학진학도 연극영화과를 지망했다고 말한다. 그녀가 본 영화로는 찰리 채플린의 '키드'가 웃음과 감동을 주었고 최근 개봉된 '시네마천국'역시 예술성이 높아 감명깊게 봤다는 것.
경향신문.1990.4.20. 3년만에 영화출연 재주꾼 전영록 노래에 작곡에 pd에 바빠요. 19면.
전영록(36)의 재능은 어디까지일까? 그는 가수이면서 만드는 곡마다 히트시키는 인기작곡가이며 dj에다가 5월1일부터는 불교방송국의 pd까지 맡을 예정이다. 게다가 영화배우 겸 영화음악작곡까지 맡아 만능탤런트임을 과시하고 있다. "노래도 한 1년 쉬었지만 영화 출연은 3년 만이에요. '친구야 친구야'(최인현 감독)라고 운동권 대학생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 3월부터 촬영 시작했어요. 가수긴 하지만 중대 연극영화관에선 연출을 전공한 영화학도였지요." 실제 나이보다 15년이나 어린 대학생 역할을 맡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만큼 그는 개구쟁이 모습이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et와 백투더퓨처에 이르기까지 약 2천장의 영화레이저디스크를 소장한 그는 영화광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