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일(1997.1.). 비디오의 헤쳐 모아 영화 만들기. 월간 말.248-249.
248쪽
이제는 숨은 비디오 찾기도 슬슬 지겨워지기 시작할 것이다. 게다가 비디오시장의 위축은 숨은 비디오가 나올 수 있는 구조조차 숨통을 틀어막고 있다. 올 한 해동안 당신 주변의 동네 비디오 가게 중 사분의 일이 사라졌다. 대부분의 비디오들은 영화관에서 개봉된 다음에 찾아오고, 미개봉작들은 천편일률의 따분한 액션영화와 에로영화가 차지한다. 그리고 더 이상 속아서(?) 숨은 비디오 걸작을 내지 않을 만큼 비디오 업자들도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세련되어 졌다. 자. 이제는 비디오 가게 구석의 먼지를 뒤집어쓰며 없는 비디오를 찾으려고 시간을 보내는 대신 눈을 돌려보자. 우선 당신 방안에 있는 비디오 테크를 다시 들여다보실 것. (중간) 비디오는 당신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비디오의 새로운 제품이 나올때마다 광고에는 온갖 새로운 기능이 추가되었다고 으스댄다. 정작 당신이 손가락으로 하는 일이라곤 네 가지밖에 없는데, 비디오에는 오디오와 달리 명품이란 없다. 말 그대로 소모품이 그 운명이다. 그래서 수명을 다하기 전에 온갖 기능을 모두 사용하라고 만들어진 기계다.
249쪽
우선 당신이 좋아하는 명장면 열 개를 뽑아 보자 그리고 그 장면이 나온 비디오를 빌린다. 이제부터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다소 번잡스럽더라도 창조적인(!) 작업이다. (중략) 문제는 이 영화들을 얼마나 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읽어 낼 것인가이다. 그것을 읽어내는 것은 영화를 읽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 세대들의 마음과 정서를 일어내는 일이 될 것이다. (중략) 비디오라는 기계는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가며 그저 우리들의 기억 속에 숨어 버리는 영화의 이미지와 사운드를(우리는 한 번 본 영화를 과연 어디까지 기억할 수 있는가) 보존하고, 반복시키고,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기억의 속도를 뜯어내고 멈추고 더 나아가 다른 속도로 만들어 낸다. 비디오가 영화를 보는 태도에 가져온 가장 혁명적 전환은 영화를 가지고 다시 우리가 영화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비평가 중의 비평가라고 불리운 앙드레 바쟁이 우리에게 해주는 충고, 영화를 많이 보는 것은 영화를 사랑하는 일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정말 중요한 일은 좋은 영화를 여러 번 보는 일이다. (중략) 이제부터 우리가 하려는 일은 비디오로 당신이 좋아하는 장면의 비밀을 훔쳐내고,산산조각 내버린 다음 우리 방식으로 다시 조립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과정은 잔인무도한 시체부검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영화를 사랑하는 마지막 단계, 영화를 다시 한 번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정성일(1995.12). 남한에서 예술영화를 본다는 것. 월간 말. 240 - 241.
240쪽
1995년 남한에서 '예술영화'를 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또는 '예술영화'라는 말 자체가 갖고 있는 그 이상한 분위기를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것일까. 혹시 그것은 일정부분 새로운 상업주의와 결탁한 협잡은 아닐까. 관객들은 왜 '예술영화'라는 한마디에 모든 것을 눌러 참아가면서 소비하는 것일까. 조금 과장해서 '예술영화의 이데올로기'라는 말이 가능한 것일까. 올해 비디오시장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경향은 '예술영화'라고 분류되던 영화들이 갑자기(!) 지금까지의 금기사항을 돌파하길도 하듯 출시되기 시작한 것이다. (중략) 오히려 여기서는 1995년 지금 여기에서 진행되는 이미 저기에서의 물신화된 예술영화 비디오를 물어 볼 생각이다. 우선 예술영화는 그렇게 고상하고 품위 있는 용어가 아니다. 예술영화는 그 자체로 또 다른 상업영화의 범주이다.
(중략) 영화는 '돈이 많이 드는' 예술이며, 배급구조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 그래서 전후 유럽영화들은 할리우드의 외곽지역, 또는 변방, 더 솔직히 말하면 시장의 여백 사이로 파고들어야만 했다. 유럽영화들이 자신의 관객으로 선택한 것은 유럽의 반 할리우드 성향의 학생들과 지식인, 그리고 고정관객들과 유럽 바깥의 유럽성향의 '속물' 엘리트주의에 빠진 엄숙주의 관객들이었다. 그리고 이것을 영화매스컴들이 부추기기 시작했다.
241쪽
중요한 것은 유럽영화의 한 장르로서 '예술영화'가 산업적으로 발명(!)된 사실이다. 실제로 유럽의 '예술영화'는 정말 예술 지향적인(그런데 정말 그런 게 있기는 한 것일까 영화들이 아니라 시대의 분위기와 고급이라고 스스로 생각하는 대중의 일부관객들이 좋아하는 변덕스러운 취향에 따라 포장되는 패션 영화들이다. 그건 마치 지식조차도 철따라 갈아입는 의상처럼 바뀌는 전후 서구 소비사회의 속도에 어울리는 것이기도 하다. 시대를 뛰어넘는 명작이라는 표현은 언제나 재고처리를 서두르는 광고문구이다.
(중략) 더욱 위험한 것은 유럽 '예술영화'의 한국적 모방들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이 중독은 더욱 치명적이기조차하다. 유럽 '예술영화'에 빠져든 것은 대부분 영화광들이고, 그들은 우리 시대의 영화유행을 이끌어가고 있다. 더 나아가 그것을 가치의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분명 또다른 편향과 종속에로 뛰어드는 위험한 불장난이다. '예술영화' 비디오들은 그 자체로 비판하기보다는, 오히려 그것들의 숭배와 물신화의 과정을 통해서 우리들의 반성적 의식을 요구하는 자아비판의 과정이다.이 새로운 상업주의의 경향이라고 부를 '예술 영화'는 이제 새롭게 시작하는 영화 1백년 내내 싸워야 할 또 다른 우상숭배이다.
정성일(1995.9). 우리가 찾아야 할 남한의 컬트영화들.월간 말. 244 - 245.
244쪽 -245쪽
흥미 있는 것은 컬트영화가 태어나는 과정이 나라마다 서로 다르며, 그 과정이 그 나라의 컬트영화를 규정한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컬트 영화는 주로 대학가 근처의 심야 영화관에서 태어났다. 그것은 대학생 문화이며, 여가의 문화이며, 제도 내의 반제도이며, 보호받는 일탈이다. 프랑스에서 컬트는 시네마 데끄로부터 태어난다. 그것은 이미 제도이며, 역사이며, 문화이며, 자가당착적 저항이며, 보수적인 싸움이며, 개인적인 탐닉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선 우리에게(244)는 심야영화와 시네마데끄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컬트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 토대가 세워졌다. 그것은 영화에 의해서가 아니라 비디오를 통해서이다. 심야의 교회 십자가만큼이나 많은 비디오 대여점의 형광간판이 유령처럼 섬광을 발하고 연간 1조1천억원에 달하는 비디오들이 동네 구멍가게 비디오점의 진열대를 장식한다. 너무나 많이 쏟아져서 뭐가 뭔지 알 수 없다. (중략) 양적 전화는 질적 전화를 가져온다는 옛 선현의 말씀은 여전히 옳다. 구경거리로 영화를 보던 비디오 마니아가 어느새 영화광으로 '전화'하여 이제 참고서적까지 들고 비디오 대여점을 순례하기 시작한다. 그들의 찬양의 대상을 찾기 위해서. 이것은 축복받은 결말일까? '여전히' 아니다. 가장 유감스러운 것은 우리의 컬트문화(이런 말이 허용된다면)가 일정 부분 '수입되었다'는 것이다. 수많은 컬트논쟁가들이 컬트영화의 정의를 내리면서 간과하고 있는 사실은 영화광들이 컬트영화라고 발견하는 것은 소수를 제외하고는 자국의 영화라는 점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영화광들이 컬트영화로 맞서려는 것은 전세계적 규모의 영화문화(그런데 그런 것이 가능하기나 할까?)가 아니라, 바로 자국의 문화와 영화산업의 토대 위에서 자국의 영화산업 양식과 문화, 공식 역사, 교과서화된 영화에 맞서려는 것이다. 컬트영화광이라고 불리는 것은 영화의 체제에 맞서는 '반체제 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이지, 결코 국적불명의 유행에 휩쓸려 사대주의자가 되는 것이 아니다. (중략) 마침내 영화광들은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사대주의자가 되었고,바깥의 영화를 끌어들이는 첨병이 되었으며, 바깥에서 바깥과 싸우는 국적 없는 전투에 참여한 것이다. 토대에 대한 비판없이 남한의 컬트영화 현상을 공격하는 것은 정말 비겁한 일이다.
정성일(1998.7). 어제의 컬트는 오늘의 컬트가 아닌데...월간 말. 228-229쪽.
228쪽
한국에서 컬트(cult)영화라는 말은 그 이상한 이름짓기의 주해가 만들어 내는 소란스러운 표류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 우리는 이 말의 실체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말이 힘을 갖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영화에서 제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유포되기 시작한 데 있다. 그런 가운데 컬트라는 말은 제도에 대한 저항의 함의를 획득하게 되었으며, 일종의 비밀결사체와도 같은 자장을 발휘하였다. 그러나 저항과 자장은 유행과 광고와 카피로 전이되었다. 모두들 자기가 편한 방식으로 이 말의 몸을 빌려쓰고 스스로를 변장했다. 여기에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세했다. 서로 아무런 연관이 없는 두 개의 말은 잡종교배하였고 컬트는 점점 더 많은 주석을 갖기 시작했다. 오래된 우화의 교훈처럼 너무 많은 이름을 갖고 있는 것은 결국 아무 것도 아니다. 컬트는 그 모든 영화의 다른 이름이자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었다. 이제 유행은 지나가고 컬트라는 말의 자장은 그 힘을 잃었다.
안정숙.특정취향 관객을 위한 영화 장르 아닌 관람방식 지칭, 컬트영화란 무엇인가. 한겨레.1992.10.24.9면.
(전략) 그러나 정성일씨는 "엄격하게 말해서 '컬트영화'는 없다. 이런 영화관람방식의 '컬트영화현상'이 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블루벨벳>이 문화적 풍토, 토양이 다른 서울의 대극장에서 상영될 때 그것을 컬트영화라 부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소수의 광적인 관객의 적극적인 관람이 '컬트영화'의 요건이라면, 이 용어는 한국적 상황에서 <파업전야>같은 영화에나 붙일 수 있을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