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글래디에이터>에서 부재하는 것은 '시민'이다. '시민'은 실현되어야 할 이상, 곧 아직 추구되지 않은 현실이다. '시민의 서사'는 이 영화에서 '탄생'이 아닌, '복권되어야 하는 그 무엇'이다.  콜로세움을 가득 메운 저 사람들에게 핏빛의 풍경을 구경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졌다고 해서, 그들에게 검투사의 생살여탈을 함성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해서, 그들에게 '시민'이라는 위상을 덧씌울수는 없다. 엄밀히 말하자면, 생살여탈권의 주인은 아직 '코모두스'이다. <글래디에이터>에서 자주 등장하는 표현은 not yet, '아직은'이다. 이 '아직은'이란 시간의 표현 속에서 저 무수한 이들은 '군중 mob'으로 정의된다. 그들은 '아직' '참-권리'를 행사하고 있지 못하다. 황제는 '아직은'이란 시간의 수사를 잘 활용할 것이다. 이 수사 속에서 '시민 되기'의 야망을 겸손하고 진중하게 받아들이는 '공화제'를 열망하는 이들은, 그 열매를 수확할 것이다. 고로 우리가 이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파악해야 할 것은, '의사-권력'이라는 달콤한 선물을 준 코모두스가 행사하는 현실 속의 진짜 권력이다.  

우리는 아직  푸코가 『성의 역사』에서 강조하는 억압과는 다른 차원의 권력론으로 섣불리 해석할 수도 없다. 아직 우리는 '생-정치'라는 말을 여기에 쉽게 덧붙이기 어렵다. 다만 이론의 삽입이라는 흥분을 가라 앉히고, '생살여탈권'이라는 힘 자체에 주목하자. 그리고 그 힘을 가진 '주권자'라는 이름을. 이 주권자의 통치를. 그 통치 형태를. 차라리 이것은 스튜어트 홀이 『대처리즘의 문화정치』에서 말했던 '권위주의적 포퓰리즘'에 가깝다. 멀리 갈 것 없이 80년대 전두환 정권이 보여준 그 기이한 스펙터클의 정치는, 저 오래 전 로마의 폭군 코무두스가 보여준 통치 방식과 별반 다를 바 없다. 단순히 시각성이 주는 쾌락, 그 광엄함과 웅장함이라는 스펙터클에서 유사 관계를 따질 것이 아니라, 우리는 이 정치의 목적이 과연 '시민을 위함'에 있었던 것인가에 봐야 한다. 코모두스의 '권력'은 오히려 군중과의 거리를 두기 위해, 군중을 포섭하는 것이었다.(전두환과 코모두스의 걱정은 자기 생명의 보존이었을 것이다) 이 포섭 전략 속에서 코무두스는 군중을 사랑하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정작 그에게는 그들을 인정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들에 대한 '생살여탈권'을 가지고 있다는 황제의 권위가 가장 가까이 기대고 있는 것은, 사실 그 스스로의 생살여탈권이다. 자신에게 두려움이 되는 존재, 자신을 살리거나 혹 죽일지도 모르는 존재들. 코모두스를 둘러싸는 그 존재들이란 정확히 말해, '아직은' 실현되지 않은 이상. 바로 '시민-되기'의 열망을 꿈꾸는 자들이 취하는 분노의 눈빛이다.     

 푸코가 말했던 것처럼, 법은 검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그 자신이 법이었던 코모두스, 그리고 그것을 입증하는 엄지손가락, 가까이에 있는 검. '시민의 열망'을 가진 자들은 검의 논리에 설 수 없다. 법 앞에 서 있는 시민은 곧 검 앞에 서 있는 시민이었으며, 그 '서운한' 공포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

 콜로세움에 진입하여 막시무스가 코모두스를 다시 대면하게 될 때. 군중들이 외치는 '살려라!'라는 구호는 사실 코모두스가 군중들에게 듣고 싶어하는 것인지 모른다. '시민의 서사'를 회복하려는 즉시, 자신은 '시민 되기'의 열망에서 배제될 수 있음을 코모두스는 알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가 내세우는 그 엄지손가락의 올림과 내림이란 '상징'은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의 권력이 비추는 강함과 약함이 얼마나 약한 경계 속에 있는 것인가를 뜻한다. (나는 이 영화에서만큼은 그 자신이 법체로서 갖는 강권함을 '과시'하는 쪽으로 해석하기보다는, 권력 그 스스로의 강권함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었던 코모두스의 연약함에 더 마음이 간다) 그리고 그 약한 경계 속에서 코모두스가 군중들의 엄청난 '결정의 소리'들을 접했을 때, 그가 갖는 엄지손가락의 '결정 상태'는 그 스스로가 자신에게 생살여탈권을 스스로 행사한 것일 수 있다. "시민이여, 아직 나를 죽이지 말아라!. 비록 나는 너희들보다 힘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나에게 검은 검이 아니오, 오직 나의 검은 이 콜로세움에서만 빛을 발하는 엄지 손가락임을".  막시무스는 바로 그 지점을 알고 있고, 그래서 코모두스는 그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난 폭군으로 묘사된다.  (두려움의 극단적 방어는 살인이 아닐까)  

 어찌 보면 이 '시민-되기'의 열망이 우리에게 사유의 지점을 하나 던져주었던 건, '살려라!' 그리고 '죽여라!'라는 구호 자체의  실효를 꾀하는 자들의 중첩이다. 황제도 군중도 살려라!와 죽여라!를 외친다. 그러나 코모두스는 콜로세움의 핏비린내라는 살인의 풍경을 군중들이 '기호'로 느끼게 끔  만든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들의 생살여탈권은 행사되지 않는다. 단지 그들은 그것을 감상하고 반응할 뿐이다. 이 '행사'의 권리는 코모두스의 것이다. 그러나, 이 권리를 감상과 해석이 아닌 실제 행위로 참여하고픈 집단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시민'이다. 이는 시민의 잔혹성을 섣불리 단언하는 것이 아니다. 시민이 시민으로서 생명을 이야기하는 차원이 아닌, 생명의 존엄을 스스로 수호할 수 있는, 결정할 수 있는 시간. 그 시간의 권리를 확보하고 싶은 자들이 시민이다.    

콜로세움을 가득 메운 군중. 그리고 이 군중에게 던져지는 빵 덩어리들. 그들의 쾌락을 바라보는 황제와 권력자들. 막시무스는 아직 시민이 되지 못한 군중과 시민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황제 사이에 존재한다. 그는 황제의 권력을 얻을 수 있었던 자에서 로마시대 황제와 극단의 계급적 위치에 있던 노예의 서사를 감내해야 했던 자였다. 이 파란만장한 자기 서사 속에서, 우리는 그 서사가 감내하는 고통을 알고 있다. 우리가 시민이 되기 위해 쏟아 부었던 역사의 광경들 또한 알고 있다. 고로 우리에게 시민은 그 어느 때보다 고요하지만, 그 고요를 떠받드는 것은 여전히 살벌한 늑대의 시간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또 그 시간을 망각하게 만드는 오늘날 권력자들의 통치를 날카롭게 보고 싶은 열망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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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ddanzi.com/news/7253.html 

이것은 온라인 민주주의가 만들어 낸 혁명적 사건이다.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쉰의 이 오랜 노래 '킬링 인 더 네임'이 영국 크리스마스 차트에서 '엑스 팩터' 승자들이 늘상 갖던 왕좌를 뺐었다.  페이스북을 개설한 한 영국 부부의 제안으로 시작된 RATM 크리스마스 차트 1위 만들어주기 운동은 결국 놀라운 해피엔딩을 만들어냈다.

Awesome! 이럴 때 쓰라고 '졸라'라는 말이 있는 것이다. 멋있다. 팬들이여. RATM의 기타리스트 톰 모렐로의 공언대로 영국에서의 무료 공연이 성사될 것인가!  

온라인 민주주의가 만들어 낸 이 참여 혁명! 나는 이 광경을 한국에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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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그레이효과 2009-12-21 2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RATM이 자본을 이용하는 어떤 우연적 전략의 역사를, 태클거는 이도 분명 많을거다. 근데 그게 이제 다시 '구린' 비판의 논지가 된 듯한 이상한 시간의 전개..
 

원문 :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578

“강간범을 거세시켜야 할까? 그러지 말란 법도 없다.” 의회 토론에서 미셸 알리오마리 프랑스 내무장관이 한 말이다. 인권에 대한 이런 시대착오적인 관점(눈에는 눈, 이에는 이)은 다른 분야에도 확산되고 있다. 정신병원도 예외는 아니다. 의료개혁의 결과로 수십 년간 쌓아온 성과들이 뒷걸음질치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가 몰고 온 변화들은 정신질환자를 치료가 필요한 한 인간이 아닌, 사회의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한 존재로 낙인찍고 있다.
 

2008년 12월 2일은 프랑스 정신의학에 역사적인 날로 기록될 것이다. 현직 프랑스 대통령이 사상 처음으로 정신병원(파리 근교의 앙토니 병원)을 몸소 방문했다는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그곳에서 그가 한 발언 때문이기도 하다. 역대 프랑스 국가 최고통치자들 중 이처럼 정신병에 낙인을 찍는 발언을 했던 예는 찾아보기가 힘들다. 니콜라 사르코지는 단호하다. 그가 보기에 정신병 환자들은 위험한 존재다. 그런 생각은 그의 발언들 속에서 잘 드러난다. “여러분의 노력은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들을 내고 있습니다. (…) 그러나 여러분이 퇴원시킨 환자들이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거나 폭력을 저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병원으로 되돌아오는 경우도 많습니다”에서부터 “정상인으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때로는 실현 가능성이 적은 희망 때문에 (…) 시민들의 안전이 위협받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습니다”까지. 그의 발언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저는 정신병 환자들이 한 인간으로서 존중되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 교도소에서 수감 생활을 하는 정신병 환자들의 문제도 심각하지만 버젓이 길을 활보하는 사람들 중에도 위험한 환자들이 많습니다.” 그의 발언들을 더 잘 음미하고 싶다면, 전문가들의 통계자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랑스 노숙자들 중 30%가 정신이상으로 고통받고 있다. 다시 말해 정신질환자라는 말이다. 이들은 병원으로부터 버림받은 채 차가운 길에서 죽어간다.

사르코지는 자신의 생각을 좀더 정교하게 가다듬는다. “교도소와 병원, 경찰 간 3자 공조 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3자 간에 균형과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좀더 분명해진다. 위험은 도처에 있다. 교도소 안도 위험하고 교도소 밖도 위험하다. 오늘날 정신병은 무엇보다 안전의 문제이다. 이제 정신병 환자들도 아동성범죄자와 테러리스트들에 이어 공포에 떠는 대중에게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잠시 통계자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정신질환자의 범죄율은 일반인의 범죄율보다 높지 않다.(1) 또한 정신질환자들이 작거나 큰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 중 상당수가 치료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재 정신병원에 필요한 건 안전요원이 아니라 충분한 수의 전문의다. 정신질환자들은 무관심과 따돌림, 폭력의 희생자로서 사회로부터 버림받는 경우가 많으며 ‘정상인들’에 비해 기대수명도 짧다. 희생자를 가해자로 몰아세우는 사르코지의 재능은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희생자를 가해자로 둔갑 

 그의 발언은 우연한 시점에서 나온 게 아니다. 그르노블에서 한 정신분열증 환자가 젊은 남자를 살해한 사건(2)이 있은 며칠 후에 그와 같은 발언이 나왔다. 언론플레이에 능한 사르코지에게는 대중의 감정을 이용해 자신의 정책을 밀어붙일 좋은 기회였다. 그는 곧바로 ‘정신병원 보안강화 계획’이라는 정책을 세우고, 여기에 3천만 유로의 예산을 투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정신병원의 출입을 통제하고 환자의 탈출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환자들의 동의 여부와는 무관하게 환자들에게 위치추적 장치를 부착해 탈출하면 경보장치가 작동하게 될 것이다. ‘필요한 모든 병원’에 감시카메라가 설치된 폐쇄병동이 도입되고, 200여 개의 폐쇄병실이 마련될 것이다. 또한 기존 5개의 폐쇄병동에 4개의 중환자병동(UMD)을 추가하기 위해 4천만 유로가 투입될 예정이다. 
 

거기에 덧붙여 사르코지는 강제 입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그는 잘못된 통계 수치를 법 개정의 근거로 제시한다. 그에 따르면 강제 입원이 전체 입원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13%에 이른다. 환자 자신의 동의 없이 정신병동에 입원시키는 경우를 강제 입원이라고 하는데, 그중 대부분은 제3자, 주로 환자 가족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2008년 4월 보건부에서 발표한 자료를 보면, 환자의 행동이 시민의 안전을 위협한다고 판단해 강제 입원을 시킨 경우는 전체 입원의 2%에 불과하다. 사르코지에게는 2%라는 수치가 인용하기에는 너무 적었을 것이다.

사르코지는 새 법안에 통원치료를 포함한 의무치료 조항이 명시돼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나 이 의무치료 조항은 환자의 기본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간호사들이 경찰과 함께 몰려와 반항하는 환자에게 주사를 놓는 장면을 떠올려보라. 치료 행위는 기본적으로 환자들의 신뢰를 전제로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정신과 의사 기 방이옹의 말처럼, 환자들은 “그를 둘러싼 사회가 그에게 적대적이라는 생각을 품게 된다”.(3) 사르코지도 “환자 본인의 동의 없이는 어떠한 치료도 행해져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환자의 동의는 분명한 의식 속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머리가 돈 2급 시민들은 의식이 분명하지 않으니 이런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환자들의 퇴원과 관련한 규정도 강화될 것이다. 환자를 퇴원시키려면 담당 의사와 간호사, 외부 정신과 전문의 3명의 소견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의 역할은 소견을 밝히는 것에서 끝난다. 최종 결정은 행정 담당자가 내린다. 그들이 ‘국가를 대표’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라는 게 사르코지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모든 것에 앞서 안전을 중요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신과 전문의들은 받아들여질지 알 수 없는 의견을 제출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병원 밖에서는 행정자치단체장이, 병원 안에서는 병원장(경영자)이 ‘사장’처럼 ‘최종 결정’을 내리게 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이 ‘경영자’들은 정신질환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다. 그들의 역할은 병원을 관리하고 병원 내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어떻게든 예산을 절약할 방법을 궁리하고 불합리한 평가 시스템을 도입하는 데 관심을 갖는다. 사르코지는 내무부 장관 시절에 이미 제안했던 계획을 다시 들고 나왔다.(4) 국가 차원에서 강제 입원 환자 명단을 만들어 관리하자는 것이다.

정부에 대한 의학계의 분노

사르코지의 발언에 정신병원 종사자들이 들고 일어섰다. 그중 2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안전의 밤’이라는 제목의 서명운동에 참여했다. 2월 7일, 파리 근교 몽트뢰유에서 열린 한 집회에는 2천 명 가까운 사람들이 참가했다. 전례 없는 일이다.

앙토니 병원에서의 사르코지의 발언은 마른 하늘에 떨어진 날벼락이 아니다. 이미 25년 전부터 꾸준히 추진돼온 프로세스가 갑자기 제 모습을 드러낸 것에 불과하다. 이 프로세스를 이해하려면 2차 대전 종전 후 프랑스의 정신의학계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미 2차 대전 중에 레지스탕스 운동 내부에서 정신병 환자 강제 수감- 때로는 평생 동안 감금되기도 했다- 에 반대하는 ‘탈정신병운동’이 발전했다. 이런 경향은 이미 프랑스 대혁명 당시에 제기된 문제의식을 재확인하는 의미를 갖는다. 이 운동의 중심에는, ‘광기의 인간성’(5)을 탐구한 프랑스 정신의학의 아버지 필리프 피넬이 있었다. 정신병 환자들도 인간인 이상, 그들이 자신의 모습대로 ‘정상인’들과 어울려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사람들에게는 ‘미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신병자 수용소의 벽을 허무는 것만으로 그런 생각이 실현되지는 않는다. 사람들이 광기에 대해 두려움을 가질 수도 있고 환자들이 무관심 속에 방치될 수도 있다. 실제로 오늘날 그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어떻게 하면 이들을 ‘공동체’ 속에 받아들일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

이 운동에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해온 지역별·기관별 심리치료사들은 새로운 정신의학을 창조했다.(6) 정신과 의사들은 더 이상 ‘의료종사자’(7)가 아니라 환자가 사회와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돕는 ‘전문 상담사’(8)들로 재정의된다. 이런 정신의학 혁명에 참여한 정신과 의사 뤼시앙 보나페는 “일반인도 환자를 보살필 수 있는 잠재력이 있으며, 우리는 그 잠재력을 활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9) 누구든 환자를 보살필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심지어는 정신병 환자들도 다른 환자를 돌볼 수 있다. 이러한 개념은 병원이 가지는 중심적 역할을 해체시킴과 동시에 ‘치료의 연속성’이라는 문제를 제기한다. 다시 말해 치료팀이 병원 안팎에서 환자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평생 동안 환자를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관계는 ‘지역적인 차원’에서 조직돼야 한다. 이 운동의 주창자 중 한 사람인 장 에임은 “각 지역에 공립학교가 있듯이 지역별로 사회·의료팀을 두어야 한다”(10)고 주장한다.

환자를 인간 주체로서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출발한 이 새로운 정신의학이 나날이 효과를 거두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물론 끊임없이 제기되는 새로운 문제들에 직면해 개선점을 찾아내야 하겠지만 말이다. 현재 정신의학이 맞고 있는 ‘위기’는 이런 개념의 정신의학이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하는 상황에서 비롯됐다. 니콜라 사르코지는 역대 대통령들과 마찬가지로 이 새로운 개념의 정신의학을 추방하고 싶어한다. 무슨 이유 때문일까? 우선, 신자유주의가 지배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광기는 가능한 한 적은 비용을 들여 통제·관리해야 할 대상이 된다. 이것이 사르코지가 제안한 정책들이 뜻하는 바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정신질환자들에게 투입되는 비용은 불필요한 인간들에게 투자되는 불필요한 비용이 된다. 온갖 평가(11)나 증명들을 요구하고 성과에 비례해 재정 지원을 하는 등의 정책을 강요하는 것에 의료종사자들이 반발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정신병원 시스템이 우선적으로 신경 쓰는 부분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집단적으로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이 그것이다. 가령 정신과 의사들은 우울증에 빠진 주부나 자살 위험에 직면한 기업 간부들도 진료해야 한다. 그러러면 정신과 의사들은 광기 같은 것은 잊어야 한다. 오늘날 광기는 부정된다. 이제 정신질환자는 평범한 신경증 환자들과 똑같이 취급된다.

돈으로만 환산되는 치료

우리는 지금 차가운 타산적 이성의 승리를 목도하고 있다. 철학자들의 이성이 아니라 회계사들과 기술 관료들의 이성이다. 광인은 사회와 진정한 관계를 누릴 자격이 있는 특이한 주체가 아니라 뇌질환 환자로서 뇌를 ‘스캔’하고 유전적 형질을 분석해야 할 대상으로 전락한다. 그들은 문제 있는 행동을 일삼고 비정상적인 증상을 보이는 사람들로서, 가능하면 빨리 정상인으로 되돌려져야 할 존재로 간주된다. 주류 ‘생체정신의학’의 이런 ‘과학적’ 시각은 정신질환자들의 소외를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그들의 관점으로 보면 정신질환자에게 들어가는 돈은 순수한 의미의 손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언젠가는 과학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그때까지 약으로 광기를 억누르며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제약산업에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행동치료요법도 다시 인기를 끌게 될 것이다.

광기는 이제 이 세계 속에 설 자리가 없어졌다. 그러나 광기는 우리에게 삶이 숫자나 그래프로 요약될 수 없다는 것, 사람들 간의 관계가 계약에 의해서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준다. 광기는 불가피하게 ‘경제적 인간’이나 ‘시장형 인간’으로 정의되는 개인의 개념에 대항한다. 이 개념으로 정의된 인간은 소비자이자 생산자로서 불확실한 환경에 적응할 줄 알며, 인간관계보다는 삶의 은밀한 부분까지 침투한 ‘거래’를 통해 세상과 관계를 맺는다. 프랑수아 토스켈은 말했다. “광기의 인간적 가치를 인정하지 않으면 인간 그 자체가 사라지게 될 것이다.”(12)

글·파트리크 쿠프슈 Patrick Coupechoux
저서로 <광인들의 세계: 우리 사회는 어떤 방식으로 정신질환자들을 학대하는가>(2006), <피억압자의 우울증: 프랑스인들의 정신적 고통에 대한 연구>(2009) 등이 있다.

번역·정기헌 guyheony@ilemonde.com
파리8대학 철학과 석사 수료,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 



<각주>
(1) 범죄학 교수 장루이 스농은 살인범의 2~5%, 성범죄자의 1~4%만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 정신질환자들이 크고 작은 범죄의 희생자가 될 확률은 일반인에 비해 17배나 높다(2008년 1월 16일, 안전구금에 관한 법률안 상원 공청회에서 한 발언).

(2) 2008년 11월 12일, 뤽 뫼니에(26·학생)가 이제르의 생테그레브 정신병원에서 탈출한 정신질환자의 흉기에 찔려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3) ‘안전의 밤’ 운동의 일환으로 보낸 공개 편지. www.collectifpsychiatrie.fr.

(4) ‘광기마저 순수성을 잃어버리다’,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2006년 7월호 참조.

(5) 피넬은 광인들이 부분적 이성을 간직하고 있으며 그 이성에 접근함으로써 치료 가능성을 찾을 수 있다고 보았다.

(6) 레지스탕스 내부에서 ‘탈정신병운동’의 두 조류가 탄생했다. 프랑수아 토스켈로 대표되는 첫 번째 조류는 환자들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제도부터 치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두 번째 조류를 대표하는 뤼시앙 보나페는 지역별·분야별로 정신과 치료를 위한 조직을 구성하자고 제안했다.

(7)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 Gallimard, Paris, 1976.

(8) 뤼시앙 보나페, <소외로부터의 해방: 광기와 사회>, Presses universitaires du Mirail, Toulouse, 1991 중, ‘정신과 의사의 역할’ 참조.

(9) <Recherches>, 17호, 1975.

(10) <Chronique de la psychiartrie publique>, Erès, Paris, 1995.

(11) “미소(항공기 승무원의 미소가 아니다)는 정신병원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다. 그러나 미소가 평가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쿠르슈베르니의 라보르드 클리닉의 창립자 장 우리가 한 말이다.

(12) <광기 속에서의 종말 체험>, éditions de l‘Arefppi, Toulouse,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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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 서핑 중, 영국에서 흥미로운 대중음악운동이 벌어지고 있음을 발견했다.  

자세한 소식은  

http://mlbpark.donga.com/bbs/view.php?bbs=mpark_bbs_bullpen09&idx=58178&cpage=1 

내가 우리나라 음악 시장에 느끼는 그 기분은, 해외에서도 마찬가지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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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문 :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334 

173년 전 토크빌의 ‘미국 예찬’을 어설프게 흉내내
예상보다 과격한 우파에 당황… 알맹이 없는 조언

베르나르앙리 레비가 ‘공공의 적’을 자처하긴 하나, 매번 출간이 될 때마다 그의 책들이 프랑스 언론을 움직이는 건 사실이다. 공산주의, 유일신론, 실존주의, 이슬람 공격에 나섰던 레비가 이번에는 미국으로 관심을 돌렸다. 앞선 토크빌의 행보를 따른 것이었을까? 미국인의 반응으로 판단해보건대, 그의 책은 미국인들에게 가르침보다는 즐거움을 준 것 같다.

1831년 미국을 방문한 알렉시스 드 토크빌은 스스로에게 중대한 정치적 임무를 부과했다. 민주적 평등이 자리잡은 미국에서 평등이 개인의 자유에 미치는 영향은 다른 곳에서보다 덜 끔찍했다. 토크빌은 미국인들이 어떻게 이런 결과에 이를 수 있었는지 알고 싶었다. 그로부터 173년이 흘러 베르나르앙리 레비는 토크빌의 뒤를 따라 미국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레비가 중대한 정치적 임무에 투신한 건 아니었다. 그는 시사 월간지 <애틀랜틱 먼슬리>의 취재 요청으로 그곳에 간 것이었다. 잡지사에서는 레비에게 차 한 대와 기사 한 명을 내주었고, 화제의 인물들과 4차원적 인물들 및 미국의 지식인으로 여겨지는 사람들로 화려한 만남 일정을 만들어주었다. 책 속에서 레비는 토크빌과 마찬가지로 붓 가는 대로 글을 써내려간다. 하지만 예의 그 토크빌이 보여줬던 시상과 심리적 깊이, 사회적 농도는 결여돼 있다.(1)

저자가 여행을 한 2004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레비 역시 ‘반미주의’에 관심을 갖는다. 그해 반미주의는 미국에서든 해외에서든 특히 두드러진 감정이었다. 하긴 공화당원들은 이라크전쟁에 대한 비판 여론은 무조건 반미로 몰아붙였으니 말이다. 자신의 오른팔 딕 체니 부통령의 위험한 영향을 받은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은 이 나라를 불필요한 전쟁으로 몰고 갔고, 전쟁 때문에 미국은 동맹국도 잃고 재정 출혈도 극심했다. 조지 부시와 그의 몰지각한 자문위원들이 했던 약속과는 달리, 이라크에서 미 점령군은 자유의 수호자로 받아들여지기는커녕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됐다. 얼마 전에는 대테러 전쟁이 상황 수습을 위해 고문, 불법 감시, 심지어 고문이 일상화된 제3국으로 전쟁 포로를 보내어 ‘하청’ 처리를 하는 ‘이상한 송환’이라는 방법을 사용했음이 알려졌다. 혐의자에 대한 이런 신병 인도 방식을 이용하면, 은밀한 뒤처리가 쉽게 이뤄질 수 있다. 같은 해 11월 부시 대통령에게서 헤어나려던 우리의 꿈은 거짓, 부패, 정보 조작이 극에 달한 선거운동 이후 산산조각나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요컨대 2004년은 미합중국의 역사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미국의 병적 사회현상까지 극찬

베르나르앙리 레비라는 방문객은 미국의 가장 충격적인 병적 측면을 과도할 정도로 예의 바르게 보여줬다. 미국 사회에서 민감한 부분 가운데 하나인 교도소를 둘러보되, 그는 우리가 당황하지 않도록 (작가 스스로 얼마 되지 않는다고 여기는) 수감 인구 수치를 언급하는 친절함까지 베풀었다(그 후 이상하게도 2004년 226만7787명에 달했던 교도소 수감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나기만 한다). 저자는 미국식 사형제도의 비참함을 애써 외면했다. 고맙게도 레비는 미국을 찬양하기 위한 목적에서 왔기 때문이다. 그의 눈에 비친 미국인은 개방적이고 호의적인 사람들이었으며, 프랑스인 혐오주의를 예상했으나 놀랍게도 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미국에 대해 레비가 묘사해놓은 내용은 감탄을 자아낼 만하다. 그 핵심을 살펴보면 여행 전문지에나 나올 듯한 글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가령 저자는 그랜드캐니언을 매우 좋게 봤다. 네바다의 어느 창가에서 그가 이끌어낸 와인 빛깔 벨벳에서 알 수 있듯, 그는 내부 장식에서는 일가견이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애틀랜틱 먼슬리> 쪽은 그에게서 확실히 단순한 유람기와는 다른 걸 기대했다. 따라서 가장 영향력이 있는 지식인들 다수와 만남을 주선해준다. 안타깝게도 이 만남들이 순조롭게 이뤄진 건 아니었다. 하버드대 새뮤얼 헌팅턴과의 저녁 만찬에서, 저자는 멕시코 이민 문제와 관련해 헌팅턴 교수가 표명한 관점에서 벽에 부딪힌다. 윌리엄 크리스톨과의 만남도 저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크리스톨과 다른 네오콘들에게서 레비는 일말의 고차원적 지성을 발견하고 싶어했으나, 부시 행정부의 충실한 아첨꾼인 크리스톨은 이라크전쟁에 대해서 한 치의 의심도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사형제도와 낙태 반대법 및 부시의 사회적 의제 구실을 수행하는 구시대적 규정들을 열렬히 옹호함으로써 상대방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이에 분개한 레비는 크리스톨에게 레오 스트라우스, 한나 아렌트, 쥘리앵 방다의 책을 다시 읽으라고 조언할 수밖에 없었다.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대학교수들과 제법 유순한 양이 되지 못하는 네오콘들 외에도 또 다른 놀라운 사실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인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뚱뚱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물론 로스앤젤레스에서 240kg 가까이 나가는 여성을 만나기는 했으나, 이는 예외적인 경우였다.

그렇다고 모든 게 예상을 빗나간 건 아니었다. 국민들 사이에 과체중이 널리 퍼져 있진 않았으나, 그는 경제적 비만, 공항의 비만, 교회의 비만, 주차장의 비만 등 다른 형태의 비대함에 주목한다. 저자가 ‘비만’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여기에서도 우리의 저자는 자신을 흥분시킨 현상에 대해 명확히 조명하지 못한다.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낮긴 하나 인구가 꽤 많다는 게 그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적어도 공항, 교회, 주차장에 대해서는 이 설명이 적용된다. 하지만 알다시피 상세한 설명은 <아메리칸 버티고>를 쓴 작가의 강점이 못 된다.

알맹이 없는 미국식 ‘모델’ 제시

이 책의 허접함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던 건 책의 마지막 부분, 저자가 미국식 ‘모델’을 관통하는 몇 가지 결론을 써보려고 발악한 대목이었다. 토크빌이 미국을 이해하려 했던 건 유럽의 운명이 미국식 민주주의의 조건에 달려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반대로 레비는 미국이 유일할 거라고 믿는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이런 예외성이 어떤 성격을 지니는지 명시하지 않는다. 이 성격은 분명 국가로서의 미국과 ‘공동체의 막대한 신성성’(이런 식의 표현이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사이의 해소되지 않은 갈등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레비는 미국이 무너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소수의 횡포’로 인한 위기는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이들 질문과 관련해, 레비는 더 이상 오류 속에 파묻혀 있을 수 없게 됐다. 사실 미국은 새롭고 유일한 정치 형태를 구현한다기보다 (물론 늘 그랬던 건 아니지만) 고전적인 국민국가라고 할 수 있다. 토크빌이 미국을 여행할 당시, 미국은 근본적으로 분권화되고 지역적으로 통치되는 새로운 정치 형태로 나아가는 걸로 보였다. 토크빌은 자기 눈앞의 이 나라를 높이 평가했다. 엄청난 크기의 나라였어도 미국은 다른 수많은 유럽 국가들에 없던 무언가를 이미 가진 상태였다. 다른 나라의 문명과는 구별되면서도 내적으로 단일화한 공통 문명을 가졌던 것이다. 그의 주장을 따르자면, 약 1600km가량 떨어진 메인주와 조지아주의 차이보다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떨어진 노르망디 지방과 브르타뉴 지방의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는 것이다. 분명 다양해 보이기는 하나, 오늘날의 미국은 이민자 집단 상당수를 동화시키고 있다. 정치적·도덕적 가치를 공유하는 독실한 영어권 미국인으로 이들 모두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소수의 횡포’를 걱정해야 할 건 미국이 아닌 유럽이다. 유럽은 서로 다른 집단들을 하나의 단일화한 국가적 공동체로 묶어주지 못했다. 이 상대적 실패를 이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정치적 과업도, 지식 과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 점에서 우리는 확실히 레비의 책보다는 토크빌의 책에서 배울 점이 훨씬 더 많다.




<각주>
(1) 베르나르앙리 레비, <American Vertigo: Travels in Toqueville’s Footsteps>, 2006.(한국어 번역본 <아메리칸 버티고>, 김병욱 역, 2006.)

글린 모건 Glyn Morgan 하버드대 정치학 교수
번역 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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