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몽드 디플로마티크 1월호를 읽다가 소개한다.

 원문 : http://www.ilemonde.com/news/articleView.html?idxno=612

 Horizon] 화장실 없는 26억 인구 무관심 속 무방비 질병 노출 

위생학자 매기 블랙

전세계가 핵화학 오염물과 온실가스 배출 감소에만 골몰하는 지금, 병원균이 득실거리는 배설물 같은 기본적 오염원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런던 템스강 대악취 사건 이후 선진국은 도심환경 정화와 청결 유지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개도국에서는 각종 질병의 발생 원인에 대한 이해가 높아지면서, 지난 몇 세기 동안 전염병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 ‘해로운 공기’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점점 가속화되는 도시화는 늘 새로운 근심거리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오늘날 도시 인구의 대부분은 빈민촌에 거주한다. 판자촌 같은 빈민굴에서 10억 도시 인구가 위생시설 부족과 이로 인한 고통, 건강 악화와 인간의 존엄성 상실을 겪고 있다.

잠비아에서는 지난해 7천 건 이상의 콜레라가 발생했다. 이 중 162명이 사망했고, 수도 루사카에서만 30명이 숨졌다. 잠비아는 이에 125억 크와차(약 150만 유로)를 투자하고 복역수들을 동원해 하수도 정화사업을 벌이는 한편, 콘서트나 TV 드라마를 통해 대국민 의식 개선 등 위험 방지 프로그램을 진행했다.(1)

그러나 도시화가 한창 진행 중인 아프리카와 아시아, 남미 국가들에서는 도시 외곽(간혹 도심 내)의 열악한 생활환경이 도시 및 사회 전체에 큰 위협이 된다는 사실이 간과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 국가들도 콜레라같이 비위생적 환경에서 비롯되는 대단위 전염병 확산을 막기 위한 병원 시설을 대부분 갖추고 있다.


   
 
 
수돗물과 분뇨의 혼동
수세식 변기와 하수도 시설이 보급됨에 따라 사람들은 수도시설이 분뇨 처리 문제를 해결한다는 오해를 하게 되었다. 즉, 분뇨 오염이 질병의 중요한 발생 원인이라는 인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졌다. 보건정책조차 설사 및 기타 배변 관련 질병을 ‘수돗물 보급’ 카테고리로 분류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주택 소유자들은 상수도 사용료를 부담한다. 그러나 여기에 하수도망에 대한 언급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교묘한 말장난 덕택에 대중 여론과 국정 논의 석상에서 이 더럽고 불결한 용어는 금지되기에 이르렀다. 여전히 일부 개도국의 대도시를 흐르는 강은 19세기의 센강·라인강·템스강처럼 썩어가고, 투기된 오물들로 넘쳐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악취원들은 화려한 호텔과 관광시설들이 위치한 도심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관심에서 멀어진 채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

그 결과, 무려 26억 명의 사람들이(전세계 인구의 38%나 되는!) 분뇨 처리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들에게는 화장실도 없고, 하수도 시설의 혜택도 없다. 분뇨를 모아두었다가 투기하는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고, 재래식 변기도 정기적인 정화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수도가 보급된 경우에도 오물의 10%가량만 종말 처리되고 있다. 즉, 나머지 90%는 미처리돼 하천에 버려짐으로써 어장과 식물군을 포함한 수질환경과 인간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하천수가 세탁물, 세숫물, 목욕물 및 음용수로 그대로 사용되기도 한다. 물이 오물 처리와 흡수에 효과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극소량의 배설물에도 미생물 박테리아가 수십억 마리 서식하는 것처럼 물에도 많은 병원체가 서식하고 있다.

인도 정부는 여러 해 동안 유독성 산업폐기물 투척과 미처리 폐수 방류로 오염된 갠지스강 정화사업을 위해 세계은행에서 5년간 10억 달러의 차관을 제공받기로 했다.(2) 그러나 갠지스 강줄기에 즐비한 하수구를 따라 정화시설을 가동할 수 있다 할지라도 그 정도의 투자로 인도 극빈층에게까지 하수도를 보급한다는 희망은 아직 요원하다. 실제로 위생시설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인구의 대부분은 주거환경이 열악한 농촌에 살거나(70%), 도시 내 사방으로 뻗어나간 빈민가에 거주하고 있다(30%).

개도국 내 대부분의 농촌 지역에서는 주민들의 노상 배설이 일상적이다. 야간에 들판으로 나가 생리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여기서 파생되는 문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평판과 체면, 순결이 걸려 있어 특히 조심해야 하는 여성에게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밤 나들이 때 발생하는 신체 폭행이나 성폭력 피해는 다반사다. 무엇보다도 낮 시간 내내 배변을 참아야 해서 방광뿐 아니라 여러 가지 건강상 문제가 발생한다.


   
 
 
야음을 틈타 들판에서 뒷일
농촌과 달리 도시에서처럼 밖에서도 해결할 곳이 없거나 어린아이나 환자, 장애가 있는 노인과 같이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사람들은 양동이를 사용하거나 음식 포장재, 플라스틱 봉투 등을 사용한다. 배설물이 담긴 봉투는 가까운 쓰레기장에 버려지고, 그 근처를 떠도는 개나 돼지들이 뒤처리를 한다. 이 불결한 봉투들은 ‘이동식 화장실’이라고 불린다.

농촌 지역 사람들은 냄새 나고 비좁은 화장실보다 자신들의 전통적 방식을 선호한다. 이들은 집 안에 화장실 칸을 두는 것을 꺼리고, 되도록이면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두려 한다. 과거에는 태양과 바람에 의한 건조와 탈취, 유수에 의한 세척 작용만으로도 화장실 없이 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인구밀도가 높아지면서 노상 배설은 비위생적인 일이 되었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하천과 강가, 해변, 들판, 길가에 퍼져 있는 분뇨 입자를 통해 병에 걸린다. 병원균이 손과 발, 음식이나 식기, 옷에 묻거나 호수나 연못에서 몸을 씻는 사람들과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의 인체 내로 흡입되는 것이다. 매년 150만 명의 영아가 설사와 관련된 질병으로 목숨을 잃는다. 또한 수백만 명의 아이들이 정기적인 고열과 복통으로 학교를 결석하거나 성장 장애를 겪는데, 이는 곧 육아를 담당하는 어머니의 부담을 가중하는 동시에 가정의 금전적 손실을 야기한다. 맨발로 배설물을 밟아 생기는 기생충 감염이 빈번한데 매년 1억3300만 건을 넘어선다. 장기 내에 기생하는 회충은 어린아이가 섭취하는 영양분의 3분의 1을 흡수하는데, 이로 인해 흔히 발생하는 질병이 천식이다. 어린아이가 열악한 생활환경에서 자랄 경우 장기 내에 1천여 마리의 회충이 동시에 기생할 수도 있다.

정부가 위생·정화 시설 부족이 인체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더라도 일반 대중에게 화장실은 국가 차원의 위생 지원 정책이 아니라, 개인 생활용품의 일부처럼 인식되고 있다.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화장실 없이는 아무도 모르게 혼자 용변을 보는 것이 더욱 힘들어졌다. 개인만의 은밀한 공간이 부족해지면서 극빈층 사이에 이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으며, 특히 사회적 신분 상승에 성공한 경우 그 수요가 높다. 이는 화장실이 텔레비전처럼 세련미와 현대성의 상징물이 되었기 때문인데, 이는 빈민층뿐 아니라 서민층에서도 마찬가지다. 이뿐만 아니라 욕실과 샤워 시설, 생활용수 처리를 위한 하수도 설비의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가정용 설비 부품’ 수요가 증가했다. 이와 같은 현상은 100여 년 전 유럽에서 나타난 것과 유사하다.


 

 
 
 
 
화장실, 개인 차원의 문제 아니다
그러나 지방자치단체에는 이러한 추세를 뒷받침할 수 있는 자원도 의지도 부족하다. 지도층 내에서도, 소비자층 내에서도 위생설비 수요를 충족하기 위한 움직임은 찾아볼 수 없다. 이런 현실에는 원조 지원국의 책임도 일부 있다. 물 관련 원조 프로그램 지원금이 연간 130억 달러에 달하지만, 이 중 10억 달러만이 위생시설 확충에 활용되고 있다.(3) ‘물과 위생’ 프로그램 가운데 오물·오수 처리 설비 확충이나 화장실 홍보, 위생 교육에 들어가는 예산은 거의 없다. 유엔이 2000년 수립한 새 천년 개발 목표 어디에도 위생은 찾아볼 수 없다. 1990년 기준으로 기본적 위생시설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인구를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가 추가된 것은 2002년 요하네스버그에서 개최된 제2차 지구정상회의 때인데, 이조차 엄청난 로비 활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런데 유니세프는 이같은 소극적 목표(위생시설 혜택이 부족함에도 목표 대상에서 제외된 인구는 18억 명에 이른다)조차 실현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보고 있다. 위생 측면에 대한 재정적·정치적·제도적·인식적 개선을 위해 유엔은 2008년을 ‘국제 위생의 해’로 지정했다. 유엔의 이런 노력은 일부 성과를 거두었다. 마침내 위정자들이 식수 공급과 위생을 별개의 쟁점으로 인식한 것이다.

‘화장실의 비극’을 폭로하라
많은 지역에서 극빈층 거주 지역에 설치할 수 있는 화장실은 급수가 안 되고, 오물 처리를 위한 배수관 설치도 불가능하다. 거주민도 해당 지역 관청도 배수로나 분뇨 정화조에 투자할 형편이 못 될뿐더러, 분뇨 처리 시설은 생각조차 못하고 있다. 아프리카와 극동 아시아(중국 및 인도를 포함한)의 많은 국가들이 극심한 물 부족을 겪고 있기 때문에, 위생시설 보편화는 이미 실패가 예견되고 있다.

오랫동안 간과해온 문제를 해결하려 할 때마다 늘 그랬듯, ‘국제 위생의 해’는 그동안 잊혀져왔던 기술 향상과 교육 측면의 개선 현황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상상한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을 폭로하는 계기도 되었다. ‘불법’ 주거시설에 거주하는 인구를 수치에 포함시킨 결과 생활환경이 극도로 열악한 인구수는 크게 증가했다. 하지만 관광 차원에서 국가 이미지에 끼칠 악영향을 두려워하는 많은 국가들이 상습적으로 콜레라 발병 건수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콜레라가 ‘불결한 질병’으로 인식돼 많은 환자들이 병을 숨기고 있는 만큼 숫자 속이기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4)

기존 위생설비는 선진국이나 부유층에서 편리한 하수설비일 따름이다. 따라서 위생 차원에서 조금이라도 수확을 거두려면 좀더 저렴하고 설치와 유지가 용이한 위생설비 기술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글•매기 블랙 Maggie Black
주요 저서로 <최후의 금기: 국제 위생 위기에 관하여>(런던·2008) 등이 있다

번역•김윤형

<각주>
(1) 샘파이리, ‘잠비아: 정부, 콜레라·말라리아와의 전쟁 선포’, <Times of Zambia>, 루사카, 2009년 10월 27일자.
(2) <BBC News>, ‘세계은행, 인도 갠지스강 정화사업에 10억 달러 투자협정 체결’, 2009년 12월 3일.
(3) 세계 물 파트너십, ‘물 안보를 향해: 행동 지침서’, 스톡홀름, 2000.
(4) 세계보건기구 정기간행물, 87호, 885~964, 제네바, 2009년 12월.





1858년 런던 템스강 대악취 사건이란?

지금으로부터 150여 년 전 런던을 강타한 한여름의 혹서로 템스강은 악취가 심한 시궁창으로 변해버렸다. 당시 막 발명된 수세식 변기가 유행하면서, 런던이 일종의 대형 하수구가 돼버린 셈이다. 심한 악취 때문에 강가에 위치한 법원들은 개정 기간을 축소해야 할 정도였다. 당시 유럽의 다른 도시들처럼 런던도 콜레라 같은 전염병이 정기적으로 유행했는데, ‘해로운 공기’가 전염병의 원인으로 지목되던 시절이다. 

템스강의 악취가 독성이 강한 ‘해로운 공기’라는 믿음 때문에 의회는 즉각적인 행동에 돌입했다. 웨스트민스터궁의 테라스와 창문들이 모두 강변 북쪽을 향해 있었기 때문에, 의회는 즉시 300만 파운드의 특별예산을 마련해 하수구 시스템을 개축하기로 결정했는데, 이는 전례 없는 일이었다.

광역 도시사업국(1)은 기술자인 조지프 바잘게트에게 런던 시내 전체의 하수구 설치 책임을 맡겼다. 공중보건법 채택 및 지방행정제 개혁과 함께, 런던 하수구 시스템 개축사업은 위생 역사상 큰 획을 그었으며, 영국 내 공중보건제도 개혁의 시초가 되었다. 또한 산업화가 진행 중이던 유럽과 북미로까지 확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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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movie/400240.html 

-> 아바타에 주눅든 '한국영화 3D 딜레마' 

지난 주에 가장 닭살 돋았던 기사는 한겨레의 <아바타에 주눅든 '한국영화 3D 딜레마'였다. 이제 이런 구도의 기사를 보면, 문제의 심각성을 내 스스로에게 일깨우기보다는 언론의 게으름을 탓하고 싶다. 마치 문화를 하나의 '침입'으로 보는 이러한 시선에 동조하며, 아이맥스관에 뱀이라도 풀어놓고, 삭발 투쟁이라도 해야할까.  

방송에서도 <아바타>에 대해 연일 찬사를 보내며, 우리도 영화 테크놀로지에 신경쓰자고 종일 외쳐댄다. 근데 말이다. 테크놀로지의 혁신이 영화사에 한 켠에 쭉 자리를 차지할지는 몰라도, 그 혁신으로 말미암아, 영화 관객들이 그동안 지켜왔던 어떤 본질에 대해 손을 놓을 것이라는 점, 혹은 그동안 지켜왔던 가치관, 수용 방식에 대해 이제 더 이상 애정을 갖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론만큼이나 어리석은 이야기는 없을 듯하다. 그것은 지나친 설레발임을 우리의 역사는 그동안 증명해줬다. 

하지만 문제는 '쌍팔년도식' 발언으로 아직 살고 있는 영화인들 많네?라며 영화계를 질타하기에 앞서, 이러한 프레임을 일찍 만들어 놓고, 그런 대답으로 사람들의 향수를 자아내려는, 이 미디어의 태도다. 그들은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 문제화를 시키기보다, 이미 문제화를 다 시켜 놓고, 목소리를 '딴다'. 고로 봉준호의 저 말(캐머런이 전 세계에 민폐를 끼쳤다)도 왠지 앞,뒤 다 자르고 한 것 같다. 한 유명 감독의 유머로 인식이 되는 저 말도, 왠지 80년대 민족주의 영화비평의 그 세계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 분위기를 만들어 놓는 것이다. 

마치 모든 영화에 3D의 외피를 입혀야할 것 같다는 설레발이 아직 나오지 않아서 다행이지만, 그런 외피를 입혀야 '살아남는다'는 그런 '공포 효과'는 그만 보여줬으면 좋겠다. 차라리 그 시간에 <500일의 썸머>같은 영화가 보여주는 창의성,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 보여주는 진정성 담긴 오마쥬를 심층적으로 다뤄주길 바란다.  

다른 한 편으론 <아바타>를 둘러싼 논쟁에서, '이야기가 진부하다' 대 아니다의 갑론을박도 왠지 식상한 풍경이다. 차라리 우리는 그런 식상한 풍경의 한 축을 담당한 이들을 각자 자신의 취향에 맞게 응원하기보다는, 그런 식상함이 왜 매번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를 스스로 솔직하게 한탄해보는 것도 좋으리라. 그런 측면에서 김봉석도, 정성일의 코멘트도 조금은 아쉽다. 언제까지 '이런 영화'에, '이야기의 혁신'같은 안티테제로 맞설까. 그 대항의 논리가 너무 녹이 많이 슨 느낌이다.  

'이런 영화'앞에 정말 필요한 자세는 대중들이 나에게 또 '에그, 이 사람 평론가란 사람치고 나보다 분석안이 시원찮네"라는 걱정에 미리 주눅 든 평자의 공포가 아니라, "이런 영화 앞에, 나 정말 영화비평 못해 먹겠다"라는 또 다른 인상적인 '비평의 공포'가 아닐까. 차라리 한 번 속 시원하게 망한 자신의 모습을 비평에 그대로 실어보는 건 어쩌면 지금 우리 영화비평계에 필요한 혁신일 것이다. 그런데, 모두 자기가 똑똑하지 못한 비평가라는 욕을 먹을까봐, 있는 비평의 언어에서 있는 것만 챙겨먹느라 바쁘다. 불쌍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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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헐리웃에서 가장 좋아하는 배우를 꼽자면, 나는 조지 클루니를 언급하고 싶다. '섹시한 진보주의자'라는 수사도 있지만, 그런 것과는 별개로 담담하게 자신의 작품을 통해 사회에 대해 목소리를 낼 줄 알고, 스크린 밖에서도 의미있는 발언들, 행동들을 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클루니를 비롯하여, 헐리웃 셀레브리티들이 또 일을 냈다. 아이티 사태를 위해 비욘세가 미니 콘서트를 열었고, 팀 로빈스, 리즈 위더스푼, 스티비 원더 등등 많은 연예인들이 직접 성금 모금 전화원으로 봉사했다.  

어떤 이는 아직 베풀어야 할 구조의 차원에서 미리 발을 뺄 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나라의 먹고사니즘, 생활의 보수화에 따른 국제적 연대의 미흡은 매번 아쉽다. 예전에 일요일일요일밤에 <단비>란 프로를 보다가,  가슴 아픈 댓글을 봤다. 어떤 유저는 "우리 먹고 살기도 바쁜데, 왜 엄한 외국 아프리카에 가서 우물을 파줘"란 댓글을 남기더라. 솔직히 씁쓸했다. 우리나라 언론만큼 국제면이 부족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 필요할 때만, 국제라는 말을 당겨 쓴다.  

강심장이라는 프로가 케이블에서 재방송 분으로 나왔다. 정말 미안한 이야기지만, 나는 이제 연예인들이 텔레비전에서 자신들의 고생담을 말하는 것을 중단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힙합하는 친구들은 그 놈의 '라면 먹고 헝그리 정신으로 버텼다' 등등의 가사는 그만 썼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건 개인의 고생을 참고 버텨라고 하는 그런 냉정한 차원의 주장이 아니다. 대중들은 이미 그런 고생담쯤은 알고 있다. 그러니 이제  차라리 그런 자리가 마련되면, 좀 더 마음을 가라앉히고 '다른 고생들'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 있는 미덕을 발휘해보는 것은 어떨까. 

영화제 시상식이나, 연기대상 시상식에서도 자기 작품 홍보 좀 그만 했으면 좋겠다. 차라리 그런 자리에서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영화계의 현실, 방송계의 현실들, 대중이 함께 지켜봐줬으면 하는 작품들에 대해 언급해보는 것은 어떨까. 몇 년 전, 메릴 스트립이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로 상을 받았을 때, 그녀는 정말 인상적인 수상 멘트를 남겼다. 그는 자신의 영화도 소중하지만, '판의 미로'나 알모도바르의 '귀향'같은 좋은 작품이 있는데, 그런 작품들이 널리 상영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며, 이런 영화들이 좀 더 널리 대중들에게 사랑받았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 놈의 고생담 좀 그만해라. 자신들의 먹고사니즘만 강변할 뿐이다. 차라리 당신들이 그토록 갈망하고 요구하던 그 '명성 효과'로 지금 연대가 필요한 땅에 씨를 뿌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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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0-01-25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그레이님 안녕하세요. 글 잘 읽었습니다.
연예인들도 다 알텐데 미디어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면 굳이 튀지 않는게 상책이란 생각 때문에 시청자가 원하는 대답만 해주는게 아닐까요? 저도 연말 시상식에서 누구누구 고맙단 말을 듣자면 좀 답답해요. 어떻게 해야 좀 더 넓게 생각할 수 있을지.

얼그레이효과 2010-01-28 22:35   좋아요 0 | URL
한국 시상식 문화는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고 생각됩니다. 그런 측면에서 arch님이 언급하신 부분은 소중한 지적이라고 생각되네요.

쟈니 2010-01-26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쓰신 글 잘 읽었습니다. 마음에 와닿고, 저 자신도 부끄러워 집니다.
먹고사니즘에만 너무 천착되어있는 제 자신에 대해서도 새삼 고민을 하게 한 글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1-28 22:36   좋아요 0 | URL
저도 막상 격앙된 목소리를 취했지만, 자숙 또 자숙하며,,어떤 실천으로 세상을 빛나게 만들수있을까,고민하며 삽니다. 쟈니님의 성찰이 곧 빛과 소금이 되겠지요.

sis 2010-01-26 16: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잘 읽었습니다~ 우리나라는 하는사람만 하는 경향이 있더군요. 차인표부부,김연아선수 등..물론 알려지지 않게 좋은일 하시는 분들도 있다고 믿고 싶습니다만 셀레브리티들의 전반적인 기부인식 부족이 아쉽습니다.근래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구가 "행동하는 위선이 행동하지 않는 선보다 낫다 입니다." 남모르게 선행하라 라는 말따위는 이제 그만해야합니다. 명품백이나 사치품들을 자랑하듯이 선행을 자랑하고 경쟁적으로 기부를 하는 세상을 바래봅니다.

얼그레이효과 2010-01-28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사회와 기부 문화에 대해서는, 아직 감정적 차원 이상의 것을 고민해보진 못했는데요, 좀 심화된 고민을 해보고 싶습니다. sis님의 덧글을 보니, 그런 생각이 더 드네요. 함께 고민해보지요.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100118103034&Section=07 

-> 카이에 뒤 시네마와 필름 코멘트에서 2000년대 최고의 영화를 선정했다. 

 다음은 두 잡지가 영화평론가들에게 의뢰해 선정한 2000년대 최고 영화 순위이다. 

(본 것 표시해 봐야지. 본 게 별로 없다..아 게을러진 나..ㅜ.ㅜ 반성하자)

<카이에 뒤 시네마 >

1. 멀홀랜드 드라이브 /데이빗 린치/미국/2001년
2. 엘레펀트 /구스 반 산트/ 미국 /2003년
3. 열대병 /아핏차퐁 위라세타쿤/태국/2004년
4. 괴물 /봉준호/한국/2006년
5. 폭력의 역사 /데이빗 크로넨버그/캐나다/2005년
6. 종자와 노새 /압델라티프 케시케 /튜니지아/2007년
7. 철서구(鐵西區) /왕빙/ 중국/2003년
8. 우주전쟁 /스티븐 스필버그/미국/2005년
9. 뉴 월드 /테렌스 맬릭/미국/2005년
10. 텐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이란/2002년

<필름코멘트>

1. 멀홀랜드 드라이브 /데이빗 린치
2. 화양영화 /왕자웨이/홍콩/2000년
3. 하나 그리고 둘 / 에드워드 양/대만 일본/2000년
4. 징후와 세기 /아핏차퐁 위라세타쿤/태국 오스트리아 프랑스/2006년
5. 데어 윌 비 블러드 /폴 토머스 앤더슨/미국/2007년
6. 라자레스쿠의 죽음 /트리스티 푸이우/루마니아/2005년
7. 폭력의 역사 /데이빗 크로넨버그
8. 열대병 /아핏차퐁 위라세타쿤
9. 4개월, 3주, 그리고... 2일 /크리스티앙 문주/루마니아/2007년
10. 뉴 월드 /테렌스 맬릭
11. 플랫폼 /지아장커/홍콩 일본 프랑스/2000년
12. 조디악 /데이비드 핀처/미국/2007년
13. 침입자 /클레르 드니/프랑스/2004년
14. 아들 /장 피에르 &뤽 다르덴형제/벨기에 프랑스/2002년
15. 도그빌 /라스 폰 트리에/덴마크 스웨덴 프랑스 영국 독일 네덜란드/2003년
16. 히든 /미카엘 하네케/프랑스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2005년
17. 킹스 앤드 퀸 /아르노 데스플레셍/프랑스/2005년
18. 엘레펀트 /구스 반 산트
19. 로얄 타넨바움 /웨스 앤더슨/미국/2001년
20. 비포 선셋 /리처드 링클레이터/미국/2005년
21.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미야자키 하야오 /일본 /2001년
22. 이삭줍는 사람들과 나 /아녜스 바르다/프랑스/2000년
23. 안녕 용문객잔 /차이밍량/대만/2003년
24. 세계 /지아장커/중국 일본 프랑스 /2003년
25. 그녀에게 /페드로 알모도바르/스페인/2002년
26. 인랜드 엠파이어 /데이비드 린치/미국 프랑스 폴란드/2006년
27. 스틸라이프 /지아장커/중국 홍콩/2006년
28. 행진하는 청춘 /페드로 코스타/프랑스 포르투갈 스위스/2006년
29. 러시아 방주 /알렉산데르 소쿠로프/러시아 독일 /2002년
30. A.I. /스티븐 스필버그/미국/2001년
31. 사랑의 찬가 /장 뤽 고다르/프랑스 스위스 /2001년
32. 이터널 선샤인 / 미셸 공드리/미국/2004년
33.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조엘&에단 코엔/미국 /2007년
34. 베크마이스터 하모니즈 /벨라 타르/헝가리 이탈리아 독일 프랑스 /2000년
35. 그리즐리 맨 /베르너 헤어조크/미국 캐나다/2005년
36. 쓰리 타임스 /허우샤오셴/대만/2005년
37. 카페 뤼미에르 /허우샤오셴/대만/2003년
38. 평범한 연인들 /필립 가렐/프랑스/2005년
39. 친애하는 당신 /아핏차퐁 위라세타쿤/태국/2002년
40. 아임 낫 데어 /토드 헤인스/미국 독일 /2007년
41. 2046 /왕자웨이/중국 홍콩 프랑스/2005년
42. 바르다의 방 /페드로 코스타/포르투갈 독일 스위스 /2000년
43. 로스앤젤레스 플레이스 잇셀프 /톰 앤더슨/미국/2003년
44. 밀레니엄 맘보 /허우샤오셴 /프랑스 미국 스페인 그리스 /2001년
45. 라 코뮌(파리 1871) /피터 왓킨스 /프랑스 /2000년
46. 허트로커 /캐슬린 비글로/미국/2009년
47. 밀리언 달러 베이비 /클린트 이스트우드/미국/2004년
48. 거기는 몇 시인가요 /차이밍량/대만 프랑스 /2001년
49. 데몬러버 /올리비에 아사야스/프랑스 /2002년
50. 머리없는 여인 /루크레시아 마르텔/아르헨티나 스페인 프랑스 이탈리아/2009년
51. 갇힌 여인 /샹탈 애커만/프랑스 벨기에 /2000년
52. 에스더 칸 /아르노 데스플레솅/프랑스 영국 /2000년
53. 아워 뮤직 /장 뤽 고다르/ 프랑스 스위스/2004년
54. 디스탄트 / 누리 빌게 세일란/터키/2002년
55. 사라반드 /잉그마르 베리만 /스웨덴/2003년
56. 홀리걸 /루크레시아 마르텔 /아르헨티나 이탈리아 네덜란드 스페인/2004년
57. 이 투 마마 /알폰소 쿠아론/ 멕시코 /2001년
58. 브로크백 마운틴 /이안/미국/2005년
59. 칠드런 오브 맨 /알폰소 쿠아론/일본 영국 미국/2006년
60. 텐 /아바스 키아로스타미/이란 프랑스 미국 /2002년
61. 사일런트 라이트 /카를로스 레이가다스 /멕시코 프랑스 네덜란드/2007년
62. 높 /루크레시아 마르텔/아르헨티나 스페인/2001년
63. 더 차일드 /다르덴 /벨기에 프랑스 /2005년
64. 스타 스프랭글드 투 데스 /켄 제이콥스/미국/2004년
65. 붉은 풍선 /허우샤오셴 / 대만 프랑스 /2008년
66. RR /제임스 베닝/미국/2007년
67. 하우스 오브 머스 /테렌스 데이비스/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2000년
68. 25시 /스파이스 리/미국/2002년
69. 35럼 샷 /클레르 드니/프랑스 독일 /2008년
70. 서머 아워스 /올리비에 아사야스/프랑스/2009년
71. 괴물 / 봉준호/한국/2007년
72. 어댑테이션 /스파이크 존스 /미국 /2002년
73.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소피아 코폴라/미국 일본 /2003년
74. 게리 /구스 반 산트/미국/2002년
75. 공공장소에서의 개인적 공포 / 알렝 레네/프랑스 이탈리아/2006년
76. 마이 위니펙 /가이 매든 /캐나다/2007년
77. 펀치 드렁크 러브 / 폴 토머스 앤더슨/ 미국/2002년
78. 팻 걸 /캐서린 브레이야/프랑스 이탈리아 /2001년
79. 디파티드 / 마틴 스코세즈/미국 홍콩/2006년
80. 파 프롬 헤븐 /토드 헤인스/미국 프랑스/2002년
81. 도니 다코 /리처드 켈리/미국/2001년
82. 무라데 /우스만 셈베네/ 부르키나 파소 모코코 튜니지아 카메룬 프랑스 /2004년
83. 해변의 여인 /홍상수 /한국/2006년
84. 살인의 추억 / 봉준호/한국/2003년

85. 철서구 /왕빙/중국/2003년
86. 웬디와 루시 /켈리 레이처드/미국/2008년
87. 트러블 에브리데이 / 클레르 드니/프랑스 독일 일본 /2001년
88. 팜므파탈 /브라이언 드 팔마/미국 프랑스 /2002년
89. 2층의 노래들 /로이 안데르손/스웨덴 /2000년
90.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클린트 이스트우드/ 미국 /2006년
92. 겁쟁이 로버트 포드에 의한 제시 제임스의 암살 /앤드류 도미닉 /미국/2007년
93. 라스트 데이스 /구스 반 산트/미국/2005년
94. 과거가 없는 사나이 / 아키 카우리스마키/핀란드 독일 프랑스 /2002년
95. 둑이 무너졌을 때 /스파이크 리 /미국/2006년
96. 베스트 오브 유스 /마르코 튤리오 지오다나/이탈리아/2003년
97. 생활의 발견 /홍상수/한국/2002년
98. 24 시티 /지아장커/중국 홍콩 일본 /2008년
99. 인 더 시티 오브 실비아 /호세 루이 게린/스페인 프랑스 /2007년
100. 하얀 리본 /미카엘 하네케/오스트리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2009년 

 + <아바타>가 결국 골든글로브 작품상과 감독상을 가져갔구만. 카메롱 형님이 다시 킹 오브 더 월드를 외칠려나, 오스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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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6253

 박권일의 <'공부의 신'도 못 따라 갈 현실>을 읽고, 몇몇 단상을 정리해 본다.  

  <공부의 신>에서 김수로와 함께 말썽꾸러기들을 천하대로 보내는 것을 돕게 된 배두나는, 오래 전 드라마 <학교>에서 제도권에 저항하던 아이콘이었다. 감히 격세지감이라는 말을 붙여도 될까. 김수로는 1화에서 과감하게 말한다. 천하대에 가서, 너희들이 그렇게 비뚤게 바라보는 사회의 룰을 바꾸라고. 그 룰을 바꾸는 건, 결국 사회가 인정하는 최정상에 올라가야 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고.   

갑자기 그 장면을 곱씹어보다가, 매년 수능 때만 되면, 1인 시위를 하던 친구들이 생각났다. 피켓엔 학벌로 인한 차별을 반대하며, 수능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것을 비판하는 그들의 소망이 달려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제 사람들은 이런 소망, 이런 희망이 담긴 시도를 환영하지 않는다. 차라리 그 시간에 공부를 더 하라고 외친다. 작년에도 어김없이 수능을 비판하던 학생들이 시위를 벌였지만, 대중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덧글에는 그들을 비난하는 어투로 넘쳐났고, 그나마 정성스럽게 반응을 보여준 사람들중엔 너희들이 바꾸고 싶은 게 있으면, 서울대 들어가서, 바꾸는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 개무시 당한다는 공통된 반응이 제법 있었다. <공부의 신>에서 김수로가 학생들에게 외친 그 몇 마디는 드라마에만 적용되는 대사는 아니다. 그렇다. 이 대사는 현실을 깊숙 찌르면서, 이제 사람들에게 제도를 바꾼다는 것, 제도에 일탈하여, 그 제도의 틀 자체를 바꾼다는 건 별 소득이 없다는 걸 공인한다. 그리고 사람들 속에 그 대사는 공명의 기운을 뻗친다. 

<공부의 신>의 압권은 드라마가 끝나고 나오는 '내신 잘받는 방법'이다. 그 장면을 보면서, 나는 '귀여운 공포'를 체감했다. 설마 이 장면을 보면서, 배우들이 제시하는 방법론을 수첩에 깨알처럼 적는 부모와 학생은 없겠지? 그런 상상을 했다. 이 상상의 곁에서 점점 커져가는 건 이제 '교육 혁명'이라는 건 기대하기 어렵나, 하는 것이었다. 아니, 우리 사회는 이제 혁명을 문화 속에서만 체험한 채, 그것에 안주하는 것으로 삶을 잘 살고 있다고 할 지 모르지, 그 오래된 우려가 자연스러운 문화적 코드로, 진부하게, 그것도 매우 친숙하게 유머라는 코드와 섞어 나왔을 때, 나는 이 드라마를너무 우울해서 못 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가 보여준 자살의 절규는, 우리 사회에 어떤 공명을 일으키지도 못한 채, 그 절규는 그 누군가에게는 한심한 자의 어리석음으로 기억되고 있다. 우리의 친구들은 죽음으로까지 우리 시대의 교육이 보여주는 모순을 상징화하는 것에 그 어떤 애도를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그 애도의 가능성을 대신하는 것은 이 사회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겠다는 의지다. 그러나 이 생존의 의지 가운데서, 우리는 '편안하게 스며드는 사회적 불안'이란 가스에 몽롱해지고 있음을 꾹 참은 채, '일단 살아간다'. 천하대에 가기 전에, 우리 아이들은 이미 힘이 다 빠졌다. 영리해져라, 정신차려라, 일단 잘해보고 봐라. 이 3계명을 부여잡은 채. 부들부들. 더 안타까운 건 이런 소리 자체를 '헛소리'로 잠식해버린, 이 사회의 현실이다. '공부의 신'이 다시 알려준 어떤 현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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