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 선언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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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 진보단체와 지식인에게 수없이 들어온 '신자유주의 반대', '성찰'과 '연대' 등의 사회과학적이거나 추상적인 말들이 나에게는 마치 방언처럼 들렸다. 사회과학적 진보는 있을지 몰라도 내 일상과 긴밀히 연결된 삶의 총체적 진보는 아닌 듯 했다. 제도와 정책은 진보일지 몰라도 그것을 통해 이루어질 삶의 내용과 생활문화는 한참 후진 듯 다가왔다. 무엇보다 주장은 옳을지 몰라도 내 가슴을 울리는 그 무엇과 사람의 향기는 느낄 수 없었다.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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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그레이효과 2011-03-12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011년 3월 10일은 고대 교정에 <김예슬 선언>이 나온 지 1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어느새 그녀의 선언은 참 '잔인하게' 잊혀져 갔네요.

Arch 2011-03-12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엄기호 책에서 김예슬 선언에 대해 나왔어요. 보셨죠?
책을 보니 대학을 다니는 사람들이 존재 자체를 거부당하는 느낌이랑 냉소할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보였어요. 그렇다고 김예슬씨가 섣부르게 행동했다거나 잊혀질만하다는건 아니지만.

저도 직장을 다니면서 이게 아닌건 알겠는데 구조적으로든 개인적으로든 내가 뭘 어떻게 해야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얼그레이효과 2011-03-13 15:55   좋아요 0 | URL
저도 확 땡기는 그런 '전략'은 사실 없어요..다만. 대학에 있는 사람들이 더 '말하게 함'으로써, 그 말함이 갖는 '분노의 힘'들이라고 할까. 그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아직, '대학의 위기'는 더 말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위기들은 상당히 표면적이라고 생각되거든요. 그런 맥락에서 김예슬 선언은 대학의 위기보다 대학의 위기를 논하는 사람들의 위기를 깨우치게 해 준 '사건'이 아니었나, 1년을 정리하게 되네요. 분발해야죠 뭐^^
 
대학의 몰락
서보명 지음 / 동연출판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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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주장은 비교적 간단하다. 대학은 신(8)학과 철학이 부여하는 이상에 의해 유지되어왔다. 그 이상은 한 시대, 그 문화권의 선을 추구하는 세계관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 자본주의의 체제는 지금까지의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생산과 소비와 경쟁이라는 이념을 따라 대학이 움직이기를 요구한다.(중략)대학의 학문과 제도를 기업자본주의의 생산과 판매의 모델로 이해하는 것은, 오래된 대학의 자의식과 너무나 동떨어진 것이기 때문에, 대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던지는 것은 필수적이다.-8,9쪽

대학을 개혁할 프로그램이나 이념을 앞세우기 이전에, 과거의 대학이란 어떤 곳이었고,현재의 대학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그런 질문을 과거에는 대학의 본질과 사명이라는 차원에서 논의했다면, 과연 이 시대에 적합하고 수용 가능한 본질과 사명은 무엇인지 물어야만 한다.이를 위해 대학을 중심으로 벌어졌던 논쟁과 이론과 역사를 먼저 살펴보아야 한다.-9쪽

대학의 사명과 본질을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세상과의 비판적인 거리란 조건하에 가능하다. 정신적 간격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 거리는, 중세 때에는 신학이라는 형이상학으로 가능했고, 근대의 대학에서는 순수한 과학과 문화라는 이념으로 가능했다. 현실의 역사에서 폐해도 많았던 대학이었지만, 정신적 이상을 추구하는 공간이라는 이해를 빼면 대학의 자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 -27쪽

이미 많은 대학이 기업화되어버린 상황에서 대학이 기업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이유를 간단히 말하자면 기업이 곧 국가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절대적인 권력으로 등장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그 영향력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는 비판적 배움의 공간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옛 서구 사회에서는 이상적으로나마 그 역할을 교회에서 감당했다. 교회가 그 역할을 할 수 없는 세속 사회에서, 대학이 그 기능을 해온 면이 있었(42)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이 그 기능을 하지 못할뿐더러, 대학의 그런 이상적 가치가 부정되는 시대이다. 대학의 위기나 대학의 몰락을 언급하게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42,43쪽

미국에서도 인문학 책을 읽고 생각하는 과정을 리서치란 말로 표현하는 경우가 많은데, 기술적인 사고와 증명과 증거를 바탕으로 새것을 추구하는 리서치는 인문학의 고유한 양식이라 할 수 없다. 인문학 공부를 나타내는 말로 '학문'이라는 옛 표현이 영어로는 'scholarship'이란 표현이 더 적합하다. 인문이라는 학문의 언어는 원래 고백과 증언의 언어였다. Professor(교수)와 Professional(전문인)의 임무는 profess(공언, 고백)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51쪽

인문학에서 professor의 원래적인 의미는 지식의 창출이나 기술적 능력과 관계가 없는 것이었다.고백적 증언은 게산으로 그 가치를 따질 수 없다. 또 그 진리를 명확한 증거로 구분할 수 없다. 신뢰라는 뜻의 trust는 옳다는 뜻의 true와 어원이 동일하다. professor가 researcher로 이해될 때, 인문학은 형식에 매이게 된다. 각주를 제대로 달고, 인용을 어떻게 하느냐가 인문학의 기초가 되고 trust와 true의 기준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그 작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표절 plagiarism이란 최악의 죄를 범하게 된다. -51쪽

근대 대학의 모든 새로운 변화를 담아냈던 표현은 '자유'였다. 이 자유는 양심의 자유 곧 인간의 자유였다. 중세 대학이 '신의 자유'를 사고와 세계의 중심으로 삼았다면, 근대 대학에서는 '인간의 자유'가 그 중심이 되고, 모든 당위성을 부여하는 최고의 가치가 된다. 종교개혁 시대의 양심의 자유가 18세기에는 '생각의 자유'로 등장해 대학의 신조가 되었으며, 더 나아가 인간의 존재 의미까지도 규정하는 개념이 되었다. -88쪽

칸트는 신학, 법학, 의학의 상위 학부의 지배에서 자유로운 대학을 상상했다. 더 나아가 철학이 신학이나 교회의 통제를 받지 않고 이성의 지배만 받는 자유로운 학문이기 때문에 이성의 이름으로 상위 학부를 견제하고 인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그 이유는 철학의 중심은 모든 배움의 조건인 진리이지만, 상위 학부의 가르침은 국가 차원의 실용성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이다.(92-중략)철학은 상위 학부의 가르침이나 연구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가를 판단하고 비판하는 기능을 통해 대학을 진리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 철학은 이성의 관심을 지키는 학문이기 때문에 자유를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며, 그 자유가 보장될 때 국가까지도 이성이 지배하는 곳으로 이끌 수 있다고 확신했다.-92,93쪽

칸트는 당시 대학 내부의 학문을 두 가지로 분리했다. 통제가 필요한 실용적인 학문과 절대 자유를 필요로 하는 비실용적이고 사색적인 학문이다. 그 구분은 당시 전문화(Professionalization)되어 가는 대학을 자유로운 학문의 전당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그 결과는 칸트의 기대에 어긋나는 것이었다. 그는 자연과학이 철학의 한 부분으로 남게 되기를 바랐지만, 결국 실용적인 학문으로 철학에서 분리되었다.또 철학을 인간의 본성을 가다듬는 학문으로 여겼지만, 철학 자체도 전문화되어, 대학과 제도에 구속된 학문으로 전락하고 말았다.-95쪽

베를린 대학은 독일 역사의 큰 위기 상황에서 출발했다. 1806년 프러시아는 나폴레옹이 이끈 프랑스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후, 정신적 공황기를 맞았다. 1807년 평화조약을 맺은 이후 프러시아는 계몽과 근대를 지향하면서 사회 모든 분야의 개혁을 추구했다. 그 이유는 민족의 정체성과 자존심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특히 정신적 가치를 책임질 새로운 대학의 설립을 계획하게 되었다. 1810년 베를린 대학의 설립은 이런 상황에서 가능했고, 곧 프러시아의 으뜸가는 대학으로 자리 잡으면서, 근대 리서치 대학의 역사를 시작했다. 이것은 대학의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99쪽

베를린 대학은 기존 대학의 제도와 방식에서 벗어나고자 했(99)다. 대학이 아직도 중세 대학의 종교적인 진부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중략) 베를린 대학은 이런 민족 문화를 살리고 학문을 꽃피우는 시대적 요구를 안고 태어났다. 이 시대적 요구를 충족시키는 방식으로 등장한 개념이 과학적 연구(Research)였고, 이제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것이 대학이 국가를 섬기는 방법이 되었다. 그 후 대학은 지성과 지적인 행위의 중심으로 발전하였고, 헤겔은 '대학이 곧 우리의 교회'라는 의미 깊은 주장까지 펼친다. -99,100쪽

베를린 대학에서 신학은 어떻게 되었는가. 물론 신학부가 없어지진 않았다. 피히테는 신학이 리서치 대학에서 존재하려면 교회나 계시의 전통에서 벗어나 과학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려면 다른 종교로 함께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신학이나 종교의 가르침은 이미 인간의 양삼에 녹아 있기 때문에 대학에서 필수적으로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103쪽

베를린 대학의 신학부를 책임졌던 슐라이어마허 역시도 대학 내에서의 신학이 과학적 학문성을 담보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신학이 시대를 읽고 변해야 한다는 자유주의 신학의 기본 틀을 제공해준 신학자였다. 그는 기독교 신앙의 당위성과 신학의 중요성을 강조(103)했지만, 대학 내의 신학이 합리적인 학문성을 끊임없이 찾아야 한다고 믿었다.그 이후 독일 대학에서 과학성을 추구하던 신학은 고등비평과 역사비평 등을 발전시키면서 대학 내 신학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나갔다. 종교의 과학을 추구한 종교학이 나온 것도 이런 분위기가 바탕이 되었다.-103,104쪽

19세기 중반 이후 현대까지 미국 대학의 발전사에서 빠질 수 없는 요소는 기업 운영(business)을 다루는 경영학이 대학에 등장한 것이다. 경영학부도 19세기 말 설립되기 시작했다. 이윤을 목적으로 하고, 그 합법성을 의심받던 기업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측면 때문에, 경영대학은 초기에 기존 인문학 교수들에게 견제도 많이 받았다.-111쪽

교육의 목적을 인적 자원을 만드는 것으로 생각하거나, 교육을 응용과학의 차원으로 이해하는 것은 지극히 이념적인 배경에서 나온 발상이다. 인간을 자본주의 생산의 한 요소로 보고, 교육을 그 자원을 만드는 과정으로 판단하는 인식이 보편적으로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은 글로벌 자본주의 이념이 승리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124)그와 더불어 지식과 교육에 대한 공학적인 인식도 늘고 있다. 오차 없는 계산을 통해,쓸모 있는 것을 만드는 공학의 방법으로 생산해내고자 하는 것은 예측과 측정이 가능한 인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시험 걱정을 해야 하는 인간, 스스로를 경영의 대상이라 믿는 바로 그런 인간이다.-124,125쪽

한국 대학의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대학 모델은 해방 후 미군정 체제하에서 도입된 미국의 주립대학 모델이다. 해방 직후 일제강점기에 대학으로 인가를 받지 못했던 학교들이 군정기에 정식 대학으로 인정을 받았다. 대학이란 고등교육에 대한 한국인들의 열망을 해결해주는 차원도 있었고, 미국식 고등교육의 보편화를 제도화하는 것이기도 했다.(중략) 미국의 주립대학 모델이 이식되는 과정은 한국의 대학이 학문의 백화점으로 변한 것에서 알 수 있다. 지식의 학문화, 학문의 분업화가 대학을 단과대학 위주로 편제한 것에서 이 점은 드러난다. -150쪽

현재 한국에서는 한국의 대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에 대해 본격적인 고민보다 현대 서구 자본주의의 대학론을 시대의 개혁적인 흐름으로 수용하는 타율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대학에 대한 철학적 성찰보다 공리적이고 기술적인 담론만 성행한다. 그 관점에서 볼 때 대학은 문제일 수밖에 없고, 그 존재 이유까지도 의심받게 된다. -154쪽

중세 스콜라 신학이 대학 내에서 신학의 위상을 높게 세워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그 신학은 이미 분열의 씨앗을 안고 있었다. 첫째, 신학이 합리적인 분석으로 흘러, 대학 이전 세대의 신학 곧 수도원 신삭의 기도와 묵상과 실천의 전통을 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둘째, 신학의 우선권을 설파했지만, 철학과 의학과 법학이 신학적 사고로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을 갖지 않았다. 신학이 학문의 연결성과 통합성을 연구하는 학문(243)적 체계를 제시하지 못하는 사이, 철학은 사변적인 학문으로 의학은 영혼과 분리된 몸만 다루는 기술로, 법학은 왕권을 유지하는 세속법의 영역으로 발전해나갔다. -243,244쪽

이런 학문의 세분화 내지는 분열화의 과정은 현재까지 진행중이라 할 수 있다. 현대 대학은 독립적인 학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한 학과는 내적인 방법론과 독특한 주체와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것만 섭렵하고 다른 학과에 전혀 관심을 갖지 않아도 충분히 인정받는 학자가 될 수 있다. 오히려 세분화된 영역을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것만을 학문적이라고 하는 경향도 없지 않다. 기독교 대학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신학이나 종교적 가치가 어떻게 다양한 학문을 연결시키고, 어떻게 한 학문이 전체적인 가치의 부분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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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그레이효과 2011-03-10 21: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구절이 아니라, 부탁받은 서평을 위해 접어놓은 구절을 옮겨놓은 것.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지음 / 푸른숲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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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이 최상의 해결어로 떠오른 한국 사회에서, 그것을 극복할 인간-언어에 대한 탐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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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지음 / 푸른숲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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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아이템으로 바꾸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가진 모든 것을 또한 아이템으로 바라보는 속물. 그런(67) 속물을 동물이라고 부른다. 속물이 인간의 탈을 쓴 동물이라면 동물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속물이라고 할 수 있다. 속물들은 인간이 동물로 퇴행하였다고 개탄한다. 그러나 사실 동물은 인간의 퇴화가 아니라 속물의 진화이다. 속물이나 동물이나 내면이 없기는 매한가지이지만 동물은 속물이 형식적으로나마 필요로 하던 타자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67,68쪽

인간은 타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윤리적 존재가 된다. 그래서 윤리적 존재임을 가장하는 속물에게는 타자가 알리바이로 반드시 필요하지만 동물은 아예 그런 알리바이도 필요 없다. -68쪽

속물들은 도덕이 사기임을 잘 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도덕이라는 외피를 필요로 한다. 도덕을 자기를 돌아보기 위한 윤리로서가 아니라 남을 공격하기 위한 정치적 무기로서 필요로 한다. -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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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늘 웃고 다녀서 그런지 사람 좋다는 말을 평소에 많이 듣는다(내 입으로 내가 평가하긴 좀 그렇지만 -.-). 그렇다고 삶 자체가 느끼하고 톡쏘는 맛이 없는 것은 아니어서, 생각보다 많이 까칠하고 헉헉대며 열불나는 일에는 앞뒤 안가리는 면도 있다. 그리고 자존심도 제법 쎄서 제대로 된 대우를 안 해준다 싶으면 더 과한 친절함을 통해 상대방에게 모욕을 주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무엇보다 '격식'이라는 걸 싫어해서 '점잖은' 데를 가야한다고 할 때 갖춰야 하는 드레스 코드 같은 것을 못마땅해 한다. 편한 운동화 한 켤레, 티셔츠 한 장, 슬림한 청바지, 큰 백팩 하나, 검은 모나미 유성펜 가득 담긴 필통과 수첩만 있으면 인생은 그럭저럭 누구 눈치 안 보고 살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것이 대학 입학 하고 나서 나름대로 내 스스로에게 지켜왔던 어떤 상이었다. 

2  

그런 내가 14년 만에 졸업식에 갔다.(식을 다 참여했다) 중학교 졸업식을 1997년 2월에 했으니 14년 만에 갔다. 여기서 '갔다'는 의미를 '식의 모든 참여'로 뜻을 바꿔보자면 중학교 졸업식 이후 내가 이 세레머니에 제대로 참여한 적은 고등학교 때도 대학교 때도 없었다. 원래 이번 대학원 졸업식도 가지 않으려 했다. 경상도에 계신 부모님이 30분 짜리 졸업식 하나 보러 오려고 먼 고생을 하는 게 싫었다는 것은 원래 이런 식에 참가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대는 표피적인 그리고 진부한 이유일테고, 그것보다는 내 스스로가 갖고 있는 나름대로의 철칙을 한 번 지켜보고 싶다는 생각 그것 하나 때문이었다. 철칙 준수에 대한 이야기는 꺼내지 않고, 친구에게 졸업식을 가기 싫다고 하니 "인생을 모나게만 사는 것도 좋지 않다'면서 적극적인 참여를 권유받았다. 결국 그 친구의 도움으로 나는 살면서 처음으로 정장이라는 것을 장만했다.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ㅁ' 아울렛에 들러 나는 내가 입을 정장을 골라야 했다. 하지만 나는 사실 소비와 선택, 특히 나를 위한 소비와 선택에는 참 취약점이 많다. 종교의 특성인지 모르겠지만 어릴 적부터 타인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일상이 되어버린 우리 가족의 생활 형태로 인해 정작 우리 가족은 우리를 위해 '쓸 수 있는 방법'을 모르고 오랫동안 살아왔다. 누군가에게 들어오는 '선물'이 있다면 그 선물은 이미 우리보다 못한 이들을 위해 다시 되돌려 주어야 할 무엇이었다. 그래서 난 누군가에게 선물을 받으면 선물을 준 사람을 무안하게 할 때가 많다. '내가 받을 방법'에 대해 난 생각보다 이 사회에서 나타나는 '친절함'의 기준에 미달인지 모른다.  

그래서인지 나는 무엇을 선택해보라고 하면 '다 좋다'고 한다. 식당에서 메뉴를 고를 때 '아무거나'가 주는 역효과와 유사하게 '다 좋다'는 누군가와 좋은 것을 사러 갈 때 그리 좋은 표현은 아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으니 나는 나에게 무엇이 잘 어울리는지 잘 알면서도 이상하게 처음은 늘 거부하는 삶을 살아왔다. 그런 나를 아는 사람들은 두 번을 묻고, 어쩔 때 세 번을 물어준다. 그때서야 나는 "이게 조금 낫긴 하겠다 그지?"라는 말을 살포시 꺼낸다.  

삶을 살면서 한 편으로는 뾰족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여린 면이 섞이다 보니 겉으로 나오는 것은 착한 미소. 이것이 내 삶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지 거의 20년이 넘었다. 이런 복잡한 측면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것이 14년 만에 간 졸업식이었다. 졸업생들이 전통적으로 하는 '학교를 떠나며'라는 1분 스피치 시간에 나는 원래 '떠나는 마당에 대학원 욕이나 실컷 하고 가자'는 생각에 가득 차 있었다. 실제로 이 블로그를 들린 이들은 알겠지만 대학원에 다니면서 내가 받았던 상처는 매우 컸고 나는 이 분노로 인해 이 곳을 빨리 탈출하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  막상 마이크 앞에 서니 역시 마이크라는 것은 사람을 착하게 만드는 성질을 갖고 있었다. 마음에도 없는 '착한 말'들이 나오고, 내가 그동안 대학원 게시판에 쏟아 부은 분노로 인해 상처받은 분들이 있다면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나왔다. 

부모님이 다시 내려가시고 집에 혼자 있는 시간. 나는 이런 '훈훈한 결말'을 원치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대학의 몰락>이란 책의 서평을 부탁받아서 읽고 있는데 문득 지금까지의 생각이 떠올랐다. 이 생각은 본 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길수록 이 생각이 떠나가지 않았다. 졸업식장에는 버트런드 러셀이 말했던 '착한 사람'들만이 있었는데 나라도 못되게 굴 걸..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졸업식을 한 번 더 할 수도 없고 말이지. 깔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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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가게재습격 2011-03-07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못되게 구는 나쁜남자'에 대한 진지한 연구인가요?^^ 오랜만에 들러 마음의 한 조각 읽고 갑니다.^^

얼그레이효과 2011-03-07 21:13   좋아요 0 | URL
재습격님 오랜만입니다. 블로그 가보니 블로그의 두께가 멋지게 두터워지고 있던 걸요~ 저는 논문 쓰는 동안 감을 잃어서 회복하려면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그냥 요즘 워낙 글이 안 써져서 하나 남겨봤습니다. 깔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