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dson.D& Zimmermann,P(2009). Cinephilia, technophilia and collaborative remix zones. Screen.50;1. p.135-146. 

p.136 

역사적으로 시네필리아의 개념은 아카데믹 담론과 대중적 담론 사이에 위태롭게 박혀 꼼짝하지 않았다. 개인주의적 쾌락의 엘리트주의적 개념들(성스러운 대상, 고급 예술)과 일반적 쾌락의 집단적 개념들(대중 예술, 대중 오락)에 절합된  채.  

Campbell.Z(2009). On the Political Challenges of the Cinephile, Framework: The Journal of Cinema and Media.50(1-2).p.210-213.   

p.212 

오늘날의 시네필리아 논쟁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나는 생각한다. 시네필리아의 자율성, 시네필리아의 권리 그리고 테크놀로지들을 사용하기 위한 능력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이메일, 인터넷, 디지털 해적행위) 문화와 일상 그리고 쾌락이 아닌 정규적 여가로 쏟아지는 이득만이 존재하는 상업적 기업적 규정에 의해 영향을 받지 않는. 

Ng.J(2010). The Myth of Total Cinephilia. Cinema Journal.49(2).pp.146-151.  

p.150 

이런 새로운 기술을 통해, 시간은 이런 시네필의 순진한 처리가 되었고, 시네필의 레져가 되었으며, 관리할 수 있는 덩어리,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사치를 제의받게 되었다.  내가 언제 원할 때, 내가 어떻게 원할 때로서의 영화를 보기 위한 시간. 강의를 스킵하기 위한 시간. 대학에 우연히 잘 구축된 비디오 라이브러리를 탈출하기 위한 시간. 14시간의 회사 일을 마치고 한밤 중 방해받지 않기 위한 두 시간의 자리을 찾기 위한 시간. 일시정지할 시간, 빨리감기위한 시간. 다시보기를 위한 시간. 또 다시 보기를 위한 시간.  

p.151 

어떻게 이런 시네필리아의 개념이 그것의 중심형태인 쾌락 및 사랑과 연결되는 것을 지지하는가? 그 질문의 본질적인 맥락에서 볼때, 그것은 답하기 불가능한 것이다. 사랑은 개인적인 것이다. 우리는 단지 우리 스스로의 이유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시네필리아는 이론화하기 불가능한 것이다. 그것은 담론을 탈출한다.  

Hilderbrand,L(2009). Cinematic Promiscuity : Cinephilia after Videophilia.Framework: The Journal of Cinema and Media.50(1-2).p.214-217.  

p.215 

비디오는 시네마를 재매개하고 정당화했다. 

오늘날 "컬렉터 에디션"dvd는 다수가 전문적 재생산 가치를 활용가능하게 했다. 그러나 그것들은 비디오 수집의 과정을 탈개인화했다. 수집은 창조보다 소비행위가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스페셜 에디션은 종종 마케팅 이상의 것은 아니었다.  

p.216 

홈비디오는 시네마의 특수성을 드러냈다. 그러나 그것은 또한 우리가 필름을 더 친밀하게 보도록 했다. 나는 극장 안에서 미학적 전유와 거리가 있는 경험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집에서 감정적인 개방을 하는 경험이다.  

만일 당대의 시네필리아의 정치학이 그런 것이라면- 나는 오늘날 시네필리아 측면에서, 그것이 지배적이거나 논리정연한 정치적 위치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그것은 개념을 깨거나 용어의 엄격한 개념일지도 모른다. 시네필리아는 드문 전문가 메뉴로부터 쪼개진다. 혹은 순수주의자 미학으로부터 쪼개진다. 일상적 실천을 포함한. 거기엔 영화를 사랑하는 다수의 방식이 있다. 극장에서나, 집에서나. 각자의 맥락은 그것만의 특수성을 드러낸다. 

Martin,A(2009). Cinephilia as War Machine.Framework: The Journal of Cinema and Media.50 (1-2).p.221-225. 

p.221 

시네필은 단순한 영화팬이나 따분하고 영감이 없는 영화 동료들과 다른 누군가로서 정체화하길 원한다. 

p.222 

시네필리아의 본질적 형태나 내용은 없다. 그러나 아마도 본질적인 시네필의 과정 혹은 제스쳐와 같은 어떤 것이 있다. 시네필리아는 전쟁 기계다. 그것은 전술적이고 문화적 전쟁 기계다.  

p.223 

실제로 우리는 시네필리아의 세계사에 관해 거의 알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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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진(2005). 웰빙 시대의 소비문화 "비판"을 위하여. 문화과학 통권 35호. 72~85

74-75. 

따라서 소비문화라고 말할 때의 문화란 소비에 관한 문화가 아니라 오히려 소비라고 불리는 행위 자체의 문화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굳이 도식적으로 말하자면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소비란 생산, 유통, 소비라는 경제적 활동의 다양한 수준 가운데 하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그런 분업 자체(74) 가 일반화된 연후의 소비, 그리고 생산에 의해 결정되는 경제적 활동이나 실천에 관한 상상적이고 소외된 표상 그 자체로서의 소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결국 소비란 생산과 대칭적인 위치에 놓여지는 것이 아니라 생산의 소외된 표현, 혹은 생산과정에서 이뤄지는 사회적인 적대나 착취에 대한 인식을 소비자라는 상상적인 표상으로 치환하는 것을 뜻한다. 이런 가정에 따를 경우 우리는 소비문화를 말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착취적이고 적대적인 성격을 망각하고 있는 주체, 즉 이데올로기적인 주체로서의 소비자의 주체성을 비판하는 것이라 생각할 수 있다.  

76 

노동자들이 더 이상 자신의 정체성을 노동자라는 자신의 경험적인 현실에 근거하기보다는 자신들이 참여하는 다양한 사회적 활동과 참여하는 공동체(지역사회나 종교적 모임을 비롯하여 스포츠 동호회, 영화 클럽 같은 취향의 공동체)를 통해 적극적으로 구성한다는 주장 역시 진실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확한 것이라고 단지 체험이 어떻게 현상하는가를 보여주는 데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중략) 한편 자신들을 임금소득자, 생산자, 취미의 주체, 성정체성이나 성별, 다양한 윤리적,사회적 관심의 주체로 동일시하는 것을 확인하고 강조하는 다양한 사회학적인 주장들 역시 우리에겐 익숙하다. 그렇지만 이 모두는 노동의 소멸이나 쇠퇴가 아니라 역설적으로 말하자면 노동이 더욱 더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적어도 우리가 맑스의 주장에 충실하고자 한다면 노동의 이데올로기가 소멸했거나 쇠퇴했다고 생각할 수 있어도 노동이 소멸했다거나 그것의 의의가 반감되었다고 주장할 근거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바뀐 것이 있다면 노동의 정체성이 변화되었고, 노동과 다른 사회적 활동 사이의 연관일 뿐이기 때문이다.  

77 -78

"경제와 정치 혹은 문화, 이 가운데 무엇이 사회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일차적인 요소인가." 이런 질문에 대하여 우리가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답변은 이런 것이다. "아무거나" 그러나 사회의 특성을 지배하고 변형시키는 일차적인 요인으로서 무엇이 그 "아무개"가 무엇이 될지를 결정하는 것은 결국 경제이다. 이를테면 지식정보자본주의나 디지털경제, "기호와 상징의 경제'를 들먹이는 이들의 주장처럼 우리는 지식과 정보, 취향의 제조가 가장 중요한 가치의 원천이 되었다는 점을 극구 부인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그것은 경제란 심급이(77) 부차적인 것이 되었다거나 아니면 노동이 규정적인 계기로서의 의의를 상실했다는 주장으로 번역될 수 없다. 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이 '미학화'되었든 아니면 '체험과 정서'가 주요한 경제활동이 되었든 그 어떤 것도 결국에는 자본이 자신의 내적인 장벽으로서의 자본의 한계를 돌파하려는 움직임으로부터 귀결되었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소비문화 비판에 관한 최근의 흐름, 즉 소비문화의 비판의 재귀성이란 흐름을 다시금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81 

"VIP 마케팅"이니,"1인 마케팅"이니 하는 최근의 마케팅 기법의 유행이나 컴퓨터 정보통신의 폭발 이후 더욱 섬세해진 고객관계관리같은 다양한 마케팅 테크닉은 단적으로 "인구"소비자가 아닌 각각의 개인을 대상으로 함을 알려준다. 그/그녀의 인구학적인 배경이 아니라 전기적인(biographical)이력 그리고 각 개인의 구체적인 반응과 선택에 따른 정보의 수집과 평가, 홍보는 이미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현실이 되었다.  

82 

트렌트는 사회 법칙과 달리 트렌드는 매우 우연적이고 자의적인 행위의 문법을 가리킨다. 따라서 과거의 시대엔 사회 법칙이 있었고 그것을 발견하는 것이 사회를 재현하는 인식원리이자 목표였다면 이제는 구조와 법칙이 아니라 트렌드를 찾아내야 한다! 트렌드란 이미 주어진 규칙에 따라 이뤄지는 행위가 아니라 연속적으로 행위가 이어짐으로써 행위방식과 선택이 결정되는 우리 시대를 가장 잘 표상한다! 

82-83 

어쨌거나 이제는 더 이상 신세대론은 사회학자들이나 문화이론가들에 의해 분석되지 않는다. 이를테면 한때 널리 회자되었던 P세대론(이는 국내)(82)광고기획사가 내놓은 작품이었다)이나 수많은 문화적 부족(오렌지족에서 메트로섹슈얼, 딩크족 등)에 대한 분석과 보고는 모두 광고, 마케팅, 시장조사 등을 담당하는 트렌드 분석가의 손에서 나왔다. 이런 변화는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당연한 말이겠지만 소비가 현실의 소외된 표상이기는커녕 직접적으로 사회적 현실을 재현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할 것이다. 따라서 인구학이 사이코그래픽스로 대체되었듯이, 사회학은 이제 트렌드분석으로 대체되었다. 그것은 단순히 소비를 분석하고 정의하는 인식 수단이 바뀌었다는 것이 아니라 생산과 소비 사이에 연관이 변화되었다는 것, 그리고 소비를 통해 현실에 대한 체험과 인식이 생산된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83 

물론 그것은 제품으로서의 상품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의 서사를 위한 매체로서의 상품, 즉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표현하는 오브제로서의 상품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물신주의 비판의 가장 순수한 형태를 만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건 혹은 사물을 전연 신비의 대상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 그 대상을 의학적이든 생태적이든 다양한 성분과 제조방식으로 환원함으(83)으로서 그것을 가능한 사물로서 다루는 것이 우리 시대의 소비문화의 역설적인 모습 아닐까. 그리하여 생겨난 결과는? 당연히 우리의 예상과는 정반대이다. 우리는 그 대상을 가능한 객관적으로 다루는 시늉을 취하면서 그 대상을 가장 신비화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시대의 물신주의 비판을 메타물신주의라고 부를 수 있을지 모른다.  

이영자(2010). 소비시장과 라이프스타일의 정치학. 현상과 인식 제34권 1/2호.pp. 101~124. 

104쪽 

라이프스타일은 '누가 될 것인가', '타인들에 의해 어떻게 인지되고 싶은 사람인가'를 모색하는 '자아의 기획'으로서 자아감각을 꾸며내고 타인과 구별되는 '개성'을 의식적으로 드러내는 문화적 상징의 수단이다. 개인적 정체성이 구성되는 형태로서의 라이프스타일은 정체성을 구별 짓는 기준으로 적용하는 취향과 감수성의 유형을 결정짓는 실천들의 체계를 말한다.  

105 

소비상품들이 정체성들을 구성하는 상징적 자원으로 기능한다는 것은 개인의 내면화된 가치나 독자적인 취향을 반영하는 라이프스타일 대신에 소비시장에서 생성되는 문화적 코드들의 조합에 의존하는 라이프스타일이 생성되는 것을 말한다. 

106 

소비시장이 주도하는 라이프스타일의 정치학은 라이프스타일의 '자유로운'선택을 매개로 자본주의 문화경제의 구조적 강제를 자아의 기획을 위한 '주체적'과정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효과를 겨냥한 것이다.(중략) 여기서 정체성의 위기는 자아의 기획이 소비시장에 점점 더 포섭되는 상황에서 유발되는 것으로 시장의 논리를 추종하는 '상업화된 자아'를 추구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정체성이 소비문화의 키워드로 부상하게 된 것은 소비시장에 의존하는 자아의 기획을 기정사실화하는 라이프스타일 담론들이 매체와 소비시장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유통되어 온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  

107 -108

'생활자 마케팅'은 기업이 소비자 개인의 의식주의 기본생활, 레저 / 문화생활을 분할 담당하는 '생활디자인 매니저'로서 '생활기획업'('생활설계업')을 발전시킨다는 전제를 담고 있다. 즉 시장표적으로 설정한 생활자군 별 욕구, 기대, 생활양식 등을 파악하고 각 생활자군 별 라이프스타일을 개발하여 각 라이프스타일에 알맞는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소비자의 욕구와 변화에 대한 기대를 최대한 반영한다는 명분으로 라이프스타일의 상품소비가 능동적으로 이루어진다는 환상을 줄 수 있다. (중략) 라이프스타일의 정치학은 마케팅의 논리의 문법이 소비자의 생활세계와 개인적 취향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도록 만드는 것으로 소비의 문화경제학이 시장의 영역을 넘어 생활양식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하는 것이다. 라이프스타일의 상품화는 소비시장으로 하여금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적 가치와 정체성을 창출하는 문화권력을 행사하게 한다. 

116 

라이프스타일 마케팅은 자아의 기획을 하나의 소비사업으로 삼아 '나는 누구인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끊임없이 되묻게 하면서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선택하고 변화시키도록 압력을 행사하기 때문이다. 이는 라이프스타일을 탈근대성에서 중시되는 되기(BECOMING)의 상업적 구성들로 만들어 소비자로 하여금 자아의 기획을 끊임없는 '되기'의 시도들로 만들고 '그 누구'로 변화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게 함으로써 라이프스타일 상품들을 소비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119 

상품미학은 '사용가치를 약속하는 외향'을 통해 인간의 욕구와 본능의 구조들을 변형시키는 방식으로 감성을 식민화하는 것이라면, 라이프스타일 시장은 상품미학에 의해 식민화되는 감성구조의 라이프스타일들을 유포하는 장으로 기능한다.  

정락길(2010). 시선의 윤리학적 성찰 : 세르즈 다네(Serge Daney) 비평 세계를 중심으로. 프랑스문화예술연구 제32집.p.619-661. 

620쪽 

거칠게 표현하자면 그의 비평은 영화적 경험 자체의 단독성(singularite)의 드러냄을 통해 현대 시대에 더욱 가속화되고 있는 이미지 경험의 세속화와 빈곤화에 대한 지속적 저항이기도 하다.  

621쪽 

경험에 대한 지속적인 성찰은 칸트 철학이 던져준 어떤 난제와 연관되어 있다. 칸트에게서 경험은 인식의 선험적 토대에 부딪히는데 거기에서 경험은 순수 형식으로서 공간과 시간의 절대적 강요에 놓여진다. 이 공간과 시간은 칸트의 철학에서 경험을 넘어선 선험적 형식으로 정의된다. 하지만 다네가 경험하는 영화적 시공간은 이러한 순수형식이 아니다. 이 공간과 시간을 자신의 경험과 교차 시키고 부딪히는 것, 그래서 그의 글은 이론적인 법칙의 해명으로 나아가기 보다는 그리고 정서에 대한 합의적 상식을 세우기보다는 시네필적 경험을 가로질러 자신의 존재적 단독성을 드러내고 세상 속에 소통시키고 있다.  

628쪽 

무엇보다 다네에게 있어서 시네필적 경험이 제시하는 수동성은 한편으로는 끔찍한 세상사의 사회적 현실로부터 도피해온 관객이 영화를 통해 새로운 사회적 실천을 욕망하고 재 몽타주와 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시네필이 경험하는 내용은 쾌락원칙에 기반한 것이라기보다는 자기를 상실하여 실제의 구멍에 마주하는 희열(jouissance)의 경험에 가까운 것이고 현실의 세계와 영화적 세계의 뒤섞임 속에서 이루어지는 주체의 구멍이라 불려지는 간극의 충격을 통해 불가능한 꿈을 꾸는 것이기도 하다. 

629쪽 

그들에게 영화는 이미 프로그램화된 상품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의 육체 속에서 신경들의 이상한 조합이 저절로 행해지는 은밀한 욕망의 이차적 몽타주의 행위였으며 그래서 영화적 장치가 강요하는 수동성은 단순한 수동성이 아니었고 그들의 동일시는 프로이드의 신경증 환자의 동일시와 같은 독특한 매커니즘을 지닌 것이었다.  

638쪽 -639쪽

바쟁이 살았던 시기가 영화기 지식인들에게 진지한 사유의 대상이 되어야하는 중요한 문화라는 사실을 각인시켜야할 인정 투쟁의 대상이었다면, 다네가 살아갔던 시기는 텔레비전 이후 영화가 점차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는 시기이자 다양한 특수효과,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화, 그리고 컴퓨터를 기반으로 하는 정보화 혁명, 그리고 디지털 영화의 시대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는 시기라는 사실이다.  (중략) 80년대 <리베리시옹>지를 중심으로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한 이미지 전반의 문화에 대한 다네의 고찰은 초기에 적극적인 이미지의 민주화의 가능성의 모색에서 또한 점차 회의적인 시선으로 변해간다. 그리고 이러한 그의 애도 작업은 현대 사회의 개인주의 전체의 문제로 점차 확대되어가고 발터 벤야민의 경험의 빈곤화에 대한 성찰과 거의 흡사한 방식으로 전개되어 진다. 즉 더 이상 현대의 개인들은 타자성에 대한 관심을 거부(638)한 채 예술 작품으로부터 자신에 대한 확신과 민족 이외의 어떤 접촉의 경험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639쪽 

다네의 이러한 애도작업은 예술의 종말을 고한 헤겔의 문제를 영화에 다시 던지는 것이다. 영화에 던져졌던 역사적 임무, 대중과 함께하는 문화적 공동체라는 주제가 이제 그 임무를 다 했다는것이고 이제 '영화 이후'의 미래가 어떠할 것인지를 사유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는 것이다.  

651쪽 

다네는 현대 사회의 변화를 70년대 스노비즘(snobsme)의 사라짐이라는 주제 하에서 비틀고 있다. 스노비즘을 임의적으로 어떤 지식이나 대상의 위선적인 소유자라고 정의해보자. 그런데 60년대에 만연했던 스노비즘적 시네필들이 70년대부터 사라지기 시작하는 현상을 이야기하면서 다네는 현대 개인주의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비판으로 나아간다. 왜냐하면 하나의 문화 속에 일군의 스놉(snob)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들이 닮고자 하는 지적 이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적 닮음의 이상, 그러한 기준 자체가 소통의 민주주의라는 이데올로기하에서 사라져 버린 사회, 그것이 현대 사회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마구잡이로 소통되는 이 허상의 개인주의는 자기 충족적인 동시에 타인에게 대단히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거기에서 모든 것이 관용되고 용인되어 있다. 이 관용과 끊임없는 용인의 태도 속에서 실제로는 타자와의 관계는 상정되지 않는다. 이 관용의 과도함의 세계, 무관심성이 고도로 양식화된 세계, 모두가 자신의 집에서 편안하게 TV를 시청하는 세계에서 소통은 무한히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지만 하나도 소통 되지 않는 텅 빈 소통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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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10.스크린. 비디오필 : 비디오매니아를 위한 고정특집. 239쪽. 

- 박찬욱의 비디오드롬. 

1994.4. 스크린. 비디오필. 비디오매니아가 찾은 숨은 걸작 비디오.272-273쪽. 

1996.5. 스크린.  임필성의 디어 시네필리안.264쪽.  

1999.8. 비디오 구구야화 제4집. 키노. 173쪽. 

키노는 96년 8월에 시작하여 이제 네번째 비디오 야화를 준비합니다. 우리가 처음 이 특집을 시작했을 때는 세상에 비디오광이 넘쳐나고 있었으며, 아직 우리는 국제영화제를 갖고 있지 못했으며, 이제 막(이른바 서방세계에서 '아트 하우스'라고 부르는) 예술 영화관 전통이 생겨나고 있었으며,정말 믿을 수 없는 미공개 영화들이 슬쩍 비디오로 출시되어 꽁꽁 숨어 있던 리스트들을 수없이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은 이 특집을 하면서 사명감을 갖고 독자 여러분들과 발견의 기쁨을 나누며, 동시에 독자 여러분들로부터의 제보를 기대하였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 이후에도 적지 않은 새로운 명단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원칙을 혼동하면 안 될 것입니다. 우선 우리가 비디오 특집을 마련한 것은 남이 알지 못하는 영화를보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또는 (더 끔찍한 것은) 우리들은 이 특집을 의례적으로 그 동안 다루지 못한 비디오들을 모아서 마치 빚 청산 하듯이 덤핑 처리할 생각은 더더욱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발견의 기쁨'을 공유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래서 말로만 전해진 영화들을 비디오로 만나는 행복을 나누길 희망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다음은 우리가 혹시나 그저 스쳐 지나간 영화들 중에서 마땅히 '재평가 받아야 할' 영화들의 목적을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는 매년 특집을 하는 순간마다 정말 참담한 심정으로 이제 이런 특집은 그만 하고 싶다는 슬픔에 사로 잡혀야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비디오 문화의 실종, 비디오로는 우리가 단 한번도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없을 정도로 능지처참 당한 기형적인 모습으로 출시되었기 때문입니다. 상영시간을 멋대로 줄이는 것은 예사이고, 거의 대부분의 영화는 제 모습의 화면 사이즈로 출시된 예가 거의 없다는 사실이 그 학살의 현장입니다.(당신의 키가 침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멋대로 발을 자른다면 당신의 기분은 어떻겠습니까?) 또한 점점 더 축소되어가는 비디오 시장에서 이제 '발견'의 목록은 현저하게 줄어들어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194쪽 

주성치 영화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이 곧 사이좋게 둘로 나뉘어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누구는 자신의 선호도 명단 첫머리에 그 이름을 기입한 후, 줄기차게 비디오 가게를 드나들기 수십번 결국 청계천 뒷골목을 뒤지며 기꺼이 개인 소장의 기쁨을 누린다(어떤 이는 최저 3백운에 구입했다는 소문도 들려온다). 또 다른 누군가는 곧바로 폐기처분의 길로 달려가니 황당무계. 최저의 쓰레기 창고는 안 그래도 넘쳐나는 물량공세로 꽉 찼는데 그마저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에 이른다(그러나 아직 이 댓가없는 열락을 누리기 마다하는 자는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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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디오플라자.1994.8월.193쪽. (배우 강리나 인터뷰)

그녀의 휴식은 비디오보기. 긴장을 풀어주는 데 이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 쉴 새 없이 먹으며 편안하게 본다. 어떤 날은 하루에 5편도 본다. 편안하니까. 배우니까 남들이 어떻게 움직이나 궁금하긴하다. 하지만 다른 누구처럼 비디오를 보며 배운다는 생각은 안 든다. 그냥 관객이다. 배우라는 직업 때문에 굳이 배워야 하는 건 아니잖은가.  

"어떤 장르의 비디오를 좋아하냐고. 대답하기 우스운 질문이다. 뭔가는 나누어서 좋아한다는 게 이상하다. 호기심을 주는 배우나 감독의 작품을 뽑아들 뿐이다. 비디오를 고를 때 누가 만들었고 누가 나오냐는 꽤 중요하다. SF,심리 드라마, 휴먼 드라마, 액션영화, 그리고 만화영화. 뭐가 됐든 다 좋다. 싫다는 것보다 잘 안보는 건 하나 있다. 무서운 영화, 난 이건 싫다." 

비디오플라자.1994.8월. 205쪽. (배우 이지은 인터뷰)

혼자서 비디오보기를 좋아하는 그녀는 고급 비디오 매니아다. 휴일은 대부분 집안에서 편안히 비디오를 감상하면서 보내고 친구들이 보고 싶을 땐 집으로 불러 같이 볼 정도다. 요즘은 '패왕별희' '바그다드 카페' 등을 재미있게 보았고 가장 좋아하는 영화는 베아트리체 달 주연의 '베티블루'. 

우리숍 소장 희귀비디오를 소개합니다.1994년 8월. 비디오플라자. 365쪽. 

불광동에 위치한 진성비디오의 김준민 씨는 7년동안 한 자리에서 비디오 숍을 운영하고 있다. 오래된 만큼 단골 매니아도 많다. 매니아들이 자신의 집을 찾아오려는 사람들에게 '진성비디오에서 물어보라'고 말할 정도로 진성비디오는 이 지역에서의 입지를 굳혔다. 김준민씨의 철저한 매니아 관리가 밑바탕이 된 것은 물론이다. 신프로를 비롯한 명작 프로가 실린 책자를 만들어 매달 매니아에게 무료로 나누어 주고, 철저한 컴퓨터 관리로 매니아 각각의 취향을 파악해 선호하는 장르의 비디오를 소개해준다. 그래서 신프로를 들여 놓을 때, 먼저 완벽하게 시사를 하는 것도 그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 중의 하나다. 주변의 다른 비디오 숍과의 차별화를 위해 그는 흥행물보다는 명작 위주로 작품을 구입한다. 짧은 수명을 지닌 흥행물볻는 몇년이 지나도록 꾸준히 찾는 명작들을 직접 구입해오기도 한다. 그래서 그의 비디오 숍에는 구하기 어려운 명작비디오가 즐비하게 꽂혀 있다. 

우리숍 소장 희귀비디오를 소개합니다.비디오플라자.1995년 10월. 343쪽. 

<토탈 영상>의 주인 이병돈씨는 이사를 하면서 비디오 숍의 평수와 프로 수를 늘렸다. 그는 이제 비디오 숍도 안일한 운영에서 벗어나 차별화되고 적극적인 모습으로 영업을 해야 될 때라고 말한다. 이병돈 씨가 선택한 차별화 전략에 희귀비디오 구비도 크게 한몫을 차지한다. 사실 희귀비디오가 직접적으로 실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희귀 프로는 숍의 이미지를 높이고 이병돈 씨의 마음을 흐뭇하게도 한다. 

단골숍 단골매니아.비디오플라자.1995.10.342쪽. 

많은 경쟁률을 뚫고 10월의 단골 매니아로 선정된 황화송 씨가 현대비디오와 인연을 맺은 것은 1993년 2월 20이. 어떻게 해서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냐는 물음에 황화송 씨는 결혼을 한 후 곧장 이 동네로 이사를 해서 잊을 수가 없다고 한다. 이삿짐 푸는 것보다 비디오 숍 주인과 인사 나누는 것이 더 급했던 매니아이다. 유난히 비디오를 즐겨보는 그녀의 가족 역시 틈만나면 비디오를 감상하는 비디오 집안이다. 주로 액션과 에로물을 보는데, 비디오 감상시간은 이제 20개월인 인영이가 잠든 후인 심야이다. 그대신 인영이는 눈뜨자마자 어린이 교육용 비디오로 하루를 시작하는데, 무척 좋아한다고 한다. 그리고 같이 사는 시동생도 거의 매일 비디오를 본다. 인영이네 집은 정말로 VTR이 쉴새 없는 집이다. (중략) 황화송 씨가 이번 가을에 감명깊에 본 비디오는 '가을의 전설'과 '레옹'이다. 액션물은 생활의 스트레스 해소에 좋고 에로물은 부부관계에 많은 도움을 준다는 게 황화송 씨의 지론이다.  

영화 <프리> VIEW POINT . 비디오플라자.1995.10.232쪽. 

무장 테러리스트를 제거하는 6인조 최정예 특공대원들의 처절한 전투를 그린 현대판 액션 느와르. 올리버 스톤 감독의 <플래툰>이나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지옥의 묵시록>과 같이 필리핀 현지에서 직접 촬영하며 실감나는 장면의 연출에 최선을 다했다. 타이틀 롤은 <아메리칸 닌자>,<머나먼 아마존>,<성난 닌자>의 국제적인 액션스타 마이클 듀디코프가 대장 하워드 역으로 열연했다. 그리고 <스타 트랙>,<마지막 황제>,<떠오르는 태양>의 일본계 미국인 히로유키 다카와가 테러리스트의 보스인 마크역에서 멋진 연기를 펼쳤다. 액션 매니아 뿐만 아니라 일반 매니아도 흥미롭게 감상할 수 있는 고밀도 액션 무비이다. 

저주받은 걸작을 찾아서.비디오플라자.1995.10.256쪽. 

연간 5백여 편 이상의 영화들이 극장에 개봉되고 있는가 하면, 매월 백오십여 편의 비디오가 출시되고 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수준있는 걸작들을 찾아내기란 이제 숨은 그림찾기처럼 어려워졌다. 이제 먼지 묻은 걸작, 외면받아온 비디오를 찾아 새로운 여행을 떠나보자.  

1996.10. 진정한 매니아를 위한 컬트영화.비디오플라자.222쪽. 

영화광이라면 누구나 한번은 들어보았을 컬트 영화의 대작이 이번달에 출시된다. 

1994.10. 비디오무비. 최근 렌탈 순위 BEST 50. 392쪽. 

국내 비디오 매니아들에게 할리우드 액션 영화와 홍콩 무협물의 인기는 역시 압도적이다.   

1997.5.비디오무비. 매니아 가이드. '비광'씨의 5월 비디오 보기.128쪽. 

평소 복잡한 극장에 가기보다는 혼자 비디오 보는 것을 즐겨해 자칭 타칭 비디오 매니아라 불리는 비광씨(비디오 광). 그는 특별한 일이 있는 날을 제외하곤 거의 매일 비디오를 감상한다. 매달 100여편이 넘게 쏟아지는 비디오들 중에서 옥석을 골라내 감상할 줄 아는 비광씨가 <비디오 무비>독자들에게 보내는 세 번째 감상 스케쥴. 그의 5월 비디오 보기 스케쥴을 찾고로 해서 각자의 감상 스케쥴을 만들어보자. 

1997.5.비디오무비. 이홍렬의 추천 비디오.137쪽. 

항상 아이디어 찾기에 골몰한 개그맨들 중에는 영화광들이 많다. 간접 경험을 쌓는데는 영화만한 매체도 없기 때문이다. 뺑코 이홍렬 역시 영화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 가운데 하나다. 짬이 안나 정기적으로 극장을 찾지는 못하지만 보고 싶은 영화는 꼭 체크했다가 비디오로 감상하곤 한다. 또 가끔은 아내와 작정하고 나서서 하루를 몽땅 영화 보는데 바칠 때도 있다. 영화 2편 보고 나서 밥먹고, 또 영화 보고 하는 식이다. 영화를 많이 보다 보니 이제는 '저건 극장에서 꼭 봐야지. 저건 나중에 비디오로 봐도 되겠구나'하고 나름대로 작품을 선별하는 안목도 생겼다. 최근에는 최진실, 김승우 주연의 <고스트 맘마>를 봤었는데 아이디어 회의를 조금더 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고. 제법 깐깐한 매니아인 그가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낸 비디오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다.  

1997.6.비디오무비. <비디오무비>자료로 활용하기.164쪽. 

흔히 비디오매니아라 불리우는 사람들은 감상방법과 영화선택 기준에 따라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고 하니다. 그 첫번째는 '예술영화'라고 하는 아트 필름이나 세계 영화사 100년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거장들의 작품들, 즉 '보석'만 골라보는 사람들이고,두번째는 '영화의 쓰레기통'까지 모두 뒤져가며 걸작들 외에도 B급영화나 '컬트'성향의 영화들을 찾아내서 보는 사람들입니다. <비디오 무비> 기자들이 진정한 숨은 걸작은 구석 한켠에서 먼지만 잔뜩 뒤집어 쓰고 있는 비디오 숍의 천덕꾸러기들을 매니아들 품으로 보내기 위한 작업의 하나였습니다. 물론 그 선정 기준은 두번째 유형의 매니아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1997.6.비디오무비. 구프로 새롭게 다시보기 : 걸작 호러무비 골라서 다시보기.224쪽. 

프로급 매니어와 그렇지 않은 보통 관람자의 차이는 프로의 대여행태에서부터 나타난다. 대부분의 고객들은 잘 나가는 프로 며편에만 매달리지만 노련한 매니어는 어차피 조금만 지나면 구프로가 될 새프로에 그다지 집착하지 않고 대여점에 꽂혀 있는 수많은 테이프들 속에서 놓치기 아까운 프로들을 골라낸다. 사실은 이것이야말로 비디오를 즐기는 진정한 재미중의 하나다. 

1997.7.비디오무비. 구프로 새롭게 다시보기 : 걸작 SF무비 골라서 다시보기.15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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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의 이해 - 전면2개정판
김창남 지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10년 2월
구판절판


1세대 문화연구자 김창남 교수의 저서 <대중문화의 이해(2003년 전면개정판)>중 팬과 마니아의 개념 설명에 대한 구절을 일부 옮겨본다. / 팬은 누구인가: 대량생산되어 대중적으로 전파된 문화 생산물의 레퍼토리 가운데 특정한 연기자, 혹은 연주가, 혹은 특정 텍스트를 선택하여 자신의 문화속에 수용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팬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실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런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이고 서로의 취향을 적극적으로 공유할 때 팬이라는 의미에 좀더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흔히 일반적인 대중문화의 수용자들을 그저 막연히 팬이라 부르는 관습에 익숙하지만, 그보다 좀더 적극적으로 자기의 취향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팬이라고 할 수 있다. -300쪽

마니아의 두 측면 : 능동적 문화 주체 혹은 소비의 귀족주의 / 요즘 대중문화에서 매우 독특한 위치를 차지하는 주체가 마니아라는 집단이다. 우리말로 한다면 무슨 무슨 광정도의 의미를 가지는 마니아는 영화,음악,만화,스포츠 등 다양한 대중문화 영역에서 빠르게 늘어가고 있다. 마니아들은 우선 특정한 문화 텍스트(그것이 영화일수도 있고 음악일 수도 있고 또 특정한 스타일수도 있다)에 대해 대단히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또 상당히 풍부한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는 준전문가 수준의 수용자라고 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대중문화의 주류적 분야, 즉 스타 시스템이 작동하는 분야는 팬이라는 말이 자연스럽지만 상대적으로 소(307)외된 장르나 문화상품 자체에 관해서는 팬보다는 마니아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쓰인다. -307,308쪽

마니아의 등장은 일단 우리 대중문화가 그만큼 다양화되고 전문화되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 대중문화의 환경이 과거에 비해 상당 정도 민주화되었다는 사실과도 관련이 있다. 대중문화 전반에 대해 정치권력의 간섭이 극심했던 유신시대나 5공화국 시대에는 마니아가 많이 나올 수 없었다. 당시에도 마니아들이 없지 않았지만 이들의 문화는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뿐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존재하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마니아의 등장은 대중문화에 대한 정치권력의 입김이 줄어들고 그만큼 대중문화의 영역이 다양화되면서 이루어진 것이다. -308쪽

그러나 요즘 우리 주변에서 흔히 만나게 되는 마니아 집단은 꼭 그렇게 긍정적인 측면만을 보여주는 것 같지는 않다. 그것은 마니아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에 대한 지식과 정보가 경우에 따라서 또 다른 의미의 권력으로 작용한다는 데서 볼 수 있다. 특정한 문화 텍스트에 대해 광적인 애정과 집착을 보이고, 그래서 그만큼 많은 지식과 정보를 가지고 있는 마니아들은 때로 매우 배타적이며 독선적이다. 그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문화에 대한 애정과 정보를 과신하며 그래서 다른 사람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는다. (중략) 일부 마니아들이 추구하는 지식과 정보의 성격도 문제이다. 어떤 경우 마니아들은 매우 지엽적이고 앨범 제목과 무슨 무슨 구석진 에피소드들을 늘어놓으며 그것이 자신의 마니아적 취향을 대변하는 것인 양 우쭐해한다. -3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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